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공약 누가 정답일까
문제의식은 같고 해결 방법은 제각각이다. 대선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점검했다. 교육 공약을 살필 때는 노동·일자리·인권 공약까지 확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제19대 대통령 후보들이 표현한 지금 우리 사회 교육의 모습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현실 인식은 같지만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관해서는 후보들의 생각이 각기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시사IN>이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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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초·중·고교 맞춤형 공약으로 공교육 내실화를 꾀한다. 3월22일 문 후보가 서울 대영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
이제껏 대한민국 교육의 모든 정책을 기획·시행·평가했던 교육부는 앞으로 그 기능과 역할이 대폭 축소될 확률이 높다.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기호순) 후보는 교육부 중심의 현행 교육행정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교육 백년대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고 교육부 등 정부 부처에는 정책의 집행과 감독 기능 일부만 남기자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 방안에서 차이가 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장기적 교육 의제를 논의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약속했다. 교육 전문가와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여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독립 기구이다. 그곳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를 배치했다. 시급한 교육개혁을 추진하면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준비한다는 구상이다(34쪽 기사 참조). 정부 부처로서 교육부는 존속은 하지만 교육기관 지원·감독 기능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초·중등 교육 업무는 각 시도 교육청에 완전히 넘긴다. 사실상 ‘기능 축소’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유 후보는 교육 기획 기능을 수행하는 ‘미래교육위원회’를 신설하고 교육부는 교육 복지·평생학습 업무 중심으로 기능을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치는 교육정책을 방지하기 위해 미래교육위원회 위원의 임기는 10년으로 정해놓았다. 심상정 후보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 20년 이상 일관된 방향으로 교육을 진화시켜온 핀란드 사례를 들며 교육 혁신의 장기 비전을 논의할 ‘교육미래위원회’ 신설을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좀 더 세다.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의 교육부 축소·재편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교육부 해체’를 주장했다. “현재 교육부는 교육통제부이다. 돈 쥐고 있다고 말 잘 듣는 곳에 돈을 주는 형태로 끌고 가니 자율성과 창의성을 말살한다. 우리나라 발목을 잡는 교육통제부는 폐지하는 것이 맞다(4월7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초청 간담회 안철수 후보 발언).” ‘있는 것 잘 고쳐서 쓰면 되지 않느냐’라는 의견에 대해, 안 후보 측은 ‘새 내용’은 반드시 ‘새 시스템’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안 후보의 다른 교육 공약인 학제 개편을 주장하는 논리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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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내놓은 학제개편안은 관심과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4월12일 고려대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석한 안 후보가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
■ 학교생활만 열심히 하면 대학 갈 수 있을까
교육개혁 정책 가운데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대학 입시 제도이다. 대학 입시 제도는 현재 초·중·고교 모든 공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규정하는 ‘블랙홀’이다. 몇 가지만 손을 본다고 풀릴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새 정부는 당장 오는 7월에 2021년 수능개편안을 발표해야 한다. 긴 안목으로 개혁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장기 플랜만 짜고 있을 수는 없는 분야가 바로 대학 입시 제도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대입 제도 개편 공약은 공통적으로 ‘제도 단순화’와 ‘학교생활 중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재인 후보는 대학 입시를 학생부 교과 전형(내신), 학생부 종합 전형(학교생활기록부), 수능 전형 세 가지로 단순화하겠다고 밝혔다. 논술 전형, 영어·수학·과학 과목 특기자 전형 등은 ‘과도한 사교육을 유발하는 요소’로 판단해 폐지할 방침이다. 학생부 종합 전형에 반영돼온 소논문·에세이·추천서·면접 등도 기회균등 전형 등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입에 반영하지 못하게 했다.
