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인간으로 영생을 산다면, 진정한 '사람다움'은?
[작은책] <은하철도 999>, <매트릭스>, <설국열차>로 철학 하기
2017.06.03 14:12:55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이 연일 회자하는 지금, 인류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알파고의 시대,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시대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상영된 영화 <매트릭스>(릴리 워쇼스키, 라나 눠쇼스키 감독)는 인공지능이 '매트릭스'라는 공간에서 사람의 의식을 통제하고 사람은 기계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이용되는 충격적인 미래상을 보여 준 바 있다. 매트릭스(matrix)는 라틴어 어머니(mater)와 자궁(-ix)의 합성어로 '모체'이며, 수학과 컴퓨터에서 말하는 행렬(行列)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매트릭스는 개별 사람이 믿고 싶어 하는 현실에 포획된 일종의 보호막인 '모체'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 인식 과정에 포함된 분별심을 컴퓨터 행렬로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자본과 언론이 앞장서서 최첨단 기계와 인공지능이 만들어 주는 신세계를 찬송하고 있다. 동시에 '기계가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사람의 직업뿐 아니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문명과 문화가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살아 있는 뼈와 살과 세포와 정신으로 구성된 온전한 나가 아닌 기계 부품으로 전락한 삶이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 역시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는 지금이 아닌 무려 40년 전 이 문제를 전면으로 제기한 만화영화가 있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1977)다. 이 만화영화는 1980~90년대를 살았던 지금의 중년 세대에게 우주적 상상력과 사람다움, 시간, 영생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물론 그것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중년의 삶을 살아 내면서 마츠모토 레이지의 미래를 읽는 눈에 공감할 때 가능한 것이다.

< 은하철도 999>는 영원한 생명(영생),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한 철이와 메텔의 여행기이자 엄마 잃은 소년 철이의 성장 기록이다. 서기 2221년을 배경으로 한 이 만화영화는 슬픈 눈빛, 허리까지 내려오는 찰랑찰랑 윤기 나는 금발, 가녀린 몸매, 검은 모자와 검은 옷을 입은 메텔과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망토를 두른 작지만 신념에 찬 눈빛을 가진 철이가 정거장(행성)을 하나씩 거치면서 시간과 영생의 의미를 깨우쳐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철이의 길벗인 메텔을 "청춘의 상징이자 소년의 욕망이며 엄마와 같은 자기 안의 환영"이라고 정의한다.
이 만화영화는 기계 백작에게 죽임을 당한 엄마, 그 엄마를 대신해 기계 인간이 돼 영원한 생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 철이와 그의 조력자 메텔이 다양한 존재와 만나면서 세계와 사람을 보는 관점이 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은하철도 999>는 결국 '메텔의 이야기이자 철이의 사람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와 <은하철도 999>의 메텔(maetel)은 라틴어로 어머니(mater)라는 뜻이지만, <매트릭스>의 인공지능보다 메텔이 훨씬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메텔의 슬픈 눈빛과 검은 옷은 여행 중 많은 생명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상징한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정된 삶 덕분에 더욱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이다. <은하철도 999>는 영생(기계화된 몸)에 대한 인간 군상의 욕망을 보여 준다. 나아가 영생을 얻지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기계 인간들을 통해서 유한한 삶을 긍정하고, 그 시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만약 사람이 "영생을 산다면 대충대충 살 것"이라며 "시간은 꿈을 배반하지 않고 꿈도 시간을 배신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시간과 꿈을 배반하지 않는 삶,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분별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누고 쪼개고 분리하고 분석하는 분별심, 매트릭스 모체 안에서 컴퓨터 행렬로 적용되는 분별심이 아닌 무엇이 귀중한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분별심이 아닐까! 말하자면 분별심은 자동차, 아파트, 다이아몬드와 쌀, 공기, 물 중 어떤 것이 귀중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전자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후자는 없으면 결코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임을 깨닫는 것이 사람다움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자동차, 아파트, 다이아몬드를 욕망하는 역설적인 삶, 이것은 사람다움이 아니다.
사람다움은 조화로운 삶, 협동의 삶이다.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삶'을 '사람'의 준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람다움'은 연식(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사색의 갈무리라고도 했다. 올바른 분별심을 갖는 공부(工夫, 사람이 도구를 가지고 있는 모양)가 은유(농사짓고 사는 삶)하는 것은 결국, 계절과 자연의 변화, 자연과 사람의 조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닐까!
'사람다움', 서양의 무슨 무슨 사상(가)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해월 최시형 선생이 말씀하신 삼경(경천•경인•경물)사상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하늘과 땅과 세상의 돌이나 풀이나 벌레나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게 없다(천지만물막비시천주야天地萬物 莫非侍天主也)"는 마음가짐과 실천으로부터 사람다움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해월의 시천주 사상을 삶으로 체현하고자 했던 장일순 선생은 일찍이 접화군생(接化群生)을 강조한 바 있다. 선생은 "모든 문제가 생명 속에 하나둘 살아나는 것이므로 전체를 모시고 가는 하나의 생활 태도로 '함께 사는 관계'를 키워 가는 자세, 즉 만물을 다 껴안고 살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삶"이 진정한 사람다움이라고 했다.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가는 물(개문류하 開門流下)처럼 사는 삶, 만물을 먹이고 기르되 낮은 곳에 임하고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삶,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다투지 않는 삶이 사람다운 삶이라는 것이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말한 시간을 배반하지 않는 꿈, 꿈을 배반하지 않는 시간은 작지만 하늘과 소통하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고 꿈일 게다. 이와 반대로 화폐, 무기(핵), 힘, 성장과 발전의 신화는 기계화된 사람의 회색빛 욕망이다. "돈을 모시지 말고 생명을 모시고, 쇠 물레를 섬기지 말고 흙을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겉껍데기를 모시지 말고 그 속에 들어 알짜로 값진 것을 모시고 섬길 때만이 마침내 새로운 누리가 열릴 수 있다"는 장일순 선생의 말씀이 삶으로 스며드는 것, 그것이 철이가 깨달은 사람다움이 아니었을까!

