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이건희 성매매'

일취월장7 2016. 8. 4. 11:32

"KBS 남았으면 '이건희 성매매' 보도 못 했죠"

2016.07.22 19:09:32


[인터뷰]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보도 하나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뉴스타파>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 보도다. <뉴스타파>의 또 다른 이름인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에 걸맞게, 3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탐사 보도한 결과물이다. 대다수 언론사의 대표적 성역인 삼성,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민낯을 <뉴스타파>는 거침없이 들춰냈다.

성역 없는 보도로 대중의 찬사를 받고 있는 이건희 성매매 의혹 보도 취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역 있는 보도'로 수년째 지탄 받고 있는 한국방송공사(KBS) 출신 기자들이다. 이 가운데 심인보 기자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보도 관련 청와대 개입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KBS기자협회에서 보도개입 진상조사단 간사를 지낸 바 있다. 

< 추적60분> '천안함의 의문' 편 제작에 참여했고,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십알단'고발 기사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는 등 KBS에서 활약을 펼치던 그는 결국 2014년, 추악하게 무너져 내리는 공영 방송을 뒤로 한 채 <뉴스타파>로 적을 옮겼다.

심 기자는 22일 <프레시안>과 한 전화 통화에서 "KBS에 남았으면 이건희 성매매 의혹 보도는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KBS 소속 일원이었다면 취재는 물론이고, 제보조차 받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이날, KBS는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 관련 기사를 올렸다가, 삭제했다가, 다시 석 줄짜리 아주 짧은 기사로 다시 올려 논란을 낳았다. 심 기자는 "KBS 후배들이 '이제는 정치 권력뿐 아니라 자본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구나'라고 하더라"며 한탄했다.

다음은 심 기자에게서 들은 이건희 회장 성매매 보도 뒷이야기, KBS 관련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뉴스타파


"삼성 해명, 이건희 사생활 문제로 국한시키고 있다" 

프레시안 : 쉽지 않은 취재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취재 보도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무엇이었나. 

심인보 : 우리가 받은 동영상의 진위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충격적인 내용이라도 이게 가짜라면 어마어마한 혼란을 야기할 것이고 어쩌면 우리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진위를 밝히는 데 가장 공을 들였고, 취재 이후 보도 과정에서는 법적으로나 언론 윤리적으로 내용이 민감하다 보니 문제 될 만한 부분이 없는지를 살폈다.

프레시안 : 취재에 착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심인보 : 익명의 제보자에게서 영상을 받았는데, 취재원 보호를 위해 제보 관련한 내용은 지금은 밝힐 수 없다. 적당한 시점이 되면 보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이 보도로 인해 사드와 같은 다른 중요 사안이 묻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 

심인보 : 우리는 언론사다. 정당도 아니고, 운동단체도 아니고, 비당파를 추구하는 탐사보도 매체다. 정치적인 고려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취재해서 의미 있는 사실이 확인되고 제작이 완료되면 방송을 낸다. 다 제작이 됐는데 일부러 여러 사안들을 고려해서 방송 일정을 맞추는 것은 저널리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청와대나 국정원에서 일부러 우리 쪽에 흘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더라. 우리는 4월에 제보를 받고 취재를 했다. 청와대나 국정원의 기획설이 맞으려면, 그때 3개월 뒤인 지금의 정국을 예상했다는 건데,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다 말도 안 되는 소설이다. 

프레시안 : 보도 이후 혹시 삼성 쪽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나.

심인보 : 보도 전에는 접촉을 했는데, 보도 이후에는 삼성 쪽에서 우리 전화를 안 받는 상황이다. 삼성이 낸 입장도 다른 언론 기사를 보고 알았다. 

프레시안 : 삼성그룹이 "이 회장의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여서 회사로선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심인보 : 정확히 해명해야 할 부분이 빠졌다. 우리는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에 개입했을 정황까지 보도했다. 앞부분(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은 삼성이 인정을 할 수밖에 없으니 인정을 한 것일 테고, 사실 더 중요한 건 뒷부분(삼성 개입 의혹)이다. 그런데 정작 뒷부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이 회장 개인의 사생활 문제로 국한시키면서 기업으로서의 삼성이 져야 할 수도 있는 법적인 부분을 피해가고 있다.


프레시안 : 후속 기사를 준비하고 있나. 

