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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 “묻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일취월장7 2018. 4. 2. 09:55

오종남 “묻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인터뷰] ‘행복전도사’ 오종남 서울대 명예교수가 말하는 ‘곱게 나이 들기(well-aging)’

조문희 기자 ㅣ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3.31(토) 16:00:00 | 1484호


13년 연속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압도적 1위. OECD 통계에서 수년째 불명예를 얻은 우리나라의 자화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노인들은 ‘틀딱(틀니+딱딱)’이라는 단어로 조롱받고, 청년들은 자국을 ‘헬조선’이라며 비하하곤 한다. 이런 모습은 행복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그러나 오종남 서울대 명예주임교수는 “행복은 어디에든 있다”고 전파한다. 광화문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오 교수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중국이 왜 성공한지 알아요? ‘차이 나’기 때문이에요” “남자(Male)는 여자(Female)와 다르게 철이 없어요. ‘Fe(원소기호)’가 없으니까” 등 유머도 뱉었다. 덕분에 사무실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오 교수는 경제관료로 30년 넘게 일했다. 청와대 경제비서관과 통계청장을 지낸 데다 한국인 최초로 IMF 상임이사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맡고 있는 공식 직함만 5개다. 김&장법률사무소 고문, SC제일은행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장, 스크랜튼 여성리더십센터 이사장, 하나고등학교 감사 등이다. 지난해까지는 국무총리실 산하 새만금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이런 오 교수가 이제는 ‘행복전도사’로 나섰다. 3월20일 저서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를 출간하면서다.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오종남 서울대 명예교수 © 시사저널 이종현

오종남 서울대 명예교수 © 시사저널 이종현


 경력이 화려하다. 그런 경력이 뒷받침된다면 누구나 행복하지 않을까.

 “행복은 경제와 거리가 멀다. 비슷한 경제력을 가져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똑같은 만큼 성취해도 내가 그것을 얼마나 바랐느냐에 따라 행복은 달라진다. 이를테면 ‘행복=내가 이룬 것 / 내가 바라는 것’인 거다. 내가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이뤄내긴 어렵지만 바라는 것을 줄이는 건 쉽다. 그러니 이뤄야 할 것에 목매는 것보다, 상황에 적응하면서 욕심을 줄이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바라는 것을 줄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디스크에 많이 걸린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올려다보면서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행복하려면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잘못된 거다. 역설적이게도 남과 비교해야 행복할 수 있다. 나만 힘들게 사는 것 같아도,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나름대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자기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나는 꽤 괜찮은 거구나’ 생각해 보면 어떨까.”

 

 교수님은 힘들게 살지 않으셨을 것 같다.

 “나도 아픔이 있었지, 왜 없었겠는가.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전라북도 고창 촌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전사하셨다. 가난했던 탓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 집에서 가정교사를 했다. 사람들은 내가 유복하게 자란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 대학도 한 번에 못 갔다. 재수를 했는데 그때 충격이 아주 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건 ‘가면을 쓴 축복’이었다고 본다. 재수하면서 바닥이 되어보니까 실패를 이해했고, 어려서부터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이 뭔지 알게 됐다. 이런 경험 덕에 지금의 내 행복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얼마 전에 67세가 되셨으니 이제는 완전한 ‘고령인구’다. 환갑 이후 30년을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 예정인가.

 “65세가 되니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카드가 나왔다. 말 그대로 ‘어르신’에게 주는 카드인데, 나이만 많다고 해서 다 어르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짐 되는 노인’이 있는 반면, ‘보탬 되는 어르신’이 있다. 출근 시간 지옥철 안이라고 가정하자. 어떤 아주머니가 줄을 제치고 문 열리자마자 뛰어가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 앉아버린다. 이런 모습은 짐 되는 노인이지 않을까. 추하게 늙은 거고. 반면 노약자석에도 앉지 않고, 젊은이들 불편하지 말라고 멀찌감치 서 있는 어르신이 있다. 이렇게 ‘곱게 나이 드는 것(웰에이징·well-aging)’이 제 목표다.”

  

하지만 노인들 상당수가 빈곤하다는 통계가 있다. 먹고살기 바쁜데 ‘곱다’는 수식어가 와 닿지 않을 것 같다.

