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고 혼자 먹고 혼자 쓸래”로 탈바꿈한 한국
통계청 보고서 《한국의 사회동향 2016》로 보는 한국사회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2.16(금) 15:30:27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의 한 가정 식당. 성인 남성 10명이 들어서면 꽉 찰 것처럼 좁은 이 식당에는 6명이 한 번에 앉을 수 있는 큰 식탁 1개와 1인용 식탁 4개만 놓여있다. 구석 자리에선 30대 여성이 밥과 함께 맥주 한 잔을 시켜 홀로 식사 중이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다. 가게 주인은 “주변에 회사원과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데 혼자 밥을 먹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이유로 ‘혼자 술을 마시는’ 이들을 그린 tvN드라마 ‘혼술남녀’가 2030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호평 속에 최근 종영했다. 혼밥족, 혼술족, 혼캠족(홀로 캠핑을 하는 사람들) 등 신조어에는 변화하는 가구 구성 세태가 그대로 묻어나온다. 바로 1인가구의 증가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한 장면 ⓒ tvN 화면 캡쳐
1인가구는 19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인가구수는 1990년 102만1481 가구였다가 1995년 164만6748명, 2000년 222만4433명, 2005년 317만675명, 2010년 414만2165명, 2015년 520만3440명으로, 매년 약 100만명씩 증가해왔다.
자연스럽게 전체 가구수 대비 1인가구의 비율 역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통계청이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9.0%였던 1인가구 비율은 2015년 27.2%를 기록했다. 25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 시사저널
1인가구 비중 25년새 3배 껑충 뛰어
1인가구의 증가는 전체적으로 가구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다. 1990년 평균 가구원수는 3.8명이었다. 2015년 이 수는 2.5명으로 1명 이상 줄었다. 확대가족의 비중 감소라는 이유와 더불어 1인가구가 증가한 탓이다. 지난 30여년 간 한국의 대표적인 가구 형태는 ‘핵가족가구’였다. 부부가구, 부부+자녀가구, 부+자녀가구, 모+자녀가구가 여기에 포함된다. 핵가족가구는 전체 가구형태의 68%에 육박했다. 하지만 1인가구가 급격히 늘어난 2015년, 핵가족가구의 비율은 58.6%까지 낮아졌다. 같은 시기 1인가구의 비율은 1990년 9.0%에서 2015년 27.2%로 대폭 뛰었다. 통계청은 이 같은 추세라면 20년 뒤인 2035년에는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34.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1인가구가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두 가지다. 젊은 연령층의 미혼율 증가, 그리고 노년층의 독거가구 증가다. ‘한국의 사회동향 2016’은 이 가운데 20대 가구주의 1인가구 비율이 눈에 띄게 상승하는 점에 주목했다.
20대 가구주의 1인가구 비율 증가는 연령별 1인가구 비율의 변화를 살펴보면 두드러진다. 30년 전 20-24세 가구주와 25-29세 가구주 중 각각 29.7%, 10.4%가 1인가구주였다. 그러던 것이 2015년엔 각각 79.3%, 63.0%로 대폭 증가했다.
가구주 연령이 25-39세인 경우 ‘1인 청년가구’로 분류되는데 이 역시도 증가세를 보이다 지난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1인 청년가구는 2015년 현재 약 65만5000가구다. 통계청이 1인가구를 조사하기 시작한 2006년과 비교해 29.8%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2인 이상 가구원으로 구성된 청년가구는 약 21.1% 정도 감소했다. 특히 1인 청년가구의 증가는 주로 1인 여성 청년가구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2006-2015년 기간 동안 1인 남성 청년 가구는 거의 변동이 없는 반면 1인 여성 청년가구는 75.9% 증가했다. 1인 청년가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에는 51.1%로 과반을 넘어선 수준이다.
만혼과 비혼으로 증가하는 20대 1인가구주
출생인구의 감소로 청년인구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데도 1인 청년가구가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변화는 청년층의 만혼(晩婚)과 비혼(非婚)의 급속한 증가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년들이 결혼을 해 2인 이상의 가구를 형성하는 대신 독신으로 남아서 1인 가구를 형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20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는 이 같은 추세를 이끌었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남성과 여성 모두 결혼을 당위적인 것으로 보는 인식이 크게 낮아졌다.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따르면 1998년 ‘사회조사’ 결과, 남성의 36.9%, 여성의 30.5%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2014년 이 응답의 비율은 남성 16.6%, 여성 13.7%로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 반면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응답 비율은 높아졌다. 1998년 남성의 18.4%, 여성의 28.9%가 결혼을 선택사항으로 인식했지만, 2014년에는 그 비율이 남성 34.4%, 여성 43.0%로 높아졌다.