심인보 : 후속 기사는 고민 중이다. 사실 삼성이 성매매 의혹에 대해 인정할 줄 몰랐다. 만일 삼성이 인정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후속 보도가 중요할 텐데, 지금 단계선 그게 필요 없어진 셈이다. 그래서 어떤 부분을 후속 기사로 내야 할지 여론도 살펴보면서 고민하고 있다. 아직. 


▲KBS에서 다룬 이건희 성매매 의혹 기사. 3문장짜리 단신 기사로, <뉴스타파>라는 명칭 대신 '한 인터넷 매체'로 표현했다.


"삼성, 보도 나오기 전 미리 여러 언론사에 전화" 

프레시안 : KBS에 계속 있었으면 이런 보도가 가능했을까.

심인보 : 일단, KBS 소속이었으면 제보가 오지도 않았을 거고, 왔다 하더라도 추가 취재가 어려웠을 것이다. 처음 우리한테 들어온 제보의 형태는 성매매 의혹을 확증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추가로 취재하면서 보도 단계까지 이르게 된 건데, KBS에 있었으면 추가 취재를 하지도 못 했을 것이고, 설령 취재에 성공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방송을 내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대다수 언론사가 침묵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심인보 : 저희 예상이랑 비슷한 상황이다. 결국은 돈 문제, 재정 문제니까. 미리 언질도 받았다. 보도가 어젯밤 10시쯤 나갔는데, 그에 앞서 저녁 6~7시경 몇 군데 전화를 받았다. 삼성에서 '오늘 저녁에 <뉴스타파>에 삼성 관련 보도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건 받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거다. 그래서 기자들이 대체 무슨 기산데 삼성에서 저렇게 하느냐고 확인 전화를 한 거다. 삼성에서 저런 전화를 하는 건 보통의 일반적인 출입처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언론사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출입처이지 않나. 그런 삼성이 아무래도 전화를 여러 군데 돌린 것 같다. 여러 군데서 저한테 연락한 걸 보면. 

프레시안 : KBS에서도 기사를 올렸다가 내리는 일이 있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기사를 보류한 것'이라는 해명을 했고, 아주 짧은 단신 기사로 다시 올렸다.

심인보 : KBS 후배들한테서 분위기를 전해 들었다. 정확한 팩트(사실)는 아니지만. KBS 같은 경우는 이명박 정부 이후 정치권력으로부터의 통제와 압박은 많이 받았으나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압박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믿어왔다. 저도 그렇고 선후배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고 몇몇 후배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제 자본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구나'라고. 

저희가 싫어서 (기사를) 안 받았을 수도 있고, 정말 신중한 취재 때문에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우리는 보도에서 사실관계도 철저하게 밝혔기 때문에 신중함을 기한다는 이유로 안 받는 건 정당한 사유는 아닌 것 같다. 기사를 내린 건 아무래도 KBS 수뇌부의 세계관과 연결된 문제가 아닐까 짐작한다.



ⓒ프레시안(서어리)


"KBS, 2년 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프레시안 : KBS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보도 개입설을 입증하는 '이정현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이정현 의원은 보도 개입으로 볼 수 없다는 해명을 내놨다. 

심인보 : 기본적으로 보도 국장은 사장이 임명하고 KBS 사장은 정부 여당이 사실상 임명하는 자리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의 홍보수석이었던 이 의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게 단순히 읍소나 부탁 혹은 오보를 바로잡으려 한 전화였을까. 삼성이 언론사에 '<뉴스타파> 기사 받지 말라'고 한 게 단순한 부탁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만일 단순한 읍소라면 국장이 녹음했을 일도 없었을 거다. 

프레시안 : KBS는 이정현 녹취 파일 공개 관련 보도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기자에 대해선 보복 성격의 인사 발령을 냈다.

심인보 : 그렇지 않아도 (지방으로 발령 난) 그 후배와 엊그제 만나서 술 마셨는데, 일단 안타깝다. 사실 KBS라는 틀 안에서는 기자들이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단이 없다. 기껏해야 외부에 글 쓰고 기사 가지고 싸우는 그 정도다. 지난 몇 년 동안 파업이나 제작 거부나 싸움 수단으로 다 한 번씩 해봤다. 그런 상황에서 별다른 성과 없었고, 점차 전선만 밀려나는 상황이다. 지금도 이 건을 가지고 파업을 해야 하지 않냐, 제작거부라도 해야 하지 않냐, 이런 이야기를 전 못 하겠다. 

