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삼성엔 ‘삼성전(前)자’와 삼성후(後)자’만 있다”

일취월장7 2016. 10. 19. 09:53


“삼성엔 ‘삼성전(前)자’와 삼성후(後)자’만 있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 이후 삼성 조직문화 비판 쏟아져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10.19(수) 08:00:33 | 1409호


국내외 언론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품질관리의 대명사’ 삼성이 왜 ‘갤럭시노트7(갤노트7) 단종(斷種)’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는지 다각도로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보도를 두고 일부에서는 해외 언론들의 ‘삼성 죽이기’가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의도적인 흠집내기보다는 삼성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 다시 말해 매출 뒤에 가려진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는 모습이다.

 

8월19일 갤노트7이 공식 출시됐을 때만 해도 삼성 내부는 한껏 고무돼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해 해외 언론의 반응도 ‘2016년 하반기 가장 기대되는 제품’ ‘정제된 디자인과 대화면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 것’이라는 등 찬사 일색이었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도 국내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에 냉소적이었던 미국 언론들도 올해 최고의 패블릿(소형 태블릿), 기대를 뛰어넘는 제품, 가장 아름다운 제품이라고 평가해 줬다”며 한껏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갤노트7은 완성도 높은 디자인에 홍채인식·방수방진·모바일결제·S펜 등 혁신 기술이 총망라돼 있었다. 스마트폰 생태계에서 혁신을 주도해 오던 애플마저 최근 눈에 띌 만한 혁신 기술을 선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삼성이 2~3가지가 복합된 최첨단 스마트폰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기술 업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삼성의 조직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출장을 마치고 2015년 3월29일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장을 통해 귀국했다. © 연합뉴스

삼성의 조직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출장을 마치고 2015년 3월29일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장을 통해 귀국했다. © 연합뉴스


 

그룹 내 “전자의 영광을 가리지 마라” 분위기

 

하지만 출시 두 달도 못 돼 혁신 기술이 총망라된 갤노트7은 삼성전자에 큰 상처를 안겼다. 왜일까? 해외 언론을 비롯해 삼성 내부에서는 그 원인을 군대와 같은(Militaristic) ‘상명하복(上命下服)’식 기업문화에서 찾는다. 단종이 공식 발표되자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앱의 삼성 게시판에는 이러한 조직문화를 성토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예고된 일이었다는 듯, 한 직원은 “너무 짧은 신제품 출시 준비, 애플보다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강박증이 만든 참사”라고 꼬집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조직 내 잠복돼 있던 이른바 ‘삼성전자 적자(嫡子)론’이 표면화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그동안 삼성그룹에는 ‘삼성전(前)자’와 ‘삼성후(後)자’만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삼성전자가 그룹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통제할 브레이크가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전(電)’을 ‘전(前)’으로 해석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삼성그룹에서 고위 임원을 지낸 A씨는 “계열사 회의에 가면 대놓고 ‘전자의 영광을 가리지 마라’며 모든 의사결정을 삼성전자가 주도했다. 북한에 ‘선군(先軍)정치’가 있다면, 삼성에는 ‘선전(先電)정치’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9월초 1차 리콜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삼성SDI 배터리를 발열(發熱) 원인으로 지목한 것 역시 삼성그룹 내 보이지 않는 ‘갑을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차 리콜 결정 이후 삼성을 비롯해 국내 언론들은 “이번 사태는 삼성SDI가 기술력이 떨어지는 각형 기술에만 집착하다 생긴 사태”라며 문제 원인을 슬그머니 삼성SDI 쪽으로 떠넘겼다. 한 대형 증권사 전자부품 담당 애널리스트는 “중국 ATL 제품으로 교체했는데도 발열이 계속된 것은 결국 원인이 배터리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성급하게 책임을 삼성SDI 쪽으로 돌리면서 계열사 브랜드에 먹칠을 했다”고 꼬집었다. 김지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도 “삼성SDI는 전통적으로 각형 기술의 강자고, 폴리머형 배터리를 생산한 지는 1년밖에 안 됐다. 얇은 휴대폰을 고객들이 선호하다 보니 폴리머형이 대세가 됐지만, 전기차는 여전히 각형 기술이 대세다. 뒤늦게나마 삼성SDI 기술력에 대한 억울함이 풀린 것은 다행”이라고 지적했다. 단종 조치로 원인이 배터리셀이 아니라 설계 결함일 수 있다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삼성의 기술력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료: ‘한국2만기업연구소’, 2015년 개별 제무제표 기준 ⓒ 시사저널

자료: ‘한국2만기업연구소’, 2015년 개별 제무제표 기준 ⓒ 시사저널


원인 정확히 못 찾고 대응만 빨라 화 키워

 

