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앞에 사죄 않는데 용서와 사면을 들먹이는가?
차가운 바다 밑에 3년씩이나 수장되어 있던 세월호가 마침내 물 위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운명처럼 세월호의 달, 4월이 시작됐다. 영국 시인 엘리엇이 말한 대로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이제 4월은, 세월호는 희생자와 유족만의 시간과 사건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서 안전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 역사적 일대사건이다. 세월호 참사를 안전에만 가두는 것도 정말 속 좁은 짓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안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그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역사의 용광로이다.
세월호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이고 새겨질 것이다. 세월호 노란 리본만 보면, 아니 노란 색만 보아도 질겁하는 박근혜-최순실과 그 추종자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노란색에서 빨갱이를 떠올린다. 대한민국에 노란 색이 빨간 색으로 보이는 적노색맹 돌연변이들이 새로 탄생했다. 그들과는 반대로 노란 리본만 보면 지난 3년간 참 많이 눈물 흘렸음에도 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분노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박근혜 정권이 그토록 그대로 두고 싶어 했던 세월호가 어느 날 쑥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한 지인은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선생님 자꾸만 눈물이 나요." 세월호 참사에 그 어떤 감정을 드러내든 세월호는 이미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가 됐다. 그것도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배우는 역사의 평가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으로 말이다.
세월호 참사, 국가의 참된 역할을 묻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다. 어떤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어떤 세력이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가를 많은 시민들이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해야 한다. 그 억울하고 원통한, 비극을 맞은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 앞에게 그 어떤 추모와 위로의 말글로 다 이야기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보다 더한 비극은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없다. 물론 이런 비극의 당사자 앞에서 조롱을 하고 세금을 축낸다는 둥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분명 있다. 그들은 한줌도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일그러진 행태와 행동에 발을 맞추는 친박 정치인과 세력들도 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의 저주 섞인 댓글과 말들이 있다. 반성과 사죄는커녕 또 다시 권력을 잡으려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웃음 띠며 보이는 이도 있다.
세월호 참사는 특별하다. 대통령의 7시간 때문이다. 7시간이라는 시간적 길이는 우리가 복기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도 아니다. 더군다나 불과 3년 전의 일이지 않은가. 기억상실증이란 치명적 질병에 걸리지 않은 한 되살릴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구치소에 있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그를 보좌하던 핵심 참모와 경호원, 수발자 등 그 어느 누구도 둘러대는 말들만 하고 있다.
세월호 영령 앞에 사죄 않는데 용서와 사면을 들먹이는가?
이들은 아직 역사 앞에, 생명 앞에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인간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마저 버린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역사 앞에 진실조차 고해하지 않는데 벌써 모든 것을 용서하자거나 사면을 들먹이고 있다.
세월호가 3년 만에 물 위로 떠오른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참사 당해 연도에 적극적으로 선체를 끌어올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진실이 드러나는 것과 정권 부담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아니면 1980년 광주비극을 일으킨 장본인인 전두환이 정권을 탈취한 뒤 임기 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비극을 치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몸짓과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른 중요 국정 때문이었다고 구린내가 진동하는 구차한 변명을 한 것처럼 박근혜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회고록에서 따라 할 것인가.
대통령의 7시간은 우리가 정치 세력과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을 잘못 뽑으면 얼마나 생명과 안전이 도탄에 빠질 수 있는가를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지금도 서울구치소 앞에서 '박근혜 여왕님을 대통령으로 다시 돌려놓으라.'고 외치는 이들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은 그와 같은 비극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부류들이다.
국민의 생명이 바람 부는 들판에 놓인 촛불 신세임에도 무덤덤하기만 했던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의 행태는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교훈을 주어야 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더는 캐지 말자, 여성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물개박수를 보낸다. 생명 존중을 외치면 죄다 빨갱이로 몬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에게 과도한 애도와 추모, 세금 낭비를 한다고 부르댄다.
