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

일취월장7 2019. 5. 15. 11:36


(1) 교사 '마일리지 승진제' 폐지해야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


입력 2019.04.24. 


ㆍ승진 점수에 얽매여 교장 눈치 보게 되고 교사 본분에 집중하기 어려워

학교폭력 담당부장을 3년간 맡은 적이 있다. 교육경력도 어느 정도 됐고, 승진점수를 보고 부장을 신청했더니 기피업무인 학폭부장에 배정된 것이다. 학폭부장을 하는 동안 학교폭력사안을 다루다보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내가 경험한 학폭부장은 학교폭력사안 조사부터 학교폭력전담기구회의 및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까지 개최해야 했다. 그러다보면 교사라기보다는 경찰의 업무를 담당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학폭부장은 심지어 배움터 지킴이나 보안관 관리까지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방과 후 담당부장도 마찬가지다. 방과 후 강사를 뽑을 때 공고를 내거나 면접까지 방과 후 담당부장이 주관한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방과 후 학교 자유수강권 대상자를 선정하거나 지원하는 일까지 하기도 한다. 심지어 중간에 방과 후 학교 수강료를 환불하는 것도 방과 후 부장이 처리한다. 그러다보니 방과 후 부장은 1년 내내 행정으로 바쁜 경우가 많다.

교무부장은 기본적으로 교무실에 상주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를 관리하고 학교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행사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매주 간부회의에 들어가 교감, 교장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 교감 공석 시 교감을 대리해 공문서 결재나 복무 결재까지 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교무부장은 늘 분주한 자리다.

학교는 ‘이미 정치적인 공간’으로

개인적 경험상 이 세 부장들이 학교에서 가장 기피하고 힘든 보직이다. 그러나 나처럼 승진점수를 모으는 교사는 힘들어도 해야 한다. 교감 승진을 위해서는 부장교사 경력 7년이 필요하기도 하다. 거기에 근무평가라는 것도 필요하다. 3년 동안 학교 교사 중에 근무평가 1위를 세 번해야 승진하는 데 유리하다. 그래서 승진을 준비하는 선생님들은 아무리 바빠도 교무부장 3년은 기본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근무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교장이 부여하는 점수가 크기 때문에 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학교에는 자연스레 침묵하는 교사, 눈치 보는 교사들이 생긴다.

나 역시 그랬다. 교장이 민주적이지 않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을 해도 다음 부장 임명이나 포상에 미칠 영향 때문에 침묵한 적도 있다.

학교에서는 침묵이 곧 동조하는 것이 된다. 혹자는 침묵이 교육의 중립이라고 한다. 하지만 침묵은 고도로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다. 학교는 마이클 애플이 언급했듯 ‘이미 정치적인 공간’이다. 단지 조용하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착각할 뿐이다.

학교에서는 부장회의라는 것을 한다. 부장회의의 주목적은 학교 전체 운영을 논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목적은 학교장의 의견을 부장들이 중간에서 교사에게 오해 없이 잘 전달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교장, 교감을 비롯해 전 교사가 함께하는 전체회의보다 중간급 회의가 더 활성화되면서 평교사의 의견이 교장에게 전달되는 창구는 더 좁아진다. 비보직 교사에게 의견이 있다면 절차를 밟으라고 말하는 식이다. 중간급 회의는 교장의 지시 하달을 부드럽게 할지는 몰라도 일반 교사들의 건의나 의견은 한 번 거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 자체를 교사들은 비민주적이라고 느낀다. 절차를 밟아서 의견을 내라고 하는 것은 이미 교사와 교장 간 권력의 거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민주적 학교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성과급 점수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무부장-연구부장-학년부장-기능부장-비보직교사’ 순으로 형성된다. 교사가 부여한 점수도 이 순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교사들도 학교가 정해준 순서에 순응한다. 이미 관료제가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료제는 교사의 민주성과 자율성, 창의성을 침해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할 분야는 상식적으로나 법적으로 볼 때 수업, 생활지도, 상담이지만 학교에서 소위 유능한 교사로 평가받는 교사들은 학교 교육과정을 잘 짜는 연구부장이나 학교 행정을 잘 하는 교무부장인 경우가 많다. 이는 교사의 본질적인 전문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학교의 민주화, 교사 전문성 제고 저해

미국의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였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연구부장이 아닌 교감이 직접 짜고 있었다. 그 학교에서는 교감을 ‘커리큘럼 코디네이터’라고 불렀다. 캐나다 학교의 교장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직접 상담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의 학생 상담은 주로 담임교사들이 담당한다. 미국에서 만났던 교사 맥도널드는 교감과 교장이 전혀 부럽지 않다고 했다. 자신은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고, 교감과 교장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라고 설명해줬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외국 교사들이 수행하지 않는 잡다한 행정업무까지 수행한다. 그러다보니 교사들이 어느 사이에 ‘반(半)행정공무원화’ 되어버린다.