우리 시대 힘차게 달리는 두 개의 열차가 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가 기계제국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다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2013년)는 자연의 순환 질서를 왜곡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두 열차는 반(反)생명, 비인간화(지배와 개조의 욕망)의 모순과 위험, 그리고 이원론적 세계관과 화폐의 물신화를 엔진 삼아 지금도 폭주하고 있다.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가 기계화 제국의 숭배자이자 메텔의 어머니인 프로메슘과 괴물이 되어 버린 기계제국을 거부하고 다시 여행길에 올라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더디게 흐르는 삶(시간), 느리게 스미는 관계(꿈)'에 숨겨진 깊은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폭주 기관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며 꿈(희망)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 꿈(희망)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꿈,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의 논리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 사랑의 삶을 참회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최근 자본과 언론이 앞장서서 최첨단 기계와 인공지능이 만들어 주는 신세계를 찬송하고 있다. 동시에 '기계가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사람의 직업뿐 아니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문명과 문화가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살아 있는 뼈와 살과 세포와 정신으로 구성된 온전한 나가 아닌 기계 부품으로 전락한 삶이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 역시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는 지금이 아닌 무려 40년 전 이 문제를 전면으로 제기한 만화영화가 있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1977)다. 이 만화영화는 1980~90년대를 살았던 지금의 중년 세대에게 우주적 상상력과 사람다움, 시간, 영생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물론 그것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중년의 삶을 살아 내면서 마츠모토 레이지의 미래를 읽는 눈에 공감할 때 가능한 것이다.

▲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중 한 장면. ⓒgoole.com
< 은하철도 999>는 영원한 생명(영생),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한 철이와 메텔의 여행기이자 엄마 잃은 소년 철이의 성장 기록이다. 서기 2221년을 배경으로 한 이 만화영화는 슬픈 눈빛, 허리까지 내려오는 찰랑찰랑 윤기 나는 금발, 가녀린 몸매, 검은 모자와 검은 옷을 입은 메텔과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망토를 두른 작지만 신념에 찬 눈빛을 가진 철이가 정거장(행성)을 하나씩 거치면서 시간과 영생의 의미를 깨우쳐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철이의 길벗인 메텔을 "청춘의 상징이자 소년의 욕망이며 엄마와 같은 자기 안의 환영"이라고 정의한다.
이 만화영화는 기계 백작에게 죽임을 당한 엄마, 그 엄마를 대신해 기계 인간이 돼 영원한 생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 철이와 그의 조력자 메텔이 다양한 존재와 만나면서 세계와 사람을 보는 관점이 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은하철도 999>는 결국 '메텔의 이야기이자 철이의 사람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와 <은하철도 999>의 메텔(maetel)은 라틴어로 어머니(mater)라는 뜻이지만, <매트릭스>의 인공지능보다 메텔이 훨씬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메텔의 슬픈 눈빛과 검은 옷은 여행 중 많은 생명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상징한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정된 삶 덕분에 더욱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이다. <은하철도 999>는 영생(기계화된 몸)에 대한 인간 군상의 욕망을 보여 준다. 나아가 영생을 얻지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기계 인간들을 통해서 유한한 삶을 긍정하고, 그 시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만약 사람이 "영생을 산다면 대충대충 살 것"이라며 "시간은 꿈을 배반하지 않고 꿈도 시간을 배신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시간과 꿈을 배반하지 않는 삶,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분별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누고 쪼개고 분리하고 분석하는 분별심, 매트릭스 모체 안에서 컴퓨터 행렬로 적용되는 분별심이 아닌 무엇이 귀중한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분별심이 아닐까! 말하자면 분별심은 자동차, 아파트, 다이아몬드와 쌀, 공기, 물 중 어떤 것이 귀중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전자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후자는 없으면 결코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임을 깨닫는 것이 사람다움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자동차, 아파트, 다이아몬드를 욕망하는 역설적인 삶, 이것은 사람다움이 아니다.
사람다움은 조화로운 삶, 협동의 삶이다.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삶'을 '사람'의 준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람다움'은 연식(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사색의 갈무리라고도 했다. 올바른 분별심을 갖는 공부(工夫, 사람이 도구를 가지고 있는 모양)가 은유(농사짓고 사는 삶)하는 것은 결국, 계절과 자연의 변화, 자연과 사람의 조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닐까!
'사람다움', 서양의 무슨 무슨 사상(가)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해월 최시형 선생이 말씀하신 삼경(경천•경인•경물)사상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하늘과 땅과 세상의 돌이나 풀이나 벌레나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게 없다(천지만물막비시천주야天地萬物 莫非侍天主也)"는 마음가짐과 실천으로부터 사람다움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해월의 시천주 사상을 삶으로 체현하고자 했던 장일순 선생은 일찍이 접화군생(接化群生)을 강조한 바 있다. 선생은 "모든 문제가 생명 속에 하나둘 살아나는 것이므로 전체를 모시고 가는 하나의 생활 태도로 '함께 사는 관계'를 키워 가는 자세, 즉 만물을 다 껴안고 살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삶"이 진정한 사람다움이라고 했다.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가는 물(개문류하 開門流下)처럼 사는 삶, 만물을 먹이고 기르되 낮은 곳에 임하고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삶,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다투지 않는 삶이 사람다운 삶이라는 것이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말한 시간을 배반하지 않는 꿈, 꿈을 배반하지 않는 시간은 작지만 하늘과 소통하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고 꿈일 게다. 이와 반대로 화폐, 무기(핵), 힘, 성장과 발전의 신화는 기계화된 사람의 회색빛 욕망이다. "돈을 모시지 말고 생명을 모시고, 쇠 물레를 섬기지 말고 흙을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겉껍데기를 모시지 말고 그 속에 들어 알짜로 값진 것을 모시고 섬길 때만이 마침내 새로운 누리가 열릴 수 있다"는 장일순 선생의 말씀이 삶으로 스며드는 것, 그것이 철이가 깨달은 사람다움이 아니었을까!

▲ 영화 <설국열차> 스틸컷.
우리 시대 힘차게 달리는 두 개의 열차가 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가 기계제국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다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2013년)는 자연의 순환 질서를 왜곡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두 열차는 반(反)생명, 비인간화(지배와 개조의 욕망)의 모순과 위험, 그리고 이원론적 세계관과 화폐의 물신화를 엔진 삼아 지금도 폭주하고 있다.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가 기계화 제국의 숭배자이자 메텔의 어머니인 프로메슘과 괴물이 되어 버린 기계제국을 거부하고 다시 여행길에 올라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더디게 흐르는 삶(시간), 느리게 스미는 관계(꿈)'에 숨겨진 깊은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폭주 기관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며 꿈(희망)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 꿈(희망)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꿈,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의 논리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 사랑의 삶을 참회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문자폭탄'과 의사소통의 품격
[기고] 문자에 절제와 해학을 담으면 어떨까?
