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침묵을 강요하던 '강간 문화'는 끝났다"

일취월장7 2018. 3. 1. 10:56

"침묵을 강요하던 '강간 문화'는 끝났다"

생존자에서 증언자로...'미투'가 혁명적인 이유
2018.02.21 12:10:43

유명 배우이자 청주대학교 교수로 일한 조민기 씨의 성추행 사실이 20일 폭로됐다. 인간문화재 하용부 씨의 성폭행 폭로도 나왔다. 지난 달 29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로 불붙은 한국의 '미투'(# Me Too) 운동은 최영미 시인의 고은 시인 성추행 폭로를 거쳐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폭행,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의 성추행 의혹까지 우후죽순처럼 불거져 나오고 있다. 영화 배우이자 기획자인 ㅈ 씨, 연출가 ㄱ 씨 등의 성추행 의혹도 풍문으로 떠돌고 있다. 문화계를 포함한 각계 원로들이 ‘다음 차례’가 될까봐 떨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침묵을 강요당하던 시대는 끝났다" 

"피해 당사자가 자기 이름과 얼굴을 밝히고 나오는데, 한국 사회 가부장성을 감안하면 강간 피해까지 폭로가 이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윤택, 하용부 등 강간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는 것이 놀랍다.  

여성들의 성규범은 정말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로 40-50대 여성들의 여성들이 폭로를 하고 있는데, 이 세대의 여성들 사이에 분명한 각성이 있었고, 그래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 여성들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믿고 있고, 그에 비해 과거의 성의식을 그대로 갖고 있는 남성들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보여준다. 이 여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강간 피해 경험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미투'는 이제 성폭력에 대한 침묵을 강요당하고, 그로 인해 묻히고 가해자가 안전하게 피해갈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최근 '미투' 운동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페미니즘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생존자'라고 지칭한다. 법률적 의미로서의 '피해자'가 지닌 수동적이고 약한 존재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버리고 자신의 삶이 직면한 문제를 예민하게 바라보고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또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끔찍한 폭력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음을 축복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현재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주로 40-50대 여성들은 '생존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이런 생존자들이 이제 '증언자'로 나서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증언자가 되기까지 과정은 지난한 '투쟁'에 기반한 것이다.  

"너는 거기 왜 있었니? 네가 원해서 간 거 아니야?" 
"왜 끝까지 저항하지 않았니?" 
"너의 잘못도 있으니까 아무 말 하지 마." 

성폭력 피해로부터 살아남은 순간부터 이런 의혹의 눈길을, 의구심 가득찬 질문들을 이들은 가슴에 응어리가 맺히도록 반복해서 들어왔다. 서지현 검사는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증언했다. 이 여성들은 '성폭력에 대해 침묵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답'을 찾았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까지 세세하게 증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투' 폭로는 즉자적이거나 일회적인 주장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예술계의 '거목'들의 추악한 얼굴들...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에서 촉발된 최근 '미투' 운동은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향력을 가진 특정인의 눈에 드는 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는 업계의 특성상 그들이 가졌던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에 벌어진 일로 풀이된다. 이윤택 씨의 경악할 만한 성추행, 성폭행은 연극판에서 그가 누렸던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사실상 극단 내 모든 사람이 알만할 정도로 공공연하게 있었던 마사지 등을 가장한 성추행 행태를 목격한 숱한 '방관자'들의 존재 역시 그의 권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만든다. 이들 '가해자'와 '방관자'의 '침묵의 연대'는 그간 한국 사회의 '강간 문화'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사법 권력이 접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자신을 포함한 계속해서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가해자는 여전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권력으로 존재한다는 자각 때문에 '미투' 폭로가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들 여성이 피해를 입었을 당시, 부모나 남편 등 주위 사람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자신도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었고 당장 맞설 수 있는 힘도 없기 때문에 침묵했다는 것이다. 현재 서지현 검사, 최영미 시인 등에 "원래 평판이 안 좋았다", "처우에 대한 불만 때문에 그런다"는 등 '2차 가해' 성격의 반발이 나오는 것을 보면 사건 발생 직후 그들의 권위와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과거의 일들을 낱낱이 다 기억하고 있다가 이제는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고 폭로에 나섰다. 어느 정도 그 업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았고, 가족들도 이를 지원해줄 것이라는 자신감에 기반한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증언이 갖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권김현영 교수)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낡은 시각으로 '미투' 운동을 바라보고 있다. 이윤택 씨는 공개 사과를 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성추행은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었고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성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취하는 전형적인 태도다. 이에 피해자 5명은 공동으로 이윤택 씨에 대한 법적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조민기 씨도 '성추행 의혹'에 대해 부인하는 입장을 밝히자, 연극배우 송하늘 씨에 이어 청주대 졸업생까지 증언자가 나오고 있다.  '미투'가 '강간 문화'를 지탱해온 '침묵의 연대'에 맞서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 다른 형태의 저항 담론은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걱정하는 등 가해자들의 예술적 성취가 폄하될까봐 걱정하는 이들이 쏟아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은, 이윤택 등 일부 가해자들이 지난 대선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등 소위 '진보 인사'였다는 점에서 이를 진영 논리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문화예술계의 미투 폭로가 서지현 검사 사건이나 다른 정치적 사건에 대한 '물타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고,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문화는 어느 진영에나 다 있었다. 진보인사이든, 보수인사이든, 그들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어떤 이는 돈을 끌어모으는데 사용했고, 어떤 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데 사용했다. 이 중 어떤 것이 더 문제가 있고 덜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악한 사람'이 권력을 휘두르는 방식은 나쁘고, '선한 사람'이 권력을 휘두르는 방식은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낡은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경향신문>의 만평처럼 '미투'가 일종의 물타기라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낡은 프레임이다."(권김현영 교수)


