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바로보기

공동기획 상편 - '문재인 정부' 아닌 '민주당 정부' 선언, 그 의미

일취월장7 2017. 5. 18. 10:19

'문재인 정부' 아닌 '민주당 정부' 선언, 그 의미

[공동기획] ① 정권 인수, 정당이 나서야 변화가 가능하다
2017.05.11 14:33:13

정치발전소,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프레시안의 공동주관으로 신정부 출범을 맞아 "새 정부,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기획은 정권인수, 신정부 출범의 조건, 외교안보, 행정, 협치, 복지, 노동, 개헌문제 및 선거제도 등 신정부가 직면해야 될 다양한 과제와 조건에 대해 분야별로 총 10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이변은 없었다. 여론의 출렁거림은 그때그때 있었지만, 재수에 강하다던 문재인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약 7개월 일찍 치러진 '5월의 대선'으로 대통령은 당선자로서의 인수인계 기간 없이 실전무대에 섰다. 아마도 대통령과 그 캠프에서는 임기개시 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구체적인 콘티를 짜두었을 것이다. 

   

언론과 세간의 관심이 인선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이때, ‘대통령직 인수’라는 과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 짚어보자.  


1. 인수위원회 없이 임기를 시작하는 제19대 대통령 


만약 올해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대로 12월 20일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고 생각해 보자. 제19대 대통령 당선인은 아마도 개표방송의 요란한 조명과 지지자들의 연호를 들으며 ‘당선 확실’의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채 가라앉지 않은 흥분과 앞으로의 포부를 떠올리며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달콤한 불면의 밤이 이어졌을 것이다. 취임식까지 약 두 달여 동안 ‘제19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라는 물적·인적 지원체계가 가동되면서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가 점점 실감나게 되었을 것이다.  


현실의 선거는 어땠을까. 승리의 기쁨을 음미할 시간은 불과 몇 시간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다음날 당선확정 절차를 마치고부터, 어제의 후보는 곧바로 대통령으로서의 일정을 시작해야 했다.  

  

나라 안팎의 상황도 한가롭지 않다. ① 외교 안보 남북관계의 갈등 및 불확실성에 대응해야 하는 국가적 긴급 사안이 산적해 있고, ②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갈등과 분열을 통합해야 할 과제도 크고, ③ 정부조직 개편 문제며 내년 정부 예산안 편성도 다뤄야 하고, ④ 청와대 구성과 총리 및 내각 인선 문제도 시급하고, ⑤ 문화체육관광부를 추슬러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하는 등, 적절한 해법을 내놓는 유능함이 다방면에서 절실하다.

   

이렇다보니 정치권, 학계, 언론 등에서는 선거 이전부터 ‘조기 대선 → 인수기간 없는 정권 인수 → 불안한 국정운영’을 우려해 왔다. 이전 정부의 내각과 실무진을 유임하는 임시 과도 정부형태를 상당기간 유지하는 한편 새 정부의 국정기조에 맞게 경제, 외교안보 등 중요정책방향을 크게 수정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 임기 개시 이후 인수위원회, 충분할까?


현행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대통령당선인을 보좌하기 위하여 설치하며, 대통령 임기 시작일 이후 30일의 범위에서 존속하도록 되어있다(제6조). 이번 선거의 경우 당선인은 그 즉시 임기가 시작되므로 원칙적으로 인수위 설치 자체가 어렵다. 

  

그 해결을 위해 원혜영 의원, 변재일 의원 등이 위 법률의 개정안을 발의하였고(아래 <표1>), 원내 5당의 합의로 올해 3월 법률개정이 추진되었으나, 일부 조항의 위헌소지 논의 등으로 결국 개정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다만, 현행 법률조항의 문의를 넓게 해석하여, 대통령 임기 개시 이후 30일의 범위에서 설치․존속이 가능하도록 국회의장과 4인의 원내대표 간에 정치적으로 합의해둔 상태이다. 


이제 인수위의 설치 자체는 법적으로 가능성질 전망이다. 그러나, 인수위 설치의 필요성은 선거 이전에 논의가 되던 것에 비하면 낮아진 듯하다.  


3. 법적 기구로서 인수위원회, 꼭 필요할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당선인 때부터이고(1992년), 2003년에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이 처음 제정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총 5차례 대통령을 뽑으면서 인수위원회의 물적․인적 지원은 체계가 잡혀왔지만, 그에 비례해서 대통령직 인수에 실질적인 도움 역시 커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새 정부의 초기를 어지럽히는 폐해가 인수위로부터 기인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조직구성의 성격이나 규모 등에서 차이는 있으나, 역대 인수위는 선거캠프의 대다수가 인수위로 옮겨가는 폐쇄적 방식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인수위의 대표적 주요업무는 정부의 조직․기능 및 예산현황의 파악,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이다(<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제7조 관련). 하지만 실상은 “새정부의 구직상담소 내지 정부부처 개편을 둘러싼 부처의 로비와 반대, 각계 이익단체의 로비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場)”과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두 달 여의 인수기간동안 새 정부 시작의 주요 정책기조와 인사 등을 실무적으로 명쾌하게 준비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인수위원회가 법제화된 이후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원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정부조직개편과 인사청문회 등이 지연되면서 대통령 취임 이후 곧바로 이전 정부의 내각을 새로운 진용으로 교체하지 못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의 경우 인수위원회의 공식적인 기구를 통한 인수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이다. 인수위원회는 부처의 업무보고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조직개편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당선자 인수위 측은 야당에 충분한 설명도 하지 않는 식의 ‘역대급’ 불통 행태가 이어졌고, 결국 이 법안은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강력한 반대 등으로 법안 제출 52일(임기개시 후 26일만이다)이 지나서야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인수위원회가 법제화된 이후 있었던 두 번의 인수위원회 활동을 되짚어보아도, 정권인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에 비해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4. 해외 사례, 인수위원회 있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정착된 다른 나라들은 어떤 정권인수절차를 거치게 될까? 

해외의 정권 인수 사례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표2>). 




의회중심제 국가의 경우, 수상 또는 총리의 직에 대한 인수위원회 혹은 관련 법률을 둔 경우는 거의 없다. 독일의 경우, 실질적인 인수인계는 연립하는 정당들로 구성된 연정위원회(koalitionausschuss)가 주도하는 연정협정(koalitionsvertrag)을 통해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되면 수일 내에 차기 행정부 조각을 단행하고, 각료 내정자가 중심이 된 인수팀이 해당부서의 업무를 파악하고 직무를 인계받는 식이다. 행정부와 의회의 역할이 일원적이고, 정치인들은 정당 및 의회활동 과정에서 행정업무에 관한 전문성을 쌓고 역량을 인정받게 된다.  

  

미국의 경우는 독특하다. 1963년 PTA법(대통령직 인수․인계법, Presidential Transition Act)이 제정된 이래로 인수준비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미국의 경우 <표2>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인수위를 통한 정권인수 방식이 강조된 이유는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양당제가 안정되어 있고 중앙당이 약하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 후보캠프 중심으로 치러지며, 정당은 표의 결집을 위해 후보가 드는 깃발의 역할이 가장 크다.  


행정부와 입법부 간에 엄격한 권력분립에 기초한 이원적 정당성이 명확하다보니,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업무인수를 위한 별도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2차 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영향력이 급증하면서 이임 대통령으로부터의 공백 없는 국정이양과 당선자의 완벽한 대통령직 인수의 필요성이 요구되었다는 점도 원인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정권인수의 역사를 짚어보면, 우리는 미국식 정권인수 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자기 나라의 정당체계와 권력구조에 부합하는 정권인수방식을 정치현실에 맞춰 다듬어 왔다.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라고는 하나, 우리의 통치제도는 미국식 대통령제보다 의회중심제적 요소가 많고 정당체계의 변동가능성이나 중앙당의 역할도 크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보다 정당의 역할이 보다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방향으로 정권 인수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이번처럼 별도의 인수기간이 없으면서 여야 간에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 대통령을 당선시킨 정당에 정권인수 준비체계를 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정당하다.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집권정당이 정권인수과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책임정치를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정당중심의 정권인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하고 싶은 바는 특정정당에 관한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을 예로 들어 ‘민주주의에서의 정권인수’에 관한 논의를 해보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당한 지지율을 점하는 강력한 수권정당으로서, 이미 두 차례의 집권 경험과 상당한 인재풀이 있으며, 지난 대선의 준비와 활발한 의회활동 등을 통해 국가적 의제를 다뤄본 경험도 풍부하다. 정당중심의 정권인수를 위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한다.  


책임정부의 원리를 구현하는 정권인수라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


뒤늦은 일이긴 하지만, 인수위 없는 정권인수에 대한 당내외의 우려가 컸던 지난 3월부터 정권인수를 정당 중심으로 준비하였다면 어떤 그림이 펼쳐졌을지 잠시 생각해 보자. 


대선후보 당내 경선 이후 선거관련일정과 별도로 당내 정권인수팀 준비작업을 추진한다. 곧이어 후보 주도로 선거대책본부 내에 정권인수팀을 특별기구로 설치한다(선대위에 인수위를 설치하는 것은 단순히 과시용이 아닌, 선거 과정이 곧 차기정부의 준비과정인 정당의 자연스러운 행위다).  

  

정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는 이유는 자기 정당의 정강정책에 바탕한 비전과 공약을 중심으로 미래의 정치를 하기 위함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선거는 후보 개인의 역량과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였으며, 정당의 역할은 국회의원들의 자기 지역 유권자 동원 정도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지난 대선 이후 수년간 지지율 1위를 지키며 모든 진영의 타깃이 되어온 문재인 후보의 경우, 후보의 개인기만으로 본선을 돌파하기보다 정당의 깃발아래 팀플레이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러한 팀플레이는 5개 정당 중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선대위가 당내 주류-비주류간의 물리적 혼합에 불과하였다면, 이번 선대위는 차기정부의 집권여당으로서 당내경선 과정을 통한 화학적 결합으로 당의 비전과 과제를 마련하여 임하는 책임정당의 첫 선거가 될 수 있었다. 

  

덧붙여 처음 치르는 ‘장미 조기대선’으로 법에 정해진 정부의 예산편성프로세스와 엇박자가 나는 부분과 관련해서도, 내년의 예산편성 및 올해 추경편성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부조직 개편과 장관인선 등 미리 준비해야 할 의제들과 관련해 실무 중심의 전문적인 검토가 이루어질 수 있는 조직체계 역시 구축해야 했다.  

  

조금 더 자세히 상상해 보자.    



같은 진영 내에서 지지표를 동원하기 위한 당내 경선은 본선보다도 갈등이 격화되기 쉽다. 정책에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차별화를 위한 계기는 지역색, 가족, 과거의 오점, 학력 등등 자극적인 소재를 강조하게 된다. 지지자들 간에 남는 감정적 앙금은 본선 경쟁후보에게보다 더 클 수도 있다.  

  

그동안의 일반적인 경선절차대로라면 형식적으로 결과에 승복하고 지지를 선언하는 모양새에 그칠 뿐, 당내 결속을 다지고 본선 승리를 위한 시너지를 갖기 어렵다(이미 수차례의 경험을 통하여 지지자들에게는 익숙한 마무리다).  

  

당내 경선이 민주당의 진정한 ‘하나의 후보’를 만드는 화합과 단결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어제의 라이벌들을 오늘의 한 팀(‘Team of Rivals’)으로 세우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어제의 라이벌들이 오늘의 한 팀(Team of Rivals)


- ‘권력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에이브러햄 링컨의 일대기를 다룬 책의 원제목으로,  링컨이 대통령 당선 뒤에 자신의 강력한 정치적 경쟁자였던 정치인들을 행정부 내각에 적극 기용함으로써 남북전쟁의 혼란기에 정치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음을 소개.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은 “‘팀 오브 라이벌’을 읽고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시기에 소속 정당을 뛰어넘어 자신과 경쟁했거나 자신에게 반대했던 인사들을 내각에 포함시킨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대통령으로서 역량있는 인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자존심이나 과거의 원한 따위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언론 인터뷰와 같이 정치적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였음


-2012년 대선 당시 정동영 상임고문은 야권의 대선 승리 전략과 관련해 '야권 대선주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팀 경쟁력'을 강조한 바 있고, 2017년 바른 정당의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Team of Rivals’을 언급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이를 본격적으로 실천한 정치인은 없음 


선거기간 당의 인수위는 정권인수의 준비작업인 동시에 경선과정에서 분열되고 소진된 지지자들을 하나로 묶어세워 본선경쟁을 위한 당의 역량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경선 경쟁자들의 정책과 추천인사(예를 들어 각 경선 후보 진영의 유력 국회의원)를 신정부의 정책패키지 및 인사풀에 포함시키는 등 정당과 각 후보 진영에 적합한 참여방식을 취하면 될 것이다.  




• [2단계] 대통령 인수위 구성(임기 개시 후) 


정당, 선거캠프, 분야별 전문가, 행정부를 인수위 체계로 묶는다. 의견수렴의 경우 현장방문과 같은 이벤트를 지양하고, 관련단체들의 입장과 의견을 수시 청취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1단계 정당의 인수위를 통하여 선별된 핵심국정과제의 방향성을 기초로, 부처별로 새정부 추진 과제를 가급적 풍부하게 발굴․제시하도록 하고, 인수위에서 그중 선별하는 방식을 취한다.  

 

‘국정과제위원회’로 시민참여형 공론장을 만들고 과제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를 제고시키며, 인물중심형 위원회가 아니라 의제(아젠다)중심으로 역할과 범위를 명확하게 한다. 

   

이때 정당은 인수과제, 캠프와 분야별 전문가와 행정부는 공동과제와 로드맵의 제시를 중점에 둔다. 정당은 당정청협의를 초반부터 진행, 내각의 집행내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조언한다. 인수기간 내에 로드맵을 완성하지 못한 과제는 해당 국정과제 위원회에서 정교화 작업을 수행하여 올해 안에 마무리한다.  


6. 최고의 인수팀은 정당 그 자체 


인수위가 있든 없든 별도의 인수기간이 있든 없든, 대통령 개인과 그 네트워크에 기대어 ‘준비된 척하는’ 정치는 박수받기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출마하게 된 목표는 껍데기만 남고 정부에서 가장 단련된 직업 관료들에게 의존하여 5년의 임기를 만성질환자처럼 ‘어영부영’ 마치게 될지 모른다.  


정상적인 정권교체의 경우도 정부조직 개편, 내각 및 청와대 인선 정부시스템 교체에 2~3개월은 족히 걸린다. 이렇게 보면 인수 기간이 없음을 불안해할 필요 없이 정당의 집권경험과 축적된 준비역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7년 5월 9일 밤, 광화문 무대에 당선이 확실한 후보, 당대표, 당내 경선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다음 정부는 “더불어민주당의 정부”가 될 것임을 선언했다. 이 장면이 책임정당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그 출발점에서, 이것 하나만 기억하면 좋겠다.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되고,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될 수 있는 체제"를 뜻하는 민주주의에서라면, 최고의 정권 인수 팀은 정당 그 자체라는 점을 말이다. 


※ 이 기획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분권과 협치의 대한민국 국가 운영 모델 연구"의 일환임을 밝혀둡니다. 



문재인의 '뜨거운 가슴', 바꾸느냐 무너지느냐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② 복합위기와 신정부의 과제
2017.05.12 14:27:48

1. 특별함을 요구받는 신정부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中) 

지난 10일 취임사를 읽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정은 다소 긴장된 듯 보였지만, 자신감에 차 있었다. 취임사 말미에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대목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의 결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새롭게 출범하는 민주당 정부의 앞길은 '자신감'과 '결기'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정부도 감당한 적이 없는 미증유의 위기와 과업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탄핵정국이 최고조에 달하던 지난해 말, 미국의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 예를 들면 재벌과 국가의 누적된 담합 구조의 위기, 둔화된 경제성장(sluggish growth) 및 조선 등 주력산업 산업의 위기로 표현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세계 5위 규모의 심각한 가계부채(ballooming household debt), 미중 양국의 보호무역주의 압력 증대, 사드·북핵으로 인한 지정학적 안보 위기 등을 지적하며, 한국이 경제 불안과 불평등, 안보위기에 정치적 위기까지 맞물려 있는 "복합적 위기(compounded crisis)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비단 외부 관찰자의 시선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경험한 현실이 모든 것을 웅변한다.  

지난겨울, 시민들은 집권세력의 책임을 묻는 주기적 선거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 여야를 넘어선 압도적인 시민적 합의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 과정은 민주화 이후 최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폭발적인 사회적 에너지의 분출을 동반했다. 

탄핵정국은 단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시민의 분노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촛불시위를 통해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이제 임계점에 다다른 사회적 불평등과 불균형, 민주주의를 압도해온 권력과 재벌 간의 동맹 체제, 대통령과 청와대에 초집중된 통치체제의 문제, 자율성과 자생력을 상실한 대학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무기력, 기능을 상실한 집권당과 취약한 정당체제의 문제 등 우리 사회에 만연된 구조적 위기가 더 이상 인내 가능한 수준이 아님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정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 신정부는 초유의 복합위기와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시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 사이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도 감당하지 못했던 특별함을 요구받는다. 신정부의 특별함이란 복합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민주적 통치 능력을 발휘하고, 이를 통해 숨겨진 기회 구조를 찾아가야 하는 막중하고 험난한 책무와 과업을 부여 받고 있다는 것이다.    

