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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하야'로는 부족하다

일취월장7 2016. 11. 14. 15:12

'박근혜 하야'로는 부족하다

[프레시안 뷰] "정부 폭발, 국가 멜트다운 막으려면…"
    
2016.11.14 10:19:24


누구에게도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최순실이라는 개인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며 온갖 사익을 챙긴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보도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과 측근, 대기업이 얽힌 더러운 비리들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여야가 몇 년 동안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방임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혐오와 차별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서민들을 위한 오바마 케어 정책을 중단하고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의 정책 공약을 내세우고 말이다. 그는 수십 개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재벌, 금수저다. 선거 이후 몇몇 미국인들은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작동 불능 민주주의 

지난 며칠간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는 '미국은 무능하고 한국은 더 무능하다'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더 나아가 '차라리 왕정이 낫겠다. 민주주의는 멈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공화국 시민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작동을 멈춘 것은 이미 오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낮은 득표에도 불구하고 미국 특유의 선거인단 제도로 인해 당선되었다. 그러자 한 미국 시민이 'Not my president'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같은 피켓을 박근혜 씨에게도 내밀고 싶다.  


트럼프도, 박근혜도 이명박도 과반의 득표율을 얻지 못한 채 한 나라의 수장이 되었다. 미국과 한국의 선거 제도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임은 이미 여러 번 거론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40%만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40%도 되지 않는 정당 득표율의 정당이 국회 의석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거대 정당들은 기득권화되고 소수의 정치인이 권력을 독점하다 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 


새누리당 김무성은 본인 입으로 "새누리당 의원들 중 최순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그들에게 박근혜와 최순실의 결탁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박근혜에게 탈당을 요구한다. 얼마나 뻔뻔한가. 본인은, 새누리당은 마치 아무 관련이 없는 듯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본인 말처럼 새누리당이 이미 알고 있는데도 내버려 뒀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도 이런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후보 시절 당시 이미 문제 제기 받은 사항에 대해 야당 의원이라고 몰랐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하야하고 거대 정당들만 참여한 거국중립내각이 이루어져도 비리와 부패가 청산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누군가는 비선 실세를 하고 다른 사람은 기득권을 잡을 것이다. 국가안보와 경제를 운운하며 해온 모든 것이 결국 쇼이며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정계, 재계, 사법부, 언론. 박근혜 한 명 하야한다고 해서 변하기에는 너무나 견고한 결탁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다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의 새 판을 짜야 한다. 


누가 대한민국을 다스리는가? 

어쩌면 최순실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내 태블릿 피시만 잘 관리했다면." 이라고 말이다.  


"얼굴색을 감추며 꼬리 자르기를 하는 정치인들이나 기득권층은 나보다 더 꼼꼼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았던 걸까. 적당히 할 걸"이라며 말이다.  


실제로 나라 공직을 맡으면서 한 몫 단단히 챙기는 사람은 그간 자주 볼 수 있지 않았는가. 뇌물을 주고 정치적 대가를 받아온 대기업은 지금까지도 안전지대에 있지 않은가. 박근혜 게이트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근혜와 사건에 연류된 집단의 처벌뿐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고쳐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첫 선거는 2002년 대선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엄마가 물었다. "지예야, 누구 뽑을까?" 나는 단박에 "노무현 아저씨"라고 말했다. 이유는 "착해 보여서"였다. 엄마가 어디에 투표하셨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말한 아저씨가 뽑혔다는 것에 기뻐했던 것은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2010년 지선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지지한 정당이나 후보의 선거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나라의 결정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누가 결정 권한을 가졌는가. 누가 정치권력을 갖는가. 바로 소수의 기득권층이다.

정치권력을 시민에게로 

박근혜 정부 시절뿐 아니라 이명박 때부터 기괴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멀쩡히 있는 강에 삽질을 하고, 전력은 충분한데도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원전 부실 부품 납품 비리, 세월호 사건,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문제, 평창올림픽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듯하다. 


현재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 기후변화 시대에 봉착해 있다. 


이럴 때까지 정치권은 어떠했나. 사회 약자들의 고통에 손 내밀지 않고 강정마을, 밀양 같은 현장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매번 변화니 혁신이니 운운하면서 결국은 기득권 정당과 정치인이 돌아가며 권력을 독점하길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 약자들은 사회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소득 불평등은 점점 커지고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는 아직도 자리 못 잡고 있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지만,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찾지 못한다.  


소수의 기득권층이 지배하는 껍데기 민주주의로는 시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주주의 작동을 불능으로 만드는 잘못된 정치판부터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엘리트에 권력을 위임한다는 뜻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소수가 가지고 있는 정치권력을 해체하고 시민에게 돌려놓아야 한다.  

