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가계빚] "빚 돌려막는 다중채무자 156만명…금리 오르면 버틸 재간이 없다"
어느 다중채무자의 고백 "빚 내 빚갚기 한계…나는 이제 끝났다"
84만여명은 소득 60% 이상 빚 갚는데 써
금리급등 땐 상환부담↑…연체율 상승세
이씨는 급한 마음에 우리카드 현금서비스(단기카드대출)로 100만원 정도를 빌렸다. 처음엔 ‘한 달만 쓰자’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빚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신용카드 리볼빙서비스(수수료를 내고 카드값 결제를 미루는 방식)도 이용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이씨는 곧 연 20% 금리로 카드론(장기카드대출) 800만원을 받았고, 이를 갚기 위해 다시 신한카드에서 800만원을 빌렸다.
보험설계사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수입이 적어 한두 번 이자를 연체하자 대출금리는 급격히 뛰었다. 그렇게 빚은 또 다른 빚을 낳았다. 이번엔 씨티은행에서 200만원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도 받았다. 은행대출을 끼고 산 서울 구로구 아파트를 담보로 현대해상에서 2억5000만원을 빌렸다. 연 3.6% 금리에 30년간 매달 113만원의 원리금을 갚는 조건이었다.

◆빚 돌려 막는 채무자 156만명
국내에서 금융부채를 안고 있는 채무자는 1831만명이다. 은행과 보험, 저축은행, 신협 등 상호금융권 등에서 돈을 빌린 사람의 숫자다. 이 가운데 세 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多重)채무자’는 344만명(2015년 기준)에 달한다. 다중채무자들이 떠안고 있는 부채도 급증하는 추세다. 2010년 282조원에서 지난해 348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경제성장률 저하와 조선·해운 구조조정에 따른 실직자 등을 감안하면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 추정이다.
다중채무자는 금리 상승이 본격화할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개인신용정보 전문회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김정인 부사장은 “당연한 얘기지만 금리상승기에는 다중채무자 가운데서도 절대적인 빚 규모가 큰 차입자, 그리고 수입이 적은 저소득층에서 부실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빚으로 빚을 돌려 막는’ 신용대출 채무자들이다. KCB에 따르면 올 9월 말 기준 세 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마이너스통장, 카드 현금서비스, 카드론(장기카드대출) 등 신용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는 156만명에 이른다. 전체 신용대출 채무자 가운데 다중채무자 비중은 2014년부터 서서히 늘고 있다. 2014년 6월 10.64%이던 다중채무자 비중은 올해 6월 11.45%로 상승했다.
금융당국은 빚의 총량이 늘어나는 동시에 부채의 질(質)도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체 다중채무자 가운데 총부채상환비율(DTI·소득 대비 부채상환액)이 60%가 넘는 사람이 무려 53.55%인 84만여명에 달했다. 벌어들이는 소득의 6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고(高)부담자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소득수준별로 보면 저소득층에서 다중채무자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절대적인 다중채무자 비중은 고소득층 쪽이 높지만, 비중 증가폭은 저소득층이 훨씬 가파른 모습이다.
저소득층인 소득 1·2분위 채무자 중 다중채무자 비중은 2014년 9월 10.39%에서 올해 9월 11.98%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고소득층인 소득 5분위 다중채무자 비중은 20% 수준에서 큰 변화가 없다. 저소득층이 신용대출을 받은 뒤 소득이 늘어나지 않아 다시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은행 관계자는 “상환능력을 갖춘 고소득층의 다중채무는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조그마한 충격에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가파르게 오르는 연체율
금융당국은 내년 이후 금리 상승 흐름이 본격화하면 저축은행, 캐피털, 카드론 등 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쓴 다중채무자의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올라 부실대출 우려가 커지면 금융회사는 가장 먼저 다중채무자의 대출금리부터 올려 부실을 줄이려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저축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연 19%(신용 5등급),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는 연 19%, 캐피털 대출은 연 20% 수준이다. 통상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선 가산금리를 더해 2%포인트가량 금리를 올린다. 금리 상승은 고스란히 대출이자 상환 부담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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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김씨는 경기 부천 중동에 커피전문점을 차렸다. 10평 남짓한 가게였다. 창업자금은 저축·퇴직금 4000만원에 단위농협에서 1억원을 빌려 마련했다. 대출은 부모 명의의 아파트를 담보로 10년 만기, 연 3.5%의 변동금리로 받았고 매달 98만9000원의 원리금을 상환해야 했다.
