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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가득 찬 박근혜

일취월장7 2017. 3. 20. 12:58

[팩트체크] 거짓으로 가득 찬 박근혜 헌재 의견서

2월27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변론에 박 대통령은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직접 작성한 의견서를 전달해 대리인이 읽게 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과 관련한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7년 03월 08일 수요일 제495호

지난 2월27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변론을 열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의견서를 이동흡 변호사가 대신 읽었다. 헌재 결정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내놓은 ‘최후의 변’을 팩트 체크했다.

ⓒ시사IN 양한모

“내가 최순실에게 국가의 정책 사항이나 인사, 외교와 관련된 수많은 문건들을 전달해주고,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하여 농단(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검찰과 특검, 헌재 증언 등을 살펴보면 박 대통령의 주장이야말로 사실이 아니다. 검찰은 정호성 전 비서관이 최순실씨와 주고받은 문자를 대통령 일정과 비교 분석해, 정 전 비서관이 문건 171건을 최씨에게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중 47건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대상으로 특정했다. 정 전 비서관은 1월19일 헌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큰 틀에서 최씨 의견도 들어보라는 대통령 뜻에 따라 최씨에게 문건을 보냈다”라고 진술했다.

유출된 문건 47개는 △정부 조직 및 인사 관련 문건 13개 △정부 부처 및 비서실 보고 문건 14개 △대통령 일정 관련 문건 10개 △대통령 말씀자료 등 문건 10개다. 여기에는 국가의 정책 사항 관련 문건뿐 아니라 행정부 조직도(3안), 14개 부처 차관 인선안, 감사원장·금융감독원장·국세청장·검찰청장 등의 인선안을 비롯한 인사 관련 문건과, 외교부 3급 비밀인 ‘한·미 정상회담 및 해외 순방 일정 추진안’, 외교부가 암호명을 부여한 해외 순방 일정표, 일본 총리 전화통화 자료 등 외교 관련 문건이 포함됐다.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 드러난 사실을 보면, 문건 전달뿐 아니라 최씨의 국정 개입·농단도 박 대통령 뜻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확인된다. 정 전 비서관 휴대전화에서 복구된 문자메시지가 대표적이다. “선생님, VIP께서 선생님 컨펌 받았는지 물어보셔서 아직 컨펌은 못 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 빨리 컨펌 받으라고 확인하십니다.” ‘VIP’는 박 대통령, ‘선생님’은 최순실씨다.

정 전 비서관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녹음 파일과 통화 녹음에 따르면, 최씨는 박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2년 12월 말 박근혜 정부 4대 국정 기조 중 경제부흥을 처음 제안했다. “공무원한테도 내려가고, 다 이 기조로 해라, 이렇게 내려보내져야 돼. 1부속실에서 하는 그런 일이야.”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최씨가 일정 부분 국정에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국정 관여한다는 말에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대통령 의사 결정 과정에서 최씨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에 앞서 최씨에게 보고하는 관계 아니냐’는 질문에는 “제 잘못”이라고 대답했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진술 내용을 인정했고, 헌재는 정 전 비서관의 검찰 조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최순실로부터 공직자를 추천받아 임명한 사실이 없으며, 그 어떤 누구로부터도 개인적인 청탁을 받아 공직에 임명한 사실이 없다.”


거짓말이다. 차은택 감독은 지난해 12월7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최순실씨 요청을 받고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추천했다”라고 증언했다. 김상률 전 수석은 차 감독의 외삼촌이고, 김종덕 전 장관은 차 감독의 대학원 은사다. 차 감독은 또 지인 송성각씨를 차관급인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으로 최순실씨에게 추천했다고 증언했다. 차 감독은 2014년 8월 자신이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에 임명된 것도 최순실씨 추천이었다고 검찰 조사 및 공판에서 밝혔다.

최순실씨는 헌재 5차 변론에 출석해 “김종 문체부 2차관의 이력서를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보낸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씨는 “직접 추천은 안 했다”라고 주장했다. 외교 경험이 전무한 삼성 출신 유재경 미얀마 대사 역시 최씨 추천으로 대사에 임명됐다고 특검 조사에서 인정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도 검찰 조사에서 “인사에 관해 최씨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있지만 매번 반영되는 건 아니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헌재에 낸 의견서는 본인이 이미 밝힌 해명과도 어긋난다. 지난 1월25일 인터넷 방송 <정규재TV>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문화부나 문화부 소관 분야 혹은 교육이나 기타 분야 천거 과정에서 최순실씨의 개입이나 영향력이 혹시 있었나’라는 질문에 “문화 쪽이 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검증 과정을 거쳐서 된다”라고 말했다.

“최순실을 포함한 어느 특정인의 사익에 협조하지 않는다 하여 아무런 잘못이 없는 공무원들을 면직한 사실은 추호도 없다.”

역시 거짓말이다. 최순실씨 쪽도 문제가 많다는 내용으로 대한승마협회와 관련한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노태강 문체부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이 인사 피해를 당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헌재에 출석해 매우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대통령께서 수첩을 들여다보고 두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거론하면서 ‘이 사람들은 참 나쁜 사람이라 그러더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인사 지시를 하면 상당히 무리가 따를 것이므로 장관인 저에게 맡겨달라고 제안드렸다. 거기에 대해 대통령이 다시 역정을 내면서 ‘인사조치 하세요’라고 지시했다”라고 증언했다. 결국 노 국장과 진 과장은 좌천된 뒤 공직을 떠났다.

“전경련 주도로 문화재단과 체육재단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관련 수석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좋은 뜻을 모아 설립한 위 재단들의 선의가, 제가 믿었던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왜곡됐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전경련이 아닌 청와대 주도로 설립된 증거는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안종범 업무수첩 ‘7-24-15 VIP-①’ 메모(2015년 7월24일 박 대통령 지시를 받아 적었다는 뜻)를 보면, <현대차> 항목 아래 ‘문화, 남북통일, 체육·문화 준비, 체육 지원, 체육인재양성기금’ 문구가 있고 ‘30억+30억, 60억’이라고 금액이 적혀 있다. 바로 아래 <CJ> 항목에도 ‘문화체육기금, 통일, 한류’라는 문구 옆에 ‘20~50억, 30+30억’이 기재됐(14쪽 <사진 1>)다. 안 전 수석은 헌재 탄핵 심판 5차 변론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출연 액수까지 특정하여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을 보면 박 대통령은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액수를 지시(위 왼쪽)하고, 인사까지 개입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재단 설립을 서두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도 확인된다. ‘리거창(리커창의 오기) 방한 시 제안, 문화부-중국보다→문화재단, 문화창조융합센터와 중국 MOU, 컨텐츠비지니스(2015-10-19 VIP).’ 리커창 총리 방한 시 정부기관보다는 문화재단끼리 MOU를 추진하면 좋겠다는 취지인데,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최순실씨가 같은 내용의 아이디어를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말했고 정 전 비서관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대통령 지시로부터 8일 만인 10월27일 일사천리로 미르재단이 설립됐다.

안종범 업무수첩을 보면 미르·K스포츠재단은 설립뿐 아니라 인사·운영이 모두 청와대 주도였음이 확인된다. 미르재단 설립 6일 전인 2015년 10월21일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조직표, 정관, 문화 재단법인, 미르재단, 용의 순수어, 신비롭고 영향력 있음, 김형수 이사장, 문화융성위 제의, 장순각, 이한선, 송혜진 전통, 조희숙, 김영석 한복, 사무총장 이성한, 사무실-강남’이라고 재단 이름과 이사진, 사무실 위치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한다(10-21-15 VIP·오른쪽 <사진 2>). 또 K스포츠재단 설립 한 달여 전인 2015년 12월11일 안 전 수석은 <KSP> 문구 아래 ‘김필승, 대전대 체육학과, 010-3227-****, 서상  사무총장, 허현미 이사 X, 정현식 감사, 체육 사무실-강남 2군데, 정관, 조직, 이사장, 사무총장’을 적는다(12-11-15 VIP-①). 안 전 수석의 증언에 따르면 K스포츠재단 내정자 명단을 대통령이 전화로 말해 메모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같은 해 12월25일 ‘문화창조-K-Sport 김필승, 이철원, 정현식, 조종환?’이라고 K스포츠재단 이사진 후보를 다시 언급하는 등(12-25-15 VIP) 두 재단 설립 단계에서부터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확인된다.

‘10-12-16 VIP-면담’ 메모에는 두 재단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대통령 입장 정리 차원에서 안 전 수석과 민정수석, 홍보수석이 대통령과 면담한 내용이 담겨 있다. ‘1)모금:BH 주도 X→재계+BH 2)인사:BH 개입 X→BH 추천 정도 3)사업:BH 주도 X→BH 행사에 참여’ 실제로는 모금·인사·사업 모두 박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는데도 사실과 다르게 말 맞추기를 한 정황까지 고스란히 남았다.

