교육 칼럼

비전 없는 대학의 비전 선포식 - 스페셜리스트 아닌 스페럴리스트 되라

일취월장7 2019. 5. 24. 09:59

비전 없는 대학의 비전 선포식

대학들의 비전 선포식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비전을 실현코자 하는 목표·전략에 공감하기 힘들고, 세계 ‘100위권’처럼 실현 불가능한 숫자를 제시한다. 학생들은 행사에 ‘동원’된 들러리이다.

이대진 (필명·대학교 교직원)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23일 목요일 제609호


콘서트홀 못지않은 화려한 무대 조명에 눈이 부셨다. 웅장한 느낌의 배경음악을 시작으로 미리 제작된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가끔씩 아래에서 위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가 무대 효과를 더했다. 드디어 발표자 등장. 세련된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한 장씩 넘겨졌다. 퓨처, 글로벌, 융합, 혁신 같은 단어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말 아주 잠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가 느낌이 날 ‘뻔’했다. 총장을 포함해 멀뚱한 표정의 남성 대여섯이 무대 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준비된 버튼을 동시에 누르자 번쩍번쩍 조명이 행사장을 몇 차례 휘감았다. 몇 년 전, 한 대학의 비전이 그렇게 선포되었다.

대학에서는 종종 ‘비전 선포식’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린다. 건학 60주년, 개교 40주년 등을 내걸거나, 새 총장이 취임한 뒤 몇 개월 준비 기간을 거쳐 새로운 비전이 발표된다. 다른 대학 비전 선포식에 갈 기회가 생기면 되도록 가보려고 한다. 직접 가지 못할 땐 관련 기사나 보도자료라도 챙겨 본다. 그 대학 총장은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다른 대학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행사는 어떻게 치르는지 참고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다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박해성


우선 공허하다. 화려한 미사여구 때문일까, 조직의 비전이라는 것이 추상적 개념들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탓일까. 비전을 구성하는 단어들이나 비전을 실현코자 하는 대학의 목표·전략에 공감하기가 힘들다. ‘세계 명문대학 도약’ ‘글로벌 창의리더 육성’ ‘융합인재 양성’ ‘4차 산업혁명 시대 선도’ 같은 비전은 거창할 뿐 손에 잡히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은 느낌이다. ‘아시아 10위’ ‘세계 100위권’처럼 순위를 내세운 경우는 (평가 순위를 대학의 비전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논외로 하고) 과연 스스로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 것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비전 2030’처럼 뒤에 연도를 붙이는 경우도 많은데, 2030년이 멀게 느껴지는 것만큼 비전 내용과 실현 가능성 또한 아득하기만 하다.

‘비전 2020’ 선언했던 대학들의 현주소는?

선포식에서 학생들은 동원의 대상이다. 객석 맨 앞줄은 역대 총장, 이사장, 동문회 관계자, 지자체장, 국회의원 같은 귀빈 차지다. 행사장과 그 주변은 이들의 동선을 챙기는 수행원들과 의전에 실패하지 않으려 애쓰는 교직원들로 분주하다. 학생은 버튼을 누르거나 비전 선언문을 낭독하는 등 퍼포먼스를 위해 한두 명 참여하는 게 전부다. 행사장이 넓어서 혹여 빈자리가 보일까 걱정되면 학생들을 동원하기 위해 교내 학생식당 식권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기념품을 준다고 공지한다. 선포식에 참석하느라 수업에 빠질 경우 사유서를 발급해준다고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 구성원들은 시큰둥하다. 비전 선포식은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며 축하하는 자리로 포장되지만, 경영진이나 기획·비전 담당 부서 외에는 무관심하다. 몇 년이 지나 총장이 바뀌면 또 다른 수사(修辭)와 함께 선포될 비전, 공감대와 현실성 없이 경영진과 몇몇 교수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전략과 목표를 보며 구성원들은 냉소한다. 학생들은 동문 연예인이라도 몇 명 온다면 구경 삼아 들를까, 대학의 비전이나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한때 미래 사회를 상징하는 숫자였던 ‘2020’의 해를 목전에 둔 지금, 유행처럼 ‘비전 2020’을 선포했던 국내 대학들의 현주소를 돌아보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그때 꿈꾸던 캠퍼스에서,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스페셜리스트 아닌 스페럴리스트 되라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3 15:00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산업 변곡점 때마다 변신 가능한 직업 유리…미래 확장성에 주목해야

“국내 유력 대기업에 취업해 가문의 자랑이 된 건 3년 전. 그러나 지금 나는 불안하고 우울하기만 하다. 입사 당시의 설렘이 전혀 없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미래에 대한 방향조차 잡지 못하면서 불안하다.” 

