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박근헤 ‘탈북 권유’ 발언, 알고 보니 잘못 짚었네

일취월장7 2016. 10. 17. 10:25

박근헤 ‘탈북 권유’ 발언, 알고 보니 잘못 짚었네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을 공식 권유했다. 최근 박 대통령의 대북 발언을 보면 ‘북한 붕괴론’을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제474호


대통령이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실업, 두 번째는 인플레, 그리고 세 번째가 전쟁이다. 그런데 요즘, 박근혜 대통령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통령이 홀로 전쟁의 문턱에 서서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군의 날인 10월1일 계룡대에서 북한 주민을 겨냥해 한 말을 계기로 이런 의구심이 더 늘었다. 박 대통령은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놓을 것입니다.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연설했다. 분단 역사상 남쪽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을 공식 권유한 최초의 발언이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북한에게 사고 치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가절하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내치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불거지며 레임덕이 오자 대북 강경책으로 국면 전환을 노린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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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대북 관련 발언을 보면 ‘기승전-북한 붕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대중 무역량이 늘고 핵과 미사일 시험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내정 실패를 덮는 차원을 벗어나 대통령이 실제로 군사적 충돌을 유도할 것이라는 정세 분석까지 나왔다. 국민의당 최경환 의원은 10월4일 자신이 받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최 의원에 따르면, 외교·안보 분야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한 예비역 장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다음 수순은 북한 도발을 유도해 한·미 연합군이 보복할 수 있도록 북을 계속 자극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 계획대로라면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 간 전쟁에 준하는 군사적 충돌이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한반도 긴장의 원인은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는 일련의 발언 연장선이었다. 8·15 경축사 때도 박 대통령은 갑자기 “북한 당국의 간부들과 모든 북한 주민”을 호명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통일은 여러분 모두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핵과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는 새로운 한반도 통일 시대를 열어가는 데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촉구했다. 북한 주민뿐 아니라 간부들에게 차별과 불이익을 주지 않을 테니 남한 주도의 통일에 동참하라고 권유한 것이다. 또 10월5일 제10회 세계 한인의 날 기념식에서도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광적으로 집착할수록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만이 가중될 뿐이며 결국 자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8월22일 을지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는 “북에서 체제 동요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라고도 말했다. 북한 붕괴론에 입각해 북한 당국과 주민을 분리 대응하겠다는 속내를 대통령이 연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노골적인 대북 발언을 통해 ‘말의 전쟁’을 본격화한 것은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2월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부터다. 장거리 로켓 발사 뒤인 2월16일 국회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핵 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고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다”라며 체제 붕괴라는 말을 처음으로 꺼냈다. 그 이후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라는 말이 박 대통령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다시피 했다. 최근 발언은 북한 체제의 동요 내지는 붕괴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더욱 깊어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이 이처럼 대통령에게 확신을 갖게 했을까?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이하 통준위)에 참여했던 한 국제정치학자의 전언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지난해 7월7일 통준위 회의에서 대통령은 전문가인 위원들이 보기에도 다소 뜬금없는 발언을 했다. “북한 체제가 동요하고 있다. 통일이 내년에 올 수도 있으니까 잘 준비하라.” 대통령이 이날 제시한 근거는 “고위급 탈북자가 많아지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바로 통준위 회의 두 달 전 북한 정찰국 소속 대좌의 탈북 사건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되었다. 대좌면 우리의 대령에 해당하지만 정찰국 대좌는 인민군 중장(별 두 개. 남한의 소장)에 해당한다며 인민군 출신 중 최고위급의 망명이라고 언론에서 호들갑을 떤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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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일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열병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보수 집권 세력은 대체로 비슷한 특징을 보였다. 북한에서 지도부 교체나 고위급 인사 탈북 등의 변수가 일어나면 예외 없이 체제 붕괴의 징후로 읽었고 ‘통일 대통령’ 환상에 쉽게 빠졌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김영삼 대통령이 그랬고, 2008년 김정일 위원장 뇌졸중 발병 후 이명박 대통령 또한 그랬다. 그리고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박근혜 정부 역시 한동안 북한 붕괴론에 빠졌다. 고위급 인사가 탈북했다는 소식만 접하면 마치 유행병처럼 다시 붕괴론이 퍼졌다.

