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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장애가 ‘질병’이 된다면?

일취월장7 2018. 4. 6. 11:25

게임장애가 질병이 된다면?

세계보건기구가 국제질병분류(ICD)를 개정하면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정의되면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8년 04월 05일 목요일 제550호

대한민국에서 게임은 곧 게임산업이었다. 수출 효자상품, 미래 신성장동력,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라고 찬사받았다. 이 ‘기특한’ 산업의 앞날을 가로막는 학부모·의료인·정책 입안자들은 비난을 면치 못했다. ‘게임이 마약이란 말인가?’라는 반발이 거세게 터져 나왔다. 오는 6월부터는 판이 바뀔지도 모른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 11판(ICD-11)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ICD는 세계 각국의 질병 통계에 쓰이는 분류다. 질병 유형에 따라 정의와 증상을 나누고 각각에 알파벳과 숫자로 된 코드를 붙인다. 현행 ICD-10은 1990년 처음 공포됐다. 그간 일부 항목을 변경한 적은 있으나 이번과 같은 대규모 개정은 28년 만이다. 대부분 나라들이 ICD를 그대로 수용하거나 일부 수정해서 자국에 도입한다. 5년마다 개정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역시 통계법에 따라 ICD를 기준으로 한다.

ⓒ연합뉴스
2017년 11월16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를 찾은 시민들이 온라인 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ICD-11 베타버전은 게임장애 항목을 신설했다. 여기서 정의된 게임장애란 ‘①게임에 대한 통제 불능(빈도·강도·기간 등) ②삶의 다른 관심사나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하는 일 증가 ③부정적 결과가 발생해도 게임 지속 또는 확대가 나타나는,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온라인·오프라인 게임 행동 패턴’이다. 그 결과가 개인·가족·사회·직업 등에 큰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며, 최소 12개월간 증상이 분명히 드러나야 게임장애에 해당한다. 뜯어보면 마녀사냥과는 거리가 있다. 수면장애가 그렇듯, 게임 자체가 마약과 같다는 규정은 아니다. 게임이 일상생활인 프로게이머는 ②정의에 따라 제외된다. 게임을 계속해도 삶에 큰 문제가 없다면 ③정의를 적용해 환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나온 결정은 아니었다. ICD와 함께 정신의학 분류 기준의 양대 축인 ‘DSM-5’에서도 게임 문제가 떠올랐다. DSM은 미국정신의학협회(APA)가 내놓는 진단 기준인데, 2013년 DSM-5에 ‘추가 연구 요망 항목’으로 ‘인터넷 게임장애’를 넣었다. 그 뒤 5년간 게임장애에 대해 수많은 연구가 쏟아져 나왔다. 2013년 WHO가 발족한 태스크포스에서 디지털·전자기기 과다 사용에 대한 공동 연구가 제안됐다. 2015년 ICD-11 초안 검토를 완료했고, 현재는 현장 조사 중이다.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ICD-11은 게임장애 항목이 포함되어 6월에 공포될 예정이다.

게임장애가 정식 질병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건강보험 적용이 핵심이다. 현재 게임장애는 질환이 아니기에 입원이 필요하더라도 비용을 환자가 부담한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 체계를 우회하기 위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 다른 질환으로 진단하는 일이 잦다. 보험 적용이 되면 정확한 게임장애 통계가 잡힌다. 의사들이 ‘게임장애 질병코드’로 진료비를 청구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ICD-11의 게임장애 항목이 국내에 적용된다면, 저소득층 치료와 질병 현황 파악에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비판이 나온다. 의학적으로 불분명한 기준이며,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3월9일 열린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진단 기준이 모호하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어떤 현상이 중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성과 금단현상이 동반돼야 한다. 게임은 이 부분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정신질환에는 완치가 없다고 한다.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면 ‘환자’에게는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게임장애 ‘환자’에게 적대감을 갖는다?


ⓒ시사IN 조남진
게임장애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낸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위)과 이형초 감사와기쁨 심리상담센터장.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내성과 금단현상에 대해 다른 설명을 한다. 물질중독과 행위중독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게임장애는 보건의 영역” 기사 참조). 물질중독의 원인은 담배·술·마약 따위다. 행위중독은 비교적 최근 도입된 개념으로, 물질 없이 뇌의 보상회로가 자극되고 중독을 유발하는 현상이다. 도박·게임이 여기에 속한다. 이 교수는 “내성과 금단현상이 물질중독에서는 핵심적이지만 행위중독에서는 아니다. ‘점점 게임에만 몰두하는 것’을 내성으로 볼 수 있고, ‘안 하면 괴로운 것’을 금단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 했다.

