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삼수를 하면 나아질까 - “움직이는 1인 기업” 2030 파고드는 ‘N잡러’들

일취월장7 2019. 5. 10. 09:44

삼수를 하면 나아질까

고교 3년간 쌓아놓은 것이 거의 없는 재수생은 과거에 대한 후회, 자기 능력에 대한 의심, 부모가 실망하리라는 공포 속에서 허우적댄다.  한번 더 하면 부모의 기대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지쳐간다.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5월 09일 목요일 제607호


학부모 상담 주간을 앞두고 유난히 불안에 떠는 수강생이 있었다. 정작 심란해야 할 녀석들은 천하태평이건만, 공부를 못해도 성실히 제 과정을 밟던 그 아이는 마음을 못 잡고 있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면 수강생들은 텅 빈 시간을 견뎌야 한다. 대입 학원에서는 친구와 잡담, 외출, 전자기기 사용 따위의 행동을 금지한다. 그 아이는 몇 시간이고 문제집 한 쪽을 풀지 못했다. 답도 안 나올 고민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부모가 학원에 오는 것을 저렇게 두려워하는 아이가 제 발로 담임 강사를 찾아올 리는 없었다. 상담은 주변 어른들이 자신을 도우려고 시간을 내는 일인데, 그것을 위협적으로 느끼는 수강생이라면 부모와 문제가 있을 터였다. 재수생치고 부모와 원만한 이가 몇이나 되겠느냐만, 평소 생활이 엉망인 것도 아닌데 엄마가 학원 상담 신청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겁에 질리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교사나 강사와 유대 관계를 맺어본 경험도 적을 터였다. 성적 하위권 재수생들은 고교 3년, 혹은 훨씬 이전부터 가르치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학창 시절 내내 학업 성취가 낮고, 학교생활 참여도가 저조했던 학생이 이제 와서 담임 강사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박해성


며칠간 강의실에서 밥을 먹었다. 같이 양치하러 가며 그 아이를 살피고 쉬는 시간마다 강의실에 가서 잡담부터 시작했다. 수강생이 할 말이 있는 표정을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산책을 빙자해 학원 밖으로 데리고 나온 날, 그 아이는 머뭇머뭇하다 눈물부터 쏟았다. “너무 힘드니까 그냥 엄마 말 다 들어주고 싶은데, 저는 그럴 수준도 못 되는데, 엄마는 그게 납득이 안 되시니까, 너무 힘들어요.” 으레 그렇듯 낮추고 낮춘 부모의 기대치와 최선을 다하는 수강생의 실력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놓여 있다. ‘삼수를 하면 달라질까? 한번 더 하면 그 기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그 아이는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질문을 하며 스스로 할퀴고 지쳐갔다.
학습은 거듭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열심히 하면 성적은 오를 것이다. 그러나 고교 3년간 쌓아놓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굴려서 키워볼 눈뭉치조차 갖고 있지 않은 재수생이 숱하다. 공부하며 ‘모르는 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수강생들은 질릴 수 있다. 이런 수많은 구멍을 10개월 단기간에 채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 아이도 과거에 대한 후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 부모가 실망할 거라는 공포 속에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지방 캠퍼스라도…” 애타는 부모

부모라고 아이의 실력을 모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 대학에도 안 보내고 싶은데 애는 다른 대학은 못 간다니까, 이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요. 서울에 있는 대학의 지방 캠퍼스라도 가서 대학 이름이라도 달자는 건데, 어떻게 그것도 안 될까요?” 좋은 학벌로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고 성공한 부모일수록 이 레이스에서 탈락한 자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른다. 자녀를 아끼는 마음 이전에 견고히 지켜온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수강생의 성적 향상 폭 자체가 의미 있다는 점, 그리고 오르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부모에게 설득한다. 학벌 획득이라는 명분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모순적이게도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는 위로를 건네느라 애쓴다. 부모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들은 ‘고작 그거 하려고 이 돈 들여 재수시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1인 기업” 2030 파고드는 ‘N잡러’들
  • 한다원 시사저널e. 기자 (hdw@sisajournal-e.com)
  • 승인 2019.05.09 11:00
취업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2030세대 취향 반영