사람이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가르치는 일도 잘 하고, 행정업무도 잘 하는 교사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행정업무를 하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더 많은 수업준비를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생활지도에 신경쓸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마일리지 승진제’는 승진 예측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제도다. 승진을 위해 교사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준비한다. 승진제는 기피업무 배정을 원만하게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기피업무인 학폭부장을 자원한 것도 승진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마일리지 승진제는 기피지역 배치를 용이하게 해준다. 승진점수가 없다면 어떤 교사가 벽지나 섬에 들어가 근무를 하려 할까. 진심으로 원해서 가는 교사들도 있지만 승진점수가 일정한 작용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승진 예측성이 있고, 기피업무와 기피지역 배정에 용이하다고 마일리지 승진제를 유지해야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승진을 빌미로 교감, 교장이 해야 할 일을 교사가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진에 신경쓰다보니 교사의 전문분야인 수업, 생활지도, 상담에 집중할 수 없다. 또한 교사들이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자율성과 창의성도 저해된다. 기피업무를 했다고, 기피지역에 갔다고 해서 교장 자질을 담보할 수도 없다. 기피업무를 맡거나 기피지역에 가는 교사에 대한 보상은 승진이 아닌 수당이나 이동점수 부여방식 등으로 다양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이제 교사의 전문성 제고와 학교의 민주화, 교육의 자율성·창의성 신장을 위해 ‘마일리지 승진제’와 과감하게 결별해야 한다. 이별은 늘 아쉽고 아프다. 그러나 도려내야 할 부분은 도려내고 가야 새로워질 수 있다.

정재석 고창초등학교 교사(실천교육 정책팀장)


(2) 누구를 위한 NEIS인가?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

입력 2019.04.30.


ㆍ학생·교사·학부모 편의가 아닌 관료주의적 관리와 통제를 위해 쓰여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교육부에서는 독일어도 아닌 것을 엉뚱하게 ‘나이스’라고 읽는다. 사실 이렇게 부르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NEIS는 2003년 ‘학교와 교육청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교무·학사·인사·회계 등 교육행정을 전자적으로 처리하여 교육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으로 전면 도입·시행됐다.

일러스트 김상민


그런데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개인정보의 과다 집적 등을 문제삼은 전교조 등의 강한 반발 때문에 참여정부 첫 교육장관인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낙마하는 우여곡절이 벌어졌다. 급속한 전면 시행에 따른 잦은 오류와 원시적인 인터페이스 등으로 현장 교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NEIS는 자주 ‘뻑’이 났고, 그때마다 학교는 올스톱 되거나 두세 번씩 다시 작업해야 했다.

시수와 편제와 발이 묶인 교사들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이 NEIS를 발음법에 따라 ‘네이즈’라고도 부른다. 국적 불명의 ‘나이스’라는 말은 현장 교사들의 불만을 경청해 해결하기보다는 ‘NEIS는 ‘나이스한(좋은) 것’이라는 다분히 주술적 취지가 담긴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종 행정력을 동원해(예컨대 공문서 및 연수에 NEIS 명칭 쓰기) 현장의 정서를 조작 또는 억압하고자 했다.

그 뒤로 16년이 지났다. 시스템은 조금씩 안정됐다. 나름 보완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완의 기준이 2003년 당시의 기술력과 교육환경의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스템의 철학 즉,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시스템인가에 대한 물음이 없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분명 NEIS 도입으로 학교에서는 이전보다 월등히 많은 정보량을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보처리 능력이 학생과 교육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료주의적 관리와 통제를 위해 쓰이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육과정 시수’다.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생이 진로교육을 내실 있게 받으면 되는 것이지 진로시간의 시수가 학기당 17시간인지 18시간인지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나아가 진로수업이 ‘창의적 체험활동(자율·동아리·봉사·진로 4개 영역)’의 진로수업인지 ‘자유학기제(진로·주제선택·예술체육·동아리 4개 영역)’의 진로수업인지까지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그런데 NEIS라는 전산화된 문명의 이기는 그 불필요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했고, 교사들이 시수와 편제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해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 교사들은 새 학기 준비의 상당 부분을 교과연구 혹은 새로운 학생들을 맞을 준비가 아닌 서류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쏟는다.

