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하필 ‘쁘아송’이었을까?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계기로 동성애자의 존재가 가시화되기 시작했지만,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의 커밍아웃을 그러려니 하고 넘긴 것은 아니었다. 배역이 남긴 잔상은 ‘게이라서 쁘아송 배역을 그렇게 잘 소화한 거였구나. 게이는 진짜 저렇구나’라는 식의 낙인효과로 이어졌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쁘아송’을 연기한 홍석천이 커밍아웃 1호 연예인이 되어 고정관념을 강화할 것은 또 뭐냐”라는 불만도 있었다. 불만을 말하는 이들도 알았을 것이다. 선택을 기다리는 무명 배우에게 배역을 가려서 받을 수 있는 호사가 허락되었을 리 없고, 우연히 그 배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가 홍석천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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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홍석천은 2000년 커밍아웃한 이후 3년가량 방송계를 떠나 있어야 했다. |
그 결과는 참담했다. 홍석천은 KBS 토크쇼 <야! 한밤에>의 방송 녹화 3시간 전에 섭외를 취소당했다. 동성애자가 아동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아이들 교육에 안 좋다는 근거 없는 이유로 MBC <뽀뽀뽀>에서 퇴출당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위해 태어난 연기자 같다”는 극찬을 받았던 홍석천이었다.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로 찍은 커밍아웃 영상은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만 편집되어 사용되었으며, 홍석천과 친했던 남성 연예인들 중 상당수는 자신도 마녀사냥에 휘말릴까 두려운 마음에 손을 내밀어주지 못했다. 새 천년이 오면 자신도 당당히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마음에 자기 정체성을 세상에 밝힌 대가로 그는 3년가량 방송계를 떠나 있어야 했다. 2003년 홍석천은 김수현 작가의 SBS <완전한 사랑>에서 커밍아웃한 게이 승조 역으로 컴백했다. 그 이후에도 온전히 방송계에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2013년 JTBC <마녀사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커밍아웃 이전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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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MBC에서 방영된 청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홍석천(오른쪽)은 섬세하고 호들갑스러운 패션 디자이너 배역을 맡았다. |
하지만 아마 결정적인 이유는 성 소수자를 ‘외국 문화의 유입과 함께 휩쓸려 들어온 좋지 못한 풍조’ 정도로 여기던 한국 사회의 편견이었을 것이다. 동성애가 특정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1960년대 도시화 이후 씨족 부락을 벗어나 익명성을 쟁취하게 된 한국의 성 소수자들이 자생적인 커뮤니티를 이뤄왔다는 사실을 ‘모르쇠’했던 이들에게, 동성애는 ‘쾌락 중심 서구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동성애는 ‘쾌락 중심 서구 문화의 유입’ 결과?
씁쓸하게도 이와 같은 편견은 일부 종교단체만의 주장은 아니었다. 2007년 3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이하 범민련)에서 발행한 기관지 <민족의 진로> 3월호에 실린 ‘실용주의의 해악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사회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남 사회가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민족문화 전통을 홀대하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외래적으로 침습”해온 문제들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같은 글에서 “19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개방화, 세계의 일체화와 구호가 밀고 들어오던 시점부터” “외국인 노동자 문제, 국제결혼, 영어 만능적 사고의 팽배,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유학과 이민자의 급증, 극단적 이기주의의 만연, 종교의 포화상태, 외래 자본의 예속성 심화, 서구 문화의 침투 등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1987년이나 1997년이 아니라 2007년에 나온 주장이었다.
그러니 패션 디자이너야말로 당대의 한국 미디어가 남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지닌 남성을 묘사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직업군이었던 것이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만드는, 결정적으로 외국의 영향을 받은 직종.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집약한 직업군이 바로 패션 디자이너였다. 홍석천은 하필이면 게이와 패션 디자이너라는 이중의 편견이 모두 집약된 ‘쁘아송’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불행히도 자연인으로서 했던 홍석천의 커밍아웃이 ‘쁘아송’ 이미지에 덮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편견과 고정된 이미지를 반복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한국의 미디어는 오랫동안 게이와 트랜스젠더, 드래그 퀸 등의 개념을 섞어 묘사하기 시작했다. 홍석천을 계기로 동성애자의 존재가 가시화되기 시작했지만,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포르노에도 격이 있다
‘야한 영화’의 부활, 일본 닛카쓰의 ‘로망 포르노 리부트’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7(토) 17:00:00 | 1440호
1912년 문을 연 일본활동사진주식회사, 약칭 닛카쓰(日活)는 굴지의 제작사다. 닛카쓰는 ‘태양족 영화’로 불리던 청춘 영화, 리얼리즘 영화와 문학성이 두드러지는 현대극, 전후 액션 영화에 이르기까지 당대 일본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다양한 장르 영화를 만들어냈다. 유명 감독인 스즈키 세이준, 미조구치 겐지, 이마무라 쇼헤이 등이 닛카쓰에서 활동하며 일본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이들이다.
닛카쓰가 생산한 영화들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로망 포르노’ 시리즈다. 1970년대 초기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저예산 고효율’을 목표로 제작된 이 프로젝트는 경영난을 벗어나기 위한 회사의 궁여지책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효자상품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야기가 있는 포르노를 뜻하는 프랑스어 ‘로망 포르노그라피크(Roman Pornographique)’에서 따온 이름에서도 연상할 수 있듯, 일반적인 포르노와는 그 결이 다르다. 뛰어난 미장센과 실험적 연출로 무장한 색다른 영화들이 로망 포르노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수십 년 만에 이 프로젝트는 ‘로망 포르노 리부트’라는 이름으로 부활을 선언한 참이다.

영화 《바람에 젖은 여자》와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왼쪽부터) © 홀리가든
로망 포르노,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 되다
1970년대 TV의 등장은 일본 영화 산업의 판도를 뒤바꿔 놓았다. 제작사들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에로티시즘 영화로 눈을 돌렸고, 로망 포르노로 대변되는 일본의 하위 장르 영화들은 이때 탄생한 결과물이다. 1960년대에만 50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며 승승장구하던 닛카쓰는 1970년대 재정 위기가 찾아오자, 당시 소규모 스튜디오들이 제작하던 에로티시즘 영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닛카쓰의 경쟁사였던 도호·다이에이 등 영화사들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각 회사만의 저예산 에로티시즘 영화 레이블을 만들었다. 이 중 관객과 평단의 반응, 그리고 완성도에서 월등히 앞서는 것이 닛카쓰의 로망 포르노다.
닛카쓰의 로망 포르노 제작방식은 무명 배우들을 섭외해 별도의 세트 제작 없이 2~3일 만에 촬영하던 핑크 무비와는 달랐다. 충분한 제작비를 들였고, 스태프 역시 자사 스튜디오의 숙련된 인재들로 꾸렸다. 10분에 한 번꼴로 정사신이 등장할 것, 촬영 기간은 10일 이내, 전체 상영 시간은 60분 남짓이라는 기본 규칙만 지키면 감독이 어떠한 연출적 비전과 스토리를 선보이더라도 무방했다. 바꿔 말하면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셈이었다.

영화 《암고양이들》 © 홀리가든
이는 불황 속에서도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이들에게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 결과 탐미적이고 혁신적인 연출을 선보이는 작품도 여럿 등장했다. 특히 신인 감독들이 경력을 쌓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실락원》(1997)을 만든 모리타 요시미쓰, 《도쿄 소나타》(2008) 등으로 유명한 구로사와 기요시 등도 로망 포르노를 통해 데뷔했다. 1971년 《단지처, 오후의 정사》를 시작으로 닛카쓰가 1988년까지 제작한 로망 포르노는 총 1000편이 넘는다. 《감각의 제국》의 소재인 아베 사다의 실화를 그린 《실록 아베 사다》(1975), 마약상 주인공과 상류층 여성들의 이야기인 《롯폰기 스캔들》(1979), 노인과 트랜스젠더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처한 여성들이 모인 산부인과가 배경인 《수상한 여의사》(1983) 등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영화들이 많다. 무려 9개의 속편을 낳은 《천사의 창자》와 같은 인기 시리즈도 탄생했다. 도덕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표현, 여성의 욕망 탐구라는 장점은 로망 포르노의 인기 요인이었다. 이후 이 시장이 사장(死藏)된 것은 1980년대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 AV 시장이 확산되면서다.
닛카쓰 스튜디오가 로망 포르노 탄생 45주년을 기념해 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 일명 ‘로포리 프로젝트’를 발표한 건 지난해 봄이다. 지난해 8월에는 도쿄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소노 시온, 나카타 히데오, 시라이시 가즈야, 유키사다 이사오, 시오타 아키히코 등 일본에서 활약하는 유명 감독 5명과 함께 로망 포르노를 제작하겠다는 소식이었다. 닛카쓰가 로망 포르노 부활의 성공적 가능성을 점친 무대는 2012년 닛카쓰 100주년 기념 상영회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 열린 상영회는 성공리에 마무리됐고, 로망 포르노에 대한 관객의 뜨거운 반응 역시 감지됐다. 젊은 여성 관객층이 많았다는 점을 주목한 닛카쓰는 로망 포르노가 여전히 시장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라고 판단했다.

