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추천

왜 우리는 하루키 소설에 열광할까 - 예능 포맷으로도 확산된 인문학 열풍?

일취월장7 2017. 7. 28. 11:12

왜 우리는 하루키 소설에 열광할까

《기사단장 죽이기》로 국내서 ‘열풍’ 재현한 무라카미 하루키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7(목) 19:00:00 | 1449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열풍이 다시 부는 것을 보면서 국내에 일본 소설 애독자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하루키가 세계적인 작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유독 한국인 중에 일본 소설을 더 선호하는 층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송현주 인터파크도서 MD는 “일본 소설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감정들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내 위로와 공감을 얻어내는 힘이 높다”면서 “무겁고 진지한 소재보다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담백한 문체로 쓰인 점도 특징이다”고 말했다. 영풍문고 관계자는 “오랜 시간 쌓아온 두터운 팬층과 함께 쉽고 빠르게 읽히는, 흡입력 있는 스토리 전개가 일본 작가들 작품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원인으로 보인다. 난징대학살을 내용으로 최근 이슈가 됐던 하루키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처럼 일본 소설에서는 종종 사회적·역사적 문제점과 이슈가 다뤄진다. 이런 점들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 줘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Ivan GimNinez-Tusquets Editores

《기사단장 죽이기》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Ivan GimNinez-Tusquets Editores


 

현대사 속 실제 사건 접목시켜

 

올봄 일본에서 출간된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가 최근 국내에 번역 출판된 뒤 ‘하루키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일본 출간 당시 130만 부 발행으로 화제가 되었고, 일본 우파 성향을 드러낸 누리꾼들의 공격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루키의 오랜 독자들이 한국에도 많이 있는 데다 새 독자들까지 그의 신작에 관심을 가지면서 국내에서도 예전보다 더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 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삼십대 중반의 초상화가인 ‘나’의 기이한 체험과 모험을 담은 소설이다. ‘나’는 아내에게서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고 집을 나와서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 화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천장 위에 숨겨져 있던 아마다의 미발표작인 일본화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을 일본 아스카(飛鳥) 시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림을 가지고 내려온 뒤로, ‘나’의 주위에서 기이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골짜기 맞은편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백발의 신사 멘시키 와타루가 거액을 제시하며 초상화를 의뢰하고, 한밤중에 들리는 정체 모를 소리를 좇아 집 뒤편의 사당으로 가 보니 돌무덤 아래에서 방울이 울리고 있다. 멘시키의 도움으로 돌무덤을 파헤쳐 보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어놓은 듯한 원형의 석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앞에 ‘기사단장’이 나타난다. 아마다의 그림 속 기사단장의 모습과 똑같은, 수수께끼의 구덩이에서 풀려난 ‘이데아’가 말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은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만약 간절히 염원한다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모험담은 하루키의 기존 작품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플롯(Plot)이지만, 이번에는 그에 더해 현대사 속 실제 사건을 접목시킨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 중에는 유럽 유학 중에 나치 저항운동에 휘말리거나 중국 난징전투에 투입돼 강압적 명령에 의한 학살을 체험한 뒤 그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기도 한다. 또한 ‘나’가 집을 나와 한 달여 동안 정처 없이 여행하는 도호쿠(東北) 지방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이 남은 곳으로, 하루키는 재작년 가을 직접 이 지역을 차로 여행했던 경험을 살려 소설 전반에 치유와 재생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펴냄
1권 568쪽, 2권 600쪽
각 1만6300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펴냄 1권 568쪽, 2권 600쪽 각 1만6300원


 

일본 정부 비판하지만 ‘피해자 사관’ 지적도

 

“일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령하고 대량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전투 중의 살인도 있고,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죠.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일본군이 항복한 군인과 시민 대부분을 살해해 버린 겁니다. 정확히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세부적인 수치는 역사학자들 사이에도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엄청난 수의 시민이 전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인 사망자 수가 사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사십만 명과 십만 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중국 난징대학살을 언급한 이 내용은 일본 누리꾼들이 하루키에게 막말을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제 조선인 다 됐네’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하루키가 일본 우파를 적극 비판하는 지식인일까? 일본의 문화비평가 오스카 에이지는 한 주간지에 《기사단장 죽이기》에 관해 이렇게 서평을 남겼다.