‘낙인’ 문제가 남는다. 게임장애를 질환으로 정의하면 사회는 게임중독자들에게 더 적대감을 갖게 될까? 지난해 <한국사회복지학>에 실린 논문 ‘행위중독에 대한 사회적 낙인 과정’은 정반대 결론을 내린다. 이 연구는 인터넷 게임 중독 사례를 보여준 뒤 피험자들에게 정서적·행동적 반응을 물었다. 중독의 원인은 개인적 원인(나약한 성격, 의지력 부족, 잘못된 생활습관, 부도덕한 사고와 행동)과 생물학적 원인(뇌 질환, 신경전달물질의 장해)으로 나눠 제시했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적 장애라고 인식한 사람들일수록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동정심을 갖고 도움을 주려 했다. 저자는 “행위중독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생물학적 장애이고, 회복 불가능하거나 타인에게 위험한 장애는 아님을 강조하는 반낙인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라고 썼다.

게임업계는 비상이다. 한국게임학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게임의 주된 플랫폼이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한국 게임산업은 정체·쇠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아이폰 도입이 늦었기에 후발주자로 시작했다.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되면 업계는 치명타를 입는다.”

ⓒ시사IN 조남진
이형초 감사와기쁨 심리상담센터장.
그러나 모바일 게임의 급부상이야말로 ICD-11의 배경이라는 의견도 있다. PC 기반 게임과 달리 이불 속으로 들어간 스마트폰은 부모가 파악하기 불가능하다. 심리상담센터 감사와기쁨 센터장인 이형초 박사는 “그간 중독 양상은 일부 청소년 남성에 국한됐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여성과 저연령층에서도 일반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게임장애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담배나 도박에 비해 빠르게 질병으로 지정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게임장애가 아동·청소년에게 가장 접근성이 높은 중독이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13세 이하 아동이 SNS에 가입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도 비슷한 입법을 준비 중이다.

한국 정부는 ICD-11에 우호적이지 않다. 보건 전문가들이 제정하는 ICD와 달리,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은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통계청이 작성한다. 원칙적으로는 ICD-11을 그대로 반영하는 게 순서이지만 통계청 관계자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2020년에 나올 KCD 8차 개정안은 ICD-11을 반영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오는 6월 WHO가 게임장애를 국제질병분류에 포함시켜도 이를 무시하겠다는 이야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ICD-11에 적대적이다. 게임 질병화에 반대하는 일부 전문가들과 함께 협의체를 꾸려 대응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게임은 중독이 아니라 과몰입될 수 있는 요인이 있는 콘텐츠일 뿐이다. 중독이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정책을 다 엎어야 한다. 질병코드로 가야 한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학계에서 게임중독이 가장 심각한 곳으로 꼽는 나라가, 또다시 보건 대신 산업의 손을 들어주려 한다.



“게임장애는 보건의 영역”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8년 04월 05일 목요일 제550호

중독포럼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가톨릭대 정신과학교실 이해국 교수는 게임업계의 ‘주적’이다. 게임장애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온 대표 연구자여서다. 2014년 국회 공청회에서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이 게임에 있을 수 있다”라고 발언해 업계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게임장애가 국제질병분류 11판(ICD-11) 베타버전에 포함된 이후에는 ‘나당연합군처럼 WHO를 등에 업었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교수를 만나 게임중독과 ICD-11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물었다.

ⓒ시사IN 조남진
이해국 교수는 “게임장애가 생체 신호로 측정이 안 되니까 중독이 아니라는 주장은 틀렸다”라고 말했다.


게임장애의 구체적 증상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게임을 많이 한다. 정말 많이 한다. 주말에는 20시간씩 하고, 주중에도 PC방에서 밤새우고. 생활 사이클이 무너지고 신체 밸런스가 깨진다. 게임할 때만 즐겁고 안 할 때는 우울하다. 잔소리하는 부모와 갈등이 심해지고 폭력적 행동도 보인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들은 기본적으로 즉각적 만족에 더 큰 반응을 보인다. 담배나 술, 마약은 여러 제약이 있으니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게임의 자극이 워낙 크다 보니 그 나이에 응당 즐겨야 하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앞날을 위해 참아야 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스포츠를 비롯한 여러 여가 활동도 중독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럴 수 있다. 모든 기쁨을 주는 행위·물질은 중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축구에 중독되기가 쉬울까, <피파 온라인 3>(넥슨의 축구 게임)에 중독되기가 쉬울까? 축구에 중독되려면 우선 사람을 모아야 한다. 연습도 해야 하고 장비도 필요하다. 마라톤? 역시 중독될 수도 있다. 그런데 마라톤에 중독되기는 좀 어렵다. 신체적 고통을 이겨내야 하니까. 접근하기 쉽고 보상이 빠르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게임과는 비교가 안 된다.

최근 나오는 게임은 과거의 게임보다 중독성이 강한가?


