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세계 금융시장에 엄습한 불안

일취월장7 2018. 11. 13. 17:53



세계 금융시장에 엄습한 불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경제 대국의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다. 늘어난 돈은 실물경제보다 금융시장으로 쏟아졌다. 이러한 정책은 ‘새로운 취약성’을 낳았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8년 11월 08일 목요일 제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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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충을 잡으려면 살충제를 개발해야 한다. 다만 세월이 흐른 뒤 그 살충제에 면역력을 가진 더 강한 해충이 창궐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된 2018년 가을, 세계 금융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10월 중순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글로벌 금융 안정성 보고서(Global Financial Stability Report)>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금융 규제의 틀이 개선되고 은행 시스템(banking system)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취약성(new vul-nerabilities)이 발생하면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신뢰성이 시험에 빠졌다”.

2008년 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 대형 은행들의 방만한 부동산 대출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미국 은행들은 가계에 대한 고액 부동산 담보대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상환 능력이 없는 저소득 가계에도 ‘겉으로만 유리한 조건(고금리를 저금리인 것처럼 포장)’으로 대출을 ‘살포’했다. 은행으로서는 일단 대출하면 이후 수년에 걸쳐 채무자로부터 일정한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10억원을 빌려주면 10년에 걸쳐 15억원(연 금리 5%로 가정)을 상환받는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은행들은 이 권리를 합치고 쪼개서 만든 ‘파생금융 상품’을 여러 나라의 다양한 금융투자자들과 사고팔면서 적잖은 재미를 누렸다.
ⓒEPA
10월9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발언하는 모습.

이 파생금융 상품은, 당초 부동산 대출을 받은 가계가 원리금을 은행에 계속 납부해야 그 가치가 유지된다. 2006년 이후 미국의 저소득 가계 중 대다수가 부동산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은행이 수년에 걸쳐 원리금을 돌려받는 권리’ 자체가 의문시된다면, 그 권리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파생금융 상품의 가치 역시 0달러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해당 상품을 잔뜩 보유하거나 거래한 여러 나라의 유수한 금융기관들이 사실상 파산하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금융거래, 나아가 세계경제를 마비시켰다.

빈사 상태에 빠진 세계경제를 구하기 위해 미국 등 경제 대국의 중앙은행은 이른바 ‘양적완화(중앙은행이 금융기관 보유 국채를 매입)’로 금융기관들에 엄청난 규모의 통화를 공급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의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에 뿌린 돈이 무려 10조 달러를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통화 공급이 늘어나면서 그 (본원)통화의 가격이라 할 수 있는 기준금리 역시 선진 각국에서 ‘사실상 0%’로 고정되었다. 이와 함께 은행들이 방만한 대출과 위험한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금융 규제를 강화했다. IMF가 ‘규제 틀 개선과 은행 시스템 강화’로 표현한 내용이다.

문제는,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이런 정책이 ‘새로운 취약성’을 낳았다는 점이다. 선진 각국이 기준금리를 사실상 0%로 고정한 취지 중 하나는, 은행들이 싼 금리로 실물경제 부문에 대출해서 경기를 살리라는 것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기대와 매우 다르게 전개되었다. 늘어난 돈은 실물경제보다는 금융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EPA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주택 앞에 주택 매매 광고판이 걸려 있다.

지난 10년간 실물경제 활성화되지 않아


IMF 보고서가 제기한 ‘새로운 취약성’ 가운데 대표 사례는 ‘비금융 기업(금융기관 이외의 업체) 부문의 이미 높은데도 계속 올라가는 부채비율’이다. 미국의 경제정보 전문 미디어인 <블룸버그>(10월11일)는 지난 5년 동안 감행된 기업 인수합병 가운데 인수 금액이 높은 순서로 50건을 검토했는데, 대표적 비금융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크게 악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난 10년은 금리가 극도로 낮은데도 불구하고 실물경제는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다. 비금융 기업들의 매출액 성장 역시 매우 더딘 편이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쉽게 성장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낸다. 어떻게든 거액을 빌려 경쟁 기업을 인수해버리면 된다. 단번에 기업 규모를 확대하면서 시장점유율까지 높일 수 있는 길이다.