 

“이번에도 난징대학살에서 ‘죽였던’ 쪽의 사람이 죽였다는 사실 자체에 상처를 입는다는 식의 ‘피해자 사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왜 그의 소설이 역사수정주의적으로 읽히는 것일까. ‘피해자 의식’이란 것은 진짜 피해자의 마음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자기긍정을 위한 피해자일 뿐이니, 피해자 의식을 통해 자기주장을 하거나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사람하고만 동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피해자에게 공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종군위안부 피해자분들이나 아시아의 전쟁 피해자분들, 혹은 일본 국내의 피해자들, 마이너리티들에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 역시도, 그런 피해자 의식이 결국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는 증명이 되는 것이다.” 



'알쓸신잡'의 성공 이유, 알아두면 쓸데 있다

[표지 너머 책 세상] 예능 포맷으로도 확산된 인문학 열풍?
2017.07.28 02:16:55


화제의 TV 프로그램 <알쓸신잡>(나영석·양정우 연출, tvN)이 감독판 편집본 방송을 끝으로 마지막을 예고했습니다. <알쓸신잡>은 예능인이 아닌, 각 분야 전문가가 출연해 예능 포맷으로 지식을 논했고, 이 형식이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낳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알쓸신잡>의 성공은 출판 분야에 집중됐던 지식 공유, 인문학 열풍이 TV로도 이어졌다는 점에서도 논할 가치가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대중 인문학 열풍은 책과 팟캐스트에서 시작했습니다. 설민석, 이지성 등 인기 작가가 출연했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하 지대넓얕)>이나 <과학하고 앉아있네>와 같은 팟캐스트 프로그램이 널리 사랑받는 현상은 과거와는 조금 다릅니다.  

전문적 지식을 어렵게 말하기보다 더 쉽게, 더 재미있게 전달하는 이들이 등장했다는 점, 이런 지식 전달 방법에 많은 대중이 호응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알쓸신잡>의 인기도 이 같은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책과 팟캐스트를 넘어, 쉬운 인문학 강의가 예능의 형식으로 TV에도 안착했다는 얘기입니다.  

따지고 보면 <알쓸신잡>뿐만이 아닙니다. <냄비받침>(김호상 CP, KBS2), <차이나는 클라스>(장기하 CP, JTBC), <어쩌다 어른>(정민식 연출, tvN) 등 예능과 교양 중간 형태의 프로그램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간 인문학 지식 전달의 유일한 창구였던 책의 역할을 TV가 대신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법합니다.  

'표지 너머 책 세상'이 TV프로그램에 주목한 이유입니다. 아홉 번째 '표지 너머 책 세상'은 <알쓸신잡>의 성공이 더 거센 대중 인문학 열풍의 신호탄인지, TV 교양 프로그램의 체질 변화인지, 출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서교동 출판문화연구소에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와 이홍 한빛비즈 편집이사가 나눈 대담을 정리했습니다.  

▲<알쓸신잡>의 예상을 뛰어넘은 성공은 지식 사회를 견뎌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로도 볼 수 있습니다. ⓒtvN


인문학 대중화, 책에서 TV로 

-<알쓸신잡>이 연일 화제입니다. 출연진이 일제히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고, TV에서 거론된 여러 이야기가 언론 기사로 재조명되는 현상이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시야를 넓혀보면, 요 근래 TV에서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의 중간을 취한 새 포맷의 프로그램이 연달아 제작되고 있습니다. <냄비받침>, <차이나는 클라스>, <어쩌다 어른>, <김제동의 톡투유>(이영배 CP, JTBC) 등이 모두 이런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우선 이 같은 '예능 교양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부터 살펴보죠. 

