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청년들이여 글로벌 전사가 되라”
[인터뷰]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 교수 “2030년 ‘글로벌 아시아 시대’ 펼쳐질 것”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1(금) 08:30:00 | 1435호
연세대 경영대에서 국제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영렬 교수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주관하는 GYBM(글로벌 청년사업가) 프로그램을 살펴보기 위해 2015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하노이문화대학을 방문했다. 박 교수는 여러 언론을 통해 소개된 이 프로그램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살펴본 뒤, 결과물을 전공수업에 적용할 계획이었다. 일정 동안 박 교수는 생산관리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청년사업가들의 사투(死鬪)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보고 느낀 바를 토대로 얼마 전 《한 번도 가지 않은 길로 가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펴냈다. 마지막 장에서 박 교수는 “대한민국 청년들이여,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주저하지 말고 도전자·개척자가 되어 국경 밖으로 나가라”고 강조한다. 베트남 곳곳을 돌아다니며 쓴 이 책은 ‘사드 보복’에 막혀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과 실의에 빠진 고학력 청년실업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 교수 © 시사저널 이종
《한 번도 가지 않은 길로 가라》는 책을 쓰게 된 배경은.
현재 학교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솔직히 ‘젊은 사람들이 너무 한국에만 몰려 있어 취업을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와중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가 선진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구의 1%가 글로벌 전문인력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인구가 1억은 될 테고, 거기에서 1%인 최소 100만 명 정도는 글로벌 인재로 커야 한다. 또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에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시안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우중 회장(전 대우그룹 회장)도 100만 인재양성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
책에서 글로벌 경영 없이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는데.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 경제가 여기까지는 왔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전문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성장이 멈춘 기업들을 보면 대개 중간관리자를 양성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근 우리 기업들의 위기도 그런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가.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솔직히 지금 우리 기업들을 보면 ‘우물 안 개구리’다. 좁은 국내 시장에서 쉬운 일만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같은 고객과 같은 시장을 놓고 모든 사람이 달려들고 있는데, 그런 게 아니라 각자의 전문성을 갖고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기회는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서 나오는 법이다. 여기서 김우중 회장의 전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김 회장은 부산 봉제공장에서 만든 상품을 절대 국내에서 팔지 않았다. 내수시장에 내다 팔았으면 충분히 장사가 되지 않았겠나. 큰 기업들일수록 큰 생각을 갖고 세계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국제경영을 연구하는 경영학자로서 과거 대우의 세계경영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결과적으로 대우는 해체됐지만, 대우의 세계경영이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이나 현대차의 세계경영은 힘들었다고 본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 현대의 정주영 회장,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우리 기업사의 전설이다.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를 일으킨 분들이다. 김우중 회장의 경우, 처음에는 제품을 팔았고, 그다음에 서비스를 팔았다면, 지금은 사람을 파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국과 비슷하다. 오늘날 영국은 전문가를 양성해 아프리카에 보내고 중동에도 보낸다. 일찍부터 글로벌 인력을 양성해 해외로 내보냈기에 오랜 번영을 이어 가는 거다.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해외 취업을 강조하면, 학생들의 반응이 어떤가.
학생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면, 당장 부모들부터 걱정하지 않을까(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는 2030년 ‘글로벌 아시아 시대’가 펼쳐질 거라 확신한다. 중국·인도·동남아가 축을 이룰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시간을 들여 전문가가 돼야 한다. 그러면 엄청난 기회가 생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해외 진출만이 답일까.
흔히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 IT(정보기술)·AI(인공지능)·로봇공학·빅데이터 같은 것만 생각한다. 그런데 왜 지금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됐을까? 나는 시장의 변화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4차 시장 혁명’이라고 말해야 한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기술이 융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장의 중심이 어디겠나? 바로 아시아다. 지금부터라도 아시아인의 생각을 읽어내야 한다.
기술 융합의 시대에는 선진국으로 생산시설이 되돌아가는 ‘리쇼어링 효과’가 본격화되는 것 아닌가.
그건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인도네시아·베트남 등지에서 신발 신는 인구가 늘어난다고 생각해 봐라. 시장은 훨씬 커진다. 리쇼어링은 자기가 힘들게 닦아놓은 자리를 남에게 주고 나오는 건데 그게 쉽겠는가? 아시아에서 4차 산업혁명은 아시아인들에게 맞는 기술을 개발하고, 아시아인들에게 맞는 스마트 팩토리(지능형 공장)를 만드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해외 청년 취업을 장려했는데, 결과는 썩 좋지 못하다.