이러다 보니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이번 갤노트7은 개발 초기부터 사실상 이 부회장이 진두지휘한 작품이다. 그런 야심작이 출시 두 달 만에 단종 조치됐기에 삼성 내부의 충격은 더하다. 해외 언론이 삼성의 단종 선언을 보도하면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점은 ‘왜 실수를 반복했느냐’다. 관리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던 삼성의 기업문화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해외 언론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두 번의 실수는 ‘1차 리콜 결정, 2차 단종 결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수백 명의 삼성 엔지니어들은 아직도 왜 갤노트7이 이상 발열했는지 모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원인을 찾지 못했는데도 브랜드 가치만을 생각해 성급하게 리콜을 결정했으며, 끝내 원인을 찾지 못하자 단종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일선 현장에 있는 엔지니어와 경영진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가정은 △엔지니어의 과학적 판단이 경영진에게 제대로 보고됐는지 △보고는 제대로 됐는데, 이를 경영진이 묵살하거나 무시했는지 △자체 기술력이 한참 떨어지는지 등 3가지로 요약된다. IT 전문가인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은 “9월초 발열 사태가 터졌을 때 판매를 중지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인을 정확하게 찾은 뒤,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해외 언론의 시각도 비슷하다. 뒤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또 사상 최고의 실적에 도취되면서 삼성의 ‘조기 경보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품질을 중시하는 전문경영인인 윤종용-진대제-이윤우 라인이 퇴장하고, 마케팅 전문가인 최지성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품질보다는 원가와 판매에 대한 조직 내 관심이 커졌다는 주장이다. 윤종용-진대제-이윤우 라인은 모두 전자공학을 전공한 기술 경영인이다. 애니콜 신화를 만든 이기태 전 사장도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반면 현재 그룹 ‘2인자’로 통하는 최지성 부회장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에서는 주로 판매부문에서 근무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핵심 부품인 터치IC, 터치스크린 패널, NFC 등을 모두 자체 제작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이번에 문제가 된 삼성SDI 배터리도 삼성이 중국 ATL 수준으로 납품가를 요구하다 보니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국 제품의 경우 국산보다 20~30% 값이 싸다고 말한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에이스 투수도 매일 던지면 혹사되기 마련”이라면서 “스피드도 좋지만 이제는 품질과 기술이라는 삼성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라고 조언했다.

 

이상 발열 원인을 찾지 못해 최종 단종 처리된 삼성 갤럭시노트7 
© AP 연합, 시사저널 미술팀

이상 발열 원인을 찾지 못해 최종 단종 처리된 삼성 갤럭시노트7
© AP 연합, 시사저널 미술팀


‘삼성=명품 메이커’ 전략에 심각한 타격

 

삼성의 위기는 대한민국 산업 전체의 위기다. 이번 갤노트7 문제를 하나의 제품 결함으로 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2만기업연구소’가 분석한 ‘국내 1만개 기업 매출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경제에서 삼성전자(2015년 기준)가 차지하는 비중은 7.1%였다. 오일선 한국2만기업연구소장은 “단순히 매출 수치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가 무너진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침몰할 정도로 약골(弱骨)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속해 있는 전자업종의 영향력은 317조9977억원으로 16.7%를 차지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부진이 자칫 생태계 전체를 파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13년 경제개혁연구소가 분석한 자료도 참고할 만하다. 경제력 집중도를 분석한 자료에서 경제개혁연구소는 당시 삼성그룹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6.8%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삼성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이니만큼 삼성전자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 8% 이상이라는 뜻이다. 시가총액으로 환산할 경우 10월11일 종가 기준, 삼성전자가 코스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에 이른다. 10월11일 삼성전자가 갤노트7 단종을 공식 발표한 직후 코스피는 전날보다 1.21% 하락했다. 삼성전자 주가만 8% 떨어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으며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약 19조원이 하루 만에 우리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갔다.

 

결국 지금으로서는 삼성이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일단 관련 업계에서는 삼성이 신속하게 소비자에게 용서를 구한 것에 대해 합격점을 준다. 해외 언론은 이번 조치가 빠른 시간 내 소비자 신뢰로 이어질 경우 ‘1982년 타이레놀 파동’과 비슷한 수준의 성공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타이레놀 제조사인 존슨앤존슨은 제품에 대한 100% 보상을 결정해 단기적으로는 손실을 봤지만, 곧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 1년 만에 과거 시장점유율을 회복했다.