2017.06.07 09:21:33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생활 필수품이 되면서 한국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할 때 이메일이 기존의 편지를 대체하던 과정은 다소 생경하고 거북했다. 유장한 사연에 두텁게 흐르던 감성은 쏙 빠지고 차가운 유리 화면 위에 덩그러니 문장 몇 개 놓인 것이 이메일이었다. 사물과 시간을 관통하는 기계적 효율성을 얻은 대신 더딘 편지가 몰고 오는 감동의 파도는 잃어 버렸다. 그래도 이메일에는 건조하지만 사연이 있었다. 행간의 은유로 가슴이 울렁이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사연의 표면에 사람의 향이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이메일조차 효율성의 자리를 문자에 내주었다. 보내고 받는 반응의 효율성에서 이메일과 문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생경했던 이메일의 기억이 향수처럼 아련해질 지경이 됐다. 빛의 속도만큼 가벼운 문자에 사연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사연은커녕 최소한의 맥락조차 사라지고 일방적 메시지만 난무하게 됐다.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강퍅한 메시지에 감동이 스밀 여지는 더더욱 없다. 비가역적으로 진행되는 기술의 발전이 소통의 형식을 바꾸었고 변화된 소통 방식은 관계의 내용과 질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은 쏠림 현상과 과도한 자기 확신을 조장하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많은 미디어 연구들은 분석하고 있다. 문자 폭탄은 그 정점에 있다. 이른바 악플의 모바일형 진화물로 나타난 문자폭탄은 규모와 속도의 측면에서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든지, 단지 몇 글자로 보낼 수 있는 문자는 한 마디의 항의와 비난에 아주 걸맞은 소통양식이다. 다수 대중의 결집된 의지는 강력하다. 문자폭탄의 대상은 마치 폭탄을 맞은 것 같은 공포에 빠져 들 수 있다. 익명의 다수가 쏟아 붓는 저주의 메시지는 개인의 영혼을 파괴할 수도 있다. 악플이 몇몇 유명인의 목숨을 앗아간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공포의 메시지는 빈도가 많아질수록 기하급수적 누적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마디씩 거든 문자는 모여서 폭탄이 되고 한 개인의 몸과 마음을 산산조각 내는 살상 파편이 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해지는 것은 이러한 소통방식이 일상적 문화로 자리를 잡게 된다는 점이다. 기술적 진보는 대체로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모바일과 문자의 기술은 어느 한 쪽만 전용할 수 있는 특허가 아니다. 그 경계선이 단지 감정적 호불호이든, 정파적 입장이든, 혹은 친소관계의 정도에 따른 구분이든 한 쪽이 폭탄을 사용하면 다른 쪽도 그에 상응하는 무기를 동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은 차이는 큰 차이가 되고야 말고 공감의 공간은 사라지게 된다. 대의 과도한 공격은 받아들일만하던 일조차 거부와 맞대응으로 가게 한다. 대부분의 일에 전부 아니면 전무의 법칙이 적용되고 상대방들은 서로 공격의 정당성만 확신하게 된다. 어떤 성격의 경계선이든 진영이 나뉘게 되면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는 일이 빈발하게 된다. 이는 갈등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는 사회의 전형적 모습이다.
소통 방식은 한 사회의 품격을 대변한다. 걸핏하면 삿대질하고 주먹질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회가 있고 신실하고 합리적인 대화로 상대방과 마주하는 사회도 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의사가 전달되는 사회가 있고 표정과 약간의 기색만으로도 서로의 의중을 배려하는 사회가 있다.
한국의 역동적 현대사와 숨차게 달려온 기술진보가 격렬한 문자폭탄을 탄생시킨 정서적 자양분이 된 것 같다. 오랜 억압의 기억과 몰상식의 시대가 문자 폭탄의 구조적 정당성을 받쳐주는 요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문자에 절제와 해학을 담으면 어떨까? 절제에도 그 안간힘에 따라서 하늘을 찌르는 분노가 담길 수 있고 해학도 그 비트는 정도에 따라 경고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 폭탄이 터지는 와중에 문자를 계기로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는 미담도 적지 않게 들린다. 그래서 기술의 진보와 함께 대중의 참여와 더불어 민주주의가 신장될 것이란 낙관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기술의 진보는 중립적일 수 있다. 기술이 폭탄 친화적 성격만을 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건조한 문자가 한 잎씩 모여 소담한 꽃송이를 피우기도 한다. 대립도 갈등도 풍성한 대화의 꽃으로 만개했으면 좋겠다.
타협의 시대라고 한다. 공존의 시대라고도 한다. 다른 의견과 다른 세력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통의 품격은 자신을 위해서 좋다. 서로 폭탄을 들고 경계하는 사회보다는 평화스러운 소통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회가 서로에게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주류' 정책의 관철? 한국 복지는 최악의 조합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성장을 포괄하는 복지패러다임 필요
2017.06.05 16:18:05
한국 복지국가의 현단계 : 복지국가 '초기단계'의 경제사회 환경
2013년 한국의 복지비 지출은 GDP의 10%를 넘어섰다. 복지국가의 황금기로 불리는 1960년대 중반 경 OECD 회원국의 복지비 지출 수준이 GDP의 10%이었다는 점을 보았을 때, 오늘날 한국은 복지국가의 ‘초기’ 단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복지국가의 문턱에 서 있는 한국이 성숙한 복지국가로 나아가기까지 그 여정이 상당히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부터 1970년대까지 서구 선진국들은 안정적이고 높은 경제성장, 젊은 인구구조, 완전고용 그리고 케인즈 주의라는 복지확충에 유리한 경제 패러다임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복지국가를 발전시켰다. 반면 오늘날 한국은 장기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완전 고용의 붕괴와 노동시장 이중화의 문제에 둘러 쌓여있다. 또한 복지정책 확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보다는 이에 부정적인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우세한 실정이다.
서구 복지국가와는 전혀 다른 맥락 속에 있는 한국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는 장밋빛이 아니다. 1960년대에서부터 90년대까지 수출주도 성장 전략으로 상당한 성과를 보여 온 한국 경제는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하락 국면을 맞이한다. 10%를 넘나들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15년에는 3%까지 떨어졌다(KOSIS, 2016). 미래의 성장률 전망 또한 비관적이다. 기획재정부(2015)의 ‘2060 장기재정전망(이하 2060 재정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는 2% 중반, 2010년대에는 1% 후반, 2040년대에는 1% 중반, 2050년대에는1% 초반까지 떨어진다.