“최순실이 제게 소개했던 ‘KD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의 자료도 중소기업의 애로 사항을 도와주려고 했던 연장선에서 판로를 알아봐주라고 관련 수석에게 전달을 하였던 것이며, 위 회사가 최순실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이고 최순실이 이와 관련하여 금품을 받은 사실은 전혀 알지도 못했으며,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최순실씨가 KD코퍼레이션을 소개했다고 박 대통령이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 변론과 배치된다. 지난 2월9일 “KD코퍼레이션을 괜찮은 회사로 소개한 게 최순실이라는 것도 몰랐다는 것인가”라는 강일원 헌재 재판관의 질문에 박 대통령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러면 누가 소개한 것으로 알고 있나”라는 질문에 이 변호사는 “그냥 기술력 뛰어난 업체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검찰 조사와 탄핵 심판 과정에서 최순실씨가 이영선 행정관에게 KD코퍼레이션 소개서를 전달했고, 정호성 전 비서관이 이를 박 대통령에 전달한 사실은 확인됐다. 의견서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어느 시점에는 최순실에게 직접 소개를 받았거나 적어도 최순실 소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능력이 뛰어난데 이를 발휘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능력을 펼칠 기회를 알아봐주라고 이야기했던 것일 뿐, 특정 기업의 특정 부서에 취업을 시키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다.”


이는 안 전 수석의 헌재 증언과 정면 배치된다. “대통령이 1월 초순경 이동수라는 광고계 유명 홍보 전문가가 KT에 채용되도록 황창규 회장에게 연락해 채용해보라고 한 사실이 있나”라는 국회 측 소추위원 질문에 안종범 전 수석은 “있다”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이 2015년 7월경 신혜성의 KT 채용 어떻게 되었나. 이동수 밑에 두고 협업하면 좋겠다고 지시했다는데 들었나”라는 국회 측 소추위원 질문에도 안 전 수석은 “네”라고 답했다. “대통령이 2015년 8월경 이동수를 KT 광고업무 총괄로 옮길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나”라는 질문에도 안 전 수석은 “네, 제 기억으론 그런 거 같다”라고 인정했다.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을 보면, 청와대는 대한항공 지점장 인사에도 개입했다. 2015년 7월24일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적은 메모에는 ‘한진’에 동그라미를 친 후 다음과 같이 적혔다. ‘2-대한항공 기업 참여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고창수 신망’ ‘3년 연임 부탁’. 2016년 1월3일에 작성된 VIP 지시 사항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메모에도 ‘4. 고창수 대한항공 지점장 2월 본사 파견 원치×→서울, 제주지점장’이라고 적혀 있는 등 박 대통령은 고창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언급한다. 고창수씨는 최순실씨의 고향 지인으로 알려져 있다.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포스코 임원을 줄줄이 언급하는 등 다른 사기업 인사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이지만, 각종 의혹에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팩트체크]박근혜는 사익 추구한 적이 없다?

친박 인사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돈을 받았느냐’고 주장하면서 탄핵 심판의 본질을 호도한다. 하지만 탄핵 심판은 형사재판과 달리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를 저질렀는지가 핵심이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7년 03월 20일 월요일 제496호


“박근혜 대통령이 돈 한 푼 먹었습니까?”(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 “박근혜 대통령 돈 먹었다는 것 하나도 없죠?”(김문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 인사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돈을 받았느냐’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을 팩트 체크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았나?

특검은 최순실씨가 1990년께 어머니 임선이씨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을 대신해 서울 삼성동 사저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을 지급했으며, 2013년께부터 약 4년간 대통령 의상 제작비용 등 약 3억8000만원을 대납해줬다는 등의 내용을 공소장에 적시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해 논쟁 중이다. 이 부분도 검찰 수사 대상이다. 탄핵 사유나 형사사건 관련,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았는지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 없다.


ⓒ시사IN 양한모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도왔나?


헌법재판소(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보았다. 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들로부터 774억원을 출연받아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하도록 안종범 전 수석에게 지시했다. 이때 최씨가 추천한 인사들이 두 재단 임원진이 되도록 해 최씨가 두 재단을 장악하게끔 도왔다. 박 전 대통령은 최종변론 의견서에서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도로 문화재단과 체육재단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관련 수석으로부터 처음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두 재단의 명칭과 이사진, 사무실 위치, 출연 금액까지 지시했고, 이후 재단의 사업 운영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이는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헌재는 안종범 업무수첩을 증거로 채택한 바 있다. 또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 역시 헌재에 출석해 청와대 지시로 두 재단을 설립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가 미르재단 설립 전 세운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와 K스포츠재단 설립 전 세운 스포츠매니지먼트 회사 더블루케이가 광고를 수주하거나 계약을 체결하도록 도왔다(최씨는 이 회사들을 통해 두 재단을 이권 창출 수단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사기업인 KT에 특정인 2명을 채용하게 하고 광고 관련 업무를 맡기라고 요구했다. 이후 플레이그라운드는 KT로부터 68억원에 이르는 광고를 수주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해 현대자동차그룹에 플레이그라운드 소개 자료를 전달했고, 플레이그라운드는 9억원에 달하는 광고를 현대차로부터 수주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안 전 수석을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기업인 그랜드코리아레저와 사기업 포스코가 스포츠팀을 창단하도록 하고 더블루케이가 선수 에이전트나 운영을 맡도록 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최순실씨 지인이 운영하는 자동차 부품회사 KD코퍼레이션과 납품 계약을 체결하도록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하는 등 직간접으로 최씨의 사익 추구를 지원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해당 기업들을 도운 행위를 부정하지 않았다. ‘유명 스포츠매니지먼트 회사’ ‘유능한 인재가 모인 회사’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라고 들었다고 변명하면서도 왜 하나같이 최순실씨와 관련된 회사만 도왔는지에 대해 명확히 해명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최씨가 추천한 인사를 공직에 임명했고 이 중 일부는 최씨의 이권 추구를 도왔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행위가 최씨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행위로 공정한 직무 수행이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헌재는 또 박 전 대통령이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한 헌법 제7조와 국가공무원법·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또한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봤다. 헌재는 정호성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또는 방치 아래 2013년 1월께부터 2016년 4월께까지 인사 자료, 국무회의 자료 등 공무상 비밀을 담은 문건을 최순실씨에게 유출한 것 역시 국가공무원법상 비밀 엄수 의무를 위배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를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했으며, 이런 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고 헌재는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 조사, 청와대 압수수색에 응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을 봐도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으며, 이 같은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판단했다.

금품 수수 의혹은 탄핵 사유의 핵심인가?

박 전 대통령과 대리인단은 재산상 이익을 한 푼도 취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았느냐’는 탄핵 심판의 핵심 쟁점이 아니다. 헌재는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자유 침해 △세월호 참사 관련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 성실 의무 위반 △최순실씨에 대한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이라는 4개 쟁점에 대해 판단을 내렸다. 국회 탄핵소추안이 기업들의 재단 출연 등과 관련해 뇌물죄 또는 제3자 뇌물죄를 적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헌재는 뇌물죄나 제3자 뇌물죄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친박 인사들이 ‘박근혜가 돈 한 푼 받았나’라고 주장하는 것은 탄핵 심판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강일원 재판관이 탄핵 심판 과정에서 수차례 강조했듯이, 탄핵 심판은 형사재판과 다르다. 형사재판에서는 합리적 의심을 넘어 유죄라는 확신이 들 만큼 각각의 혐의가 입증되어야 한다. 반면 탄핵 심판은 징계 절차다. 위헌·위법 행위가 대통령으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지가 핵심이다.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탄핵 심판과 형사재판을 뒤섞으려 했다. 최순실씨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을 포함한 탄핵 심판의 쟁점을, 엄격한 입증이 요구되는 뇌물죄 적용 여부로 축소해 탄핵의 부당함을 부각하려는 것이었다. 친박 인사들 역시 초점을 형사사건으로 돌려 탄핵의 부당함을 부각하려는 동기가 있었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했는데?


특검은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을 뇌물죄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동계스포츠영재센터 출연을 제3자 뇌물죄로 봤다.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 관계가 입증되거나, 최씨가 받은 돈이 곧 박 전 대통령이 받은 돈이라고 볼 만큼 둘의 관계가 특수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뇌물죄 적용 여부는 검찰 수사와 법원에서 다툴 전망이다. 향후 뇌물죄가 재판에서 인정되지 않더라도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와는 관계없다. 특검이 뇌물죄로 본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은 탄핵 소추 사유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란으로 일어나서 국란을 일으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 경력 20년 가운데, 16년을 특정 세력의 리더로 활동했다. 그녀가 이끈 특정 세력은 세 차례의 총선에서 공천 파동을 일으켰다. 박 대통령 파면으로 이제 그들 역시 위기에 처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2017년 03월 20일 월요일 제496호

날이 밝자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1997년 12월15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사무실. 전날 밤 방송된 텔레비전 찬조 연설을 재방영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예상 밖의 흥행이었다. 보고 싶은 얼굴이었다며, 직접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이어졌다. 화면에 등장한 인물은 나흘 전 입당한 ‘초보 정치인 박근혜’였다(당시 찬조 연설 화면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장녀’라고 소개되었다). ‘박정희 향수’라는 정치적 유산을 가진 그녀의 등장에 정치권이 술렁거렸다. 입당 원서를 쓰는 자리에서 그녀는 정치 입문의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비참하고 가난한 나라를 어떻게 일으켰는데, (IMF 사태로) 이 지경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분노심, 안타까움이 들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게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도리가 되는 것 같다.” 외환위기라는 국란(國亂)이 정치의 계기를 열었고, 20년 후 그녀는 또 다른 국란(國亂)의 주범이 되어 정치권을 떠난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찬조 연설.
비록 이회창 당시 후보는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정치 초년생 박근혜’에게는 기회가 일찍 찾아왔다. 1998년 4월, 대구시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는 만만찮은 상대로 꼽히던 엄삼탁 후보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당시 선거에서 그는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깨끗하고 바른 정치, 아픔을 같이하는 정치가 구현되도록 하겠다.” 뒤이은 2000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단숨에 한나라당 부총재에 오르며 당내 입지를 굳힌다.