학기 중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기록’이라는 것을 만들어 NEIS 시스템 상에서 시수가 자동 계산되도록 한 뒤 (정확히는 수기로 입력하지 못하게 막아) 사소한 시수 오류라도 있으면 더 이상 일을 진행할 수가 없게 차단해놓고 있다. 한 학생이 독감에 걸려 조퇴를 했을 경우 자율활동을 8시간 한 것과 9시간 한 것의 차이가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그만큼의 학교 행정력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발생한다.

이렇듯 NEIS 시스템의 운영목적이 사실상 이용자(교사·학생·학부모)의 편의가 아니고 관리와 통제의 편의이다보니, 정작 전산화로 혁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학교업무 프로세스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종이로 하던 작업을 이제 컴퓨터로 하게끔 만들었을 뿐이다. 예컨대 학교에 연간 1만건이 넘게 쏟아지는 공문 중 그 흔한 답글 기능조차 없어 새로 공문을 작성할 때면 일일이 근거 공문 번호를 찾고 수신처를 찾아 입력해야 하는 실정이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교사의 일상

학생과 학부모들도 전산화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학생의 출석을 인정해 주는 체험학습 보고서는 종이신고서로 처리해야 한다. 학부모는 PC방에 가서라도 사진을 출력해 붙여 문서를 만들어 보내야 하고, 아이가 깜빡해서 제출기한을 놓치기라도 하면 인정 여부를 학교와 다퉈야 한다.

교사는 교사대로 그 서류를 추려 결재를 받아 문서철을 만든 다음, NEIS 출결사항 메뉴에 입력해야 한다. 종이로 할 때보다 오히려 한 단계 더(?) 일을 하는 셈이다. 학부모가 업로드해 승인되면 시스템에 자동으로 반영되는 방식이 아니다. 방과 후 학교 신청이나 성적 확인, 고교 입시원서 제출, 건강검진 결과 수합 등 거의 모든 일들의 프로세스가 대동소이하다. 다만 상급기관에서 출석률이 몇 %인지, 비만학생 비율이 몇 %인지 한눈에 파악해 보고하기가 좋아졌을 뿐이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개선 요구가 있어도 NEIS를 관장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은 현장의 목소리보다는 늘 ‘갑’인 교육부의 의견을 우선한다.

NEIS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실질적 업무개선 효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교사들은 학생이 아닌 컴퓨터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교사의 일상을 학생이나 책이 아닌 컴퓨터가 지배하게 된 셈이다. 학교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도입된 NEIS가 도리어 학교의 교육력을 갉아먹는 비효율과 역설을 야기하게 됐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정보화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NEIS 도입 당시의 취지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교육관료를 위한, 교육관료에 의한, 교육관료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그 도입 취지를 되살리고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는 현재의 상황에 맞도록 개편하는 전면적인 재설계 및 혁신이 절실하다.

먼저 업무 프로세스를 현 실정에 맞게 재구축해 ‘관리의 편리’가 아닌 ‘업무의 편리’를 꾀해야 한다. 대신 교사들은 미래형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관점 전환도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관’이 아니라 ‘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스템으로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학생부 기재내용은 아니지만 학생에게는 의미 있는 진로검사 결과나 도서대출 이력 같은 것도 연결하고, 초·중·고를 연계해 성장의 이력을 살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 스스로가 다양한 정보를 집적·관리하며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LOD(링크오픈데이터 연결)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면 정보보호나 보안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IT 강국이고, 교육열도 높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득권 유지를 위한 관료들의 규제에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상에 맞게 새로운 백년지대계를 위한 변화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신동하 교사(경기교육연구소 연구실장·실천교사 정책위원)


(3) 대학 입시제도 이대로 좋을까?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

입력 2019.05.08.