2. 신정부 출범의 조건-복합위기 

복합위기(conjuncture)는 사회구성체의 특정 영역에서 발생한 부분적 위기가 아니라 체제를 구성하는 두 가지 이상의 상호 연관된 국면(juncture)에서 동시에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따라서 복합위기는 그 성격 상 외과 수술식으로 특정 부분에 집중하는 단선적 대응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복합위기의 엄중함은 그 해결 방식이 반드시 총체적이고 체제적인 차원의 해법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 구조, 정치질서와 시민들 사이의 관계 등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측면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복합위기(Compounded Crisis, Conjuncture)

복합위기는 특정 영역에서 부분적으로 발생한 위기(crisis)가 아니라 체제를 구성하는 두가지 이상의 연관된 영역에서 동시에 발생한 위기(conjuncture)를 의미. 일반적으로 복합 위기는 각 위기의 국면(juncture, crisis)이 상호 연관되어 함께 발생하는 것(conjuncture, compounded crisis)으로, 대증적 차원의 아이디어와 특정부분에 외과 수술적 방식의 솔루션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며 반드시 체제적 차원의 복합적 해법을 요구한다. 


현재 신정부가 직면한 복합위기는 크게 세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첫째는 위기의 총체성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특정 요소나 영역(예를 들면, 경제 또는 정치 분야처럼 특정 부분)에서 단절적으로 발생한 위기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통상 등 각 분야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상호 연결된 총체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위기의 중대성이다. 현 위기는 임시적이고 부분적인 해법이 작동할 수 없는 전면적인 개혁과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사이에 놓인 "바꾸느냐 아니면 무너지느냐의 위기(Make or Break Conjuncture)"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새로운 체제를 위한 복합적 개혁의 분기점에 놓여 있고, 신정부는 그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퍼펙트스톰(Perfect storm)

원래는 기후학 용어, 위력이 세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을 만나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태풍으로 변화는 현상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음. 그러나 미국 금융위기를 예견한 경제학자 누니엘 루비니(Nouriel Roubini)에 의해 두 개 이상의 부분적인 위기들이 동시에 발생함으로써 직면하게 되는 파국적 상황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 

셋째는 위기의 예외성이다. 현재의 위기는 한국 사회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복합위기이다. 물론 이전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위기-대표적으로 민주화를 둘러싼 87년의 정치위기, 외환위기로 인한 97년의 경제위기-는 복합위기는 아니었다. 따라서 정치적 민주화나 IMF 구제금융 등 부분적 처방만으로 위기 극복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외교안보, 사회 등 사회 주요 구성 요소의 위기가 상호 증폭되는 예외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전례 없이 중첩된 위기의 심각성과 복합성은 신정부에게 관성의 경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신정부는 위기의 총체성, 중대성, 예외성에 대당하는 체제적 차원의 전환적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정권만 바뀐다고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 이후 누적된 체제 전반의 위기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역량을 효과적으로 결집시켜 나가는 새로운 통치 원리에 기반한 과감한 개혁 프로그램을 그 해법으로 요구하고 있다.  

신정부는 선거과정에서 과잉 쟁점화된 퇴행적 정치담론인 적폐청산론을 넘어 적극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신정부 국가 개혁 담론'으로 전환해야 한다. 탄핵국면과 선거과정에서 심화된 화해 불능의 적대를 통한 상호 분열이 아니라 '더 민주적인 나라 만들기'를 위한 건설적 타협과 협력을 추구하는 개혁의 신구상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나가야 한다.

3. 신정부가 직면한 위기의 구조 

위기(危機)는 위험(危)과 기회(機)의 통합체이다. 위기 속에 기회가 공존한다는 말의 의미는 새정부가 보여줄 통치의 내용에 따라 현재의 복합 위기 역시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인 도약의 기회로 전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의 <표1>은 신정부가 직면하게 될 대표적인 위기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은 촛불정국과 탄핵의 과정에서 상호 모순적인 광범위한 개혁요구를 정치권을 향해 투사하고 있으며, 개혁의 기대 수준 역시 정상적 임기 만료로 집권한 여느 신정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다. 대다수 시민들은 대통령을 파면한 것을 폭군을 내쫓은 일종의 명예혁명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다음 정부는 명예혁명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주조해야 하는 비상한 책무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위기의 비상함과 과업의 막중함에 비춰 신정부의 조건은 가혹하다. 당선자 인수위조차 구성할 수 없는 절대적 시간과 준비의 부족, 여소야대로 인한 의회권력의 취약성 등 물리적 한계로 인해 운신의 폭은 크게 제한받게 될 것이다. 신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도 손대지 못했던 국가-재벌 담합(동맹)체제의 해체뿐만 아니라 권력과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불균형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이는 더 이상 미를 수 없는 목전의 문제이다.  

신정부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갈등 상황도 문제다. 탄핵이후 일시 움츠러든 보수적 반대파는 정권 교체 이후 새롭게 자신의 영향력을 재구축하기 위해 적대적 갈등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촛불시위 vs 태극기 시위로 상징되는 정치적 양극화 역시 차기 정부의 정치적 조건으로 내연해 있다. 개헌론과 같은 강력한 갈등적 이슈들 역시, 다른 정치적 쟁점들과 함께 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전반적으로 정치·사회적 갈등 양상은 강도가 높고, 적대적이며, 동원되는 사회적 에너지도 크게 덩어리져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정부의 어려움은 이러한 내정적 요소들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대외적, 지정학적 외교안보 리스크 역시 신정부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특히 이들 요인이 국내정치적 불안정성과 결합할 경우, 위기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앞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우려를 제시한 것은 이러한 위기의 모든 측면이 상호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따라서 신정부는 특별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환적 과업을 부여받은 신정부에게는 역대 어느 정부도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과 건설적 타협과 통합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민주적 통치관, 통치 능력을 발전시킬 때 가능하다.  

신정부는 통치주체인 집권당과 함께 무엇보다 여소야대의 불안정한 다당 체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여소야대의 다당체제가 서로 분열적인 세력들 간의 적대적 권력투쟁이 아니라 각각의 존재를 상호 인정한 기반 위에서 민주적 게임원칙과 통합원칙에 의해 움직일 수 있도록 건설적으로 타협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분열하는 정치, 사회적 힘들을 개혁의 일관된 방향으로 조정 통합할 수 있다면, 위기적 정치 환경조차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질적 도약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통치의 안정성도 높일 수 있다. 설사 일부의 적대적 반대세력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정당 간 민주적 게임원칙과 통합 원칙이 다당 체제의 기초로 작동한다면, 그 영향력을 최소한의 범위로 묶어둘 수 있다.  

우리 정치에서 다당체제에 기초한 여소야대 분권정부가 항상 위기적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 상황에서 출범한 6공화국 초기 사례가 그렇다.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극대화된 정치 갈등 속에서 출범한 6공화국에서 여소야대의 4당체제는 정당 간 타협과 경쟁을 통해 적대적 갈등을 완화하고, 한국 정치 최초로 청문회제도 도입, 각종 권위주의 악법을 개폐, 북방정책 추진 등 개혁과제를 실현했다. 정치 밖의 운동적 힘에 의한 압박이 컸고, 동시에 집권세력 내부에서도 권위주의적 요구가 강력하게 온존했던 점을 감안하면 6공 초기의 이러한 성과는 정치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2004년 열린우리당 사례는 그 반대의 경우이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을 통해 민주화 이후 최초로 단독 과반정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개혁의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집권기간 내내 반대파의 거친 도전으로 인해 통치의 안정성조차 담보하지 못했다.  

상반되는 두 가지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문제는 위기 그 자체가 아니라 '기회 구조를 확대시킬 수 있는 통치 능력'이라는 점이다.  


<표2>는 신정부의 위기 속에 함축된 새로운 기회의 구조를 보여준다. 당선자 인수위 없는 정권 인수의 문제는 민주당이 갖고 있는 집권 경험과 누적된 준비 역량을 효과적으로 집중함으로써 정당정부의 책임성을 높일 기회의 측면을 갖고 있다.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형성된 시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은 정권의 개혁 추진을 위한 사회적 에너지이며, 탄핵정국에서 형성된 시민사회 내부의 적대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초를 가진 다원적 정치질서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의 구조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개헌문제 역시 의회를 중심으로 질서있고 체계적인 개헌 숙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이며 이를 통해 개헌에 대한 정치, 사회적 공감대를 폭넒게 형성해 나갈 수 있다. 개헌은 주장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시간의 요구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개헌에 대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숙의는 '개헌론의 정치'가 아니라 '실제로 개헌을 향해 가는 정치'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도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온 국가-재벌 담합 구조,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시장의 자율성, 조정자로서 국가의 능력을 구별 정립되는 전환적 사회경제체제를 형성시킬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적대적인 노사관계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으로서 노동의 대표성 또는 시민권을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한 사회적 동반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노사정 대타협의 실현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이다.  

신정부는 가혹한 정치환경에도 불구하고, 기회구조를 확대하고, 이를 통한 전환적 성과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폭넓은 공동 통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구두선이나 구체성이 결여된 담론적 접근을 통해서는 실현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둘러싸인 위기요인들 안에서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는 실질적인 노력이다. 즉, 적대와 분열에 기초한 사회적, 정치적 힘을 통제하고 건설적 타협과 협력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새로운 통치 원리와 능력이다.    

4. 통치의 문제가 중요하다 

※ 통치란?

통치를 의미하는 government는 '배의 키를 잡다'(steering)는 뜻의 고대 희랍어에서 유래함. 이후 라틴어 goberno(쿠베르노)를 거쳐 영어의 government로 정착됨. government를 politeia의 조정, 지휘 등 통치의 의미로 비유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은 플라톤임. 통치(government)는 거대한 함선을 이끌 듯이 정체(政體, politeia: 국가공동체) 전반의 조정, 집행, 조율, 운영 등을 포괄하는 책무를 의미함. 반면 통상적 의미의 '집행부'는 통치의 관료제적 행정적 차원의 개념인 'adminstration'으로 구별해 사용.  


현재의 복합위기는 본질적으로 민주화 이후 30년간 누적된 체제적 긴장과 갈등에 기초하고 있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되지 못한 통치체제의 문제가 그 핵심이다. 즉 촛불정국을 통해 표현된 대한민국 복합위기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온 "초집중화된 위계적 통치체제(박정희식 발전국가 체제)와 민주화 이후 증대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사회구성체 각 영역의 민주적 통치 능력의 요구 사이의 누적된 모순의 표현이자 그 결과이다.    

촛불정국을 집약하는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슬로건이 담고 있는 함의는 민족주의적 감흥에서 비롯된 과거의 운동적 구호의 연장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본질적으로 갈등하는 낡은 통치체제-국가모델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다운 새로운 통치의 방향과 원리를 제시하라는 요구이다.  

따라서 신정부는 한국 민주주의를 체제적 차원에서 민주화하는 새로운 비전, 즉 "어떤 민주주의, 어떤 나라, 어떤 정부인지"를 포괄하는 통치의 원리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 평등, 인간다움 등 고유의 이상과 가치를 의미하는 이데올로기 이전에 정치, 사회 전반을 규율하는 하나의 질서(Ordnung)이자 통치체이다. 하나의 통치체로서 현대 민주주의는 선거와 정당을 중심기제로 작동되며, 광대한 현대 국가에서 시민 속에 뿌리 내린 정당만큼 중요한 통치주체는 없다.  

※ 민주주의 또는 민주정체(democracy)

- 민주주의는 시민(demo)과 통치체(cracy)가 합쳐진 개념으로, 현대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시민이 선출한 대표들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하나의 통치체제(government)임. * 시민을 의미하는 demo는 지역의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음. 따라서 분권은 수의 평등과 지역의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정체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임.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이 정부가 되어 나라를 통치하는 체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은 정부라는 조직화된 집합체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구성체 전반을 '정치적 지배-통치'의 관점에서 다루고, 다양한 집단적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책임있게 구현해야 한다.  

※ 통치의 중요성
최선의 정치공동체(politeia)를 만들고자 하는 실천적 행위인 통치는 정치의 가장 중심적 개념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통치를 에로스(Eros)로 표현하기도 했음. 즉, 좋은 사회구성체를 실현하고, 이 과정에서 좀 더 자유롭고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하는 행위를 가장 에로틱한 것으로 인식. 

현대에 들어와서도 통치는 정치학의 중심 개념임. 대표적으로 미국의 하버드대 정치학과의 이름은 흔히 정치학과의 이름으로 통용되는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가 아니라 department of government임. 


5. 분권과 협치를 민주적 개혁의 기본 원리로 재정의하자 

필자는 새로운 정부의 통치 원리로서 '책임과 자율에 기반한 분권과 협치'를 제안한다. 주지하다시피,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분권과 협치'의 담론은 주로는 통치와는 무관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사이에서 작동하는 비정치적이며 행정적인 것으로 수용됐다. 민주화 이후 '분권과 협치'라는 언어는 무성해졌지만, 통치구조, 즉 위계적이며 중앙집중적인 권력구조는 오히려 강화되어 왔다. 

제안하는 것은 '분권과 협치'를 본래적 의미, 즉 통치의 관점과 시야를 담지한 체제전환적 담론으로 재정립하고, 위계적이며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를 재구성하는 전환적 함의를 갖는 강력한 정치언어로 복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첫째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초집중화된 국가체제를 '책임과 자율에 기반한 분권과 협치의 민주적 국가공동체'로 전환하고, 둘째, 분권과 협치를 기존 중앙정부와 지방자차단체,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라는 비정치적 범위를 갖는 담론이 아니라 사회구성체 전반을 포괄하는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통치의 범위를 갖는 민주적 정치담론으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대통령-청와대로 집중된 권력구조를, 정당을 포함한 정치, 사회, 경제 각 부분의 중간조직들이 파트너쉽을 형성하고, 다원적인 공동 통치 영역(condominium)을 확장해 나가는 민주적 통치구조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더 넓은 통치 원리로서 분권

분권(decontralization)은 약한 분권(deconcentration)과 강한 분권(devolution)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약한 분권은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즉 중앙정부의 자원 일부를 '지방자치단체'로 분산하는 것이다. 반면 강한 분권은 권한의 위임을 기본으로 한다. 중앙의 자원뿐만 아니라 기능과 역할을 중앙의 다른 레벨로 위임하고, 자율적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을 갖게 하는 것이다. 강한 분권에서는 권한 위임의 대상이 지방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사회, 경제 전 영역에 걸친 자율적 시민적 결사체가 그 대상이 된다. 

※ 분권(decentralization) 개념의 분류
- deconcentration : 분권의 가장 약한 형태로, 중앙권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의 사무, 기능, 자원 등을 지방(low-level)으로 분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지방분산은 중앙정부의 통치기술적 필요에 복무하는 경향이 있다.  

- develution : 연방주의를 제외하면 분권의 가장 강력한 개념이다. 중앙정부로부터 사무, 기능, 자원 및 자율적 결정권한을 지방을 포함한 다양한 자율적 사회 결사체로 위임-이전(transfar)하는 것이다. 권한을 위임받은 지방정부 및 자율적 결사체들은 위임된 영역에 대한 독립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는다. 실질적인 권력구조가 중앙집중적 위계구조에서 다원적 권력 구심간 파트너쉽에 기초한 공동통치 영역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분권'은 약한 분권만을 의미했다. 주로 '중앙vs지방'의 일면적 시각에서 중앙정부의 자원을 떼어내 지방자치단체로 나누는 행정적 수준에서 다뤄졌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중앙의 자원은 지방으로 꾸준히 분산되어 왔으나, 주로 수직적 성격에 머물렀고, 따라서 분권이 중앙집중적인 위계적 권력구조에 준 충격이나 영향은 거의 없었다. 분권이 협소하게 정의되고 실행되다 보니,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이 정치과정에 개입할 유인은 거의 없었고, 다양한 자율적 시민 결사체의 실질적 활성화에도 기여하지 못했다. 

특히 참여정부 이래 지역균형발전이란 이름으로 공공기관 및 공기업 지방 이전, 혁신도시개발 등이 추진되었지만, 권력구조의 변경 없는 지역개발 사업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것도 하나의 사례이다.   

약한 분권이 노정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중앙집중적 위계적 질서가 지방 차원에서도 그대로 복제된다는 데 있다. 중앙의 자원을 이전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회나 다양한 중간조직을 우회해 무정형의 시민을 직접 포괄하는 방식으로 행정력을 강화해 왔다. 이것은 분권이 지향하는 민주적 원리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지방정치 내의 분권적 구심 형성 및 활성화를 가로 막는 요인이다.  