통상적인 정치인의 궤적은 아니었다. 정치 입문 4년 만에, 박근혜 부총재는 제16대 대선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정치로 이끌어준 당내 1인자 이회창 총재와도 각을 세웠다. 국민참여경선 도입, 당권과 대권 분리, 영남 후보 필요성을 주장하며 당내 존재감을 높였다. 나이, 당선 횟수, 정치 경력은 부족했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대중적 인기가 강점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찬조 연설을 시작으로 정치에 데뷔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 세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전면에 나서 선거 승리를 이끌었고, 마침내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한나라당에서 활로를 찾지 못한 박근혜 부총재는 2002년 2월28일 탈당을 선택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다.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것(2002년 5월)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신생 정당의 한계는 금세 드러났고, 대선 직전인 2002년 11월 다시 한나라당으로 복당해 이회창 후보 선대위 의장을 맡는다.

이회창 후보는 두 번째 대선에서 재차 무릎을 꿇는다. 포스트 이회창이 부재한 상황. 한나라당 역시 리더십 문제에 직면한다. 검찰의 ‘차떼기(대기업한테 현금이 든 트럭을 통째로 전달받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수사(2003년 말),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2004년 3월)으로 최병렬 대표 체제가 흔들렸다. 2004년 4월로 예정된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당장 총선에서 80석도 못 건지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당 주류는 물론 당내 소장파 의원들도 구원투수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박근혜 당 대표 카드’였다. 여기에 상징적인 이벤트를 하나 더했다. 당 현판을 떼어내고 ‘천막당사’가 펼쳐졌다. 거대 여당의 출현을 막아달라는 호소가 통하면서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어 참패를 면했다.

경험과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가라앉았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박근혜 체제’는 안정적으로 가동됐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2004년 6월5일 재보선, 2005년 4월30일 재보선, 2005년 10월26일 재보선, 2006년 5월31일 지방선거까지 한나라당은 내리 승리를 거뒀다. 원조 친박의 시대였다. 초선 유승민 의원이 당 대표 비서실장을, 3선 김무성 의원이 당 사무총장을 맡아 ‘박의 복심’으로 분류됐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은 일찍 찾아왔다. 차기 대권 주자 1순위에 그녀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대선 경선을 앞두고 당내에도 ‘친박’이 세를 규합했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
구원투수로 등판해 ‘선거의 여왕’ 되다


유일한 적수는 당내에 있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은 ‘사실상의 결승’으로 불렸다. 당시 여당은 분열했고, 대통령의 인기는 하락세였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은 전쟁과 같았다. 이 승부에서 이기는 쪽이 정권을 가져갈 확률이 높았다. 김무성·최경환·유승민·유정복·이혜훈 등 친박계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박근혜 후보의 경선을 준비했다. 최태민 의혹도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다. 상호 비방전이 이어졌다. 박근혜 캠프는 이명박 후보의 약점인 도곡동 땅 문제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당이 두 갈래로 나뉘어 폭로전을 거듭했다. 결과는 이명박 후보의 승리였다.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집권 보수 정당에서는 이때부터 양대 계파의 갈등이 늘 당내 이슈로 떠올랐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에서는 친이계가 친박계를 내쳤다. 박근혜 경선 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서청원·홍사덕·이규택 등 친박 핵심으로 꼽히던 인사들이 줄줄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박근혜 당시 의원은 2008년 3월23일 기자회견에서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공천에 반발한 친박계 인사들은 탈당한 뒤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로 나뉘어 선거를 치렀다. 그중 일부는 배지를 달고 생환에 성공했다.

이명박(MB) 후보와의 대결 이후 친박계는 당권과 위세를 잃었다. 그러나 거물급 정치인 박근혜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친박계의 협조가 없다면, MB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현안도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 마련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9월1일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표결이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정운찬 총리에게 힘을 실으며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충청권을 중심으로 ‘박근혜 대망론’을 밀어붙이려던 친박계가 제동을 걸었다. 결국 야당과 친박계를 중심으로 본회의에서 반대표가 모였고, 대통령이 밀어붙인 정책(세종시 수정안)과 차기 정치 지도자(정운찬 총리) 구상은 무너지고 말았다. 집권 3년차, 한나라당 권력 지형의 균형추는 점차 차기 유력 주자인 박근혜 의원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2010년 8월21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 간의 회동이 성사되었다. 양측의 합의 사항은 간명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협력한다.” 사실상 현직 대통령이 후임으로 박근혜 의원에게 힘을 실어준 순간이었다.

2011년 홍준표 체제로 유지되던 한나라당은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라는 또 한 차례 위기에 직면한다. ‘천막당사’급으로 당이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다가오는 2012년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홍준표 체제는 차기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체제로 전환되었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을 버리고 ‘새누리당’이라는 간판을 새로 달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거둔 의석은 과반을 넘긴 152석. 15년 전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한 정치인 박근혜는 거대 여당의 수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대단히 압축적이고 극적이었다. 정치 경력 20년 가운데, 16년을 특정 세력의 리더로 활동했다. 그녀가 특정 세력을 대표하는 동안 집권 보수 정당은 세 차례(제18·19·20대 총선) 공천 파동을 겪었다. 그리고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보수는 위기에 내몰렸다. 그녀의 20년 정치 인생이 끝나고 한국 보수 정당에게는 ‘비극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사드 배치에도 최순실 입김?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무기 시장은 록히드마틴의 독무대였다. 지난 4년 동안 록히드마틴 사로부터 구입한 무기 비용은 12조원이 넘는다. 노무현 정부 때보다 100배, 이명박 정부 때보다 13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2017년 03월 20일 월요일 제496호

3월6일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요격미사일 발사대 2기가 도착했다.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급작스럽게 한·미 당국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시작했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결연히 반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러시아 정부도 “군사적인 대응 조치를 하겠다”라고 표명했다. 동북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드 배치는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은 사드가 자국의 안보 문제를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면 무역 보복은 물론 안보·군사적 대응까지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보복은 무역전쟁으로 옮아붙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처음부터 사드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4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드를 도입하자는 의원총회’를 강행했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만류했다. 당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윤상현 청와대 정무특보(당시 새누리당 의원)는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사드 문제를 공론화하는 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우리 내부에서 갑론을박하면 주변국들 목소리만 더 커지고 우리 정부의 주도권은 더욱 없어진다. 우리가 사드 배치를 주장한다고 해서 국민적 총의가 모이는 것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 안보 비용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 제공
3월6일 사드의 부품이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2015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행사에 윤상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당시 러시아 행사 참여에 관여했던 한 외교관은 “윤상현 의원은 한국이 사드를 배치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러시아와 중국에 명확히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을 박 대통령의 친서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윤 의원의 한 측근도 “윤 의원이 ‘사드는 없다’는 이야기를 중국과 러시아에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것도 맞다”라고 말했다.

2015년 9월에도 윤상현 의원은 일관된 입장을 이어간다. “사드는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며 검증된, 완성된 무기 체계가 아니다. 정말로 사드 배치가 핵 억제에 작용될 수 있는가.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체제가 성립된다는 의미인데 그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한·중 간 경제협력이 한·미 간보다 두 배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런 면엔 어떤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하나.”

2016년 2월7일, 한·미 국방부는 사드 배치를 협의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한다. 이때까지도 사드 배치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외교 카드’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2016년 6월 말, 중국을 방문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사드는 결정한 바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7월8일 국방부는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전격 발표한다. 외교부·통일부 등 유관 부서와 협의도 없었다. 핵심 당사자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조차 사드 배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발표 당시에 윤 장관은 백화점에서 양복을 수선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인사들도 사드 배치에 대해 사전에 잘 알지 못했다. 2016년 7월5일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가 열렸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사드가 배치되면 우리의 요격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상현 의원이 “북한 군부나 정권에 사드 배치 부담감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사드 한 대에는 미사일 48발이 있다. 북한은 미사일이 1000여 기가 넘고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는 200대가 넘는다. 미사일 비가 쏟아지는데 사드가 미사일 빗줄기를 하나하나 추격해 맞출 수 있는 무적의 방패 우산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사드는 없다’ 했지만 물밑 작업은 계속


사드 배치가 발표될 때까지,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무기 도입 과정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며 누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일까?