타인의 비극에 대해 눈 감는 사람들, 통합 쉽지 않아
만약 자신의 가족과 형제자매에게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닥친다면 그들은 어떤 언행을 보일까. 단순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니까 주검을 그냥 땅에 묻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낼 것인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인 정권을 향해 정치지도자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고 할 것인가.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하나 더 남겼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과 애도를 하는 이들과 옆집 개의 죽음만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에게는 분명 시급한 해결과제가 있다. 이런 비이성적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을 어떻게 통합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이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유령 취급을 할 수는 없다. 타인의 생명에 대해서도 경외심을 갖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왜 이들이 이런 비뚤어진 행태를 보이는지를 세밀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와 그 일당은 영원한 역사 죄인들
박근혜뿐만 아니라 그 일당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숨기려했던 일, 수사를 방해하려 했던 일, 참사 뒤 선체 인양과 사고 원인 조사를 지연하거나 방해하려 했던 일 모두에 대해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그래야 그와 같은 권력 행태와 인간 행태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고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은 역사에 죄상이나 나쁜 일이 기록되는 역사죄인이다. 세월호 참사는 역사적 일대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온전한 선체 인양과 조사, 나아가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7시간, 구조·재난 대응기관의 대처, 사후 수습의 적절성, 국회 차원의 대응 등이 어떠했는지를 낱낱이 밝혀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어떤 세력이, 어떤 언론과 언론인이 세월호 참사를 비하하는지를 감시하자. 곧 3주기, 그것도 비극이 발생했던 공간이 우리 눈앞에 덩그러니 놓인, 슬픔 속 기쁨이 엇갈리는 3주기를 맞는다. 어떤 정치지도자와 정치 세력이 그 때 어떤 언행을 보이는지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자. 어떤 언론과 언론인이 세월호 참사를 진정한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며 다루는지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살펴보자. 그것이 역사적 사건 세월호 참사를 올바로 맞는 시작이다. 세월호가 우리 가슴에 살아 숨 쉬게 하는 길이다.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드는 길이다.

▲ 목포 항구에 도착한 세월호. ⓒ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 참사는 단순 해상 교통사고가 아니다. 희생자 숫자의 규모 문제도 결코 아니다. 세월호보다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해난 사고도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숨진 사람은 세월호 참사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더 애틋하게 여기고 자괴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앞서 언급한 대통령의 무관심과 숨겨진 7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세월호 참사를 역사 속에 영원히 간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시급하다. 역사의 기록을 미완성으로, 추측으로만 남겨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왜 침몰했는지, 살려달라고 외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최상의 정보를 신속하게 보고받는 위치에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대통령이 왜 무기력하게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알아내야 한다. 몇 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세월호 참사 직후 한때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야 한다는 말도 했었다. 그동안 이런 말은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박근혜 정권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월호 문제가 정치·사회 의제가 되는 것을 막아왔기 때문이다.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불통으로 일관했던 정권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지만 그동안 국민의 몸과 마음 또한 철저하게 문드러졌다.
5월 대선, 생명존중·안전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며칠 후면 3주기가 되는 세월호 참사를 맞는 국민 대다수의 마음은 3년 전과 한결 같다. 우리 사회는 그 마음을 떠받들어야 한다. 그래야 세월호 영령들과 유가족들이 그토록 바라는 생명존중사회, 안전사회를 만들 수 있다.
최근 한 언론사가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이들이 63.4%이고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여기는 사람은 20.5%에 불과했다. 또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의 안전은 변화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71.3%이고 14.9%는 오히려 악화했다고 밝혔다. 개선되거나 매우 개선됐다고 본 사람은 10.7%에 그쳤다.
또 책임자 처벌도 72.3%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으며 19%만이 처벌이 이루어지거나 매우 잘 이루어졌다고 했다. 인양한 세월호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절반을 훌쩍 넘었으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재가동과 특검 도입도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원했다.
정치가 다수 국민의 뜻을 받들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아픔을 달래주는 것이라면 새로 탄생할 대통령과 정권은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세월호 대책이나 안전 관련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은 또 이러한 내용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이를 가장 잘 실천할 의지와 역량, 품성을 지닌 후보와 정당에 한 표를 던져야 할 것이다.