권력을 해체하자 


비례민주주의연대 등의 시민단체들이 먼저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정당이 얻은 득표수만큼 그 정당에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 


양당제(다수제 민주주의)에서 다당제(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정치 변화. 


생각해보라.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자영업자, 동물권 등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의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선거가 정치가 재밌을 것 같다. 또한, 더 많은 시민 주체들이 더 많은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제도와 참여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는 대의 민주주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보장한다. 대표적으로는 국민/주민발의운동과 국민/주민소환 제도, 참여 예산제 등이 있다. 지금처럼 권력자가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을 때 국민이 소환하여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직접민주주의 구조가 있어야만 시민들이 중앙, 지방정부의 의사 결정에 끼치는 영향력이 지금보다 커질 수 있다.  


현재 대통령에게 과하게 몰려있는 권력도 분산시켜야 한다. 일단 당선만 되면 왕이 되어 버리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줄여야 한다. 

시민윤리위원회를 열자 


지난해 조한혜정 선생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 선망국이다"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선망국 대한민국을 구할 영웅적 정치인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인물은 없다. 


이 난제를 해결할 이는 나와 당신, 우리 시민뿐이다. 박근혜 게이트를 넘어서 이제 우리가 대한민국 전체 사회 기조를 재검토해야 하다.  


독일은 먼 나라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것을 보면서 '17인의 윤리 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11시간에 걸쳐 독일 원전 사업의 방향에 관해 토론했다. 공영방송은 이 토론을 독일 전역에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17인 윤리위원회' 위원 외에도 그린피스, 태양광 에너지 관련 교수, 핵공학자 등 30명의 외부 전문가가 참석했다. 텔레비전을 본 시민들은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의견을 내며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원전 완전 폐기를 결정 내렸다.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대기업, 정치인, 검찰, 언론 심지어 대통령까지 불법에 가담한 것을 생생히 보고 있다. 눈앞에서 대한민국 정부 폭발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제 더 이상의 국가 멜트다운을 막기 위해 지식인, 정치인, 일반 시민 할 것 없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리야말로 정치권력을 어떻게 해체하여, 시민에게 돌려놓을지 논의하는 시민 정치윤리위원회와 대국민 토론이 열려야 하는 것 아닐까. 



'국민 통합' 공약 실천한 박근혜, 하야하라!

[홍일표의 시민/풍/파] 대통령은 몰랐고, 우리는 알았던 우리나라
    
2016.11.14 09:40:16


"우리가 몰랐던 우리나라(Our unknown country)."

미국 대선이 트럼프 승리로 치닫던 밤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 대학교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의 대표 칼럼니스트 그리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확신했던 그였기에 트럼프 당선의 충격과 좌절이 정말 컸던 모양이다.


그는 글에서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읽지 못했음에 대한 후회를 토로했다. 도시 외곽 백인 남성들이 "우리의 이상"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끔직한 폭로의 밤"이 왔음을 절망스러워 했다. 선거가 끝났지만 "당신은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는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트럼프 시대'가 가져 올 후퇴와 추락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비단 미국(민)만의 것도 아니다. 궁금하다. 크루그먼은 과연 '그의 나라'에 대해 몰랐을까? 트럼프에 열광한 '그의 이웃'에 대해 정말 몰랐을까?


미국 최고 권위의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로버트 퍼트남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우리 아이들 : 위기의 아메리칸 드림>(한국에선 <우리 아이들 :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로 2016년 번역, 출간되었다)을 작년에 출간했다. 그는 '사회 자본(social capital)' 개념을 사용해 미국 시민 사회의 변동과 쇠퇴를 분석했고 그의 저서 <나 홀로 볼링>은 이미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이다. 

퍼트남은 자신의 고향 오하이오 주 포트클린턴에 대한 깊이 있는 양적·질적 연구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미국 사회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그가 분석한 오하이오 주는 미국 대선에서 중요하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오하이오에서 승리한 후보가 모두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역시 그곳에서 승리했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퍼트남은 이 책에서 "우리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그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들이 바로 폴 크루그먼이 몰랐다고 말한 '그의 이웃'이다. 