ㆍ이리 고치고 저리 고쳐도 불만 해소 못해… 누구나 만족하는 제도는 한국에 없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대학입시 문제로 귀결된다. 사람들은 대학입시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교육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파고들어가 보면 대학입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러스트 김상민


무지는 불안을 낳는다. 입시와 자녀교육에 불안한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싶어한다. 학원가의 광고전단을 보면 각종 설명회 개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정보에 목마른 학부모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학원에서 설명회, 간담회를 개최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학원의 목적과 학부모의 ‘니즈’는 설명회와 간담회를 통해 접점을 찾는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학원도 하는 것을 학교가 하지 않으면 곧바로 비난거리가 되고 만다. 학원 설명회는 학교로 전파됐다. 학교에서 하는 대학입시 설명회다. 필자도 학교 대입 설명회에서 마이크를 단골로 잡아왔다. 단골 마이크맨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학원에는 아예 전국을 다니는 설명회 전문강사가 따로 있다.

수많은 설명회와 간담회 찾는 부모들

수많은 설명회를 들어봤으니 사람들은 이제 입시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학부모들은 여전히 무엇을 알아야 할지, 대학입시가 무엇인지 몰라 어려워한다. 각종 설명회·간담회는 그냥 부흥회로서만 기능할 뿐, 핵심 정보 전달에는 실패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의 목적이 입시정보의 확산에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이유다.

도대체 학부모와 학원, 학교는 모두 무엇을 위해 설명회를 열고, 참석하는 것일까. 또 무엇을 설명하고 전달받고 있는 것일까.

어떤 분야를 잘 모르면 당연히 목소리가 작아지고, 주장의 세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육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은 무지의 정도와 주장의 강도가 비례하는 속성마저 엿보인다. 엄청난 이해관계가 걸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계경제에 무리가 가더라도 자녀의 사교육비는 아낌없이 쓴다.

관심은 많은데 그만큼 알지는 못하는 이중성. 결국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의 모순이 대한민국 교육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

흔히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이 많아지고, 고등학교 입시가 과열됐다고 비난한다. 특목고의 교육환경이 실제 일반고보다 좋은지 여부는 검증이 어려우니 넘어가더라도, 특목고 학생들의 사교육 실태는 증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A외고는 주말이면 대치동행 관광버스가 운행을 한다. 학교는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모두 알고 있다. 적어도 일반계 고등학교가 부실해서 사교육이 창궐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지방의 자사고나 과학고도 사교육 열풍에서 예외가 아니다.

특목고든 일반고든 역시나 한국 공교육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일까. 국제고에서 이른바 ‘검은 머리 한국인’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는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한국 공교육을 비난하는 논리의 균열이 드러난다. 그 좋다는 선진국 교육을 한국에서 받아도 여전히 사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이다.

모순은 대학입시에 만연한 서열화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중위권은 어디일까? 산술적으로 대학입시에서 중위권은 전체 수능 9등급 중 5등급이 기준이 돼야 한다. 5등급보다 조금 높은 3~4등급의 성적표를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중간보다 높은 성적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걸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대학이란 말을 쓴다. 하위권 대학은 정말로 하위권이 아니다. 우리의 눈이 실제의 상위권에 만족 못하는 것일 뿐이다. 적어도 서울의 경계선 안에 하위권 대학은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지역에 서울의 경계선을 약간 벗어난 대학이 있다. 하위권 대학으로 분류되는 학교이지만, 수능 상위 10% 이내에 들어가야 합격권이다. 그 어떤 분야에서도 상위 10% 이내를 하위권이라고 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유일하게 대학입시에서만 통용되는 분류법이다.

학벌 중요하지 않다면서 입시에 올인

해마다 수능이 끝나면 출제를 담당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언론과 학생, 학부모로부터 ‘동네북’이 된다. 어려우면 불수능, 쉬우면 물수능이라고 비판받는다. 무언가 통합할 수 없는 모순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수능 성적표가 배부되면 평가원이 있는 충북의 조그만 마을에는 학생과 학부모가 탄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선다. 컴퓨터로 스캔해 채점이 되어 나온 점수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서다. 아직까지 단 한 건의 채점 오류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