프레시안 : 본인이 나가기 직전 상황과 지금의 KBS 상황을 비교하자면 어떤가.

심인보 : 제가 나갔던 2년 전보다 훨씬 더 안 좋아졌다. 심각하다. 최근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후배들한테서 종종 연락을 받았다. 수뇌부와 기자들 사이에 예전엔 유지되었던 상식의 수준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다. KBS 기자들이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프레시안(서어리)


프레시안 : KBS를 나오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

심인보 : 길환영 사장을 퇴진시키고 난 후, 젊은 기자들 사이에 '사람을 바꾸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서 여러 가지 안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일부가 수용이 돼서 TF 안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게 정말 전혀 관철이 안 됐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좌절했다. KBS기자협회에서 보도개입 진상조사단 활동도 하고 대안을 만들 때, 마지막으로 KBS를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좌절되고 나니, KBS가 언젠가는 바뀌겠지만 그땐 내가 이미 늙은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프레시안 : <뉴스타파>로 옮긴 후 기자 생활에는 만족하는가.

심인보 : <뉴스타파>는 기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예전만큼의 대접은 못 받지만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다. 우리가 어디 가서 대접받으려고 기자 생활하는 건 아니지 않나. <뉴스타파>는 기자가 취재할 때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지원해주고, 충분한 시간을 주고, 취재한 것에 대해 팩트가 틀리지 않고 기사 가치만 있다면 뭐든 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축적된 탐사보도의 노하우가 있다. 이런 환경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너무나 일하기 좋다. KBS에 있을 땐 취재에 들이는 공력과 취재를 한 것을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설득하기 위한 공력의 비율이 3 대 7 정도 됐다. 취재보다 더 많은 힘을 방송 관철시키는 데 써야 했다. 

프레시안 : KBS가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을까. 

심인보 : 마침 어제 방송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일단은 KBS 지배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마 여러가지 안이 있을 거다. 이사회 구성이나 사장 선출 방식이라든지, 임기 등을 잘 조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사장 임기를 5년 단임제로 하되, 정권 절반 시점에서 바꾼다든지 하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제도적인 장치 없이는 쉽게 바뀌기 어렵다.



"삼성이 건넨 500만 원, '조롱의 돈'이었다"

2016.07.24 15:39:48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우리의 외침이 그들에겐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삼성이 반도체 공장 백혈병 피해자에게 건넨 돈, 500만 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성매매 여성에게 준 돈, 500만 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는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 보도를 보며 '500만 원'이라는 금액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노무사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미와 유미 아빠에게 삼성이 건넨 500만 원은 조롱의 돈"이라고 적었다.  

"성매매 여성에게 건넨 500만 원, 유미 아빠에게 건넨 500만 원, '조롱의 돈'"

사연은 이렇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가 지난 2007년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황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는 삼성 반도체 공장 전․현직 노동자 가운데 딸과 유사한 피해자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그는 삼성 측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활동에 나섰다. '반올림'이 탄생한 계기다.  

그런데 이런 황 씨에게 삼성이 건넨 돈이 500만 원이었다. 이것만 받고 활동을 접으라는 게다. 당시 황유미 씨는 투병 중이었다. 치료비가 절박했던 황 씨는 결국 그 돈을 뿌리치지 못했다. 황 씨에겐 참담한 기억이다.  

공교롭게도, 성매매 의혹 현장에서 이 회장 측이 여성들에게 건넨 돈이 500만 원이었다. 이 노무사가 쓴 "조롱의 돈"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왔다.  

"세상을 조롱하는 삼성,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 

이 노무사는 "(삼성에서 발생한 직업병에 대해) 삼성은 반성은커녕 세상을 조롱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유미와 유미 아빠에게 삼성이 건넨 500만 원은 조롱의 돈"이라면서 "직업병 문제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하라는 우리들의 외침이 그들에겐 얼마나 유치하고 우습게 보일까"라고 밝혔다.  

그는 "삼성은 스스로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사회적 비판과 압력 없이 스스로의 자정 능력은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서울 강남역 8번 출구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삼성에서 발생한 직업병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하라는 게다. 삼성이 지금껏 내놓은 입장은 대부분 본질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


오는 28일이면, 노숙농성 300일째가 된다. 반올림은 이날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문화제를 연다.  