안철수 후보가 구상하는 교육개혁안에 따르면 수능은 자격고사로 그 위상이 약해지고 대학은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자율진로탐색기록부’를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게 된다. 자율진로탐색기록부는 “현재의 학교생활기록부와는 다르며, ‘학생 자신의 학습 이력 및 진로 상담 내용을 담은 공적 기록’으로, 석차나 서열이 아닌 자신과의 경쟁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안 후보 측 설명이다. 이를 기본으로 대학에 각 대학 특성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자율을 주되, 대학은 입학 사정 기준을 공개해야 한다. 입학 공정성을 훼손할 경우 엄중한 처벌을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안 후보 측은 이 모든 대입 전형 개편이 ‘5-5-2 학제개편’과 병행되며, 그것이 완성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입 경쟁과 서열화, 사교육 지옥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승민 후보도 학교생활기록부에 의한 평가 방식을 대입 전형에서 제대로 정착시킨다는 방침이다. 심상정 후보는 대입 전형을 간소화하는 동시에 기회균등 전형을 50%까지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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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학생과 학부모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대입 제도다. 새 정부는 당장 오는 7월 2021년 수능개편안을 발표해야 한다. 위는 수능 시험을 보고 있는 학생들. |
■ ‘교실 혁명’ 가능할까
학교생활기록부가 힘을 쓰려면 초·중등 공교육이 내실화되어야 한다. 각 후보는 초·중·고등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공약들을 내놓았다. 문재인 후보는 일대일 맞춤형 성장발달 시스템(초), 자유학기제 확대(중), 1수업 2교사제(초·중), 고교학점제(고) 등을 약속했다. 이 가운데 고교학점제는 교사가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식으로, 대학의 교육과정과 유사하게 고교 수업을 운영하는 제도이다. 안철수 후보와 유승민 후보도 이와 유사한 수강신청제 도입을 공약했다.
진학 교육 중심이던 현행 고등학교 교육에서 직업교육을 살리는 방안도 주요하게 제안됐다. 심상정 후보는 자신의 교육정책을 ‘노동 있는 교육개혁’으로 정의하고 여기에 집중했다. 임기 내에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일반고 직업반 등 직업계고 비중을 현 19%에서 OECD 평균 47% 수준으로 확대하고, 핀란드 직업학교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 교육 내용의 질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안철수 후보도 5-5-2 학제개편 가운데 마지막 2년을 진로탐색학교와 직업학교로 나누고 그 가운데 직업학교에서 지금의 한국폴리텍대학 수준의 직업 전문교육을 시키겠다고 밝혔다.
■ 뿌리 깊은 학교 서열화, 누가 바꿔낼까
서열화된 대학 체제를 어떻게 바꿔낼 수 있는지도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관건이다.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공통적으로 그 해답을 ‘대학 통합 네트워크’에서 찾았다. 특히 문 후보는 그 시작점을 지역 국립대 육성으로 잡았다. 지역 국립대들을 상향 평준화해 국립대 연합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이와 동시에 공영형 사립대를 키운다는 계획이다. 문 후보 측은 훗날 국립·사립대가 공동선발·공동학위 수여가 가능할 정도로 울타리가 없어지면 자연스레 서열도 사라질 것이라 전망한다.
서열화의 병폐는 대학만의 사안이 아니다. 대입 못지않은 고입 경쟁에 중학생들을 혹사시키는 게 바로 현재의 고교 서열화 구조이다. 그 꼭대기에 본래의 설립 목적을 벗어나 입시 명문고로 변질된 자사고·특목고·국제고가 있다. 이들 고교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은 기호 1~5번 대선 후보 가운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네 후보가 모두 내걸었다.
■ 5-5-2 학제개편, 혁명일까 망상일까
안철수 후보가 지난 2월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처음 밝힌 5-5-2 학제개편안은 대선 후보 교육 공약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았지만 비판 또한 가장 뜨겁다. 지금의 ‘초등학교 6년-중학교 3년-고등학교 3년’의 교육과정을 ‘초등학교 5년-중등학교 5년-미래학교 2년’으로 바꾼다는 것이 개편안의 골자다.
A라는 아이를 예로 들어보자. 학제개편안이 완성되면 A는 지금처럼 만 6세가 아닌 만 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5년을 보낸 뒤 들어가는 중등학교는 지금의 중·고등학교를 합친 개념이다. 각각 3년이 통합 5년으로 되었다. 이때까지가 기초 학습능력과 시민으로서의 자질 등을 배우는 보통교육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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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4월19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최한 ‘대선 후보 교육 공약 현장평가’가 열렸다. |
중등학교 졸업 후 A는 학점제로 운영되는 고등교육기관인 ‘미래학교’로 진학한다. 두 갈래 길이 있다. 대학으로 진학해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면 진로탐색형 미래학교로, 일찌감치 직업훈련을 받고 직장에 다니고 싶으면 직업형 미래학교로 간다. 대학은 진로탐색형 미래학교에서 2년 뒤 곧바로 진학할 수도, 직업형 미래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 일하던 중에 재직자 전형으로 진학할 수도 있다.
엄청난 변화다. 초·중·고 학교 시설은 물론이고 교원 양성·임용제도, 수업 내용과 평가 방법, 대학의 입시 제도와 위상 등 현행 교육 환경 모든 부분을 뿌리째 흔드는 정책이다. 안철수 후보 측에서 예측한 소요 예산만 8조원이다. 제도 전환 사이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행착오를 지금처럼 ‘한번 삐끗하면 낙오되는’ 경쟁 사회에서 양해해줄 학생과 학부모는 없다.