▲2월 20일자 경향신문 만평


'미투'에 미온적인 정치권..."연대를 고민해야할 때다" 

'미투' 운동에 대해 정치권 역시 조용하다. 다수의 국회의원들 역시 자신이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될 것을 걱정해야할 상황이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지만, 정치가 해야할 역할을 고려하면 이같은 '침묵'은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치인도 나서서 십수년을 참다가 용기 있게 자신의 피해를 폭로하고 나선 여성들을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대책을 고민하고 있지 않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지난 1일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세부계획' 등을 발표하는 등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뜬구름 잡기'에 불과하다. 직장내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현재 내놓은 대책의 핵심이다. 이는 현재 당장 발생하고 있는 '미투' 폭로자들에 대한 '2차 피해'를 줄이거나 여전히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할 수 없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책이 아니다. 


"이제는 성폭력을 폭로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지지, 지원하는 게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 여성들을 포함한 피해를 폭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그 목소리에 권위를 주고, 체계 안으로 이 문제를 가져와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우리 사회에 던져진 과제다. 이들과 우리가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때다."(권김현영 교수) 



"이제 'No'가 아니라 'We Say No'를 외쳐야"

미투 운동 토론회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
2018.02.27 09:14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미투(#Me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하루 새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고백에 사람들은 분노를 넘어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성폭력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만일 미투 운동이 없었다면, 수많은 성폭력 가해자들은 '교수', '배우'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오늘도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유린했을 터였다.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는 성폭력이 만연한 이 사회의 처참한 현실을 매일 확인하는 중이다. "이게 나라냐?" 촛불 광장에서 외쳤던 이 구호를 다시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26일 여성 단체들이 긴급 개최한 토론회 이름도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였다. 전국 28개 여성 단체들로 구성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라운지에서 토론회를 열고 미투 운동의 의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미투 운동 열기를 증명하듯 토론회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사회를 맡고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감독, 오성화 성폭력 반대 연극인행동·연극기획자, 김명숙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새로운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투 열풍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 사회를 구조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등 논의에 집중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Q&A 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프레시안(서어리)


Q. 한국의 미투 운동은 왜 외국에 비해 늦게 시작됐나.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 이후 주요 언론에서는 한국의 미투 운동이 난생처음이며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도했지만, 바로 1년 전에 문화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이 있었다. 

#미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여성 신진 작가들에게 상습적인 성추행을 저질렀던 모 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해고되었으며,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고양예술고등학교 실기교사로 근무했던 당시 상습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던 배용제 시인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연대한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남배우 A 성폭력 사건'의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2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신희주)

"여성계,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왜 손 놓고 있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여성계는 성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해왔다. '장자연 리스트', 여성계가 목숨 걸고 싸웠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제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김영순)

Q.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과거에도 있었음에도 왜 지금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어진 것인가. 

"2월 2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계 전 분야에 걸친 실태조사 실시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내 신고 센터 설립, 성폭력 의혹이 있는 예술인의 보직 임용을 막고 지원 배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문체부가 발표한 정책은 작년 2017년 2월 저희 여성문화예술연합이 문체부에 이미 전달했던 정책 제안서의 일부다. 1년 동안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저희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연극계의 심각한 연쇄적이고 집단적인 성범죄가 알려지고 나서야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문체부는 '지난 2월에 여성단체와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논의하고 성폭력 실태 임시조사를 실시했다'고 하지만, 지난 1년간 저희의 항의에 대해 문체부는 소 귀에 경 읽기 태도를 보여왔다. 만약 문체부가 지난 1년간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에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지금 미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피해자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신희주) 

Q. 피해 고발 사례를 보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무엇인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후 바로 상담한 경우, 보다 참고 견디다 한계에 이르러 상담을 진행하는 사례가 많다. '잘릴까 봐 두려워서', '취직하기 어려운데 힘들게 들어간 직장이라', '경력이 짧아 이직이 어려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말하기 힘들어', '내 나이에 어디 가서 이 월급 받을 수 있을까 싶어', '남편이 아파 내가 일해야 하는데, 얘기하면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 또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거나 '오히려 나한테 피해가 올까 봐'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제기했을 경우,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보다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크다. 