최근 일련의 대통령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통준위에서 한 대통령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에는 정찰국 대좌의 탈북이 계기였다면 올해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 망명이 계기다. 8·15 광복절 경축사부터 그렇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이 태영호 공사의 망명 사실을 언론에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게 8월17일이다. 8·15 광복절 경축사 이틀 뒤다. 즉 대통령은 태영호 공사 망명 사건을 사전 인지하고, 고무된 상황에서 북한 주민뿐 아니라 간부들까지 호명하며 통일 과정에 동참하라고 한 것이다.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는 북한 주민에게 탈북을 권유하는 데까지 나갔다. 박 대통령이 고위급 망명을 북한 체제 붕괴의 신호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베이징에서는 북한 보건성 고위 간부가 가족과 함께 일본 망명을 추진 중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 엘리트들의 망명이나 탈북을 체제의 붕괴 징후로 볼 수 있을까? 고위급 망명으로 따지자면 1997년 황장엽 비서 망명보다 더 큰 사건은 없었다. 황장엽은 북한 체제의 골간인 주체사상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 최고위급 인사가 극적인 탈북 과정을 거쳐 남한에 들어왔지만 그로 인해 북한 체제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물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카리스마’가 버티고 있었다. 반면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의 불안해 보이는 통치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2270호에 따른 국제적 고립과 압박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1997년에도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6월23일 ‘중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 화성-10’의 시험발사 성공 후 웃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고위급 탈북하면 체제 붕괴 징후라며 호들갑


태영호 공사 같은 사람의 망명이 과연 체제 동요 내지 붕괴의 전주곡이 될 수 있을까? 또 태영호 공사 망명 직후 정부나 언론에서 거론한 사유들이 북한 엘리트들의 탈북 동기가 될 수 있을까? 8월17일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 핵심 계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더 이상 희망이 없으며, 북한 체제가 이제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지배 계층 내부 결속이 약화되고 있지 않나 판단한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언론에 거론된 이유들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대북 제재와 압박 때문에 해외에 근무하는 북한 외교관들이 현금 조달 부담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거나 남한이나 서구 사회에 대한 동경, 태영호 공사의 경우 특히 자식 교육 문제 등이 주로 거론됐다.

과연 지금은 어떨지 북한 군부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던 고위급 탈북자들에게 물어봤다. 고위급 탈북자의 설명은 이렇다. 북한의 엘리트들이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미국과 언제까지 대립할 것인지 답답해하고, 북한도 언제쯤 중국처럼 살 수 있을까 고민한다. 한국을 동경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맞다. 한국 대기업들이 물건을 잘 만들고 한국 드라마가 중국 드라마보다 스케일은 작아도 훨씬 짜임새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다고 탈북할까? 자기 체제에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부모·형제·자식 등 모든 인간관계가 온존해 있고 문화적·정서적으로 익숙하고 심지어 그 사회에서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이 있는 한 탈북은 쉽지 않다. 동경하는 것과 선을 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럼 어떨 때 선을 넘게 되는가? 고위급 탈북자는 “자기 몸에 괴로운 일이 생겨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됐을 때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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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망명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공사(위)는 BBC 루퍼트 윙필드헤이스 기자의 북한 모욕 기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었다.