새 정부, 세월호 특검 도입하고 특조위 재가동 해야
이번 대선을 흔히들 장미대선이라고들 한다. 이런 이름으로 이번 대선을 규정하는 것을 나는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빠트린, 개념 없는 이름이다. '계절이 뭐 그리 중헌디!'라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이번 대선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다면 촛불대선이란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국민이 엄동설한에 든 촛불 때문에 치러지는 대선이기 때문이다. 장미대선, 벚꽃대선 등의 이름은 촛불 정신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안전과 생명존중의 중요성을 일깨운 상징이다. 재난·위기관리와 대응 부실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살아 있는 표본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선체 보존, 원인 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검 도입은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 곧바로 해야 할 의무가 될 것이다.
책임자 처벌,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더라도 이승을 떠난 생명은 결코 돌아올 수 없기에 완벽한 넋 달래기, 즉 진혼(鎭魂)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망자의 넋을 달래는 일들은 이 땅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유가족을 비롯한 우리 자신들을 위한 행위들인 셈이다.
원인 규명을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하고 책임자를 확실하게 처벌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제도와 안전 조직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업보는 고스란히 오늘의 우리와 내일의 후손들에게 떠넘겨질 것이다. 대한민국을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3년 전에 있었던 과거가 아니라 현재요 미래라고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안전과 생명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최상의 가치
세월호 영령들은 부끄러운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상명령과 과제를 던진다. 생명은 인권이다. 안전은 생명이다. 생명은 사랑이다. 안전은 관심이다.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곧 모두의 안전을 보장하는 시작이다. 안전과 생명은 돈으로 바꿀 수 없다.
기업 경쟁력,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온 생명 경시, 안전 무시와 같은 나쁜 전통과 가치가 더는 대한민국에서 통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분명한 외침으로 일깨운 교훈이자 내려치는 죽비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부패 구조의 고리를 끊어야, 박정희 시절, 아니 그 이전 이승만 시절과 일제 때부터 쌓여온 온갖 적폐를 쓸어버리고 적폐 세력의 사고방식을 확 바꾸어야 모두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안전과 생명은 조용하게 가만히 있으면 결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세월호 참사란 국가적 재앙을 겪고서야 가슴 치며 깨닫고 반성했다. 좋은 지도자와 더불어 제대로 된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세상이 되어야 당신과 당신 가족의 현재 그리고 미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로부터 23일 뒤 촛불의 정신을 실현하는 대선이 있다. 5월 9일 치르는 이번 대선은 촛불의 정신을 확인하고 드높이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가슴 졸이며 방송을 보는 선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날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추모의 대선이어야 한다. 또한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완전히 새로운 안전 사회를 향한 첫발을 떼는 대선이어야 한다. 당신의 안전과 생명은 두 눈 부릅뜨고 깨어 있는 시민의 행동, 즉 제대로 된 한 표를 행사할 때만 지켜낼 수 있다. 기표소에서 세월호 영령들을 생각하며 투표하자.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해 공개된 물증은 세 가지 서류와 통신 기록 한 개가 전부다. 그간 공권력은 세월호 7시간 진상 요구에 재갈을 물렸다.
“지금 더 기울어(10시17분 박○○ 학생)”. 박○○ 학생의 메시지가 세월호에서 보낸 마지막 카톡 문자였다. 이들은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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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청 제공 청와대 참모들은 세월호가 기울어갈 때 박 대통령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고 밝혔다. |
참사 당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하 참사 당일 직책)은 오전 10시 세월호 참사를 처음 알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오른쪽 표 참조).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오전 10시 박 대통령에게 서면보고 ‘1보’를 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현 주중 대사)은 지난해 12월28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와, “박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몰라 제 보좌관이 뛰거나 자전거를 타고 청와대 집무실과 관저 두 군데다 서류를 보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그 서면보고를 받아 검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15분과 10시22분 두 차례에 걸쳐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했다고 주장한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샅샅이 뒤져 철저히 구조할 것’ 등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증거는 없다. 청와대나 박 대통령은 당시 지시를 입증할 통화 기록을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때도 제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해 공개된 ‘물증’은 세 가지 서류와 통신기록 한 개가 전부다. 당일 오전 10시에 이어 10시40분, 11시20분 국가안보실이 보고했다는 서면 3건만 공개되었다. “정무수석실 산하 사회안전비서관의 보고를 받은 데 이어 국가안보실 등의 보고를 받아 전화로 지시를 내렸다”라고 박 대통령은 주장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해줄 물증을 공개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낸 통화 기록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12시50분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 박 대통령 사이 통화 내역이 유일하다.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탄핵 심판 쟁점과 전혀 상관없는 통화 기록 딱 하나만 냈다.