 

금융시장 역시 “삼성이 선제적으로 잘 대응했다”며 합격점을 주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10월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10% 급락했지만 13일 반등한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주요 증권사들도 ‘맞을 매를 먼저 맞다’(동부증권), ‘시간이 흐르면 플러스 요인이 마이너스 요인 상쇄 전망’(신영증권), ‘갤노트7 단종 악재, 이미 주가에 반영’(한화투자증권) 등의 보고서를 통해 조기 회복을 예상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당초 리콜 보상비용 등을 더해 갤노트7의 손실액을 1조원 안팎으로 추정했지만, 이번 단종 선언으로 손실액이 2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정할 수 있다. 가장 염려되는 점은 갤노트7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가 그동안 삼성이 추구해 온 ‘삼성=명품 메이커’라는 브랜드 전략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경우다. 또 갤노트7 사태가 휴대폰을 비롯해 TV·냉장고·세탁기 등 삼성의 다른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릴 경우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의 몰락》 《이건희전(傳)》을 쓴 삼성그룹 출신의 칼럼니스트 겸 산업분석가 심정택씨는 “신수종인 바이오산업의 밑바탕에는 ‘생명’과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깔려 있는데, 이번 조치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 경우 다른 산업으로까지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삼성 스스로가 외부의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산업계에서 삼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갤노트7 단종 조치 이후 주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악재가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며 환영 일색을 보이는 것은 ‘독주(獨走)’하다시피 했던 삼성전자에는 도리어 ‘독주(毒酒)’가 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반도체 부문이 회계 지표에 포함되기 때문에 단기 측면에서는 이번 단종 조치가 큰 문제는 아니다”면서도 “이번 조치는 오너(회장), 전문경영인(사장단), 미래전략실(직원) 등 그동안 삼성을 지탱해 온 3대 축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점에서 간단하게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준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신경영을 선포한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같은 수준의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총수 한 명이 그룹 전체의 명운을 결정하는 지금의 의사결정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사립대학 교수 역시 “반도체 실적 역시 환율이 만든 착시현상이기 때문에 단기 실적에 고무돼 이 문제를 안일하게 처리할 경우 조만간 삼성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 “삼성 무너지면 제2의 IMF 올 것”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언젠가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경영진이 또다시 오판(誤判)하면 삼성은 2010년 초반에 몰락했던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는 핀란드 국민기업이었던 노키아의 몰락 과정과 삼성전자가 지금 처한 현실이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노키아는 한때 핀란드 수출 물량의 20%를 책임지며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를 점유한 세계 최대 메이커였다. 하지만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박 교수는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자 노키아 내부는 신개념 스마트폰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다. 특히 CEO(최고경영자)들의 마음이 급해지면서 조직 내 ‘특정일까지 새 제품을 만들어라’는 주문이 많았는데, 당시 중간관리자들은 이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가능하다’고 보고했으며, 출시일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고 몰락 배경을 설명했다.

 

노키아 역시 지금의 삼성처럼 매출과 영업이익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위험의 씨앗이 생겨났다는 게 박 교수의 판단이다. 박 교수는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올 2월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더 나아가 이번 갤럭시노트7 사태를 보면서, 삼성의 문제가 노키아보다 더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노키아 중간관리자는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출시를 미뤘지만, 삼성은 군대문화와 유교문화가 결합돼 있어 준비가 미흡한 상태인데도 신제품을 내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가정이지만, 박 교수는 삼성전자가 부도날 경우 3%대에 있는 우리나라 실업률이 7%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 교수는 “순환출자구조에 따라 삼성전자 부실은 삼성물산·삼성생명 등 다른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쳐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보다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문한 해법은 근본적인 처방이다. 박 교수는 “스마트폰 화형식과 같은 이벤트성 충격요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부품기업의 기술혁신을 유도해 동반산업이 동시에 발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개별기업의 흥망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부 차원의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면서 “지금처럼 특정기업에 의존하는 산업 생태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연쇄폭탄을 줄줄이 달고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2016 차세대 리더 - 경제> 삼성·현대차 3세 리더십 시험대 올랐다

이재용·정의선 부회장, 3년 연속 1·2위 최태원·이해진·이부진 順 이어져

이석 기자 ㅣ ls@sisapress.com | 승인 2016.10.18(화) 14:20:43 | 1409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독주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시사저널은 2008년부터 차세대 리더 조사를 시작했다. 지난 8년간 이 부회장은 한 번도 경제 분야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000명 중 800명(3명 중복응답)의 전문가들이 경제 분야 차세대 리더로 이 부회장을 꼽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부회장의 지목률은 상승하고 있다. 2013년 19%에서 2014년 62.7%, 2015년 72%로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올해도 77.8%로 이 부회장의 지목률이 전년 대비 5.8%포인트 증가했다. 그 만큼 이 부회장의 영향력과 차세대 리더로서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 부회장은 병상에 있는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삼성그룹의 총수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지배구조를 뜯어고쳤다. 이 부회장이 대주주인 삼성SDS와 에버랜드(현 삼성물산)가 상장에 성공했다. 이 부회장의 지분 가치는 현재 7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켰다.

