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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검찰’한테서 최순실을 빼앗자 - 이런 나라가 아니었고 아니어야 한다

일취월장7 2016. 11. 19. 09:16

‘박근혜 검찰’한테서 최순실을 빼앗자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제478호


국가 전체를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해야 할 지경이다. 환란이나 대지진보다 더 엄혹하다. 위기에 대처할 시스템 자체가 망가졌다. 방어 체제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 ‘녹화 사과’를 한 데다 국민이 받아들이기 힘든 개각을 하는 바람에 정부청사 전체가 마비되게 생겼다. 당연히 국가의 시급한 현안마저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은 경제 위기도 국가부도를 부를 수 있다. 메르스나 세월호 참사 같은 큰 사건이 다시 터진다면 수습 불가의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튼튼한 기둥 가운데 하나였던 조선·해운업은 대책 없이 붕괴하는 중이다. 체감하기로는 한국 경제의 절반쯤 되는 무게인 삼성도 이상하다. 이재용 체제의 삼성은 최순실씨의 딸에게 말을 상납해 권력을 좇는 데는 여전히 재계를 선도하는 절대 고수란 점을 과시했다. 하지만 기술력에서는 예전의 삼성이 아니다. 갤럭시 노트7의 결함 원인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손을 들 정도로 무기력하다. 이미 메르스 사태 때 이재용씨의 역점 사업인 바이오 기업의 최전선에 선 삼성병원이 얼마나 허술한지 만천하에 광고하지 않았던가. 공권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조선·해운업과 삼성이 대한민국을 쌍끌이로 흔든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존 L. 캐스티가 지적했듯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삼성 내부가 얼마나 심하게 곪았는지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랄 가능성이 있을까. 내기를 한다면 ‘매우 그렇다’는 쪽에 나는 걸겠다. 삼성의 내부가 박근혜 정부처럼 공적인 감시망에서 벗어난 지 너무 오래되었다.

ⓒ한성원 그림

자영업자이건 중소기업인이건 누구든 한번 붙들고 물어보시라. 시장의 체감 경기는 환란 직전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정부의 감시가 아예 없는 틈을 타 가계부채는 위험수위를 한참 넘었다. 이런 형편에 갑자기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되거나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점쳤듯이’ 김정은 체제가 갑자기 흔들리는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거기다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하기라도 한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지려나.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한반도는 지금 멀쩡한 정부라도 대처하기 힘겨운 일들에 겹겹이 포위돼 있다.

어떤 사회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치면 기득권 세력은 냉정하게 대처하기보다는 ‘멘붕’이 되곤 하는데, 재난 연구자들은 이걸 ‘엘리트 패닉’이라 부른다. 1985년 멕시코시티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부 의류업체 사장들은 공장에 갇혀 울부짖는 여공과 이미 죽은 이들의 시신을 외면하고 기계와 원단을 건져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불이 꺼진 뒤 경찰은 약탈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가족이 건물 더미를 파헤치는 것조차 막았다. 9·11 테러 때는 미국 부시 대통령이 테러에 책임이 없는 이라크를 침공하는 바람에 중동의 무고한 민간인 수십만명이 죽었으며 전 세계가 난민 회오리에 휘말리고 말았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정치인이나 관료, 그리고 가진 자들은 사태를 수습하기보다는 더욱 크게 키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우선순위가 상식과 동떨어진 탓이다. 그들에게는 사유재산이나 국제무역, 경제 수치 혹은 차기 선거가 인명보다 더 소중하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거의 예외 없이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여권에서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일들도 모두 엘리트 패닉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재난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다. 고통받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은 대개 평범한 사람이다. 그들은 겁을 먹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재난은 무정부 상태를 연출하지만 약탈·살인·강간·방화와 같은 극단적인 무질서를 불러들이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사람들은 폐허 속에서 ‘날카로운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놀랍게도 서로가 도와주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에 둘러싸여 ‘낙원의 편린’을 봤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득도한 고승처럼 급작스럽게 뭐가 중요한지 깨닫는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가치 없는 일들을 하느라 인생을 낭비해왔는지 알고는 새삼 놀란다. 사람들은 재난 현장에서 아낌없이 먹을 것과 덮을 것을 나누며 서로 끌어안는다.

재난은 어김없이 무능하거나 부패한 정부의 실체를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예전에 광주 사람들이 그랬듯이 사람들은 재난 속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한다. 갑질을 하던 사회 지도층이 사악하지만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눈으로 직접 보고 의식화된다. 재난은 보통 사람을 민주 투사로 단련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지녔다. 그렇다. 멕시코와 에콰도르는 끔찍한 지진을 겪고 나서 군부독재를 청산할 수 있었다. 재스민 혁명을 일으켰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처럼 잠깐 낙원을 맛본 뒤에 다시 더욱 가혹한 신질서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는 않다. 잠깐이나마 낙원을 맛봤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더욱 큰 고통을 겪는다.