세계 최대 통신회사인 미국의 AT&T는 올해 들어 미디어그룹 타임워너 등을 인수하는 데 모두 1900억 달러(약 216조원)를 투자했다. 그 자금 중 상당 부분이 빌린 돈이다. 순식간에 AT&T의 부채는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비 등을 빼기 전의 순이익. 해당 기업의 영업을 통한 현금 창출 능력을 나타냄)의 4.4배에 이르렀다. 부채가 EBITDA보다 많을수록 해당 기업이 영업에서 번 돈으로 빚을 갚기는 어렵게 된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S&P는 AT&T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두 단계나 떨어뜨렸다.
ⓒAP Photo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왼쪽)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용등급은 ‘해당 기업에 돈을 빌려줘도 되는지’를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BBB 이상을 ‘투자등급’이라고 부르는데 ‘빌려줘도 떼먹힐 위험이 크지 않다’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안심하고 빌려주는 대신 많은 이자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BBB 이하는 ‘투기등급’이다. ‘상환받지 못할 위험이 큰 대신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라는 의미다. AT&T는 투자등급의 최하위(BBB)로 떨어지는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타임워너를 인수한 것이다. 식음료 부문 거대 기업인 닥터페퍼스내플 그룹은 큐리그그린마운틴(커피머신 제조사)과 합병하면서 170억 달러의 빚을 졌다. 합병회사(큐리그닥터페퍼)의 부채는 EBITDA의 5.6배로 평가된다. 신용등급 역시 BBB+에서 BBB로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미국 기업들이 BBB 등급으로 빌린 돈이 2조47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말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 10년 동안 기업 부문의 악성 부채가 폭증한 것이다.

그 이유는, 기업과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진 ‘저금리의 세계’에서 다소 위험하더라도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투자처를 찾아 세계를 헤맸다. 기업 입장에서는 차라리 신용등급을 낮춰 투자자에게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하는 쪽이 거액을 빌리기엔 유리했다. AAA보다 BBB 등급의 기업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더욱이 기준금리 자체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이자를 더 줘도 그 금액의 절대 규모는 크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무디스, S&P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AT&T, 큐리그닥터페퍼 등은 부채비율로 볼 때 투기등급으로 평가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신용평가사들은 이 회사들에 투자등급을 부여하는 놀랄 정도로 ‘관대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 등은 10년 전에 ‘금융위기의 종범’으로 비난받은 바 있다. 위험한 파생금융 상품들에 투자등급을 척척 붙여줬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다른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

IMF 보고서는 이외에도 ‘새로운 취약성’이 선진국 자산(주식·부동산 등) 시장과 이머징마켓 등에서 축적되어왔다고 지적한다. 양적완화로 대량의 자금을 확보한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실물경제보다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자산시장과 이머징마켓에 투자하면서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각국 주식시장은 실물 부문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최고 지수를 경신해왔다. 보고서의 표현에 따르면 “자산가치가 늘려짐을 당했다(stretched asset value)”. 한동안 이머징마켓들 역시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자본 덕분에 특수를 누렸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새로운 취약성을 한낱 ‘잠재적 위협’으로 억누르는 것이다. 취약성들이 특정한 계기를 만나 현실화되면 세계경기 침체, 나아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불행히도 그런 계기가 형성되고 있다.