버스가 좋은 데로 가려면 좋은 데로 가고 싶어 하는 승객을 태워야 한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이 적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패착은 ‘버스가 도착했으니 무조건 타라’는 식으로 정책을 폈다는 데 있다. 해외 취업을 숫자놀음으로 했으니 제대로 됐을 리가 있겠는가?
박 교수 본인이 생각하는 글로벌 인재의 기준은 무엇인가.
글로벌리티(세계화)·글로벌 마인드·글로벌 네트워크·글로벌 스탠더드가 필요하다. 대학 교육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2030년 글로벌 아시아 시대에는 한국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아시안 리더십을 잃는 순간 우리는 조그마한 반도국가로 전락한다. 지금 많은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규제 때문에 베트남으로 간다고 하지 않는가? 베트남 기업은 미얀마로 가고, 그렇게 새로운 시장을 찾아 떠난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그럴 바에는 중국의 성장에 올라타서 신흥시장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반대로 일본을 통해서는 미국·유럽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양쪽 시장으로 뻗어나갈 위치에 있다. 필요하다면 중국 기업도 유치해야 한다. 문호를 여는 것은 일본에도 마찬가지다. 한·중·일을 하나로 만드는 경제공동체로 키워야 한다. 그게 한 번도 가지 않은 미래 우리의 길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한국 학생들
광복 이후 16차례나 대학 입시 제도를 바꿨지만 입시 지옥은 현재진행형이다. 더 나은 직장, 더 많은 보수를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에 허우적댄다. 교육 개혁이 계속되어도 학교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6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학생이 중학교 영어책으로 공부하는 것을 본 담임이 ‘왜 벌써 중학교 공부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좋은 학교를 가려면 미리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학생이 다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입시 경쟁은 초등학교부터 시작되고 있다.
우리 교육의 난제 중 하나가 바로 입시 위주 교육이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에서 우리 교육의 현안 문제 가운데 하나로 ‘입시 지옥 속에 묻혀버리고 있는 창의성’을 들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입시 지옥은 현재진행형이다. 몇 해 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이런 한국의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들’, 그리고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고통스러운 교육’이라고 표현했다. 스웨덴의 한 일간지는 “한국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순위는 세계 최고이지만,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꿈을 꿀 시간이 없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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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그림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때, 교육부의 대통령 보고 문서에서도 ‘학생, 학부모 등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입시 위주의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행복하지 못하고, 교육 질에 대한 불만 지속’을 이야기하면서 ‘획일적 학력 경쟁에서 벗어나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계발을 지원하여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16차례나 대학 입시 제도를 바꿨지만 입시 위주 교육은 여전하다.
입시 지옥 원흉은 학력 간 임금 격차
그럼 왜 모두가 대학 입시에 그토록 목을 매는 것일까? 2014년, 서울시 사회적 기업 ‘지산교육’에서 전국 고등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51.1%가 첫 번째로 꼽은 것이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이러한 응답은 2013년 <한국대학신문>에서 조사한 것과도 비슷하다. 여기서도 대학 진학 이유는 ‘취업에 유리한 조건 획득(44.8%)’이었다. 대학은 학생 대다수에게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이며, 이른바 일류대 진학 경쟁 역시 더 나은 직장에 들어가고 더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함이었다. 교육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정책을 펼쳐도 우리 학교가 쉽게 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2015년 OECD 교육 지표를 보면 대학진학률 OECD 평균은 41%, 우리나라는 68%, 캐나다 58%, 영국 49%, 일본 37%, 독일 28%이다. 2012년 OECD 지표로 학력 간 임금을 나라별로 비교해보면 고졸자를 100으로 볼 때, 대졸자는 한국의 경우 160, 캐나다 142, 영국 157, 일본은 143, 노르웨이는 128, 뉴질랜드 117이다. OECD 평균은 153이었다. 학력 간 임금 격차와 대학진학률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덴마크, 핀란드는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나라임에도 한국보다 대학진학률이 낮다. 그 이유는 학력 간 임금 격차가 우리나라보다 작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경쟁 없이 어떻게 발전이 있는가 하고 반문한다. BBC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기업가인 마거릿 헤퍼넌은 <경쟁의 배신>이라는 책에서 경쟁의 양상과 역작용을 적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경쟁을 마치 종교처럼 맹신해왔고, 경쟁이 놀라운 효율과 기적적인 경제발전, 그리고 무한한 창조성과 눈부신 혁신을 안겨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는 부정, 부패, 사회적 역기능, 환경 파괴, 낭비, 환멸, 불평등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우리 학생들은 자기 길을 가고 싶어 하지만 학교나 사회는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입시 경쟁으로 꿈꿀 시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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