폴 크루그먼이 퍼트남의 책을 읽지 않았을 리 없다. 힐러리도 '다른 사람'들을 몰랐을 리 없다. 힐러리 곁에는 더욱이 버니 샌더스도 있었고, 엘리자베스 워렌도 있었고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있었다. 그들이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미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얼마나 강렬한지 모를 리 없다. 그들 모두 그것을 말했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샌더스가 아니라 힐러리를 택했다. 트럼프에 대한 불안만큼 샌더스에 대한 불신이 컸던 셈이다. 민주당은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힐러리를 선택했고, 힐러리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트럼프에게 진 것이다. 크루그먼은 "이 나라가 인종적 편견과 여성 혐오에서 한참 벗어났다고 할 순 없지만 훨씬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사회가 됐다고 여겼는데, 선거 결과는 '우리'가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뒤늦게 한탄했다. '설마' 했다는 고백이다. 하지만 어떤 '설마'도 얼마든지 실현될 수 있음을 한국 사회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몰랐던 우리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은 한국에서 먼저 나왔어야 할 법하다. '압축적 근대화'라 불릴 정도로 한국 사회의 빠른 근대화 과정과 결과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그간 적지 않았다. '근대의 공과'를 넘어서고자 하는 '탈근대'나 '포스트모던'에 대한 문제의식은 학술 용어만은 아닐 정도였다. 그랬기에 2016년 한국에서 대통령과 연계해서 '주술'과 '무속', '사이비 종교'와 '굿', '교주'와 '무당'이라는 단어들이 난무할 것을 상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비선 실세'라는 말은 오히려 근대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들릴 지경이다. 

막스 베버가 말했던 '탈주술화로서 근대화' 개념을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지금 '근대 이전'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강고할 줄 알았던 민주주의와 관료제 모두 취약하기 그지없음도 확인되었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대통령만이 아니라,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것처럼 여겼던 제도와 질서 모두가 '껍데기'에 불과했다. 최순실에 조종되었던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멈추질 않는다. 정말 "우리가 몰랐던 우리나라"가 아닐 수 없다. 아직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을 기대하기 만무하다. 국민들은 참담함과 부끄러움, 배신감과 불안함이 뒤섞인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잠이 보약"이라며 여전히 밝은 표정과 맑은 눈을 자랑하는 '기괴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보다도 '나라 사랑'과 '애국심'을 강조했다. 지금 상황을 이유로 대통령의 그런 진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통령의 나라"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민이 서로 '다른 나라'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았던 우리나라"는 어디에 있나? 그것은 광장에 있었고, 거리에 있었다. 1960년에 있었고, 1987년, 2002년, 2004년, 2008년에 있었던 그곳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1월 4일 대국민 담화에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자괴감이 든다"며 불편한 심경을 그대로 토로했다. 2016년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꿈꾸고 사랑했던 나라'가 아닌 셈이다. 지난 12일 밤에는 100만 개가 넘는 촛불이 광장과 거리를 뒤덮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새누리는 해체하라"는 구호가 전국에서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춤을 추었고,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다. 남녀노소, 경향 각지의 예외가 없었다. '헬조선'에서 날마다 고통 받던 '우리 국민들'과 '우리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되찾겠다고 광장과 거리로 모였다.


"우리가 알았던 나라",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는 바로 거기 있었다.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나. 자신감이 생긴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결론은 명확하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뽑았다. '다른 나라'의 대통령은 그 자리에 있을 이유도, 여유도 없다. 그래서 '하야'는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그것이야말로, 의도치 않게 이뤄낸 '국민대통합'에 이은 대통령의 마지막 공약이행이 되어야 한다.  


▲ 12일 촛불 집회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민주당, 박근혜와 '타협'할 생각인가?

[서리풀 논평] 11월 12일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2016.11.14 07:48:29


3주째 같은 일을 두고 '정치' 논평을 써야 하는 상황이 괴롭다. 정치를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런 중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본래 책임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대표적인 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는 하나, 미국이 그냥 남의 나라인가. 그토록 '혈맹'을 강조해 온 한국의 모든 것이 그냥 떨어져 있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도 영향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 수출과 사드, 그리고 의료 보험에 이르기까지, 공부하고 살펴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예산도 중요한 때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서 보듯이, 예산은 시시콜콜 생활이고 이해관계다. 요구하고 주장해야, 그리고 민주적이어야 그나마 눈곱만큼이라도 공공성이 생긴다. 그 중요한 것에도 눈길을 줄 여유를 찾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중단된 것이 대통령 퇴진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어느 것 한 가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없으니, 대통령이 물러나는 도리밖에 없다. 어정쩡한 중간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생'이 살기 위해서는 이 길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물러나야 하는 이유. 나랏일을 챙기고 길을 잡기에는 모든 정치적 권위를 잃은 상태다. 국방과 외교는 계속 담당한다? 내부와 외부가 모두 믿지 않으니, 불가능하다. 2선 후퇴, 책임 총리와 거국 중립 내각? 여당과 야당이 100% 국민의 위임을 받아야 작동할 수 있으나, 이들 또한 정치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니 불안과 불신이 지속할 것이다. 그보다는 한 걸음 더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요구는 명확하나 방법과 경로가 흐릿하다. 100만 집회가 끝났으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연구소도 지난 토요일 거리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다른 것은 언론이 보도했으니 그만두고,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너른 틈을 인식해야 했다. 시민의 요구는 명확하고 강력하지만, 대의 민주주의 체제는 이를 전혀 대표하지 못하는 상태. 그리고 계속될 교착 상태. 