장은수 : 우리는 무한한 정보에 접근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정보의 홍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교양은 반드시 필요한데,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 여기는 이가 많아졌죠. 자연히 누군가 알려주길 바라는 욕구가 커졌습니다. 이를 TV가 끌어안은 결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대중의 배움에 관한 욕구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TV 역시 옛날부터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건 교양 프로그램의 예능화입니다. 예능 교양 프로그램의 대두는 과거 TV 프로그램에서 대중 교양 패러다임을 주도한, 흔히 말하는 지식인의 권위가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정보에 접근 가능해짐에 따라 이제 더는 기존 전문가의 권위가 서지 않죠.  

이에 따라 전문 지식의 참 의미를 더 쉽게 전달함으로서 지식인과 대중을 잇는 '지식 커뮤니케이터'를 시대가 요구하게 됐습니다. '지식 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를 비롯해 기존보다 쉽게,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이들이 방송에 얼굴을 내비치는 이유고, 예능인이 교양 프로그램에 계속해서 출연하는 이유입니다. 

교양의 예능화는 단순히 TV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팟캐스트에서 이런 현상이 본격화했죠. <지대넓얕>,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비롯해 많은 교양 팟캐스트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중에게 지식을 전달하되, 이를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토크쇼 형태의 방송이 많았죠. 

쉬운 인문 서적 붐도 일어났습니다. 설민석 강사를 비롯한 여러 저자의 다이제스트류 역사 서적 붐,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를 비롯한 자기계발서와 심리학 서적 중간 형태의 책이 유행한 현상 등이 대표적입니다. 책과 팟캐스트에서 인기 있던 형태가 이제 TV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홍 : 예전에는 다큐멘터리, 전문가의 강의식 프로그램이 TV 교양 프로그램의 주된 형태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이제는 패널이 나와 웃음까지 함께 주는 예능 포맷으로 변화했습니다. 앞서 거론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넓게는 <집밥 백선생>(박희연 연출, tvN) 등의 요리 예능도 같은 범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능 교양 프로그램 인기의 원인을 장은수 대표의 분석처럼 거시적 시각에서 찾아볼 수 있겠지만, 방송의 속성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방송은 시청자를 늘려야 살아남습니다. 교양 프로그램을 더 쉽게 만들어야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유재석이 출연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는 시간에 다른 프로그램을 넣어, 다른 시청자층을 공략해야 합니다.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던 시청자층 공략 욕구와 사회적 요구가 잘 만난 결과가 지금의 예능 교양 프로그램 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썰전>(이동희 기획, JTBC)을 비롯해 예능화한 정치 토크쇼가 이리 성공하리라고 누가 예측했겠습니까.  

특히 교양 프로그램의 예능화가 종편 채널에 집중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편은 관련 규정에 따라 반드시 일정 비율의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합니다. 정치 뉴스로만 도배할 수 없고, 드라마만 틀수도 없습니다. 특히 시청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편이 교양의 예능화를 주도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대중의 인문 교양 욕구, 지식 욕구 해소 매개체가 책에서 팟캐스트, TV로 옮아갔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예능 교양 프로그램 인기는 지식 전달 체계의 대중화, 혹은 다양화로 볼 수도 있겠네요.  

장은수 : 지식이 새로운 토크쇼 소재가 됐다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특히 <알쓸신잡>을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예전 한 TV 프로그램 제작자에게 출판계 편집자와 필자의 뒤풀이를 그대로 녹화해 방송해도 좋을 것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알쓸신잡>은 전형적인 출판계 뒤풀이 형태와 비슷합니다.  