결혼을 선택사항으로 보는 태도 변화 추세는 기혼자들보다 미혼자들에게서 두드러졌다. 2014년을 기준으로 미혼 남성의 9.9%, 미혼 여성의 5.9%만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의 사회동향 2016’의 ‘가족과 가구 영역의 주요 동향’의 집필을 맡은 한경혜 서울대학교 교수는 “미혼자들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실제 이들의 결혼행동에 반영되어 장기적 결혼율의 저하로 나타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20대에서 유독 1인가구주의 변화가 급격하게 상승한 배경은 뭘까. 한경혜 교수는 “학업 혹은 직업상의 이유로 부모와 함께 거주하지 않는 젊은 층의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봤다. 이밖에도 한 교수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꼽았다. 결혼 전까지 부모와 함께 거주하려던 경향에서 결혼 전이라도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경향으로 변화했다는 설명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취업을 못해 부모에 의지해 살거나, 취직을 했는데도 임금이 적어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대두되는 시대와 반대되는 또 다른 자화상인 셈이다.
대도시, 연립 및 다세대주택으로 밀려나는 20대 혼족
경제적으로 독립한 1인 청년가구의 교육수준은 지난 10년간 높아졌다. 남녀가 비슷한 추세를 보인 가운데 1인 청년가구 가운데 고학력자의 비율은 여성이 더 높았다. 2015년 1인 여성 청년가구 중 80.4%가 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 이들 중 대다수가 도시에 거주했다. 특히 1인여성 청년가구는 2015년 현재 95.3%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학력수준이 높고 대부분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1인 청년가구는 어떤 유형의 주거지를 선호할까. 이들의 선택은 단독주택과 아파트였다. 여기에서도 추세 변화는 있었다. 아파트나 단독주택에 거주했던 청년들이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등으로 주거지를 바꾸는 경향이 지난 10년간 점진적으로 나타났다.
핵가족에서 ‘혼자족’으로의 가구 변화는 사는 방식뿐만 아니라 돈 버는 방식, 돈 쓰는 방식에서도 변화를 가져온다. 1인 청년가구의 소득 가운데 사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 역시 흥미로운 대목이다. 1인 남성 청년가구의 경상소득 대비 사업소득 비중은 2006년 6.8%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18.9%로 높아졌다. 1인 여성 청년가구의 사업소득 비중도 2006년 10.5%에서 2015년 21.9%로 상승했다. 이런 추세는 기업들의 청년고용이 감소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비 성향을 봤을 때 여성 1인 청년가구가 남성에 비해 일관되게 높은 지출을 보였다. 지난 10년간 소비지출 대비 식료품과 관련된 지출 비중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반면, 소비지출 대비 식사 지출 비중은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다. 집에서 식사를 마련해 먹는 여성에 비해 남성의 외식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흉기에 맞아 죽어도 편의점 알바가 쉬운 노동?"

'헬조선', '3포세대', '흙수저' 등 2016년 한국을 살아가는 청년 문제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단어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안 보인다. 청년 문제를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의 당사자인 청년이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권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15일 '다음세대가 꿈꾸는 민주공화국'을 주제로 (사) 다른백년이 주최한 포럼의 발표를 맡은 조성주 정치발전소 기획위원은 당사자 운동이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기획위원은 2000년대 중반부터 청년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자원이 부족한 청년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제도와 정치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는 한국의 첫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요즘 들어서 청년 실업을 비롯한 청년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청년 문제는 IMF 사태가 끝난 이후인 2000년대부터 시작됐어요. 제가 체감하기에는 2003년을 기점으로 이미 심각한 상황에 접어들었던 것 같아요.
등록금은 임계치에 도달했고 청년 실업은 IMF 직후인 1990년대 후반부터 축적돼왔어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취업준비생이 많아졌죠. 결국 제도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2007년에 국회에 가서 청년실업과 관련한 제도를 바꿔보자고 생각했죠."
하지만 국회에서의 활동은 한계가 있었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사자의 목소리가 중요한데, 청년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힘든 사회 구조 속에서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마련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어떻게 하면 청년 당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때만 해도 한국에서 진보운동이나 노동운동에서는 여전히 '계급론'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청년이 당사자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배부른 투정'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죠.
그래도 어쨌든 조직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일본의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일본도 청년과 비정규직 문제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는데 2008년 일본의 파견직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 파견직의 절대다수가 35세 미만이었거든요."