영화 《화이트 릴리》와 《안티 포르노》(왼쪽부터) © 홀리가든
여성의 욕망을 더욱 적나라하게 주목하는 새 프로젝트
다섯 감독은 이전에 닛카쓰 로망 포르노 연출에 참여한 적이 없다. 이 섭외 조건은 이번 로포리 프로젝트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였다. 이들에게는 과거 로망 포르노의 규칙이 동일하게 주어졌다. 다섯 감독은 작품마다 하나의 키워드를 소재 삼아 일주일간 영화를 만들었다. 소노 시온은 예술을 소재로 《안티 포르노》를, 나카다 히데오는 레즈비언을 소재로 《화이트 릴리》를, 시라이시 가즈야는 사회를 소재로 《암고양이들》을 연출했다.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를 연출한 유키사다 이사오와 《바람에 젖은 여자》를 만든 시오타 아키히코는 각각 사회와 싸움이라는 소재를 택했다.
이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일본 영화 시장에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대형 스튜디오가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각 작가가 고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명 남성 감독들이 여성 관객을 위한 에로티시즘 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흔쾌히 참여한 것 역시 고무적이다. 특히 소노 시온의 《안티 포르노》는 주인공 쿄코(도미테 아미)를 통해 일본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로포리 프로젝트 다섯 편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얼마 전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국내 관객들에게 선을 보인 뒤 오는 25일 《바람에 젖은 여자》를 시작으로 순차 개봉한다. 이 영화는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전직 극작가 고스케(나가오카 다스쿠)가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자신에게 돌진한 여성 시오리(마미야 유키)와 부딪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중년 남성의 쓸쓸한 자화상을 그린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세 여성의 유대와 그들이 살아가는 풍경을 담은 《암고양이들》, 도예가 도키코(야마구치 가오리)와 제자 하루카(아스카 린)의 위험한 관계를 주목한 《화이트 릴리》도 저마다의 개성이 또렷하다. 닛카쓰가 쏘아 올린 신호탄이 에로티시즘 영화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뒤흔들어 놓을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부활한 이 프로젝트가 요즘 관객들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 기대가 모이는 시점이다.
‘살아남은’ 게이의 연예계 생존법
홍석천은 여전히 이성애자 남성 위주의 연예계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별종이다. 대중이 ‘허락한’ 성 소수자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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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05년 6월1일 중앙대에서 트랜스젠더 그룹 레이디와 홍석천씨(왼쪽 두 번째)가 ‘성 소수자, 편견’이라는 주제로 열린 특강에 참여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하리수의 연예계 데뷔 이후 16년이 지났다. 그가 한국 사회에 수용되는 과정을 지켜본 수많은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들은 용기를 얻었다.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 자체가 화제가 될 것이라 판단한 기획사들 또한 ‘제2의 하리수’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을 만한 이들을 찾았다. 2005년 4인조 트랜스젠더 그룹 ‘레이디’가 데뷔했고, 2007년에는 배우 이대학이 성 확정 수술을 받고 이시연이라는 예명으로 연예계 활동을 이어갔다. SBS <진실게임>에서 ‘진짜 여자를 찾아라’ 유의 특집에 출연한 바 있던 최한빛은 2009년 성 확정 수술 이후 다시 텔레비전에 모습을 보였다.
물론 모두가 한국 사회의 따뜻한 환대와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레이디는 결성 2년 만에 해체 절차를 밟았고, 이시연은 방송이나 영화 활동이 뜸해진 자리를 트랜스젠더 클럽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하리수 이후 연예인으로서 유의미하게 성공을 거둔 MTF 트랜스젠더는 최한빛 한 명 정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앞서 언급한 트랜스젠더 연예인들 중 하리수와 최한빛이 가장 ‘겉보기에 지정 성별 여성의 외모’와 유사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 사회가 MTF 트랜스젠더를 용인하는 기준 또한 얼마나 편협하고 폭력적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여자보다 더 여자 같아서’ 겉보기에 이성애 규범성을 해치지 않을 만한 선까지만 용인하는 것이다.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17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한 유일한 동성애자 연예인으로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홍석천 이후에도 방송을 통해 커밍아웃한 연예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델 출신 연기자로 막 커리어를 시작하던 배우 김지후는 2008년 4월 tvN <커밍아웃>에 출연해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방송 직후 쏟아지는 조롱과 모욕의 악플은 그를 힘들게 했다. 그와 전속 계약을 맺으려던 기획사들은 커밍아웃 이후 모든 논의를 중단했다. 같은 해 10월6일, 김지후는 스물세 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커밍아웃>의 MC 홍석천은 다음 날 자신의 SNS 계정에 일기를 올렸다. 그는 악플러들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일기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살아남은 자의 숙제가 뭔지, 꼭 해결해야 한다. (중략) 살아남아야 한다.” 그는 좋으나 싫으나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이고, 연예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게이이다. 그렇기에 그는 게이로서 자신이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을 숙제로 받아들였다.
유머의 탈을 쓰고 유통되는 호모포비아
2007년 홍석천은 국회에서 열린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관련 정책토론회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도 같은 논의가 또다시 계속되는 통에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라며 시니컬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 이후 홍석천은 점차 자신이 ‘무해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오빠”라는 농담은 어느 순간 그의 캐치프레이즈처럼 굳어졌다. 우리 사회는 이태원에서 식당 여러 개를 운영하고 있는 그를 ‘역경을 딛고 일어난 성공 미담’의 사례로 소비했다. 보편 인권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성소수자위원회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던 2000년대 초반 홍석천은 주류 사회를 향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청구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홍석천은 “기존 한국 사회 안에서도 해될 것 없이 성실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홍석천은 자신의 농담에 괜히 움찔하는 시늉을 하는 남자 연예인들을 향해 “우리도 보는 눈이 있어서 너희는 성에 안 찬다”라고 외쳤다. “내게 고백하지만 않는다면”이란 떨떠름한 전제하에 동성애자들을 용인하겠다고 말하는 이성애자들을 공략하는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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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하리수 이후 연예인으로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트랜스젠더는 최한빛(사진) 정도라 봐도 무방하다. |
그런 그가 악플러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않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다수의 대중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는 것이었으리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홍석천은 성 소수자를 희화화하는 세간의 시선과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성 소수자들 사이의 관계 설정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저는 거꾸로 얘기를 해요. 아직 다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계속 진지하게 ‘받아달라’ ‘받아달라’ 그러면 그것도 우습다고. 그냥 제가 좀 바보스럽고 제가 모자란 부분을 그냥 편하게 웃기고 재미있게 해서 거부감을 먼저 없애야지.”
문제는 홍석천의 이 같은 전략을 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소비했느냐이다. 홍석천은 잘생긴 남자 연예인에게 추파를 던지는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까지는 허락받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농담은 보통 상대가 질색하며 겁에 질리거나 몸서리를 치는 리액션으로 완성된다. 호모포비아가 여전히 유머의 탈을 쓰고 유통되는 것이다. 여전히 홍석천은 이성애자 남성 위주의 연예계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별종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고, 연예계 표준 남성인 ‘이성애자 남성’이 취할 수 있는 리액션은 질겁뿐인 셈이다. 마치 한국 사회가 하리수와 최한빛의 외양에 방점을 찍어 트랜스젠더를 제한적으로 용인해주었던 것처럼 홍석천이라는 유별난 개인이 자신의 무해함을 적극 증명하며 농담을 던지는 것까지는 용인한다. 그 이면의 호모포비아와 이성애 규범성을 극복하는 지점까지는 허락하지 않는다. 홍석천과 하리수 이후 강산이 한 번 반은 족히 변했을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한국의 LGBT+(성 소수자들)에게 굳게 닫힌 미디어의 빗장은 여전히 공고하다.
이란은 동성애자들을 사형에 처면서도 국가 예산으로 연간 수십명에게 성 확정 수술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트랜스젠더는 훨씬 더 쉽게 용인된다.