이렇듯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되는 상황에서 고도성장기간에 분배의 역할을 해왔던 '낙수효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 확실해 지고 있다. 1975년부터 2011년까지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비중의 추이를 보면, 97년 이후 기업소득의 비중은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반면 가계소득의 비중은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난다(한국은행, 2015). 기업의 소득이 경제 전체에 환류 되지 않음으로 기업은 부유해지나 가계는 소득이 증대되지 않는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는 극심한 노동시장 양극화 – 수출/내수부분,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 – 가 진행되고 있어, 한국이 복지국가 초기단계에서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로 이행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시대의 복지정책에 대한 '주류'의 시각: 기재부의 '2060 장기재정전망'
이와 같은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서 복지정책에 대한 대응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중 가장 주의 깊게 볼 것은 2015년 12월에 발표된 기획재정부의 '2060 재정전망'이다. 2060 재정전망은 '주류'에 해당하는 공급중시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 근거해있다. 2060 재정전망은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최후의 보루로서 재정건전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에 상당한 함의를 갖고 있다. 2060 재정전망은 2015년 현재 국가부채의 수준이 GDP의 40.1%이나, 복지 정책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저출산·고령화로 복지비 지출이 자연적으로 증가해 2060년에는 국가부채가 62.4%에 달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2020년부터 신규복지제도(기초연금을 물가에 연동하지 않고, 국민연금 가입자 전체소득의 증가와 연동하여 인상)를 도입할 시, 2060년 국가채무는 GDP의 88.8%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계하였다. 한편 재량지출의 10%를 감축할 경우에는 국가채무비율은 38.1%로 떨어져 재정 건전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진단하였다. 사회보험의 경우에는 국민연금, 사학연금 등 공적연금의 기금고갈을 막기 위하여 기여 부담을 올린다면 국민부담률이 현재 28.4%에서 2060년 39.8%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면서, 이러한 수준에서의 보험료 부담은 어려울 것으로 평가하였다.

결국 2060 재정전망으로 대변되는 복지정책에 대한 한국 사회 ‘주류’의 시각은 여전히 복지정책 및 복지지출을 경제적 성장의 걸림돌 내지는 이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기재부는 일반재정 부문에서의 복지지출 삭감을 위한 대응 전략으로 지자체 사회복지의 유사·중복사업 정비, 예산낭비 제거 등 지속적인 세출구조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준칙도입(pay-go) 등을 제시한다. 그리고 사회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저부담-고급여 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전환하고, 급여수준 인상보다는 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정안정화를 유도하며, 민간보험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종합하면 공공복지의 급격한 확대를 억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류'의 정책이 관철되면? 한국 복지국가는 최악의 조합이 될 가능성!
'주류'의 시각에 따라 공공복지 확대를 억제하는 전략이 장기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적절한 대책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제기된다. 공공복지의 확충을 억제하면 시장을 통한 복지공급이 강화된다. 이미 한국의 복지체제는 시장에서 공급되는 복지의 비중을 제외하고 논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의 복지공급이 강력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막대한 민간 보험 시장과 강력한 민간 서비스 공급자의 비중은 한국 복지국가의 ‘역사적 유산’으로 이미 작동하고 있고 공공복지의 확충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류'의 정책방향은 사보험 시장을 강화하고, 민간 서비스 공급자에게 공적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는 오래 전부터 사회보험보다는 민간 보험사, 공공 공급자보다는 영리추구형 민간 서비스 공급자에 의존해 복지 수요를 충족(2010년 민간생명보험 보험료 수입액이 GDP 대비 7.4%, 5대 사회보험 보험료 수입액이 GDP 6.3%, 공공병원 병상수 11.0%, 국공립 보육시설 아동 수용율10.6%, 공공장기임태주택 비중 5.2%) 시켜온 한국 복지국가 발달의 '역사적 유산'과 궤를 함께한다. 반면에 '진보'의 복지방향은 사회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복지 서비스의 공공성 확대를 모색한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과 관련된 문제, 공공복지시설 확충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 부담과 재원 조달의 문제, 공공부문 비대화에 대한 저항감 등의 문제에 직면하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공공복지의 급격한 확대를 억제하려는 '주류'의 정책방향이 관철된다면 한국 복지국가는 기존의 '역사적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경우 한국의 복지국가는 사보험과 영리복지공급자의 영향력이 막강한 영미형 복지국가의 특징을 지니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현재와 같은 극심한 노동시장의 양극화 구조가 유지되면 한국의 복지체제는 노동시장의 지위에 따른 복지 수혜 양극화(정규직/비정규직의 복지 양극화)와 대규모 복지 사각지대의 잔존, 그리고 가족의 복지책임이 강하고 출산율이 낮은 남부유럽형 복지국가의 특성을 공유하게 된다. 즉, 주류의 정책방향이 관철되면 결국 시장의 과잉과 불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주의형 복지국가와 복지 양극화, 저출산, 낮은 (여성) 고용률을 특징으로 하는 남부유럽형 복지국가가 결합된 매우 비효율적 복지체제로 고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프레시안(최형락)
어떤 방향과 대책이 필요한가?
한국 복지국가가 '자유주의 + 남부 유럽형 복지체제' 경로를 고착화될 가능성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는가? 세 가지 방향이 중요하다.