우리는 현재 상황을 이렇게 판단한다. 많은 이에게 익숙할, 권력의 크기와 균형이라는 관점이다. 

첫째, 지금까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보인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 생각하면, 권력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닌가? 물러나란다고 순순히 말을 들을 것이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권력을 놓으면 곧 정치적, 사회적 '죽음'이라고 생각할 텐데, 그들의 반응과 행동은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모두 아는 대로, 권력의 포기는 반성, 성찰, 결단할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 힘으로 압박하지 않으면 끝까지, 온갖 핑계를 동원해서 버틸 것이 뻔하다.

둘째, 민주당은 '안전 운행' 모드다. 대선에서 이길 확률이 높다고 보고 6개월쯤 더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승부수를 던지기보다는 패착만 피하자는 것처럼 보인다. 막다른 길이 아니면, 탄핵 소추와 같은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약간만 모양을 더 갖추면 민주당은 동의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명목으로라도 2선 후퇴를 선언하고 국회를 중심으로 (모양만?) '거국' 내각을 구성하는 안에 합의하는 경우다. 이번 주에라도 일은 이렇게 '풀릴' 수 있다. 

이런 타협은 2중, 3중으로 문제다.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물론, 대의제 민주주의가 목표로 하는 대표성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내각에 어떤 사람이 장관을 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선언이니 합의니 하는 것으로는 헌법과 법률의 근거가 약하니 현실 변화에도 견디기 어렵다. 박근혜 정권이 (조금이라도) 지지를 회복하는 대로 얼마든지 '반동'에 나설 수 있다면, 중립이니 거국이니 하는 것은 불완전한 균형에 지나지 않는다. 반동을 지원할 기존 권력은 충분히 강하다. 

셋째, 시민 사회는 자력으로 변화를 끌어내기에 역부족이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체제 바깥에서 체제를 압박, 침투해야 하는 것이 본질적 한계다. 축적된 힘이 충분치 않고 단독으로는 정치적 실천이 제한된다는 점도 문제다. 구조에서 비롯된 이런 상황을 금방 역전할 수는 없다. 


이런 때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의 동력을 유지하면서도 제도 권력을 압박하고 변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확대와 공고화를 잣대로, 시민 각자가 직접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결과다.

첫째, 다시 탄핵(소추)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떠나, 탄핵은 민주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파괴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공식' 절차이다.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체화하며 제도화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임무다. 이 자체가 가치라 해야 한다. 

탄핵은 또한 정치 공간이다. 이제 막 100만이 모였으니 다음에는 훨씬 더 큰 규모가 아니면 '임팩트'를 보장할 수 없다. 탄핵 소추는 시민의 열기가 유지되고 커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다. "시민이 실천하는 '거리 민주주의'는 국가 권력 내부의 정치적 공간(탄핵 소추)과 결합해야 살아나고 자라날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너지 또는 시민 권력의 부분적 제도화"가 필요하다. (☞관련 기사 : '탄핵'을 조직해야 한다) 

둘째, 탄핵 소추를 위해, 유권자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대선 출마 예상자들에게 직접 압력을 가해야 한다. 미국식 정치 운동이라 해도 좋다. 전화, 이메일, 블로그, SNS, 홈 페이지 게시판, 직접 방문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당신과 당신이 소속된 정당이 탄핵에 나서라고 직접 요구해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음에 (자기) 선거에서 지는 것이다. 시민이 곧 유권자라는 평범한 사실에서 출발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겠다는 경고가 가장 큰 '가용' 권력이다. 보장 받은 대선 주자가 있을 수 없다. 시민이 가진 권력이 '대권' 주자나 정당이 가진 알량한 권력을 이겨야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셋째, 시민 권력의 힘을 다시 결집하고 더 크게 드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 총파업'을 조직할 것을 (지난주에 이어) 다시 제안한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어지럽게 한 결과 국민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도 그 책임을 지지 않으니, 국민이 표시할 수 있는 적극적 항의는 국민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잠시 중단하는 것이다.

국민 '파업'의 권리는 직장, 학교, 가게를 가리지 않고, 생산과 소비를 망라하며, 공공과 민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정을 마비시켰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희생해서 스스로 비우고 멈춘다. 시민이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은 생산하고 소비하는 물적 토대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비움으로써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역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