태영호 공사의 경우 망명을 결심한 정황이나 배경만 나오지 구체적인 동기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개인적 망명 동기를 유추해볼 만한 단서가 없지는 않다. 8월21일자 영국 언론에 따르면 ‘태영호 공사는 망명을 결정하기 약 두 달 전 영국 왓퍼드 지역의 한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기관 담당자들과 처음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는 왜 갑자기 평양으로 돌아가게 됐을까? 북한 사회 생리에 밝은 고위급 탈북자들은 그가 망명하기 얼마 전 있었던 한 사건을 주목한다. 바로 BBC 특파원 루퍼드 윙필드헤이스 사건이다. 윙필드헤이스는 지난 5월 북한 제7차 당 대회 취재차 평양에 갔다가 김정은 위원장을 모욕하는 기사를 쓴 혐의로 순안공항에서 8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추방당했다. 윙필드헤이스는 도쿄 특파원이지만 그가 속한 언론사가 영국의 BBC이기 때문에 방북 비준과 추천을 바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는 태영호 공사가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태 공사는 대언론 창구 역할을 도맡아 했다.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북한 체제의 속성상 비준해준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 현지에서 사상투쟁을 하게 한 뒤 국내로 즉각 소환당하거나 최소한 당적 박탈과 지방 좌천까지 각오해야 한다. 외교관 인생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태영호 공사의 국내 망명이 알려진 8월17일부터 역순으로 두 달 전쯤 소환명령이 떨어졌다면 십중팔구는 윙필드헤이스 특파원 비준 책임에 대한 추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태영호 공사가 망명에 이른 계기가 이런 개인적 사유라면 북한 체제의 동요 내지 붕괴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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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루퍼트 윙필드헤이스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보수 세력의 단골 주장인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서 대응한다는 전략에 입각해 있다. 국제사회 대북 제재로 정권을 압박하면 내부 경제난이 심화되어 엘리트층이 동요하고 주민이 이반할 것이라는 판단을 바탕에 깔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시작될 당시 정부는 6개월 정도를 제재 효과가 나타나는 시한으로 봤다. 그것이 대략 9월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가. 7월 북·중 무역 규모를 보면 확실히 줄었다. 6월에 중국의 대북 수출이 2억9000만 달러였다가 7월에는 1억9000만 달러까지 떨어진 것이다. 8월은 어떤가. 놀랍게도 중국의 대북 수출 액수가 3억3658만 달러다. 7월 액수의 거의 두 배에 육박할 뿐 아니라 2014년 12월 3억6000만 달러 이후 두 번째 많은 액수다. 1월에서 8월까지 합계도 작년 동기 대비 5.2%나 늘었다. 8월에 북한에서 중국으로 수출한 액수는 2억8568만 달러로, 이 역시 2014년 9월의 3억 달러 이래 두 번째 많은 액수다. 1월에서 8월까지 북한의 대중 수출 총액은 16억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1.6% 줄었을 뿐이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북·중 무역 규모 급증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름철에 무역이 활발한 데다 7월에 소진하지 못한 ‘무역와크(허가증)’를 8월에 소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뿐일까. 지난 7월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대북 방침 변화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중국 런민 대학 스인훙 교수는 9월12일자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 후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의 협력을 더욱 주저하게 됐다. 중국은 북한과 가깝기 때문에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라고 단언했다. 또 “중국이 북한에 들어갈 석유를 끊어도 북이 핵을 포기할 확률은 50%인데 왜 중국이 북한을 적으로 돌리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되느냐”라고 반문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 전문가가 미국 측에 이렇게 직설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도 새롭다. <뉴욕 타임스>의 결론 역시 1990년대 내내 반복된 얘기라 기시감이 든다. 북한 대외 무역의 90%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한·미·일은 북한과 교역이 전무하다. 그나마 교류하던 개성공단까지 폐쇄한 마당이다. 러시아 출신의 대북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표현대로 “중국이 미국의 대북 제재 수레바퀴에 막대기를 꽂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중국은 정해진 품목에 한해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은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협조는 거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뭔가 거창한 대북 압박을 할 것처럼 한국 언론에 알려졌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단이 없어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고정 레퍼토리인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의 실체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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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이후 북·중 무역 규모가 커지고 있다. 위는 북한 신의주로 짐을 싣고 갔던 중국 트럭들이 줄지어 단둥으로 돌아오는 모습.