미국은 두 가지 경우를 다 겪었다. 2001년 9·11 테러와 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이다. 두 번 모두 시민의 행동은 반듯했다. 9·11 테러 때 시민은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 무역센터를 탈출한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순식간에 대규모 조직을 꾸렸다. 미국 전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다. 유니언 광장 곳곳에 배급소와 토론장을 마련했다. 한편에서는 돕고 한편에서는 미국이 어디가 잘못됐는지 열심히 토론했다. 공공기관은 효율성에서 언제나 민간기관에 뒤졌다. 우왕좌왕하던 부시 행정부가 처음 한 일은 미국을 시민의 손에서 되찾는 것이었고 대체로 성공했다. 정부가 유포한 공포에 미국인은 굴복했다. 9·11 이후 미국에서는 인권과 사생활 보호가 유례가 없을 만큼 퇴보했다.

카트리나 사태 때도 영웅은 시민이었다. 수백, 수천명의 이름 없는 이들이 목숨을 걸고 재난 지역으로 달려가 사람들을 구했다. 젊은이들은 고립된 노약자를 구하기 위해 조력자들을 모았다. 재난 이후에도 자원봉사자 수만명이 멕시코만 연안을 복구하려고 몰려들었다. 반면 공권력은 최악으로 작용했다. 현장에서 약탈과 강간이 자행된다는 헛소문에 속아 지역을 봉쇄하는 통에 무고한 고립자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선량한 시민을 폭도로 오인해 총질을 해댔다. 엘리트 패닉은 인종주의 폭풍을 불렀다. 하지만 카트리나 사태는 미국인을 성찰하게 했다. 이번에는 시민이 승자였다. 공화당 부시 행정부의 오만과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카트리나 사태는 미국에서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는 비약을 만들어냈다.

그때 김재규의 신병을 군에서 빼앗았다면…

우리에게도 재난이 더욱 야만스러운 신질서를 불렀던 아픈 기억이 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살해됐을 때이다. 18년 장기 독재가 갑자기 무너지고 권력 공백 상태가 되었다. 서울에 봄이 찾아왔고 양심수들이 풀려나 민주주의가 만개할 것 같았다. 유력 정치인들이 차기 대권을 차지하기 위한 계산을 하느라 골치가 아플 때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김재규의 신병 확보에 전력을 쏟았다. 그들은 법을 무시하고 김재규를 군사법정에 몰아넣고 입맛대로 요리했다. 변호인들과 함세웅 신부·오태순 신부 등이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김재규 구명 운동을 하자고 호소했으나 외면당했다. 정치인의 계산은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박정희 독재의 앞잡이 노릇을 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 오히려 법의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재규의 거사는 권력욕에 눈이 먼 자의 하극상 사건으로 축소됐고 박정희 정권의 부패와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날 기회가 날아가고 말았다. 신군부는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려던 시민을 죽이고 공포를 확산해 더욱 야만스러운 질서를 구축했다.

정치인과 시민이 힘을 합쳐 김재규의 신병을 군으로부터 빼앗았다면 세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그가 박정희를 살해한 진짜 동기야 어떻든 그의 입을 통해 박정희 독재의 낯 뜨거운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났을 것이다. 변호인들과 접견한 기록을 보면 그는 박정희 뒤에 숨어 온갖 못된 방법으로 치부한 여당의 정치인과 기업인, 낮에만 야당 노릇을 하며 정치 혐오를 퍼뜨리던 ‘사쿠라’들의 실명과 행태를 까발릴 용의가 있었다. 민간 법정에서 이런 진술이 자유롭게 이루어졌다면 박정희 망령은 벌써 30년도 더 전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 딸이 대통령이 되는 일도 없었을 거고.

김재규와 최순실에게는 둘 다 대통령을 죽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명은 진짜로, 한 명은 정치적으로. 두 사람 모두 그 체제의 몸통이기도 했다. 우리가 10·26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뼈아픈 교훈은 그 체제에 부역한 책임이 있는 자들이 사법의 칼자루를 쥐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의 검찰이야말로 박근혜 정부와 한 몸처럼 어울려 돌아갔던 조직이고 그들은 최순실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장 적절하지 못한 집단이다. 그 조직에는 최순실과의 공범도 적지 않을 것 아닌가.

