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김정은 통제 불능? 北이 새누리당인가" - "한반도 파멸 막으려면 역겨워도 대화해야"

일취월장7 2016. 9. 23. 11:09

"김정은 통제 불능? 박근혜, 北이 새누리당인가"

2016.09.22 07:30:33


[정세현의 정세토크] "美 '핵동결' 메시지…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지난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국에서는 독자 핵무장론, 전술핵 재배치, 핵잠수함 도입 등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문제의 원인인 북한의 핵을 없애겠다는 생각보다는, 사태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북한 핵 무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만 집중돼 있는 대응이다.

'혈맹'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대응은 이와 달랐다. 10일(현지 시각) 미국 일간지인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핵 동결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시작으로 16일(현지 시각)에는 미국의 대외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외교협회(CFR)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며 '핵 동결'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급기야 18일(현지 시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핵 동결을 거론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변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며 "북한은 2013년 3차, 2016년 1월 4차, 2016년 9월 5차 핵실험을 각각 진행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됐다고,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가 없는 상황" 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지난해 1월부터 핵 동결을 조건으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단을 이야기했는데, 미국이 이를 얼마나 수용할지가 관건"이라며 "미국이 핵 동결과 관련한 북한의 조치를 봐가면서 훈련을 중단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실제 북미 간 비공개든 물밑이든 접촉이 진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북한에 대한 제재 일변도로 대응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릴 수도 있다. 정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로 봤을 때 케리 장관이나 미국의 CFR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추석 연휴가 끝난 이후 예정됐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북핵 문제에 이른바 '올인'을 하겠다고 밝혔다"며 "한 쪽(미국)에서 핵 동결로 대화 테이블에 나갈 수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루한 현실 인식을 보이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의 정신이 '통제 불능'이라고 했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아니 그럼 김정은을 통제하려고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박 대통령이 북쪽을 향해서 소위 '레이저'를 쏘면 김정은이 벌벌 떨어서 핵 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본데, 북한은 유승민 의원도, 새누리당도 아니다. 박 대통령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케리 장관이 어디까지 생각해서 핵 동결이라는 말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얼른 여기에 올라타서 북한이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될 때까지 미국 중국을 끌고 들어가야 한다. 일단 핵 동결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고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해 1월 북한은 유엔 차석대사의 입을 빌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핵 시험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당시 한미 양국은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는데요.  

그런데 최근 북한의 핵 동결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북한이 아닌 미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 장관 회담 모두발언에서 진지한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북한이 동결에 동의하고, 더 이상의 도발적 행동을 하지 않으며, 특히 더 이상의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미국 대북 정책이 변화하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그런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정말 이러다가 북한이 6차, 7차 핵실험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이런 발언이 나온 것 같은데, 핵 실험을 동결하면 대화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진전입니다.  

다만 미국이 북한의 조건을 어디까지 들어줄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미국이 북한의 핵 동결을 언급하기에 앞서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스스로 핵 실험을 멈추겠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핵 동결 카드로 북한과 협상을 하려고 해도 북한의 이 요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케리 장관의 발언이 정말 미국의 본심이라면 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군사 훈련의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협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핵 동결과 관련한 북한의 조치를 봐가면서 훈련을 중단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 핵 국면에 갑자기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 협상을 시작하면 북미 간 대화가 먼저 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측 간 이야기가 오고 가면 4자나 6자회담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실제 이러한 식의 협상이 열린다고 해도 따라 갈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데 있습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유엔 총회에 참석해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는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고, 계속 제재와 압박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일단 지금 상황에서 보면 지난해 북한이 제안했던 것을 미국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을 북한에 던진 셈인데요. 예전 사례로 비춰봤을 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요? 양자 간에 비공개 접촉을 시작할까요, 아니면 북한이 역제안을 하게 될까요?

정세현 : 역사가 똑같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지만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을 때 미국은 초기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북한과 비공개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북미 양국의 비공개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굉장히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러면서 북미 접촉을 막으라는 식으로 지시했습니다.