‘두 학년 통합 진학’에 대한 우려가 대표적이다. 안 후보의 학제개편안에 따르면 제도 시행 첫해는 두 출생연도 아이들이 한꺼번에 초등학교 1학년으로 진학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학령기 학부모들 사이에 퍼졌다. 이 세대는 내내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공부하다 입시·취업 경쟁까지 같이 치르는 ‘암흑의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예비 학부모들을 공포에 빠트렸다. 안 후보는 4월19일 KBS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그런 일은 없다”라며 한 해 입학 아동을 15개월씩 끊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 측은 “학제를 개편하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 정책을 갖고 와도 대입 경쟁 교육으로 수렴되는 지금의 교육 현실을 타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안 후보 측은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향후 10년 계획을 합의해 점진적으로 추진하면 학제개편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35쪽 기사 참조).
■ 교육 ‘사다리’를 넘어
홍준표 후보가 속한 자유한국당은 4월12일 교육 공약을 발표하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계층 이동이 역동적인 사회를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를 놓겠다”라고 약속했다.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깔려 있다. ‘용이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아래에서 위로 계층 상승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은 그것의 수단이다.’
용이 되지 않아도,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각자의 능력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에서 교육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 다르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지향한다면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살필 때 노동·일자리·인권 공약까지 확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의 범주를 더 넓힐 수 있는 ‘근본’ 교육 공약은 비단 교육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을 끝내겠다며 대선 후보들이 여러 공약을 발표했다. 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할까.
대선 후보 교육 공약 총평을 들려달라.
이중현(남양주 조안초등학교 교장):그동안 우리 교육이 교육답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교육 안에서만 찾으면 잘못이다. 대한민국 교육이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학력 간 임금 격차 때문이다. 이 격차가 유지되는 한 입시 경쟁 교육이 완화될 수 없다. 대선 후보 가운데 심상정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그걸 지적했다. 심 후보는 교육 공약 안에 학력 간 임금 격차 해소를 이야기했고 문 후보는 노동 공약에서 공정임금제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다만 심 후보는 원인 진단이 정확한 데 비해 그것과 초·중등 교육 간의 연계성이 약하다. 문 후보는 노동 공약을 교육 부문으로 직접 연계시키는 것이 좀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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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윤무영 4월21일 <시사IN> 교육 칼럼 ‘학교의 속살’ 필진들이 모여 교육 공약을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조영선 교사(가운데)와 이중현 교장(맨 오른쪽). |
해달(필명·대치동 입시학원 강사):안철수 후보의 교육부 폐지 공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히려 교육부 업무가 너무 외주화되어 일관성이 없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다시 내부로 끌어들여서 유기적으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치적으로 말이 많으니까 없애고 새로운 걸 만들겠다니 ‘나, 표 한번 받아볼래요’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대진(필명·대학 교직원):대학 교직원이 느끼기에는 교육부의 권한과 개입 정도가 엄청나다. 정부 부처 입김 때문에 학교는 옴짝달싹 못한다. 그렇다고 교육부가 폐지된다고 학교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각 학교들이 준비가 돼 있는지는 또 의심스럽다.
조영선:교육 공공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교육 주체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내용이 좀 명확해야 한다. 교육부를 폐지한다면서 교육이 시장에 넘어갈까 봐 염려스럽다. 국가교육위원회냐 교육부냐 이런 조직 구성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 정부가 교육 주체의 자율성, 학교 민주화에 대한 철학이 어떤가가 중요하다.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을 끝내겠다며 후보들이 여러 공약을 발표했다.
해달: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수능이 축소되든, 논술이 사라지든, 자사고를 폐지하든 사교육 시장은 크게 타격을 받지 않는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하자면, 한 학년이 600명이고 제가 있던 학원에 그중 200명이 다녔다. “너희 똑같은 거 들어봤자 뭐하냐”라고 했는데, 이 아이들 처지에선 학원 안 다니는 400명이 되는 게 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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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3월7일 콜센터 근무 중 자살한 실습생의 사인을 밝히기 위한 대책위원회가 발족됐다. |
이대진:유럽 사례를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뿌리 깊이 형성된 교육에 대한 어떤 관점이 있다. 문재인 후보도 교육 공약을 발표할 때 “교육을 통해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듯, 부모들은 내 자식이 나보다 더 잘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교육에 투자하고 사교육을 시키고 더 좋은 대학에 보내려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살기 어렵고 다른 사람한테 하대받고…. 이런 측면에서 사교육 문제가 어떤 입시 제도의 변화로는 궁극적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조영선:사실 진짜 학생들에게 필요한 말은 ‘상승하지 않아도 괜찮아’이다. 금수저가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가 초점이 돼야지, 흙수저를 어떻게 금수저로 만들 것이냐를 놓고 얘기하다 보면 흙수저·금수저의 차별이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청년·노동 정책과 분절해 교육 공약을 볼 때 답답하다. 예를 들면 후보들이 직업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마이스터고, 특성화고라며 사기를 쳐서 우수한 아이들이 많이 갔다. 그 아이들이 지금 산업 실습 현장에 나와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라며 자살하고 있다. 제대로 된 노동과 복지 시장을 구현해놓지 않고 학생들을 일찍 산업 현장에 투입시키는 건 어떻게 보면 교육적 책임을 방기하는 짓이다.