더 넓은 통치원리로서 분권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다뤄져온 약한 분권의 한계를 뛰어 넘어 통치의 다원적 기반을 강화하고, 사회구성체 차원의 균형발전과 협력을 통해 중앙집중적 권력구조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강한 분권(devolution)'을 의미한다. 강한 분권은 중앙집중적 위계구조를 정당을 포함한 다양한 시민 결사체들이 권력적 중심이 되고, 이들 사이의 파트너쉽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통치의 구조로 변경하는 것이다.  

강한 분권은 분권화된 공동통치 영역들 간의 수평적 책임성을 강화한다. 수평적 책임성은 통치영역을 서로 분립시켜 상호 견제시키는 것을 말한다. 삼권분립은 대표적이지만,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당간, 자본과 노동, 지방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지방 안에서도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간의 균형, 정부 내에서도 청와대와 내각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국가와 사회 사이의 다양한 집합적 행위자 또는 이해관계자들이 통치 영역의 권한을 위임받고, 이를 통해 통치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사회 각 부분의 다원적 활력을 높여나가고, 초집중화된 국가체제를 분권화된 국가체제로 대체하게 된다. 강한 분권의 체제 하에서 정부는 일방적 결정자가 아니라 다원적 구심간의 조정자로서 자기 위상을 재정립하게 된다. 


<그림1>은 위계적 통치구조가 강한 분권 하에서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준다. 강한 분권의 체계에서는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권적 구심이 형성되고, 이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공동 통치 영역을 확대하는 촘촘한 그물망식 구조가 만들어진다. 

강한 분권은 크게 네 가지 영역에서 위계적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분권적 공동통치 체제로 전환한다.  

첫째는 정부 vs 정부의 관계를 가지는 지방 분권이다.  
중앙에 종속된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승격시켜 중앙과 지방의 위계적 관계를 '정부 대 정부'의 대등한 관계로 전환시킨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단순한 집행기관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적 역량과 결정권한을 가진 통치주체이자 국정의 동반자로서 재정립 된다. 또한 중앙정부 역시 위계화된 권력구조의 정점이 아니라 외교안보, 장기적 국정 개혁과제 중심의 국정운영 등 특수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지방정부로 자기 위상을 설정함으로써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과 책임을 분산할 수 있다. 일상적 국정 운영의 많은 부분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공동통치 영역을 통해 협력적으로 처리된다. 이미 민주당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참여하는 제2국무회의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새로운 공동통치 모델로 구체화 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는 강한 의회를 통해, 정부와 의회간의 균형을 실현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이 중심이 되는 통치체제이지만, 한국정치에서 의회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권위주의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의회는 정부에 대해 수동적 비판자 이상을 하지 못했고, 집권당 역시 정부입법을 보조하는 역할을 이상을 하지 못했다. 입법부의 역할을 다시 일깨운 것은 시민들이었다. 대통령 권력이 사실상 정지된 탄핵정국에서 시민들은 정치의 중심으로서 입법부의 역할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헌정중단에 준하는 정치적 대혼란이 탄핵, 특검 등 제도적 경로를 따라 차분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통치기구로서 의회의 책임과 권한을 재발견한 것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강한 의회는 능력 있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정당은 그자체로서 하나의 통치기구이자 대안정부이다. 의회는 오늘의 통치자와 내일의 통치자가 국정에 대한 책임을 나누고 협력하는 장이다. 통치에 있어서 입법부의 위상을 되찾고, 정부와 의회간의 균형과 협력은 우리 민주주의의 핵심적 과제이다.

셋째는 자본과 균형을 이루는 노동의 강화이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은 자본과 노동이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사이의 균형은 한 사회의 통합과 협력을 가능케 하는 사회경제적 토대이다.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재벌의 담합(동맹)체제는 우리 민주주의를 압도했다. 국가와 동맹한 재벌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반면, 핵심 생산자 집단인 노동은 사회경제적 시민권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노동이 자본과의 관계에서 균형 있게 대표되지 못한 결과가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및 불균형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정치공동체의 통합과 협력은 불가능하다. 노동이 일정한 경제적 시민권을 획득/부여받고, 사회와 생산체제에서 주요하고도 정당한 행위자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이에 기초할 때만이 노-사간 대등한 협상과 타협이 가능하고, 노사정 대타협 모델도 실현될 수 있다.

넷째, 청와대와 균형을 이루는 내각의 책임성 강화이다. 
청와대가 모든 권한과 정보를 틀어쥐고, 국가-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체제는 이제 시대착오적인 것임이 분명해 졌다.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가 개혁의 진지가 되어 사회를 일거에 변화시키겠다는 발상도 실현 가능하지 않다. 신정부는 내각과 함께, 내각을 통해 일해야 한다. 내각 위에서 군림하는 청와대 각 수석을 포함해 정부 안의 정부로 비대해진 비서실 체제 전반을 축소 재편해야 한다.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내각의 보좌를 받아 내각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각 역시 영역별로 내각간 협력에 기초해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받고, 책임있게 일할 수 있도록 재편성되어야 한다.  

비단 네 가지 방향의 분권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 사이의 중간 조직, 자율적 결사체들과 통치의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다양한 공동통치영역을 형성할 수 있다. 분권적 체계 아래서 정부는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전반적인 조정자로서의 정치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것은 정부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분권은 통치의 권한과 책임을 분담케 함으로써 신정부에 쏠린 과도한 부담과 위험을 줄이고, 확산된 공동통치 영역을 통해 사회구성체 전반의 활성화할 수 있다. 또한 적대적 반대연합의 최소화해 개혁을 위한 정치 사회적 기반을 두텁게 만든다.  


정부와 사회의 협력적 통치를 지향하는 협치(governance)

협치를 뜻하는 governance는 통치(government)와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는 정치언어이며, 본질적으로 통치의 특정한 방법이다. 협치는 통치의 잔여 개념이 아니며 중앙집권적 위계적 통치와 다른 통치의 방법이다. 협치는 정부와 사회 사이의 자율적 권한과 책임을 가진 강력한 분권적 구심들 간의 협력적 통치와 이를 촉진하는 정치적 실천이다. 따라서 강한 분권은 협치의 전제이다.   

그러나 통치의 방법인 협치가 기업, 인터넷, 국제기구,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각자의 필요에 맞게 변용되어 사용되면서 개념상의 혼란이 크다. 협력이나 교류 그 자체를 협치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는 무정형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협치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협치는 주로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무정형의 시민들을 행정체계의 말단에 참여시키는 것 또는 기존 시민단체들을 행정기관의 예산과 기획에 종속시키는 '관치의 민영화'로 다뤄져 왔다. 이 과정에서 행정체계는 시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지방의회)와 지방의 자율적 결사체를 우회해 직접 시민들과 대면함으로써 의회의 정치적 기능을 축소시켜 왔다. 이것은 협치가 아니라 일종의 포퓰리즘에 가깝다.  

이런 접근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다. 즉, 공적 업무를 축소, 민간에 이전함으로써 중앙집중화된 위계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관료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이는 온전한 의미의 협치라 할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율적 결사 및 집합적 행위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적 통치 모델로서 협치는 무정형의 시민이 아니라 공공정책의 수요자 및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관한과 책임을 나눠 갖고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종래의 정부의 역할은 전환된다. 협치체제에서 정부는 기존 중앙집중적 위계적 체제에서의 정책 결정자 또는 일방적 지시자에서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자 사이의 협력과 타협을 촉진하는 조정자로 그 역할과 성격이 변화한다. 

협치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정부가 조정자로서 참여하는 핵심생산자집단 간의 타협 모델인 노사정 모델이다. 스웨덴, 독일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노사정의 협약은 법률에 준하는 제도적 효력을 가질 만큼 국정운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 산업 및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사회의 중요한 이해당사자-정당(의회), 기업, 노동조합, 대학 및 연구기관 등-이 공동으로 협력해 그 방향과 내용을 설정하는 방법도 이미 서구 민주주의에서는 모델화 되어 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협력의 촉진자, 조정자으로써 사회를 더 단단하게 결합시킨다.   

협치는 공동통치 영역에 참여하는 기존의 사회집단 외에 정치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자율적 결사를 촉진함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조직적으로 대표될 수 있도록 추동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그림2>는 협치의 체계와 원리를 표현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권력주체들이 분권의 원리에 따라 조직되고, 이를 토대로 통치의 관점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함으로써 사회가 보다 폭넓고 균형있게 통합되도록 한다. 시민들은 정당과 자율적 결사체를 통해 자신의 이해를 통치의 영역에 반영하고, 사법부나 지방정부는 정부의 위계적 질서하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쉽을 갖고 정부와 협력함으로써 수평적 책임성을 구현하게 된다. 기업 역시 과거와 같은 권력과의 담합(이것은 기업의 출혈 역시 수반한다)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 주체로서 동등하게 노동조합, 정부 및 사회의 다양한 결사체들과 협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6. 새로운 통치의 시간-새로운 국가체제를 만들자 

정당간 경쟁과 대립이 극대화되는 선거는 끝났다. 이제 새롭게 출범하는 민주당 정부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통치의 시간이다. 통치는 조직적으로 분출하는 다원적 갈등을 조정 조율 통합함으로써 공동체의 안정적 변화를 형성해 가는 정치의 중심적 기예이다. 통치는 비단 집권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안정부로서 미래의 통치자가 되고자하는 모든 정당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다.  

통치의 시야와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여-야, 진보-보수에 관계없이 책임 있는 정당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부과된 의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통치의 가장 주체로서 신정부는 이제 정권 교체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새로운 국가 체제를 만드는 보다 근본적이며 전환적인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분권과 협치에 기반해 국가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조화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민주적 통치의 시야와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경쟁정당들, 시민의 자율적 결사체들은 물론이고 집권 세력 내부조차도 체계적으로 적대하고 배제시켜온 기존 통치 모델의 위태로운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박근혜 정권이다.

탄핵정국에서 우리 시민들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화되어 온 대통령-청와대를 중심으로 초집중화된 위계적 권력체제 끝내라는 거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아 주었다.  

이제 정치,사회의 다원성에 기초한 새로운 통치질서를 통해 새로운 국가체제를 형성하는 것은 신정부를 포함해 우리 사회 공통의 과제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것이 구두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조급해서도 안 된다. 먼저 체계를 세우고 체계가 자율적인 힘을 갖고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온건 다당제를 통한 타협과 협력, 내각을 포함한 입법부 사법부와의 협력, 기업 노조의 협력 국가와 사회의 협력 등 정치사회적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절반의 승리를 모두의 승리로 바꿔 낼 수 있는 공동통치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신정부가 새로운 국가체제를 주조하는 실질적 조정자이자 촉진자로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분권과 협치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역사적 과업을 참착하고 끈기 있게 수행해 나가길 바란다. 



최장집 "文대통령이 직시해야 할 다섯 가지 명제"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③ 때늦은 데탕트 (1)
2017.05.15 14:14:14

이번 기획의 3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발전소 이사장)의 글 <때늦은 데탕트 :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외교정책의 지평을 더 늦기 전에 열어야 하는 이유>(원제)를 2회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최 교수는 이 글에서 북한을 현실의 눈으로 직시할 것을 조언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가 외교 정책의 전환을 위해 반드시 견지해야 할 관점을 제시합니다.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I. 한국 외교정책의 다섯 가지 명제 

1)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한반도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은 관측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북한의 핵무장화를 가시권으로 당겨 놓았다.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온 북한이 이를 핵탄두로 장착할 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가공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북한 핵문제는 임기 말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대 의제가 되지 못했다.  

금년 초 취임한 트럼프 신정부의 대북정책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은 가상이 아닌 실제로도 가능한 예측불허 상태가 되었다. 한국의 군사안보 관련자들이나 분석가들 그리고 미 국방부의 안보관련 군사 전략가들은, "군사적 공격이 오직 핵과 미사일기지를 제거하기 위한 제한적인 것일 경우라도 북한으로부터의 재난적 보복을 불러올 것이고, 촉발시킬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International New York Times(이후 INYT로 약칭) 4/12일자)  

미국이 초정밀, 신무기를 사용해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것을 통해 위험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다하더라도, 이 공격에서 살아남은 북한포대의 반격은 근거리 사정권인 경인지역에 밀집돼있는 2500만 주민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그것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재난적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미국과 한국의 군사안보전문가들은 이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1994년과 2003년 두 번에 걸쳐 핵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과거 클린턴정부나 부시정부 때와는 달리, 지금은 처음부터 대북강경노선을 천명하고 나선 트럼프정부와 미국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대담함을 보이면서 핵무장화와 미사일 실험을 추구하려는 북한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오늘의 미국, 북한 간의 치킨게임 상황은 그 이전에 비해 훨씬 더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오늘날 세계는 1980년대 말 동서냉전이 종결된 이후로서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를 맞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만큼은 이러한 세계적 수준에서의 체제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때와 유사하게 또다시 군사적 대립의 진원지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활화산 정상에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이러한 상황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별무대책으로 살아야하나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2) 냉전 반공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니다 
 
한국 정부의 지도자들,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당국자들, 정치권의 정치인들이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이렇다 할 대안을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무력충돌의 위험성은, 미국 또는 일본 또는 중국으로부터 그 심각성이 전해질 때에서 비로소 사실의 엄중함을 느끼게 되고 그때에야 이슈화된다. 

트럼프 정부에 들어와 대북 강경정책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높인다는 우려를 누구보다 먼저 표명했던 사람들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대표로서 북미 기본합의를 타결했던 로버트 갈루치나 역시 동아태차관보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한 크리스토퍼 힐 같은 미국 외교관들이었다. 정작 한국의 지도층들은 미국만 쳐다보고 불안 혹은 안도를 하는듯한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그저 남의 집 불구경하듯 일희일비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대선에서의 후보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남북한 간 긴장과 안보 문제가 대선과정에 던져진 그 어떤 것보다 심각한 중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설득력 있는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보다는 낡은 냉전 반공주의적 이념 틀을 통해 서로를 공격하거나 혹은 행여 민감한 이데올로기적 중대 이슈를 잘못 건드렸다가 표 떨어질까 두려워 안전제일주의를 취한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과 조건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안전은 지극히 위태롭다. 

우리의 운명은 한반도에 대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중국 간의 정치적 게임의 함수인 듯 보일뿐이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보수정당의 후보들은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 현실성을 갖는 것인지에 대해 숙고함이 없이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든가, 전술핵무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등의 강경책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대안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미국만 쳐다보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의 무역보복에 대해 민족주의 감정을 일깨우면서 대국으로서 치졸하다고 비판하는 대응밖에는 없어 보인다. 우리의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보호와 한미 군사동맹의 공고화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안보와 평화라는 우리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한다는 인식이 그 어떤 것에도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결정할 때,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그 결정이 갖는 국제정치적 의미 자체 내지 그 중요성을 특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그로인한 중국의 무역보복 자체를 예상조차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지금 한반도를 진원지로 하는 군사적 긴장과 대립은, 남북한 당사자들은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그 이해관계들이 상충하고 또 결합하면서 과거 냉전시기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 국제관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제정치 환경에서 박근혜 정부의 탄핵과 조기 대선을 통한 대통령의 선출과 새 정부의 출범은, 새로운 국제정치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남북한관계, 대북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시점은 촛불시위라는 격변적 방법을 통한 정권 교체와 외교안보 정책의 위기가 중첩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에서 우리가 현재 처한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반도에서 냉전시기 전체를 통해서도 이루지 못했던 지체된 데탕트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어떻게 남북한 간의 군사적 대립을 넘어 상호간 평화공존의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지금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 해결책을 탐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익숙한 방식, 즉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대북정책 내지 통일정책으로부터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으로 대북정책, 남북한관계는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긴 우회의 길을 통해 통일에 이르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이라는 이상은 그 평화의 지평 저 너머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 오직 평화를 제도화하는 것을 통해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 이외에 다른 가치, 다른 목표는 있기 어렵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를 상대화하는 일이다. 민족주의보다 더 우선하고 높은 가치는 평화의 가치이자 목표이다. 

3) 새로운 목표를 위한 가정과 명제 
  
이를 위해 나는 다음에서 다섯 가지의 명제 또는 가정들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를 북한에 대해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이해한다든가 하는 가치판단이 함축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가치, 희망적 사고를 통해 보는 것을 잠시 밀쳐두었으면 한다. 즉 철저하게 가치중립적으로 사실 그 자체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김정은 정권의 붕괴가 곧 북한정권, 즉 북한체제의 붕괴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때, 북한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는 그렇지는 않다. 그러므로 김정은 정권의 붕괴가 통일을 의미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반도 통일은 분단의 원인이 그러했듯이 남북한 간 쌍방관계가 아니라, 동북아국제질서 내지 국제체제의 함수이다. 남북분단을 떠받치는 동북아 질서가 있기 때문에 북한이 존립하고 있는 것이지, 김 씨 정권이 북한을 지배하기 때문에 북한이 존립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의 통일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통해서 가능할 수 없다. 힘에 의한 것으로서는 통일이든 평화든 모두 불가능하다. 북한의 존립은 무엇보다 냉전을 통해 실현됐듯이 동북아 질서에 있어 지정학적 특성에 힘입은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다. 이 관계를 역사적으로 분명히 보여주었던 것은 6.25전쟁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별도로 자세히 살펴보겠다. 

