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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13년, 지금의 삶을 즐기니 행복하다"

일취월장7 2017. 4. 10. 11:03

"귀농 13년, 지금의 삶을 즐기니 행복하다"

[귀농통문] 경북 봉화 '석이동 농장'의 이혜영, 백승일 부부
2017.04.08 11:46:08

"아직도 전쟁터처럼 정신이없어요."

호탕한 웃음을 짓는 백승일, 이혜영 부부의 첫 인사말이다. 중고자재를 재활용해서 지은 집은 소박했고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에 여유가 묻어났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에서 달려가느라 쌓인 피로감과 긴장감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유자차와 봉화 꿀사과를 먹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부부는 자연농으로 '까망돼지'를 키우는 것 외에도 곰취, 어수리, 명이, 곤드레 같은 산나물을 친환경으로 가꾼다. 표고와 생강을 키워 직접 판매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먹을 식재료는 텃밭에서는 자급을 이루었다. 친환경 농사를 위해 주변 땅을 임대하여 현재는 5000평 농사를 짓고 있다. 

남편의 진정성에 반한 아내 

백승일 씨는 여의도에 있는 금융회사에서 근무했다. 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직업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만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상에 재미가 없었다. 천성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몰입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체질인지라, 회사생활이 힘들었다. 업무에 대한 긴장감이 삶을 잠식했고 일과가 끝나면 몰려드는 피곤에 지쳐 쓰러지는 쳇바퀴 도는 하루하루다.  

그래서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살아야지'하고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막연한 꿈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일찍 가자!'하고 행동에 옮기게 되었다. 업무가 끝나면 혼자 사무실에 남아 귀농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귀농인의 마음가짐, 생태적 가치, 대체의학, 자연농법 등 그때 정리해서 프린트한 자료는 지금까지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귀농본부'의 생태귀농학교를 알게 되었고 바로 신청을 하다.

2004년 생태귀농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그해 6월에는 삼척에서 한옥 짓기 교육을 받았다. 실업 급여를 받는 동안 1년 안에 귀농을 마무리 짓고 싶은 생각에 귀농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꿈꿨던 백승일 씨는 연애할 때부터 아내에 대한 사전 조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내가 자연을 좋아하는지, 시골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있는지를 계속 떠보았다고 한다. 귀농 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 이혜영 씨는 시골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단다.

거제도에 사셨던 장인 장모도 "곱게 키운 딸이 힘든 농사를 짓게 할 수는 없다"며 완강히 반했다. 장인어른께서는 고생하는 딸이 눈에 밟혀 몇 년 동안 발길을 끊기도 했다.

"진짜 귀농할 줄을 몰랐어요. 일종의 속은 결혼이죠, 하하."

남편에게 귀농은 원하는 꿈을 향한 선택이었지만, 이혜영 씨 입장에서는 삶의 터전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하는 무모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혼신을 다해 귀농을 준비하는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며, 남편의 꿈을 지지해주기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자비의 마음으로, 인간 하나 살리는 셈 쳤어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사실 저는 시골생활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한다.

사실과 다르다며 완강히 부인하는 눈치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용의주도하게 상황을 이끌어온 사람이었으니, 아내 말에 다소 억울할 법도 하겠다. 

▲ 산 깊은 봉화의 고즈넉한 보금자리. ⓒ박성은


너무 애쓰지 않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기 

답답해서 늘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도시 생활에 한 염증이 사라지자, 비로소 삶의 즐거움과 여유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나란 존재가 도시에서는 흔하디흔한 대체 가능 인력이지만, 시골에 오면 귀하게 쓰임 받아서인지 나를 소중히 생각하게 된단다.