상대는 삼성이고 이건희 회장이었다

동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영화 <내부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기자라면 흥분할 수밖에 없는 자료였다. 하지만 이걸 과연 보도할 수 있을지 헷갈렸다. 영상을 분석하고 현장을 확인했다. 그리고 확신을 얻었다.

  조회수 : 51,394  |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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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승인 2016.07.26  18:08:51


지난 4월 어느 날, 어버이연합 관련 취재로 머리가 아프던 날 저녁이었다. 책상 건너편의 후배 기자가 어딘가에서 온 제보 전화를 받고 있었다. 표정이 심각했다. 몇 차례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 바빠 보였다. 그러더니 내게 말했다. “선배, 담배 한 대 피웁시다.” 덕수궁이 내려다보이는 저녁 옥상은 선선했다.

후배는 대뜸 휴대전화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뭔가 ‘야동스러운’ 동영상을 갈무리한 화면이었다. “응? 이게 뭐지?” “누군지 모르겠어?”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거 이건희야?” “응.” “뭐야 도대체 이 사진은?” 누군가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원본을 가지고 있다며 제보를 하겠다는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 사진을 보내줬다고 한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담배 불빛은 빨갛게 오래 타들어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뉴스타파 영상 갈무리</font></div><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의 한 장면. 
ⓒ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의 한 장면.

동영상은 충격적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영화 <내부자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회 최고위층의 난잡하고 불법적인 사생활. 근엄하고 믿음직스러운 무대 뒤의 민낯. 기자라면 흥분할 수밖에 없는 자료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정말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이걸 과연 보도할 수 있을까, 삼성인데. 헷갈렸다. 이 뉴스를 볼 독자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이 있는가. 황색 저널리즘의 사생활 까발리기와 무엇이 다른가. “선배, 이거 할 수 있을까.” “음… 이런 걸 확보하고도 어떻게든 뉴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건 소스의 문제가 아니야. 능력의 문제지.”

막상 분석에 들어가니 영상은 길고도 지루했다. 젊은 여성들이 떼로 등장하고, 이건희 회장의 얼굴이 비치고, 살색 육체들이 얽혀 있는 장면들이 보였다. 일이 끝나면 관리자는 그 여성들과 함께 오랜 시간 그날의 서비스를 혹독하게 평가했다. 어떻게 하면 회장님을 만족시켜드릴까 고민하고 토론했다. 성매매의 정황은 뚜렷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상대는 삼성이고 이건희 회장이었다. 이 동영상은 진본일까. 영상 속의 인물은 이건희 회장이 맞는가. 장소는 어디인가. 날짜는 언제인가. ‘화대’는 얼마인가. 누가 찍었을까. 왜 찍었을까. 의문의 연속이었다.

먼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영상과 음성을 분석했다. 편집과 위·변조의 흔적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화면 속의 인물이 이건희 회장이 아닐 확률은 ‘매우’ 낮았다. 다음으로,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확인했다. 간혹 우연히 찍혀 있는 야외 화면에는 건물들의 자투리가 걸려 있었다. 판독이 어려운 간판 글씨가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없이 펼쳐진 전봇대와 전선들. 방법이 없었다. 그냥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수밖에. 서울 시내를 헤매고 다녔다. 전봇대마다 사진을 찍었다. 뭔가 수상한 빌라에는 경비 아저씨가 졸 때를 기다려 들어갔다. 어떤 때는 2층에도 경비가 있었다. “거기 어디 가세요?” “20X호요.” “왜요?” “친구네 집인데요?” “거기 노인분들만 사시는데.” “아, 여기가 아닌가?” 강남 졸부의 아들로 코스프레하고, 동료 여기자를 아내처럼 대동하고, 와이셔츠 단추를 2개쯤 풀고, 몇 년 만에 구두에 광을 내고, 30억원짜리 고급 빌라를 구매하겠다며 돌아다녔다. 결국 두 달 만에 장소를 특정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이건희 회장(앞)이 삼성 서초사옥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사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희 회장(앞)이 삼성 서초사옥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사옥을 둘러보고 있다.

인물은 뚜렷하고, 영상은 확실하고, 장소는 특정됐고, 성매매의 정황은 뚜렷했다. 성매매는 불법이다. 성매매의 양태도 매우 난잡했다. 매우 영향력 있는 공인이 수년 동안 불법행위를 계속했다. 자, 이제 충분한가.