“그거는 거, 안 그러게 해야지.” 자신의 아들이나 조카가 성 소수자라고 커밍아웃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YTN <안드로메다> 대선 주자 인터뷰 팀의 질문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마치 자신의 혈육이라면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조차 자기 마음대로 참견할 수 있다는 식의 답변에 이어, 홍 후보는 하늘의 섭리를 들어 소수자 인권을 부정했다. “나는 그게, 거 생각이 좀 달라요. 그거를 소수자 인권 측면에서 보시는 분도 있지만, 그게 하늘이 정해준 것을….” 그런데 이 완고한 편견에 한 가지 조건이 달린다. “성전환 수술(성 확정 수술)을 하고 이러면 별개예요. 그렇게 하지 않고, 동성애자는, 나는 그거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동성을 사랑하고 싶거든,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을 바꿔서 ‘이성’이 된 다음 이성애의 형태를 취하라는 이야기였다. 아마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개념을 잘 모르고 한 소리일 테다. 성 정체성은 MTF(Male To Female:남성의 육체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여자라 느끼는 트랜스젠더)이지만 성적 지향은 레즈비언인 MTF 레즈비언이랄지, 반대의 경우인 FTM(Female To Male) 게이도 있다고 이야기해주면 홍준표 후보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아마 이해를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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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자료 홍석천은 2000년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했다. |
홍 후보의 인터뷰를 보며 두 가지 사례를 떠올렸다. 첫 번째는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 지도자 아야툴라 루흘라 호메이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호메이니가 처음 제정한 법 중 하나는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이었다. 혁명 전에는 뉴스에 동성혼이 등장하는가 하면 성 소수자 인권단체 결성 움직임까지 있었던 이란 사회는, 이슬람 혁명 직후 동성애자들을 교수형이나 태형으로 다스리는 극단적인 호모포비아 사회로 후퇴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호메이니는 1987년 성 확정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이들에게는 국가가 비용을 지원해 수술을 시켜주고 주민등록상의 성별 또한 바꿀 수 있게 해준다는 파트와(이슬람 학자가 이슬람법에 대해 내놓는 의견)를 발표했다. 성 확정 수술과 이슬람 율법의 승인을 함께 받고 싶어 했던 트랜스젠더 운동가 마리암 카툰 몰카라가 목숨을 걸고 호메이니에게 달려들어 수술 허락을 받아낸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호메이니가 트랜스젠더들이 느끼는 성 정체성과 육체 사이의 불일치를 ‘과학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오류’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호메이니나 홍준표 후보는 ‘남성 성기를 여성의 성기 안에 삽입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이성애 중심적 삽입성교’라는 형식에서 벗어나는 모든 종류의 성애 활동이 싫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자리를, 내가 이해 못하는 성애 활동은 다 잘못됐다는 인식으로 대체한 사람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형식상 이성애의 모습만 갖춘다면 괜찮다는 듯 “차라리 트랜스젠더가 낫다”라는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란은 동성애자들을 공개적으로 사형시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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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3년 4월10일 뮤지컬 <드랙퀸>에서 연기를 펼치는 하리수. |
서도 국가 예산으로 연간 수십명에게 성 확정 수술을 제공하는 역설적인 국가가 되었고, 그런 탓에 수술할 필요성까진 느끼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과 애초에 수술할 생각이 없는 동성애자마저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원치 않는 성 확정 수술을 선택한다. 자신이 당선된다면 동성애 자체를 처벌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홍준표 후보. 그가 당선되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상상만으로도 진땀이 흐른다.
내가 떠올린 두 번째 사례는 홍석천과 하리수의 이야기다. 2013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홍석천은 이런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느 날 택시를 탔다가 기사한테 “하리수씨처럼 (성 교정) 수술을 하고 예쁘게 나오면 방송도 많이 할 텐데 왜 수술을 안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홍석천은 기사에게 “저는 남자로서 동성인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리수씨는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반대인, 여자로 살고 싶은 여성성을 갖고 있는 트랜스 섹슈얼이다”라고 설명해줘야 했던 상황을 회고했다. 아직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난 기사가 홍석천에게 건넸다는 말 중 ‘예쁘게’라는 말에 시선이 쏠렸다. 한국 사회가 홍석천과 하리수를 대한 두 가지 다른 태도의 기반에는 “얼마나 이성애적 규범 질서 안에 거부감 없이 섞일 수 있는 외양적 조건을 갖췄는가”가 깔려 있었으니 말이다.
‘여성보다 더 여성스럽기에’ 용서받은 하리수
2000년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폭력적으로 퇴출되었던 홍석천과 달리, 한 해 뒤인 2001년 데뷔한 하리수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카피로 유명했던 화장품 CF의 모델이 되어 압도적인 미모를 과시했고, 음반을 발표해 ‘섹시 가수’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같은 해 영화 <노랑머리 2>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자전적
캐릭터인 MTF 트랜스젠더 ‘J’를 연기했다. 하리수를 향한 악플과 조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홍석천을 향한 냉대의 시선에 비하면 놀랄 만한 인기였다. 한국처럼 보수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언론학자 박지훈과 이진은 이 현상을 이렇게 분석했다. “남성성을 버리고 여성성을 선택한 하리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지만 그녀가 보여준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운’ 면모는 전통적인 성역할에 부합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라며, “텔레비전은 그녀의 여성성을 상품화했고 그녀의 전복성을 이성애 규범성 담론 속에 신속히 포섭했다(<미디어, 젠더&문화> 제28호 ‘성 소수자에 대한 미디어의 시선: 텔레비전에 나타난 홍석천과 하리수의 이미지 유형을 중심으로’ 박지훈·이진).”
하리수에 대한 언론의 기사나 방송들은 대체로 그녀의 여성성을 상품화하는 수식어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세상에 나왔다.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 ‘섹시 건강 미인’ 따위 수식어와 함께 심지어 어떤 기사들은 민망할 정도로 하리수의 육체를 묘사하고 탐했다. “가느다란 팔뚝을 타고 미끄러지듯 하얀 속살이 농익은 감빛 피부였다. 볼록한 앞가슴이 반달처럼 패었다(<서울신문> 2004년 10월19일자).” 미디어는 끊임없이 하리수의 외모를 찬양하고 그녀의 여성성을 확인함으로써, 겉으로 보기에는 이성애자와 크게 구분이 안 가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남자와 함께 입을 맞추는 모습이 이성애 중심적 성애관에 거슬리는가 아닌가” 하는 기준이, 홍석천과 하리수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다른 태도를 불러온 셈이다. 이게 비단 홍석천과 하리수가 한국 사회에서 각각 게이와 MTF 트랜스젠더로 가시화된 2000년대 초반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글쎄, 호모포비아들의 심리를 선거전에 적극 활용한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 앞에서 무엇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우린 아직 2000년대에 머물러 있는 건지도 모른다.
군대는 왜 '항문'에 집착하는가
‘위험한 방황’ 거리 떠도는 가출 청소년들
성착취 노리는 사냥꾼들 표적…일부 생계형 범죄에 나서기도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6(금) 11:31:00 | 1440호
청소년 가출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매년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은 2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30%는 청소년 관련 기관의 보호를 받지만 나머지 70%는 거리에 방치돼 있다. 이들은 크게 가출과 귀가를 반복하는 ‘전환형 가출’과 부모의 학대와 가정불화를 피해 집을 나온 ‘탈출형 가출’로 구분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가정 해체와 경제적 어려움, 가정불화 등도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가출은 많은 위험을 동반한다.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가출 전에 ‘동반 가출’을 도모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의지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또 가출에 따른 외로움과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인터넷 가출 카페나 채팅 앱 등을 통해 가출할 친구들을 찾는다. 포털사이트 카페와 SNS에는 각종 가출 관련 커뮤니티가 개설돼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회원이 1만 명이 넘는 가출 팸 그룹이 있다. 공개적으로 가출할 일행을 구하는 그룹도 있다. 이곳에서는 가출 관련 다양한 정보들이 오간다.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등에도 가출 청소년들이 동반 가출할 일행을 찾거나 가출 관련 글이 넘쳐난다.

© 일러스트 오상민
넘쳐나는 가출 커뮤니티
최근 ‘가출했다’는 16살 청소년은 “부모님과 갈등이 너무 심해 가출했다. 혼자 다니면 위험할 것 같고 힘들어서 서로 의지하고 같이 다니실 분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가출을 생각한다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은 “부모님과 너무 안 맞고 아버지가 혼내실 때 때리기도 해서 가출할 계획”이라면서 가출할 때의 준비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17살 여학생은 가출 팸을 소개시켜 달라는 글을 남겼다.
그러나 가출 관련 사이트나 커뮤니티에는 ‘가출사냥꾼’들이 덫을 놓고 있다. 가출 팸의 자유게시판 등에는 ‘재워준다’ ‘용돈도 준다’ ‘숙식제공’ ‘아르바이트로 돈 벌 수 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 중 상당수는 여자 가출 청소년들을 유인해 숙식제공을 명목으로 성(性)착취를 하려는 목적이다. 실제 가출한 청소년을 꾀어 동거한 파렴치한 성인 남성도 있었다.
지난 4월17일 광주에서는 가출 청소년을 꾀어 동거한 혐의(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로 주아무개씨(42)가 경찰에 구속됐다. 주씨는 지인의 물건 구입 부탁을 받고 자신이 운영하는 성인용품점을 찾아온 A양(16)에게 밥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며 호감을 샀다.
주씨는 자신의 나이를 30대 초반으로 속이고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외모를 감추기 위해 가발까지 썼다. A양이 가출 의사를 밝히자 원룸을 얻어주고 6개월간 동거하며 부부처럼 지냈다.
주씨는 또 A양이 임신하자 낙태시술을 받도록 했다. 주씨는 ‘실종아동법’으로 구속됐는데, 전국에서 처음이다. 관련 법률은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가출한 아동, 실종아동 등을 경찰관서의 장에게 신고하지 않고 보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몇 년 전 대전에서는 가출한 초등학생(12)을 꼬드겨 동거를 하며 임신까지 시킨 20대 남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가출한 10대 소녀들을 애인으로 만들어 넉 달간 523차례나 강제로 성매매를 시켜 6800만원을 챙긴 일당도 있었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가출 소녀 2명에게 피임을 시키고 성병에 걸려 치료 중에도 성매매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숙식제공’ ‘동거환영’ 등의 문구 뒤에는 가출사냥꾼들의 음흉한 속내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택배 배달원으로 가장하고 아파트에 침입해 50대 주부를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체포된 최아무개군이 2016년 6월29일 광주 서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위험한 동거 ‘가출 팸’
청소년들이 모여 ‘동반 가출’한 후에는 ‘일행’이 뭉쳐져 함께 다닌다. 마음이 맞는 경우에는 아예 팸(Family)을 이뤄 3~4명이 고시원, 원룸, 모텔 등에서 지내기도 한다. 이른바 ‘가출 팸’이다. 청소년들에게 ‘가출 팸’은 탈출구나 해방구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단 가출 팸이 구성되면 나이 등의 순서에 따라 아빠, 엄마, 오빠, 동생 등을 뽑아 역할을 분담한다.