눈 오는 밤 풍경과 봄철 지천에 핀 꽃들, 그리고 형용하기 힘든 빛깔의 단풍잎, 그리고 주변을 감싸는 햇살 등은 돈 주고 살 수 없을 만큼 값지더라. 그래서 최소한의 생계가 유지되면 시골 살이에서 얻는 만족도는 도시와 비교하기 어렵다. 도시 사람들이 힘들게 돈을 모으고 눈치 보며 휴가를 내서 여행을 간다면, 귀농인들은 돈과 시간의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로 히말라야, 산티아고 등을 여행한다고 한다. '돈 주고 사는 여유'와 '즐기는 여유'의 차이라 할까. 주변 귀농인 중에도 '지금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누리며 지금의 삶을 즐기는 부부의 귀농 초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귀농학교를 수료하던 2004년에 승일 씨가 먼저 봉화의 빈집을 구해 마을 일손을 돕고 목수일을 하며 지냈다. 주에서 나고 자라서 학창시절에 봉화에서 주로 유학 온 친구들이 많았다. 가끔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산 깊고 물 맑은 봉화가 좋았다고 한다. 뭔가 모르게 신선계의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라 마음이 끌렸다. 이곳이라면 진정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한 땅값도 저렴해서 귀농 전부터 봉화를 점찍어 둔 것이다.

임시 거처에서 머물며 동네 일거리도 돕고 주변 땅을 물색하던 중 현재 살고있는 집과 땅을 만났다. 늦은 5월, 쓸 만한 땅이 나왔다고 해서 보러 갔는데, 망초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해 버렸단다. 지금 보면 경사가 있는 땅이었는데, 그때는 너른 평지에 핀 망초가 메밀밭의 메밀꽃처럼 너무 멋있었다. 인연이 되는 땅이라 여겨 기존에 있던 집과 함께 토지를 매입하게 되었다. 

귀농지를 고민하는 귀농 후배들에게 조언을 들려주었다.

"평생 내가 그 땅에서 어떤 것을 만들어 갈지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이 중요해요. 땅에 맞추어서 농장 계획을 세우면 되거든요." 

선택한 땅이 맘에 드는지 아닌지, 직관적인 느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한다. 뭔가 맘이 끌리는 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귀농교육을 받을 때 농장을 계획하고 상상하며 배치해 보기도 하는데, 땅을 정하면 그다음은 순리에 맡기면 된다고 한다. 어디에 정착하느냐에 따라 재배 종목도 달라지므로, 마음이 끌리는 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귀농할 때 도시에서와 비슷한 연봉을 꿈꾸는 귀농 초보자도 있는데, 농사로 돈을 예전처럼 벌려고 생각하면 그것은 도박심리와 다름없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이라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처음부터 무리하게 애쓰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자활기업 '땅파는 까망돼지'를 세우다 

처음 돼지를 키우게 된 것은 건강한 고기가 먹고 싶어서다. 인터뷰 내내 부부는 "내가 키우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GMO 사료를 먹이고 항생제로 키우는 고기가 아닌, 건강한 고기가 먹고 싶어서 2013년에 자연농을 하는 지인에게 새끼돼지를 분양받았다. 그 돼지가 새끼를 낳은 3년 후부터 돼지고기 판매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후 봉화 인근으로 귀농한 사람들이 인연이 되어 자연농법으로 돼지를 키우는 농가도 늘어났다. 봉화군 지정 자활기업으로 선정되었고, '땅파는 까망돼지'로 브랜드 작업까지 마쳤다. '까망돼지'를 키우는 소규모 농장 4곳과 유통을 담당하는 정육점으로 구성하여 생산과 유통시스템을 구축했다.  