먼저 타격 입은 새로운 취약성 ‘이머징마켓’


무엇보다 주요국들이 통화 긴축(기준금리 인상)을 이미 진행 중이거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MF 보고서는 “수년에 걸쳐 구축된 취약성이 금융 환경의 갑작스러운 긴축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라고 우려한다. 지난 2016년부터 인상되기 시작한 미국의 기준금리는 지금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내년까지 계속 오를 전망이다. 지난 50여 년의 경험에 비춰보면 미국의 기준금리가 오르면 크든 작든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새로운 취약성은 이머징마켓이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이미 국가부도 상태다. 터키·인도네시아·인도·파키스탄·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위태롭다. IMF 보고서는 ‘달러로 갚아야 할 외채’를 상당한 규모로 짊어진 이머징마켓 국가들의 위험성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부풀어 오른 각국 자산시장도 우려의 대상이다. 10월 중순 미국 주요 주가지수의 폭락과 한국 증시의 출렁임도 선진국 통화 긴축(금리 인상)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에 드리운 불안감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악성 기업 부채들이 산적한 미국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폭증한 BBB 등급의 기업들은 금리 인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발생 가능한 외부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다. 부채비율을 개선하지 못해 투기등급으로 강등되면 기존 빚의 이자율이 오르는 한편 새롭게 돈을 빌리기도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이 미국의 주요 기업에서 발생하면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10년 전 위기의 발원지는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이었다. 다음 위기는 미국 기업의 악성 부채로 시작될 수 있다.

IMF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등 여러 나라에 개시한 무역전쟁에 대해서도 “세계경제에 심대한 리스크를 안길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세계무역기구(WTO) 개혁 및 국제무역 시스템의 개선을 요청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바라는 것은 ‘규칙에 근거한(rules-based)’ 국제무역 질서의 개선이 아니다. 경제와 군사 부문의 라이벌로 찍은 중국의 기세를 꺾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개정해 타결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은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했다. 글로벌 차원에서 전개되는 국제분업 체계에서 ‘세계의 공장’ 구실을 해온 중국의 지위를 박탈해 핵심 제조업 및 하이테크 산업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장기적 목표다. 라가르드 총재의 충고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통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다음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취약성들을 만들어냈다. 취약성이 현실화될 계기들도 돌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새로운 국제협력 체제를 구축해서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불평등과 긴축이 경제에 나쁘다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위기 이전과 얼마나 달라졌나.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1월 12일 월요일 제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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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도 10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세계경제는 위기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불평등과 자산 버블을 배경으로, 규제완화가 부추긴 금융시장의 폭주로 인한 것이었다. 위기 직후 정부와 중앙은행은 양적완화와 재정 투입으로 급한 불을 끄고 체제의 붕괴를 면했다. 또한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조명받았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얼마나 변했고 위기 이전과 얼마나 달라졌나. 선진국만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민간 부문의 부채비율은 낮아졌지만 정부 부문의 그것이 크게 높아져 경제 전체의 부채비율은 GDP의 약 380%로 위기 전후 별다른 변화가 없다. 많은 이들은 정부 부채의 급증을 우려하지만,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오히려 금융 부문의 부채비율이 2009년 GDP의 약 130%에서 2018년 현재 110%로 약간 줄어들었을 뿐이고, 이들에 대한 규제도 크게 강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계속 높아져온 불평등은 위기 이후 경제회복과 함께 다시금 높아졌다. 미국에서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약 20%에서 위기 직후 하락했다가 2016년은 위기 이전보다 조금 높아졌고, 하위 50%의 비중은 약 14%에서 13%로 더 낮아졌다. 위기와 반성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에 맞서는 경제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었다.

한편 금융위기와 불황으로 명백히 드러난 불평등 심화는 자유민주주의의 약화를 낳았다. 소외된 저학력 백인 노동자층의 엘리트 정치에 대한 반발이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극우 포퓰리즘 현상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금기가 그랬듯이 민주정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절히 규제할 때 체제의 안정과 높은 성장이 가능하지만, 이제는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에 처해 있는 현실이다.