넷째, 평화를 남북한관계의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 추구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플레이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의 공조와 상호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어로서의 한국은 한미관계의 범위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와 그 변화에 대한 비전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 

다섯째, 안정적인 평화지향적 대북정책의 추구는, 한국정치와 사회에서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 진영에 의한 것 만으로서는 성공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햇볕정책'으로 불린 평화공존 정책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힘에 의한 강경정책을 통한 흡수통일 정책은 이 점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여기에서 1980년대 말 냉전해체와 더불어 노태우정부가 처음으로 "한민족공동체" 형성을 통해 통일문제를 접근했던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이 대북정책의 변화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독일통일과정에서 아데나워의 '서방정책'과 브란트의 '동방정책'간의 컨센서스 형성으로부터 모델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이상과 같은 가정 내지 명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보겠다.  

ⓒ프레시안(최형락)



II. 현실에 대한 다른 이해가 필요하다  
: 김정은 체제에서의 북한과 북핵 그리고 사드문제

1. 민족주의의 상대화를 위한 평화공존 

나는 남북한 간에 평화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공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평화공존은 가치, 이념, 생활양식, 국가의 제도와 사회구조가 다른 두 체제가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 동의하고 그것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앞에서 나는 평화를 위해 민족주의를 상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두 측면 내지 두 요소를 갖는다. 

하나는 대내적인 것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를 유연하게 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가장 간단한 정의는 '일민족 일국가주의'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돼있어 한반도에는 사실상 두 개의 주권국가가 존립하고 있다. 남북이 공통적으로 민족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준봉(遵奉)하면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실현하려한다면 공존은 어렵고 평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남과 북에서 각각 정당성/정통성의 문제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라는 가치가 경직적으로 정의된 민족주의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외적인 것으로, 다른 여러 경쟁적인 이념이나 가치가 얼마든지 존재하고 존중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가치들이 존재함을 수용하는 것이다. 즉 다른 이념이나 가치에 대해 열린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는 '열린 민족주의'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공산주의, 김일성주의, 전체주의와 같은 이념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을 가질 때 다양한 이념들이 민족주의와 병행하고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의 가치, 또는 인간의 물질적 향유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을 수 있다. 요컨대 민족주의만이 아닌 다른 가치들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평화공존은 가치와 이념을 다변화함으로써 하나만의 가치와 이념을 위해 생사투쟁을 벌이는 열정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상대의 존재, 체제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마음의 상태를 갖도록 한다. 물론 평화 그 자체가 다른 체제를 통합하기 위해 피를 흘리지 않는 것도(그 결과가 통합을 가져오든 아니든) 보다 더 의미 있는 가치라고 깨닫게 되는 것도 민족주의를 상대화하는 것이다.  

평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점차 이를 제도화해 나간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현존하는 두 국가, 두 국민들 사이에서 현재로서는 양립하기 어려운 서로 다른 체제의 성격, 이데올로기에 대해 상대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존하겠다는 일종의 '잠정협정'(modus vivendi)의 성립에 도달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평화공존을 위해 불가피하고, 또 필수적이다. 스스로의 가치와 이념을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상대방에게 이것을 부과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다른 체제와 공존하는 것을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항구적일 필요는 없다. 잠정적으로 각자의 일방주의적 욕구를 중단하는 것을 통해 평화를 위해 공존해야함을 수용하는 데 합의해야 하는 필요가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남북한 쌍방이, 통일 또는 국가연합 등 어떤 형태의 것이든, 새로운 국가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2.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해하기  

상대를 정복하기 위한 것과, 평화공존을 실현하기 위해 상대를 이해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를 갖는다. 정복을 위해 또는 상대를 적으로 이해할 때, 주된 관심은 우리의 우월성을 암묵적으로 전제하면서 상대방이 얼마나 나쁘고, 얼마나 역기능적이고, 얼마나 취약한가, 그리하여 그 체제가 왜 종국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는가 하는데 두어지게 된다. 가치관, 이데올로기적 전제가 강할 때 희망적 사고가 이해과정을 지배하게 된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전망이 사실이 아니었음은 오늘 이 시점에서의 북한의 존재 자체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붕괴되기는 고사하고, 유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군사적 위협이 증가하는 점점 더 가공할 체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와는 달리 평화공존을 실현코자 노력할 때 우리는 상대를 협상의 대상으로 전제한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무엇을 원하고 있고, 무엇을 지향하는가하는 질문을 중심으로 있는 그대로 북한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과 무엇을 거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나, 어떻게 핵무장화에 이르게 되었나, 그것은 무엇을 목표로 하나, 오늘의 북한은 과거에 비해 어떻게 변했나, 아버지 김정일 체제와 아들 김정은 체제는 어떻게 다른가하는 의문들, 즉 있는 그대로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5장에서 "사변적 상상보다는 사물에 실체적 영향을 미치는 실체적 진실"(alla verità effettuale della cosa, che alla imaginazione di essa)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외국 자료나 외신을 통해 나타나는 북한의 실체는 우리가 한국에서 이해하는 것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예컨대 중국전문가이자 천안문사태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미국콜럼비아대학 정치학교수 앤드류 네이탄이 미국의 대표적인 저널에 기고한 글을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2016년 8월 18일자, 63권 13호). 

북한에 관해 최근 출간된 주요 문헌들을 종합한 그의 글 내용은, 붕괴 직전의 북한이 아니라 북한체제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고, 실제로 작동하는가에 대해 말한다. 김정은에 대한 평가는 사뭇 흥미롭다. 동북아지역에서 최약체 국가인 북한이 모든 국가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생존을 위한 "능수능란한 솜씨"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미 냉전시기 전 기간을 통해 미소 간 경쟁의 틈바귀에서 이득을 취하며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는 바깥세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 한국에서 북한의 취약성을 말할 때, 중국과 북한관계의 악화가 북한체제 유지를 어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해석되고는 한다. 그러나 현실 상황은 그렇지 않다. 네이탄에 따르면, 지금 북한체제는 자신이 존립하는 것과 붕괴되는 것 둘 다에 의해 화를 불러올 수 있는 능력으로 세계의 나머지와 대적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정은에 대해서는 가장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에서 일종의 성공으로 상황을 전환시켜, 애초 회의적이었던 관측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상당한 평가를 한다.  

김정은은 부단히 경계하고, 필요할 때 무자비할 수 있고, 완만하나마 경제회복을 실현했고, 핵강국으로 북한의 입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체제가 붕괴할 수 있는 유일한 위험 요소는 젊은 김의 건강이 나빠지느냐 아니냐하는 것인데, 그럴 경우에도 강력하고 단련된 군부가 질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만약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중국이 수혜자가 될 것이다. 많은 서구전략가들이 요구하는 긴급계획들에 관한 토론을 가져야할 필요도 없이 중국이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된다 해도, 그것은 극히 만족스럽지 못한 승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망 속에서 젊은 통치자와 북한주민들은 그 자체가 악몽의 연속이 되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탄에 의하면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북한이 핵무장화를 밀고 나갈 때 동북아지역의 미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을 포함하는 이해당사국들이 군사전략적으로 무력에 의존하는 정책을 밀고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인접국가에서 핵전과 대규모 피난민을 만들어낼 잠재성을 갖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이 중국에 이로울 것은 하나도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남한에서 사드(미국의 레이더, 미사일방어체제) 배치를 미국과 합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베이징은 워싱턴이 생각하는 식으로 북한 문제를 위기라고 고려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황이 중국에게 일정하게 혜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평양의 교란적 행태는 미국, 일본, 한국을 포함하는 미국의 맹방이자 파트너들이 북한의 위협을 다루는데 있어 다른 우선순위를 갖는 까닭에 이들 사이의 관계에 긴장을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이 중국에 더 가까워지도록 드라이브하고 워싱턴으로 하여금 베이징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엇이든 도와주는 노력을 한다면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스스로를 중심적인 외교적 중재자로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비록 중국 사람들이 김 씨 왕조를 결코 좋게 보지 않더라도 현존하는 북한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주로 워싱턴에 달려있다고 본다. 중국인들이 보는바에 의하면, 그동안 평양이 그렇게 말해왔듯이, 북한의 핵정책은 그들의 존립에 대해 미국이 가해온 수십 년 동안의 위협에 대한 필연적인 반응이다. 중국 전략가들은 만약 워싱턴이 북한체제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면 평양은 핵프로그램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워싱턴이 이러한 방향에서 여러 가지를 말해왔다 하더라도, 그런 말의 내용들은 믿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확실하고, 공공적이지 않았다. 

1994년과 2005년 두 번에 걸쳐 핵무기를 폐기하려는 중요한 협상이 있었지만, 평양과 워싱턴이 서로에 대해 이중적이라는 비난 속에서 그 협상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중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을 비핵화시키는 것은 너무 늦었다.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하나의 핵 강국으로서 국제적 인정이다. 네이탄의 견해를 따르면, 결국에 가서, 미국은 그의 요구에 응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본다. 

3. 합리적 미친 짓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이 문제에 대한 반응들을 뉴욕타임스를 통해 볼 때에도 앞에서 말한 네이탄의 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은 실제로 전쟁을 원치는 않지만, 전략적이고 의도적으로 항구적인 전쟁위협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본다. 북한의 행태는 일견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INYT, 2016년 9월 12일자) 이러한 행태는 더 교묘한 위험이지만, 중대한 위험임에 분명하다.  

여기에서 북한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정치지도자들이 언제나 최상의 또는 가장 지고의 도덕적 선택을 하거나, 또는 그 지도자들이 정신적 적합함의 어떤 전형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자기보존의 핵심인 자기이익에 따라 행위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한다면, 북한의 외부환경으로서 국제환경은 북한이 행위 하는 인센티브의 체계를 구성한다.  

뉴욕타임스는 한 정치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북한 지도자들은 능수능란하게도 그들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결정했고, 그에 따라 행동했고, (…) 극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궁전을 운영하고, 또한 국내, 국제정치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목적과 수단 사이의 상응성을 계산할 수 있는 합리적 지도자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이러한 '비합리성의 합리성'을 구사하는 동기에 대해 그 역사적 배경을 이렇게 제시한다. 북한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듯 정신병자 같은 행태를 보여주는 데는, 그들의 체제존립을 위태롭게 했던 두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하나는 군사적인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전쟁상태에 있는 한반도는 미소 교착상태에서 냉전의 해체로 인해 남한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고, 북한은 서방과의 연계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둔 변화된 중국에 의해서만 보호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됐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것이다. 모든 한국민을 대표하는데 경쟁관계에 있었던 한반도의 두 국가는, 1990년대에 들어와 남한은 민주화로 인해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돼 남북한 간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져버렸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답이 군사주의 최우선 정책이다. 국가의 빈곤은 군사력유지에 필요한 것으로 정당화되고, 내부의 배반자들을 뿌리 뽑는 억압을 정당화하고, 민족주의 깃발아래 뭉치는 것을 통해 정당성을 떠받치는 항구적인 전쟁상태로 내딛는 나라로 끌고 갔다. 북한은 일견 극도의 위험을 불사하고, 적들을 위협하는 수단으로서 전쟁할 용의까지 보여주는 자세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다만 호전적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이 실제로 만들어내는 위험이 무척 현실적이기 때문에 효과를 갖는다고 해석한다. 한 정치학자는 이를 일종의 '절망의 이론' 이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태를 극히 위험스럽게 만드는 것이 북한의 합리성이다. 북한은 한반도를 거의 전쟁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만이 존립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어떤 사고나 오산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를 유발시키는 위험을 창출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위험을 알고 있지만, 그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는 것으로 믿는듯하다. 

절망의 이론이 의미하는 바는, 북한의 경우 패배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크지만, 그러한 전쟁을 위해 조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여러 발의 핵 공격을 감행하고, 그 뒤의 핵 보복 공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작은 기회를 발견코자 좌충우돌하면서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노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 지도자들의 계산으로서는 그들은 다른 선택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감내한다. 북한 국민은 물론, 북한밖에 있는 한국, 미국을 포함하는 모든 관련당사국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비록 그 가능성이 무척 적지만 아주 없지는 않은 이런 위험을 공유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상에서 묘사한 북한의 실정과 그에 대한 분석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 특히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당국자들의 이해방식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최소한 그들이 언론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통해 볼 때 북한의 실정과 한국 정책당국자들이 북한을 이해하는 내용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존재한다.  

지난해 5차 북핵 실험 이후 윤병세 외무부장관은 "북한정권 최악 홍수에도 핵실험"을 하니 "참으로 후안무치하다"라고 말한다.(연합뉴스, 9.22) 그런가하면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 정부당국자들이 "사드, 푸틴은 넘어갔고 시진핑만 남았다"라고 말하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보면서(중앙일보, 2016, 9, 5) 그들이 얼마나 엄중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가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의 핵실험이 체제의 존립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그들로서는 결사항전의 상황을 후안무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뒤에 말하겠지만 중국의 무력보복이 단순한 외교적 대화나 설득만으로 될 문제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정부의 외교정책담당자들의 상황인식은 사태의 본질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나 중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성의조차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위 사진 가운데)이 14일 화성 12호 시험발사 관계자들과 함께 발사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노동신문



III. 한국전쟁의 교훈은 무엇인가 : 역사적이고 현실주의적 관점(realist view)에서 본 한중관계  

1. 살아 있는 역사로서 한국전쟁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4월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북핵 문제가 중요 의제가 된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트럼프에게 "중국과 북한 관계의 역사를 설명해줬다"고 외신은 전한다. 회담 중 외신들은 시주석은 미국이 북한핵/미사일기지에 대한 선제적 군사행동이 취해질 경우, 그것은 높은 전쟁위험성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한다.  

그런가하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과 북한 간 긴장이 높아져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미국과 북한 쌍방을 겨냥해 "누구든 도발을 한다면 역사적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연합뉴스, 4월15일) 나는 프랑스 대사와 회견하는 자리에서 왕이 부장이 말했다는 이 뉴스를 읽었을 때, 1950년 9월 한국전쟁 당시 저우언라이가 미국과 중국의 대화 창구였던 베이징 주재 인도대사 파니카에게 만약 미국이 38도선을 넘어 진격한다면 중국은 참전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던 사실이 기억나 한반도 상황에 대해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러한 외신보도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에 대해 중국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중국과 남북한 간의 관계가 역사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났는가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6.25 전쟁은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중국과 북한관계의 역사"를 말했다고 했을 때 그 역사는 분명 한국전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1950년의 전쟁과 2017년의 오늘의 상황은 거의 70년이 다돼가는 긴 시간이 떨어져있지만, 그때 전쟁의 의미는, 지금의 상황으로 옮겨온다 하더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때로 돌아가 보자. 

2. 38도선을 넘느냐 마느냐 

나는 한국전쟁의 성격과 의미는 두 전환점으로 집약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남침을 결정하여 38선을 넘어 거의 무방비 상태의 한국을 침공하여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전쟁의 시작단계에서 미국이 취한 유엔군의 틀을 빌려 남침을 저지하기로 했던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결정이다. 그로인해 유엔군은 부산 페리미터를 지키면서 북한군에 대한 반격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 전환점은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이 50년 10월초 38도선을 넘어, 북한군을 추격하여 북한 지역으로 반격을 확대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 두 번째 결정은 한국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런 것이다.  

미군의 지휘 하에 유엔군의 참전 결정은, 2차 대전 이후 초기 냉전과정의 특징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이다. 이 시기 냉전전략은 국무부 정책위원회 멤버였던 조지 케난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봉쇄정책" (Containment Policy)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유럽, 중동, 동아시아에 걸쳐 소련의 주도하에 전개되는 공산주의 세력의 공세적 팽창을 견제하면서 그들을 봉쇄해야 한다는 정책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계적 수준에서의 공산세력 팽창에 대한 수동적, 또는 방어적인 의미를 갖는 전략개념이다.  

이 틀에서 볼 때, 한국전쟁은 이 시기 소련에 의해 주도되는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의 표현이고,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 결정은, 동아시아에서의 공산세력 팽창을 방어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봉쇄정책의 틀에서 볼 때 미국의 한국전개입은 비교적 단순한 전략적 결정이고, 따라서 결정도 쉬웠다. 공산 침략을 격퇴한다는 의미를 갖는 전쟁은 세계적 수준에서 널리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38도선을 넘는 문제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9월 중순 서울을 탈환하고, 북한군을 추격하면서 38도선에 당도했을 때, 미국은 이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국전쟁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결정은 이를 둘러싼 것이다. 북한군을 38도선 이북으로 격퇴하고 분단선 이남을 복원하는 문제는, 전쟁 개념으로 "전쟁 이전상태의 복원, 즉 현상의 유지"(status quo ante bellum)를 뜻한다. 워싱턴의 트루먼 민주당 정부는 현지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에게 분단선을 넘지 않기를 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무시하고 10월초 분단선을 넘어 북한군을 추격하면서 북한지역으로 북진을 계속했다. "석권(席卷)"(Roll-Back) 전략 개념의 표현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소련이나 그 지원을 받는 공산국가가 혁명 또는 전쟁 또는 어떤 정치권력의 확장을 통해 정치적 군사전략적으로 팽창했을 때 이를 격퇴해 쓸어버린다는 전략이다. 북한의 공산정권이 북한지역을 장악하고, 전쟁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을 때, 전쟁 이전상태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을 감행한 그 정권자체를 해체 또는 붕괴시켜야 한다는 전략이다. 그것은 북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을 계기로 중국대륙을 혁명과 내전을 통해 석권하고 새로운 정권을 수립한 공산당정부를 붕괴시킨다는 전략이론이기도 하다. 