현재는 자연양돈으로 50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더디게 가는 길이지만 내가 먹고 싶었던 건강한 고기를 공급하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때로는 먹고사는 게 쉽지 않아 타협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생태적 가치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이 있기에 초심을 지켜낼 수 있어서, 그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축사는 생각보다 냄새가 나지 않고 깨끗했다.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황윤 감독, 2014)에서 봤던 축사와는 전혀 달랐다. 갇힌 돼지가 부풀어 오르듯 살이 쪄서 꼼짝달싹 못 한 상태로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영화의 한 장면과는 너무 다른 현실이 펼쳐졌다. 까만 빛깔의 흑돼지들이 '꿀꿀'거리며 연신 코를 킁킁거린다.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하고 털이 아주 곱고 반질반질했다. 건강하게 뛰어다니고 땅을 파며 노는 돼지들이 무척 예쁘고 귀여워서 일행들은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흑돼지는 톳 밥과 흙이 깔린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돼지끼리 어울려 자란다. 돼지는 땅을 헤집으며 본성을 자각한다고 하는데, 땅굴을 파려는 의지를 보이는 돼지들 때문에 축사의 일부는 깊이 파여 있었다. 먹이는 옥수수 사료를 거부하고 지역의 정미소에서 공급받는 쌀겨와 깻묵, 풀, 사과와 브로콜리, 잘게 부순 굴 껍데기 등을 발효시켜 먹인다고 한다. 천연의 미생물이 살아 있는 건강한 사료를 먹인 자연농 돼지는 건강하게 뛰놀다가 12개월이 지나서 출하가 된다(항생제로 키운 돼지는 6개월 만에 출하).

'오메가3'가 많아서인지 고기 기름이 굳지 않고, 고기를 구웠을 때 누린내가 나지 않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옛날 어릴 적에 먹었던 고기 맛을 기억하는 소비자는 "이게 진짜 고기 맛이다"라며 단골이 된다고 한다.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한 문제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부부는 100마리 이하만 키우기로 약속했다. 숫자가 적으니 키울 때 정성 들일 수 있고, 그러니 자식처럼 예쁘다. 또한 이렇게 키운 돼지의 배설물은 좋은 비료가 되어 밭에 뿌려지고 순환되는 것이다. 

▲ 농장에서 땅을 파며 노는 '까망돼지'. ⓒ박성은


저절로 찾아오는 삶의 방향성 

귀농할 때 6살이었던 아들 진우는 올해 고3이 되었다. 면 소재지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현동고등학교'는 진우의 졸업과 함께 폐교될 예정이다. 학급 유지를 위해서는 14명의 학생이 있어야 하는데 올해 입학생이 모자랐다. 앞으로 초등학교 5학년 딸 진이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한다. 봉화에서 태어난 아이는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인지 동생을 살뜰하게 챙겨주는 오빠와 친구처럼 지낸다. 부모 입장에서는 친구가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려 몇 번이나 또래가 있는 도시학교 이야기를 꺼냈지만, 본인 스스로가 시골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누구든 자립할 수 있을 만큼의 수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삶을 즐기면서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지금의 삶을 즐기니 행복하다". 일상적인 삶이 유지될 정도로, 현재의 삶에 장애만 없다면 지금 주어지는 대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물 철이 끝나면 몸살을 앓고, 판로가 없던 귀농 초기에는 몹시 힘들기도 했지만, 주어지는 대로 편안하게 살다 보니 삶의 방향성이 저절로 찾아졌다. 도시에서처럼 억지로 애쓰며 살지 않아도 '스스로 그러한 자연'처럼 생명력을 키워온 백승일, 이혜영 부부.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금강소나무 사이로 빛나는 햇살이 가득했다.


"전환마을을 선언하자"
[귀농통문] 아일랜드 킨세일, 한국에서도 가능하다


"행동 없는 비전은 단지 꿈일 뿐이다. 비전 없는 행동은 시간만 허비한다. 그러나 행동하는 비전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조엘 바커, 2015년 9월 '킨세일 전환마을' 10주년 기념비)