▲ 다른백년이 주최한 '다음세대가 꿈꾸는 민주공화국'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조성주(가운데) 정치발전소 기획위원 ⓒ프레시안(이재호)
청년유니온을 만들고 나서 조 기획위원이 주목했던 것은 시간제 일자리였다. 흔히 '아르바이트'라고 불리는 시간제 일자리의 다수가 청년들이었고, 이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르바이트는 노동의 개념이 아니라 사회 진출 전의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사회로 나가기 전에 경험을 쌓은 거니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는 2011년 청년유니온 커피전문점의 시간제 노동자들에게도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싸움을 시작했다. 최근 구인‧구직 포털 사이트인 '알바천국'이 주휴수당을 받자는 광고를 내보내기 5년 전부터 이미 주휴수당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당시 저희는 커피전문점을 대상으로 근로기준법 58조에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고 주장했어요. 풀타임 노동자들은 수당을 계산해서 월급에 포함시키니까 주휴수당이라는 것 자체를 잘 몰랐고, 시간제 노동자들은 아예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당시 저희는 이 부분에 대한 법적 확인을 하고 주휴수당을 받아내는 운동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청년유니온은 서울시와 교섭을 진행하면서 '제도'를 바꾸기 위한 행보를 이어갔다. 또 최저임금위원회에도 참석해 청년 세대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사 간 교섭을 하면 회사 대표와 노조 대표가 나란히 앉아서 하는데 사실 청년유니온의 조합원을 비롯해 한국사회에서 기존 노조에 못 들어가는 다양한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교섭을 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작동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청년유니온은 '사회적 교섭'이라는 모델을 한국에서 시도해 보기로 했고, 서울시와 교섭을 시도해서 선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정책 의제단을 꾸리고 교섭을 시작했고요.
청년유니온 설립 초창기인 2010년부터 최저임금위원회에 청년유니온이 들어가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습니다. 최저임금의 최대 당사자가 청년이기 때문입니다. 2010년부터 문제 제기를 해왔고 5년 만에 위원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배려로 들어가게 된 것인데, 앞으로는 배려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청년층도 위원회에 참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답은 현장에 있다
2010년 출범 이후 6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유니온은 현장의 목소리를 가장 중요한 정책 이슈로 반영한다. 올해도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석했던 청년유니온은 사용자 측으로부터 '최저임금 차등적용'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이수호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사용자 측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시급 문제를 들고 나왔다고 밝혔다.

▲ 이수호(왼쪽)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이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이재호)
"사용자 위원 측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예로 들면서 편의점에서 한여름에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덜 챙겨줘도 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난 12월 초 편의점에서 한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취객에 의해 목숨을 잃었어요.
이 취객이 숙취 음료를 계산하고 비닐봉지를 요구해서 봉투 값을 달라고 했는데, 취객이 화가 나서 집에 갔다가 흉기를 들고 와서 그 노동자를 살해한 것이죠. 결국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쉬운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위협도 감수해야 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 거라고 보는게 맞는 거죠.
구의역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만 하더라도 어이없는 사고였어요. 이런 현실을 보면서 조합원과 동료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청년유니온이 귀를 기울인 현장의 목소리가 하나 둘 씩 모여서 시작된 하반기 사업이 '구직자 권리 찾기'였습니다"
이 기획팀장은 졸업을 앞두고 있는 청년유니온의 한 조합원 이야기를 들으며 구직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조합원이었어요. 2~3일에 한번 꼴로 지도 교수한테 전화를 받았다고 해요. 취업을 했는지 확인하는 거죠. 그러면서 빨리 취업하라고 독촉을 했다고 해요. 학교 취업률과 관계가 있기 때문인거죠. 빨리 취업해서 취업률을 높여라, 수치에 기여하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교수나 학교 입장에서 이 조합원은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인격체가 아니라 취업률을 높여주는 숫자에 불과했던 겁니다. 한 인간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 골칫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죠."

▲ 청년층의 경제적 문제를 표현한 퍼포먼스 ⓒ프레시안(최형락)
청년유니온은 취업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취업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찾기 위해 서울시와 함께 취업준비생들에게 정장을 대여해주는 '취업 날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조합원에게 취업 날개 서비스는 이전에 접했던 그 어떤 구직활동 서비스보다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하더라구요. 당장 정장 한 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상황에서 가장 피부에 와 닿았던 지원이었다는 거에요.
이후에 청년유니온은 구직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좀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구직자들이 몰리는 박람회장을 비롯해 대학 캠퍼스를 돌면서 500여 명의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습니다. 지금은 청년 수당과 같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를 포함해 고용보험, 실업급여 등의 개선을 통해 청년 구직자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어요."