처음엔 ‘내 장사를 하게 됐다’는 꿈이 컸다. 하지만 그 꿈이 깨진 건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주변에 다른 커피숍이 생겨날 때마다 피가 말랐다. 급기야 대형 프랜차이즈 간판을 내건 점포도 들어섰다. 손님은 갈수록 뜸해졌고 매출장부엔 빈칸만 늘어났다. 생활고도 가중됐다.

한국은 자영업의 나라다.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꼴로 식당 커피숍 치킨집 등 자영업에 생계를 기댄다. 은퇴세대뿐 아니라 실업난에 갈 곳을 잃은 20~30대까지 창업에 가세하고 있다.
금융계에선 이들 자영업자가 받은 대출이 가계부채 문제의 ‘숨은 화약고’가 될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내수 침체에 금리 상승까지 겹치면 빚 부담이 늘어나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추산하는 자영업자 부채는 520조원 규모다.
◆급증하는 자영업자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말 537만4000명에서 올 9월 567만9000명으로 30만명 이상 늘었다. 2014년 580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줄어드는 듯했지만 잠시였다. 은퇴에 내몰린 베이비붐 세대가 생계를 위해 음식점 창업 등에 나선 결과다.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20대와 30대도 창업 전선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자영업자 빚의 총량도 늘고 있다. 신용평가회사인 한국기업평가가 집계한 12개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올 6월 말 기준)은 185조5000억원이다. 작년 말(177조7000억원)보다 4.4%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권 가계대출이 455조1000억원에서 471조5000억원으로 3.6%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더 큰 걱정은 자영업자들의 ‘숨겨진 빚’이다. 부족한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자 대출 외에 집이나 신용을 담보로 개인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도 수두룩하다. 자영업자 대출을 ‘가계부채의 숨은 위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한은은 개인대출과 사업자대출을 포함한 전체 자영업자 대출총액을 520조원 규모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32.6%는 비싼 이자를 내야 하는 2금융권 대출이다.
◆한계 상황 내몰린 48만명
자영업자 부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도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근로소득자와 달리 자영업자는 부실이 발생하는 순간 폐업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며 “폐업의 여파는 자영업자가 받은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부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미 위험신호는 켜졌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금융부채비율(LTI·연간 소득 대비 총대출잔액 비율)은 지난 5월 240.1%에 달했다. 연 소득을 100으로 봤을 때 대출잔액이 240에 달한다는 의미다. LTI는 지난 1년간 8.2%포인트 상승했다. 60대(286.5%)와 50대(247.1%) 등 고연령층이 더 높고 30대(207.3%)도 올 들어 처음 200%를 넘어섰다.
한은 진단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은은 내년에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소득 대비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이 40%를 넘는 자영업자가 48만가구로 3만가구 더 늘어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와 금리상승 부담이 자영업자의 위기를 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올 들어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에 더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자영업 경기가 급랭하고 있어서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기업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인 부산·울산·경남을 중심으로 자영업자의 빚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소득 하위 20%인 자영업 가구의 총부채 원리금상환비율(DSR)은 울산이 2013년 46%에서 지난 5월 104%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부산 지역 DSR도 52%에서 71%로 올랐다.
시한폭탄 가계빚
입주 대기 96만가구…금리 오르면 '하우스푸어' 대란 우려
(3)·끝 - 주택대출 544조…빚 부담 커지는 입주자들
어느 입주 예정자의 한숨
"청약할 땐 '로또'였는데…입주 다가오니 눈앞 캄캄"
주택대출 이용자 536만명
입주예정 70%가 변동금리…대출금리 인상땐 '이자폭탄'
내년엔 집값 하락 가능성
대구 등 일부 지역선 벌써 '마이너스 프리미엄' 현상도
김현철 씨(41)는 집이 세 채다. 결혼 후 경기 용인의 전용면적 59㎡ 아파트에 줄곧 살던 김씨는 두 자녀가 커가면서 좀 더 넓은 집이 필요했다. 2014년 8월 본인과 아내 명의 청약통장으로 운좋게 용인 지역의 전용면적 84㎡짜리 아파트 두 채를 분양받았다. 분양가는 각각 5억원. 빠듯한 형편에 처음엔 한 채만 계약하려 했으나 ‘당첨만 되면 로또 맞는다’는 주변 얘기에 두 채 모두 분양받았다. ‘한 채는 입주 전까지 1억원 이상 웃돈(프리미엄)을 받고 팔 수 있다’는 시행사의 설명도 솔깃했다.