최초의 '전환마을운동(Transition Town movement)'이 시작된 곳은 아일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인 킨세일이다. 아일랜드가 매년 선정하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대회'에서 우승한 동화 같은 마을이다. 남쪽으로 해변을 바라보면 휴양지답게 형형색색의 보트들이 항구를 채우고 있다. 골목에는 관광객을 사로잡을 만한 작은 상점들과 아이리쉬펍들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전 세계 전환마을운동이 태동한 곳은 마을의 주거지와 좀 떨어진 마을 언덕 끝자락에 있었다. 바다에서 소금기 짙은 바람이 불어오는 벌판엔 잡풀과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다. 2005년 킨세일의 주민들은 이 버려진 터를 과수원으로 일구면서 '피크오일'과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을 만들자고 이야기한다. 그로부터 10여 년, 전환마을은 전 세계 40여 개 나라 3000여 개의 마을이 되었다. 아무도 이 작은 과수원이 전환마을운동의 태동지가 될지 몰랐다.

▲ 아일랜드 킨세일 공동체 입구. ⓒ유희정


전환마을의 씨앗 '퍼머컬처' 

21세기 들어 기후변화와 피크오일의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2007년쯤 피크오일을 예측했고 여러 환경지표들은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음을 가리켰다. 빙하는 녹고 홍수는 잦아졌으며 숲은 사라졌다. 매초마다 동식물이 멸종되었다.

이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지구적 문제를 미국 정부도 아니고, 아일랜드 의회도 아닌, 조그만 시골마을의 사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걱정하기보다 스스로 비전을 만들고, 먼저 행동하자고 나섰다.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마을 공유지를 만들고 에너지를 자급하는 계획을 세우며 생태적인 전환을 선언한다. 바로 전환마을의 시작이었다.

전환마을은 킨세일의 조그만 '직업교육센터'에서 '퍼머컬처'를 공부하는 12명 남짓한 학생들에 의해 피크오일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설계되었다. 퍼머컬처는 자연의 순환체계를 모방해서 경작지와 주거지를 설계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며 의식주를 자급하는 삶의 방법이자 철학이다. 그들은 마을의 생명력을 복원하고 자립적이면서 지속가능한 마을을 설계하기 위해 '킨세일 에너지절감계획'을 만든다. 이 계획이 세계적인 전환마을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2021년까지 마을이 화석 연료로부터 독립하고 저탄소 미래로 전환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전환마을의 거름이 된 토트네스 마을 

이 운동이 빠르게 확장되게 된 것은 킨세일에서 퍼머컬처를 가르치던 롭 호킨스 교수가 영국의 토트네스로 이주하게 되면서이다. 이곳의 슈마허대학은 많은 석학들이 생태주의를 가르치고 새로운 세대의 생태주의자들이 탄생한 교육공동체이다.

토트네스는 인구 2만 명 정도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토트네스의 전환거리는 지역상점과 거주지가 모여 있는 읍 소재지이다. '히피타운'이라 불릴 정도로 전통적으로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마을이었다. 마을의 진보성은 금세 전환마을의 비전을 받아들이고 전환마을을 선언한다.

곧바로 2030년까지 에너지절감계획을 설계하며 전환마을의 상을 잡아가게 된다. 국제적 생태주의자들이 모이는 마을답게 전 세계로 비전을 전달하게 되는데, 불과 10년 사이 전환마을운동은 금세기 들어 가장 빠르게 확장한 대안운동이 되었다.

토트네스는 다른 전환마을들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지역먹거리운동, 텃밭나눔운동, 자기자원나눔, 에너지자립운동, 마을정원프로젝트, 새로운 경제센터, 지역화폐, 화제, 마을술복원운동, 생태건축 오픈하우스 등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 영국의 토트네스 마을장터. ⓒ유희정