실제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중 피해자에 나쁜 소문, 피해자 유발론, 꽃뱀이라는 낙인,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폭언 또는 폭행, 업무상 불이익, 피해자에 대한 징계나 해고 등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 조치를 경험한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김명숙)

Q. 여론을 보면, 피해자들의 고발은 환영하면서도 익명 제보는 배격하자는 분위기도 있다.

"왜 한국 미투 운동은 익명으로 하냐고, 미국처럼 이름도 얼굴도 드러내야지, (익명으로 하면) 가짜 아니냐,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익명으로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가, 이렇게 질문을 바꿔서 물어야 한다. 우리가 그간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왔나. 피해자 자격 운운하고 비난하고 역고소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얼굴 공개 안 하니까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하느냐 묻는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노력해왔는가. 여기에 대해 대답을 똑바로 할 수 없으면서 피해자들에게만 100% 순결한 진실을 요구할 수 있나."(송란희)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성폭력) 생존자들의 말하기대회를 여는 게 꿈이었는데, 2003년 처음으로 성공했다. 원래 기획한 것은 피해자들의 얼굴을 잡지 표지에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도저히 말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당일이 될 때까지도 참가자를 짐작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기적처럼 15명 정도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날것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때 조건이 있었다.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가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중들 휴대폰을 다 뺏어달라, 이렇게 해서 겨우겨우 했던 것이다."(권김현영)

Q. 미투 운동에서 드러난 여러 사태의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개인의 문제인가, 권력의 문제인가, 성별 문제인가?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젠더 자체가 권력관계를 의미한다. 가해자 개인의 도덕적 흠결의 문제로 축소하는 악마화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위장된 안도감'을 제공하고 문제의 일시적인 봉합을 꾀할 뿐이다. 특수한 피해자의 문제로 축소해 '피해자의 자격'을 질문하고, 사생활을 캐고 신상털이를 하며 인격권을 무참히 짓밟는 행동은 성차별의 구조적 원인을 심화시킨다. 적반하장 식 책임 전가에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가장 오래된 적폐가 성차별적 구조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이나영) 

Q. 성 인식 논란에 휩싸인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에 대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근 "탁현민 사건의 경우 미투 운동을 통해 벌어지는 직접적인 성적 폭력과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한 생각은? (☞관련기사 : 임종석 "탁현민은 이윤택과 다르다") 

"성폭력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 관계에 기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강간이 갑자기 등장하는 게 아니다.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 문제가 어떨 땐 강간이 되고 어떨 땐 성추행이 되는 것이다. 성차별의 전체적인 문제를 지적하는데 그렇게 지적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폄훼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송란희) 

Q. 방송인 김어준 씨도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관련기사 : 김어준 "미투, 공작 사고방식으로 보면…" 발언에 여야 정치권 비판) 

"수많은 여성 시민들은 보수 세력에 저항하며 계급 부정 이외에 다른 영역에 무감한 진보 세력들과도 쟁투해왔다. 이 세력들이 진영을 넘나들며 형성한 팔로센트리즘, 남성중심문화(성별+학벌+혈연+지연에 기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진영논리(예: 홍준표 vs. 민주당 인사들, 혹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김어준 vs. 금태섭, 금태섭 vs. '지니'들)는 그래서 놀랍지도 새삼스럽지도 않다."(이나영) 

"미투 운동을 공작이라거나, 진영 논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난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송란희) 

Q.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바뀌기 위한 방안은?  

"우선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폐지돼야 한다. 고소를 진행하다가 무고죄로 고소를 당하게 되면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로서 가졌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다. 피해자로서 사법제도를 끝까지 밟을 때까지만이라도 무고로 기소하는 것을 유예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송란희) 

"법의 문제가 중요하다. 몇 년 송사를 거쳐도 남는 게 별로 없다. 미국에서 성희롱 성폭력 문화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게 된 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라는 게 도입이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망한 회사에도 배상금을 물게 한다. 한국 대기업 담당자들이 구직자들에게 결혼했는지 임신계획 있는지 물어보면 안 되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묻는다. 외국에선 하지 않는다. 왜냐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문제 이전에 이러한 아주 강력한 형태의 사법적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법적인 문제론 다 해결할 수 없다. 굉장히 많은 문제가 범죄가 아니라 문화랑 관련돼있는 부분이다. 법적 변화와 함께 사회 규범의 변화가 필요하다. 공직 사회에서 기용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을 수 있다. 사회규범, 연성규범 차원에서 정말로 성평등하게 바뀌어야만 '강간 문화'가 바뀐다."(권김현영) 

"안태근부터 성폭력 가해자 리스트가 20명이 넘어가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처벌받는지가 중요하다. 홍준표는 지난 대선에서 완주하고 2등을 했고, 탁현민은 우리가 그렇게 문제제기를 했는데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적 성폭력과는 구분돼야 한다'고 한다. 이런 속에서 지금 고발되는 사건들이 여전히 그런 식으로 넘어간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송란희)

"피해자의 요구와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중요하다. 아울러 특정 사안의 제3자이자 동조자, 방관자인 우리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행한 자신의 가해자성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회 전반이 남성에 의해 장악되어 왔고, 남성들의 이익에 영합해 왔으며, 이들의 특권을 유지하는 도구였음을 계속 드러내야 한다. '여성문제'가 아니라 '남성문제'라는 새로운 명명작업을 통해 프레임을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 부정의 해소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존재감은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이나영)