지식이 새로운 토크쇼 모델이 됐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대화의 기술, 이야기 기술을 닦기 위한 지식 충족을 요구한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건 학원에 가서 배울 수 없죠. 책을 읽으면 되지만, 평소 책을 가까이 하지 않던 이라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알쓸신잡>류의 TV 프로그램이 이 욕구를 쉽게 해결해 주죠. 술자리, 타 업체 사람과의 미팅 자리에서 쓸 만한 이야깃거리를 적절히 제공합니다. 형식의 고갈에 고민하던 TV와 사회적 욕구가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이홍 :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대중에게 너무 벅찬 과제를 요구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상이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데 급변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신지식은 지속적으로 쌓입니다. 책 읽기에 익숙지 않은 기초 수준의 교양을 공부하기도 힘든 환경이죠. 멜린다 데이비스에 따르면 요다이즘(현실이 불확실하다보니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처럼 강력한 존재에 의지하는 현상)이 나타난 이유입니다. 예능화한 대중 교양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수준의 이야기만 짧게 전달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알쓸신잡>을 비롯한 새로운 형식의 '예능 교양 프로그램'은 더 쉬운 방식으로 대중에게 지식을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과거 강연식 프로그램과 대비됩니다. ⓒtvN


더 좋은 예능 교양 프로그램 만들려면? 

-예능 교양 프로그램 붐의 연원을 잘 살폈습니다. 책의 역할을 TV가 대신한다는 점에 두 분은 주목하신 듯합니다. 그런데, 예능 교양 프로그램이 범람하다 보니 잘못된 지식 전달 논란이 일어나거나, 특정 시각만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됩니다. 당장 출판계에서 쉬운 대중 인문학 서적 붐이 일 당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홍 : 분명 그런 우려가 나올 법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예능 교양 프로그램의 지식 전달력 자체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입니다. <알쓸신잡> 출연진이 경주를 찾아 젠트리피케이션과 경주의 역사를 이야기한들, 신라나 경주에 관한 책이 더 팔리지 않습니다. 출연진의 책만 베스트셀러가 되고 말죠.  

해당 프로그램이 전달하고자 한 지식은 분명 일차적으로 시청자에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추가의 호기심을 만들기란 어렵습니다. 책을 통해 독자가 더 큰 지적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과 다르죠. 현재 예능 교양 프로그램에서 흥행하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출연진 중 새로운 TV 스타가 나올 뿐입니다.  

장은수 : 대중이 지식 쌓기 욕구는 있지만 더는 전문가의 강연 프로그램에 의존하진 않습니다. TV가 더 쉬운 예능 교양 프로그램으로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에 맞추려다 보니,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일어날 수밖에 없죠. 강연 방식의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논란은 지속될 것입니다. 

예능 교양 프로그램 붐으로 인한 부작용은 크게 세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기본적으로 지식이 예능 소재로 소모됨에 따라 일어나는 일입니다. 

첫째, 정말 필요한 지식이 아니라 장식품 지식, 즉 일종의 곁가지 지식만 논의되는 현상입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세론이죠. 간단히 말해, 자기 사유가 없는 주워들은 이야기, 누가 말해도 상관없는 수준의 지식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는 걸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출연진이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TV 프로그램의 특성상 깊이 논의될 이야기는 버려지고 맙니다. 

둘째, 예능화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시청자는 프로그램이 전달하는 지식보다 출연자를 우상화하는 데 그칠 공산이 큽니다. 당장 관련 프로그램이 끝난 후 소셜미디어나 언론 보도에서 주로 거론되는 건 김영하 작가가 얼마나 똑똑한지, 정재승 교수가 얼마나 재미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셋째, 대부분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지식이 최신 수준으로 업데이트 되지 않은 듯합니다. 일부 출연자의 경우 1980년대 담론을 지금 이야기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한국 대중 교양의 한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과거의 담론을 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지 못한 이야기가 TV에서 버젓이 소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의 예능 교양 프로그램이 최신 이론과 새로운 생각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테드(TED)와 다른 점이죠. 신선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테드가 강연 프로그램임에도 자리를 잘 잡은 중요한 이유라고 봅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좌)와 이홍 한빛비즈 이사(우). ⓒ프레시안(최형락)


더 많은 지식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한 시대 

-예능 교양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면서 출연자들은 주요 저자로서 출판 시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 7년 만의 신작 소설집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 펴냄)은 베스트셀러 차트 3위에 오른 데다, 출간 6주 동안 무려 10만 부가 팔렸습니다. 장편소설도 아닌 소설집이 이 정도로 팔리는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예스24에 따르면, <오직 두 사람>은 최근 10년간 가장 많이 판매된 한국 단편소설집입니다.  