전환마을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유럽에는 이미 생태마을과 같은 계획공동체의 성공적 모델도 많다. 그러나 생태마을과 같은 결사공동체를 새롭게 건설하는 것보다 기존의 마을을 재편하자는 것이 전환마을의 전략이다. 전환마을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스스로 전환마을이라고 선언하면 된다. 마을의 누군가가 중심그룹을 만들고 전환마을의 비전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은다. 그 인원은 적게는 2명부터 많게는 100여 명까지 다양했다. 작은 소모임이나 책 읽기 모임, 혹은 영화보기 등을 통해 전환마을의 상을 공유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한다. 누구의 허가도 필요 없고 정해진 방식도 없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전환마을은 어떤 틀도 없이 공기처럼 퍼져나간다. 마치 수많은 점으로 이어진 수평적 네트워크처럼 '내가 좋으니 너도 함께하자'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전략은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미래가 아닌 생태적 전환을 통한 낙관적 미래에 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희망을 지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을 직접 행동으로 연결한다. 그래서 전 세계 전환마을운동의 비전은 같으나, 결코 같지 않은 수많은 창의적이고 지역기반적인 운동을 만들어 나갔다. '전환마을네트워크'는 그러한 운동을 지원하면서 서로 모범을 배우며 전 세계 전환마을을 연결하고, 그들의 도전을 공유한다.

한국에서 전환마을 만들기 

서울시 은평구에서 전환마을을 만들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 위계 구조와 틀이 없이 다양한 소모임과 프로젝트팀으로 구성되는 수평적 운동 방식은 체계적인 회원 조직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낯설었다. 결국 단체 등록을 위해 총회식 의결구조와 운영위원회를 두었다. 하지만 이는 단체 등록을 위한 형식일 뿐 운영 방식은 작은 모임과 프로젝트 등을 통한 사람 간의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2014년 11월 29일에 '전환마을은평'을 선언했다.

또 한 가지 어려웠던 것은 기존의 마을만들기운동이나 마을공동체사업과의 차별성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한국의 마을만들기운동은 낙후한 지역에 인프라를 만들기 위한 지원 계획을 가진다. 마을공동체사업 또한 특정 프로젝트에 사업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전환마을운동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투자 중심의 사업으로 마을을 복원하고 공동체를 연결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마을이 가진 자원을 찾아내고 마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마을은 살림을 사는 일상적 삶의 터이지 경제 성장을 해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수많은 마을만들기사업들이 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끝나면 사업도 마을도 끝이 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또한 개발 중심의 투자비가 지원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전환마을운동은 자력이 생기기까지 훈련과 연습을 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진 후, 필요에 따라 공동체가 동의할 경우 투자를 받는 게 원칙이다. 

지원사업이 있다고 사업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구상한 사업에 비용이 필요하다면 지원받는 방식이 활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전환마을의 많은 사업들은 성공률이 높고 마을의 자체 사업으로 확장된다. 우리나라의 마을사업들이 마을과 무관한 기업의 돈벌이가 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전환마을은 위계와 권위주의가 아닌 평등한 사회, 작은 행동들이 중요한 사회, 공유 경제가 중요한 사회, 지역 자치와 지역공동체의 자산구축, 지역재생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 'ㅈ전환마을은평' 설명회. ⓒ유희정


한국식 전환마을의 실험 

초기 '전환마을은평'은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단체와 모임들을 설득했다. 독자적 활동보다는 기존의 마을단체나 모임들과 연대하거나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전략을 폈다. 이후 전환마을의 여러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면서 예술학교, 퍼머컬처학교, 풀학교, 발효학교, 자립자족학교, 생명의논학교, 기억마켓, 은평토종씨앗지키기운동, 은반지연(반GMO운동) 등을 통해 지역의 생태 자원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생산하는 자로서의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에 집중하였다.  

다양한 학교를 통해 발굴된 마을 리더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모임이 생겨나게 되었고, 마을 의제에도 생태적 관점을 갖고 참가하게 되었다.  