설령 대북 제재로 경제난이 심화된다고 체제가 붕괴될까? 한 고위급 탈북자는 “인류 역사상 제재로 한 사회가 무너진 경우는 없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반한 계급의식(증오심과 적대감)’을 고취하고 ‘반공화국 책동’에 책임을 전가할 명분을 줄 뿐이다. 제재가 길어지는 것은 오히려 김정은 체제의 조기 안정화와 공고화를 도와줄 뿐이다. 북한의 노동당 지배체제는 김정일 위원장 시대에 완성됐다. 당 조직지도부가 중앙과 지방을 망라한 당·정·군 모든 간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틀어쥐었다. 언론은 북한의 2인자가 황병서냐 최룡해냐로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지만 사실상 북한의 2인자는 바로 당 조직지도부인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제거’된다 해도 당 조직지도부가 살아 있는 한 북한 체제는 무너지지 않는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후 김정은에게 권력이 승계될 때처럼 당 조직지도부가 권력 공백의 과도기를 틀어쥐고 김씨 집안의 다음 인물에게 권력을 이양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황장엽 비서는 “김정일 유고 시 북에서 권력을 승계할 인물이 100명도 넘는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희망대로 북한 당국과 주민을 분리하고 북한 당국을 고립시키고자 했다면, 사드 배치를 감행해서는 안 된다.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틀어쥐고 있는 중국의 협조 없이 북한 당국을 고립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제재와 압박 일변도는 당국을 주민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민에 대한 지배 명분만 강화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물론 핵미사일 제조에 쓰이는 전략 물자는 제재해야 한다. 북한이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했다 해도 당장 전력화가 어려운 이유는 미사일 제조에 쓰이는 특수 알루미늄 등을 전부 해외에서 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기 제조에 쓰이는 전략 물자는 제재하되 시장을 죽이는 제재는 하면 안 된다.

2000년대 남북 교류가 활발할 때 남쪽을 방문한 북한 인사들이 많았다. 그들은 북한 땅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남한에서 가져간 물건들을 전부 내놓아야 했고 남쪽에서 보고 들은 얘기를 일절 발설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이 남한 사회의 발전상을 접하고 대남 ‘계급의식’이 약화된 사건이 일어났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전자제품과 전기밥솥이 밀거래 방식으로 평양 중구역 시장 등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북·일 관계 악화로 일제 전기밥솥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 개성공단 전기밥솥이 독점적으로 공급되었는데, 한국말로 된 사용설명서가 너무나 신기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남한 하면 빈부 격차에 민주화가 안 된 사회라는 식의 부정적인 이미지 일색이었는데 개성공단 전기밥솥이 바로 대남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북한 주민들의 대남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한 개성공단을 박근혜 정부는 하루아침에 폐쇄했다. 그런 뒤 대북 제재와 압박만 연일 떠들어 ‘반한 계급의식’만 고취시키면서 어떻게 탈북을 유도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이 탈북과 북한 붕괴를 아무리 얘기해도 공허할 뿐이다. 1990년대에 경험했던 북한 인식의 오류를 박근혜 정부가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



유구한 ‘뻘짓’, 대북 정책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제474호

생각하면 기막힌 노릇이다. 아버지는 6·25 때 징집돼 생사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고 6년 넘게 군에서 복무했다. 나는 3년 가깝게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리가 왕왕 울리는 서부전선 철책 근처에서 근무했다. 첫째 아들은 공군에 지원해 2년간 백령도에서 제대하는 순간까지 북쪽에서 포탄이 날아올까 봐 전전긍긍했다. 둘째 녀석도 나이가 차서 입대를 앞둔 형편이다. 우리 3대가 군에 바치는 세월이 13년이 넘는 셈이다. 신의주 출신인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끝내 북에 남겨놓은 친지들 얼굴 한번 못 보고 돌아가신 지 오래다.

제국의 귀족도 아닌 주제에 대를 이어 병역 의무를 지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은 끝나지 않았던가. 젊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언제 적화 야욕에 불타는 북한이 도발해올지 모르는 비상 상황이라며, 국민 모두 딴생각 말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하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다. 지금은 아들 녀석들이, 화내기도 지친 아버지 곁에서 그 대통령의 딸이 그 집안 특유의 말투로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걸 들으며 진절머리를 낸다. 식민 지배 전과도, 전쟁 책임도 없는 나라의 국민이 어쩌다 이런 고통을 겪게 되었을까.