 “경제력이 없더라도 곱게 나이 드는 것은 가능하다. 노인석에 다리 꼬고 앉아서 남에게 소리 지르고…. 이런 건 경제력보다는 자신의 성품과 관련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젊은 놈이 어디서’라고 하기 전에 본인을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상대방을 헤아린다면, 노인들이 ‘틀딱’이라며 조롱받는 일도 없을 거다.”

 

 

오종남 지음
공감 펴냄
268쪽
1만5000원

오종남 지음 공감 펴냄 268쪽 1만5000원

 

5060 세대는 ‘낀 세대’라고 불린다.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데다 자립하지 못한 자식들까지 챙겨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다 보니 은퇴 이후를 챙기지 못해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분수에 맞게 살면 문제가 없다. 내가 은퇴 자금으로 70이 있다면 거기에 맞춰 설계하면 된다. 지금 우리나라 복지 체계에 따르면 노인 수당으로도 충분히 은퇴 이후를 버틸 수 있다. 그 이상은 다 욕심이다. 다시 말하지만, 행복은 분모(바라는 것)가 작을수록 커진다.”

 

 역시 상황은 주어지는 것이니 그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행복해진다는 말씀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상황에 따라 순응만 하다 보면 사회가 정체되지 않을까.

 “초지일관할 일이 있고 변해야 할 일이 있다. 삶의 기준·도덕·염치 이런 건 안 바꿔도 된다. 다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남을 지적할 필요는 없다. 만약 내 가치에 따라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행동을 보이면 된다. 묵묵히 행동하다 보면 믿는 사람들은 따르지 않을까.”

 

 오종남 교수는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 구절을 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오 교수는 “남은 생은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경제관료로 살면서 국가로부터 ‘마일리지’를 너무 많이 받았다는 것. “항상 그 마일리지를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도움 줄 때의 행복은 무엇보다 크더라.” 



10명 중 9명 "내 정체성 때문에 두려움 느껴"

[LGBT 차별을 넘어] 성적 소수자 보호를 위한 차별금지 외면 현실
2018.04.02 08:34:18


한국에서 소수자 보호를 위한 인권조례 제정은 요원하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현 정부가 들어섰으나,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은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지난 2월 2일에는 충남 의회가 충남인권조례 폐지를 가결했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가 명시되었다는 게 폐지 이유다. 이미 박원순 서울시장은 개인교 단체의 압력에 굴복했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지난 2014년 사실상 폐기됐고, 박 시장은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했다. 

소수자 혐오 중에서도 특히 성소수자 혐오는 공공연하고, 노골적이다. 보통의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소수자 혐오 발언을 공공의 자리에서까지 하진 않는다. 하지만, 성소수자 혐오 발언은 예외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노골적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동성애에 반대"하는가를 확인코자 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며 명확한 인식을 드러낸 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뿐이었다. 

이 같은 성소수자 혐오에는 어떤 과학적, 논리적 근거도 없다. 혐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저열한, 구조화된 논리만이 뒤따를 뿐이다. 

<프레시안>은 총 30회에 걸쳐 언론사회학 박사인 고승우 필자의 성소수자 문제에 관한 글을 연재한다. 매주 월수금 3회씩 이어질 기고는 주로 성소수자를 향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짚어보고, 사실을 논하는 이야기가 될 전망이다. 고승우 필자는 <한겨레> 부국장을 지냈고, 한성대 겸임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편집자. 

1. 연재를 시작하며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이뤄진다. 언어는 모든 사물에 각각의 이름과 의미를 부여한다. 이름이 없으면 생각하지 않게 된다. 이름이 없는 사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락한다. 사회적인 불평등을 즐기거나 조장하려는 세력은 언어를 통해 공작을 한다. 법이나 제도 속에 특정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언어를 포함하지 않거나, 그 의미를 왜곡하려 시도한다. 당연히 불순한 의도의 결과다. 

한국에서 차별받는 소수자의 한 부류인 성적 소수자가 그런 경우다. 한국 사회는 성적 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법을 만드는 것을 외면하거나, 정부의 행정 문서 등에서 성적 소수자라는 표기를 배제한다. 이는 차별 금지가 인권 보장의 핵심 과제이며 국가의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유엔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다. 특정 종교 집단이나 정치 집단의 요구에 의해 인권을 짓밟는 정치가 행해지는 사회는 후진 사회다. 