경제학자와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도 위기를 일으킨 자유시장과 불황을 심화시킨 긴축의 문제를 인식하고 확장적 재정정책 등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긴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위기가 이후 경제사상을 완전히 변화시킨 데 비해 지금 커다란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마틴 울프 칼럼니스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의 사고가 지배적인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는 역시 기득권 권력이 사상과 정책의 근본 전환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옛것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것이 오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오랜 위기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위한 노력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미국 시골을 여행하고 자신이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되었다는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이야기처럼 엘리트들의 반성도 나타나고 있다. 중하위층 노동자들의 현실을 모르고 그들을 정치에서 소외시켜 포퓰리즘을 가져온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 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 내부에서도 급진적인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들의 반성이 새로운 변화로 이어질지,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의 몰락을 넘어 좌파 정치가 성공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연합뉴스
10월10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부동산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보유세 강화 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촛불로 대표되는 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두었고, 새 정부도 불평등을 개선하고 총수요를 진작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던가. 불평등과 긴축이 경제에 나쁘다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사실상의 긴축재정을 시행했고, 논란 속에서 원래의 지향은 동력을 잃어가는 듯 보인다. 돈과 힘을 가진 기득권의 강고함은 서구보다 한국에서 더 강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위한 노력이 멈춰서는 안 된다. 역사와 세계를 돌아보는 넓은 시각과 긴 호흡이 한국인에게 필요하다.


흔들리는 중국 경제, 시진핑도 위험하다

불만의 화살은 권력 정점으로…시험대 오른 시진핑 리더십

모종혁 중국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3(화) 17:00:00 | 1517호


지난 10월23일 전 세계 증시의 주가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지구촌 증시에 휘몰아쳤다. 아시아권에선 한국 코스피는 물론 일본 닛케이지수와 홍콩 항셍지수가 급락했다. 독일·영국 등 유럽 국가도 폭풍우를 피할 순 없었다. 무역전쟁의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 증시도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중국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중국 최고지도부가 연일 전방위적으로 나서 경기를 부양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덕분에 10월19일과 10월22일 상하이 종합지수는 각각 2.58%, 4.09%나 급등했다. 특히 22일 상승폭은 2016년 3월 이후 2년 반 만에 가장 컸다. 그런 상승장 속에 중국 개미투자자들은 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웠다. 중국 정부도 경제위기설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상하이 종합지수가 다시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시장에선 “죽은 고양이의 반등”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죽은 고양이의 반등’이란 주가가 대폭락한 뒤에 반짝 상승하는 장세를 가리킨다. 이런 자조 어린 반응이 나왔을 정도로 올해 중국 증시의 상황은 끔찍했다.

경제사회가 흔들리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리더십은 도전받을 수 있다. 그동안 중국인들이 시 주석의 권력 집중과 사회통제 강화를 받아들였던 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무너지면 불만의 칼날은 권력 정점으로 향한다.

 

최근 중국 경제의 각종 지표들이 악화하면서 불만의 칼날이 권력 정점에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으로 향하고 있다. ⓒ  AP 연합

최근 중국 경제의 각종 지표들이 악화하면서 불만의 칼날이 권력 정점에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으로 향하고 있다. ⓒ AP 연합


미·중 무역전쟁의 ‘쓰나미’

1월2일 첫날 중국 증시 분위기는 좋았다. 상하이 종합지수는 3314.03으로 개장해 전장 대비 1.24% 상승한 3348.32로 장을 마쳤다. 그 뒤 연일 상승 랠리를 이어갔다. 1월29일 상하이 종합지수는 장중에 3587.03을 찍었다. 이는 2016년 1월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당시 중국 내 상황은 장밋빛으로 가득 찼다.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총서기를 연임한 뒤였다. 시 주석은 자기 이름을 내건 ‘시진핑 새 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당헌에 삽입했다. 시 주석은 부하들인 시자쥔(習家軍)을 권력 핵심인 공산당 중앙정치국에 대거 발탁했다. 시 주석의 집권체제 강화와 권력 집중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행위였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일부 지식인들은 거세게 반발했으나 대중들은 시 주석이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중국을 이끌어갈 것으로 판단했다. 게다가 중국 경제는 예상을 뛰어넘는 고성장세를 이어갔다. 1월18일 국가통계국은 2017년의 경제실적을 발표했다. 전체 국내총생산(GDP) 총액이 82조6122억 위안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6.7% 오른 수치였다. 두 달 전까지 중국 정부가 내놓은 목표보다도 높았다.