초기의 지역거점으로 도시텃밭을 가꾸는 도시농업운동으로 시작했던 '전환마을은평'은 먹거리자립운동을 꿈꾸며 마을식당을 시작하게 되면서 제2의 거점을 만들었다. 전환마을식당 '밥∙풀∙꽃'은 퍼머컬처 학교 2기 졸업 작품으로 제안된 곳이다. 도시인 은평에서도 로컬푸드가 가능하다는 퍼머컬처 설계를 바탕으로 마을식당에 도전했다. 은평의 도시농부들이 직접 생산한 제철 먹거리를 은평의 요리사들이 요리해서 밥상에 올리고 마을사람들이 건강하게 밥을 먹는다. 2015년 11월에 구산역 사거리에 '전환마을은평'의 첫 번째 사업소로 '전환마을부엌 밥∙풀∙꽃'을 개업했다. 처음에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갈등도 있었고 적은 매출에 좌절하기도 하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환상의 커뮤니티와 현실을 비교하며 서로를 괴롭혔다. 결국 생각으로 경영하던 사람들은 떠나고 행동으로 수정해 나가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오늘도 끼니 거르지 않게 밥상을 차린다.  

전환마을은 건강한 자아, 즉 영성적 각성을 바탕으로 성숙해진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명상과 마음공부에 힘쓰게 되었다. 개인은 없고 공동체만 앞세우거나 대표나 지도자의 명성만이 있는 공동체는 위태롭다. 

한국 사회에는 나이, 권위주의, 남성중심문화 등 위계적인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기에 수평적 의사소통과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전환마을은 개개인의 내적 성장이 중요한 동력이다.  

한국의 전환마을들은 전환학교로부터 

'전환마을은평'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전환마을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환도시 신촌이 시작되었고, 이후 서울에 여러 마을공동체들도 전환마을을 고민하고 있다. 가까이 서대문, 마포의 성미산마을, 하자학교가 있는 영등포, '삼각산재미난마을'이 있는 강북마을공동체 등이 그렇다. 그 밖에도 금산숲속마을, 제천의 덕산마을, 강화의 진강산마을공동체, 과천의 맑은샘학교 등이 동참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전환마을의 특수성 중 하나는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20여 년 역사의 대안교육운동이 대안학교의 대안을 마을에서 찾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과연 우리 사회에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먼저 마을공동체에서 생태적이며 자립적인 시민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길러내고자 전환학교를 선언했다.  

지난 2017년 2월 이러한 고민을 하는 마을과 학교들이 모여 '한국전환마을네트워크'를 결성하다. 이미 시작한 전환마을과 전환마을을 고민하는 마을들, 학교들이 지혜를 보태면서 거침없이 상상하며 가보지 않은 길을 내보려고 한다. 

아시아의 전환마을 운동 

대만, 중국, 일본, 태국, 필리핀, 인도에서는 이미 많은 전환마을이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은 50여 개의 마을이 전환마을을 선언하다. '전환마을네트워크'는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아시아의 전환마을운동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개발과 성장에 집중할 경우 지구적 위기는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공동체가 살아있고 마을이 자족적으로 복지와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마을 자치가 이루어지는 전통적 공동체들이 살아있다. 아시아의 마을공동체들이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전환마을의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구조를 갖추길 기대한다. '아시아전환마을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이를 위해 아시아 전환마을들이 모여 서로의 연대와 지혜를 나누는 축제를 한국에서 열고자 한다.

연결하는 힘 '전환마을' 

연결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연성을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관계를 만들고 연결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유기체가 되는 일이다. 어느 한쪽의 변화는 다른 부분으로 옮겨가 변화하게 하고 점차 큰 변화를 불러온다. 세계는 하나의 유기체이고, 우리는 그 유기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실천은 끊임없는 현실과의 직면이며 연결이다. 작은 시골 마을 킨세일의 실천을 생면부지의 다른 마을이 따라 하듯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변화하고 연결될 때 세상은 바뀔 수 있다. 모든 마을이 전환마을로 연결되는 그물망의 한 코를 당신이 꿰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