주택가 반지하나 원룸 등을 얻어 숙식을 해결하는데, 이때 보증금은 각자 가출할 때 집에서 갖고 나온 돈으로 해결한다. 그런 다음 PC방, 당구장, 주유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월세를 내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쓴다. 처음에는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해방감을 맛보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가출 팸은 아주 ‘위험한 동거’다. 이런 생활은 일탈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흡연, 음주, 본드 흡입 등을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만끽할지 몰라도 범죄에 노출되거나 직접 범죄에 나서며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남녀 청소년들이 어울려 동거를 하면서 성폭행, 성추행의 위험도 높다. 팸 안에서 문란한 성관계를 맺거나 조기 임신할 확률도 있다.
한 포털사이트 상담코너에 글을 올린 17세 여자 청소년은 “가출한 후 임신했는데 상대 남자는 피하기만 한다”면서 “부모님에게 연락하지 않고 낙태를 하거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며 전전긍긍했다.
돈벌이가 여의치 않고 생활비가 떨어지면 ‘생계형 범죄’에 빠져든다. 일단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나이가 어려 일을 못하거나 벌이가 마땅하지 않을 때는 결국 범죄에 빠져드는 수순을 밟는다. 기자가 만난 가출 청소년들 상당수는 뻑치기, 삥뜯기, 아리랑치기, 소매치기, 절도, 차량털이 등 범죄 경험이 있었다.
지난 1월5일 전남 여수에서는 전남과 전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차량을 털어온 정아무개군(17)과 김아무개양(16)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여수 지역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한 청소년들이었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차량털이에 나섰다. 그런데 이들의 수법이 전문 털이범을 뺨칠 정도였다. 차 안에 열쇠가 있던 8대의 차량을 훔쳤고, 문이 잠기지 않은 차량은 금품을 절취하는 등의 수법으로 40여 차례에 걸쳐 3억여원을 털었다.
광주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6월 최아무개군(17)은 가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택배기사로 위장해 광주시 서구 화정동의 한 아파트에 침입했고, 50대 주부를 흉기로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이후 최군은 부산으로 이동해 밀항 비용을 마련하고자 추가 범행을 준비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최군은 경찰에서 “가출해 생활비가 없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여자 가출 청소년들은 조건만남 등을 통한 성매매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청소년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 절반가량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건만남 등 성매매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3월31일 서울 은평구 물빛공원에서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찾아가는 거리상담’이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턱없이 부족한 청소년 쉼터
이렇게 가출 청소년들이 범죄에 빠져들고 있지만, 이들을 붙잡을 대안이 마땅치 않다. 어린 나이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죄의 늪에 빠져들면 성인이 돼서도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범행은 점차 지능화하고 잔인해진다.
가출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집에서 나온 후 “갈 곳이 없다”고 호소한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머무를 수 있는 쉼터 119개가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한다. 아울러 가정·학교·사회로 복귀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일정 기간 보호하면서 상담·주거·학업·자립 등을 지원한다. 현재 쉼터는 일시·단기·중장기로 나뉘어 있다. 단기는 3〜9개월, 중장기는 최대 3년 동안 머무를 수 있다.
하지만 쉼터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최대 수용 인원은 1200여 명에 불과하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쉼터 수가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가출한 아이들이 쉼터를 쉽게 찾고 입소할 수 있도록 홍보 등도 필요하다. 어렵게 쉼터를 찾아왔다가 다시 거리로 나가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걸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경우가 많다.
가출 청소년이 쉼터에 입소하면 부모에게 연락해 입소 동의를 받고 있다. 법적 친권자가 있는데 쉼터에서 허락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약취나 납치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어서다. 아이들은 이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부모와 싸워서 나왔거나 폭행에 시달려서 나왔는데,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가정폭력 또는 친족관계인 사람에게 성폭력 등을 당해 가출한 경우에는 가출 청소년이 원할 경우 쉼터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가출해서 쉼터에 가려고 한다’는 한 청소년은 “집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가출했다. 더 이상 집에 있으면 죽을 것 같았다. 죽지는 못해도 크게 다칠 것 같았다. 그래서 밖으로 돌아다니는 건 위험한 데다 돈도 없고 해서 쉼터에 가려고 한다”며 쉼터에 입소할 때 필요한 것과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을 물어보기도 했다. 이 청소년의 경우 개정안 통과 이전에는 쉼터에 입소하더라도 이용기간이 만료되거나 보호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 퇴소할 수밖에 없었다.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현재 우리 사회는 거리로 나온 아이들을 ‘불량 청소년’으로 보는 시각이 다분하다. 아이들이 가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우선 ‘문제아’라는 선입견부터 갖기 때문이다. 실상은 ‘가정폭력’이나 ‘가정불화’가 가출의 주된 원인이지만 가출한 청소년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여전하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거리의 아이들을 가정과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우선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위기의 청소년들을 비행청소년, 불량청소년으로 낙인찍는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이 아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지촌 성 산업'의 '호스트'는 누구인가
영화에서는 주요 플레이어로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필리핀 현지 매니저 역할을 하는 '욜리'이다. 이 역할의 핵심은 현지의 필리핀 여성을 '예비 이주 연예인'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하여 욜리는 직접적으로 필리핀 여성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친근한 관계를 맺는다. 성모마리아상 옆에 앉아 욜리는 인자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감언이설로 속이지 않아. 이 일은 장단점이 있으니까. 어떻게 살 건지는 본인에게 달렸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나와 내 한국인 동료가 디딤돌이 돼서 아이들이 더 나은 인생을 살도록 돕는 거야." 욜리는 자신이 한국에 매춘부를 송출하는 것이 아니라 탤런트를 만들어 보내는 것이라고 카메라 앞에서 당당히 말한다.

▲ 다큐멘터리 <호스트네이션> 중에서
두 번째 플레이어는 현지 매니저 욜리와 한국의 미군 클럽업주 파파 정을 연결시켜주는 한국인 브로커 '미스터 정'이다. 영화 <호스트 네이션>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이고운 감독이 그를 만남으로서 시작될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IMF가 일어나기 전에는 공무원 생활도, 나이트클럽 운영도 해봤다는 그는 지금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욜리의 합숙생들의 E6(예술 흥행 비자) 준비를 돕고 있다. 그가 가장 신경써야하는 것은 합숙생들의 노래실력이 아니라 욜리의 재정상태와 심경상태이다. 영화 내내 그는 욜리의 옆자리를 지킨다.
세 번째 플레이어는 한국의 미군 클럽업주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한국특수관광협회 군산 지부장 미군 클럽 업주', '파파 정'은 본인은 술만 팔아서 돈을 벌뿐 성매매 같은 건 시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카메라도 피하지 않고 성매매는 불쌍한 한국여자들이 했던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파파 정은 만약에 클럽에서 정말로 '인신매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인신매매'는 누가 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업주도 걸려야하고, 성매수를 한 사람도 걸려야 한다. 그런데 매수자가 없어. 이게 어떻게 법에 걸립니까?" 2011년 미군으로부터 내려온 '인신매매로 인한 미군 클럽업소들의 영업정지'조치에 대하여 그는 도리어 억울함을 호소한다.
'감시'하고 '묵인'하는 '호스트'의 등장
파파 정의 억울함을 통해 증명되는 것은 성 산업 생태계에서 국가가 지금까지 감시하고 단속하는 존재뿐만 아니라, '묵인'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군산 미군 기지촌은 언제부터 '국제문화마을 번영회 A TOWN'으로 불리어졌으며 E6비자는 왜 1999년부터 발급요건이 완화되었는가? "달러를 벌어들이라"는 미군 기지촌의 사명은 어떻게 '묵인' 시스템을 만들어왔나? 링 위의 플레이어들은 그러한 '묵인' 시스템과 어떻게 공조관계를 형성해오고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호스트가 감시하고 묵인하는 이중체제 속에서 호스트 네이션의 성 산업이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를 보게 된다.
영화 <호스트 네이션>에서 등장하는 호스트는 주로 기지촌 성산업을 감시하는 체제로서 등장한다. 감시체제로서의 국가는 링의 플레이어들을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압박한다. 한국정부와 필리핀정부는 각각 2011년과 2007년에 이주 연예인 취업을 '인신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금지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두 나라의 막힌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또한 욜리나 파파 정 역시 이러한 플레이를 계속 한다는 이유로 불법이라는 경고를 선고받지만 그렇다고 링 바깥으로 완전히 나가는 것은 아니다.