중국 증시의 랠리는 이런 정치·경제적 상황이 뒷받침됐다. 2월 들어선 급등에 반발한 조정 흐름이 이어졌다. 횡보장은 3월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되면서도 한동안 이어졌다. 일각에선 “중국 경제가 무역전쟁의 타격을 이겨낼 만큼 내성을 갖춘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최근 수년간 중국 증시는 다른 나라와는 따로 움직였다. 다른 아시아 국가의 증시는 미국이 기침하면 몸살을 앓았지만, 중국은 살짝 감기만 걸리는 정도였다. 당시 중국 증시는 2015년 6월 상하이 종합지수가 5178.19로 최고점을 찍은 뒤 30% 이상 하락한 상황이었다.

미국이 무역법 301조를 발동하면서 시장은 급변했다. 3월23일 3.58%나 급락하면서 중국 증시는 조금씩 무너졌다. 특히 3차례의 미·중 무역협상이 공동 성명 없이 결렬된 6월3일부터 완전히 약세장에 진입했다. 7월 들어 미국이 중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뒤 그 규모마저 늘려가자, 중국도 맞대응에 나섰다. 미·중 무역전쟁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안 보이면서 중국 증시는 베어 마켓이 고착화됐다. 결국 10월18일 상하이 종합지수는 전날보다 2.94% 급락한 2486.42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1월 연중 고점보다 31%나 추락한 수치다.

주식시장은 국가 경제와 경기의 선행지표다. 경기가 둔화되고 경제가 침체될 기미를 보이면 증시가 먼저 반응한다. 현재 중국은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률, 외환시장, 소비자물가 등 모든 경제지표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후폭풍을 맞고 있다. 3분기 GDP 성장률은 6.5%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9년 1분기의 6.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본래 중국 정부는 6.6%를 예상했었다. 올해 들어 위안화 가치는 달러 대비 10% 넘게 떨어졌다. 10월18일엔 위안화 환율이 장중 6.9446위안을 기록해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높았다.

중국이 더 두려워하는 것들

10월16일 국가통계국은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과거 월간 CPI 상승률은 1%대를 유지했다. 올해 들어서도 6월까지 1%대를 지켜오다가,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7월부터 2%대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상승 폭이 점차 커지고 있고 에너지와 식품류가 상승을 주도하는 데 있다. 에너지와 식품류는 서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중국 현지에서 생활하는 필자도 지난 몇 달 동안 시장과 할인마트에서 구매하는 식품류 가격이 조금씩 올라가는 걸 체감할 정도다.

이런 경제지표보다 더 무서운 건 천문학적인 부채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과 연구기관은 중국의 부채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JP모건은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다음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면서 지난 10년간 급증한 중국 부채를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부채 증가액의 43%가 중국의 것이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중국 GDP 대비 민간 비금융 부문의 부채 비율은 208.7%에 달했다. 이는 2007년의 115.6%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10월16일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발표한 보고서는 더 충격적이다. S&P는 “중국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가 최소 30조 위안에서 최대 40조 위안(약 6550조원)에 달한다”면서 “아주 거대한 신용위기를 내포하고 있는 채무 빙산”이라고 경고했다. 40조 위안은 지난해 중국 GDP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중국 지방정부가 각종 사회기반시설 건설, 국유기업 개혁, 퇴직자 연금(退休工資) 지급 등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부담해 왔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동안 지방정부는 별도의 자금조달기관(LGFV)을 만들어 부족한 자금을 조달했었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방대한 재정운영, 대규모 인프라 건설, 부동산 부양, 산업 구조조정과 수출 증대 덕분에 타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오히려 2015년엔 ‘중국제조 2025’라는 새로운 산업 고도화와 기업 육성 방안을 내놓았다. 그에 따라 중앙 및 지방정부는 산업과 기업을 지원하는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지방정부의 부채는 이런 과정에서 쌓이게 됐던 것이다.