ⓒ한성원 그림
우리 사회에서 잘못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마는 그중에서도 대북정책은 최악이다. 역사와 전통이 유구한 ‘뻘짓’의 긴 행진이다. 우리가 6·25 끝난 뒤 60년 넘게 국방비·정보비·공작비에 쏟아부은 돈이 대체 얼마일까. 아마도 웬만한 나라를 살리고도 남을 만한 돈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킬 비용을 줄이고 노후의 안락을 희생하고 퍼부은 돈이다. 부끄럽게도 자폐아나 미숙아, 그리고 노인과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가 살기에 힘든 환경을 애써 외면하면서, 복지를 사치인 줄로만 알고 살았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동안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개가(잘나가는 집 자식 상당수를 빼고)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군에서 청춘을 보내야만 했다. 자, 그 결과를 한번 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한반도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북한은 5차 핵실험을 마쳤고, 수차례 잠수함 발사를 포함한 장거리·탄도미사일 요격 실험을 마쳤다. 민간 분야라고 형편이 나을 게 없다. 어렵게 개시했던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고 개성공단은 문을 닫았다. 이제 서로 재해를 입어도 구호품 한 상자 보내지 않는다. 문화·학술 교류도 모두 끊겼다. 남과 북의 정권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들던 이산가족 상봉 카드도 빛이 바랬다. 오래지 않아 실향민은 모두 자연사하고 말 것이다. 이 지구상 어디에 가족과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 못하는 곳이 또 있을까. IS가 점령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도 힘들지만 가족끼리 통화는 가능하다.

그동안 통일정책에서는 이른바 포용론과 호혜론이 팽팽히 맞서왔다. 쉽게 말해 상대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게 옳으냐 아니냐는 논란이다. 햇볕론과 퍼주기의 싸움이다. 학자나 전문가끼리도 양쪽은 포용을 모르는 다툼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제 흰 고양이도 검은 고양이도 쥐를 잡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역대 정권의 지도자들과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적어도 이산가족에게는 백배사죄해야 옳다.

정권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얻은 게 아주 없지는 않다. 먼저 냉탕이든 온탕이든 상대가 예측하기 쉽게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이 접촉하는 횟수가 잦고 시간이 길어야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대화가 멈추면 총성이 울리기 마련이다. 대북관계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른 끝에 건진 소중한 경험이라면 그것이 거의 전부이다.

그런 잣대로 보자면 박근혜 정부는 역대 정권 중에서도 최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발표한 대선 공약에서 북한과의 협상 다각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관계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누가 보더라도 포용 쪽으로 기운 정책이었다. 독일을 순방 중이던 2014년 3월에는 독일을 롤모델로 삼아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담은 일명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군인과 주민을 향해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호혜론을 넘어 흡수통일론으로 급속히 엎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북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흥분했는데, 북에서는 적어도 박 대통령이 임기 중에 자신들과는 진솔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책의 근본을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대화 가능성마저 닫아건 꼴이다. 역대 정권 중 정책 방향을 가장 자주 바꾸고 대북 협상 창구를 폐쇄해 1994년 전쟁 직전의 위기를 초래했던 김영삼 정부보다도 거친 행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관료들의 언행도 가볍기 이를 데 없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이 정부의 군 관계자들은 공공연하게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거론했다. 거기에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과 지도부를 겨냥한 이른바 ‘참수 공격’ 훈련을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이에 맞서는 북한의 언사도 험악해져만 간다. 북한의 관영 매체는 올해 3월에 지도자가 청와대를 공격하는 시뮬레이션을 참관하고 나오는 영상을 내보냈다. 지난달 북한 군부는 서울을 재로 만들고, 도발 기지인 괌을 지구 표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으르렁댔다. 과거에도 서로를 향해 과격한 말이 오간 적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구체적이었던 적은 없다. 서로 사용하는 어휘만 보면 이미 준전시 상황이다. 지난주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민주당 에드 마키 상원의원은 “만약 북한 군부가 남한이 자기네 지도부를 죽이기 위한 선제공격을 할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면 김정은에게 핵무기 통제권을 넘기라고 압력을 가할 우려가 있다. 그들은 핵을 쓰지 않으면 잃을 수도 있다(use or lost)는 쓸데없는 강박관념에 몰릴 수 있다”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한반도에서 대북정책이 번번이 힘을 쓰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한반도의 평화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각자 정권의 안보라는 불순한 목적에 매달리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모두 남북의 긴장 관계를 국내 정치의 돌파구로 삼으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쪽에는 다른 사정도 있지 않은가 싶어서 걱정스럽다. 어떤 이유에서건 지도부가 곧 북한이 무너지리라는 확신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실익도 없는 말을 그토록 경솔하게 내뱉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 굳이 전문가의 눈을 빌리지 않더라도 3대 세습을 강행한 북한 정권은 여러모로 위태로워 보인다. 그렇더라도 북한이 무너질 날이 가까웠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예전에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모두 빗나가지 않았던가. 한국 정부는 워싱턴의 전문가들 의견대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