봉쇄정책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면, 석권전략은 공격적인 것이다. 이 시기 공화당 강경파들에 의해 지지되었던 전략이고, 맥아더 사령관은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한국전을 지휘했고, 트루먼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8도선을 넘어 북한의 공산당 체제를 붕괴시켜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자신의 비전을 관철하기 위해 북진했다.  

이 결정이 중요한 것은, 38도선 이북으로의 한국전 확전은 중국의 참전을 불러왔고, 또한 2차대전 후 소련의 정치적 팽창과 군사적 위협 하에 있었던 2차 대전의 승전연합군 멤버인 영국, 프랑스를 필두로 한 유럽국가들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북진하는 유엔군 선발대는 늦가을 평안북도 압록강변 초산에 도달했고, 중공군은 이 시기 이미 북한 지역 내로 들어와 있었다. 유엔군의 배후에서 나타난 중공군을 격퇴하기 위해서는, 그 배후기지인 중국 본토와 만주지역을 보다 강력한 공군력으로 공격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전장의 유엔군만으로는 수십만 명의 중공군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은 동아시아 전체로의 확전은 물론, 소련군의 서유럽침공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에 3차 대전을 불러올 가능성은 컸다. 그러므로 북한지역에서 싸우는 유엔군이 확전을 위한 미국 본국으로부터의 지원을 얻지 못할 때, 후퇴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로인해 미군은 미군 역사상 최장거리의 후퇴를 감내해야 했고, 맥아더사령관은 다음해 4월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컨대 한국전쟁은 세계적 확전의 입구에서 중지된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타임지 표지 모델 ⓒ타임



3. 지정학적 차원이 결정적인 이유 

중국은 왜 한국전에 참전했나? 그 의미는 무엇인가?. 중국이 한국전에 참전한 것은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1949년 10월 1일 천안문에서 새로운 공산당정부 수립을 선포한 지 꼭 일 년만의 일이다. 신생 공산당정부는 장기간의 중국내전으로 피폐해진 중국민들과 허약해진 군사력을 복원하고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야했고, 이른바 대만해방을 종결지어 완전한 중국통일을 실현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던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국과의 전쟁을 위해 한국전에 참전하는 중대 문제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중국 지도부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고,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앞장서 참전을 주장했기 때문에 결정될 수 있었다. 이로써 그들은 무엇보다 대만 해방을 포기해야 했다. 대만을 마주보는 안훼이성 일대에 배치되었던 인민해방군 주력을 그해 여름 압록강연안으로 이동시켰다. 중국대륙과 대만해협의 전략적 요충인 금문, 마조도 사이 포격거리에 있는, 통로가 아주 좁은 해협에 미국 7함대를 배치시켜 중공군의 대만 침공을 방어하고 있었던 상황 하에서 내린 결정이다. 왜 그랬을까? 

새로 수립된 중국 공산당정부는, 당장의 대만 해방을 포기하고 훗날로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이 미군에 의해 해방되고, 한반도에 통일정부가 수립돼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것은 미국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강력한 적대국가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병립하게 되는 사태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만주/동북3성은 물론 베이징, 텐진이 위치한 허베이성과 산뚱성 일대의 중국 심장부가 지근거리에서 한반도를 마주 대하게 되기 때문에 결정적인 전략적 취약성에 노출될 것이다.  

더욱이 당시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롤백’ 전략을 실천에 옮겨 신생 중국공산당정부를 공격한다면, 체제 자체가 위태로워진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중국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현재와 미래의 체제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참전하게 되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한국전쟁만큼 북한이 중국에 대해 ‘순망치한’의 관계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한국전에 참전키로 결정한 중국의 입지는,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북핵 위기 시점에서 중국과 북한,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극히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이 관계의 수준은 두 차원이다. 하나는 일상적인 외교 또는 경제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관계가 우호적, 또는 적대적이라고 말하는 수준이 있다. 그것은 보통의 현상적 관계의 수준이다. 다른 한 수준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관계가 어떤 것이든 세계의 국제관계의 체제적 차원에서 또는 지정학적 (geopolitics) 차원에서 작용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군사안보적, 이데올로기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차원이다. 이 수준에서 오늘의 북핵 위기, 그것을 둘러싼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거나, 또한 적대적이기까지 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첫 번째 수준에서 그러하다. 

중국의 지도부, 지식인 엘리트층은 오늘의 북한체제에 대해 결코 우호적이지 않고, 북한보다 한국을 더 좋아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적 형태를 갖는다 하더라도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체제를 선택했고, 산업발전으로 경제수준과 그와 동반하는 지적, 문화적 생활양식과 취향은 북한보다 한국과 훨씬 가깝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것이라고 혼동하지는 말아야 한다. 두 번째 지정학적 차원에서의 관계를 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체제적 수준에서는 중국과 북한은 상호 필요의 관계에 있다. 중국이 북한을 극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북한은 사실상 중국 때문에 존재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것과는 달리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결정적인 군사안보 전략적 수준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양립하기 어렵다. 이 수준에서 중국과 북한관계는 중국과 한국의 그것에 비할 수 없이 중요하다. 이 두 수준이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가하는 점은 한국에 사드 배치를 둘러싼 문제, 즉 한미정부가 사드배치에 합의한 것(그것이 최종적 결정은 아니지만)이 불러오는 중국의 대한국 무역보복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앞 장에서도 외교당국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그동안 사드 배치의 문제를 한중간 경제적 문화적 외교적 교류확대를 기초로 하여 외교적 차원에서 설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의 관점에서 이 문제는 그런 수준에서의 이슈가 아니다. 중국의 군사전략적 이해관계가 한국의 사드 배치(최종적으로 그렇게 결정된다면)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것은 일반적 외교의 차원이 아니라, 지정학적 차원에서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미국의 경우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예컨대 미국과 군사전략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어떤 경쟁적 또는 암묵적으로 적대적인 국가가 뉴욕, 워싱턴을 포함하는 미국동북부 심장부와 지근거리에 있는 캐나다의 노바스코시아나 쿠바 같은 곳에 고도의 성능을 갖는 전자감시망과 미사일방어기구를 설치한다고 할 때, 그것을 허용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과 한국간의 군사전략적 이해관계가 해소되거나, 완화될 수 있는 국제정치적 관계의 차원에서 접근되어야할 중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전쟁은 공산주의체제를 확립한 북한이 무력으로 민족적 정당성을 독점하려는 시도였다. 이 점에서 전쟁은 국내전이다. 그러나 전쟁터(theater)가 한반도라고 해서 국내전은 아니다. 전쟁의 시작과 함께 유엔군이 참전했고, 그와 더불어 이 전쟁은 개전 즉시 미소 냉전체제적 틀을 갖는 냉전시기 최대의 국제전으로 변했다. 3년간 전쟁이 군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첫 1년 동안이었고, 나머지 2년은 고지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된 진지전이었다. 병사의 생명과 관련하여 이 시기는 훨씬 중요하다. 남북한을 위해 싸운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시기에 죽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이 시기 민간인들을 포함하여 남북한 전체인구의 10%에 육박하는 2백만 명이 사망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공중폭격으로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보다 전체 인구대비 전쟁희생자들의 비율이 훨씬 높은 현대의 그 어떤 전쟁보다 밀도 높은 죽음을 불러온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 처절한 전쟁이 끝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었을까? 38도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것 말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그 자리에 서있다.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분명한 교훈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한반도에서 또 다른 무력충돌의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오늘 우리가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누군가 이 시점에서 무력을 통해서라도 민족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알아야할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은 전쟁을 통해서도 통일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최장집 "남북문제 풀려면 보수를 설득하라"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③ 때늦은 데탕트 (2)


IV.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에서 가능의 공간을 찾아 넓혀야 한다 

1. 독자적인 외교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 

전후 냉전시기에서나 현재의 탈냉전 이후 시기에서나 동북아시아 국제정치 질서에 있어 한국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 틀 내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립적인 한 플레이어는 아니다. 분단국가가 수립된 이후 그런 적도 없다. 한국전쟁 종결을 위해 휴전협정을 체결하는데 있어서도, 법적 측면에서 전쟁당사자는 유엔군이었다. 그 결과 한국은 북한과는 달리 휴전협정 체결에서도 조인 당사국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남북 분단이 사실상 확정되어 두 개의 별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들 각각은 실체적으로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주권국가이고, 또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플레이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컨대 동서독 분단은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승전 4개국이 포츠담회담에서 독일의 영토를 분할하고 오데르-나이제선을 폴란드와 접경하는 동쪽 독일의 국경선으로 정했을 때 그 결정이 완전히 유효하기 위해서는 그 뒤 동서독으로 분단된 독일이 각각 그 선을 국경선으로 승인하는 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동서독기본조약은 1972년 브란트정부 하의 서독 의회 (Bundestag)에서 체결된 것이다. 

같은 논리로 만약 한국이 국제법적으로 전쟁을 종결하는 평화조약 같은 것을 체결한다면 그때 한국은 그 체결의 당사자가 돼 마땅하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적, 절차적인 문제이기도하다. 한 나라가 주권국가라고 한다면, 실제로, 또 실체적으로 그 국가는 자신의 안보와 관련된 국제정치적 결정을 할 때 또는 그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플레이어로서 일정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현재의 북핵 위기에 대응하는 문제도 그렇고, 앞으로 남북한이 그 어떤 형태의 평화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이 각각 독립적인 플레이어가 되지 않고서는 냉전이 만들어낸 체제를 벗어나 냉전 후기의 어떤 새로운 체제 하에서도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데서도 그렇고, 평화를 지향하는 어떤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신정부가 등장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를 통한 방어적 국민주의 (nationalism)”를 내세우는 동안, 국제적 자유주의가 전제했던 규범들을 존중하지 않는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동맹국들을 당황하게 하는 등 커다란 혼란을 불러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최근 “국제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미국 프린스톤 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수 존 아이켄베리는 초기 트럼피즘을 “전후 미국의 지구촌적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신뢰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현재 트럼프 정부는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로 하여금 군사방위에 대한 부담을 지불해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비용이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안보 전략에 관한 한 완벽하게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던 한국으로서 충격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오늘의 상황은 한국이 스스로 외교 안보의 정책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북한과의 평화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대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전환점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동아시아 국제정치 변화를 이해하고, 지난날의 문제를 재점검한 위에 한반도의 평화질서의 비전을 탐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플로리다 주 마라리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2. 독수리와 용 사이에서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은 2000년대 초 미국 부시 정부의 출범과 네오콘이 주도한 대외정책으로 인해 사실상 조기에 중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독자적인 플레이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비전과 그것을 실행할 대북정책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포함하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체에 대한 정책 틀 안에서 그리고 그것과 궤를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명한 범위 내지 한계를 가졌다.  

햇볕정책은 클린턴 정부 시기인 1990년대 말 ‘페리프로세스’의 중심 내용을 구성하는 것으로, 그 틀 안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그 결과 분단 이후 처음으로 2000년 6월 한국 대통령으로서 북한을 공식 방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의 정책이 바뀔 때, 한국의 대북정책은 좌초될 수밖에 없었던 난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아무리 우리의 맹방이고, 미군과 핵우산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방어해준다 하더라도 미국이 우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줄 수는 없다. 한국의 대외정책과 목표는 미국의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하더라도 미국의 이해관계와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햇볕정책은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 국제정치 질서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플레이어로서 행위를 하려한다면, 더욱이 우리가 남북한 간 군사적 적대관계와 북한의 핵무장화를 극복하면서 어떤 새로운 질서, 즉 한반도에서 어떤 형태의 평화질서를 만들어나가기를 희구한다면, 먼저 냉전 이후 현재의 동북아 국제정치 질서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이를 위해 우리의 관심을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두 문헌을 살펴보려한다.  

하나는 지난해 출간된 아이켄베리의 논문, “독수리와 용 사이에서_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중간국가의 전략”이다. (G. John Ikenberry, “Between the Eagle and the Dragon: America, China, and Middle State Strategies in East Asia”, Political Science Quarterly. Vol.131, No.1, 2016). 다른 하나는 최근 출간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 국제정치담당 부장이며 칼럼니스트인 기디온 라크만의 저서 “아시아화 - 아시아의 흥기와 미국의 쇠락, 오바마로부터 트럼프와 그 넘어”(Easternization_ Asia’s Rise and America’s Decline from Obama to Trump and Beyond (Other Press LLC, New York, 2016))이다.

먼저 아이켄베리의 “독수리와 용 사이에서”를 본다. 그의 견해를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냉전 시기를 지배했던 미국 주도의 헤게모니 질서로부터 보다 더 복합적인 질서로 이해될 수 있는 “이중 위계질서”(the dual hierarchy)로 이행 중에 있다.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는 미국 헤게모니에서 중국 헤게모니로 단순하게 전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새로운 질서에서는 어떤 패권적 국가도 이 지역을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가 없다. 이 지역에서 중국이 지배적인 군사강국이 되기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려한다면 약한 중간국가들은 미국을 지역으로 더 끌어들이려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은 헤게모니와 세력 균형의 특징을 동시에 갖게 된다. 미국과 중국은 각기 이 지역국가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경쟁하게 된다. 모든 국가들이 한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를 방어하는 혼합된 전략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지역이 전면적인 세력균형 경쟁으로 치닫게 될 수 없는 세 가지 요소를 지적한다. 

첫째, 이 지역의 중간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둘 다에 연대하게 된다. 그들은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에 의존하고, 중국에 대해 일반적으로 견제력을 가지려하지만 무역과 투자를 위해서는 점점 더 중국과 연대하게 된다. 그들은 둘 다의 관계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이 점은 미국에 대해 상당한 제약적 요소가 된다.  

이러한 특성과 관련하여 한국 땅에 사드 배치에 관한 정부결정(결정의 완전한 절차는 아직 미결상태이고, 문재인 신정부는 이 문제를 다시 협의할 예정이다) 이전 상황에서 말한다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위치하면서 안보는 미국에, 경제교역과 문화상품교류는 중국과의 관계가 더 가까웠던 한국의 위상과 같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합의로 안보를 미국에 배타적으로 의존하는 대가로 중국과의 경제와 문화교류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됐다.

둘째, 중국의 전략적 딜레마다. 만약 이 지역에서의 중국의 외교정책이 너무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라면 반작용을 불러올 것이다. 이 현상은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이 갖는 일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중국은 경제성장과 군사적 현대화를 통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중국의 전략적 딜레마는 이러한 상황이 이 지역국가들을 점점 예민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남지나해에서 중국과 베트남/필리핀 간의 분쟁, 센카쿠/댜오위 열도(일본에서는 센카쿠(尖閣)로, 중국에서는 댜오위(釣魚)로 각각 다르게 부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분쟁,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정책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발생하는 국가들과 미국 간의 동맹을 강화하거나 재확인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한국은 북한과의 군사전략적 적대관계로 인해 냉전시기 미국에 대해 일방적 의존관계에 있었고, 현재 북핵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그 의존관계는 더 강화되기에 이르렀다. 

셋째, 미국과 중국은 넓은 정책과 문제 영역들에 있어 상호의존적이고, 상호 취약하다. 국제금융, 세계무역, 지구온난화, 에너지 안보, 핵 테러 등. 미국과 중국은 단순한 지역 내 경쟁 국가들이 아니다. 그들은 공히 지구적 차원에서의 강대국으로 넓은 영역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큰 정책 이슈들에 대해 공동 협력자이다. 경제와 안보의 상호의존적 조건하에서 두 나라는 그들 사이에 서로 중첩되는 전략적 환경을 안정화하고, 운영하는데 점점 더 큰 인센티브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켄베리가 요약하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질서는, 분명 냉전시기 세계적 수준에서 실현된 양극체제(bipolar) 내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unipolar)에서 실현된 경직적이고, 패권적인 위계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그리고 북한의 극한적인 생존투쟁은 이러한 냉전적 구조의 산물이다. 그가 ‘이중의 위계질서’라고 특징짓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질서는 이들 지역에 존재하는 중간적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행위 할 수 있는 유동적이면서도 넓은 가능의 공간을 열어놓는다. 그것은 극한대립으로 분쟁의 원천이 되고 있는 북한을 평화의 질서로 끌어들일 수 있는 큰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남북한의 상호공존을 통해 평화의 질서를 향해 진력한다고 할 때 큰 가능의 공간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한 역사적 선택은 이런 것일 수 있다. 핵무장화의 중단과 북한의 체제존립을 인정하는 것을 교환하는 것이다. 북한은 체제존립의 우려에서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체제를 외부에 개방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서 경제적 개방, 경제교류에 대한 범위가 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존재,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문제는 통일에 이르는 동서독관계를 비교해볼 때,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서독이 오데르-나이제선 동쪽의 영토를 포기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 

한국의 보수파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그들은 북한의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평화공존의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한반도에서 평화공존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 또한 이 교환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서서히 터득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미국이 결단코 사드 배치를 강하게 요구한다면, 그것을 수용하되 한국은 미국에게 북한의 존재를 교환으로 푸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핵무장화가 체제의 인정을 위한 필사적인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더 더욱이 중국이 여기에 반대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무장화의 동결, 그리고 나아가 한반도의 비핵화를 향한 핵의 폐기와 체제존립의 인정을 교환하는 문제는 동북아지역의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위해 플러스가 된다고 믿는다. 나의 관점에서는 이 과정에서 한일관계는 극히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이 지역에서 한국과 일본은, 우리의 민족감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위안부-정신대 문제를 제외한다면 안보이해가 불러오는 충돌이 가장 적은 나라일 수 있다. 북한의 핵무장화에 가장 위협을 받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다.  