하지만 ‘사생활’이라는 강력한 방어 논리가 남아 있었다. 성매매는 매우 논쟁적인 사안이다. 성매매를 당연시하는 한국적인 풍토도 걸림돌이었다. 사생활을 침해하는 몰래카메라라는 점도 문제였다. 이건희 회장은 성매매라는 불법을 저지른 범법자이지만, 몰래카메라에 찍힌 피해자이기도 하다.

돌파구는 뜻밖의 곳에서 발견했다. 이건희 회장이 ‘안가’로 사용한 서울 논현동 빌라 등기부등본에서 삼성 관련자가 등장했다. 전세권자로 ‘김인’이라는 사람이 등장했다. 김인씨는 전 삼성SDS 사장이고 현재는 고문이다. 회장 비서실 출신이다. 입사 4년차에 비서실로 발탁됐다. 비서실에서 인사팀장이라는 핵심 보직을 역임했다.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한 인사였다.

이 회장의 성매매는 개인 일탈을 넘어서

취재진은 의심했다. 김인 고문이 집을 빌려서 이건희 회장에게 제공했을까. 이건희 회장이 김인 고문의 동의를 얻어 명의를 차용해 집을 빌렸을까. 이건희 회장이 김인 고문의 동의 없이 몰래 명의를 도용해 집을 빌렸을까. 김인 고문을 수소문해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이 취재에서 ‘잭팟’이 터졌다.

김인 고문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동명이인일 것이다”라고도 했다. 그는 등기부등본을 보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아마도 삼성SDS에서 외국인 임원들에게 제공할 집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대표였던 자신의 이름으로 집을 빌린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물론 삼성SDS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회사 용도로 집을 빌리면서 개인 명의로 하는 회사는 없다.

이제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섰다. 회사가 관여한 개연성이 나타난 것이다. 누군가 회사 임원의 명의를 도용해서 집을 빌렸고, 이 집을 이건희 회장이 성매매 장소로 사용했다(삼성그룹 취재를 시작하자 김인 고문은 자신이 빌렸다고 말을 바꿨다).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하고, 보도 날짜를 확정했다. 떨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 솔직히 삼성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었다. 끊임없이 되물었다. 모든 팩트는 확실한가. 실수는 없었나. 윤리적으로는 옳은가. 소송이 시작되면 이길 수 있나. 다른 언론은 이 기사를 받을까. 아무도 받지 않는 저주받은 특종이 되지 않을까. 나는 기자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뉴스타파>는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게 충분해도 삼성 앞에서는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보도가 나가고 <뉴스타파>에는 기자와 앵커의 ‘안위’를 걱정하는 전화와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비정상적인 비중과 위상을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광고가 없는 <뉴스타파>는 그나마 밥그릇에 대한 공포가 덜하다. 우리라도 삼성이라는 공포와 싸워야 한다. 최승호 PD의 말처럼 ‘시민의 가호’를 믿으면서 말이다.


몰카로 흥한 이건희, 몰카로 망하다?

2016.08.04 10:54:46


[성현석의 토이 스토리] '레플리카', 그리고 성실한 채홍사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바꿔보죠. '몰카'(몰래 카메라)로 흥한 자, 몰카로 망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야기입니다. 그가 '신경영 선언'과 함께 경영 전면에 나선 게 1993년입니다.


'세탁기 몰카'로 시작된 이건희 신화1993년 신경영 선언


시작은 '몰카'였습니다. 삼성그룹 사내방송팀이 공장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놀라운 장면이 찍혔죠. 생산 라인에 도착한 세탁기 뚜껑이 뒤틀려져 있었습니다. 아귀가 안 맞아서 조립할 수 없었어요. 이 경우, 불량품이므로 폐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장 직원은 태연했습니다. 커터 칼을 꺼내더니 뚜껑을 깎아냈어요. 그리고 다시 조립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세탁기가 튼튼할 리 없죠. 곧 문제가 생길 겁니다. 당시 현장 직원의 대응은, 나중이야 어찌되든 당장만 모면하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이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임직원들의 '대충주의'를 질타하는 소재로 삼았죠.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삼성 사장단 전원과 비서실 핵심 임원들을 소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문제의 '몰카' 영상을 공개했어요. 바로 이어진 게 '신경영 선언'입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 다 바꾸자"라고 했죠. 1993년 6월 7일입니다.