Q. 개인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피해자에게는 어떻게 대응하라고 할 수 없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이게 실화냐'라는 말처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파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까지는 '노(No)'라고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사실은 '위 세이 노(We Say No)'라고 해야 한다. 피해자보다 목격자나 사회가 (가해자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야 한다."(권김현영)


서 검사가 쏘아올린 공, ‘미투 쓰나미’ 돼 한국 사회 덮쳤다

검찰, 정치계 넘어 문화계까지 번진 #me too…침묵 강요받던 피해자들 깨워

조유빈 기자·하재근 문화 평론가 ㅣ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8(수) 09:07:19 | 1480호


여성들의 침묵이 깨졌다. 그동안 음지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성폭력이라는 병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범죄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me too)’은 최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의 성폭력을 폭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법무부와 검찰이 전반적인 진상조사에 나섰고, 후배 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한 부장검사가 구속되는 일도 벌어졌다. ‘후폭풍’은 컸다. 검찰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에 정치계가 동참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보복이 두려워 전전긍긍해야 했던 대학생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미투 물결’은 결국 또 하나의 ‘철옹성’으로 여겨지던 문화예술계를 덮쳤다.

 

이 여성들의 폭로에 한국 사회는 뜨겁게 반응했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 사실을 드러낸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었다. 하지만 언론이 성추문을 고발하는 미투 목소리를 샅샅이 찾기 시작했고, 최영미 시인이 계간 《황해문학》 2017년 겨울호에 게재한 시가 뒤늦게 조명됐다. ‘노털상 후보로 거론되는 En 선생’의 성추문을 고발하는 《괴물》이라는 시였다. 누가 봐도 노벨상 단골 후보이자 한국 문학계 거목인 고은을 가리키는 내용이었다.

 

서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미투 운동에 호응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던 한국 사회는, 유명 시인 고은에 대한 고발에 강하게 반응했다. 오랫동안 행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쉬쉬했던 악습이 마침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침묵하던 문단계 인사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류근 시인은 “1960~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다”며 “소위 ‘문단’ 근처에라도 기웃거린 내 또래 이상의 문인 가운데 고은 시인의 기행과 비행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눈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나”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쉬쉬해 왔던 문단계 자체가 ‘침묵의 카르텔’이었다는 것이다.

 

2월1일 ‘미투(me too)’ 캠페인에 동참하는 대구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성 평등과 평화로 향하는 꽃길을 걸어가라는 의미를 담아 흰 장미를 대구지방검찰청 입구에 뿌렸다. © 사진=뉴스1

2월1일 ‘미투(me too)’ 캠페인에 동참하는 대구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성 평등과 평화로 향하는 꽃길을 걸어가라는 의미를 담아 흰 장미를 대구지방검찰청 입구에 뿌렸다. © 사진=뉴스1

 

무너진 문화예술계의 철옹성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자 마침내 한국 문화예술계의 ‘철옹성’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고발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출발은 연극계였다. 한 공연 관계자가 SNS를 통해 “2년 전에 연극배우 이명행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당시 작품 연출가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오히려 작품에서 빠지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연극계 카르텔까지 고발했다. 이명행은 사과문을 내고 출연 중인 작품에서 중도하차했다.

 

이때부터 ‘공연계에서 성폭력 논란은 과거부터 비일비재하게 들어왔다’ ‘피해자가 공연계를 떠날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엔 문제제기가 쉽지 않은 상황’ ‘대학 때 엠티 가서 술 먹고 자고 있던 여자애들 다 주물러댔던 남자 선배는 좋은 이미지로 광고까지 나왔다’ 등 연극계 인사들의 증언이 보도되면서, 과연 용기 있는 피해자가 나서서 실명으로 고발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 과정에서 연극계 거대 권력인 이윤택씨의 성추문 사건이 터진다. 이윤택씨는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며 밀양연극촌을 세운 인물로, 연극계에서 큰 산맥과 같은 인물이다. 그가 과거 국립극단에서 성폭력을 행사했다가 국립극단에서 배제됐다는 보도가 뒤늦게 나왔다. 당시엔 박근혜 정부에 밉보여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이제야 그 이유가 성추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보도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유명 연출가 A씨’로 지칭됐다. 하지만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직접 ‘미투’ 폭로에 나서면서 이윤택이라는 이름이 마침내 공개되기에 이른다. ‘내가 속한 세계의 왕’이었던 이윤택씨가 부적절한 안마를 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추가 폭로들이 이어지면서, 심지어 성폭행을 당해 낙태를 했다는 한 배우의 주장까지 나왔다. 문화예술계가 발칵 뒤집혔고, 결국 이윤택씨가 나서 공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사과에는 진정성이 없었다. 또 다른 폭로가 나왔고, 피해자들은 공동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이윤택씨의 사과 이후 또 다른 폭탄이 터진다. 이윤택씨 못지않은 연극계 거대 권력인 연출가 오태석씨의 성추문이 터진 것이다. 배우 출신 A씨가 ‘ㅇㅌㅅ’이라는 연출가에게 23년 전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여럿이 술을 마시던 고깃집에서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만졌다는 것이다. 합석한 다른 사람들은 침묵했다고 한다. 뒤이어 다른 여성이 과거 오태석씨 연극의 뒤풀이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오태석이란 이름이 공개됐다. 두 명의 ‘큰 어른’이 연이어 추문에 휩싸이자 연극계는 충격에 빠지는 한편, 일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방조한 문화예술계 시스템도 문제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미투 운동은 요원할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한국 문화예술계의 기본적인 속성이 있고, 그동안 여러 가지 소문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피해 사례가 누적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스스로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임을 드러내기에 아직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가해자들이 보통 강력한 ‘권력’이어서 피해자와 업계 관계자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 대중예술계 여성들이 2016년 10월 미투 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 사회에도 작은 움직임이 일었다.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 역시, 시작은 문화예술계였다. 같은 달 SNS를 통해 배용제 시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당시 피해자들은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배 시인의 성희롱 발언과 성관계 제의 등을 폭로했다. 배용제 시인은 미성년자였던 제자들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9월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했다.