그렇다. 한국에서 처음 나온 부분유료화(Free-to-Play) 게임이 일례다. 부분유료화 게임은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배포하는 대신 게임 내 상품을 현금으로 판매한다. 전통적 게임들은 한번 CD를 팔면 사용자가 얼마나 즐기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부분유료화 게임은 사람들이 오래 플레이하고, 지속적으로 아이템을 사야 돈이 벌리는 구조다. 그래서 게임회사들은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사행성 요소까지 도입했다. 한국의 부분유료화 모델은 전 세계에 퍼지는 중이다. 한국·중국의 게임중독 사례를 두고 ‘에이, 그렇게 심각한 애들이 있어?’ 하던 서구권 연구자들도 관심이 늘었다. WHO가 ICD-11을 내놓은 배경 중 하나다.

ICD-11은 각국 보건 체계에 어떤 영향을 주나?


용어 그대로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쓰이는 진단 기준이다. 각 항목에 따라 ‘질병코드’를 붙이고, 여기에 맞춰 처방을 내린다. 영역별 전문가 그룹이 세계 공통의 컨센서스(합의)를 바탕으로 만들기에 일반적으로 각 나라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도 ICD에 맞춰 개정된다. 다만 현행 KCD에는 ICD에 없는 ‘인터넷 중독’ 항목이 있다.

게임장애는 어떤 의미인가?


게임장애는 ‘중독성 행동에 의한 장애’의 하위 항목으로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질병(Disease)은 명확한 세균·암세포 등이 발견될 때 쓰이고, 장애(Disorder)는 우울증처럼 정신적 기능 이상에 쓰인다. 게임장애는 쉽게 말해 게임을 좀 이상하게 하는 것이다. 48시간을 내리 한다든지, 안 하면 괴로워한다든지. 게임장애라는 용어에는 게임 자체를 비난하는 뉘앙스가 없다. 수면장애(Sleep Disorder), 알코올사용장애(Alcohol use Disorder) 역시 ‘잠 나쁜 놈!’ ‘알코올 나쁜 놈!’은 아니지 않나? 게임장애 또한 게임 이용의 패턴이 비정상적인 상태쯤으로 보면 된다.

기준이 광범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환자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히려 몹시 보수적인 기준이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가 2013년 펴낸 <정신질환진단 및 통계편람> 5판(DSM-5)에는 ‘인터넷 게임장애’가 ‘추가 연구 요망 항목’으로 들어갔다. KCD에 기준이 없기에 의료 현장에서는 DSM-5의 척도를 참고한다. 진단 척도 9개 중 5개 이상에 해당하면 인터넷 게임장애로 분류한다. 가령 DSM-5에서는 ‘게임 때문에 중요한 관계·일·교육이나 경력이 위태롭게 되거나 잃은 적이 있다’가 하나인데, 여기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5개를 채우면 질병이다. 그러나 ICD-11에서는 이 부분이 반드시 충족돼야 게임장애로 인정된다. 사실 DSM-5가 비판받은 이유 중 하나가 인터넷 게임장애 기준이 너무 폭넓다는 점이었다.

게임중독은 ‘내성’과 ‘금단현상’ 두 요소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있다.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물질중독은 내성과 금단현상이 핵심 요건이다. 그러나 게임이나 도박과 같은 행위중독은 조금 다르다(ICD-11 베타버전에 함께 등재된 ‘도박장애’ 역시 게임장애와 거의 동일한 기준으로 정의됐다). 오히려 행위중독의 핵심 증상은 조절 불능(Loss of Control)과 우선시(Prioritization)다. 안 하면 괴롭고 더 오랜 시간 몰두하게 되는 것, 그 자체가 내성과 금단현상을 포괄한다. 행위중독은 물질이 체내에 들어오는 게 아니므로 생리적 반응을 검증하기가 어렵다. 생체 신호로 정확히 측정이 안 되니까 중독이 아니라는 주장은 틀렸다.

업계에서는 아이들을 ‘정신질환자로 낙인찍는다’라고 비난한다.

그런 주장이야말로 아주 무섭고 무책임한 말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해 스스로 낙인찍고 있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신체의 병이든 정신의 병이든 문제가 생기면 치료를 받는 게 맞다. 낙인이 실재한다면 정신건강의 문제에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게 먼저 아닌가? 여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낙인찍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좋게 생각할 수 없는 발언이다.

게임장애가 질병이 된다는 것은 문제를 의료기관에서만 해결해야 한다는 뜻인가?


무조건 병원을 찾을 필요는 없다. 보통은 지역 상담소에서 해소된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유병률 1% 정도로 가늠하는, 정말 심각한 사람들에게는 상담 서비스가 안 미친다. 이들 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청소년이다.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가까운 병원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게임은 경제·문화의 영역뿐만 아니라 보건의 영역에도 속하게 된다. 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산업을 어떻게 들여다볼 것인가, 질환에 취약한 계층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등이 수면 위에 떠오른다. 결국 ‘게임장애가 질병인가 아닌가’라는 학문적 의제는, ‘디지털 기술이 유발하는 건강 문제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것인가’라는 사회적 화두로 번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