<시사IN>이 단독 입수한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에 사드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6년 3월6일이다. 안종범 업무수첩은 대통령의 지시 사항뿐 아니라 각종 회의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어 박근혜 정부 ‘사초’라고도 불린다. 안종범 업무수첩에 따르면, 티타임에서 ‘사드’가 잠깐 언급되었다. 사드 배치 후 “외부 세력 대처” “중국 지도부의 보복 의지 감지” 등 사후 대책이 논의되었다(48쪽 사진 참조).

ⓒ시사IN 자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록히드마틴의 로비스트 린다 김이 기지개를 켰다. 이후 정윤회·최순실이 무기 거래에 관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위 왼쪽부터).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사드에 대한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며 이른바 ‘3불론’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수면 아래서 사드 시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우선 방산 라인을 ‘박근혜 사람’으로 교체했다. 2014년 1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방위사업청장에 장명진씨를 임명한다. 최순실·차은택 라인인 김상률씨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할 즈음이었다. 장 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기동창이다. 미사일 전문가로 행정 경험은 전혀 없던 인물이다. 장명진씨의 한 대학 동기는 “박 대통령이 학생 시절 청와대 경호원들이 영애(박근혜)를 데려오면 장명진에게 인계하고 가곤 했다”라고 말했다.

2014년 11월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꾸려졌다. 김기동 검사가 방산 비리 수사를 총괄 지휘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은 “차은택의 법조 조력자가 김기동인데 우병우가 김기동을 소개해줬다”라고 말했다. 김기동 검사는 “후배 검사가 저녁 식사하는 자리에 차은택이 우연히 동석해 밥값을 내주고 명함을 주고받은 게 전부다”라고 해명했다. 정부합동수사단의 한 관계자는 “방위사업비리 수사단이 실세는 못 잡고 민간인만 잡는다는 비판이 컸다. 록히드마틴의 경쟁사만 집중 공격한다는 비난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무기시장은 록히드마틴의 독무대였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록히드마틴에서 무기 구입비 107억2475만 달러(약 12조4398억원)는 노무현 정부(1억976만 달러·5년)의 100배가량, 이명박 정부(7억7777만 달러·5년)에 비해서도 13배 이상 증가했다(오른쪽 표 참조). 공군과 해군의 한국형 전투기 KF-X 120대 개발, 공군 주력 KF-16 134대 성능 개량, 해상 초계기 바이킹 12대 등 항공기 사업은 록히드마틴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도입 비용만 27조8000억원에 이른다. 항공기의 경우 가동되는 30~40년간 막대한 부품비·운영비가 계속 들어간다. 한 공군 장성은 “박근혜 정부에서 계약한 건만으로도 록히드마틴은 항공기 구입비와 운영비로 100조원이 넘는 돈을 벌게 된다. 여기에 이지스함 전투체계 구매, 금강4차 후속 지원, 패트리엇(PAT-3) 성능 개량 등 큰 덩어리 무기 구입은 모두 록히드마틴 몫이었다”라고 말했다. 기무사령부 한 간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록히드마틴이 무기 수주를 싹쓸이하도록 밀어주었다. 그러자 정윤회·최순실 등 비선이 무기 거래를 주도한다는 소리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사드 제조사도 바로 록히드마틴이다.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에 적힌 사드 관련 내용들. 사드 배치 후 ‘외부 세력 대처’ ‘중국 지도부의 보복 의지 감지’ 등 사후 대책이 청와대 회의에서 논의되었다.

정윤회·최순실의 이름이 방산 분야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은 노후한 전투기를 대체하는 KF-X(차세대 전투기) 사업이었다. 향후 30년간 우리 영공을 책임질 전투기를 선정하는 작업으로 전투기 구입비 7조3000억원, 부품 교체비 등 운영비까지 합하면 30조원이 넘게 투입되는 초대형 안보 사업이다. 미국 보잉 사의 F-15SE(사일런트 이글), 록히드마틴의 F-35, 에어버스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이 경쟁했다. 보잉과 에어버스는 한국형 전투기 KF-X 개발을 위해 레이더 등 4가지 핵심 기술 이전뿐 아니라 항공기 사업 투자까지 약속했다. 반면 록히드마틴은 핵심 기술 제공을 거부했고, 가격도 비쌌다. 2013년 9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보잉의 ‘사일런트 이글’을 최종 선정한다. 그런데 2014년 3월 김관진 국방부 장관(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보잉 전투기 선정을 취소하고 록히드마틴의 F-35A로 기종을 변경했다. 기종 선정이 번복되면서 잡음이 컸다. 당시 김 실장은 “정무적으로 판단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때부터 정윤회·최순실 이름이 거론되었다. KF-X 사업에 참여했던 한 국방부 인사는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한 록히드마틴은 가격도 비싸서 보잉기 60대 살 돈으로 40대밖에 사지 못한다. 청와대에서 급히 기종을 바꾼 것은 비선의 힘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정윤회·최순실 이름이 나돌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세계일보>는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에게서 전화를 받은 일은 있다”라는 방위사업청 직원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국방부에서는 최순실 의혹과 관련해 “말도 안 된다”라고 일축했다.

비선 의혹은 로비스트 린다 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 비리에 연루되었던 린다 김은 이후 방산 업계에서 퇴출당했다. 간간이 방송에 출연하며 재기를 꾀했지만 방산 업계에서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린다 김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국방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1980년대 박근혜씨가 외로웠을 때 린다 김이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에 있는 자기 별장에서 묵게 해주었다. 거기서 박근혜씨는 글을 썼다고 한다. 이후에도 린다 김이 박 전 대통령을 극진히 챙긴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린다 김의 한 지인은 “박 대통령 당선 후 린다 김이 청와대에 자주 들어갔다고 이야기했다. 명절 때는 청와대에서 자고 온 적도 있다고 했다. 린다 김이 최소 여섯 차례는 청와대에 갔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린다 김 (검찰)조서에 언급된 정윤회


박근혜 정부 들어 린다 김이 로비스트 활동을 재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방위사업청의 한 육군 장성은 “박근혜 정부 들어 린다 김이 청와대를 팔고 다닌다는 정보가 돌았다”라고 말했다. 린다 김과 친분이 두터운 미국계 무기 로비스트 ㅇ씨는 “록히드마틴의 로비스트였던 린다 김은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KF-X 사업에서는 이미 선정된 보잉 사를 뒤집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는 “린다 김의 파트너는 정윤회씨였고 청와대에서는 김관진 라인이 가동됐다. 그런데 나중에 최순실이 린다 김-정윤회 라인을 배제하고 직접 록히드마틴과 테이블에 앉았다”라고 덧붙였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 최고위층 인사에 따르면 2015년 6월 최순실씨가 오산공군기지로 비밀리에 입국한 록히드마틴 회장과 만났다. 그 이후 록히드마틴 간부들이 한국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록히드마틴 측은 “F-35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사업과 관련해 최순실 및 린다 김과 상의한 적이 없다. 록히드마틴 메릴린 휴슨 회장은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으며 최순실과도 만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해명했다.

린다 김과 정윤회(최순실)의 관계는 전혀 엉뚱한 사건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2016년 10월 린다 김은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의 검찰조서에는 ‘2016년 5월29일 린다 김이 무기 로비스트 ㅇ씨와 메리어트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후 청담동 ㅋ노래방에서 정윤회씨와 전직 장관, 인기 중견가수 등과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전직 장관은 노래를 3곡 부르고, 가수는 새벽까지 동석했다고 한다. 검찰 조서에 나오는 전직 장관은 “린다 김과 친분은 있으나 그날 정윤회씨와 동석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인기 중견가수도 “다른 사람들은 만난 것 같지만 정윤회씨를 만나지는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은 “독일에서 정윤회와 친분을 과시하는 박원오(대한승마협회 전 전무)에게 정유라가 ‘우리 아버지는 청와대 김관진 말고는 형님으로 모시는 사람이 없다’라며 큰소리를 냈다”라고 말했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수사하던 박영수 특검은 최순실씨가 무기 거래에 관여한 단서를 잡고 수사에 나섰다. 지난 1월 특검 조사관들이 대전교도소에 들이닥쳤지만 린다 김이 면담을 거부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검의 한 관계자는 “린다 김이 최순실과 사드의 고리를 풀어줄 열쇠인데 시간이 모자라 어렵게 됐다. 향후 무기 도입에 대한 최순실의 농단은 검찰이 반드시 밝혀야 할 과제다”라고 말했다.

ⓒ록히드마틴 제공
2014년 3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보잉 전투기 선정을 취소하고 록히드마틴의 F-35A(사진)로 기종을 번복하면서 잡음이 일었다.