주권자로서, 재난에 언제나 건강하게 대처하는 시민으로서, 보통 사람들이 정치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원칙은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책임지고 처벌받아야 마땅한 자들의 손에 더 이상 최순실을 맡겨놓지 말라는 것이다. 특검이 됐든 특별수사본부가 됐든 야당과 국민의 감시 아래 수사팀부터 새로 짜는 게 옳다. 그녀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광장을 다시 가득 메워야 한다. 우리는 낙원의 불꽃을 볼 기회를 맞았다. 계급장 떼고 어디서부터 이 나라가 잘못됐는지 자유롭게 토론하자. 세월호, 메르스, 북한 핵, 사드, 삼성, 빈부 격차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해보자. 4월 혁명, 광주 민중항쟁, 6월 항쟁, 촛불시위 때 면면히 이어왔던 민주주의 학교를 다시 열자.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폐허가 된 나라를 복구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목숨을 걸고 곤경에 빠진 이들을 돕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현재의 안락을 기꺼이 반납할 이웃이 넘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번 싸움에선 시민이 승자가 되어야 한다. 재난을 도약의 기회로 바꿔보자. 창피해서라도 이대로는 못살겠다.

참고한 활자:<X 이벤트>(반비), <이 폐허를 응시하라>(펜타그램),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시사IN북)


이런 나라가 아니었고 아니어야 한다

왕권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할 때 벌어진 전쟁에서도 오합지졸 프랑스군은 ‘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승리를 거뒀다. 나라에도 국격이 있고 시민에게도 체면이 있다. 왜 싸워야 하는지 아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로 새 세상을 열었다.

김형민 (SBS CNBC 프로듀서) webmaster@sisain.co.kr 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제478호


1789년 7월14일 성난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요새를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봉화가 솟았다. 프랑스 혁명은 세계사적이고 인류사적인 대사건이었지만 그 혁명의 과정은 혼란의 연속이었지. 우여곡절 끝에 혁명의 열기를 피해 프랑스를 탈출하려다가 파리로 붙들려왔던 루이 16세는 1792년 4월, 프랑스 입법회의의 강요에 따라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해. 루이 16세는 선전포고를 하면서도 오스트리아가 이겨주기를 바랐겠지. 그래야 자신이 왕권을 회복할 수 있지 않겠니. 왕의 바람이야 어떻든 프랑스 전역은 전쟁 분위기로 긴장했고 “조국을 구하라”는 혁명정부의 모병관들이 전국으로 파송됐어. 그러나 프랑스의 상황은 절망적이었어. 우선 군대부터가 속 빈 강정이었다. 프랑스군 장교 1만명 중에 6000명이 외국으로 탈출한 데다 일반 병사들은 혁명 분위기를 타고 군대의 생명인 상명하복의 질서 따위는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 지 오래였어. 한편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군대는 기세 좋게 프랑스 국경을 돌파한다. 프랑스 혁명은 삽시간에 위기에 빠졌어. 프로이센군이 파리 턱 앞까지 들이닥치자 프랑스 의회 내에서는 피란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어. 하지만 정치가 당통은 유명한 말로 이를 물리친다. “대담함! 더욱 대담함! 오직 대담함만이 공화국을 구할 것이다.”


ⓒ시사IN 이명익
최순실씨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10월27일 서울 광화문에서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엉성하고 급박하게 만들어진 군대가 연이어 전선으로 출발했어. 프랑스 정부는 심혈을 기울여 이 군대에 하나의 무기를 지급해. 그건 노래 악보였어.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 지난 파리 테러 때 축구장에 운집해 있던 프랑스인들이 목 놓아 불렀던 그 노래. “일어서라 조국의 아들딸들아. 영광의 날은 왔도다. 우리의 압제자가 휘두르는 피에 물든 깃발이 일어섰다. 들리는가. 저 흉악한 적들의 외침이….”

승승장구하던 프로이센군은 발미(Valmy)라는 작은 소읍에서 이 급조된 프랑스군과 마주쳤다. 격렬한 포격전이 오가는 와중에 프로이센군은 돌격을 개시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군복 하나 제대로 통일되지 못한 오합지졸의 프랑스 군대 수천명이, 기계처럼 정확한 동작으로 열병하여 유럽 각국 대사들을 경악시켰던 정예 프로이센군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줏간 주인, 시계수리공, 농부, 세탁부, 구두수선공들로 이루어진 프랑스 군대가 프로이센군의 맹공을 꿋꿋이 버텨낸 거야. 프랑스 군대를 지휘하던 켈레르망은 ‘돌격’ 명령 대신 벼락같은 외침으로 프랑스군을 격동시킨다. “Vive la nation!” ‘프랑스 만세’ 또는 ‘국민 만세’.