반면 영화 속에서 묵인하는 체제로서의 국가는 희미하게 등장한다. 묵인하는 모습이 국가에 의해 공식화 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영화 속에서 가시화하기는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묵인하는 호스트는 영화를 통해 가시화되어야한다. 호스트의 핵심은 가시화된 금지가 아니라 바로 비가시화된 묵인에 있기 때문이다. 합법성을 명분으로 가시화된 링의 이면에는 국가로부터의 묵인들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맥락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국가가 만들어온 묵인의 체제를 가시화하지지 않음으로서 결과적으로 묵인에 동조해 온 호스트의 링을 비판적으로 드러내는데 실패하고, 링의 한쪽 면만을 보여주는데 그친다. 국가의 묵인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주는 욜리나 파파 정, 미스터 정의 불만들을 그대로 드러내고만 있을 뿐, 그 묵인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 국가에서 금지를 했음에도 왜 계속해서 E6비자를 통해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으로 오는 지, 그 과정에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에 대한 질문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채로 링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 다큐멘터리 <호스트네이션> 중에서
'가난한 필리핀 여성'은 왜 '피해자'가 되었나?
이때 영화에서는 '조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이주여성 쉼터 필리핀 동료 상담사'이자 '전 한국 이주 연예인'이라고 소개된다. 한국의 클럽업주와의 재판을 준비하며 평택의 쉼터에서 잠시 지내고 있던 조이는 성 산업에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느껴졌었는지를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한다. "모든 여자가 이런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가족을 위해서. 다른 방법이 없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조이는 지금까지 영화에서 등장하던 링 위의 플레이어들과는 조금은 다른 조건 속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필리핀 다바오에 있는 욜리의 합숙생이었던 또 다른 필리핀 여성, '마리아'의 가난한 집으로 찾아간다. 조이와 마리아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기에 필리핀에서 버는 돈 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하는, '가족'과 '가난'이라는 교집합에 놓여있다. 자연스레 욜리, 미스터 정, 파파 정이 플레이하고 있는 링에서의 '여성'들, 구체적으로 '필리핀 여성'들의 위치를 물으며 영화는 나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가족과 가난 때문에 링 위에 올라서게 되었는가? 애초에 링은 왜 가난한 필리핀 여성들을 필요로 했는가?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왜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중요한 것은 그녀들의 가난이나 피해를 이야기하되 그것만으로 그녀들을 고립시키지 않도록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맥락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욜리가 카메라를 향해 "부자가 되려면 그만큼 희생을 해야 한다"는 말이나 파파 정이 "진짜 가수가 되려고 왔다는 아가씨들은 100% 거짓말이다"라는 말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다. 그들의 인터뷰를 들려주되, 어떻게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기에 감시뿐 아니라 묵인하는 국가의 이중 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 사람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의도와는 상관없이 링 위에 서면 호스트와 공조관계를 맺는다. 이때 호스트는 여성들을 위해 플레이어들을 감시하겠다는 역할뿐만 아니라 묵인하겠다는 역할 역시 오래도록 해왔던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들의 말만이 아니라, 바로 호스트라고 하는 또 다른 링의 플레이어의 감시와 묵인의 이중적 관리의 맥락들도 밝혀져야 한다. 이러한 구체성이 함께 제시되었을 때 여성들의 인터뷰 역시도 그녀들을 고립시키거나 피해자화하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상호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 다큐멘터리 <호스트네이션> 중에서
'호스트 없는 호스트 네이션'의 탄생
"미군이 수십 년 전 벌려놓은 판(기지촌) 안에 있는 플레이어(plyer)들을 최대한 다 드러내서 이 링 자체를 보여주고자"(일다 인터뷰, 2017년 4월 27일자)했다던 감독의 기획의도로 다시 돌아가 본다. 이 영화는 판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당당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자신들이 맡은 플레이들을 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다만 이렇게 가시화된 한쪽 링만을 보았을 때 조이와 같은 여성들의 위치는 보이지 않는다.
이때 생기는 간극을 통하여 영화는 묵인하는 호스트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간극에서 조이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도 크게만 느껴진다. 공적인 언어로 정의롭고 정당한 명분을 내세우는 호스트의 링 속에서는 세 명의 플레이어들도, 조이의 이야기도 '연출된 모순'이라기보다는 그냥 '정리되지 않음'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너무도 높기 때문이다. 세 명의 플레이어들이 성 산업의 '중계자'임을 상기시켜보았을 때, 결국 물어야하는 것은 호스트의 위치이자 이중적인 모습이다. 중계자의 말들을 통해 드러나는 모순만으로는 호스트 네이션이라는 링이 갖고 있는 모순이 드러나기가 힘들다.
중요한 것은 링의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고 말하던 파파 정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해 실시되었던 감시와 묵인의 여러 맥락들이 영화를 통해 밝혀져야만 한다. 국가는 어떻게 묵인 체제로 나타나고 그 묵인은 어떤 효과로 나타나는지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라는 파파 정과 욜리, 미스터 정의 말들도 다시금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드러날 때, 이들의 위치뿐만 아니라 조이나 마리아와 같은 여성들의 위치들도 이중적인 링 위에서 함께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다름’을 응징하는 사회
사회부 기자 초년생 시절에 트랜스젠더(정확하게 말하면 타고난 성을 남자에서 여자로 바꾼 트랜스우먼)를 깊이 있게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벌써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고 그때만 해도 트랜스젠더(성전환자)와 게이(동성애자)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조차 드물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트랜스젠더라는 용어조차 몰랐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들을 정신이상자이거나 변태성욕자쯤으로 생각하고 접근했다. 선정적인 기사라도 한 건 건져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있었던 내게 그들은 뜻밖에도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
영화에서 종종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그들은 부드럽고 상냥하고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한참 같이 있으면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 기자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한 천생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전혀 이상하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좁디좁은 자취방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가수나 배우의 사진으로 도배하고, 남자 친구에게 국수를 비벼줄 때 행복하다는 보통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대부분 가정에서 추방당했고, 게이 바에서 접대부나 무용수로 일하는 외에는 변변한 직장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그들이 유럽을 떠돌던 유태인이나 집시 같은 ‘소수민족’을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의 잘못 탓이 아니라 그저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불행과 고통을 강요받는 억울한 영혼들이었다. 다름을 인정하거나 최소한 묵인이라도 하기는커녕 철저하게 짓밟거나 무시하는 데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의 잔혹한 일면도 보았다.
그들은 가족 얘기만 하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와 ‘오빠’가 특히 그들에게 잔인하게 굴었다. 그들이 혹시라도 이웃이나 친척 눈에 띌까봐 집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혹여 집에서 마주치면 폭언과 폭행을 퍼붓기 일쑤였다. 어머니만 몰래 그들의 자취방을 드나들었다. 어머니나 ‘여자 형제’조차 발길을 끊은 경우에 울음은 더 구슬프고 길었다. 어떤 친구는 ‘살인죄를 저지른들 이보다 더 모질게 굴겠냐’고 탄식했다. 가족이 이럴진대 남과 이 사회 전체가 이들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을지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난다.
그 종의 상태만 보더라도 전체 생태계의 건강성을 진단할 수 있는 동식물을 깃대종이라고 하는데 성 소수자야말로 그 사회의 깃대종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성 소수자를 핍박하는 사회의 인권은 거의 예외 없이 바닥 수준이다. 성 소수자의 상태는 양성 평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 소수자 가운데 태어날 때는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남성이란 브랜드를 받았지만 스스로 지각이 생기고 난 뒤에는 여성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이들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남존여비 의식이 강한 사회일수록 성 소수자에 대한 반감도 큰 것으로 추정된다. 귀족 사회가 이탈자에게 유난히 혹독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남자라는 존귀한 신분을 버리고 굳이 비천한 여자가 되겠다는 걸 가족이나 사회가 용납하기 힘든 것이다.
2002년 <뉴요커>가 실시한 놀라운 설문조사 결과
2006년부터 세계경제포럼이 10년간 교육·건강·수입·수명 등 각 분야를 망라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양성 평등 석차는 전 세계 109개국 중 89위이다. 우리 인구의 반이 세계에서 거의 톱클래스로 불행하다는 얘기다. 우리 앞줄에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같은 중동 밖 이슬람 국가들도 있다. 한국의 일부 남성 단체는 여성의 힘이 너무 강해서 숨이 막혀 견디기 힘든 모양이지만, 객관적 수치는 한참 거리가 멀다. 여성이 고통스럽다면 남성인들 평온할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를 취재하고 나서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소수자에 불과한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 아니겠는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결점투성이 존재이면서도 독특한 구석이 있다. 성 소수자에 대한 공격성이 높다면 다른 범주를 향한 적대감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성 소수자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걸 그때 불현듯 자각했고 눈이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 선거 후보 텔레비전 토론 때 홍준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걸 들으면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가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걸 실감했다. ‘센 척하려고’ 설거지를 안 한다고 했던 홍준표 후보가 느닷없이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에 찬성하느냐고 추궁했을 때 엉뚱하게 홍 후보의 자녀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분 자녀들 중 누군가 성 소수자였다면 눈물이 마를 날 없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맥없이 자녀들의 인권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홍 후보는 애초에 우리 가계에는 성 소수자가 없고 가정교육도 엄격했으며 무엇보다 착실하게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나올 리 없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어림없는 생각이다. 동성애는 가족력이나 교육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개인의 선택이나 질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운명에 가깝다. 찬성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후보의 답변도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그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했다가 다시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고 수정했다. 하지만 동성애 차별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고는 했다. 동성혼 합법화는 사실 동성애 차별 반대와 별개 문제가 아니다. 차별을 막기 위해 뒷받침돼야 할 법제화의 한 부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 논의는 한국 사회가 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교회 표 이탈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아쉽다. 문 후보가 우리 사회도 이제 동성혼 합법화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는 정도까지만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당락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큰 손해를 봤을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동성애 인권 문제에서 두 발짝 물러섰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답답한 문제를 잘 풀어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갈수록 커져 더욱 진하게 미련이 남는다. 문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내내 성 소수자 문제에 먼지만 더 두껍게 쌓일까 걱정스럽다.