특검팀이 의심하는 최순실의 국방 분야 관여 의혹에는 사드 배치도 포함되어 있다. 린다 김과 친분이 깊은 미국계 무기 로비스트 ㅇ씨는 “(사드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의 한국 독점과 무관치 않다. 사드 배치 과정에서 최순실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특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사드는 유관 기관이 배제된, 완벽한 박근혜 대통령의 단독 플레이였다. 결국 최순실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순실씨는 지난해 12월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국정조사특위 위원들과의 ‘현장 청문회’ 때 “황당하다. 록히드마틴이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진’ 검찰의 창(槍) ‘전면 부인’ 박근혜 방패 뚫을까

차기 정권 ‘개혁 대상’ 檢, ‘박근혜 수사’에 사활 걸었다

조해수 기자 ㅣ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0(월) 13:07:59 | 1431호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검찰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밀리는 쪽은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박 전 대통령은 자연인 신분으로 ‘구속 수사’라는 치욕을 당할 수 있다. 검찰은 차기 정권에서 ‘검찰 개혁’이라는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검찰에서는 최정예 칼잡이들이, 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동고동락한 호위무사들이 나선다. 주변 환경은 녹록지 않다. 대선이라는 태풍이 눈앞에서 불고 있다. 정치적 외풍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수사 시점에 대한 갑론을박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1600여만 촛불로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던 국민들의 시선은 냉정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국민들은 ‘진실 규명’과 이에 따른 ‘책임자 처벌’을 원하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을 촉구했던 촛불집회에서 항상 흘러나왔던 노래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이는 촛불의 구호가 아니다. 지난 3월12일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사저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처음으로 밝힌 자신의 입장이다.

 

© 시사저널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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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죄’ 적용되면 구속 수사 가능성도

 

박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진실’은 단순명확하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 내용은 물론 헌재가 인정한 탄핵 사유 역시 모두 ‘사실 무근’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향후 검찰수사에서도 이와 같은 입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모두 13개다. 지난해 발족한 검찰의 1기 특수본이 8개를 적용했고, 박영수 특검팀이 5개를 추가했다. 크게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미수, 공무상 비밀누설, 특가법상 뇌물수수 및 제3자 뇌물수수로 분류할 수 있다.

 

핵심은 역시 뇌물죄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약 300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에 따라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검에 의해 이미 구속됐다. 뇌물죄에서는 뇌물을 준 사람보다 뇌물을 받은 사람을 가중 처벌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1기 특수본 때 재벌기업들을 강압에 의해 출연금을 낸 ‘피해자’로 규정하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직권남용을 적용했다. 3월6일 출범한 2기 특수본이 특검의 ‘뇌물죄’ 판단을 따를 경우 1기 특수본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헌재 역시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기업들은 미르·K스포츠 재단의 설립취지나 운영 방안 등 구체적 사항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재단 설립이 대통령의 관심사항으로, 경제수석이 주도해 추진된다는 점 때문에 서둘러 출연 여부를 결정했다”면서 기업들의 출연금을 사실상 ‘강요’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이 때문에 뇌물죄 수사가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법과 원칙에 따른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 연합뉴스

김수남 검찰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법과 원칙에 따른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 연합뉴스


그러나 검찰은 예상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은 물론 SK·롯데·CJ 등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수본은 3월16일 김창근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김영태 전 커뮤니케이션위원장,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 등 SK그룹 전·현직 수뇌부 3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 전 의장은 2015년 7월 박 전 대통령과 독대했는데,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수감 중이던 최태원 회장이 재벌 총수 중 유일하게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SK는 같은 해 11월 미르재단에 68억원을 출연했고, 이듬해에는 K스포츠재단에도 43억원을 안겼다. SK 외의 다른 기업들 역시 검찰의 소환조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지시 의혹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특검팀은 박 전 대통령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했으며,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등을 부당인사 조치하고 이상화 KEB하나은행 본부장의 승진 인사에도 깊숙이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역시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청와대 비서실과 문체부 등에 작성 지시를 내린 적도 없고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면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모든 혐의를 미루는 모양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사실관계가 모두 인정되더라도 범죄가 되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의 통치철학에 부합하도록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균형 있는 문화예술정책을 강조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자유민주적 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편가르기’식 지시가 있었다”면서 “사전 검열이 있었는지, 작품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있었는지, 따르지 않을 경우 어떤 보복 조치가 있었는지 등이 쟁점이 돼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유신 망령 ‘블랙·화이트 리스트’도 사정권

 

블랙리스트뿐만 아니라 화이트리스트 역시 검찰의 사정권 안에 있다. 반(反)정부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목록이 블랙리스트라면, 친(親)정부 보수단체들을 지원해 줬다는 의혹이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다. 이 사건은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에 배당됐다. 검찰은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전경련 등에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보수·관변 단체에 대한 지원을 강요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4월 허 행정관을 비롯한 청와대 측이 관제데모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최초 보도한 바 있다(2016년 4월20일 “[단독] 어버이연합 ‘청와대가 보수집회 지시했다’ 기사 참조).

 

검찰이 예상외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야당을 비롯해 국민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검찰이 청와대와 박 전 대통령 사저에 대한 압수수색과 관련해 “압수수색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압수수색은 수사 초기, 증거수집이 중요한 목적인데 지금은 수사가 정점으로 가고 있다”고 밝히자 검찰의 수사의지를 의심하는 질타가 이어졌다.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특검과 달리 검찰의 경우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에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12일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 도착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에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12일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 도착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반면 검찰의 친(親)권력적인 속성 때문에 철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이 이미 ‘죽은 권력’이라는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의 속성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더 킹》이라는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그냥 권력 옆에 있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검찰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탄핵이 되고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진 지금은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로 돌변할 것이다. 다음 정권에 눈도장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김수남 검찰총장이 하지 말라고 해도 수사는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다. 김 총장이야 곧 떠날 사람이고 수사를 맡은 검사들은 다음 정권에서 승진도 하고 출세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이 우병우 사건을 이번에도 제대로 결론 내지 못한다면 새 정부에서 개혁 대상 1호는 검찰이 될 것이다.” 현재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야당 후보들은 이미 검찰 개혁을 천명한 상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비롯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 권한을 제한한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야당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검찰의 공정성을 가늠할 바로미터로 보고 있다.

 

 

“그냥 권력 옆에 있어” 檢, 차기 정권 눈치 볼 것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넘어야 할 또 다른 큰 산이다. 검찰 내에서도 “또다시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할 경우 검찰 조직 전체가 순장(殉葬)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 성적표는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3월14일 서울 청담동의 투자자문업체 M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M사가 우 전 수석이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후에도 자문료 형식의 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우 전 수석 개인 비위(非違) 혐의와 관련해 참고인 5명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에 조직의 명운을 걸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에 조직의 명운을 걸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밖에도 우 전 수석은 공직자 신분일 때 일부 대기업으로부터 수억원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공무원 인사 부당 개입 혐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내사 방해 혐의, 민간인 불법사찰 혐의 등도 포함된다. 특히 2014년 6월 세월호 사건 수사 당시 광주지검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청와대와의 통화내역이 담긴) 해경 상황실 전산 서버는 압수수색하지 말라’는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서 성과를 낸다 하더라도 인적 청산은 불가피해 보인다. 야당은 “검찰 내부에 존재하는 ‘우병우 사단’이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고 나라를 망쳤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는 특수본 본부장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던 특별수사팀 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을 비롯해 정수봉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 검찰 출신인 최윤수 국정원 2차장 등을 우병우 사단으로 지목하고 있다.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이다? 여성이기 전에 대통령이 맞다!”

여성학자 정희진 인터뷰…신간 《낯선 시선》 통해 ‘여성 대통령’ 발언 신랄히 비판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0(월) 16:20:00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해 11월 유영하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

“약한 사람은 누굽니까 여자 하나에요. 여자 하나.”

- 2월22일 김평우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인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며 한국의 대통령은 한 나라의 통수권을 쥔 지도자에서 ‘약한 여성’으로 변모한 듯하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검찰의 대면조사를 거부하며 유독 ‘여성의 사생활’을 강조했다. 탄핵심판 대리인단이었던 김평우 변호사 역시 헌재에서 진행된 탄핵심판 변론에서 박 전 대통령을 ‘약한 여자’라고 어필했다. ‘여자’라는 지위는 국민 주권을 포함한 헌법적 가치를 뛰어넘어 보호해야 하는 ‘최약체’가 돼버린 것은 아닐까. 

 

ⓒ Pixabay

ⓒ Pixabay


박 전 대통령은 ‘여성’이란 정체성을 일종의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국회의원으로, 대통령 후보로 뛸 땐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르는 여성 정체성을 최소화해 내세웠다. 그러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역풍을 맞게 되는 불리한 순간, 느닷없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그가 ‘여성’ 이라는 사실이 한국 사회를 혼돈으로 몰고 간 국정농단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대통령 변호인 측의 주장대로 그가 ‘여성’ 이기에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이 같은 문제인식을 품은 사람이라면 눈 여겨봐야할 책이 나왔다. 《낯선 시선》이라는 제목의 책은 여성학자 정희진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일어난, 우리 시대를 특정짓는 주된 사건들을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해 쓴 글들을 고르고 모아 엮은 책이다. 책의 저자 장희진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 “박 전 대통령은 여성이기 이전에 대통령으로 먼저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내용. 

 

 

최근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 변호인단과 친박집회측에서 유독 ‘여성’이란 점을 강조하는 모습이 보였다. 