대출 부담도 크지 않았다. 계약금으로 5000만원씩 모두 1억원을 낸 뒤 중도금은 집단대출로 손쉽게 해결했다. 입주 때까지 3년간 대출이자도 건설사가 대신 내준다. 기대가 불안으로 바뀐 건 얼마 전부터다.
김씨는 내년 8월 입주해야 한다. 입주 후 떠안게 될 중도금 및 잔금 대출은 총 9억원(아파트 두 채 기준). 올 2월부터 주택구입용 대출은 무조건 고정금리·분할상환으로 받아야 하지만, 김씨는 2년 전 분양받은 덕에 변동금리·일시상환 대출을 쓸 수 있다. 그럼에도 부담은 만만치 않다. 현재 변동금리인 연 3.6%로 30년 만기 대출을 받으면 매년 3200만원씩 이자를 내야 한다.
내년 금리가 연 4%가량으로 오르면 이자 부담은 3600만원으로 껑충 뛴다. 집 한 채를 팔아 상환 부담을 덜고 싶은데, 최근 아파트 매매가가 분양가보다 낮아졌다는 공인중개사의 얘기에 전전긍긍이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 자산이다. 실수요와 투기 수요가 상존한다. 주택을 꼭 소유해야 한다는 인식도 뿌리 깊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지난 2~3년 저금리로 부동산 경기는 들썩였다. 싼 금리에 빚내서 집을 사려는 수요가 폭증했다.
그러나 저금리발(發) 부동산 투자 열풍은 15일 미국 금리인상으로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앞으로 대출금리가 오르면 빚 상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당장 내년과 내후년 아파트 입주를 앞둔 100만가구의 중도금·잔금대출 상환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호(好)시절이 끝나간다
지난 수년간 집값은 오름세였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전년 대비 5.6%(서울은 5.58%) 올랐다. 올해도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4.15%(서울은 7.55%) 상승했다. 뛰는 집값에 건설사들은 신규 분양을 늘렸다. 2014년 33만가구였던 신규분양 물량은 지난해 51만가구, 올해 49만가구로 증가했다.
지난해 초 기준금리가 1%대로 낮아지면서 빚내서 집을 사려는 수요도 급증했다.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은 2014년 460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501조2000억원, 올 3분기 말 544조2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현재 금융권 주택대출 이용자만 536만명이다. 저금리가 지속된다면 문제될 건 별로 없다. 하지만 미국 금리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오를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당장 내년 입주자의 빚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입주하는 순간 분양가의 90%에 달하는 중도금·잔금대출의 이자부터 갚기 시작해야 한다. 내년 입주 예정인 아파트는 전국 38만2741가구다. 역대 최대 규모다. 2018년부터는 더 늘어난다. 부동산업계는 내년부터 2년간 입주예정자가 96만가구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규 주택대출에 고정금리·분할상환을 의무화하기 전 분양계약한 입주예정자는 변동금리 대출이 70% 이상에 달한다”고 말했다. 금리상승으로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하우스푸어 재발하나
내년 주택가격 하락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조사기관들은 내년 집값이 보합 또는 소폭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내년 아파트 매매가격이 수도권은 0.5% 오르지만 지방은 0.7%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산업연구원도 수도권은 보합세를 보이겠지만 지방은 1.5%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빚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집값이 떨어지면 ‘하우스푸어’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하우스푸어는 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을 뜻한다. 집값이 오를 것이란 생각에 과도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는데 금리상승, 집값 하락으로 빚 상환 부담이 커지는 경우다. 2012년 상황이 그랬다. 당시 입주할 때 집값이 분양가 이하로 추락해 전국적으로 100만여가구의 하우스푸어가 발생했다.
일부 지역에선 벌써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조짐이 보이는 분위기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내년 1분기 입주예정인 아파트단지 가운데 대구, 창원 등 지방에서 ‘마이너스 프리미엄’(집값이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는 것)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864만가구 중 주택대출금이 집값의 60%에 금융자산을 더한 금액보다 많은 가구가 37만6000가구나 됐다.
이 가운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60% 이상, 즉 금융부채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60%가 넘는 가구는 10만가구에 달했다.
◆특별취재팀=이태명 금융부 차장(팀장), 김유미 경제부 기자, 김은정 금융부 기자, 윤아영 건설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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