그리고 한반도, 센카쿠/댜오위 열도, 남지나해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전략적 팽창에 대응코자하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 미국-일본 동맹관계에서 플레이어로서 한국의 역할은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에 의존해야하는 한국으로서는 일본은 핵심적인 우군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독점적 헤게모니는 실현될 수 없다 

라크만의 ‘아시아화’는 냉전 해체 이후 세계질서를 지배해왔던 미국의 헤게모니적 권력이 최근에 이르러 뚜렷하게 쇠락하고 있는 동안 중국이 빠른 속도로 그에 균형을 이루고, 나아가서는 이를 대체하는 국제정치적 변화를 중심 주제로 다룬다. 세계사적 수준에서 볼 때 그것은 서구가 선도했던 근대화와 제국주의를 통한 서구에 의한 세계지배가 끝나고, 중국과 그 뒤를 이어 인도가 중심이 되는 아시아로 헤게모니가 이동하는 세계사적 맥락을 통해 설명된다.  

라크만은 부와 권력을 기반으로 한 세계전역의 지배적 힘의 등장과 쇠락, 그 다이내믹스를 포괄해 다루고 있지만, 역시 동아시아에서 쇠락해가는 미국과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과의 힘들이 부딪치는 지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켄베리는 “국제적 자유주의”의 관점을 대표하는 이론가답게, ‘이중의 위계질서’로 특징짓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가 상당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그와 함께 이 질서의 공동 운영자인 미국과 중국 간의 역할분업이 순기능적으로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낙관적 비전을 보여준다. 라크만은 다르다.  

라크만이 묘사하는 동아시아 질서는, 안정적이고 쉽게 평화가 구현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미국, 중국 간의 무력충돌의 위험성이 분명히 도사리고 있다. 그는 그 징후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진핑이 외국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말한 “투키디데스 함정”을 제시한다. 그것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저서로 유명한 하바드대 정치학자 그라함 앨리슨이,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부터 끌어낸 말이다. 이 말은 새롭게 출현하는 힘과 기존의 힘 간의 파괴적 긴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진핑은 그것을 인용하면서 의도적으로 중국과 미국 간의 충돌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라크만은 한반도에서, 동지나해의 센카쿠/댜오위열도, 남지나해에서 또는 대만에서 미국이 공공연하게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때, 중국이 그에 대처할 것이라는 결의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본다. 

우리는 지금 트럼프 정부의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무역보복을 포함하는 외교적 압력을 통해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그동안 미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에 대해 자신들이 영향력을 갖는다는 점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진실로 그들은 북한이 위기를 불러올까봐 제일 걱정한다. 항상 문젯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맹국가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또한 북한인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라크만의 관점은, 나의 관점과도 다를 것이 없다. 앞에서 언급했던 여러 다른 외국인 옵서버들의 관점과도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의 책에서 말하는 중요한 대목은, 세계와 국제관계를 경제적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외교안보문제를 경제이익과 결부시키는 트럼프 외교의 기조는 이미 쇠락하고 있는 미국의 헤게모니적 힘을 더 확실하게 약화시킬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동안 미국 헤게모니와 서구중심 세계의 지배질서는, 무엇보다 미국과 서유럽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제일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식 외교는 유럽을 적대시함으로써 서구동맹을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을 제어하고 평화와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한국의 외교정책이 발휘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은 전보다 더 넓어져 있고, 어떻게 해서든 한국은 독자적인 외교의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전쟁을 막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  

V. 보수와 진보의 컨센서스가 중요하다 : 독일 통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1. 국내적 정치 기반 없이 외교정책의 전환은 어렵다 

남북한 간의 민족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보수/진보 간 또는 좌/우간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민족문제를 다루는 방향에 있어 큰 전환은 불가능하다. 요컨대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 적대관계를 평화공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완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화공존을 향한 변화를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제로 경험한 바 있다. 햇볕정책이 실패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북한과의 평화공존, 화해 협력을 추구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국내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다소 정치적으로 약해진 보수 세력이 진보적인 정부의 연이은 등장으로 위축돼 있었던 시기, 미국 부시 정부의 등장은 그들을 고무하기에 충분한 국제환경적 변화였다. 그것은 시민사회에서 보수세력의 정치화를 불러왔다. 김대중 정부를 뒤이은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6자회담이라는 동북아 이해당사국들을 멤버로 한 포맷으로 발전시키면서 남북한 간 데탕트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점은 노무현 정부의 큰 기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외적으로 미국의 부시정부라는 제약과 내적으로는 더 강화된 국내 보수세력의 비판으로 엄청난 제약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사회는 다시 이데올로기적으로 양극화되었다. 남북한 간의 갈등이 한국 사회 내부로 옮겨와 재현된다는 의미를 갖는 “남남갈등”은 더 강해졌다. 분단된 한국 상황에서 안보 이슈만큼 갈등적이고, 분열적인 것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문제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한 냉전 시기 같은 분단국가로서 통일을 성취한 독일만큼 좋은 비교의 모델 사례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동서 냉전의 최전방에 위치한 이들 국가의 분단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사적, 정치적 배경에 있어 다르다하더라도 그러하다. 1990년대 말 김대중 전대통령이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 화해협력을 중심으로 하여 대북정책에 대한 획기적 전환을 추구한 “햇볕정책”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고, 그것은 브란트의 “동방정책”(Ostpolitik)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 컸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두 나라에서 각각 민족문제/통일문제를 다루었던 방식과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독일은 통일을 성취했고, 그것과 병행해서 세계적 수준에서 냉전 체제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통일은 고사하고 남북한의 냉전적 대립은 냉전 해체 이후 더 고조되기에 이르렀고, 미국의 정권교체기 북한의 핵문제는 급진전하는 가운데 전쟁 위험은 고조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그것은 한국은 왜 독일이 아닌가라는 것과 같은 질문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햇볕정책’의 반전은 분명해졌다. 보수정부에서 대북정책은 북한의 체제붕괴를 전망하면서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냉전시기 대북정책의 근본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대북 강경정책으로의 전환을 위해 보수정부는 앞선 두 정부의 남북한 간 평화공존, 화해협력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한계를 지적하고 그 정책의 무용함을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햇볕정책의 실패를 말하는 그들의 논거는 이런 것이다. 햇볕정책이 추진되었던 시기 남북한 간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화해무드와 긴장완화가 고조되고 있었던 시점이었지만, 서해상 ‘북방한계선’ (NLL/ Northern Limit Line의 약자)을 침범한 북한함정과 교전이 있었고, 핵무기는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때 “퍼주기”비판에 이어, 작년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북에 대화를 위해 준 돈, 시간이 지금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들만큼 평화공존 정책의 취약성이 분명해 보이는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들은 국제정치체제 수준에서 북한이 국가로서 인정되지 못하는 것이 불러오는 공격성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북한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이러한 국제관계의 차원에서의 근본적인 문제가 유지되고 있는 조건에서는 남북한 간 쌍방적 수준에서의 화해무드라든가, 평화공존은 국제관계의 하위 차원인 한반도 내에서의 남북한 간 관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미국으로부터의 체제인정과 보장이 걸려있는 국제정치 체제 수준에서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이다. 북한측으로서는 한두 번의 정상회담과 남북한 간의 화해무드, 남한의 평화공존정책, 또는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을 통한 우호적 정책이 그들의 체제안정을 보장해 준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만이 그들의 행태는 이해 가능해 진다. 

▲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포옹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국가기록원


2. 독일은 무엇이 달랐나 

분단국가에서 민족문제를 풀어나는데 있어 한국과 독일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것은 이 문제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이다. 컨센서스가 없는 사회에서 민족문제를 둘러싼 이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원천이 되면서 사회를 분열시킨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정당체제 자체가 순기능적으로 발전하기 어렵고,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를 제약하는 조건이 된다. 한국은 그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독일이 컨센서스 형성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나의 관점에서는 독일이 민족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그것을 통한 통일의 성취에 있어 브란트의 “동방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데나워 수상이 이 문제를 접근했던 방식, 즉 그의 리더십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루 알다시피 1960년대 초이래 빌리 브란트가 발전시킨 그의 “동방정책”의 아이디어와 정책프로그램은 1969년 총선을 통해 성립된 사민-자민당 소연정에 의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그것은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의 체결로 실현되었다. 동방정책의 성공을 위한 결정적인 계기는 동방정책을 승인하느냐 않느냐하는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했던 1972년 총선에서의 승리였다. 이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동방정책은 그러한 내용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동방정책이 왜 어려운 문제이고,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가하는 것은, 독일-소련, 독일-폴란드 간의 조약을 위해 종전이후 승전연합국에 의해 그어진 오데르-나이제선을 독일-폴란드의 새 국경선으로 영구적으로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하는 결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전 독일영토의 1/4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프러시아 이래 독일이 추구해왔던 목표, 말하자면 독일이 중부유럽에서의 패권을 확립하려는 거대한 민족주의적 여망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폴란드령이 된 광범한 과거 독일 땅과 동유럽 지역에서 종전과 더불어 삶의 터전을 잃고 추방되거나 보복을 피해 고향을 떠나 서독으로 이주해온 1200-1400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 문제가 컸다. 그것은 현대사에 있어 최대의 인구이동의 하나이다. 이들이 전후 독일에서 실지회복을 바라는 민족주의적인 극우세력이 되는 것은 충분히 이유가 있다. 거대한 비토그룹으로서 이들을 어떻게 소련, 폴란드, 그리고 동독과의 기본조약에 동의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동방정책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데나워 정부는 1950년대를 통하여 나치우파들과 영토회복 정당들의 나머지 부분을 흡수하기 위해 의도적인 정책을 폈고, 이들 그룹의 많은 부분을 기민-기사당의 지지기반으로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극우세력들은 1960년대 말 주 선거에서는 10%에 달하는 지지를 얻었고, 1969년 총선에서는 연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문턱에 육박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들에 대한 지지는 1960년대 말이 정점이었다. 결국 극우파정당들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아데나워의 노력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1972를 기점으로 프랑스에서는 극우파정당이 나타났던 것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다. 

만약 1950년대 아데나워 정부에 의한 그러한 노력이 없었고, 그들이 주류정당으로 통합되지 않았더라면 동방정책은 성공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노동문제에 대한 컨센서스가 연방국가 건설 초기에 이루어졌던데 반해, 민족문제에 대한 합의는 주류정당 내로 통합되는 1960년대를 통한 긴 과정을 거쳐야했고, 결국은 기민당을 매개로 한 제도화된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해소될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역으로 그러한 컨센서스는 정당의 역할과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 점에서 볼 때 햇볕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강한 반북, 반공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지닌, 그럼으로써 북한을 힘으로 굴복시키기를 원하는 보수세력이 압도적인 우위를 갖는 조건하에서 그리고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정당을 가지고 배타적 혹은 갈등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정치적 조건이 그러할수록 정책추진자들은 보수정당의 지도자들, 보수적인 인사들과 관련 당사자들을 정책추진 과정에 참여시키고, 정책의 진행방향을 알려주고, 협의하면서 동의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브란트를 보좌했던 동방정책의 기획자 에곤 바의 회고록에 따르면, 독일 동방정책의 추진자들은 사민당과 기민당 같은 정당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정당라인을 가로질러 기민당 내 관련 당사자들과의 협의와 대화의 채널을 발전시켰다. 대북정책을 평화공존적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선출된 정부가 진정으로 그러한 전환을 추구하기로 생각한다면, 안보관련 인사들은 아예 보수적 인사들에게 맡기는 것도 고려대상이 될 수 있다.  

혹자는 독일이 동방정책을 통해 통일을 성취했던 것은, 독일의 정부형태가 의회중심제로서 연립정부를 통해 정부가 구성될 수 있고, 그로인해 장기간에 걸친 여러 정권교체들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높은 일관성과 연속성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제도의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 동방정책의 놀라운 연속성은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키싱거, 브란트, 슈미트, 콜 정부를 통해 지속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동방정책은 브란트-겐셔로 이어지면서 정책적 연속성이 가능했던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말한다.  

물론 제도가 정책의 연속성을 뒷받침해준다면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제도의 효과만으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 연립정부였기 때문에 그러한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지위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은 단임제정부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책임자들이 바뀌기 때문에 정책연속성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한 국가가 정치를 통해 풀어나가야 하는 중심적인 갈등, 예컨대 경제적 분배를 둘러싼 계급, 계층 간 갈등이라든가, 민족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다루는 중대 이슈에 대해, 어떻게 이를 제도화하고, 어떻게 정당을 통해 내부화할 수 있는가 하는데 대해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문제에 있다. 자민당의 당수인 한스 디트리히 겐셔(Hans-Dichtrich Genscher)가 헬무트 슈미트 사민-자민연정으로부터 헬무트 콜 기민-기사-자민 연정에 이르기까지 장장 18년 동안(1974-92) 동안 외상을 역임하면서 통일을 주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형태가 합의추구적 의회중심제라는 제도의 산물이 아니다. 그 이전에 민족문제에 대한 정당 간 컨센서스를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제도의 효과도 이를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민족문제라고 하는 핵심적인 갈등을 제도화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정당체제가 작동하고 경쟁하는 파라미터는 다르다. 즉 갈등의 폭이 매우 좁고, 정당들 사이의 타협을 이루기가 쉬워 정책의 연속성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한국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의 폭은 넓고 경쟁하는 정당들은 거의 적대관계로서 중대 사안에 대해 차이를 좁히기보다는 상대를 부정한다.  

독일처럼 한국도 근본적인 갈등 이슈가 제도화 되었다면, 정책의 연속성은 정당과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한국의 경우, '햇볕정책'은 진보적인 정부로부터 보수적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을 때 뒷 정부는 앞 정부의 정책을 지우는 일에 온힘을 다했고, 심지어 전임 대통령을 "종북주의자"로 채색하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데탕트는 고사하고 다시 한 번 군사적 분쟁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타임지 표지 모델 ⓒ타임


3. 중대 갈등일수록 합의적 기반 형성이 중요하다 
 
촛불시위에 힘입어 다시 한 번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우리는 우리사회가 해결해야할 중대 이슈들이 무엇인가를 심도 있게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실험의 성공으로 더욱 증폭되고 있는 남북한 간의 군사안보적 대립을 어떻게 평화공존의 관계로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필자는 우리가 최소한 이성적인 사고를 얻을 수 있는 결론이 있다면, 이를 안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공존이라는 목표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의 다수가, 특히 보수적 인사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했던 것,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한국 중심의 통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보수와 진보는 무엇보다 이 목표에 대한 합의가 없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한국의 비상한 정치적 위기는, 미국의 트럼프 정부의 등장과 중첩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남북한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동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충동적이고, 예측불가해하고, 사려 깊지 않고, 정직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갖는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불가예측하고 벼랑 끝 외교를 일삼는 북한 김정은이 조우할 때, 그 위험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한국이 그동안 안주해왔던 한미동맹에 대한 기본 가정들과 신념들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은 우리가 대북문제를 다루고, 평화공존을 추구하고, 변화하는 동아시아와 세계질서에서 최소한의 국익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스스로부터 달라져야함을 말한다.  

과거 우리는 다행히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하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평화공존정책을 추구했던 경험을 갖는다.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남북한 간 평화공존의 실현은 그 목표에 이성적으로 공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에 도달하는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의 사려 깊음과, 인내심, 포용성, 이념과 가치를 달리하는 사람들과의 협력과 공존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즉 남북한 간 평화공존은, 국내의 진보, 보수 간의 협력과 컨센서스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난 촛불시위 때 필자를 포함한 공저자들은 <양손잡이 민주주의>를 펴낸 바 있다.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보편적 규범을 실현코자하는 진보파와 전통적 가치와 삶의 습속과 과거의 유산을 중시하는 보수파 간에, 한손에는 촛불을 다른 손에는 정치를 드는 것이 민주주의발전의 요건임을 말하고자 했다. 이 점은 특히 평화공존을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절실히 요청되는 덕목이다. 