안철수 후보의 학제개편안은 어떻게 보나?
이대진:가장 눈에 띄는 교육 공약이긴 한데, 사실 껍데기 공약 같다. “입시 교육과 보통 교육의 고리를 끊자는 게 제 복안입니다”라고 안 후보가 이야기했는데, 학제만 바꾼다고 입시 교육과 보통 교육의 고리가 끊기나?(일동 웃음) 직업학교 쪽으로 가기 싫어하는 학생들은 당연히 중학교 때부터 입시 준비를 할 것이다.
조영선:맞다. 자유학기제 할 때 아이들 얼마나 치열한데. 학원 다니는 애들 더 열심히 다닌다.
이중현:거대한 토목공사 계획 같다.
이대진:교육판 4대강 사업인가?(일동 웃음)
이중현:학제개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연구 검토가 있었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소요 예산과 사회적 경비를 생각하면 선택하기 어렵다고 본다.
고교학점제, 수강신청제와 같은 공교육 내실화 방안들은 실제 현장에서 실현 가능할까?
조영선:취지는 무색해지고 교사 구조조정만 되지 않을까?(웃음) 학점제 하게 되면 가장 먼저 파괴되는 게 담임 제도인데, 이 제도는 양면성이 있다. 개인적으로 담임제가 교사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사고(事故)를 막는 값싼 보육 시스템이다. 과연 값싼 보육 시스템을 포기하고 학점제로 갈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중현:어떤 제도든 그 제도 활용에 따라서 양면성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취지를 살리도록 현장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양한 선택을 보장하려면 많은 교사가 필요할 것이다. 이때 강사가 아닌 정규 교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검토되면 좋겠다.
해달:좋게 활용하면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받을 수 있지만, 나쁘게 전망하면 수강생이 안 찰 경우 그 수업을 비정규직 교사로 돌릴 게 뻔하다. 결국 교사를 어떤 존재로 보느냐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교사가 과목만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인교육을 하는 전문가라는 존중이 확보돼야 할 것 같다.
대학 서열화를 완화할 수 있을까. 문재인 캠프는 지역 거점 국립대를 육성해 ‘한국형 대학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다. 사립대 공영화도 함께 추진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의 교육정책 총괄은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68·사진)이 맡았다. 캠프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기도 한 김 전 교육감을 4월18일 여의도 백상빌딩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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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
공약에서 밝힌 국가교육회의와 국가교육위원회 두 조직의 차이는 무엇인가?
문재인 후보도 오케이한 건데, 국가교육회의에는 대통령이 의장이 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교육 혁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실 대통령의 힘을 싣는 게 필요하다. 그동안 교육개혁과 관련한 여러 자문기관들이 제구실을 못한 것은 힘이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의장이 된 국가교육회의에서 병폐와 모순을 해소하는 개혁 조치를 바로바로 실시해가고, 그러면서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나가자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독립 기구다. 국가인권위원회 수준을 구상한다.
독립 위원회 역시 이제껏 정권에서 독립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가능할까?
그게 제일 고민이다. 핀란드에서 국가교육청을 만들었는데 그곳을 통해 진행하는 교육개혁이 18년 동안 총리가 몇 번 바뀌면서도 유지됐다. 우리도 그런 기구가 필요하다. 교육이 여야의 갈등과 분열 속에 들어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할 수 있는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렇기에 더욱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학 서열화 완화 방안으로 지역 국립대 육성을 내세웠다.
먼저 지역 거점 국립대 9곳에 투자를 해서 유능한 대학으로 발전시킨다. 이것을 시작으로 한국형 대학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취지다. 추후에 점차 공동 선발과 공동 학위 수여로 구체화해 나가겠다. 또한 학벌주의는 고용시장과 관련돼 있지 않나? 그래서 고용시장에서의 학력학벌차별금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사립대 공영화도 함께 추진하나?