선다형 한 줄 세우기 시험에 대한 비판은 학력고사 시절부터 나온 오래된 레퍼토리다. 누구나 인정할 것 같은 5지선다형 시험 체제의 혁파는 지난해 대입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으로 완전히 깨진 것 같았다. 수능시험으로만 가는 정시 대입 전형을 확대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으로 공인됐다. 그러나 여전히 선다형 시험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적절한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는 비판 역시 끊임없이 나온다. 학교 교육은 5지 선다형에 맞추어야 할까, 선다형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애써야 할까. 지금 학교는 두 요구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현재 대학입시의 난맥,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은 바로 이런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교육과 입시제도가 변화하는 시대를 못따라가고 있다는 말은 절반은 틀렸다. 입시제도가 정확히 현실에 조응해 그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제도는 매번 바뀌어 왔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바뀌어 왔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고친다는 비아냥을 들어왔을 정도다. 논술이 들어왔고, 미국식 입학사정관 전형이 도입됐고, 서술형 시험도 도입해봤고, 본고사도 부활시켜 봤다. 입시제도를 이리 바꾸고 저리 고쳐도 국민적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이제는 입시 자체에 대한 불만에서 사고의 전환을 이룰 때가 됐다.

더 이상 학벌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는 것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입시제도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에서 우리는 근본적 모순을 찾아야 한다. 설사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대라 하더라도 더 이상 학벌이 상층 노동으로 진입하는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대학입시에 올인하는 세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말로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는가? 여기에 동의한다면 이 시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 입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만드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해답이 될 것이다.

입시문제 해결에 ‘도깨비방망이’는 없다. 이제는 시선을 돌려서 교육과 입시에 대한 모순적 사고 행태를 전환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누구나 만족하는 입시제도는 적어도 한국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

전대원 위례한빛고 교사(실천교사 대변인)


(4) 신규 교사들은 왜 교단을 떠날까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

입력 2019.05.15.

ㆍ열정을 갖고 오지만 기피업무 대물림과 격무에 교사로서의 회의 늘어

교사는 그동안 아이들과 학부모가 선호하는 직업 1~2위를 유지해 왔다. 대학입시에서도 교대와 사범대는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등 임용시험의 경쟁률은 많은 과목에서 수십 대 1을 넘어온 지 오래다. 반면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명예퇴직 교사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그렇게 힘들게 임용시험을 통과하고도 우울감을 호소하다 교단을 떠나는 젊은 교사들도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왜 신규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임용시험제도와 교육현장 사이의 모순이 내포돼 있다.

현행 교사 임용시험의 출제 내용은 상당 비중이 전공분야의 교과 지식이다. 기본적으로 교육과정 해설서의 주요 부분을 통째로 암기해야 한다. 초등은 교과서의 지엽적인 암기형 지식을, 중등은 영재고 수업 수준 이상으로 대학생도 풀기 어려운 세부적인 전공지식을 제한시간 내에 정확히 써낼 수 있어야 1차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1차 시험 합격권 내에 드는 것부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임용시험 문제를 맞히기 위한 지식 암기와 문제 풀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시험은 분명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교육현장은 점차 암기를 통한 선다형 문제풀이의 지필시험 위주에서 벗어나 창의력, 비판적 사고, 소통, 협업능력 신장 위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들은 인성과 생활지도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임용과정에서 이 부분에 탁월한 교사를 가려낼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임용시험이 정말 훌륭한 교사를 가려내고 있는지 타당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선진국의 교원 양성 및 선발 절차에 비하면 아쉬움이 많다.

임용시험 제도와 교육현장의 모순

이런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라도 교대와 사범대의 교육과정이 운영되면 그나마 수험생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그러나 학교현장뿐만 아니라 임용시험과 동떨어진 기초학문과 이론 위주 과목의 비율이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 결국 많은 수험생들은 노량진 등의 고시촌과 인터넷 강의로 몰린다. 학생들을 사교육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공교육 교사가 되기 위해서 많은 예비교사들이 수년간 사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흔히 ‘교생’이라고 불리는 교육실습생 제도도 아쉬움이 많다. 졸업 시까지 초등은 대략 4회에 걸쳐 9주 정도, 중등은 4학년 때 1회 4주가 전부이다. 교대나 사범대 부설학교로 배정받으면 비교적 체계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 지도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실습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이미 행정과 생활지도 등 격무에 시달리는 현직 교사들에게 교생이란 또 하나의 업무부담이 되기 십상이다. 중등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교육실습생 지도를 위한 체계적인 매뉴얼이 잘 공유되지 않아, 학교 운영을 겉핥기로 구경하거나 지도교사 개인의 열정에 의존하는 도제식 교육이 되곤 한다. 이때 선배 교사들이 수업 공개를 꺼리거나, 선배 교사가 들어가기 싫은 반 수업을 다 맡겨버리기도 한다. 행정처리나 채점 등 잡무에 대한 지도를 넘어 떠넘기기로 변질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교생을 학생들 다루듯 통제하고 야단치는 선배 교사 등을 만날 경우 예비 교사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다.