2002년 미국 시사 잡지 <뉴요커>는 부모들에게 그들의 자녀가 동성애자로서 자식을 키우며 배우자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이성애자로서 독신이나 혹은 아이 없이 배우자와 불행하게 살기를 바라는지 물은 일이 있었다. 응답자 세 명 중 한 명꼴로 후자를 택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문제에 대한 공개 논의가 오랫동안 이루어져온 미국 사회에서조차, 자녀가 행복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보다는 불행하더라도 남들과 비슷하게 살기를 바라는 이들이 그토록 많은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성경에 적힌 그대로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복음주의 교회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나라이다. 아담과 이브가 아닌, 아담과 스티브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회다. 그랬던 미국 사회에서도 2014년 6월부터 동성혼이 합법화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혼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1966년까지만 해도 “하나님은 인종끼리 섞이는 걸 바라지 않으신다”라며 다른 인종 간의 결혼까지도 금지했던 바로 그 미국의 법원이 내렸다고는 믿기 힘든 결정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성경은 이혼도 금지하는데 미국 사회의 이혼율은 45%에 육박하는 형편이다. 민망하게도 기독교 우파의 이혼율이 무신론자나 마르크시스트보다 더 높다. 동성 결혼의 불법을 고집하면 진보 진영이 이혼도 불법화하자고 덤빌까 봐 기독교 우파가 슬며시 물러서지 않았겠느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2009년 <뉴욕타임스>가 생활수준이 비슷한 이성 커플과 동성 커플의 평생 비용을 계산해봤다. 동성 커플은 이성 커플보다 적게는 4만1000달러에서 많게는 46만7000달러나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애 커플이 이런저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불평등한 상황인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혼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는 과학의 발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유전학은 동성동본 결혼 금지라는 오래된 믿음을 맥없이 무너뜨렸듯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 나아가서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중이다. 환경 영향 탓으로 짐작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유로 해가 갈수록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더불어 성 정체성 장애도 주목할 정도로 늘어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의 성에 대한 의식이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다. 페이스북 프로필 난에 가입자들이 적어놓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표현한 용어가 50개가 넘는다.
이를테면 ‘다리 사이의 성’을 ‘귀 사이의 성’으로 바꾸려고 수술이나 호르몬 요법을 택한 이들을 트랜스섹슈얼이라고 부른다. 트랜스우먼이나 트랜스맨은 그냥 트랜스라고 축약한다. 양성인은 인터섹스, 이도 저도 아니면 젠더퀴어. 어느 날은 여성, 어느 날은 남성, 또 어느 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면 젠더플루이드다. 트랜스젠더들은 트랜스젠더가 아닌 일반인, 즉 머글을 시스젠더라고 부른다. 라틴어에서 온 접두사 cis는 ‘이쪽의, 같은 편에 있는’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용어 해설 사전을 따로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성이란 남자거나 여자 혹은 암컷이거나 수컷이라고만 생각했다. 인간이나 동물 가운데서 예외가 발견되더라도 이런 이분법을 수정할 생각은 없었다. 극히 이례적으로 나타난 돌연변이거나 이상 현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도 인간의 성염색체는 X와 Y 두 개뿐이라고 배웠다. X와 X가 결합하면 여성, X와 Y가 결합하면 남성이 된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 오래된 미신을 폐기할 때가 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은 성이 양극단이 아니라 스펙트럼상에 존재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성은 지구상의 사람 수만큼 다양하다.
반(反)성폭력 운동 과정에서 정립된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개념이 오용되는 사례가 잦다. 이를 점검하기 위해 한국여성민우회가 토론회를 열었다.
“페미니스트 상봉의 날이네요”라는 이소희 민우회 활동가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평일 오후였는데도 참가자들은 마포구청 대강당 1층 316석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2층 객석까지 메웠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토론회는 저녁 6시가 넘어서야 겨우 마무리됐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페미니즘 물결이 열어젖힌 토론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론회가 열린 시기는 5월17일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26~29쪽 기사 참조) 추모 분위기와도 맞물려 있었다. 강남역 사건은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처럼 만연한 일상의 폭력을 새삼 환기시켰다.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고, 목소리는 목소리를 붙잡고 이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페미니스트 선언과 공동체 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지난 역사가 보여줬던 것처럼 이 ‘울퉁불퉁한 길’은 실수를 예비하고 있었다. ‘강간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의 고통을 드러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 누가 더 고통받는가를 경쟁하는 길로 쉽게 빠지거나,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이 뒤섞이고 오용되는 일이 왕왕 벌어졌다. 이는 가해자로 하여금 쉽게 ‘반격’의 길을 열어주거나, 사건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식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쌓아왔던 역사를 복기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날 토론회는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 오용에 대한 ‘비평적 개입’의 필요성에서 기획됐다. “몇 가지 개념으로 서로의 목을 치는 상황에 대한 개입(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인 셈이다. 토론회를 통해 그동안 비공개 집담회 형식으로만 진행해왔던 이야기들이 17년 만에 공개적으로 논의됐다.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는 2000년 조직된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 위원회)’의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정립됐다. 이 두 개념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갖는다. 이날 토론회에서 ‘100인 위원회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을 발제한 여성주의 활동가 전희경씨가 <페미니스트 모먼트>(그린비, 2016)에 쓴 것처럼 “그동안 (두 개념의 문제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어떤 곳에서는 ‘당신이 하는 말이 바로 가해’라고 지목하지 않는 한 절대로 입을 닫지 않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2차 가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2차 피해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성폭력 사건은 공론화 과정에서 쉽게 2차 피해를 불러온다. 피해자는 사건 당시 옷차림이나 이전의 성경험 등으로 수사기관이나 조력 단체들로부터 재단된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순결을 상실한”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손쉽게 ‘꽃뱀’이 되는 식이다. 이처럼 경찰이 피해자의 말을 불신하거나, 언론이 사건을 선정적으로 재현하는 따위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2차 피해는 1차 피해(성폭력)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를 지속시키는 데 일조해왔다. 이때 그러한 행동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한편 피해자에 대한 역공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됐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 역시 사법절차 과정에서 만연한 가해자 중심주의에 대응하며 사용된 ‘맥락적’ 지식의 결과였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래서 조직과 사회에 균열을 가져온 피해자는 단순한 피해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때 피해자는 ‘싸우기로 한 사람’이며, 이러한 주체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반성폭력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등장한 말이 바로 피해자 중심주의다.
다양한 문제를 ‘성폭력 사건처럼’ 다뤄서는 안 돼
하지만 이처럼 ‘매뉴얼화’한 개념은 만들어진 맥락과 역사가 생략된 채 잘못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2차 가해 개념은 단죄의 언어가 되었다. 사건 해결을 돕는 조력자들로 하여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제일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는 데 기여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이들 역시 “2차 가해라는 용어가 성폭력에 대한 질문이나 공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라는 진단에 대부분 동의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역시 ‘피해자의 의사’를 제외한 모든 공적 논의를 끝내게 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피해자에게 사건을 묻거나 논의하거나 제안해서는 안 되었다. ‘당사자’라는 것 자체가 ‘진실’이 되어버리는 식이다. 이때 피해자 역시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이 개념들이 문제가 된 것은 반성폭력 활동을 넘어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다양한 젠더 갈등을 다루는 데서도 ‘거침없이’ 활용됐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전희경씨는 “100인 위원회 운동 이후 매뉴얼화한 일군의 ‘용어 세트(가해자·피해자·피해자 중심주의·2차 가해 등)’가 다양한 문제 상황을 ‘성폭력 사건처럼’ 해결하는 데 동원됐다”라고 진단했다. 특정한 사건에 대한 ‘재빠른’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 행동까지 모두 2차 가해 범주 안에 넣는 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2차 가해나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이 시간차를 가지고 여전히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발제자로 나선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조직과 연구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국장은 “어떤 개념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며, 현재까지도 민주노총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2차 가해의 개념은 강력한 규제로 작동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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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2016년 5월19일 추모 포스트잇이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를 빼곡하게 감쌌다. |
강남역 사건이 촉발시킨 일련의 흐름이 보여주듯 고통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곳에서 운동은 시작된다. 전희경씨는 “상처를 전혀 받지 않으면서 하는 투쟁은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시절 운동의 과정에서 정립된 개념들이 나름의 역사와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되,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의 운명도 2017년의 페미니스트들이 반성폭력 운동을, 젠더 문제를 이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에 달렸다. 다 같이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다양한 문제 제기자들’로, 2017년의 페미니스트는 2000년의 페미니스트보다 더 엄밀하고 더 다양해질 수 있을까.