이날 이후,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완전히 틀어쥡니다. 1987년 회장 취임 이후 그때까지 이어진 은둔 생활도 청산하죠. 공개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중산층, 민주화, 그리고 품질 경영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대해선 논란이 있습니다. 예컨대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등은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았고, 부작용만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품질'에 대한 강조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때까지 한국은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었습니다. 쓸 만한 상품은 늘 부족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굳이 잘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냈던 이계안 전 의원이 한 이야기입니다.

대충 만든 제품도 잘 팔렸거든요. 문제가 있어도, 소비자가 항의할 통로가 없었죠. 소비자의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만들면 무조건 팔리는 시대가 지나간 거죠.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괜찮은 상품에 대한 요구가 생겼습니다. 여기에 정치적인 민주화가 겹치니까, 소비자의 권리 의식도 높아졌죠. <조선일보>에 따르면, 한국에서 중산층의 비율이 정점을 찍었던 해가 1992년입니다. '신경영 선언' 한 해 전이죠. 

대기업이 품질을 외면할 수 없는 때가 된 겁니다. 이 회장이 '세탁기 몰카 영상'을 공개한 건, 시의적절 했습니다. 필요한 개혁 조치였죠. 이 회장의 성공 신화는 '몰카 공개'로 시작 됐습니다. 

2016년 이건희 성매매 정황 몰카'윤리 경영' 계기 될까


그리고 지금, 이 회장의 성매매 정황이 담긴 '몰카'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그가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한 게 2010년입니다.


딱 그 이듬해인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의 성매매 정황이 '몰카'에 찍혔죠. 성매매는 그 자체로 범죄 행위입니다. 여기에 회사의 인력과 자금이 동원됐다면, 다른 경제 범죄가 될 수 있죠. 

1993년, 삼성은 현장 직원의 잘못을 촬영한 '몰카'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그걸 개혁의 계기로 삼아서 성공했죠.  

2016년, 삼성 총수의 범죄 정황을 찍은 '몰카'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삼성은 어떻게 할까요. '품질' 다음의 과제, 예컨대 '윤리'를 향한 개혁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까요. 이재용 부회장의 대응이 주목됩니다. 


ⓒ뉴스타파


사생활이 사라졌다 

'이건희 동영상'이 남긴 과제는 또 있습니다. 국내 1위 재벌 총수조차 사생활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엽색 행각으로 입길에 오르내린 재벌 총수가 한둘이 아니죠. 하지만 모두 소문에 그쳤습니다.



이젠 달라졌습니다. 완벽한 사생활이 보장된 사람은 없습니다. 기술의 변화가 한몫했습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닙니다. 보이스레코더, 카메라, 캠코더가 한손에 담겼습니다.

전 국민 감시 사회. 빛과 그림자가 모두 선명합니다. '그들만의 공간'이 확연히 좁아졌습니다. 이건 순기능입니다. 권력자도 행실을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몰카'에 찍힐지 모릅니다. '이건희 동영상'이 잘 보여줬죠. 

부작용은 다들 아는 데로입니다. 맥락과 동떨어진 사진 한 장 때문에 마녀사냥 당하는 일이 생기죠. 사생활 침해는 약자에게 더 가혹합니다. '몰카'로 입은 상처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깊죠. 

너무 많은 정보가 담긴 스마트폰, 해킹당하면?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해킹당하는 경우입니다. 한 뼘도 안 되는 스마트폰에 너무 많은 개인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스마트폰 속 정보만 살피면, 개인의 거의 모든 걸 알 수 있죠. 심지어 스마트폰 소유자도 몰랐던 정보까지요. 저도 몰랐던 제 습관과 취향, 온라인 검색 및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이용 내역만 살펴도 대부분 파악할 수 있죠.

실제로 스마트폰 해킹 사건이 벌어집니다. 딱 1년 전, 국가정보원의 스마트폰 해킹 사건이 논란이 됐죠.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의 해킹 업체의 고객이라는 게 드러난 겁니다. 이 해킹 업체의 서버 역시 해킹 당했었죠. 그래서 알려졌습니다. 국가정보원이 불법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내국인을 감찰했다는 의혹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건이 이어졌죠. 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운영한 담당자였던 국가정보원의 임모 팀장이 시체로 발견된 겁니다. 자신의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미궁에 빠져버렸습니다. 

한국의 1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워낙 많은 사건이 터지잖아요. 그래서 당시 사건을 잊은 이들이 많을 겁니다. 