1) 보편주의의 내실화
보편주의 원칙은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과 관련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개방경제로, 2014년 무역의존도가 77.83%에 달해 독일(69.84%), 스웨덴(56.38%) 보다도 높다(한국무역협회, 2016). 내수 보다는 수출과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큰 만큼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산업 구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하며,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치러지는 경쟁에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위험’이 따른다. 이러한 ‘위험’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대응기제가 없이는, 개별적인 경제 주체가 세계 경제를 상대로 경제 활동을 영위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에서 한국은 개방경제에서 얻게 되는 사회적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회적 안전망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방경제 하에서는 한 국가의 거시 경제가 세계 경제의 컨디션에 크게 좌우되는데, 보편주의적 복지제도는 거시경제의 ‘자동 안정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이와 같은 위험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 복지제도는 크게 두 지점에서 보편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는 넓은 사각지대 문제이며, 두 번째는 낮은 급여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안정적인 소득’ 유지 보다는 ‘빈곤 방지’의 기능에 머물러 있어 중산층에게 민간 보험에 의존하게 인센티브를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복지제도가 보편주의 원칙을 온전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지점 모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포괄 범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충분한 급여수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도외시 한다면, 중산층은 자신들의 복지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민간 복지 공급자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복지정책은 기초적인 소득보장을 통해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소득비례형 제도의 강화를 통해 급여수준의 불충분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제도적 개선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2) 공공복지 공급자의 강화
의료, 보육, 노인요양 서비스 분야에서 한국의 사회복지공급자는 영리 추구형 복지공급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이집의 경우 민간 및 가정 어린이집이 전체 공급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노인요양과 보건의료는 더 심각한 수준에 놓여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경우 학부모가 부담해야하는 추가 비용이 월 평균 8만원 정도이나 민간어린이집은 12.5만원으로 상당히 높다. 무상보육과 누리과정을 통해 소비자(학부모)에게 상당한 수준의 보육과 교육비를 지원해도 민간공급자가 다수를 차지할 경우 민간시설의 영리추구 행위로 인해 재정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가계부담은 의미 있는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공공복지시설을 늘리면 의료, 교육, 요양, 보육에서 공공부문의 비용은 늘어나지만 가계의 사적부담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공공부문이 충실해지지 않으면 늘어나는 사적복지비용을 고스란히 가계가 부담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총복지비용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으로 민간복지의 비중이 큰 현재의 구조를 바꾸어 공공복지공급자가 최소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조개편이 필요하다.
3)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의료와 복지부문 일자리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성장해온 대표적인 일자리이다. 2015년 현재 이들 일자리의 개수는 174만개로 전체 고용량의 6.7%를 차지한다(보건복지부, 2015). 반면 EU 15개국의 의료·복지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2.3%를, 미국은 13.1%를, 일본은 12.1%를 차지한다(EUROSTAT, 2016). 한국의 의료·복지부문 일자리는 EU 15개국 평균과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일본에 비해서 약 절반 수준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의료복지부분 일자리는 앞으로도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야로, 일자리의 질만 확보되면 앞으로 매우 중요한 일자리 창출분야가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사회복지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만드는 방안 중의 하나로 '사회서비스공단'의 신설을 들 수 있다. 이는 광역지자체에 사회서비스공단을 신설하여 복지시설을 직영하는 방안으로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국공립복지시설의 확충은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하자는 제안이다(김연명, 2016). 즉, 국민연금기금이 채권을 매입하는 형식으로 정부에 자금을 공급하고, 정부는 이 기금을 공공보건복지시설에 확충에 투자하는 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부가 국민연금의 신규 자금을 공공복지시설 확충(매입 포함)에 투자하고 늘어난 공공시설을 민간위탁하지 않고 광역자치단체별로 가칭 '사회서비스공단'을 신설하여 직영하는 방안은 제안한다. 공단 직영시설에 채용된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을 공단직원으로 직렬 배치하고 이들은 공단직원으로 지역별 순환근무, 내부 승진을 통해 근속기간을 늘리고 고용 및 임금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성장을 포괄하는 복지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복지정책에 대한 ‘주류’적 시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방향 외에도 '주류' 프레임에 대한 '대항' 담론을 갖출 필요가 있다. 복지를 경제에 걸림돌로 보는 '주류'적인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에 대한 정교하고 강력한 담론이 구축되어야 한다. 최근 논의되는 '소득주도성장'이 이 시각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의 프레임은 공공의 복지가 확대되면 양질의 고용이 창출되고, 내수가 증진되며 출산율이 제고되어 분배가 개선될 뿐만 아니라 성장의 촉진되고 성장의 과실을 사회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패러다임을 보다 설득력이 있는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떻게 복지비 지출과 복지정책이 경제성장을 포괄하는 정책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적극적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주류적인 시각은 인구고령화가 공적연금과 건강보험의 비용을 높이고, 사회보험의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악영향을 강조한다. 이와 달리 대항적인 프레임은 공공 복지비 지출에 대한 선제적인 투입을 통한 민간 지출의 절감 효과 그리고 복지급여를 통해 유지되는 구매력과 내수 활성화의 측면을 강조할 수 있다. 동시에 대항담론은 공적 의료비 지출뿐만 아니라 민간 의료비 지출을 함께 조망하여,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해 민간 의료비 지출의 억제를 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적연금에 투여되는 비용에 대해서도 단순한 재정비용 지출이 아닌 인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될 노인인구의 소비유지 기능에 주목하여 적극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사토리, 패러사이트, 그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2) 2번 화살 : 꿈을 이뤄주는 '육아 지원'(목표 출생률 1.8)
이 부분은 '1억 총 활약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육아 지원을 통해 현재 1.42에 머물고 있는 일본의 합계 출산율을 1.8까지 증가시켜 지속적으로 1억 인구를 유지하겠다는 내용이다. 저출산의 가장 큰 요인을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 자체를 계획하기 힘들다는 데서 문제 인식을 했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통한 사회적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결혼-임신-출산-육아에 이르는 각 단계의 대책을 준비했다.
먼저,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성이 결혼을 주저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베 정부는 취업 촉진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며, 노동 환경에 대한 처우의 개선과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공 임대주택을 추가로 더 건설하는 등의 노력으로 결혼에 대한 불안을 감소시키기로 했다.
다음으로, 임신·출산과 육아의 해결책이다. ① 다양한 보육 서비스를 충실하게 하고, ② 교육비 부담을 줄이며, ③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정책을 꾸리고 있다.
첫째, '대기 아동 해소 가속화 플랜'을 통해 2017년 말까지 보육원의 규모를 2013년 대비 50만 명분 확대하기로 했다. 동시에 소규모 보육시설의 지원을 강화하고, 기업 내부의 자체 보육시설의 확대와 건설을 촉진하여 장래에 발생할 수요를 완전 수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둘째, 교육비 부담에 있어서는 아동 교육을 단계적으로 무상화하고, 고등 교육에 있어서 장학금의 확충과 '소득 연동 반환 장학금 제도'를 도입해서 대출을 받더라도 학자금 상환에서 융통성을 줄 예정이다.