유시민 작가, 설민석 강사, 정재승 교수 등 주요 저자의 책도 방송의 힘을 입증하며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습니다. 예능 교양 프로그램의 인기가 출판 시장에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홍 : 미디어셀러의 등장은 과거 MBC의 <느낌표>에서부터 본격화했죠. 오늘 거론된 프로그램 중에서도 상당수가 책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분명 예능 교양 프로그램 붐은 출판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출판사에는 긍정적이죠.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부작용도 우려됩니다. 인문학의 대중화는 지식의 본령이어야 할 책이 오히려 TV와 인물을 쫓아가는 현상을 낳기 때문입니다. 대중화가 본질을 덮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장은수 : 물론 부작용을 우려할 수 있습니다만, 대중의 언어로 지식을 풀어주는 지식 커뮤니케이터의 존재가 중요함도 부인할 순 없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 시대에 이런 이들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더 큽니다.  

지식계와 대중의 매개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간 대중이 주목하지 않았던 세계가 새롭게 비평의 대상이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황교익 칼럼니스트입니다. 그의 등장으로 대중은 음식 문화를 인문학적으로 사유할 가능성을 얻었습니다. 음식이 비평의 대상이 됨에 따라 최근 출판계에 좋은 음식 비평 책이 연달아 나올 수 있었습니다.  

TV가 지식을 대중 감성에 맞는 수준으로 재가공해 냄에 따라 기존과 다른 의미의 대중서 출현을 자극할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출판 문화, 편집 문화, 지식의 대중화와 다양화를 촉발하리라 기대합니다.  

오래 가는 프로그램, 최신 지식 전달하는 프로그램 나와 주길

-앞으로도 TV에서 예능과 교양이 만나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게 될 듯합니다. 출판인으로서 두 분은 어떤 TV 프로그램을 기대하시나요? 

이홍 : 순간 임팩트가 큰 프로그램보다 <국악한마당>이나 <동물의 왕국>처럼 긴 시간 시청자의 교양을 채워주는 장수 프로그램이 나와 주길 바랍니다. 더 구체적으로 바란다면, 긴 시간 시청자에게 새로운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사랑받길 바랍니다. 

장은수 :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느냐는 TV뿐만 아니라 모든 미디어의 숙제입니다. 제가 가장 바라는 건 낡은 지식이 아니라 최신 지식을 지속적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네이처>에 발표된 새로운 이야기를 뉴스의 딱딱한 보도가 아니라 알기 쉬운 교양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에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나오길 바랍니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이야기를 과거의 잣대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잣대로 다시 해석해주는 프로그램을 기대합니다. 

캐나다에서 연 2회 열리는 토론 행사 '몽크 디베이트'는 항상 그 시대 최첨단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기업들도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TV나 언론, 출판사에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합니다. 시스코는 TED에 돈을 대죠. 이를 통해 최첨단 연구의 대중화가 이뤄지고, 이는 장기적으로 지식 이해도가 높은 잠재 고객층을 확보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식인도 새 시대에 걸맞은 수준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 지식 사회의 기반을 넓히고 수준을 끌어올리는 건 지식 사회 전반의 생존에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지식인이 더 노력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롤 모델로 정재승 교수를 거론하고 싶습니다. 최근에야 <알쓸신잡>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정 교수는 예전부터 바람직한 지식인의 모습을 잘 보여줬습니다. 김영란법이 통과된 후 많은 교수들이 돈이 안 되는 강의를 거절합니다. 하지만, 정 교수는 김영란법 이후에도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자신을 부르는 강연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걸로 진작 유명했습니다. TV가 없더라도, 이런 분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 지식 기반이 더 탄탄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