'정보기관의 스마트폰 감청'을 소재로 삼은 게임 

그런데 그걸 눈 여겨 봤던 게임 개발자가 있습니다. 'Somi'라는 인디 게임 개발자입니다. 이름 등 신상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고요. 낮에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밤에 혼자서 게임 개발을 한다고 합니다. 게임 업체와 무관한, 독립 개발자입니다. 그러니까 '정보 기관의 스마트폰 감청'이라는 주제로 게임을 만들 수 있었겠죠. 

'아웃 오브 인덱스(Out of Index)'라는 행사가 있어요. 올해로 3년째인데요. 실험적인 게임을 발표하는 행사입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상암동 S-Plex 센터 지하 2층에서 열렸죠. "Out of Index"는 프로그래밍 할 때 뜨는 오류 메시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존의 게임 문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을 발표한다는 취지로 택한 행사 명칭이죠.


올해 '아웃 오브 인덱스' 행사에서 'Somi'가 발표한 게임이 'Replica(레플리카)'입니다. 같은 이름이 다른 게임도 있습니다. 그래서 헷갈릴 수도 있겠네요.

'Somi'가 만든 '레플리카'는 국가정보원 해킹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고요. 카카오톡 감청,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 시사 현안이 반영돼 있습니다. 

일종의 인터랙티브 소설 게임입니다. 보통 소설은 줄거리와 결론이 정해져 있죠. 그런데 이런 게임은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줄거리와 결론이 달라집니다. '레플리카'는 12개의 결론(엔딩)이 있습니다. 게임 개발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게임은 소설 <리틀 브라더>(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아작 펴냄)에서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리틀 브라더> 속 문장이 그대로 나오는 대목이 있다는 거죠. 


▲ '레플리카' 시작 화면. ⓒSomi


정보기관 협력자가 된 느낌을 경험하다 

게임을 실행하면, 컴퓨터 화면에 스마트폰 잠금 화면이 뜹니다. 다른 설명도 없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죠. 조금 지나면 게임 속 설정을 알게 됩니다. 여긴 가상의 독재 국가입니다. '국가안보부'라는 정보 기관이 있죠. 국가안보부가 제게 과제를 준 겁니다. 제가 모르는 어떤 학생이 있어요. 그의 스마트폰을 엿보라는 거죠. '모의 해킹 게임'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해킹 기술이 필요한 게임은 아니고요. 

화면을 보면, 몇 가지 단서가 눈에 띕니다. 그걸 활용해서 먼저 잠금 화면 비밀번호를 추리합니다. 잠금이 해제되면, 학생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 수 있죠. 그러면 국가안보부 요원이 제게 이런저런 지시와 요구를 하죠. 저는 스마트폰 속 정보를 들여다보면서 거기에 답합니다. 스마트폰 소유자인 학생의 신상 정보를 파악하거나 국가안보부가 적용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찾는 거죠. 과제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게임 시간도 짧고요. 그러니까 사고력, 집중력으로 승부하는 퍼즐 게임은 아니란 거죠. 

이 게임은 '정보 기관의 협력자'가 된 기분을 체험하게끔 하는 게 목적이에요. 그게 참 묘합니다. 

국가안보부 요원은 고압적인 태도로 제게 지시를 합니다. 요구한 과제 자체가 남의 사생활을 캐는, 비윤리적인 일이죠. 그러니까 처음에는 기분이 거북해집니다. 그런데 과제를 단계별로 수행하면서 기분이 달라져요. 어찌 됐건 성취감을 느끼는 거죠. '이건 변태 짓'이라는 생각을 잊고, 몰입하게 됩니다.



과제를 수행하면, 국가안보부 요원은 "애국자"라며 저를 격려해요. 제가 과제를 빨리 못 풀면, 국가안보부가 힌트를 줘요. 그럼, 순간적으로 국가안보부에게 고마운 감정이 듭니다.