당장 내일 북한 체제가 해체된다 하더라도 모두 자유의 품안에 안기라든가, 통일은 대박이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 부록에서 ‘만약 북한 체제가 갑자기 무너진다면’이라는 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일단 총을 가진 자들이 음식과 권위를 장악할 것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피란민은 지뢰가 많고 벽이 높은 휴전선 쪽보다는 중국과의 국경 쪽으로 몰릴 것이다. 정치범 수만명을 감시하는 경비병의 총구가 내부로 향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체제의 범죄 흔적을 지우라는 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국은 강하게 개입하기를 원할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증오하는 미국인의 얼굴을 뒤에 숨기고 일단 변방의 핵시설을 확보한 뒤 추이를 지켜볼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처럼 북한을 한국과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견제할 완충장치로 삼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심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 일가에서 누구를 대리인으로 삼을지, 그동안 중국이 보호해온 북한의 군과 당 출신 망명객 중 누구를 중용해야 할지 계산이 복잡할 것이다. 혹시 감옥에 가거나 특권을 잃을지 몰라 불안에 빠진, 70만에 달하는 군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들은 외부에서 간섭이 들어오는 걸 극도로 경계해 내란이나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우리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국경지대가 난민촌화되는 걸 꺼리고, 한국이 적대국이 되리라는 우려를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한국 중심의 통일을 용인하리라고 보지만 지나친 낙관일 수 있다.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병사 수십만명을 잃은 핵심 이해 당사국이다.

대북정책은 방향이 아니라 깊이의 문제다


독일의 예에 비춰볼 때 통일이 과연 한국이나 북한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냐는 의문도 가질 수 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서독은 통일을 꿈도 꾸지 않았다. 콜 정부 수뇌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 내부에서는 장벽이 무너지는 데 5~10년은 더 걸릴 줄 알았다. 동독 사람들도 어렴풋하게 연방제 정도를 머릿속에 그렸다. 2차 세계대전 연합국 4개국 지도자 중 영국의 대처, 프랑스의 미테랑,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을 반대했다. 미국의 조지 부시만이 찬성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그들을 두 번이나 두들겨 팼는데 또 돌아오는군, 하며 투덜댔다.

하지만 역사는 독일의 통일을 원했다. 동독인이 하루에도 수천명씩 서독으로 향하면서 강대국들은 중부 유럽의 불안정화를 우려했다. 통일 독일의 중립화, 곧 핀란드화를 주장했던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마지막으로 의견을 굽히면서 통독은 급물살을 탔다. 서독은 D마르크와 동독 돈을 1대1로 교환해주는 관대한 조치를 내렸다. 동독을 재건하느라 서독의 국가 부채는 급속도로 늘었다. 북한은 과거 동독보다 훨씬 사정이 열악해 한국이 서독 같은 조처를 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대북정책에서 필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깊이가 아닐까. 그동안 노선을 놓고는 신물 나게 싸워오지 않았던가.