셋째, 임신·출산·육아에 있어서 받는 각종 불평등과 불이익 방지를 위한 법·제도의 개선과 함께 상담 체제를 전국적으로 확대한다. 특히 난임 부부에 대한 치료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 부모 가정의 경우에도 취업 촉진 과정을 거쳐 대출 제도의 정비와 자격 취득 지원 등을 충실히 함으로써 육아의 어려움이 없도록 제도를 정비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저출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 원인인 비혼(非婚)·만혼(晩婚)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일·가정의 양립을 통한 출산율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3) 3번 화살 :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보장' (돌봄 서비스로 이직·실업 '0'화)
이미 고령화 사회가 되어버린 일본은 노인 돌봄으로 인한 이직과 퇴직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 위해 노인 돌봄 자체를 사회화하기 위해 2000년에 제도가 창설되었지만, 여전히 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돌봄을 위해 이직과 퇴직을 결심하고 있다. 또한 특별 요양시설 입소를 희망하고 있지만 자택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2013년 현재 52만 명을 넘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① 돌봄 서비스 제공자의 확대, ② 돌봄 가족 지원, ③ 고령자의 사회 참여 확대 등이 제안된다.
첫째, 현재 돌봄 서비스 제공자를 50만 명 이상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돌봄 시설과 케어 하우스와 같은 치매 노인들을 위한 시설에 2020년까지 38만 명분,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응급 지원 서비스 확충을 위해 10만 명분의 돌봄 서비스 제공을 확대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전문요양시설의 공급을 2만 명분 확대한다.
둘째, 돌봄 가족 지원에 있어서는 돌봄 휴가를 장려하고 실질 사용률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합계 93일간 사용할 수 있는 돌봄 휴가를 상한은 그대로 두더라도 기존 1회만 사용 가능했던 것을 3회에 걸쳐 나누어 사용할 수 있게 제도를 정비한다. 돌봄 휴가 소득 보장률도 기존의 40%에서 육아 휴가와 같은 67% 보장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셋째, 고령자의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해 다양한 취업 기회를 확보하고, 예방에 중점을 두도록 의료 제도를 개편하고, 연금을 포함한 노년 세대 소득의 전체적인 인상 등을 통해 생애주기에서 사회의 현역으로 있는 기간을 늘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1억 총 활약 사회' : 종합적인 해결책
1억 총 활약 사회는 저출산 문제에 대한 결혼이나 출산 같은 단편적인 접근이 아니다. 노동과 육아 그리고 노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걸친 종합적 해결책이다. 2009년 이전까지 자민당의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증대되고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아베노믹스이다. 그리고 진화한 아베노믹스(1억 총 활약 사회)는 기득권에 치중되던 이익을 국민 전체에 배분하는 형태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1억 총 활약 사회는 단순히 복지 정책 한두 가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정체는 전체 세대에 걸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복지 정책 꾸러미이다. 일본 국민은 2009년 선거에서 다른 무엇보다 삶의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정계에 분명하게 알렸다. 일부에서는 보수당인 자민당이 장기 집권을 위해 '복지 쇼'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강력한 복지 정책을 추진해야만 앞으로 계속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 자민당의 결심이다.
문재인의 'J'노믹스 : 목표는 '1억 총 활약 사회'와 같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사회 전반에 걸쳐 복지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노동 분야에서는 일자리의 공급,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으로 소득 수준의 향상,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이 있다. 청년 대책으로는 공공 임대주택의 보급 확대, 청년 구직 촉진 수당의 도입, 국가 장학금 확대와 대학 입학금 폐지를 통한 반값 등록금 실현 등이 있다. 저출산 대책으로는 아동 수당 도입, 국공립 보육시설 이용율 40% 확대,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보장률 향상 등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정책들을 살펴보면 일본의 '1억 총 활약 사회'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전체'이다. 각 부분의 비교는 비슷할지 모르나 그 전체가 만들어내는 국가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경우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이 전체를 위해 장관급 기구를 신설하고 총리 주도 하에 실행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위원회를 10여 년 전부터 만들어 활동해 왔지만,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결에 얼마만큼 공헌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약 10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1.17명(지난 해 합계출산율)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의 성적표뿐이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유럽 복지국가들을 봐도 그렇고 일본을 봐도 그렇다. 사회 전반적인 복지 수준의 향상을 이루어야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존의 저출산·고령화위원회는 단지 각 부처에서 올라온 대책을 종합하는 역할 이상을 수행하지 못한다. 각 부처에서 자신들 입장의 정책들을 제안하다 보니, 총체적인 접근보다는 단기·미시적인 정책 접근만이 이뤄지고 있다. 국회의 입법조사처 역시 상설 전담 기구의 부재가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꼽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강력한 전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저출산 문제 전담기구의 설치를 공약한 바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결은 비단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립 자체가 걸린 막중한 문제이다. 이번 정부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全)사회적인 접근과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생 이모작 전략)
[복지국가SOCIETY] 일본의 '1억 총 활약 사회'가 주는 시사점
2017.06.06 12:11:27
일본의 자민당은 전후 선거를 실시한 이래 단 한 번을 제외하고 패배한 적이 없는 정당이다. 자민당은 유일하게 2009년 선거에서 패배했다. 2009년 선거에서 자민당의 패배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복지국가 탄생을 강력히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었다.
정권 교체의 계기 : 복지 확대를 원하는 국민의 열망
일본은 이미 1991년의 버블 붕괴로 장기간 경제 불황에 처했고, 점차 심해지는 양극화로 많은 국민이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기보다는 건설 경기를 붙잡기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확대와 건축업에 집중했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계속된 불황으로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급기야 청년들은 사회에 실망하고 좌절감에 빠져 사토리(달관) 세대(높은 청년 실업률로 좌절해서 희망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해진 청년들), 패러사이트(기생충) 세대(부모의 연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며 경제 사회 생활을 포기한 세대)와 같은 사회 현상이 만연했다.