“제가 신규였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요.”

필자가 진행했던 어느 지역 신규 1~3년차 교사 대상 연수에서 교사들의 하소연을 지켜보던 담당 장학사의 한탄이었다. 신규 교사들은 임용시험에 합격하면 일주일 정도 집체강의 위주의 신규연수만 받고 현장에 투입된다. 기간제 교사에게는 이런 최소한의 연수조차 없다. 운 좋게 주위에 좋은 선배 교사를 만나면 멘토링을 받을 수 있지만, 많은 교사들은 급변하는 교육환경에서 자신이 버티기에도 너무 바쁘고 힘들다.

교사 세대 간에도 소통이 쉽지 않은 구조다. 학교의 비교육적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면 사정없이 동조압력이 들어온다. 선배 교사들은 “우리 땐 더 심했어”라며 자신도 힘든 격무를 몰아주고,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않기도 한다. 무슨 업무인지도 모르는 신규 교사라도 일단 업무가 주어지면 대부분의 책임은 온전히 해당 교사의 몫이 되곤 한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결국 신규 교사들도 자신이 실망했던 선배의 모습을 점차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이 통과의례처럼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여러 분야에서도 보편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구조적으로 방치한다면 문제다. 힘들고 오랜 수험기간을 거쳐 교사가 됐다는 합격의 기쁨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결국 지쳐버릴 수밖에 없다. 교사가 지치면 이는 개인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 많은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학생들과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신규 교사들이 갖고 있는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더라도 이들은 교육현장의 베테랑이 아니다. 그럼에도 교육현장에서는 기존의 교사들이 기피하는 지역, 학년, 학교폭력 담당교사 같은 기피업무 자리를 비워뒀다가 2월에 발령받은 신규 교사를 그 자리에 앉힌다. 신규 교사가 아니면 전입·복직한 교사 또는 기간제 교사가 그 자리를 채운다.

필자가 임용된 2012년 당시 기피지역 위주로 혁신학교가 지정됐다. 그러자 해당 지역의 교사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는 누가 들어왔을까. 신규 교사로 채워졌다. 젊은 교사들의 열정으로 혁신의 성과가 높아진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요즘은 학부모 민원 급증으로 인해 기피지역이 된 강남·서초지역 초등학교의 1~4년차 교사 비율이 서울에서도 1위가 됐다. 현직 교사도 어려워하는 부분을 신규 교사로 채우면 악순환만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각종 시도는 있다. 신규·전입·기간제 교사에게 기피업무를 최대한 맡기지 않는 방식의 인사규칙을 만드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신규 교사에게 돌아가지 않은 기피업무는 기존 교사들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결국 떠맡게 되는 학교업무에 대한 전체적인 틀은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맡은 업무만 과중하게 느끼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세대 간 갈등은 교육현장에서도 유효하다.

그래도 최소한 우리가 느꼈던 선배 교사들의 부조리한 모습을 후배 교사들에게 대물림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세대 교사들의 과업은 교사들이 교육에만 전념하며 학생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기피업무를 누구에게 어떻게 나눠줄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런 잡무 자체를 없앨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신규 교사 역시 최신 정보로는 대체할 수 없는 선배 교사들의 지혜와 경륜을 존중하며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청 연수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현실적인 도움이 되도록 변모하고 있다. 교대와 사범대 교육과정과 평가에도 좀 더 현실적인 교육현장을 배울 수 있도록 현직 교사의 참여를 늘릴 필요가 있다. 임용시험을 치른 후에도 일정 기간 수습과정을 거치고, 수석교사 등을 통한 체계적 지원을 받아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는 훌륭하고 열정적인 교사 개인 한 사람의 노력에 기대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교사가 지치기 전에 교사의 성장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왕건환 경기고 교사(실천교사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