 

이후 다른 피해자들도 입을 열었다.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가 연이어 폭로됐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중 일부는 사과문을 게시하고 활동 중단이나 출간 보류를 선언하기도 했다. 뒤이어 한샘과 현대카드 등 직장 내 성폭력 피해 폭로도 이뤄졌다. 그러나 오히려 피해자가 명예훼손죄나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하는 등 피해를 입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 같은 2차 피해에 대해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은 “피해자들은 일단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면 혐의가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 절차 자체가 피해자를 두렵게 하고, 결국 피해에 대한 폭로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사실을 말해도 그 내용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적어도 사실을 말했을 때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또 “비슷한 폭로는 반복됐던 일이다. 이전에도 문화계 내의 성폭력 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지만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며 “잔잔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뀔 때까지 지속돼야 한다. 이번에는 법조계를 넘어 문단, 연극·영화계, 대학 등 다양한 곳에서 피해 폭로가 지속되는 등 큰 변화가 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쓰나미를 몰고 온 미투 운동은 확실히 다르다. 역고소 등을 우려한 익명 폭로가 대세였지만, 이제는 서 검사를 비롯해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고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을 부인하고 반성을 하지 않는 가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분노 역시 피해자들의 신상을 드러내게 했다.

 

이윤택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배우 홍선주씨는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폭로 내용을 부인하자, SNS를 통해 자신의 신상을 밝히고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제 법조계를 넘어 문화계를 덮친 미투 운동은 단순히 피해 사실 폭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폭로에 나서면서 해명과 처벌을 요구한다. 여성단체들도 이에 동참해 고질적 병폐 개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2월19일 서울 종로구 ‘30 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 항의와 문제를 제기했고,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번번이 제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런 악순환이 오랫동안 계속됐다”며 “응당 어떤 벌도 받겠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최준필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2월19일 서울 종로구 ‘30 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 항의와 문제를 제기했고,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번번이 제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런 악순환이 오랫동안 계속됐다”며 “응당 어떤 벌도 받겠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최준필

 

배우 조민기의 여학생 성추행도 폭로돼

 

최근에는 배우이자 청주대 교수인 조민기씨가 추문에 휩싸였다. 인터넷 게시판에 ‘연예인 ㅈㅁㄱ씨’가 학교에서 몇 년간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이후 언론 보도로 조민기라는 이름이 드러나자, 조민기씨 측은 ‘명백한 루머’라며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이러한 조민기씨의 해명은 도리어 더 강력한 고발을 촉발했다. 청주대를 졸업한 신인 배우 송하늘이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고 장문의 글을 써 조민기씨의 성추행을 폭로한 것이다. 조민기씨가 학교 주변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학생들을 불러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거나, 노래방에서 부적절한 접촉이 있었다는 등의 주장이다. 다른 학생들의 폭로도 잇따르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밀양연극촌 촌장인 하용부 인간문화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폭로도 나왔다. 현재 사실관계가 규명될 때까지 문화재청의 지원금이 보류된 상태다. 뮤지컬 《타이타닉》 《시라노》 등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변희석씨가 성희롱과 동성 성추행 등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 경남 김해에서 유력한 극단 활동을 했던 연출가가 10년 전에 제자인 여중생을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영화계 유명 조연배우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최근 배우 조민기씨가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배우 조민기씨가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 밖에 SNS를 통해 더 많은 사건들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연극계 유명 인사 중 몇몇을 뺀 대부분이 부적절한 행위의 가해자’라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연예계의 문제는 장자연 사건 이래로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예계는 일단 터지면 너무나 크게 터질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비교적 잠잠하다는 분석도 있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고발에 나설 수 있도록 응원하는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하겠다)’ 운동도 나타났다. 성폭력 관련 글을 올리며 ‘위드유’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이다. 뮤지컬 배우 김지우씨는 “17살 때부터 당연하게 내뱉던 ‘어른’들의 언어 성폭력을 들으며 무뎌져 온 나 자신을 36살이 된 지금에야 깨닫게 됐다. 마음을 담아 지지한다”며 ‘위드유’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외에도 많은 연예인과 일반 네티즌이 동참하고 있다. 창작집단 LAS는 단원들의 손바닥에 ‘위드유’라고 적은 사진들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위안부의 입을 막은 건, 일본이 아니라 한국사회였다