문제는 미·중 무역전쟁의 충격과 경기침체가 중국인들이 체감할 정도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가 하락과 물가 상승은 그 일면일 뿐이다. 무엇보다 부동산의 거래 침체와 가격 하락은 치명적이다. 장시(江西)성 상라오(上饒)시는 9월 주택 거래가 전달보다 22% 줄었고,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 감소했다. 중국 최대 도시 상하이도 주택 판매가격은 8월보다 3% 떨어졌고 지난해 같은 달보다는 1.4% 하락했다. 10월초 상라오에선 부동산 개발업체가 쌓이는 재고 주택을 30%나 할인된 가격에 팔자, 기존 구매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중국 개별 가구의 총자산에서 부동산은 70% 안팎을 차지한다. 부동산은 중국인에게 부와 지위의 상징이다. 지난 수년 동안 일부 중국인들이 명품 쇼핑과 해외여행에 몰두했던 배경 중 하나는 부동산에서 재미를 크게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금세기 들어 집값이 오르는 데만 익숙해졌다. ‘부동산 대박’의 환상을 갖고 은행 대출을 끼고 주택 구매에 나섰던 중국인들이 부지기수다. 젊은이들은 결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기 소득의 수십 배에 달하는 집을 사야 했다. 이들이 ‘팡누(房奴)’라 불리는 부동산의 노예다.

 

중국의 올해 3분기 GDP는 작년 동기 대비 6.5%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다.사진은 중국 장쑤성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 EPA 연합

중국의 올해 3분기 GDP는 작년 동기 대비 6.5%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다.사진은 중국 장쑤성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 EPA 연합


中 정부도 대책 마련 나섰지만…

따라서 주가와 집값 하락은 중국인들의 생활기반을 뒤흔들 수 있다. 그로 인해 최근 중국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하다. 지난 10월7일 미국에 서버를 둔 온라인 매체 ‘둬웨이(多維)’는 ‘최근 중국 사회의 10대 근심’이라는 기사로 진단했다. 10대 근심은 △정치 방향 △경제 발전 형세 △미·중 무역전쟁의 앞날 △대언론 통제 △기층민중에 대한 통치 △하급관리 △민간기업가 △중산계급 △노령화와 저출산 △국가정책에 대한 예측의 애매모호 등이었다. 둬웨이는 방화벽에 막혀 중국인들이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기사 내용은 VPN(가상사설망)으로 뚫려 중국 SNS에 퍼졌다.

중국 네티즌들은 △격화되는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침체 △민중에 대한 공권력의 권익 침해와 폭력적 행사 △국유기업을 우대하고 민영기업을 옥죄는 국진민퇴(國進民退) 바람 △중산층이 주택·교육·양로·의료 등에서 겪는 어려움 △헤어나기 힘든 노령화와 저출산의 늪에 크게 공감했다. 이런 심상치 않은 경제사회 분위기를 중국 최고지도부도 느끼고 있다. 9월 이후 금융안정발전위원회를 10차례나 개최해 주식 및 외환시장 안정과 인플레 예방을 논의했다. 또한 경제사령탑인 류허(劉鶴) 부총리는 무역전쟁 종식과 경기부양 의지를 과시했다.

중국 정부는 현재의 위기를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인프라 건설과 중산층의 소비 확대로 해소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지방정부가 1조3500억 위안(약 221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개인소득세에 대한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감세안도 발표했다. 내부에서 커지는 암세포에는 눈감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