남편의 무서운 집착 ‘의처증 살인’
의심의 밑바닥에는 ‘열등감’…한 번 발병하면 치료 힘들어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1(목) 15:49:54 | 1441호
최근 몇 년 사이 의처증으로 인해 아내를 살해하는 참극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의처증은 남편이 아내의 정조를 의심하는 ‘질투형 망상 장애’ 중 하나다. 다른 정신과적인 증세가 없는데도 배우자가 성적(性的)으로 부정한 행동을 한다고 의심한다. 급기야 살인 등으로 이어지며 비극적 결말을 맺기도 한다. 질투형 망상 장애는 주로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지난 5월5일 경남 김해에서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 A씨(64)가 아내 B씨(56)의 외도를 의심해 부부싸움을 하다 벌어진 사건이다. A씨는 범행 직후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의처증 증세를 보였고, 3년 전부터 증세가 심해졌다고 한다. 결국 남편의 아내 살해 뒤에는 ‘의처증’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1월 부산 남구 문현동의 한 주택에서는 강아무개씨(72)가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후 자신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강씨의 딸은 “집에 잠시 들르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부모의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 강씨는 딸을 흉기로 위협해 집 밖으로 내보냈고, 그 뒤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은 강씨가 의처증 관련 질환을 앓았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8월 전북 익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외도를 의심한 C씨(79)가 자택 욕실에서 아내 D씨(74)의 머리를 아령으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했다. 법원은 C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C씨는 범행을 숨기려고 욕실 타일에 묻은 혈액을 수건으로 닦고, 며느리에게 전화해 “아내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그는 평소에도 의처증 증세로 아내 D씨와 자주 말다툼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 일러스트 오상민
남편의 끊임없는 의심
우리 사회에서 의처증은 ‘사랑’과 ‘질투’로 포장돼 왔다. 단순한 가정 내의 문제로 치부돼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의처증이 가정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남편에게 애먼 이웃 남성이 살해되는 일도 있었다. 가정의 담장을 넘어 누군가는 범죄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의처증을 단순히 ‘부부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의처증 환자들은 평상시에는 아주 멀쩡하다. 겉으로는 정상인과 다르지 않다. 다만 배우자의 부정을 단정하거나 확신하면서 망상을 계속 키운다. 배우자가 남편의 의심을 해소하고 증거를 내보이더라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과 집착은 더해 가고 증상도 심해진다. 여기에 폭력이 동반되면서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결과를 낳는다.
포털사이트의 부부상담 코너에도 남편의 ‘의처증’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30대 기혼여성 E씨는 “의처증으로 이혼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남편의 심각한 의처증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E씨는 “회사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내가 수상한 것 같지 않으냐, 동료 남자 직원과 이상한 분위기가 없느냐고 묻는 등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회사를 다닐 수가 없다”고 말했다. E씨의 남편은 아내에게 어떤 행동을 보인 것일까. 먼저 24시간 그녀를 감시한다. 아내의 휴대전화에는 위치추적 앱을 깔아놓았고, 퇴근할 때는 회사 앞으로 데리러 간다.
만약 회사 일 때문에 퇴근이 1분만 늦어도 전화해서 “딴 놈이랑 바람피우는 거 아니냐”며 다그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감시망을 벗어나면 폭언이 뒤따른다. E씨는 “처음에는 나를 사랑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도가 지나쳐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E씨는 남편과의 이혼을 고심하고 있다.
아빠의 의처증을 호소하는 자녀들도 있다. 20대 여성 F씨는 의처증이 있는 아빠가 갈수록 엄마에 대한 의심이 심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F씨에 따르면 “아빠는 (엄마가) 이모부에게 생일 선물을 받아도 화를 내고, 행인들이 엄마에게 길을 물어보고, 술 취한 사람이 대문을 잘못 두들겨도 의심부터 한다”며 “이것 때문에 자주 부부싸움을 하는데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폭력도 동반돼 경찰에 여러 번 신고했다”고 말했다.
의처증 대물림 확률도 높아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 정도가 의처(부)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연령대는 주로 35~55세 사이에 많이 발병한다. 하지만 18세부터 90대까지 골고루 증상이 나타난다. 의처증은 꼭 결혼한 남성에게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결혼 전에도 사귀는 이성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며 질투형 망상 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70대 이후의 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노년기에 생기는 망상 장애는 치매의 전조 증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치매는 기억력 저하로 증상이 시작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망상이나 성격변화 등의 증상이 먼저 나타나면서 치매가 시작된다고 보는 견해다.
나이를 불문하고 의처증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의학계는 유전적 요인과 생물학적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에서 원인을 찾고 있으나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의처증의 밑바닥에는 ‘열등감’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배우자에 대한 열등감이 심한 남성에게서 의처증 증세가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내와 대비되는 외모, 학력, 경제적 능력, 사회적 역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다 실직 등으로 경제력을 아내에게 의지해야 하는 경우, 성기능 장애 등의 문제가 생긴 경우 열등감 때문에 망상이 생기기도 한다. 의처증 남성들의 특징 중 하나는 열등감의 모든 원인을 배우자에게 돌리는 것이다. 평소에는 마음속에만 담아두다가 술을 마시거나 감정 대립이 생길 때 한꺼번에 폭발한다.
아버지가 의처증이 있으면 그 자식에게서도 발병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전적·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인과관계가 깊다는 뜻이다. 의처증이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의처증 환자들을 보면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거나 가정폭력을 당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가족에 대한 신뢰감이 없다. 때문에 상대에 대한 의심이 깊어지고, 나중에는 망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또 알코올 중독이나 편집증이 있는 부모,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의처증 환자는 완치가 쉽지 않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치료’라는 말만 꺼내도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인다. 치료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부부관계는 사실상 지속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배우자는 ‘의처증 감옥’에 갇혀 살면서 온갖 의심과 폭언, 폭력을 감당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남편이 의심할 소지를 갖지 않도록 아내가 처신을 잘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아내가 처신에 신경 쓰고 주의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의처증이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경우에는 결국 이혼 수순을 밟아야 한다.

여자친구를 죽이고 시신을 장롱 속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아무개씨가 2015년 9월11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송파경찰서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혼 등 가정 파탄으로 이어져
그러나 이혼 과정도 순탄치 않다.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소송을 해야 한다. 이혼을 결심한 후에는 필연적으로 재산 분할 등의 문제를 따지지 않을 수가 없다. 법조계에서는 단순히 의처증 증세를 보이는 것만으로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재판부는 남편의 의처증으로 인해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해도 증상이 가볍고 회복 가능한 경우에는 이혼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의처증에서 폭언·폭행으로 이어진다거나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영향을 끼칠 경우에만 이혼 판결이 나올 수 있다. 의처증으로 인해 이혼을 결심할 경우 피해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서 재판부에 제출해야만 이혼 사유 중 하나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yk법률사무소 유상배 변호사는 “의처증으로 인해 더 이상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면 의처증 이혼소송을 청구해 관계를 해소할 수 있고, 배우자의 의처증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손해배상으로 위자료 청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만약 이혼이 아닌 ‘치료’를 선택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때는 남편의 의심에 대해 비판이나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상대방이 또 다른 의심과 경계심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 상담을 통해 서로 신뢰감을 충분히 얻은 뒤에 치료 수순을 밟는 것이 좋다.
이런 사람이 의처증 환자
의처증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생기는 증상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의처증 환자가 될 수 있다. 의처증의 초기 증상을 보면 평소와 다르게 감정의 기복이 극심하게 나타난다. 아내에게 한없이 다정다감하게 잘해 주다가도 사소한 것에 정색을 하고 신경질을 내거나 화를 낸다.
아내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평소와 같이 외출 준비를 하는 모습만 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옷을 고르거나 화장하는 모습만으로도 마치 불륜 상대를 만나러 나간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이때 “누굴 만나러 가냐” “어디 가냐” 등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아내가 외출한 후에는 전화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난다. 만약 곧바로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원이 꺼진 상태가 되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같이 길을 가다가도 다른 남성을 쳐다보거나 말을 하는 것만으로 불륜 상대로 오해한다.
평소 혼잣말이 늘어나고 환청을 경험한다. 의처증이 심해지면 정신분열증상까지 동반하기 때문에 초기에 적절한 상담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동성애자 처벌하면 軍 성폭력이 없어진다고?
지난달 24일 육군보통군사법원은 동성애자 군인 A 대위에게 군형법 92조 6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군인이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92조 6항은 △법 조항 자체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근거로 만들어진 점, △합의된 성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점, △동성애가 군 전투력을 하락시킨다는 편견으로 만들어진 법이라는 점에서, 오랜 폐지 요구가 있었다. 2006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도 폐지를 권고했고, 2012년 UN국가별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의 폐지 권고,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폐지 권고가 잇따랐지만 2013년 '계간'이 '항문 성교'로 개정되었을 뿐 폐지되지 않았다.
이번 A 대위 사례는 2013년 '계간'이라는 용어가 '항문 성교'로 개정되었다고 해서 이 법의 본질적인 내용인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법이라는 점이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다. 또한 군에 의한 기획 수사로 조사를 받고 기소될 것으로 알려진 약 20명이 이후 법정에 세워져 유죄 판결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성 소수자들과 인권 운동 활동가들의 폐지 요구, 국내외 인권기구의 지속적인 폐지 권고에도 남아있는 군형법 92조 6은, 국가가 동성애자를 처벌할 수 있음을 확인시키는 대표적인 반(反) 인권 악법이다.
동성애자를 처벌하면 군대 내 성폭력 없어진다?