필자가 논의를 시작할 때 첫 부분에서 다섯 가지의 명제를 제시했지만, 한 가지가 더 추가됐어야 했다. 그것은 남북한 분단이 한반도 내의 남북한 간 분단의 결과물이 아니듯이, 이들 사이에서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고 (먼 훗날 어떤 형태 또는 내용으로든) 통일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은 역시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국들, 즉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포함하는 최소한 6개국으로 구성된 초국적 기구, 내지 제도들의 틀 내에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점 또한 우리는 독일의 통일사례로부터 하나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독관계의 발전은 전체적으로 유럽 통합 과정과 병행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유럽경제공동체는 동독을 전체 유럽 발전의 핵심으로 포함시켰다. 유럽안보협력회의는 전 유럽의 핵심조직으로 발전했고, 유럽분단과 독일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군비축소와 군비통제의 중심 기구로 발전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동아시아 지역 내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없지만,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포맷은 유럽연합에 상응하는 어떤 초국적 국가의 틀을 위한 하나의 전초적 단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질서는 각 국가에 더 많은 외교와 협력을 요청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이 중대 이슈를 다룰 정치적 합의 기반 형성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새로 일을 시작한 민주당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을 통해 좋은 성취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정부, 용두사미 개혁 반복하지 않으려면…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④ 행정 개혁

1. 변화를 위한 행정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효율적 행정권의 집행은  오늘날 다원화된 사회에서 모든 국가들의 큰 과제로 꼽힌다. 
 
87년 체제 이후 들어선 민주정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집권적 행정 내지 정부의 사회 통제력을 강화하는 방식의 행정은 여전했다.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조직 재편이 화두가 되었지만, 정치가이기도 한 대통령과 직업 관료들이 중심인 행정 영역 간의 소통 방식 및 그 내용은 권위주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정개혁은 창대한 시작에 비해 미미한 결말을 반복해왔다.    
권위주의적인 정부조직과 업무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전환 노력은 안정화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잦은 변화의 시도로 인하여 관료 권력이 강화되는 기현상이 초래되었을 뿐이다.  

새 정부의 행정은 달라져야 한다. 협치 정부, 소통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사회적 합의다. 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반영하여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행정을 해야 한다. 의회와의 협치를 통해 대통령과 국민의 거리를 줄이는 정책을 해야 한다. 시민과 성과를 공유하는 정부로 나아가려면, 개혁적 언어의 성찬이 아니라 조직의 설계부터 정부의 업무까지 실질적인 변화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    

우선적으로 다음의 두 과제가 중요하다.  

첫째, 청와대를 기반으로 하는 파라미드식 업무 진행에 대한 개혁이다. 달리 말하면 정부 업무에 대한 민주적 프로세스를 강화하는 과제라 할 수 있다. 둘째, 대통령과 의회가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그리고 사회가 만드는 변화의 방향성과 상호 소통할 수 있도록 정부 조직을 재설계하는 일이다.  

정부조직의 설계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기본 원칙에 기초하여 조직 목적의 고유성과 필요성을 균형 있게 반영하여야 한다. 조직 폐지보다는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는 기능 개선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개편을 위한 개편’은 지양하되, 특권화되거나 권위주의 방식이 깊어진 정부 조직에 대해서는 행정의 민주화를 강화하고, 시민 주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통폐합까지도 과감하게 추진하여야 한다.  

조직 전환은 ① 부처이기주의를 답습하는 단순분할 방식을 타파하는 과감성, ② 사회의 이해당사자 내지 정책 수용자와의 공동 해결을 모색하는 협력성. ③ 부처의 기능적 역할을 제고함과 동시에 비효율성이 배태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성, ④ 대내외적 변화의 위험에 대응하면서 지속가능한 민주적 국가운영을 강화하는 장기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2. 정부업무 설계의 기본 원칙 : 권한분산과 소통강화     

책임과 자율에 기반을 둔 민주적 국가공동체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과거 단일지도자(one authority)모델에 기초한 정부 업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초집중화된 국가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는 대통령의 행태가 탈권위적이더라도 그 통치방식은 권위적 모델과 더 잘 맞을 수밖에 없다. 정부업무의 연속성과 개혁성을 동시에 견지하려면, 먼저 대통령의 명확한 국정운영원칙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대통령 아젠다에 대한 각 부처의 활동 계획을 조정해 다시 정부 업무에 반영하는 국정운영 방침과 정부업무와의 상호성과 자율성이 반영되는 프로세스 전환의 첫 단추다. 집권당의 정책, 연정 또는 협치 대상과의 합의사항, 대통령의 비전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부처의 소관업무는 책임성을 강화하여 환류되고 보완 개선되는 흐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둘째, 공동통치 영역(condominium)에 있어서 다원성 및 확장성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2017년은 대통령 개인의 역량만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다양한 개혁 요구에 기반 한 국정과제를 생산하여 이를 성공시키려면 의회와 공동목표를 설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나라의 발전과 사회혁신을 위해, 의회와의 공동통치 영역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행정정보 공유 및 상호 협력을 독려하는 행정을 구현하여야 한다. 정부 내에서도 공동통치 영역을 구성하여 이에 대한 일정한 업무위임이나 권한분산을 시도하는 것도 좋겠다. 제도화보다는 일을 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 성공을 유도하는 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시민의 소통, 대통령과 내각의 소통, 경제, 안보외교, 사회분야라는 공동의 통치영역에 해당하는 내각과의 소통, 그리고 시민의 입장에서 정부의 성과에 도달하기 위한 분권적·협력적 조정과 조율의 시도가 향후 가장 큰 변화의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의 문제이다. 이는 현행 헌법에서 정부업무 재설계를 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축의 하나이다. 정부업무의 최고 의사결정 그룹에 해당하는 대통령과 총리의 업무 협치, 공동의 활동, 의회와의 연정협약의 관리 등 총리 역할의 확대․ 강화는 시스템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는 책임 장관으로 이어지는 선택과도 밀접하다. 장관의 문제가 바로 대통령의 인사권의 문제로 비화되지 않도록, 총리는 내각제청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여야 한다.  

책임총리에 대한 논의와 시도는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대통령중심 국가체제에서 총리가 가지는 책임의 범위와 권한에 대한 명확한 정리(인사권의 행사와 관련한 권한의 분산인지, 업무역할에 대한 분산인지 등)가 선행되지 못할 경우, 대통령 인사권의 제약이나 대통령과제의 개혁동력 약화로 귀결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것은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새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대통령의 총리 지명은 향후 정부업무에서의 대통령과 총리역할에 대한 시그널이 될 것이다. 총리와의 책임공유 기준은 특히, 총리가 다른 정당의 소속이거나 추천에 의한 경우일 때 더 치밀하게 정해야 할 문제이다. 원칙적으로 새 정부의 개혁의 목표치와 대통령의 부족한 면에 대한 보완을 동시에 만족하는 인사운영 기준 마련 등을 협의하여야 한다. 내치에서의 국정운영의 범위, 정책구분에 따른 할당, 국정의 안정적 관리방향, 당정관계 강화 여부 등에 대한 사전정리도 필요하다.  

시민들은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의 분산을 원하고 있다. 국가운영과 조정에 있어서 국무총리의 역할과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그리고 시스템으로 안정화시킬 것인지가 새 정부의 중요한 행정개혁 과제가 될 것이다. 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그 추진과정에서 국가운영의 불안정성의 증대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어떤 방향이 좋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크게 대통령의 내각관리(책임내각 운용방식)과 의회와의 협력방식,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의 구조를 중심으로 3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유형은 현재의 대통령의 권한을 유지하면서 의회와의 협력 부분과 행정의 일부(인사)에 대한 업무를 총리에게 일임하는 구조인 ‘수상형 대통령제’다. 이 유형은 연정 협상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고 특히 총리를 통한 정부의 업무에 대한 의회의 통제 및 견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총리와 의회간의 협력이 잘되지 않을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총리의 정치가 작동될 때, 이에 대한 대통령의 양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불협화음이 불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장관제청 권한의 실질화 및 의회와의 협력을 전담하는 ‘협치형 총리’를 운영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와 국정과제만을 관할하고 총리에게 장관을 통한 현안점검회의를 일임하며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는 방식이다. 의회와의 협력을 위한 행정기구도 총리가 관할하게 된다. 이 경우 총리의 권한이 내각 및 인사의 관리, 대 의회 관계 등에서 강해짐에 따라 연정협상의 파트너와의 결합도가 높아질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의 역할이 매우 제한되는 것 같지만, 내각의 성과는 행정부분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장관들의 업무책임 구조가 명확해지는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총리 권한의 강화에 따라 임기지속성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히 단기 교체 내지  책임 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인사검증의 사례들을 떠올려볼 때,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실무형 협치 총리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가진다. 

마지막으로는 ‘공동정부형 총리’이다. 대통령과 총리의 수직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총리에게 일부 부처 또는 업무를 일임하는 구조이다. 총리가 특정 정당을 대변하고 이를 협치의 영역으로 포괄하는 구조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유형의 경우, 의회와의 협력과 동시에 대통령 과제에 집중함으로써 대통령의 5년 임기 안에도 상당한 성과를 달성하기에 매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축소는 다른 유형에 비해 어려울 것이고, 대통령의 임기동안 치러지는 총선과 지방선거의 시기에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정당 사이에 협상이 깨어지거나, 대통령과 총리의 갈등이 국회 내 갈등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3. 정부조직의 설계 

분권과 협치를 위한 정부조직 설계의 시작점은 아마도 대통령 보좌기능에 대한 검토일 것이다.  

그동안의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보좌기능을 대통령비서실로 한정하여 이를 부처의 축소판(부처의 거울부서)으로 구성하거나 통합적 정책기획 기능의 강화를 위하여 대통령자문 위원회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비서실 수석제는 부처의 정보취합기능을 중심으로 발달, 수석비서관을 관할하는 비서실장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지고 부처를 ‘청와대 콜 대기조’로 전락시킴으로써 청와대가 정쟁의 최일선에 등장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대통령 보좌기능을 민주적 국정운영의 방향에 부합하도록 개선하려면 다음의 몇 가지가 정비되어야 한다.  

먼저 대통령의 정무/정치를 보좌하는 비서실과 정책을 보좌하는 기관을 별도로 둘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기도 하지만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 직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 두 측면의 보좌가 모두 필요하다. 하나의 비서실체계로는 이중 어느 한 측면에 치우치게 되어 특히 정무적인 보좌를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대통령 비서실을 국정상황실 운영과 시민과의 소통 커뮤니케이션 조직으로 단순화하는 방식이 유용하다. 모든 보좌진은 정무+전문가로 구성하고, 전문가는 필요한 분야의 보좌관제로 별도 임명하거나 정무조직으로 편성하는 2가지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정책실은 내각의 정책보좌 기능을 담당하도록 별도로 두고 내각의 정보취합과 정책기획을 보완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하여 기존의 수석제를 정책실로 이관하여 통합하고 중장기 과제는 대통령 특별위원회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내각의 정보취합은 통일화하며 정당 간 협력을 강화하는 검토이다. 현재 내각의 정보취합을 위하여 비서실에 부처의 거울부서 형태로 수석제를 운영하고 있다. 부처를 넘는 국정과제를 관리하는 정책조정수석(과거는 정책기획수석)이 존재했지만 국정상황에 대한 대처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행사위주로 정당과 협력이 진행되는 수준을 탈피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각의 정보취합은 정책실로 이관하고 대통령과제 관리에 대한 유권자 및 직능단체, 이익집단들의 정보취합은 국정상황실로 일원화하여 이중의 정보관리를 진행하는 방식이 유용하다. 동시에 국정상황실을 확대 개편하여 시중의 여론과 흐름을 읽는 대내외 정보 취합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국회와 상대하며 교섭, 대화, 타협을 진행하는 정무수석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과 당원 및 여당조직 간의 정기적 미팅을 통해 의회와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정무수석을 부실장으로 격상하거나  별도의 실(室)로 분리하는 등 기존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정책의제에 대한 정책보좌기능을 위해 특별보좌관 또는 특별위원회를 두는 것이다. 이제까지 정부 국정과제의 장기 플랜은 대통령이 맡아왔으며, 그 중 메시지 기획 등 전략기획 범주에 속하는 구상의 경우 주로 연구자 및 교수들의 몫이었다. 이렇게 플랜과 그에 따른 구상(핵심과제)이 따로 놀다보니, 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치밀한 보좌보다는 ‘지식의 실험’에 유사한 형태로 추진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집권 이전부터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장기정책 구상뿐만 아니라 메시지기획을 수행해왔던 캠프의 전문가를 특별보좌관(위원회)으로 두어 지속적인 대통령 관심사에 대한 대국민 지지기반을 강화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클린턴 정부의 스테파노플러스, 딕모리스, 트럼프의 스티브 배넌 등 정치철학을 제공하면서 장기과제를 검토하는 보좌관을 두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대통령비서실과 행정부의 소통은 정책성과의 도출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프로세스이다. 비서실 조직변화는 대통령의 통치방식에 따라 다양한 구조로 변화되어 왔으나, ① 내각 장악력의 유지 ② 대국민 직접커뮤니케이션의 강화 ③ 대통령비서실과 행정부의 수직적 의사결정 유지라는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대통령의 민주적 국정운영을 제대로 뒷받침하기 위해 내각과의 업무 협력, 의회와의 정치협상, 긴급한 현안사항 대응 문제를 담당할 조직과 기능을 어디에 둘 것인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누가 지원하고 집행의 결과를 점검할 것인가? 내각에게 책임과 자율성을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가?  

앞으로 100일 이내 결정하되, 부족한 검토시간을 고려하여 임기시기 별로 필요한 사항을 추진해 나가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권 초기에는 대통령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비서실과 내각의 소통구조와 개혁을 강화하고, 차후에는 이를 확장할 수 있도록 비서실, 의회, 내각의 소통원리와 구조를 만들어 가면 좋을 듯하다.  

이제까지 논의를 통해 분권과 협치의 새 정부 통치를 위해 그 업무와 조직에 있어 필요한 재설계의 기본방향을 대략적으로 그려보았다. 새 정부는 대통령비서실의 직제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내용을 세부적으로 발표해 나갈 것이다. 이하의 내용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담은 하나의 정부조직설계 시안이다.  

대통령 중심의 협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대통령비서실을 정책실과 비서실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 정부업무설계에서 중요 회의는 국무회의, 경제, 외교안보, 사회분야에 대한 공동통치형 현안점검회의, 그리고 시민참여형 국정과제회의, 당정청회의라는 4각 회의체이다(<그림1>).  

일부 회의에 대해서 조정하는 업무는 총리와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교안보분야, 복지분야에 대해서는 야당대표와 논의하는 회의를 두어 국가의 의제로 지속화하면서 정부와 여당, 야당이 서로 협력하는 아젠다로 만들고 집행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보완과 개선을 진행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정책실에는 서민생활에 필수적인 일자리, 교육, 주거 등의 문제와 국가미래분야에 해당하는 과학기술, 대외관계, 복지분야 등으로 구분하여 기획, 관리, 조정업무 담당자를 두고 대국민 직접소통을 위한 홍보와 연계되도록 구성한다. 별도로 대통령 특별 위원회(또는 국정과제위원회)의 경우는 시민참여가 가능하도록 하며, 이를 위한 별도 시민참여 상황실 운영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시안1: 비서실 조직의 변화>  참조). 

<그림1> 4각 회의체 


총리중심 연정모델의 경우 핵심은 대통령비서업무로 제한하고 내각의 거울이 되는 수석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다만 내각의 정보취합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국정상황실을 재편하여 국정관리 상황실과 시민참여 연대실로 구분하거나 별도 신설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도 가능한 운영방식이 될 것이다.  

외교, 국방, 통일 등 대외안보분야와 경제, 금융, 산업 등 경제 분야, 복지, 문화, 환경, 교육, 안전 등 사회분야에 대한 분야별 회의체를 두고 내각을 직접 관리하되, 대통령과 의회의 추천한 총리와의 연정협정을 통해 업무분장을 하며, 책임(분권)-균형(협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를 진행하는 것이다.  

정부조직의 설계도 선임부처의 역할과 위상내용을 재편하거나 이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하되, 대내외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행정기구만을 재편하여 재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연정협정에 따라 대통령과 총리는 업무분장과 역할분장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하여 정리하되, 대외안보(외교, 통일)분야, 경제(예산, 기업), 사회(지역발전, 안전, 복지, 일자리, 교육)분야에 대한 책임 있는 매주 현안장관점검회의를 직접적 공식 조정 매커니즘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은 총리실의 정책평가업무를 감사원으로 이관하여 이를 통한 간접적 조정도 진행하는 검토가 가능할 것이다. 총리는 행정관리업무(법제, 의전, 보훈, 국무회의 실무 등)의 기능과 정부입법사업을 위한 의회협력과 현재의 인사혁신처를 강화한 중앙인사위원회를 통한 인사시스템을 통한 투명한 인사 진행을 추진하는 방식도 검토 할 수 있다(<시안1> 내각구성 그림 참조).  


내각 수반 대통령 모델은 대통령 중심의 통합형 국정운영체계 모델인데 다만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 업무에서 수석제를 페지하고 대통령과제 업무를 분리하되, 정책실을 별도로 신설하거나 분야별 보좌관을 두어 내각을 통제하는 방식 모두 검토가 가능하다. 다만 현재의 정무기능을 보강하고 대야관계를 적극적 협력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의회협력에 대한 부분은 조직적으로 보강하거나 확대하는 구조이다(<시안2> 비서실과 내각 그림 참조). 