흡수통일 써놓고 달그닥 훅 하면 된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제475호

박근혜 대통령이 또다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부추겼다. 박 대통령은 10월13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 자문위원들에게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하도록 맞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은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도 “(북한 주민들은)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길 바란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 트위터

대한민국 국민들이 누리는 ‘자유’와 ‘행복’을 고용노동부가 그렸다. 10월13일 고용노동부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왜 내 통장은 늘 텅장인 걸까…? 내 월급을 사라지게 한 범인을 찾아랏!’이라는 멘트와 4컷 만화(사진)를 올렸다. 이 만화는 월급 도둑으로 ‘커피, 택시, 세일, 덕질’을 지목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커피는 꼭 마신닷” “이때가 아니면 싸게 못 살 것 같은 느낌!”이란 대사를 추가했다. 요컨대 ‘주머니 사정 신경 쓰지 않고 돈을 펑펑 써대니 돈이 없다’는 소리다.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커지자 고용노동부는 이 만화를 삭제하고, 다음 날 사과문을 게재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고용노동부가 아니라 노예관리부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계몽적인 만화에 세금이 탕진되는 동안 실업률은 1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정운천 새누리당 의원이 해법을 제시했다. 10월1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 의원은 “(실업 대책으로) 전 세계 오지에 우리 청년 약 10만명 보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과거 “대한민국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에 가라”던 박 대통령에 이어, 새 목적지도 추천했다. “아프리카는 나이지리아와 콩고, 동남아시아는 캄보디아”다. 정 의원에 따르면 한국 돈 “100만원이 1000만원 이상 가치가 있는” 멋진 신세계다. 탈북민은 받고 한국인은 내보내는 게 정부·여당의 노동정책 청사진이다.

100만원이 100만원 가치만 갖는 한국에서도, 대통령 말씀처럼 “꿈을 자유롭게 실현”할 방법은 있다. 행복은 마음에 달린 법,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창안한 ‘하면 된다’ 정신이 건재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모토는 세대가 바뀌면서 진화 중이다. ‘의지가 있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에서, 최근엔 ‘마음속에 메트로놈 하나 놓고 달그닥 훅 하면 된다(최순실씨 딸 정 아무개씨의 리포트 내용)’까지 업데이트됐다. 스포츠 전문업체인 N사는 광고 모델로 최순실씨 따님을 고려해봄직하다. “달그닥 훅, Just Do It.”


자포자기 권력자의 '핵 게임', 남북이 똑같다
2016.10.19 11:15:15
[한반도 브리핑] 일상이 된 '핵 선제 타격'…이런 적은 없었다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살맛나는 사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시간이 흐르면 더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요즘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한 가지 공통점은 성별, 세대, 지역, 직업, 계층 등과 관계없이 거의 대부분이 '우리 사회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현재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은 우리에게 좌절감을 주지만, 그것이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무너지는 법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됐나.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나는 현재의 상황을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식의 주장은 하고 싶지 않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을 지도자로 뽑아 정치 실험을 시키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정치적 미풍양속'(?)을 생각하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은 틀림없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민주정치 체제도 국민이 권한과 책임을 나눠 쥐는 체제는 아니다. 나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 그 중에서도 탐욕과 무책임으로 가득차서 우리 사회에 비뚤어진 이념과 지역차별, 안보 관념, 정치공학 등의 '나쁜 바이러스'를 국민들에게 옮기는 정치지도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정치 권력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의 여타 부문과는 많이 차이가 나는 일을 하는 셈이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선생', '교육자'의 역할을 하는 법이다. '교육자'의 사명과 지위를 잃어버린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정치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국가 운영을 어떻게 했는지 동서고금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끔찍할 뿐이다. 고위 공무원이 국민을 '개, 돼지'라고 부르지를 않나,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국가 폭력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망자에게 부검까지 강요하는 부관참시의 폭력을 강요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런데 요새 북한과 한미 양국 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전쟁 불사', 그것도 '핵 선제공격'을 너무도 쉽게 이야기한다. 지금은 '핵 선제공격 위협'이 아예 일상화됐다. 그동안 권력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군사안보 부문을 자신들만의 성역으로 만들어 놓고 지금은 주권적 감시를 벗어나 마음대로 전쟁 위협을 높이는 정책을 결정하고, 먹이사슬을 통해 복마전처럼 얽혀 캐도 캐도 끝이 없는 방산 비리를 저질러 왔다. 국민들의 피땀어린 세금으로 국방 예산을 마련해 놓고, 국민의 자식인 군인들에게는 방탄도 되지 않는 방탄복을 입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폭력도 이런 폭력이 없다.  