국가안보실장보다 미용사에게 먼저 연락
이진성 헌재 재판관은 지난 1월10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세월호 7시간’ 답변서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이 재판관은 “통화 기록 등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없다”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박 대통령 쪽은 추가 증거를 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박 대통령이 오후 3시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을 지시했는데, 경호 문제와 중대본으로 승용차가 돌진하는 범죄행위가 있었던 문제로 도착 시간이 지연됐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당시에는 제출하지 않았다. 탄핵 심판 선고 닷새 전인 지난 3월5일에서야 헌재에 제출했다. 정작 교통사고의 증거라고 제출한 1분10초짜리 동영상에는 주차를 위반한 차량의 견인 장면(45쪽 맨 아래 사진)이 담겨 있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이 일자 대리인단 소속 손범규 변호사는 “견인이 맞다”라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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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2시53분 이영선 경호관은 정송주 원장(가운데)에게 문자를 보냈다. |
특검 수사로 박 대통령의 참사 당일 일정이 좀 더 공개되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이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이나 지시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특검은 2014년 4월16일 오후 이영선 경호관이 올림머리를 담당한 정송주 원장에게 문자를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출발하시면 전화 부탁드립니다. 많이 급하십니다(오후 2시53분).” 정 원장은 오후 3시20분 서울 안국동 쪽에서 이 경호관을 만나 청와대로 들어갔다.
이 경호관이 정 원장에게 문자를 보내기 3분 전, 오후 2시50분 박 대통령은 김장수 실장한테 전화로 ‘세월호 370명 구조 아님’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7분 후, 박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재확인하고 질책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박 대통령은 김장수 실장(2시57분)보다 먼저 이영선 경호관에게 정 원장에게 연락(2시53분)하라고 지시한 셈이다.
‘세월호 7시간’만 물으면 검·경이 출동했다
박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담당한 정 원장을 호출한 시각, 세월호 탑승객의 가족 등은 세월호 참사 상황을 생중계로 보면서 아이들에게 ‘제발 살아 있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 괜찮아?? 지금 핸드폰 물에 빠져서 그런 거지?? 지금 정신없어서 핸드폰 못하는 거지(오후 2시45분).” “△△아 우리 빅스 콘서트 가야지 응? 제발 꼭 돌아와 보고 싶어 정△△ㅠㅠ(오후 4시44분).” 학생들은 휴대전화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들의 휴대전화 카톡 메시지 창에서는 숫자 ‘1’이 남았다(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하면 숫자 1이 그대로 남는다).
박 대통령은 올림머리를 한 뒤 오후 5시15분에야 중대본에 도착했다. 박 대통령은 물었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이경옥 당시 안전행정부 2차관이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선체 내부에…”라고 대답하자, 박 대통령은 “아, 갇혀 있어서…”라며 혼잣말을 했다.