지금까지 귀족의 목을 창끝에 꽂으며 그 물건을 훔치는 재미로 혁명에 가담하던 부랑자들, 하늘 같은 왕에게 “돼지야”라고 조롱하는 맛에 통쾌해 어쩔 줄 모르던 농부들, 귀족들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좋았던 파리 빈민굴 사람들은 그 구호에 스스로의 존재와 위치를 깨닫게 돼. 비록 혼란스럽고 어설프고 때로는 피비린내도 무지하게 풍기긴 했으나 자신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각인한 거야. 그 순간 그들은 급료를 받고 싸우는 세계 최정예 군대의 넋을 빼놓는 강력한 군대가 된다. 군복도 통일되지 않고 무기도 변변찮았던 프랑스의 잡동사니 군대는 프로이센군의 콧대를 꺾어버리고 만단다.

이때 프로이센군 진영에는 천재 하나가 종군하고 있었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였다. “비가 와서 땅이 질어진 덕에 포탄이 떨어져 박히기만 하지 폭발하지 않아.” 몇 번씩이나 죽다 살아난 그는 그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어. “아침에 우리는 프랑스 놈들에게 침을 뱉고 먹어치우자는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1792년 프랑스 혁명군이 오스트리아·프로이센 군대를 무찌르고 승리를 거둔 발미 전투.

저항해야 할 때 저항했던 프랑스 국민처럼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아는 이들만큼 용감한 사람들은 없어. 자신의 존재 하나하나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걸 자각한 이들만큼 거침없는 흐름은 없지. 괴테는 그날 그 모습을 본 거야. 혁명을 혐오하던 그는 이렇게 그의 발미 체험을 토로한다. “오늘 이곳으로부터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나니, 우리는 바로 그 탄생의 현장에 서 있다.”

길가에서 술주정하고 시장에서 흥정하고 적당히 사기도 치고 살던 사람들, 농사밖에 모르고 포도주 만드는 일밖에 모르던 이들이 스스로 공화국의 국민임을 자각하고 떨쳐 일어났을 때의 에너지가 새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괴테는 그 천재적 직관으로 알았던 거야. 그리고 괴테의 직관은 오랜 세월을 거쳐 인류의 경험이자 상식이 된다. 일어서야 할 때 일어설 줄 알고, 저항해야 할 때 저항했던 이들은 프랑스 국민처럼 ‘발미의 체험’으로 새 역사의 장을 열어젖혔지만, 분연히 일어서야 할 때 엉거주춤거리고, 맞서야 할 때 등을 돌렸던 이들은 ‘혼미(昏迷)의 체험’ 속에서 역사의 어둠 속을 헤매는 운명을 맞게 됐지.

찬송가의 한 구절을 빌리면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할 때”는 있었고 “참과 거짓이 싸울 때 어느 편에 설 건가”의 질문을 받으며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 때가 온다. 이때 말이 안 되는 상황 앞에서 말하기를 포기하고, 있을 수 없는 일 곁에서 먼 산만 바라보는 이들은 결국 어둠을 택하고, 거짓의 편이 되며, 결국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나라를 비참함에 빠뜨리게 된단다. 결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빠는 오늘날 우리에게 ‘발미’가 닥쳐왔다고 생각해. 아무리 고쳐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아빠는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특별한 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무던한 국민이라 해도 어떻게 저분의 말을 곧이들을 수 있겠으며, 그 권력을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을까. 어떤 인물이, 자신이 임명한 정무수석 비서관조차 열한 달 동안이나 단둘이 만난 적 없는 대통령으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는 이유로 대학부터 문화·체육 등 각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대통령비서관을 수족처럼 부리며 돈을 긁어모았다면, 과연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부를 수 있겠니. 그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상의 명제를 참이라 하겠니.

이런 지경에 처하고도 우리나라와 국민이 이 현실을 용인한다면, 그래서 ‘발미의 체험’을 우리 것으로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우리 후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든, 우리의 통치자가 연산군 같은 폭군이든 진시황제의 아들이자 천하의 바보였던 호해 같은 멍청이든, 그들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머리에 이고 사는 운명을 감수해야 할 거야.

아빠는 아빠와 네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발미를 위해서 11월12일 광화문 앞에 나갈 거야. 프로이센군 앞의 오합지졸 프랑스군처럼 역사를 만들어내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대한민국 국민의 명예 같은 거창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명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빠에게는 체면이 있고 나라에게도 국격이 있어. 적어도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가 아니었고, 아니어야 하며, 아니게 될 거야. 대한민국 국민도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