 

박 대통령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유영하 변호사가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해달라”고 말했을 때 많은 국민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여성’의 의미는 다양하다. 개인으로서 여성, 성 역할 담당자로서 여성, 노동자로서 여성, 국민으로서 여성…. 때문에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노동이나 역할은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성별이, 또 어떤 상황에서는 다른 역할이 강조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이기 이전에, 최고 통치자이자 국정의 책임자다. 남성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공직은 일단 성 중립적인 위치고, 성별은 이후 고려 사항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직무 수행 능력이지, 여성다움이 아니다. 

 

또한, 대통령의 사생활은 일반인의 사생활과 다를 수밖에 없다. 유영하 변호사의 말은, ‘대통령’과 ‘여성’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발상이다. 저는 그의 무지에 놀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해 11월15일 오후 서울 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해 11월15일 오후 서울 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국정농단 사태를 두고 ‘여자 대통령이어서 그렇다’는 식의 비난도 있다. 이번 사태는 박 전 대통령의 성(性)과는 사실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성에 대한 잣대로 그를 비난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로 그를 옹호하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해보이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성별 논란은 성별 그 자체라기보다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 것이다. ‘박정희의 아들’이 아니라 ‘딸’이란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 혹은 여성의 인권을 옹호하는 정치인이어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유신의 잔재(향수)’였기 때문이다. 즉, 그녀의 성별 문제는 ‘박정희-박근혜’라는 부녀 세습 대통령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유산으로서,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편의적으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또 국정운영 차원에서 그런 차이가 과연 그가 ‘남성’이었다면 달라졌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합리적인 건가.

 

야당 성향의 유권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을 정치인이나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비판이나 요구가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는 철저히 분리돼있다. 

 

성차별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여성의 존재를 시민, 노동자, 지식인, 공무원 등 그들이 직접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성 역할’로만 제한하는 규범과 제도다.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독일의 메르켈 총리나 미국의 힐러리 전 대통령 후보처럼 ‘개인’으로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성 인물의 등장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는 성별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1970년대 최태민씨 문제서부터 설명돼야 독재 부패 정권의 유산이기 때문에 간단치가 않다고 본다.

 

물론, 남성이 대통령이었다면 ‘더러운 잠’ 같은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집필한 《낯선 시선》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집필한 《낯선 시선》

 

 

《낯선 시선》이란 제목의 글 모음집을 최근 출판하셨다. 이 책엔 ‘여성학자’라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낯선, 그래서 그 개념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이의 시선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여성이든, 여성학자든 사회의 구성원이고, 이러한 저의 인식은 우리 사회의 산물이다. 여성학자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 다만 “‘다르게 생각하라’를 다르게 생각하기”. 이게 제 일이다. 

 

‘낯선 시선’은 새로운 인식을 말하는 것이지, 여자학자가 낯설다는 의미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낯설다는 것도 본질적인 사안은 아니다. 과거 ‘유비쿼터스’나 ‘하이브리드’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다 못해, 무슨 말인지 알 지도 못하는 말이었지 않냐. 

 

‘생각하지 않음이 폭력’이라는 말처럼, 한 사회의 발전과 성숙은 생각하는 사람들, 새롭게 생각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달려있다고 본다. 촛불이 그것을 증명했다. ‘똑똑한’ 시민이 사회를 바꾼다는 것을 말이다. 국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는 세상에 적응하고 싶지도 않지만, ‘지고’ 싶지도 않아 이 책을 썼다.



최순실이 끌어주고 박근혜는 밀어주고

최순실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환상의 국정 농단 콤비였다. 최순실씨가 뒤에서 기획한 내용을 전달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이를 지시했다. 장관들은 이를 충실히 수행했다.

김은지·김연희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3월 20일 월요일 제496호

피의자 박근혜. 민간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장 마주하게 될 신분이다. 현재까지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모두 13가지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직권남용·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추가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3월10일 현재 대면조사 등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 수사가 이뤄지기 전이다. 탄핵이 인용되기 전까지 박 전 대통령은 헌법상 불소추 특권을 내세우며, 검찰·특검 수사를 모두 거부했다. 파면당하면서 불소추 특권이라는 방패가 사라졌다.

검찰·특검이 기소한 박근혜 게이트 관계자들의 공소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살펴봤다(공소장에 나온 혐의의 구체적 내용을 인용했다). 지금까지 기소된 이는 모두 39명이다(22~23쪽 표 참조). 검찰과 특검은 이들의 혐의 정점에 박 전 대통령이 있다고 본다. 최순실씨는 박 전 대통령과 공범 관계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청탁이나 의견을 개진하면, 박 전 대통령은 관료 등에게 지시했다. 그 과정에 관여하고 숨기느라 거짓말을 했던 이들 또한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시사IN 조남진
2016년 4월18일부터 10월26일 사이에 최순실씨(왼쪽)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불법으로 만든 대포폰으로 573번 통화를 했다.

삼성 뇌물수수


2014년 9월 초, 최순실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한화에서 삼성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한화가 정유라씨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9월15일 박 전 대통령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따로 부른다.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이 맡아주고 승마 유망주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좋은 말도 사주는 등 적극 지원해달라’고 요구한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삼성은 경영 승계를 서둘러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을 매개로 최순실씨와 이재용 부회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2015년 5월 최순실씨는 박 전 대통령에게 대기업의 돈을 받아 재단법인을 설립해 함께 운영하자고 제안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에게 ‘삼성 등 대기업 10곳 출연을 받아 각각 300억원 규모인 문화와 체육 분야 재단을 설립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2015년 7월25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두 번째 독대를 앞두고 최순실씨는 두 가지를 주문한다. ‘정유라에 대한 지원을 이행해라.’ ‘장시호와 같이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에 후원금을 지원해달라.’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요구를 이 부회장에게 전달한다. 박 전 대통령은 독대 자리에서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승마 관련 지원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이냐. 삼성이 한화보다도 못하다. 승마 유망주를 해외 전지훈련도 보내고 좋은 말도 사줘야 하는데 삼성이 그걸 안 하고 있다’라고 이 부회장에게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영재센터 사업계획안을 건네며 ‘동계스포츠 메달리스트들이 설립한 단체인 영재센터에 돈을 지원하라. 제일기획 김재열 사장에게 지원하게 하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면담 직후 삼성 수뇌부에 ‘대통령이 원하는 사항을 모두 충실히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삼성은 정유라씨 승마 훈련에 78억원을, 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원을 지원했다.


이날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은 삼성의 민원도 챙겼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발원지로 지목돼 여론의 비난을 샀다.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현 정부 임기 내에 삼성 경영권 승계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금번 메르스 사태가 삼성서울병원이 다시 한번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박근혜).’ 독대 사흘 후,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메르스 후속조치 관리계획에 삼성서울병원은 빠졌다. 그러다 특검 수사가 시작되자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움직였다. 지난해 12월26일 삼성서울병원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과징금 806만원을 부과했다.

2016년 2월15일,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세 번째 독대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유라를 잘 지원해줘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잘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삼성이 26억7000만원 상당의 마장마술용 말 비타나V와 라우싱1233을 정유라씨에게 사준 직후였다. 이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현재 금융위원회에서 검토 중인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이 승인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관련 환경규제 완화 및 투자 유치를 위한 세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 바이오산업은 삼성이 이재용 체제를 준비하며 주력하는 분야다. 삼성 바이오로직스는 적자 기업임에도 2016년 11월 증권시장에 상장됐다.

2016년 5월 최순실씨는 에티오피아 순방길에 오르는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에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고 요청한다. 박 전 대통령은 국빈 방문 만찬장에서 사절단에 동행한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을 헤드테이블에 앉게 했다. 먼저 악수를 청한 박 전 대통령은 박 전 사장에게 ‘승마 등 지원을 해주어 감사하다.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최씨는 박 전 사장에게 ‘악수는 잘 하셨냐?’라고 직접 확인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최순실씨는 평소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은 공직에 추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2년 정치 풍자 프로그램 <여의도 텔레토비>를 방송하고 2013년 영화 <변호인>을 제작한 CJ가 찍혔다. 최씨는 CJ를 콕 집어 좌파 성향이라고 비난했다. 2013년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을 불러 ‘이미경 CJ 부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취임 뒤 블랙리스트 작동이 본격화되었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13년 8월21일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종북 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30일 박 전 대통령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하지 않아 문제다’라고 발언한다.


그 결과 2014년 4월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설립해 ‘좌파 성향’ 문화계 단체와 인사들을 임의로 지정해 지원에서 배제한다. 정부 정책 반대나 야당 인사 지지를 기준으로 ‘문제 예산 130건, 문제 단체 3000여 개, 좌편향 인사 8000여 명’이 선별된다. 또 문체부 산하 공모사업의 심사위원과 정부위원회 위원 중 ‘좌파 인사’를 골라낸다.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문제 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는 김기춘 전 실장의 검토를 거쳐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이때부터 청와대 정무수석실→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문체부를 통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적용된다. 문체부는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개인·단체를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신동철 당시 정무수석실 비서관은 새로 부임한 조윤선 정무수석에게 블랙리스트 업무를 이렇게 보고했다. ‘보조금 문제와 우파 지원 문제가 소통비서관실의 가장 큰 현안이다. 좌파 단체는 자생력이 강한 데 비해, 우파 단체는 정부 지원이 없으면 거의 유지를 못한다. 상부 지적에 따라 좌파 인사 등을 정부위원회나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조치한다.’