[기자의 눈] 1991년의 '미투', 2018년의 '미투'
2018.03.01 05:06:15
  
'미투'(#MeToo) 운동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란을 보며, 지난해 개봉됐던 영화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지난 2007년 있었던 미국 의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라는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한국의 김군자, 이용수, 네덜란드의 얀 러프 오헤른 등 세 명의 피해자가 직접 증언을 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故) 김군자 할머니를 모델로 한 영화 속 나옥분(나문희 분)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평생 주위에 알리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원래 의회 증언을 준비하던 친구(손숙 분)가 치매로 증언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증언을 하기로 결심한다. 옥분 할머니가 미국 의회 증언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정부 쪽에서는 옥분 할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증거가 없다며 '거짓 증언'이라고 트집을 잡았다. 한국 정부와 수많은 국민들이 옥분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가 맞다고 증언하고 서명했지만, 일본 측은 '급조된 문서'라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음모론'이며, '공작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지만 상당수의 미국 국회의원들이 일본 주장에 동조했다. 

이런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며 증언대에 선 옥분 할머니는 주저하다가 자신의 옷을 올려 배를 드러내 보여준다. 칼자국과 낙서 자국이 난자한 할머니의 몸은 '공작'이라고 주장하던 이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옥분 할머니는 “증거가 없다고? 살아있는 내가 증거요”라며 자신의 끔찍했던 전쟁 당시 피해 경험에 대해 증언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했다. 실제로도 세 할머니의 증언은 미국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채택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1년 전 미국 의회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됐었다는 사실은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한-일 위안부 협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고 진정성을 의심하는 한국인들은 드물다. 하지만 일본인이나 미국인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럴듯한 '음모론'을 제기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식민지 경험에 대한 공감대가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경험한 고통과 상처에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또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잘 보여준다.

옥분 할머니를 50년 동안 입 다물게 만든 건 한국 사회다

옥분 할머니는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위안부 피해 경험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고, 일본 정부를 향해 "우리들이 살아 있을 때, 더 늦기 전에 사과를 하라"는 당연한 요구를 했다. 영화는 피해생존자의 '증언'이 갖는 '정치적 힘'을 보여준다.  

영화는 또 피해생존자가 오랫동안 자신의 상처와 고통에 대해 '침묵'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기제가 무엇인지도 잘 드러내 준다. 옥분 할머니가 평생 위안부 경험을 숨기고 산 것은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남동생을 포함한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며 평생 가슴에 묻고 살라고 했다. 영화에서 남동생은 옥분 할머니와 사실상 의절하고 미국으로 이민 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경험에 대해 '공개 증언'를 하면서 한국과 일본 간의 주요 정치적, 외교적 의제로 떠올랐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헌병과 경찰을 앞세워 30여만 명의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본 정부는 교묘한 태도로 강제 동원 사실을 부인해왔다. 강제 동원된 여성 상당수가 현지에서 군인들의 폭력과 학대, 성병 등 질병, 자살 등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살아 돌아온 여성들도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증언하는 일은 스스로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기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영화 속 옥분 할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의 가족들이 전쟁터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딸을 품에 안고 상처를 보듬어주기보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힐까 두려워 '침묵'을 강요했다.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50년 가까이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사회였다.

'미투', '위드유', 공감의 정치학 

영화 속 옥분 할머니는 '프로불편러'로 나온다. 할머니는 구청에 각종 민원을 제기해 공무원들과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다. 옥분 할머니가 이런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다름'과 '차이'를 느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영화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해 남성들은 대수롭지 않게 성적 농담을 던지고, 성추행을 하고, 더 나아가 성폭행을 한다. 그런 말과 행동이 피해 여성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에 대해선 관심도 없다. 그러니 성추행에 대해 '너도 좋지 않았냐'는 황당한 해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동안 피해 여성들에게 강요된 '침묵'은 '동의'로 해석해왔다. '건강한, 남성, 이성애자'의 감수성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장애인 등도 마찬가지로 차별적 언어와 행동을 경험해야 한다. 이런 소수자들이 일상에서 차별적 경험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순간, 그는 '프로불편러' 취급을 받게 된다.  

'미투' 운동은 '건강한, 남성, 이성애자'들의 성적 감수성에 여성들은 동조할 수 없으며, 당신들의 '쾌락'이 상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겠다는 뜻의 '위드유(#With you)' 운동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공감과 연대를 표하고 있다. 이런 공감과 연대는 기존의 사회 질서와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이 된다.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50년 가까운 '침묵'을 깨고 용기 있게 나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2018년 한국 사회가 일본을 향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힘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로 '미투' 운동이 '더 많은 민주주의'로 한국 사회를 이끄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차이가 차별로 귀결되지 않도록 이끄는 민주적 사고와 행동은 아직 너무 낯설다. 이제라도 터져 나온 여성들의 다른 목소리, 그 불편함을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귀 기울이면서 한국 사회가 변화로 한 걸음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미투' 운동과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공통점

[안종주의 안전사회] 드러난 사실은 극히 일부, 방관자 책임 크다


'미투'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적폐라고 해도 좋을 젠더폭력이 담겨 있던 판도라 상자를 열고 나왔다. ‘미투' 운동에 대한 국민 지지는 촛불 혁명 못지않게 뜨겁다. '촛불 대통령'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대한민국에서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 오래된 위험이었다. 특히 '갑을' '종속' '사제' '도제' '상하' '선후배'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닌 권력 관계 속에서 저질러진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은 일그러진 성적 욕망에서 비롯한 한 순간의 일탈이 결코 아니다. 가해자들은 인간이 지닌 고유의 가치를 철저히 파괴하는 추악한 괴물이었다. 대중이 그들을 우상으로 떠 받들 때 피해자들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것이 허상임을 알고 있었다.