그렇게 기분이 달라지는 걸 느끼면서, 결론 가까이 가죠. 그럼, 반전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 내용은 공개하지 않을 게요. 하지만 대략 예상 가능하고요. 예상한 대로입니다. 'Replica(레플리카)', 복제품이라는 뜻이죠. 그걸 곱씹어보면,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 '레플리카.' ⓒSomi


나쁜 임무와 불성실, 어디서 죄책감 느꼈나 

이 게임의 메시지는 누구나 국가폭력의 협력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게임 이용자 중에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떠올렸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독일의 나치스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합니다. 그리고 깜짝 놀라죠. 숱한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이히만이 실제로는 대단히 멀쩡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직장과 가정에 충실한 보통 사람이었던 거죠. 임무 자체에 대해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할 때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물론, 아이히만 재판과 한나 아렌트의 저술에 대해선 다른 설명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잔인한 국가 폭력의 주모자 혹은 협력자가 실은 보통사람이었다는 건, 의미심장하죠. 주어진 과제 자체에만 몰두하다 결국 구조적인 폭력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 '레플리카' 게임의 목적인데요. 

ⓒSomi


총수의 범죄를 도운 임원, 죄책감 느꼈을까 

다시 이건희 회장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이 회장이 혼자서 성매매를 시도했을 가능성은 없죠. 성매매가 이뤄졌다면, 조력자가 있었을 겁니다.



성매매 의혹 현장 가운데 한 곳인 서울 논현동 빌라는 김인 삼성SDS 고문 명의로 전세 계약이 돼 있습니다. 김 고문은 삼성 비서실에서 오래 일했었죠. 또 논현동 빌라 소유주에 따르면, 전세 계약을 하는 자리에 '대기업 임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나와서 계약금 전액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대기업 임원'으로 소개된 사람과 김 고문은 다른 인물로 추정됩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삼성 고위 임원이 이 회장 성매매 의혹 사건에서 조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임원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매매는 범죄입니다. 그걸 돕는 행위, 예컨대 장소 제공 역시 처벌 대상입니다. 이런 일에 가담하면서 죄책감을 느꼈을까요. 아니면 일 자체에 대해선 아무런 느낌이 없고, 다만 업무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 혹은 게으름에 대해서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요. 

후자(後者)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만 배웠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군대와 직장에선 더 그렇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눈앞의 과제에만 집중하라고 합니다. 거기에 잘 순응한 사람이 승진도 빠르죠.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에 연루된 임원 역시 비슷한 경우일 수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를 놀라게 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우리 이웃, 어쩌면 저 자신일 수도 있죠.

박정희와 이건희, 그들의 채홍사 

물론, 꼭 그렇게 단정하는 것도 잘못이죠. 사람의 양심이란, 의외로 생명력이 강하니까요. 이건희 회장의 논현동 빌라를 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궁정동 안가(安家)를 떠올렸다는 누리꾼이 많은데요. 박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젊은 여성들을 불러들였던 곳입니다. 궁정동 안가로 보낼 여성들을 섭외한 건 박선호 당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채홍사였죠. 박 전 대통령을 쏴 죽였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의 인연 때문에 발탁됐습니다. 마지막까지 김재규와 함께했죠. 궁정동 현장에서 김재규가 한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형 당했죠. 그는 "김(재규)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 지금 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저는 그 길 밖에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박선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역할, 채홍사 노릇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해요. 그래서 여러 차례 사표를 냈지만 반려됐다고 해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김재규의 총에 맞았던 차지철 경호실장 역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걸로도 유명했죠. 이런 그가 박정희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해선 별 문제의식이 없었습니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의 시민들이 유신 독재를 규탄하며 거리를 나왔었죠. 부마항쟁입니다. 당시 차지철은 총칼로 진압하자고 했죠.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00만~200만 명쯤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극한 효심, 기독교 신앙과 인명 살상 발언. 어쩌면 차지철은 아이히만과 닮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박선호와 차지철. 둘 다 성실한 군인이었고, 자기 임무에 충실했어요. 하지만 임무의 방향이 틀렸습니다.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었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었죠. 임무를 남보다 더 부지런하게 수행한 결과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비극이었죠.

재벌 총수의 불법 행위를 도운 임원들 역시 이 가운데 한 명을 닮았을 겁니다. 그들 임원들에게 '레플리카' 게임을 권하고 싶습니다. 권력자의 요구에 따라 눈앞의 작은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뿌듯함,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겁니다.

독일 작가 괴테가 그랬죠.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요. 야구 선수 임창용이 인용해서 유명해진 말인데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경희대학교 교수가 자기 책 제목으로도 썼죠. '레플리카' 게임을 끝내고 나면, 다시 곱씹게 되는 문장입니다.


▲ 코리 닥터로우. '레플리카'는 그가 쓴 소설 <리틀 브라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