블랙리스트 업무를 적극 수행하지 않은 문체부 고위 공무원은 해임당했다. 2014년 7월부터 10월까지 줄줄이 문체부를 떠나야 했다. 유진룡 장관 면직, 조현재 1차관 경질, 1급 최규학·김용삼·신용언 실장은 사표를 썼다. ‘성분불량자’로 찍힌 탓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실장은 유 전 장관 후임인 김종덕 당시 장관에게 이들의 사표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청와대는 세월호와 관련된 움직임도 틀어막았다. 유진룡 전 장관에게 김기춘 전 실장은 ‘세월호 유족 편에서 정부를 비난했던 예술계와 학계 인사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결정하자 조윤선 당시 정무수석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를 방해했다. 조 전 수석은 정관주 당시 비서관 등에게 ‘<다이빙벨> 상영관의 전 좌석 관람권을 일괄 매입해 시민들이 관람하지 못하게 하고, 폄하하는 관람평을 게시하도록 하라’고까지 지시했다. <다이빙벨>을 상영한 다음 해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14억6000만원에서 8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삭감했다.

민간 인사 및 최순실 이권 사업 개입

이상화 KEB하나은행 프랑크푸르트 전 지점장은 최순실씨의 ‘독일 금고지기’로 통한다. 독일에서 근무하던 2015년 8월, 이 전 지점장은 최씨의 자산관리를 도왔다. 석 달 후 최씨는 하나은행 유럽 총괄법인사무소가 룩셈부르크에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최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유럽 총괄법인을 프랑크푸르트로 옮기고 법인장으로 이상화를 임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에게 지시를 내렸다. 안 전 수석은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정 전 부위원장은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에게 이를 전달했다. 인사 청탁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유럽 총괄법인 신설 계획 자체가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최순실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박 전 대통령에게 ‘이상화를 국내에서 해외업무를 총괄하는 본부장으로 임명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안 전 수석에게 지시했고 같은 방식으로 인사 청탁이 전달됐다. 하나은행은 이씨를 해외 총괄본부장 대신 삼성타운 지점장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최순실씨가 본부장 인사 청탁을 박 전 대통령에게 다시 했고, 결국 안 전 수석은 2016년 1월21일 김정태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내가) 언제 센터장 했다 나중에 본부장 승진시키라고 했습니까? 당장 승진시키세요. 무조건 빨리 하세요. 지금 이거 내 이득을 위해서 합니까.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갑니까.’ 결국 하나은행은 이틀 후 조직개편까지 하며 본부장급 자리를 두 개로 만들었다. 이상화씨는 글로벌영업 2본부장으로 임명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은행 인사에 개입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를 했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 추천으로 삼성 출신인 유재경씨를 미얀마 대사에, 코트라 출신인 김인식씨를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이사장에 앉혔다. 외교부에서 올린 외교관 출신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했다. 외교 경험이 전무한 ‘최순실 사람’을 임명한 것이다. 이들은 최씨 이권이 개입된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위해 움직였다. 유재경 대사는 미얀마 현지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 등을 진행해 큰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최순실씨는 MITS라는 미얀마 개발 회사의 주식 15.3%를 차명으로 가졌다. 김인식 KOICA 이사장은 2016년 5~7월쯤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하면서 상황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이상화씨를 통해 최순실씨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비선 의료 및 대포폰 이용


커튼이 쳐진 카니발 승합차는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정식 출입 절차를 거치치 않고 관저로 향했다. 운전석에는 이영선 청와대 경호관, 커튼으로 가려진 뒷좌석에는 매번 다른 사람이 앉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전부터 삼성동 사저를 드나들던 ‘주사 아줌마’ ‘기치료 아줌마’다. 최순실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소개한 무면허 의료업자였다. 무면허 의료행위는 의료법상 불법이다.

김영재·박채윤 부부도 이영선 경호관의 차를 타고 청와대 관저를 출입했다. 성형외과 김영재의원의 김영재 원장 또한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소개한 ‘비선 의료진’이었다. 김 원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2014년 5월 멍을 빼는 주사제인 히알라제 등을 놔주는 등 2013년 12월께부터 2016년 9월께까지 여러 차례 청와대에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김영재·박채윤 부부 사업체의 해외 진출도 챙겼다.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중동·중국 진출뿐만 아니라 이 사업체 제품을 청와대 설 선물세트로 택하는 등 이권 사업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최순실씨 또한 이임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를 통해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에게 김영재·박채윤 부부 사업을 로비했다. 이임순 교수는 서창석 병원장에게 ‘(김영재·박채윤 사업인) 미용성형에 사용되는 실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관심이 많은 제품이라고 하니 서울대병원 성형외과로 연결해주면 좋겠다’라며 박채윤씨를 소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포폰(차명 전화)을 사용했다. 이영선 청와대 경호관은 2013년 10월부터 최순실씨가 검찰에 긴급체포된 지난해 10월까지 대포폰을 모두 52대 개통했다. 지인이 운영하는 경기도 부천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대포폰을 주기적으로 만들었다. 불법으로 만든 대포폰으로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와 2016년 4월18일부터 10월26일 사이에만 573번 통화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이영선 경호관의 대포폰으로 2016년께에는 박채윤씨와 통화하기도 했다.

이 경호관이 대포폰을 전달한 사람은 둘 외에도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린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및 윤전추 행정관 등이었다. 최측근 사이 연락은 대포폰을 이용했다. 대포폰은 개통뿐만 아니라 사용도 형사처벌 대상(전기통신사업법 제32조의 4 제1항 제1호)이다.


바람 잘 날 없었던 ‘박근혜 147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직 기간에 김용준·안대희·문창극 등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많은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다. 이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박근혜 정부는 안보 이슈를 일으켜 무마했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2017년 03월 20일 월요일 제496호


취임부터 파면까지 대통령 재직일은 1475일이다. 한국갤럽의 ‘국정 지지도’ 정기 조사에 따르면, 취임(2013년 2월25일) 즈음 국정 지지도는 42%였다(잘하고 있다 42%, 잘못하고 있다 22%). 이런 수치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2016년 12월9일 직전에는 국정 지지도가 5%로 추락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91%에 이르렀다. 한국갤럽은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이후 ‘대통령 국정 지지도’를 묻지 않는다. 앞으로도 ‘박근혜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없다. 2017년 3월10일, 대통령은 파면되었다. 박근혜 정부 4년, 1475일을 되짚는다. 연대기로 쓴 ‘근혜 실록’이다(재직 기간 시점을 기준 삼아 호칭은 대통령으로 한다).


ⓒ시사IN 양한모

2013년:잇따른 인사 난맥 그리고 국정원


대통령 당선(2012년 12월19일) 직후인 당선자 시절, 1월 중순부터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문제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당선자와 조율해 실시한 첫 인선이었다.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등 의혹이 줄줄이 이어졌다. 헌법을 다루는 수장 자리에 부적합하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이동흡 후보자는 2013년 2월13일 사퇴했다(그리고 4년 뒤인 2017년 2월13일 그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을 앞두고 이동흡 변호사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에 합류했다).

낙마한 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장이기도 한 김용준 초대 총리 지명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 김학의 법무부 차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등이 여러 의혹을 받다 줄줄이 사퇴했다. 2013년 5월에는 대통령 방미 순방 길에 동행했던 윤창중 대변인이 미국에서 일으킨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되었다.

김용준 총리 후보가 사퇴한 직후 박근혜 당선자는 인사청문회 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박 당선자는 인사청문회에 대해 “능력에 대한 검증보다는 너무 신상털기에 집중하는 것 아니냐. 새롭게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2013년 1월31일). 노무현 정부 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제안해 인사청문회 대상이 국무위원으로 확대되었는데, 그때와는 무척 다른 태도였다.

집권 첫해, 대선 때 내세운 ‘경제민주화’는 뉴스에서 사라졌다. 2월21일 발표한 5대 국정 목표에서 ‘경제민주화’는 제외되었다. 대신 뉴스의 중심에 선 것은 국정원이었다. 원세훈 원장 시절의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가 봄부터 본격화했다. 4월30일,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정치 개입에 관련한 수사가 벌어지는 가운데 2013년 6월 국정원은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뒤였다. 국정원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공작정치가 부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게 일었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임명(8월5일), 국정원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수사, 의원실 압수수색(8월28일),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관련 보도 이후 채 총장 사의 표명(9월13일) 등 사건이 이어졌다. ‘검찰총장 찍어내기’라는 말이 나왔다. 10월21일 국정원 대선 개입을 수사하던 윤석열 검사가 국감에 출석해 외압을 주장했고 나중에 그는 좌천되었다. 11월5일에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의 주도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안이 헌법재판소에 제출되었다. 12월에는 철도노조가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에 대통령은 ‘철도 파업은 명분 없는 일’이라고 했고, 이 발언 이후 공안몰이가 이어졌다. 계속되는 ‘공안정국’이 대자보의 시대를 열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묻는 대자보가 대학가에 확산된 겨울이었다.