일본 민주당은 이런 국민의 좌절감이 양극화와 망가진 분배 정의에 있다고 판단해서 복지 제도의 확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자민당 역시 복지 정책의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현상 유지에 가까운 형태였고, 기존의 노선과 큰 차이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집권 경험의 부재, 하토야마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의 무능, 이듬해 치러진 참의원 선거의 패배, 그리고 2011년 벌어진 동북대지진에 대한 미흡한 대처 등 총체적인 문제점을 보여주며 2012년 선거에서 다시 자민당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2009년의 패배를 경험한 자민당에는 이후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아베 총리는 강력한 정부 재정의 투입을 전제로 경제 활성화 정책, '아베노믹스'를 실천했다. 제2기 아베 정부는 '세 개의 화살', 즉 금융 완화 정책, 재정 정책, 성장 전략을 정책 슬로건으로 삼아 막대한 정부 재정을 투입하며 일본의 경제를 견인했다. 그 결과, 각종 경제지표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며(2015년 4분의 2분기 기준 19.2조 엔, 임금 인상률 2.2%, 유효구인배율 1.24배) 아베 총리는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2014년 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제1기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베노믹스로 '1억 총 활약 사회'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1억 총 활약 사회'의 밑그림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데,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1억 총 활약 사회' : 개요와 중요성
'1억 총 활약 사회'의 의미는 50년 뒤에도 인구 1억 명을 유지한다는 것을 골자로 젊은이도 고령자도, 여성도 남성도, 장애가 있는 이도 난치병을 가진 이도, 한 번 실패를 경험한 이도 모두 포용하여 활약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가리킨다. 진화한 아베노믹스라고 부를 수 있는 '1억 총 활약 사회'는 각각 경제, 저출산, 노령화 문제를 겨냥한 새로운 세 개의 화살을 준비하고 있다. 그 세 개 화살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1번 화살 : 희망을 이루는 '강한 경제' (GDP 600조 엔)
첫 번째 화살은 강력한 노동 정책이다. 이를 위해서 지난 3년간 아베노믹스의 성과와 연계된 경제 정책을 펼쳐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소득 확보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비의 개선 등을 이루고자 한다.
우선 청년의 고용 안정을 위해 비정규직 비율을 감소시킬 계획이다. 2015년 기준 27.7%로 증가한 비정규직의 비율을 낮추고, 2012년 기준으로 68.3%로 증가한 연봉 300만 엔 미만의 일자리를 훨씬 좋은 일자리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경력 향상 지원금의 활용을 촉진하고 기업에 정규직 전환 요청을 하고 있다.
또한 청년들이 취업에 유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업의 정보 공개를 강화하고, 능력 개발과 경력 형성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동일 노동·동일 임금의 실현을 위해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서 격차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법 개정안도 제출되었는데, 주된 내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에 관한 사용주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 법안이다. 최종적으로는 최저임금을 1000엔까지 인상하고,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70~80%까지 인상시킬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여성과 장애인 등 기존의 노동시장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를 위해 노동 구조 전체를 개편한다. 여성이 임신·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직할 수 있도록 돕고, 각종 프로그램과 교육 기회를 확대한다. 또한 일본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인 직장 내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해 법을 정비하고 노동국(우리나라의 노동청)의 기능을 강화한다. 마지막으로 근무 시간 조정을 통해 일·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기업을 독려하고 지원할 예정이다.
정권 교체의 계기 : 복지 확대를 원하는 국민의 열망
일본은 이미 1991년의 버블 붕괴로 장기간 경제 불황에 처했고, 점차 심해지는 양극화로 많은 국민이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기보다는 건설 경기를 붙잡기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확대와 건축업에 집중했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계속된 불황으로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급기야 청년들은 사회에 실망하고 좌절감에 빠져 사토리(달관) 세대(높은 청년 실업률로 좌절해서 희망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해진 청년들), 패러사이트(기생충) 세대(부모의 연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며 경제 사회 생활을 포기한 세대)와 같은 사회 현상이 만연했다.
일본 민주당은 이런 국민의 좌절감이 양극화와 망가진 분배 정의에 있다고 판단해서 복지 제도의 확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자민당 역시 복지 정책의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현상 유지에 가까운 형태였고, 기존의 노선과 큰 차이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집권 경험의 부재, 하토야마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의 무능, 이듬해 치러진 참의원 선거의 패배, 그리고 2011년 벌어진 동북대지진에 대한 미흡한 대처 등 총체적인 문제점을 보여주며 2012년 선거에서 다시 자민당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2009년의 패배를 경험한 자민당에는 이후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아베 총리는 강력한 정부 재정의 투입을 전제로 경제 활성화 정책, '아베노믹스'를 실천했다. 제2기 아베 정부는 '세 개의 화살', 즉 금융 완화 정책, 재정 정책, 성장 전략을 정책 슬로건으로 삼아 막대한 정부 재정을 투입하며 일본의 경제를 견인했다. 그 결과, 각종 경제지표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며(2015년 4분의 2분기 기준 19.2조 엔, 임금 인상률 2.2%, 유효구인배율 1.24배) 아베 총리는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2014년 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제1기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베노믹스로 '1억 총 활약 사회'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1억 총 활약 사회'의 밑그림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데,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1억 총 활약 사회' : 개요와 중요성
'1억 총 활약 사회'의 의미는 50년 뒤에도 인구 1억 명을 유지한다는 것을 골자로 젊은이도 고령자도, 여성도 남성도, 장애가 있는 이도 난치병을 가진 이도, 한 번 실패를 경험한 이도 모두 포용하여 활약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가리킨다. 진화한 아베노믹스라고 부를 수 있는 '1억 총 활약 사회'는 각각 경제, 저출산, 노령화 문제를 겨냥한 새로운 세 개의 화살을 준비하고 있다. 그 세 개 화살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1번 화살 : 희망을 이루는 '강한 경제' (GDP 600조 엔)
첫 번째 화살은 강력한 노동 정책이다. 이를 위해서 지난 3년간 아베노믹스의 성과와 연계된 경제 정책을 펼쳐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소득 확보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비의 개선 등을 이루고자 한다.
우선 청년의 고용 안정을 위해 비정규직 비율을 감소시킬 계획이다. 2015년 기준 27.7%로 증가한 비정규직의 비율을 낮추고, 2012년 기준으로 68.3%로 증가한 연봉 300만 엔 미만의 일자리를 훨씬 좋은 일자리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경력 향상 지원금의 활용을 촉진하고 기업에 정규직 전환 요청을 하고 있다.
또한 청년들이 취업에 유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업의 정보 공개를 강화하고, 능력 개발과 경력 형성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동일 노동·동일 임금의 실현을 위해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서 격차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법 개정안도 제출되었는데, 주된 내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에 관한 사용주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 법안이다. 최종적으로는 최저임금을 1000엔까지 인상하고,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70~80%까지 인상시킬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여성과 장애인 등 기존의 노동시장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를 위해 노동 구조 전체를 개편한다. 여성이 임신·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직할 수 있도록 돕고, 각종 프로그램과 교육 기회를 확대한다. 또한 일본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인 직장 내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해 법을 정비하고 노동국(우리나라의 노동청)의 기능을 강화한다. 마지막으로 근무 시간 조정을 통해 일·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기업을 독려하고 지원할 예정이다.