정치가 인간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오천년 인류 역사의 경험을 볼 때 어떤 부문에는 인류의 축적된 지혜가 가르쳐주는 정답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정치 지도자들이 대외 관계에서 힘써야 할 일은 '전쟁보다는 평화'라는 것이다. 전쟁은 개인적으로나 사회 전체적으로 우리의 생명과 삶을 한 순간에 앗아간다. 뿐만 아니라 나와 자식들이 죽어 나가는 데 미래에 대한 희망이 들어설 자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자포자기하면서 좌절감을 폭력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미 양국 정부가 앞장서서 '전쟁 위협'을 드높이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 스스로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 식으로 나오는 폭력적인 행동은 아닌지 참으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요새 한반도 국제 정세를 보면, 2013년 봄 한미 합동군사훈련 시기 북한과 한미 양국 간에 '핵 공격 위협'을 통해 '핵전쟁 불가'라는 금기 사항이 깨진 후 한반도에서 '비핵화'는 뒷전으로 사라진 듯하다. 오히려 상호 '핵 선제타격'이 일상화된 언어가 되고 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핵무기의 파괴력을 경험한 인류는 여태껏 세계 어디에서도 핵무기로써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겠다며 '공개적'으로 전쟁 위협을 높여간 경우는 없었다.

한미 양국은 2013년 이래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해서 '맞춤형 억제전략', 4D 작전 전략(탐지, 교란, 파괴, 방어) 등 선제 공격 요소를 강화해왔고, 동시에 미 태평양사령부 '작전계획 5015'와 우리 정부의 대량 응징보복 작전(KMPR) 등 김정은을 목표로 하는 '참수 작전'을 점점 강화해왔다. 이에 대해 북한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거부한 채 빠른 속도로 핵과 각종 탄도미사일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북한이 핵공격을 하면 김정은이 바로 죽는다'는 경고를 하자, 북한은 자신의 군사 계획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순간에 백악관을 공격하도록 되어 있다'고 대응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북한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공개적으로 북한 지도부와 주민을 분리하여 탈북을 유인하는, 이른바 북한 정권 붕괴를 통한 통일 정책 추진을 추진하고 있다. 한 야당 대표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그러한 공개적인 탈북 유도 언급은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  

▲ 미국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운데)가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인 지난 9월 13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미 양국의 지도자들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고, 북한에게 더욱 혹독한 제재를 가해야 하며,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게 압력을 넣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북핵 문제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지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협'만 높아지고 있다. 이는 머릿속에서 추론을 통해 관념적으로 내린 결론이 아니다. 실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지켜보면서 좌절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북핵 문제 해결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성급한 마음에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든지, 미국의 전술핵을 재도입, 재배치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결코 해결책은 아니다.  

북핵 문제는 이미 '오래된' 문제이고 또 수많은 나라들과 그들의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져 있기 때문에 단칼에 혹은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기를 원한다면, 이 문제를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놓고 해결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북한과 한미 양국이 '선제 핵공격 위협'부터 서로 내려놓고, 상대방 지도자에 대한 '참수작전'과 같은 표현을 '공개적'으로 더 이상 하지 않으며, 당장 북한이 추가적인 핵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대화와 협상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이후에 비록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대단히 복잡한 과정이 되겠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차근차근히 진행해 나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와 국가가 너무도 익숙히 사용하는 국가 폭력을 통제하고 제거해야 한다.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그마한 진전이라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군사안보 부문의 성역을 없애고 이 분야의 '힘의 사용' 등 정책 결정을 국민의 주권적 감시하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 특히 최근 한반도 전쟁 위협의 고조, 그것도 핵전쟁 위협의 고조를 생각하면, 군사안보 부문에 대한 국회와 정당, 정책 커뮤니티, 시민단체의 감시 역할이 더욱 엄중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