ⓒ시사IN 양한모

2014년:4월16일, 그날, 세월호…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2월 신년 업무보고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제도와 관행을 정상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달라” “작은 과제라도 비정상의 뿌리가 뽑힐 때까지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겨나갈 때까지 안 놓는 ‘진돗개 정신’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이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4월16일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의 대응은 비정상적이었다. 대통령은 사고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서도 7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대통령의 7시간’은 의문투성이였다. 대통령은 지나치게 무성의했고, 정부는 위기관리에서 철저하게 무능했다. 그 사이 304명을 태운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세월호 이후에도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는 이어졌다. 5월과 6월에 안대희 총리 내정자와 문창극 총리 내정자가 연이어 사퇴했다. 전관예우, 역사 인식 등이 문제였다. 두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자 세월호 참사 이후 사의를 표명했던 정홍원 총리가 유임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정홍원 총리가 유임되고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신설되었지만 ‘인사 파동’은 그치지 않았다. 7월에는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 정성근 문체부 장관 후보가 사퇴했다. ‘수첩 인사’의 실패가 이어지면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도 나빠졌다. 문창극 총리 후보의 과거 발언이 알려져 논란이 확산될 즈음,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는 여론(47%)이 ‘잘하고 있다’는 의견(43%)을 넘어섰다.

11월 말에는 <세계일보>가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정윤회·십상시 문건’을 보도했다. ‘문고리 3인방’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 논란을 일축하고, ‘문건 유출, 국기 문란 일벌백계’로 사건의 프레임을 바꾸어버렸다(12월1일). 검찰은 문건 유출에 수사 초점을 두고 박관천 경정을 구속했다. 12월7일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을 반박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항상 비리를 척결하고 국민의 삶이 편안해지도록 끝까지 그런 생각으로 일해왔지만 앞으로도 그 생각밖에 없다.”

2015년:메르스,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봄부터 뒤숭숭했다. 4월9일 해외 자원개발 비리와 관련해 수사를 받아온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완종 리스트’에는 여권 관계자 여덟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로 인해 이완구 총리가 사임했다.

5월부터 두 달 동안 ‘메르스 사태’가 심각했다. 총 186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38명이 사망했다. 격리된 사람이 1만6693명에 이르고 메르스로 인한 국내총생산 손실액만 10조원으로 추정되었다. 컨트롤타워 부재로 사태의 혼란이 더 커졌다. 또다시 정부의 무능이 드러났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나아갔다. 8월5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한국사 국정교과서 전환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0월12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했다. 이념과 관련한 논쟁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낳았다.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6월 중순 ‘잘못한다’는 여론(61%)이 ‘잘한다’는 여론(29%)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국정화를 발표하는 10월에는 둘 다 45% 내외로 수치가 비슷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지지도가 빠지면 ‘북한 문제’를 언급하거나 이념적 사안으로 전선을 치는 패턴을 보였다. ‘국정화’가 그런 예다.

12월28일에는 느닷없이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합의’라고 못을 박기까지 했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그 후로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2016년:개성공단 중단과 사드, 최순실과 국회 탄핵 의결

2월10일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 실험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2010년 5·24 제재조치를 취했고, 개성공단은 남북 간 경제교류의 유일한 창구였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124개 기업이 철수했다. 남북관계는 사실상 1970년대로 돌아갔다.

4차 핵실험 이후 ‘사드 배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방부는 7월에 ‘사드 배치 한·미 합의’를 발표하고 그 며칠 뒤에 경북 성주를 사드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최근 사드 장비 일부가 한국에 반입되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9월부터 최순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의혹이 본격 불거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경준·우병우 의혹이 일었던 7월부터 비선 의혹 등을 부인해왔다.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비난에도 굴하지 않아야 하는 것”(7월21일),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9월22일), “도가 지나치게 인신공격성 논란이 계속 이어진다면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 의지에 찬물을 끼얹을 것”(10월20일).

10월24일에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 추진’을 꺼내기도 했다. 2014년 10월에 내놓았던 ‘개헌 논의 반대’를 뒤집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 PC’를 보도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붕괴의 시작이었다. 국정 지지도가 급전직하했다. 11월 초 이후 박근혜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4~5%였다. 검찰 조사, 특검 조사를 받겠다고 했으나 말뿐이었다. 결국 2016년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92일 뒤인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단독] 최순실 집사, 데이비드 윤의 편지가 증언하는 박근혜
프랑크푸르트·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2017년 03월 09일 목요일 제495호

“내 아버지가 이제 한국 대통령의 삼촌이 된 것이다. 최(순실) 원장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졌어.”
“제일 중요한 것은 독일과 유럽에서 ‘명품’ 수입업체 중심회사로 “C+I 홀딩스”(최순실의 차명 회사로 의심받는 CNI홀딩스)를 (최고)주력 회사로 만들 거야. 꼭 만들 거야.”

정유라씨의 도피를 도운 데이비드 윤씨(한국명 윤영식)가 독일어로 쓴 편지들을 <시사IN>이 단독 입수했다(사진 참조). 편지에는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씨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고, 관계한 사업체에 대한 설명도 담겨 있다. 최순실씨, 데이비드 윤과의 관계를 부인하던 통일교 전 유럽본부장 출신 사광기 전 <세계일보> 사장이 이들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도 나온다. 2012년에서 2013년에 걸쳐 데이비드 윤씨가 사광기 전 사장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당시 윤씨는 사기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는 2013년 2월 출소했다.

데이비드 윤씨는 최순실씨의 독일 사업 그리고 정유라씨의 독일 체류 전반을 관리했다고 한다. 정유라씨 아기의 백일잔치에도 윤씨가 참석했다. 오른쪽 뒤가 최순실씨의 측근인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다.

윤씨는 최순실씨의 독일 부동산 매입, 승마 훈련과 관련해 조언해왔다. 고영태씨는 “데이비드 윤이 최순실씨의 독일 사업이나 정유라의 승마 훈련 등을 총괄한 ‘집사’ 같은 역할을 했다. 테스타로사 커피숍(서울 논현동)에도 자주 모습을 보였는데, 최순실씨에게 윤씨는 핵심그룹 안에 있는 몇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윤씨와 최순실씨의 인연은 재독 교민회장을 지낸 윤씨의 아버지 윤남수씨로부터 시작되었다. 최순실씨는 평소 윤남수씨를 ‘오빠’라 불렀고,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삼촌’으로 불렀다고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윤남수씨는 “1980년대 최순실이 독일에 유학 온다고 알아보러 왔을 때부터 돌봐줬다. 한국에 가면 집에 가서 최태민씨랑 밥도 먹고 그랬다. 임선이씨(최순실의 어머니)가 세뱃돈으로 200만원을 주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윤씨는 독일에서 사광기 전 <세계일보> 사장과 함께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편지에 등장한 CNI와는 다른 회사다. 사광기 전 사장은 “CNI는 2006년경 내가 자본금 5억원으로 만든 투자회사로 데이비드 윤, 최순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특검에서 명확하게 해명한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박영수 특검팀은 데이비드 윤씨를 최순실씨 해외 은닉 재산을 밝혀줄 핵심 인물로 보고 추적했으나, 데이비드 윤씨는 독일에서도 종적을 감추고 연락을 끊은 상태다.



다음은 <시사IN>이 단독 입수한 편지의 일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박 후보가 선거에서 이겼다. 문재인에게 3% 차이로. 대통령 취임 이후에 우리는 엄청난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내 아버지가 이제 한국 대통령의 삼촌이 된 것이다.” 최(순실) 원장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졌어. 이전에 비해서. 다시 한번 좋은 시간이 올 것 같아. 나에게 다시 이 어려운 시간만(10개월) 지나면, 감방만 나가면.

우리 내년에는 더 잘 뭉쳐서 많은 일 해보자. 네가 얘기한 것처럼 돈 무지무지 벌어보자. 내 생각에 우리들은 서로를 보충할 팀인 것 같아. 제일 중요한 것은 독일과 유럽에서 ‘명품’ 수입업체 중심회사로 “C+I 홀딩스”(최순실의 차명 재산으로 의심받는 CNI 홀딩스)를 (최고)주력 회사로 만들 거야. 꼭 만들 거야.
약속해. 너의 아버님(사광기)과 너에게 내가 도울 수 있고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특히 네가 인간적으로 우정과 지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줄게.

새해에는 ‘드림팀’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영식 형(서울구치소)
2012년 12월24일





나는 최 원장(최순실)과 만나 아주 중요한 미팅을 가졌단다.
그녀를 만나는 시간은 내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되었어.

너의 아빠(사광기)랑 지난달 짧게 전화했잖아. 너의 아빠에게 확인해줬어. 내가 나가면 CNI를 잘 관리할 것이라고. 만약 어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역삼동 CNI로 보내줘.

이제는 아름다운 봄날을 기다리고 있단다.
추운 날이 끝났으면 좋겠어.
우리 정말 돈 많이 벌자. 한국에서 오래오래 살자.
D-18. 조만간 보자.

영식 형
2013년 2월10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