이 모델은 내각을 통해 대국민소통을 진행하며,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은 의회를 통하여 진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조직의 구조도 장관책임제를 두고 장관의 보좌기능에 정무와 국회업무를 강화하며, 세부적인 업무범위로 재정리하기 때문에 부처청의 확대와 분리는 필수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정책관심을 유도하고 지속화하기 위한 홍보기능을 강화하는 것 또한 불가피한 선택이다(시안3> 비서실과 내각 그림 참조).



'화려한 1주일'에 가려진 냉혹한 현실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⑤ 협치 정치의 방향과 과제
2017.05.18 14:07:14

1. 아직 시작되지 않은 '통치의 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의 백화점이라 불리던 인천공항공사에 가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구체적인 정규직화의 과정은 복잡하고 지난할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와 영향은 그 무엇보다 클 것이다.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하고 세월호에서 숨진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인정을 지시한 것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다. 지난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진보개혁적 성향의 시민들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각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청와대 인사도 일조하며 시민들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통치의 시간'은 도래하지 않았다. 신정부 출범 1주일. 대통령의 업무지시, 행보 하나하나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으나 본격적인 갈등의 순간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미디어의 화려한 포장을 걷어내고 조금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보면 신정부가 위치한 상황은 녹녹치만은 않다.  

과반을 점하지 못한 120석의 의회 의석, 기존에는 상대에 대한 적대를 동원하는 것만으로 일정지분이 보장되던 양당제가 아닌 복잡한 정치공학적 계산과 연합이 난무할 불안정한 다당제 구조, 진보개혁적 시민들의 높아진 기대감만큼이나 잠재되어있는 보수층의 박탈감과 불만. 어쩌면 신정부는 그 어떤 역대 정부보다 더 어려운 매듭을 풀어가야 하는 고난의 시간을 지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시간은 신정부가 재구성해내야 하는 민주주의 정치공동체안에서 살아가야 할 시민들 역시 함께 지혜를 모아 헤쳐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2. 유능한 통치에 대한 요구와 기대 

본격적인 통치의 시간이 도래했을 때 신정부가 맞이하게 되는 사회 갈등구조의 기본은 아마도 좌우 양날개로부터의 압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선거의 여왕', 그리고 '콘크리트 지지율'로 이야기될 만큼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는 10년만의 정권교체를 가져왔지만 정권이 교체된 다음부터는 오히려 신정부에게 큰 도전과제로 돌변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지난시기 통치의 어리석음에 대한 평가가 한번 이루어진 후에는 전 정권에 대한 비판여론이 새로운 통치의 주체로 등극한 신정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정치적 갈등상황을 맞이하게 될 경우 신정부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은 더욱 거세게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진보 개혁적 성향의 시민들의 개혁 요구와 기대치 역시 그 어느 때 보다도 높다. 진보개혁적 성향의 시민들이 자주 언급하는 그리고 신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적폐청산'이라는 용어는 사실 한때 보수층에서 말했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용어와 정확하게 같은 갈등구조를 의미한다.  

지난 시기 우리는 서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그 정치 갈등 구조 속에서 정작 우리 사회가 나가야할 개혁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상호간 증오만을 표출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만들의 표출이 의회에서 다양한 정당 간의 경쟁과 타협으로 잘 정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새롭게 출현한 다당제는 불안정하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신정부는 정작 의회에서 과반수를 점하지 못한 소수파 정부로서 권력기반은 취약하고 복잡하고 날카로운 사회갈등들을 관리하고 통합시켜낼 통치의 수단은 많지 않은 '딜레마적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한국정치 갈등의 기본 축은 박근혜 처벌 및 친박 척결 요구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친박 및 반공보수 세력 간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양 세력은 모두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라는 풍경에서 알 수 있듯이 적극적으로 '운동'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불만을 극대화하고자 하고 있다.  

갈등의 축은 여기에만 있지 않다. 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그간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온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불만이 인내의 한계선을 넘어선 상황이다.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빈곤 자살은 불평등 심화에 대한 사회가 보내는 위험신호다. 노동시장 역시 비정규직의 일반화, 극빈층 자영업자들의 등장으로 종래와는 다른 불만이 폭발하고 있으며 노인 빈곤, 그리고 심각한 수준의 저출산 문제는 이제 시민들이 아니라 '사회' 바로 그 자체가 자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정치행위의 본질이 한 사회에 누적된 다양한 '불만의 조직화'라 불릴 수 있다면 이렇게 켜켜이 쌓인 큰 '불만'들은 역으로 신정부의 강력한 '개혁 추진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다종다기한 불만들 간의 충돌과 적대의 갈등구조는 '개혁' 아니 나아가 '통치' 그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결국 좌우 양날개로부터의 압박과 취약한 권력기반이 초래하는 딜레마적 상황에서 신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유능한 '통치'의 능력을 요구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기존의 한국정치에서는 다소 익숙하지 않았던 통치의 방법 그리고 모멘텀을 과감하게 동원해서 기존의 통치 기반을 유지하는 소극적인 전략을 넘어 개혁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안정적인 통치를 가능케 하기 위한 적극적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갈등들을 소극적으로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인 개혁전략으로 선회할 수 있다면 신정부가 새로운 '갈등'을 동원하고 이를 통해 역으로 취약한 권력기반을 확장하는 새로운 통치 전략이 가능할 것이다. 한편 이를 달리 말하면 신정부가 어떤 '갈등'을 동원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는 이를 통해 어떤 '정치연합'을 구성해낼 것이냐의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정치연합의 구조에 따라 신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갈등의 종류도 매우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3. 정당의 시간 

2017년 현재 한국의 정당체계를 말하자면 서로에 대한 적대와 반감에 기초를 둔 양극화 정치. 그리고 여-야, 진보-보수보다 같은 블록 내, 즉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더민주당과—국민의당이 서로를 적대하는 경향이 더 강한 독특한 정당체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정부는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독자적으로 의회에서 과반을 획득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적대구조에서는 문제해결을 위해 경쟁정당 또는 상대의 인사를 포괄하는 탕평책과 같은 인사정책만으로는 '불안정한 다당제'의 출현이라는 구조적 변화로 발생한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다. 때문에 결국은 변화된 구조(다당제)를 인정하는 위에서 문제해결의 솔루션으로 연합정치를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통치를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오히려 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적극성과 과감성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한국정치의 정당체계가 다당제이긴 하지만 정당들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 사회적 내용은 여전히 매우 빈약하다. 정당들 간의 차이를 구분하는 사회적 내용이 불분명한 채 서로간의 다소 감정적인 적대에 기초한 정당체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4당 체계는 지속될 가능성보다 변화의 가능성이 더 큰 '불안정한 다당제'라 불리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신정부가 등장하고 선택할 연합정치의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라 현재의 '불안정한 다당제'는 ① 양당 체계로 회귀할 수도 있고, 혹은 ② 거대 집권연합을 통해 일당 우위체계를 모색해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③ 신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역으로 포위되는 소수파 정부로 전락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③ 소수파 정부로 전락할 경우는 절대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별다른 개혁의 모멘텀을 동원하지 못한 채 국회에서의 여소야대와 사회적 불만의 폭발로 정부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보다 더 위험한 것은 보수적 유권자들일 것이다. 10년만의 정권 교체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불안감으로 인해 급진적인 개혁요구들에 대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반발에 보수적 유권자들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결국 신정부에게는 두 방향의 정치 연합이 필요하다. 하나는 정부와 국회 사이의 방향이다. 이는 사회경제적 불만의 누적으로 표출되는 개혁적 요구를 받아 안을 수 있는 '왼쪽으로의 정치연합'과 급격한 변화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려는 보수 안정적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 있는 '오른쪽으로의 정치 연합' 방안을 모색하는 문제를 말한다. 다른 방향은 정부와 사회 사이에서 정부의 지지 연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 두 방향의 정치연합을 정리하면 첫 번째를 '연합 정치(연정)', 두 번째를 '협치 정치'라 할 수 있다.

4. 누구와의 '연합', 누구와의 '협치'인가?  

1) '협치'는 촛불과의 '대연정'이다 

2016년에서 2017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파면이라는 사건은 민주주의에서 시민과 정부 간에 형성되는 '수직적 책임성'과 행정부/입법부 그리고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부 간에 형성되는 '수평적 책임성'이라는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극적인 국면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나면 결국 지난 촛불집회와 대통령에 대한 파면이 신정부에게 던져주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신정부가 추진해야 할 연합정치는 행정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 간에 형성되어야 하는 수평적 책임성의 문제를 안정적으로 제도화하고 해결하기 위함이다. 한편 촛불집회로 표현된 정부(국가)-시민 간에 형성된 수직적 책임성의 문제를 대면하는 것이 바로 '협치'의 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를 '민주주의의 민주화'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조금 더 익숙한 현실정치의 언어들로 말한다면 '연합정치'가 다당제 그리고 친박/반문 따위의 단어로 대표되는 양극화된 정치 갈등구조에서 안정적 개혁과 통치의 기반을 관리하는 문제라면, '협치'는 정당 간 구조에서 작동하는 원리에 앞서 신정부와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해집단들 간의 관계에서 작동되어야 할 원리라고 할 수 있다.

2) 협치는 사회 갈등에 대한 통합이다 

표면적으로 촛불집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물었지만 한편 지난 10여 년간 진행되어 온 보수 성향 정권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무능력에 대한 심판 정서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사건 하나만으로 전대미문의 대통령 탄핵과 파면, 그리고 연인원 천 만 명의 시위참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당장의 선거 시기 유권자의 투표결과와는 달리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불만은 누적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사건은 정부가 사회경제적 불만을 해결해주지 못한 채 무능을 반복하는 이유를 찾게 해준 것이다. 그것은 87년 직선제 쟁취이후 만들어 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누적된 사회경제적 불만이 지난 촛불집회와 정권교체의 주요한 원인중 하나라고 본다면 신정부가 처해질 상황은 만만치 않다. 자칫하다가는 양 극단에서 높아진 개혁요구와 반개혁 저항 사이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정작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해집단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돌입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신정부는 급격하게 '불만의 겨울'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불만의 겨울  The Winter of Discontent 


1978~79년 겨울, 영국의 집권 노동당에 대해 공공 부문 노조와 비노조원 노동자 및 하층 서민들이 대규모 파업을 벌인 사건. 그 직후 보수당의 대처가 집권하게 된다.

따라서 그간 누적되어온 불만들과 시민사회 및 이해집단들의 요구를 단순히 고충이나 민원성으로 고려하며 '리스크' 관리의 측면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정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민사회, 그리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해집단들과의 '협치'라는 공동의 원리를 활용해 신정부의 개혁 아젠다들을 수행해갈 수 있는 통치영역의 실질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을 고려해봄직 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촛불집회로 표출된 정부와 시민 사이의 수직적 책임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응답이며 다양한 사회경제적 개혁요구 집단들과의 일종의 '사회적 대연정'이라 말 할 수 있다. 

3) 사회적 대연정+협치 정치 연합 

16년 총선이후 등장한 다당제 구조에서 치러진 대선이기 때문에 연합정치, 대연정 등의 단어가 많이 사용되어진다. 그러나 현재 한국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조금 더 냉정하게 짚어본다면 정당 사이의 연합 문제에만 한정한 기존의 대연정론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형성되어진 불안정한 다당제 안에서 각 정당들은 정작 독자적인 사회적 기반이 약하고 이념적 차이에 따른 경쟁/협력관계보다 정당들 간의 반감과 적대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당장의 불평등 해소나 경제적 분배문제가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운 대내외적 조건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사회집단, 개혁적 요구들과의 관계에서 협치의 원리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성도 있다. '협치'라는 원리를 '커뮤니케이션'이나 '협력' 등의 소극적 해석의 수준을 넘어 정부와 시민사회가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고 이를 통해 공동의 결정, 공동의 책임을 지고 개혁을 모색해가는 새로운 통치모델로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정부와 시민들 간에 '협치'의 원리를 활용한 일종의 분권형 통치체제라 말 할 수 있는데 개혁의 주체와 책임의 다자화를 통해 과반미달 의석수로 대표되는 약한 개혁 모멘텀을 보완하고 양 극단의 급진적 요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적극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존의 진보-보수 간의 대연정론을 넘어 사회적 대연정 + 정치 연합을 통해 더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정부가 취할 수 있는 연합정치에 대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야권연정 → 신정부에서는 더 이상 야권연정은 없어. 집권당으로서 민주당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이냐가 핵심일 뿐. ② 친박을 제외한 진보-보수 대연정 → 사회적 대연정 없는 정치 대연정이 결국 권력분배의 문제에 그칠 가능성이 높음 ③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대연정 위에 선 개혁 연정이다.  

개혁 연정의 범위는 정당간 이념적 거리나 적대를 넘나들며 얼마든지 넓을 수 있다. 이를 굳이 진보 보수의 연합으로서 대연정으로 한정지어 말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불안정한 다당제'가 초래한 다양한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역설을 활용하여 개혁의 모멘텀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5. 통치의 시간 

이처럼 현재의 불안정한 다당제를 통치/개혁의 불안요소로만 바라볼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정치연합과 갈등구조의 변화를 통해 기존 양당제 및 양극화된 보-혁갈등 구조에서 불가능했던 폭넓은 개혁을 시도할 수 도 있다.  

한편 정당간 연정 및 사회와의 협치 역시 '시기' 또는 '의제의 성격'을 두고 다양하게 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집권초기에는 '합의쟁점'을 중심으로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정운영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진상규명 문제', '2018 평창올림픽', 그리고 '남북관계와 외교문제'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과 연합정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후에는 노사관계 또는 사회경제적 의제와 같은 '갈등쟁점'들을 두고 경쟁 또는 협력하며 왼쪽으로의 정치연합 또는 시민사회와 협치를 중심으로 국정운영을 하는 방법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국정운영에 있어서 과도한 중앙집권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시도지사협의회를 제2의 국무회의처럼 운영하여 지방정부들을 국정운영의 실질적인 파트너로 끌어들여 지방분권을 촉진하고 개혁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신정부에게는 개혁의 주체와 책임을 다자화하고 위기의 시기마다 다양한 국정운영의 모델을 운용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다당제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2) 정책 연합의 종류 

● 1단계 : 기존 정당들 간의 공통의 정책, 합의의 정도가 높은 이슈
개혁적인 정책은 과감하게 합의. 
일자리 창출, 저출산 대책(육아 휴직 장려, 어린이집 확대), 교육의 공공성 강화, 교육비 부담 완화, 실효 세율 인상, 미세 먼지 등 환경 개선 문제 등 

● 2단계: 국가적으로 시급하고 중요한 정책, 외교안보, 복지 사회 정책 → 외교안보 동맹, 복지 동맹 
사드 배치와 중일 관계 악화 문제 해결 및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 등.
복지 체제 구축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문제 등. 

● 3단계: 이견을 조정하는 단계, 정치가 진짜로 문제를 다루는 실천적 접근
스웨덴의 수요미팅(매주 4당 지도자를 만나 외교 현안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모임)과 목요클럽(노사정회의), 그리고 하르프순드 회의는 엘란데르 총리가 직접 다른 정당 지도자나 이해 당사자 대표를 만나 진짜로 문제를 다루는 실천적 접근을 보여 줌.

6. 새로운 미래를 향해 

신정부는 박정희 발전모델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말미암아 '새로운 모델 형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위기 상황이기도 한 '새로운 모델 형성기'에 정치의 방법으로, 주어진 과업을 성공적으로 실천했던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절대 빈곤과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복지국가의 초석을 다진 스웨덴 엘란데르 수상의 사민당 정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 공황을 극복했던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버리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복지동맹을 이끌었던 영국 애틀리 수상의 노동당 정부 등을 들 수 있다. 신정부 역시 앞서 언급한 정부들처럼 새로운 도전과 실험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개혁의 주체가 대통령과 청와대이고 시민들은 이를 5년에 한번 있는 선거에서 평가하거나 때로 거리에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역할 외에는 별다른 민주주의적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신정부는 현재 닥친 복합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한편 새로운 국가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만큼 국정운영과 통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고 또 실험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만이 개혁의 주체여서는 안 된다. 그와 같은 방식이 촛불집회로 표출된 시민들의 참여와 개혁요구를 올바르게 반영한 것이라 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정당 간 연합정치와 시민사회/이해집단들과의 협치는 위기 극복의 수단만이 아니라 정부와 시민의 새로운 관계 수립 및 각 분야의 역할 재정립이라는 국가통치시스템의 총체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지향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및 외교안보적 불안, 저출산 고령화와 복지국가로의 이행 등 많은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는 정교하게 설계된 정책꾸러미가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개혁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통치/개혁 모멘텀을 어떻게 만들 것 인가의 문제이며 그것은 지난겨울과 봄을 거치며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 이 기획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분권과 협치의 대한민국 국가 운영 모델 연구"의 일환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