국내 최초 컴테라피스트 한혜연씨(37)를 찾은 한 청년의 상담 내용이다. ‘컴테라피스트(Communication+Therapist)’는 고객의 현재 고민을 상담해 미래를 재설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새로운 직업 중 하나다. 한씨가 컴테라피스트라는 새로운 일을 모델링해 론칭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지금은 하루 평균 6명의 고객과 만나 상담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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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개념과 행태 달라지고 있어

물론 한씨가 처음부터 컴테라피스트라는 일을 생각해 낸 것은 아니다. 원래 그녀는 유명 예고와 미대를 거쳐 미국에서 순수미술까지 전공한 정통 미술학도였다. 그러던 중 안 해 보면 후회할 것 같아 뉴욕에서 바텐더 일을 잠깐 했다. 여기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고객을 만나 얘기를 들어주면서, 고독을 뱉어내는 미술보다는 마음을 나누는 카운슬링이 더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바텐더는 그녀의 숨겨진 재능을 끄집어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바텐더는 그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음 버전, 소위 격에 맞는 새 일을 찾아야 했다. 다시 지나온 경험에서 떠오르는 키워드를 조합해 봤다. 미술의 ‘관찰’, 바텐더의 ‘소통’을 묶었더니 커뮤니케이션 테라피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비정서적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심리나 정서가 더욱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명문 사립대에서 상담심리학 석사 과정도 이수했다. 

한씨와는 다른 사례도 있다. 십여 년 전, 미국에서 유명한 ‘석탄 전문가’가 대덕연구단지에 비싼 몸값을 받고 초빙돼 왔다. 높은 연봉과 기사 딸린 자동차, 주택까지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전문가는 7년 후 보직을 잃었고, 결국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해 연구소를 떠나야 했다. 에너지 트렌드가 석탄에서 석유로, 다시 재생에너지로 바뀌고 있는데 그는 오직 석탄만을 연구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는 미래사회에서 사회적 역할, 즉 일(work)의 방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씨처럼 시대적 패러다임의 이동과 궤적을 같이하면서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업을 수행하는 사람을 나는 특별히 스페럴리스트(Speralist)라 부른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미래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스페럴리스트’ 시대가 될 것이다. 깊지는 않지만 넓은 지식을 기반으로 시대적 결에 따라 전문성을 바꿔가는 에이플레이어(A-Player)를 말한다. 

그 이유를 보자. 일하는 방식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백오피스(Back office)와 전문가(Specialist), 크리에이터(Creator)가 그것이다. 백오피스는 일선 업무를 지원해 주는 후방 업무를 말하며, 전문가는 한 분야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직(職)을 영위하는 사람을, 그리고 크리에이터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일하는 패턴은 모두 다르다. 백오피스는 정규직이나 기간제 등 고용 형태에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조직에 소속돼 있다. 사무직 업무는 그 사무를 요구하고 관리하는 기업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기업이 일정한 대가를 주는 대신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고 KPI(핵심성과지표)에 의해 평가받는다. 일의 범위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 역시 일반적으로 조직의 일원으로 일을 한다. 예컨대, 컨설턴트는 연구소에, 디자이너는 광고회사에, 그리고 PD는 방송국에서 계약조건에 따라 일한다. 

반면에 크리에이터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유롭게 업무를 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포럼이나 조합처럼 개방된 조직의 일원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고 강의나 저술 등으로 생활한다. 흔히들 말하는 ‘자유로운 영혼’에 속하는 그룹이다. 바로 이 크리에이터 중에서 일정 부분 보상이 담보된 전문가가 스페럴리스트인 것이다.


백오피스와 전문가, 스페럴리스트의 차이

모든 일의 미래를 판단하는 근거는 ‘확장성’이다. 지금 하는 일에 확장성이 있다면 미래는 확실히 유리하지만, 반대의 경우 불확실하다. 그리고 그 확장성은 보상 정도 즉, 대가에 의해 결정된다. 직(職)보다 업(業)의 확장성이 월등하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백오피스의 미래는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백오피스는 확장성이 거의 없다. 만일 연봉 5000만원의 근로자라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딱 그만큼 받는 게 일반적이다.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계약 관계인 전문가는 백오피스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임금만 받는다. 현재도 PC로 작업이 가능한 업무 중 70%는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크리에이터는 다르다. 만일 작가라면 동영상 콘텐츠가 필요한 시기에는 스크립터로, 게임 산업이 뜬다면 게임시나리오 작가로, 플랫폼 사업이 유망할 때는 스토리보드 작가로 변신할 수 있다. 산업의 변곡점이 생길 때마다 갈아탈 수 있어 확장성이 높다. 이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적지 않다. 창의력은 대부분 트렌드와 동행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조만간 화이트나 블루칼라 같은 고용관계가 아닌 ‘스페럴리스트나 기그(Gig) 노동자’와 같은 비정형 프로젝트와 만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기그 노동자’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부정기적으로 일하는 근육 노동자를 말한다. 일의 개념과 행태가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제너럴한 지식을 산업의 물결에 따라 스페셜하게 모델링(Modeling)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인생도 모델링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