'미투'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을 일일이 들먹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아 정말 참담하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허위' 속에 살고 있었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알고 보니 괴물이었다. 그들의 작품과 연기에 찬사를 보내고 그들을 존경심으로 바라보았던 오랜 세월을 부끄럽게 여기는 이는 나만이 아닐 터이다.

실상이 드러나도 반성하지 않는 추악한 군상


판도라 상자를 박차고 나온 '미투'가 보여주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낯은 그동안 이를 왜 일찍 드러내지 못했느냐는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뒤늦게 분노도 표출해보지만 참으로 미안하다.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 좋아서 한 일이다.', '오래된 일이다.' '그때는 다 그렇게 지냈다.' 등 가해자들의 교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얄팍한 술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지닌 야비함을 스스로 드러낸 변명들이다. 자신들을 더욱 옥죄는 말들이다.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눈뜨고 일어나면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미투리스트'에 새롭게 이름을 계속 올리면서 그 이름 석 자에 놀라고 그들이 저지른 추악한 행위에 또 한 번 놀란다. '미투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직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한 문제다.

미투의 시작과 폭발적 확산, 그리고 일찍 드러낼 수 있었음에도 오랫동안 감추어져온 것을 보고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바로 떠올렸다. 이 둘은 마치 도플갱어처럼 너무나 닮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들여다보면 앞으로 '미투' 운동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엿볼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보다 더 오래 묵은 젠더폭력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그것이 참사임을 알아차릴 때까지 무려 17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 '미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17년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해온 병폐였다. 기업, 정부, 전문가, 언론, 소비자단체 등 어느 집단에서 누구라도 살균제가 지닌 위험성을 알아차렸더라면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비극은 막거나 파국적 결말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미투'도 마찬가지다. 30~40년 전부터 '미투'의 괴물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음에도, 우리 사회 어느 부문에서도 괴물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리하여 피해를 입은 개인과 우리 사회에 엄청난,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낳았다. 생명이나 마음의 깊은 상처는 치유의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인 세월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2006년부터 아이들이 대학병원에 집단적으로 몰려들어 '살려 달라'며 의사들을 찾았으나 그 실체가 드러난 2011년까지 이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를 소아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의사나 방역당국에 알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들 안에 참사를 가둔 셈이 되었다.  

괴물들의 조력자와 방관자도 책임, 공개 반성 필요 

'미투'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조직에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범죄가 너무나 오랫동안 벌어졌음에도 조직과 조직의 수장 내지는 상징 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덮고 넘어가거나 사회에 파장을 주지 않는 식으로 미봉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해자가 새로 태어나 더 이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가해자들은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괴물로 변신했다. 미봉은 결국 그 조직과 조직 구성원들에게도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냈다.

'미투'가 보여준 지금의 민낯이 드러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온 데는 각 부문의 괴물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력자와 그 조직에서 사정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내부고발에 주저한 사람 또한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책임이 있다.

요 10여일 사이 드러난 실상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연극계든, 문학계든, 연예계든, 학계든, 법조계든, 공직사회든 이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경찰과 언론도 여기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도 2011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뒤 검찰 본격 수사가 이루어진 2016년까지 언론은 사회감시견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의 정확한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또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람들이 호소하는 질환에 대해 정부가 제때 연구하고 인정기준을 마련해 판정하는 기본적인 일조차 굼뜬데도 이를 비판적으로 감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 해결에 '미투' 못지않게 중요한 '위드유'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피해자 가운데 극히 일부만 드러난 것처럼 언론이나 SNS에 드러난 '미투' 폭로 피해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져온 전체 젠더폭력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이른 시일 안에 모두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단죄는 단죄대로, 피해자 치유는 치유대로 제때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오랫동안 가능하게 만들었던 사회구조와 의식구조, 그리고 일그러진 권력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약간의 시차는 있을지언정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 모두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안전 사회로 가기 위한 피해자와 유가족, 그리고 그 지지자들의 몸부림에 방관자도 모자라 훼방꾼 노릇을 자처하며 충실하게 이를 수행한 세력들이 우리 사회에 있었다. 지금도 그 세력들은 뉘우치지 않고 세력을 과시하며 호시탐탐 방해할 궁리만 하고 있다. 

'미투'도 분명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미투'와 '위드유'의 기세에 눌려 잠시 움츠려있지만 기회만 되면 괴물의 하수인들, 즉 동료, 후배들이 젠더폭력의 고통에 신음할 때 이를 외면하거나 외려 괴물들을 도왔던 사람들은 사안의 본질을 흐리려 들 터이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뚫고 우리는 젠더폭력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든, 가습기살균제든 시민들이 함께할 때 비로소 깊은 수렁 속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다. '미투'도 마찬가지다. 그저 안타까운 일로만 바라보지 않고 나의 일, 자녀의 일로 여길 때 비로소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미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위드유'도 중요하다.   