이 기획팀장은 청년유니온 활동을 통해 청년들이 연구대상이나 취업률을 높여주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청년 문제의 해결은 청년들의 삶을 마주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기획팀장은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대책 및 정책 집행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한 예산을 편성한다면서 바이오, 게임 산업 등에 예산을 편성했다고 해요. 청년들이 여기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예산이 모두 청년에게 투입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이미 대기업들이 선점해서 투자를 하는 산업에서 청년들이 얼마나 나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듭니다."

▲ 왼쪽부터 이수호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조성주 정치발전소 기획위원,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프레시안(이재호)
"한국에는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논란이 이상한 프레임으로 짜여 있어요. 그런데 '조건'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다 있는 것이고, 급하게 지원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얼마나 보편적 가치에 맞춰서 지원하느냐가 중요한데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서울시에서 취약계층을 정확히 선정해서 지원하는 청년수당 정책이 보다 바람직해 보입니다.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다만 서울시 정책이 아쉬운 것은 현금을 주는 수당 정책만 있다는 겁니다. 서울시에는 산하에 직업 교육 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시에서 동원할 수 있는 직업 교육 시스템이 갖춰진 지자체죠. 이것과 연계해서 고용 안전망이 설계됐다면 더 좋은 정책이 됐을 것 같아요"
정치와 행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조성주 기획위원은 사회적 약자일수록 정치와 행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그 안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는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청년유니온의 '유니온'은 단순히 노동조합의 영어 단어가 아니라, '당사자 운동'의 다른 말입니다. 스스로를 대변하는 당사자 운동의 방식을 유니온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렇게 청년유니온이 시작되다 보니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민달팽이 유니온'이라는 단체도 나왔고 '노년유니온', '방송작가 유니온' 등등이 만들어지더라고요.
기존의 조직으로 대변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새로운 방식이 유니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규정한 다양한 유니온 운동이 출현하고 있고, 이들의 공통점은 정치나 행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이를 활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기존 한국의 운동이 가지고 있는 반 정치주의가 많이 극복된 것 같습니다."

▲ 조성주 정치발전소 기획위원 ⓒ프레시안(이재호)
"1960년대 흔히 '68혁명'이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의 반전시위와 저항문화가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이 때 미국의 젊은 대학생들은 학교를 점거하고 알린스키를 불러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혁명을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알린스키는 '너희처럼 하면 안된다'면서 '권력화하고 조직하는 것을 해야지, 낭만적 분출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답니다. 적극적으로 권력을 쟁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별다른 자산이 없는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 지금 정당에 있는 조 기획위원 역시 청년들이 정치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힘든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당 활동을 하면 더불어민주당이나 새누리당에 있는 젊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이들 정당은 누군가에게 줄을 서지 않고서는 청년 정치인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해 나가기가 힘듭니다.
또 청년 정치인의 경우 소위 '스타성'이 있는 사람, 스펙이 괜찮은 개인이 주목을 받는 것이지, 실제 세력이 있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정의당은 청년들이 세력은 있지만 파이가 너무 작아요. 이렇게 되면 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해지는데요. 예를 들어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은 청년 정치인에게 비례대표로 1~2석을 준다고 해도 조직이 긴장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지만, 정의당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조직 긴장이 커지더라고요."
청년 정치인이 자신의 뜻을 펴기 어려운 여건이 있지만, 19대 국회에서는 나름의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정치인도 있었다.
"19대 국회 때 김광진‧장하나 의원은 30대의 젊은 정치인들도 국회에 가서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것은 이게 한 개인의 '퍼포먼스'로 끝나고 당내의 세력으로 남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정당이 장기적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는 점도 젊은 정치인을 키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당장 다음 선거만 보고 정당을 운영하다 보니 장기 계획을 세울 수가 없고 사람을 키울 수가 없어요."
이에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이수호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청년 정치인들이 진입 장벽이 높은 중앙 정치 대신 지방의회에서 출발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 기획위원은 "미국처럼 청년들이 지방의회에 진출해서 거기서 부터 중앙정치로 올라오는 방식을 생각했지만 한국은 오히려 지방자치의 벽이 더 높은 측면이 있었다. 중앙정치는 이슈가 중요한 공간인데 지방의회는 다르더라"라며 "물론 지방 의원 중에 좋은 성과를 내는 젊은 정치인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중앙 정치로 데리고 와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층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정치와 관련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기획위원은 "지방의원들도 보좌관을 둘 수 있게 해야 한다. 보좌진이나 인턴제도 등을 통해 젊은층이 정치로 유입되고 성장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며 "이런 일자리를 통해 정치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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