 

1위  이재용 - 1968년생. 2014년 5월부터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삼성을 이끌고 있다. © 일러스트 정찬동

1위 이재용 - 1968년생. 2014년 5월부터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삼성을 이끌고 있다. © 일러스트 정찬동


 

잇따른 사고에도 이재용 부회장 영향력 건재 

 

이 부회장은 10월27일로 예정된 삼성전자 임시주총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삼성전자 주주에게 등기이사 선임 안건에 대한 찬성을 권고했다. 삼성전자 지분 8.38%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최근 의결권 행사를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변이 없는 한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건은 통과될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부회장 자신의 능력이다. 그동안 물음표로 남았던 이 부회장이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 최근 불거진 갤럭시노트7 단종(斷種) 사태는 리더십을 판단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10월12일 3분기 잠정실적 정정공시를 통해 갤럭시노트7 단종에 따른 손실 2조6000억원을 선반영했다고 발표했다. 4분기 손실과 협력업체 피해까지 감안하면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1등 브랜드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문제의 원인으로 삼성의 조직 문화나 지배구조 문제까지 거론될 정도다. 총수 역할을 해 온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의 조직문화와 지배구조를 환골탈태해야 한다”며 “다른 대안이 없다면 그 주체는 이 부회장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에 이어 2위(13.1%)를 차지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정 부회장은 2005년 기아차 사장에 취임했다. 기아차가 만성 적자에 허덕일 때였다. 그는 ‘디자인 경영’을 선언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가받던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수장으로 영입했고, 전면부에 ‘호랑이코’ 그릴을 도입해 패밀리룩을 완성시켰다. 브랜드 역시 K시리즈로 일원화시켰다. 2008년 기아차는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09년에는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어섰고, 2010년에는 처음으로 당기순이익이 2조원대를 돌파했다. 정 부회장 역시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 부회장은 2008년 현대차로 옮겨와서 동일한 전략을 구사했다. 이른바 ‘i시리즈’를 통해 현대차의 패밀리룩을 완성했다. 육각형 모양의 헥사고날 그릴은 현대차의 상징이 됐다. 특히 정 부회장은 유럽 시장에 공을 들였다. 자동차 전시회나 신차 발표회 때마다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직접 무대에 올라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지난 2008년까지 현대차의 유럽시장 점유율은 1.8%에 머물렀다. 2010년 2%대를 돌파했다. 최근 주춤하고 있지만 ‘마의 3%’를 현재 돌파한 상태다.

 

2위  정의선 - 1970년생. 2008년 현대차로 자리를 옮겨 활발한 경영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2위 정의선 - 1970년생. 2008년 현대차로 자리를 옮겨 활발한 경영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잘나가던 정 부회장 역시 최근 위기에 빠졌다. 내부 직원의 폭로로 시작된 품질 논란과 노조 파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1월 중순 선보일 예정이었던 신형 그랜저는 파업 여파로 시험생산에 돌입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감소한 1조1000억원을 밑돌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현대차의 지배구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재계 1위인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과 2위인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부회장이 어떻게 이 위기를 돌파할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3위는 최태원 SK그룹 회장(7.6%)이 차지했다. 최 회장은 2012년 1월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이후 법정구속돼 실형을 살다가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다. 최 회장은 지난 1년간 공격적 투자를 단행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D램 메모리 반도체 공장 준공을 계기로 SK하이닉스에 10년간 46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3월 그룹 지주사인 ㈜SK의 등기이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지난해 4위에서 올해 3위로 순위가 한 계단 상승했다. 이 밖에도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각각 5위(5.3%)와 6위(5.0%)를 차지했다. 순위는 지난해와 동일했다.

 


 

김상헌·임지훈, 첫 10위권 진입 눈길

 

올해 조사에서 벤처 기업가들도 대거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상헌 네이버 대표이사, 임지훈 카카오 대표이사,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등이 각각 4위(5.4%)와 7위(4.7%), 8위(3.7%), 9위(1.6%), 10위(1.4%)를 차지했다. 이 의장은 벤처 1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1999년 삼성SDS의 사내 벤처 ‘네이버컴’을 갖고 독립해 현재의 네이버를 일궈냈다. 덕분에 지난해 공동 10위에서 올해 6계단이나 상승한 4위를 차지했다. 김상헌 대표와 임지훈 대표는 올해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했다. 김범수 의장은 반대다. 지난해 3위에서 올해 7위로 순위가 4계단이나 하락했다. 최근 카카오의 실적이 호전되지 않은 결과로 풀이된다. 김택진 대표도 지난해 7위에서 올해 10위로 하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