다양한 일과 취미를 병행하며 생계유지나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이른바 ‘N잡러(Jober)’가 늘고 있다. 수십 년간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가 되기보다 여러 일과 취미를 병행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셈이다. 1980~2000년대 태어난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N잡러는 하나가 아닌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뜻한다. 주 52시간 근로단축 제도가 대기업 중심으로 활성화되면서 일과 후 유튜브, 배달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1인 마켓 등을 겸업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N잡러가 많아진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근로단축 제도가 시행되면서 퇴근 후 여유 시간이 생기고, 다양한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고용 동향을 보면 지난해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는 62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10.3% 늘었다.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50만4000명이었던 것에 비해 4년 사이 10만 명 넘게 늘었다.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일과 취미를 병행하는 이른바 ‘N잡러’들이 크게 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일과 취미를 병행하는 이른바 ‘N잡러’들이 크게 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개인의 자아실현 중시하는 N잡러들

N잡러는 본업 외 다른 일을 하는 이른바 투잡족(two-job族)과는 다르다. 본업 외에 다른 일을 한다는 점에선 같다. 하지만 투잡족은 단순히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편의점 등의 파트타임(part-time) 일자리를 여러 개 갖는 저임금·임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등장한 N잡러는 경제적 소득 외에도 본업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중시한다.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곳에서 일하는 투잡족과는 달리 N잡러는 퇴근 후 1인 크리에이터 활동을 위해 수십만원을 들여 유튜브용 방송 장비를 장만하는 등 취미로 시작한 활동을 전문 분야로 확산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관계자는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N잡러라는 새로운 부류가 등장했다”며 “N잡러는 생존형 업무를 병행하는 투잡족과 달리 본업에서 채워지지 않는 자아실현을 위해 관심 있는 분야에 도전하는 경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N잡러는 ‘긱 경제’(gig-economy)와도 맞물린다. 긱 경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SNS 등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한 신종 일자리와 고용 형태를 뜻한다. 디지털 시대의 N잡은 1인 혹은 시간 단위까지 원하는 만큼, 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뿐더러 육아, 학습 등 개인 변수에 맞게 근무 강도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오는 2025년까지 긱 경제가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에 해당하는 2조7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5억4000만 명 정도가 단기 일자리를 통해 실업 기간 단축이나 추가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왔다.

상대적으로 위계질서가 강한 국내 기업의 조직 문화가 N잡을 부추긴다는 주장도 있다. 어학원 인터넷 강사 박아무개씨(25)는 번역 일을 병행하는 N잡러다. 번역, 통역 등 업무 의뢰가 들어오면 퇴근 후 또는 주말에 시간을 내 추가 업무를 한다. 박씨는 “기존 업무 외에 커리어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번역, 통역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하려고 한다”며 “시간만 있다면 N잡을 하라고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N잡러는 개인의 취미 또는 흥미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최근에는 특히 동영상, 유튜브 채널, 팟캐스트 등이 활성화되면서 광고와 조회 수로 부수입을 얻는 1인 방송 크리에이터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다. 대표적인 콘텐츠는 ‘브이로그’(VLOG)다. 브이로그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영상 콘텐츠다.

낮에는 디자이너로, 저녁에는 SNS 1인 마켓 운영과 유튜브 브이로거로 활동하는 직장인 차아무개씨(27)는 “퇴근 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해 보고 싶고, 좋아했던 영상 제작을 취미로 시작했다”며 “취미 생활을 직업화하면서 부수입도 얻고 직장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 꾸준히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앞으로도 N잡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노동 확산은 일자리 창출에 효과가 크다. 다만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한다는 문제도 뒤따른다. 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 혹은 특수고용자 신분으로 분리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고, 수입도 일정하지 않다.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고용 안전망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플랫폼 N잡러, 부족한 고용 안정성은 한계

실제 올해 초 출범한 플랫폼 노동연대는 현행 노동법이 변화하는 사회상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플랫폼 노동연대는 출범 선언문을 통해 “플랫폼은 승자독식 경제로 독과점을 가져오며 불안정 노동 정보통제 등의 문제점을 초래한다”며 “플랫폼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산업·노동·복지 정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N잡러가 보편적인 유형의 일자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온라인 공간이 넓어지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성되고 중견·중소기업까지 근로시간단축 제도가 시행되면 사람들이 다양한 일을 시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덩달아 조성된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제는 다양한 직업군이 디지털, 온라인 공간에서 지식 공유가 가능한 시대니만큼 부담 없이 N잡을 시도하는 조건이 형성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N잡이 가능하도록 기술,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노동법 구조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이 근로자로 보호받지 못하다 보니 업무 중 피해를 입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법적 조치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플랫폼 근로자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고, 앞으로 N잡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증가할 것이다. 한국도 이에 맞춰 노동 법규를 조속히 마련해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