▲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2) 2번 화살 : 꿈을 이뤄주는 '육아 지원'(목표 출생률 1.8)
이 부분은 '1억 총 활약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육아 지원을 통해 현재 1.42에 머물고 있는 일본의 합계 출산율을 1.8까지 증가시켜 지속적으로 1억 인구를 유지하겠다는 내용이다. 저출산의 가장 큰 요인을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 자체를 계획하기 힘들다는 데서 문제 인식을 했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통한 사회적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결혼-임신-출산-육아에 이르는 각 단계의 대책을 준비했다.
먼저,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성이 결혼을 주저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베 정부는 취업 촉진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며, 노동 환경에 대한 처우의 개선과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공 임대주택을 추가로 더 건설하는 등의 노력으로 결혼에 대한 불안을 감소시키기로 했다.
다음으로, 임신·출산과 육아의 해결책이다. ① 다양한 보육 서비스를 충실하게 하고, ② 교육비 부담을 줄이며, ③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정책을 꾸리고 있다.
첫째, '대기 아동 해소 가속화 플랜'을 통해 2017년 말까지 보육원의 규모를 2013년 대비 50만 명분 확대하기로 했다. 동시에 소규모 보육시설의 지원을 강화하고, 기업 내부의 자체 보육시설의 확대와 건설을 촉진하여 장래에 발생할 수요를 완전 수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둘째, 교육비 부담에 있어서는 아동 교육을 단계적으로 무상화하고, 고등 교육에 있어서 장학금의 확충과 '소득 연동 반환 장학금 제도'를 도입해서 대출을 받더라도 학자금 상환에서 융통성을 줄 예정이다.
셋째, 임신·출산·육아에 있어서 받는 각종 불평등과 불이익 방지를 위한 법·제도의 개선과 함께 상담 체제를 전국적으로 확대한다. 특히 난임 부부에 대한 치료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 부모 가정의 경우에도 취업 촉진 과정을 거쳐 대출 제도의 정비와 자격 취득 지원 등을 충실히 함으로써 육아의 어려움이 없도록 제도를 정비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저출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 원인인 비혼(非婚)·만혼(晩婚)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일·가정의 양립을 통한 출산율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3) 3번 화살 :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보장' (돌봄 서비스로 이직·실업 '0'화)
이미 고령화 사회가 되어버린 일본은 노인 돌봄으로 인한 이직과 퇴직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 위해 노인 돌봄 자체를 사회화하기 위해 2000년에 제도가 창설되었지만, 여전히 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돌봄을 위해 이직과 퇴직을 결심하고 있다. 또한 특별 요양시설 입소를 희망하고 있지만 자택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2013년 현재 52만 명을 넘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① 돌봄 서비스 제공자의 확대, ② 돌봄 가족 지원, ③ 고령자의 사회 참여 확대 등이 제안된다.
첫째, 현재 돌봄 서비스 제공자를 50만 명 이상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돌봄 시설과 케어 하우스와 같은 치매 노인들을 위한 시설에 2020년까지 38만 명분,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응급 지원 서비스 확충을 위해 10만 명분의 돌봄 서비스 제공을 확대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전문요양시설의 공급을 2만 명분 확대한다.
둘째, 돌봄 가족 지원에 있어서는 돌봄 휴가를 장려하고 실질 사용률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합계 93일간 사용할 수 있는 돌봄 휴가를 상한은 그대로 두더라도 기존 1회만 사용 가능했던 것을 3회에 걸쳐 나누어 사용할 수 있게 제도를 정비한다. 돌봄 휴가 소득 보장률도 기존의 40%에서 육아 휴가와 같은 67% 보장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셋째, 고령자의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해 다양한 취업 기회를 확보하고, 예방에 중점을 두도록 의료 제도를 개편하고, 연금을 포함한 노년 세대 소득의 전체적인 인상 등을 통해 생애주기에서 사회의 현역으로 있는 기간을 늘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1억 총 활약 사회' : 종합적인 해결책
1억 총 활약 사회는 저출산 문제에 대한 결혼이나 출산 같은 단편적인 접근이 아니다. 노동과 육아 그리고 노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걸친 종합적 해결책이다. 2009년 이전까지 자민당의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증대되고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아베노믹스이다. 그리고 진화한 아베노믹스(1억 총 활약 사회)는 기득권에 치중되던 이익을 국민 전체에 배분하는 형태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1억 총 활약 사회는 단순히 복지 정책 한두 가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정체는 전체 세대에 걸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복지 정책 꾸러미이다. 일본 국민은 2009년 선거에서 다른 무엇보다 삶의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정계에 분명하게 알렸다. 일부에서는 보수당인 자민당이 장기 집권을 위해 '복지 쇼'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강력한 복지 정책을 추진해야만 앞으로 계속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 자민당의 결심이다.
문재인의 'J'노믹스 : 목표는 '1억 총 활약 사회'와 같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사회 전반에 걸쳐 복지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노동 분야에서는 일자리의 공급,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으로 소득 수준의 향상,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이 있다. 청년 대책으로는 공공 임대주택의 보급 확대, 청년 구직 촉진 수당의 도입, 국가 장학금 확대와 대학 입학금 폐지를 통한 반값 등록금 실현 등이 있다. 저출산 대책으로는 아동 수당 도입, 국공립 보육시설 이용율 40% 확대,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보장률 향상 등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정책들을 살펴보면 일본의 '1억 총 활약 사회'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전체'이다. 각 부분의 비교는 비슷할지 모르나 그 전체가 만들어내는 국가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경우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이 전체를 위해 장관급 기구를 신설하고 총리 주도 하에 실행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위원회를 10여 년 전부터 만들어 활동해 왔지만,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결에 얼마만큼 공헌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약 10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1.17명(지난 해 합계출산율)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의 성적표뿐이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유럽 복지국가들을 봐도 그렇고 일본을 봐도 그렇다. 사회 전반적인 복지 수준의 향상을 이루어야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존의 저출산·고령화위원회는 단지 각 부처에서 올라온 대책을 종합하는 역할 이상을 수행하지 못한다. 각 부처에서 자신들 입장의 정책들을 제안하다 보니, 총체적인 접근보다는 단기·미시적인 정책 접근만이 이뤄지고 있다. 국회의 입법조사처 역시 상설 전담 기구의 부재가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꼽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강력한 전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저출산 문제 전담기구의 설치를 공약한 바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결은 비단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립 자체가 걸린 막중한 문제이다. 이번 정부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全)사회적인 접근과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생 이모작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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