3년간 유가족과 시민들은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밝힐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지만 ‘세월호 7시간 의혹’은 검찰과 경찰을 불러내는 마법의 단어였다. ‘진상규명 요구→보수 단체 고발→공권력 수사→처벌’로 이어졌다. 박래군 4·16연대 상임위원,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행위예술가 박성수씨 등이 경찰·검찰 수사를 거쳐 재판을 받았다(<시사IN> 제415호 ‘7시간 거론 처벌법?’ 기사 참조).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7시간 진상 요구에 재갈을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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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은 올림머리를 한 뒤 오후 5시15분에야 중대본에 도착했다. |
지난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당했다.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대응과 관련해 헌재 다수의견은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또 세월호 참사 당일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가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은 달랐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국가 위기가 발생해 이를 통제·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다. 세월호 참사가 그 경우였다. 그러나 피청구인(박근혜)은 그날 저녁까지 별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형 재난이 발생하였는데도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이를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피청구인의 대응이 지나치게 불성실했다. 이는 헌법 제69조와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따라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부여된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를 위반했다.” 세월호 7시간의 의혹이 꼭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세월호 7시간, 박근혜 해명 팩트 체크
8:48 세월호 참사 발생 (검찰 공소장)
8:52 단원고 최○○ 학생 119 최초 신고 (검찰 수사 기록)
8:55 세월호, 제주 VTS에 구조 요청 ‘지금 배 넘어갑니다’
(검찰 공소장)
8:58 세월호 자체 “침수 중” 조난 신고 (검찰 수사 기록)
9:24 국가안보실, 문자 전파 ‘474명 탑승 여객선 침수신고 접수, 확인 중’
(헌재 증언)
9:40 해양수산부 위기경보 ‘심각’ 발령 - 대통령실 사전 협의 (헌재 결정문 기록)
10:00 국가안보실 서면보고 1보 (헌재 제출 기록)
10:15 박근혜, 국가안보실장에게 첫 번째 전화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통화 기록 미제출)
10:22 박근혜, 국가안보실장에게 두 번째 전화 “샅샅이 뒤져 철저히 구조할 것” (통화 기록 미제출)
10:30 박근혜, 해경청장에게 전화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통화 기록 미제출)
10:30 대변인, 관련 첫 청와대 브리핑. “박근혜, 해경청장에게 ‘해경 특공대
투입해서라도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전화 지시” (영상)
10:36 정무수석실 서면보고 1보 - 9시50분 현재 70명 구조 (보고서 미제출)
10:40 국가안보실 서면보고 2보 - 10시40분 현재 106명 구조 (헌재 제출 기록)
10:57 정무수석실 서면보고 2보 - 10시40분 현재 133명 구조 (보고서 미제출)
11:20 국가안보실 서면보고 3보 - 11시 현재 161명 구조 (헌재 제출 기록)
11:23 국가안보실 유선보고 1보 (통화 기록 미제출)
11:28 정무수석실 서면보고 3보 - 11시15분 현재 161명 구조 (보고서 미제출)
12:05 정무수석실 서면보고 4보 - 11시50분 현재 162명 구조 (보고서 미제출)
12:33 정무수석실 서면보고 5보 - 12시20분 현재 179명 구조 (보고서 미제출)
13:07 정무수석실 서면보고 6보 - 13시 현재 370명 구조 (보고서 미제출)
13:13 국가안보실장 유선보고 2보 - 현재까지 190명 추가 구조해 총 370명 구조 (통화 기록 미제출)
14:11 박근혜, 국가안보실장에게 세 번째 전화 - 구조 상황 재확인
(통화 기록 미제출)
14:50 국가안보실장 유선보고 3보 - 370명 구조 아니라고 정정
(통화 기록 미제출)
14:53 이영선, 박근혜 전속 미용사에게 문자 “출발하시면 전화 부탁드립니다. 많이 급하십니다” (특검 수사 기록)
14:57 박근혜, 국가안보실장에게 네 번째 전화 - 구조 인원 혼선 질책 및 재확인 지시 (통화 기록 미제출)
15:00 박근혜, 중대본 방문 준비 지시 (기록 미제출)
15:30 정무수석실 서면보고 7보 - 15시 현재 166명 구조로 정정 (보고서 미제출)
16:10 김기춘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국정조사 증언)
16:30 경호실, 중대본 방문 준비 완료 보고 (기록 미제출)
17:11 정무수석실 서면보고 8보 - 잔류자 구조 방안 (기록 미제출)
17:15 박근혜, 중대본 도착 및 지시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영상)
※청와대 홈페이지,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헌재 제출 기록, 세월호 검찰 기록, 박영수 특검 기록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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