'미투', 사실을 말했는데도 '명예훼손'?

들불처럼 번진 미투, 침묵과 보복의 카르텔 깨질까?
2018.03.02 11:36:51

지난 2016년에 시작된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부터 미투(#Me_too) 운동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계의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내부 고발이 계속되고 있다. 권력을 통해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이를 침묵해왔던 한국사회의 '강간 문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관련 기사 : "침묵을 강요하던 '강간 문화'는 끝났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내부 고발이 진실로 드러나도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는 등 법체계가 피해 생존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계속 돼왔다.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미투'가 피해자들의 외로운 외침을 넘어 법적, 제도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피해 생존자들의 말 할 권리를 보호하고, 2차 피해방지, 성폭력 근절 등을 위한 법안이 정치권에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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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받은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죄로 처벌 

현행 형법은 허위사실은 물론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됐다고 판단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성폭력 생존 피해자가 실재한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가해자가 이 규정을 악용해 성폭력 생존 피해자들을 고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지현 검사도 피해사실을 고백한 방송 인터뷰에서 "명예훼손 피소를 각오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성폭력 생존 피해자들의 말하기를 가로막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악용된 조항으로,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도 우리나라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했다. 이미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선 '사실 적시의 명예훼손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자신이 겪은 검찰 내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 ⓒJTBC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이미 2016년에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금 의원은 "진실한 사실의 표현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주관적 명예감을 보호하기 위한 모욕죄를 폐지됨으로써,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현재 금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민주평화당도 '권력형 성폭력 근절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여 피해자의 말할 자유를 확대하는 방안을 담기로 했다. 민주평화당 황주홍 의원은 지난달 26일 "범죄 사실을 공개한 것이 성범죄자들의 명예훼손이라는 법을 고치겠다"라며 "피해 여성들의 폭로 권리와 명예가 우선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2차 피해'로 인해 자취를 감추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 

배우 J 씨의 성추행 피해자를 취재했던 한 기자는 칼럼을 통해 가해 지목인 배우 J 씨가 '피해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달라'며 다섯 차례나 전화를 걸었다고 후일담을 밝혔다. 기자는 피해자가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피해 상황을 밝힌 것에 대해 "피해 상황만 종합해도 특정 가능한 데다 실명이 나가면 J 씨에게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렵다고 했다"며 "밤늦은 시간 휴대폰을 붙잡고 기자는 (성추행 피해자인) A 씨의 두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실감했다"고 밝혔다. 가해 지목인인 배우 J 씨는 왜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려고 했을까.

▲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지난달 19일 성추행 논란 공개 사과 기자회견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2016년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생존자 2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57%(58명)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 제기로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고 답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이 받은 불이익의 조치는 '파면, 해임, 해고, 그 밖에 신분 상실에 해당하는 신분상의 불이익'이 53.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는 성희롱 피해자들에 대한 2차 피해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많은 피해 생존자들이 여태껏 침묵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성폭력 상담소에 따르면 2차 피해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사법기관, 의료기관, 가족, 친구, 언론 등에서 보이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는 정식적,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이나 피해자 스스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것"을 말한다. 직장에서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인사상 불이익, 피해 생존자의 신원을 밝히려고 하는 가해자의 시도 모두 2차 피해에 해당한다. 

지난달 22일 바른미래당은 '미투 고백 피해자를 응원하고, 위드유(#With_you) 할 것'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미투응원법 발의를 약속했다. 해당 법안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2차 피해 및 재발을 방지하며, 조직 내 성희롱 등 피해신고자의 보호를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은 국가기관 등에서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여성가족부장관에의 통보, 성폭력 사건 재발방지 대책 마련 및 제출을 의무화하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해고 등 불이익 금지 규정을 구체화하는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국가기관 등의 성폭력 사건 은폐 및 2차 피해 발생 시 여성가족부 장관의 징계 요청을 의무화하는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을 28일 자로 발의했다. 



"종합적, 체계적인 여성폭력방지정책이 필요해" 

지난 26일 민주당 젠더폭력대책 TF가 주최한 '#ME TOO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 토론회에서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현재 성희롱 금지 규정은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 산재하고 있다"며 성폭력 방지 체계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춘숙 의원도 지난달 21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와 피해자 보호 지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백히 밝히고, 여성폭력방지정책의 종합적, 체계적 추진을 규정하기 위해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발의했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안'은 △다양한 형태의 여성에 대한 신종 성폭력을 정의 △여성폭력 전담 기구를 만들어 가해자 처벌의 확실성 확보 △여성폭력 방지 정책의 실질적 근거가 되도록 일관성 있는 국가통계를 구축 △여성폭력방지 기본계획 및 연도별 수행계획 수립 근거를 마련 등이 담겨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였던 정 의원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이 땅의 인권과, 정의, 미래도 없을 것"이라며 "여성이 우리 삶의 주체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안전이 보장되는 평등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