미국은 자국의 대외 정책 맥락에서 볼 때 소위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벌어지면 안됐기 때문에 초기 협상을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러한 판단 없이 적대적 대북관과 북한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근거해서 북한을 대화로 다루면 안되고 제재와 압박으로 태도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의견은 수용하지 않고 북한과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이런 행보를 견제하거나 중지시킬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번 케리 장관의 발언과 윤병세 장관의 행보를 보니 23년 전 상황과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 아닌가 싶은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 존 케리 국무장관이 1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박근혜 정부는 계속 제재와 압박 일변도로 움직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체면 문제 때문에라도 미북 간 비공개 접촉을 막기 위해 김영삼 정부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엇박자를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내년에 미국의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미 간 초보적인 수준의 대화를 하게 됐을 때 한국 정부만 '낙동강 오리알' 되는 겁니다.

김영삼 정부 때 한국 정부가 계속 엇박자를 내니까 미국은 한미 간에 '한미 공조'라는 말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뜻에 따르라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다루는 일종의 전술인데, 미국이 이렇게 나오면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합니다.

프레시안 : 케리 장관의 발언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외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외교협회(CFR)는 최근 열린 토론회에서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케리 장관과 마찬가지로 '핵 동결'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북한의 핵 능력 동결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에 합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세현 : 2010년 말부터 미국이 전략적 인내를 꺼내 들었는데, 이후 북한은 2013년 3차, 2016년 1월 4차, 2016년 9월 5차 핵실험을 각각 진행했습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됐다고,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CFR도 여기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하고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리고 오바마 정부와도 교감이 있었을 겁니다. CFR이 국무부가 내놓고 하기 곤란한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무부가 동맹국들한테 불편한 요구를 하거나 정책에 제동을 걸 때 CFR이 소위 미국 내 분위기가 어떤지에 대해 메시지를 쓱 던지는 겁니다.

물론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말이기 때문에 실제로 북한과 협상을 시작할 수 있겠느냐는 관측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의 핵 실험 주기가 짧아진 상황에서 압박 일변도로만 나갈 경우 올해 또 한 번의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정권 교체기에 정책 전환이 쉽지 않다는 틈새를 이용해서 북한이 핵 능력을 강화하면 미국의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됩니다. 또 실제 북한은 대화를 위한 압박 차원에서라도 앞으로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잠수함 탄도 미사일(SLBM) 발사 등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 오바마 정부는 핵 동결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면서 북한에 일종의 '미끼'를 던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북한 행동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원하는 대로 북한이 움직이려면 물밑에서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비공개 또는 유엔 채널을 통해 북미 양측 간 교감이 있다면 북한이 행동을 자제하겠지만, 미국이 이야기는 꺼내놓고 북한에 대화 제안을 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미국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또 다시 위협적인 행동을 할 것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연내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정세현 : 핵 동결을 조건으로 한 대화가 진전이 있으면 핵 실험은 안할 거라고 봅니다. 그런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 핵 실험을 해버리면 미국의 입장을 어렵게 하고 더 이상 북미 접촉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은 이제 비핵화가 아니라 핵 보유국으로서 핵 기술을 전파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협상이 가능할까요? 

정세현 : 사실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이른바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그대로 이행했다면 북한이 핵 실험을 실행하지 않고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9.19 성명을 미국이 깼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북한은 결국 1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TV는 9일 핵무기연구소 성명을 통해 5차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TV


여기에 미국의 전략적 인내가 북한이 핵실험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준 셈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2010년부터 모습을 드러낸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오늘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근본 원인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입장은 핵 동결과 비확산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자체적으로 핵 무기를 만들지만 다른 곳에 주지 않겠다는 것이 비확산인데 그 정도까지 의사를 표명했다면 한미 양국이 손잡고 어떻게 협상 하느냐에 따라 북한의 핵 동결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케리 장관이 어디까지 생각해서 핵 동결이라는 말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얼른 여기에 올라타서 북한이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될 때까지 미국 중국을 끌고 들어가야 합니다. 일단 핵 동결 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고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이런 생각을 안하고 있으니까 걱정입니다. 현 정부는 미국이 대북 문제에 대해 물렁물렁해진다고 착각하면서 이럴 때 일수록 우리라도 대북 제재 강도를 높이고 압박 고삐를 죄어야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프레시안 : 북미 간에 협상이 시작된다면 안보리 제재도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안보리 제재가 현실적으로 힘이 빠지긴 했지만 어떤 제재안이 나오게 될까요?