폐지되어 마땅한 조항이 유지되는 배경은 편견에 기댄 혐오다. 군형법 92조 6이 폐지될 경우 군대 내 성폭력이 처벌되지 못하고 조장될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마치 동성애자가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인 것처럼 왜곡하는 주장은 군대를 가야 하거나 자식을 군대로 보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불안을 부추긴다. 서열과 위계질서가 강하고 인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의 군대 상황을 감안하면 불안이 커질 만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군대 내 동성 간 성폭력에 대한 처벌과는 무관한 법이다. 군형법 92조 6(추행)은 현역에 복무하는 장교, 준사관, 부사관, 병사 및 준 군인의 신분을 지닌 자에 대하여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 처분하는 조항이다. 군형법은 '제15장 강간과 추행의 죄' 아래 92조의 1부터 8까지 성폭력 관련 범죄를 다루고 있다. 이 중 92조의 6은 강제성과 무관한 성행위 자체에 대한 처벌이다. 실질적으로 적용해온 판례에서 드러나듯 부대 안인지, 부대 밖인지, 상호 동의인지 여부와는 무관한 동성애자 군인 간의 항문 성교, 유사 성교 행위가 이 법의 판단 대상이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성행위와 체위를 처벌하는 조항일 뿐이다.
군대 내 성폭력은 일상적이다. 부대를 배정받고 이등병의 신분으로 들어가면 언어적 성폭력이 '친밀감과 장난'이라는 말로 둔갑한다. "여자랑 잔 이야기 좀 해봐", "훈련소에서 몽정은 몇 번 했어?"와 같은 질문을 하며 조롱하고 비웃는 과정은 신병을 남성 동맹에 가입시키는 과정이다. 샤워할 때 "바닥에 비누 떨어졌네. 좀 주워줘"와 같은 '장난'도 흔하다. 부끄러워하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남성 군인은 성적 약자로 여겨지며 괴롭힘당하기도 한다.
남성 동맹에 진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피해를 말하기 어렵게 한다. 계급과 남성성이 권력이 되는 군대 내 남성 동맹에서 한 번 탈락하면 2년간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군인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어렵게 만든다.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이 동성애인 것처럼 왜곡하는 진단은 군대 내 폭력과 인권 침해의 원인을 은폐하며 인권침해의 구조를 존속시킨다.
군대에서 성폭력은 개인의 성적지향과는 무관하게 발생한다. 위계질서를 확인시키기 위해 상관이나 선임이 성폭력을 가하며, 굳건한 남성동맹을 확인시키려는 군대의 관행이야말로 성폭력의 원인이다. 남성성의 위계가 견고한 군대에서는 오히려 동성애자가 군대 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군대가 가지고 있는 '남성적 지배 동맹', 그리고 위계질서에 의한 폭력을 군 기강과 전투력으로 감추는 것이야말로 군 인권 문제의 본질이다.
남성적 지배 동맹을 강고히 하는 군대
군을 전역하고 대학교에 복학했을 때 학교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대화보다 위계, 설득보다 윽박지름에 익숙해져 있던 군을 전역하고 대학에 돌아가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물론 학교나 대학이란 공간도 위계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군대처럼 획일적으로 강요되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군 경험은 나에게 뭘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고서 군대에서 느낀 문화는 남중·남고의 문화와 유사했다. 손쉽게 위계를 형성하고 내 남성성을 표출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하는 곳, 음담패설과 성적 농담을 하며 친밀감을 형성했다. 특정한 남성성 모델에 근접할수록 약자에 포함되지 않고, 괴롭힘과 폭력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군대는 특정한 남성성을 하나의 모델로 삼는다. 그 남성성은 주로 선임이나 상관의 인정을 통해 확인된다. 그 인정에 폭넓게 활용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여성과의 성관계, 그리고 '여성스러움'의 부정이다. "휴가 가서 여자 친구랑 얼마나 했어?"라는 이야기가 선임자들에게서 마구 튀어나오는 건, 군을 경험한 한국 남성에게 너무나 익숙한 경험이다. 심지어 함께 휴가를 가 성매매 업소를 가고 복귀해 과시한다. '여성스러움'은 조롱과 폭력의 명분이 되니 '여성스럽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같이 성매매 업소를 가고 자신의 성 경험을 과시한다. 남성 동맹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이는 반복된다. 만약 이야기하기 부끄러워하면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기분 나빠하면 선임을 무시한다며 폭력이 가해진다.
한국 군대는 남성에게 폭력적 섹슈얼리티를 강요한다. '성욕에 가득 찬, 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지배하는' 남성을 키워내는 것이 한국의 군대다. 남성과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의 관계는 용납되지 않는다. 군대를 오직 '지배하는' 자로서의 남성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군대 내 여군이 겪게 되는 성폭력 피해가 반복되는 데에도 근본적 해결이 안 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누구도 성관계에서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고 누리지 못하게 하는 폭력이다. 군대 내 성폭력의 해결을 위해서도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 6은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군형법 92조 6 폐지는 군 인권 해결의 시작
한국의 군대는 70년의 기간 동안 끊임없는 인권 침해와 국가 폭력의 상징이었다. 아직도 미해결된 군 의문사 사건, 가혹 행위로 인한 피해자 그리고 동성애자나 '여성스러움'을 이유로 발생하는 괴롭힘과 폭력 사건은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군대 안에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성이 길들여지는 군대의 문화와 질서는 직장·학교 등의 상명하복, 기강 잡기 등의 관행으로 이어진다. 사회 곳곳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훼손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A 대위는 재판정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가 군에서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온 시간과 노력, 누구도 훼손해서는 안 될 그의 존엄성이 군사법원에 의해 부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의 어떤 조직도 인간의 존엄을 부정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을 속성으로 삼는 조직이 있다면 그 조직이야말로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군대가 군인의 존엄을 해치지 않음을 군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군형법 92조 6은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폐지해야 할 악법이다. 군형법 92조 6을 폐지하라!
꽃향기 나는 질을 원하십니까?
현대는 SNS를 통한 외모 검열의 전성기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사이 갭(thigh gap·양 허벅지 사이에 틈이 생길 정도로 말랐는지), 사이 크리스(thigh crease·허벅지와 골반 사이 접히는 선이 생기는지), A4 허리(A4 용지로 허리를 가릴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이 난무한다. 그중 미국에서 유행했다는 ‘팬티 챌린지’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여성이 자신의 벗은 팬티를 찍어 올리면서 “봐라, 나는 분비물이 안 묻어 나왔다. 깨끗하다”라고 도전 과제를 냈다.
질 분비물은 눈물이 이물질을 씻어내는 것이나 피부 각질이 때로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수명을 다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오는 질 점막 세포, 이물질을 씻어내는 역할을 하는 애액, 나쁜 병원균이 번식하지 못하게 산성을 유지해주는 유산균 등의 복합물이다. 자정작용을 잘 하고 있다는 증거다. 치즈나 요구르트 비슷한 살짝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도 정상이다. 자주 외음부를 씻게 되면 오히려 좋은 유산균이 씻겨나가고 질 내 산도가 유지되지 못해 염증이 더 잘 생길 수 있다. 특히 질 내를 씻는 질세척(뒷물)은 오히려 세균과 염증을 자궁 내로 전파할 수 있어서, 자궁 내 감염·불임·난소암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온 바 있다.
왜 하지 말라는데도 우리는 ‘이곳’을 강박적으로 씻고 있을까. 질 세척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고대에는 여러 문화권에 걸쳐 피임을 위해 꿀이나 악어 똥, 올리브유, 포도주, 소금물로 질 세척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피임에 아무런 효과가 없고 감염만 일으킬 게 뻔하지만 현대적인 피임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피임에서 청결로 개념 전환이 되는데, 1889년 영국 회사 레킷벤키저(바로 그 가습기 살균제 모회사다)가 광범위 항균제인 라이솔(Lysol)을 개발한 뒤 주방세제나 방향제로 쓰이는 이 제품을 희석해서 질을 세정하라고 광고했다. ‘완벽한 아내라도 단 한 가지를 잊는다면 남편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거나 ‘위생적인 여성들’이라며 광고했다. 미개한 20세기 일인 것 같은가. 지금도 대놓고 외음부에서 꽃향기가 나야 한다고 강요하는 여성청결제, 데오드란트 시장이 매년 30~40%씩 성장하고 있다. 생식기 ‘청결’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사회문화적 신념이 생식기 건강을, 여성의 자존감을 위협하고 있다.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습해지면서 냄새난다고 놀림받았다며 눈물을 쏟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산부인과에 온다고 제모와 질 세척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온 환자도 있었다. 비누·소금·붕산·빙초산·락스….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들로 평생 뒷물을 해온 어머니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다 보면 초등학교에서부터 몸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음질염이 자주 재발하는 분은 너무 자주 씻는 습관이나 1회용 생리대와 팬티라이너가 원인일 수 있다. 천 팬티라이너나 생리컵을 이용하면 나아질 수 있다. 질은 물로만 씻어도 충분하지만 생리나 성관계 이후 꼭 청결제를 쓰고 싶다면, 산성으로 된 여성청결제 소량을 외음에 사용해볼 수 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면 인터넷이나 엄마 말고 산부인과 의사와 상의하면 된다.
꽃향기나 비누향 나는 질이 좋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남자친구나 광고를 만난다면 꼭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외모, 머리 숱, 피부, 체취까지…. 촘촘하게 죄어 들어오는 몸에 대한 압박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끝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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