그렇다. 우리나라 사립대학 비율은 전체의 80%이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높은 나라는 유일하다시피 한데 이건 잘못된 것이다. 다만 공영형 사립대에는 조건이 있다. 학교 운영 경비의 50% 이상을 정부에서 지원받는 사립대는 이사의 절반 이상을 공익 이사로 충원해야 한다.
사립대가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까?
이미 두세 개 대학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한꺼번에 공영형으로 만들 예산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 단계적으로 할 것이다. 우리 구상으로는 5년 동안 30개 내외의 사립대를 공영형으로 만드는 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안철수 후보의 교육 공약을 평가하자면?
학제개편과 교육부 폐지 두 가지를 전면에 내걸고 교육 대통령을 자임하는데, 너무 정치적 선전에 치중돼 있다고 본다. 특히 학제는 나라별로 어떤 제도를 만들어서 어떻게 정착시켜왔느냐의 문제이지, 6-3-3과 5-5-2 중 어떤 게 낫다 이렇게 말하는 건 의미가 없다. 또한 학제를 개편하려면 최소 15년 내외의 기간과 최소 8조~14조원, 많게는 20조~30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학제를 개편한다는 것은 ‘무엇을 바꾼다’는 의미는 있겠지만 지금 우리 교육이 가지고 있는 병폐나 학생과 학부모들이 겪는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학제개편은 지금 당장 해야
조영달 안철수 캠프 교육혁신위원장(사진)은 안 후보의 5-5-2 학제개편안은 차별금지법이나 청년취업보장제 같은 노동환경 개선과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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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
학제개편안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주역>에 혁언삼취(革言三就)라는 말이 나온다. 커다란 변화 앞에서 기존 제도에 익숙한 분들은 모두 조금씩 의심하고 회의할 수밖에 없다. 기다리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 수요자들의 욕망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시스템만 바뀐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완벽하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왜곡된 방향이 유연화될 수 있다. 학제개편의 핵심 중 하나가 무학년 학점제이다. 보통교육을 마친 뒤 미래학교에서 보내는 2년은 오로지 자기 진로를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이다. 직업이든 진학이든 창의적으로 자신의 길을 탐색해나가면서 지금처럼 한 가지 욕망으로만 매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제가 개편된다고 대입 경쟁이 사라질까?
실제 서울 강북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봤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새 학제가 도입됐을 경우 54%가 진학이 아닌 직업 전문으로 진로를 개척하고 싶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정말로, 자기의 길을 갈 수 있으면 한번 해보고 싶은 거다.
안 후보의 학제개편안은 고용과 노동시장에 차별이 없는 이상적 사회를 가정하고 만든 느낌이다.
학제라고 하는 게 단순히 초·중·고교가 아닌 대학과 노동시장까지 연결된 전체의 통합 시스템이다. 그것을 위해 이미 안철수 후보는 차별금지법이나 청년취업보장제와 같은 정책을 내놓았다.
고용·노동 차별 환경 개선이 선행된 뒤에 학제 개편을 논의하는 것은 어떤가?
이미 세상은 변해서 4차 산업혁명에 들어가 있는데 천천히 해도 된다는 것은 10~20년을 또 이 상태로 두고 보겠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굉장히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재원은 정확하게 낼 수 없다. 대략 8조원 정도가 시범 사업을 위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여러 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
학제 전환에 따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우려가 도입 첫해 두 나이대 아이들이 함께 입학했을 때의 문제이다.
오해가 있는데 단순히 두 배가 아니다. 예를 들면 첫해에는 원래 들어가는 만 6세에 더해 만 5세 가운데 3~4월생 정도까지만 간다든지 그렇게 한 5년을 조정하며 차분하게 이어갈 수 있다. 꼭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여러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시·채용 경쟁률 두 배도 이야기하는데 이미 전체 정원 대비 대학 입학률이 90% 정도로 100%가 안 된다. 앞으로 학령인구가 줄기 때문에 이 비율은 더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은 자꾸 현재를 가지고 미래를 재단한다. 20년 후에 한국 노동시장이 어떻게 될 것 같나? 일본은 지금 청년 구인난 상황이다.
학제개편안이 담고 있는 내용적 부분을 현행 6-3-3 학제 안에서 살릴 수는 없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다 입시로 연결된다. 확연하게 금을 그어서 5년-5년 동안 보통교육은 별도로 하고 자기가 구성하는 2년을 확연히 구분해야 한다. 내용만 적당히 집어넣는다고 절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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