정세현 : 한미일 3국은 개별 국가 차원에서 대북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방향을 틀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개별 제재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보다 강한 제재를 만들어내기 어렵습니다.  

개별 제재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이 '세컨더리 보이콧'인데요. 미국이 이를 시행하면 중국 기업이나 은행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개별 제재를 반대하고 있고, 만약 이것이 실행된다고 하면 유엔 안보리 제재에 반대하겠다고 선을 긋고 있는 겁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압박 수단으로 쓰였다고 봅니다. 중국 기업이나 은행이 실질적인 타격을 입으면 중국이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결국 세컨더리 보이콧도 미국이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제 쓸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도 생각 안 하고 중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대북 제재에 동참할 거라고 하는데, 아니 대북 제재가 무슨 쓰리쿠션입니까?

김정은은 '통제 불능'?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는 케리 장관의 발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북한과 미국은 대화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 대비하려는 생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로 봤을 때 케리 장관이나 미국의 CFR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건 소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종의 자기 자신의 무오류성에 대한 집착입니다. 미국처럼 시스템이 움직이고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정책에 반영되는 사회에서는 성과가 나지 않는 정책을 전환시킬 수 있는데, 박근혜 정부처럼 1인 통치가 강화된 상황에서는 이런 변화가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추석 연휴가 끝난 이후 예정됐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북핵 문제에 이른바 '올인'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 쪽에서 핵 동결로 대화 테이블에 나갈 수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루한 현실 인식을 보이고 있는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을 소위 '마인드 컨트롤'로 다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후삼국시대 궁예의 '관심법'이 떠오르더군요. 박 대통령은 김정은의 정신이 '통제 불능'이라고 했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아니 그럼 김정은을 통제하려고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북쪽을 향해서 소위 '레이저'를 쏘면 김정은이 벌벌 떨어서 핵 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헀나 봅니다. 북쪽에 계속 비핵화 주문을 외워대면 김정은이 꼬리를 내리고 정책을 바꿀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통제 불능'이라는 단어까지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박 대통령의 대북관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북한의 자율성은 무시하고 북한을 자기 손아귀에 넣어서 주무를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유승민 의원도, 새누리당도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 당시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라오스에 방문 중이던 박근혜(가운데) 대통령이 핵실험 관련 사항을 보고받고 있다. ⓒ청와대


프레시안 : 이 와중에 박근혜 정부는 수해를 입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언급하면서 민간단체의 지원도 막고 있습니다. 북한 붕괴에 매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정세현 : 김영삼 대통령 집권기였던 1995년, 당시 정부는 쌀 15만 톤을 지원했습니다. 북한 정부가 식량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유엔에 지원을 요청했고, 일본이 50만 톤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하니 지원을 못 하겠다는 것이 통일부 입장인 것 같은데 1995년에도 북한은 지금 박 대통령에 쏟아내는 공격 못지않게 험악한 단어를 써가며 김영삼 대통령을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 대통령은 북한의 대남 지원 요청이 없었는데도 일본도 지원하고 외국 구호 단체도 움직이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면서 대북 쌀 지원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런 문제는 대통령의 결심이 중요한데, 김영삼과 박근혜의 차이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대규모 지원도 김영삼 대통령이 지원 결정을 내린 주요한 이유가 됐습니다. "남들 다 주고 일본도 주는데 우리만 안주면 뭐가 되노? 동족인데"라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른 측면이 있긴 합니다. 당시에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로 북핵 문제가 수면에서 많이 가라앉은 이후였습니다. 지금은 북핵이 동북아를 휘감고 있는 상황이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국은 핵 동결을 발판으로 협상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보이면 빨리 알아차리고 여기에 대응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움직임을 몰라서 이런다기 보다는, 북핵으로 조성된 안보 정국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정치적 판단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닐까요? 