유엔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및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2007 – 2017년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아홉 차례 권고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삼고 법무부가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일부 종교 세력이 반대하면서 성적 지향, 학력, 출신국가 등 7가지 항목을 차별금지 사유에서 뺐다가 결국 폐기했다. 정부와 국회 등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에 굴복해 국제 사회의 인권 존중 요구나 상식에 등을 돌리는 것은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로 되어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규범이 지켜지지 않는다. 인권과 평등의 시계 바늘이 후퇴하는 한심한 모습이다.  

서울 시민 인권헌장이나 여러 지역의 인권조례가 지난 수년 동안 잇달아 폐지된 데도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일부 세력의 반대가 그 원인의 하나로 거론됐다. 그러나 공직자들이 소신없이 정략적 이해관계에 휩쓸리거나 부당한 거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반대 의견에 대해 과학적 사실 등을 앞세워 적극 설득하고 관철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분통이 터진다. 예를 들면 차별금지법 등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철회하거나 심지어 국가인권위법에 명시된 19개 차별금지사유 중 성적 지향을 삭제하자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촛불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의 여성가족부는 2017년 공공 문서에 '성 평등'이란 단어를 사용하려다 야당 등의 반대가 극심하자 결국 포기하고 '양성 평등'으로 기재했고, 서울시교육청도 2018년 3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해소하겠다며 '교직원 양성 평등 조직문화 확산을 위한 실천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성 평등'은 성적 소수자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양성 평등'은 성적 소수자를 배제한 개념으로 흔히 쓰인다. 성적 지향이나 그 정체성은 후천적인 선택 사항이 아니고 선천적임을 과학이 밝히는데도 후진 사회는 이에 눈을 감는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출생아의 5-10%는 성적 소수자로 태어난다.  

서울시가 2015년 6월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전시라는 이유로 사실상 지원을 거부한 사례도 있다. 당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이 '앞으로 성소수자 관련 행사 지원을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고, 해당 부서에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 인권교육을 실시'하도록 권고했지만 그 후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의심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노무현 정부 시절 차별금지법이 추진되던 때 청와대 비서실장 등 요직에 있었고, 2012년 대선 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다. 하지만 2017년 대선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않겠다고 후퇴한 입장을 보였다.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2017년 '긴급하게'(urgent)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한 바 있는데 문재인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된다.  

공공기관이 성적 소수자를 포함하는 개념인 '성 평등'을 외면하는 것은 사회 전반적인 인권 의식을 후퇴시키는 작태에 다름 아니다. 정치권이 사회적 약자를 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도록 방치하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이 조롱과 폭력의 대상이 되면서 존재 자체를 위협당하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이는 인권 보호에 바탕을 둔 법치를 외면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법과 제도, 정치가 성적 소수자를 외면하는 현실은 방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성소수자 특집을 방영하던 EBS <까칠남녀>가 2018년 초 프로그램 자유게시판에 방송을 중단하라는 게시물 수백 건이 게재 되는 등 논란이 삼해지자 방송 횟수를 줄이는 등 조기 종영의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당시 제작진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성소수자 4인의 이야기를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한다"며 "출연진 4인방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고백을 통해 시청자들의 오해와 편견을 깨겠다"는 의욕을 보였지만, 한국 사회가 여전히 막힌 사회임을 모두에게 확인시킨 꼴이 되었다. 촛불이 청산을 명령한 구조적인 사회 적폐의 하나가 사회적 약자 문제다.   

국가인권위가 2017년 자신의 정체성(성소수자·여성·장애인·이주민)과 관련해 발표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즉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성소수자의 84.7%, 장애인의 70.5%, 여성의 63.9%, 이주민의 52.3%가 '어느 정도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으며, 증오범죄 피해 우려에 대한 질문에는 성소수자가 92.6%, 여성의 87.1%, 장애인의 81%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 사회는 자신의 정체성 등으로 인해 받게 되는 비난의 두려움보다 증오범죄 피해 우려가 오히려 더 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이 혐오와 차별이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가 된 것은 자살이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로 '생지옥'이라 불리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이 사회에는 '나도 살기 싫고 후손이 살아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이는 법과 제도, 사회적 의식의 변혁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각 교정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