정세현 : 국내 정치용이 다분합니다. 안보 정국으로 내년 대선까지 끌고 가고 싶다는 겁니다. 이걸 야당이 간파하고 치고 나가야 하는데 그럴 동력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려고 해도 한국 정부가 이렇게 막아선다면 북미 대화가 어려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 지난 2009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교환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지 않았습니까?  

정세현 :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미 간 대화를 막으면 결국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만 강화되는 겁니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박근혜 정부가 북미 대화를 결사 반대하고 나서면 미국이 대화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해도 중요한 문제 당사자 중 하나인 한국이 극렬하게 반대하면 회담이 이뤄지기 힘들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내년에 지금보다도 더 강한 대북 적개심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평양발 북풍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발 북풍이 불 가능성도 있습니다.

▲ 북한이 지난 20일 신형 정지 위성 운반 로켓의 엔진 분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왼쪽 위, 아래) 국무위원장이 엔진 분출 시험(오른쪽)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노동신문


프레시안 : 북한이 핵 실험을 두세 번 더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정세현 : 그렇다고 해도 문제 해결의 최대 피해자이자 해결 수혜자인 한국이 반대한다면 미국도 나서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이 안보 지상주의에 입각한 정권이라면 미국 입장에서는 대(對) 한국 무기 수출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1980년대에는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미국의 말 한마디가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국력이 커지면서 이런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미국이 따라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햇볕정책을 썼을 때도 그랬고, 심지어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한국이 설득하니까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북한과 관련 사안에 있어서 한국 정부의 목소리가 존중되더니 이명박 정부 때 와서는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1993년에는 정권 초였기 때문에 동력이 있었고 지금은 대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한 일종의 디딤돌 정도로 말을 꺼냈는지는 모르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비공개 접촉 통해서 다음 정부 위해서 판을 깔아 놓으려고 하기 전에는 북한도 얼른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북한 핵은 공격용?  

프레시안 : 여당에서 핵 무장론이, 또 야당 일부에서는 전술핵 재배치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정치인들이 집단적으로 치매에 걸린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정세현 : 정치인들이 바보는 아니고,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것도 일종의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국민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것이죠.  

프레시안 : 새누리당의 홍문종 의원은 북한이 핵을 가졌는데 이 핵으로 남한을 공격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면서 우리가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핵은 미국의 핵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억지력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측면이 강한데요. 이런 인식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억지력으로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치지 못하기 위한 억지력으로서의 핵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걸 공격용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남한의 사드는 억지력이라고 하면서 북한의 핵은 공격용이라고 하면 이것도 모순 아닙니까? 남한이 하는 것은 무조건 방어적‧연례적인 것이고, 그러면서 북한의 사소한 군사적 움직임은 공격적이고 위험한 것이고 도발이라고만 성격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45년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을 투하한 이후 지금까지 실전에서 핵이 쓰인 적은 없습니다. 핵은 실제로 사용하려고 만든 무기가 아닙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미국에 의해 최초의 핵이 사용된 뒤에 소련은 뒤늦게 핵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냉전이 지속되면서 양측의 핵 무기 개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후반 미소 양측은 핵무기 감축에 나섰습니다. 핵 무기가 1만 개 넘게 있어봐야 결국 다 쓰지도 못하는데, 쓰지도 못할 무기를 개발만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판단이었죠. 억지력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공격용으로는 소용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미국이 7000개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마당에, 필요하면 한반도 해역에 얼마든지 가지고 나올 수 있습니다.  

북한이 가령 10개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10발을 다 쓰면 그것의 수십, 수백 배로 보복을 당합니다. 그 보복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핵무기를 사용할까요? 북한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는 못합니다.  

핵무기 개발 경쟁이 고도화되고 공포의 균형이 일어나면서 더 이상 공격성이 없어져 버리고 방어적인 성격만 남았는데 한국에서는 공격성을 가지는 것으로 인지되니까 올바른 대북 협상 전략이나 대북 정책을 수립할 수가 없는 겁니다.  

프레시안 : 사실 군사력이나 경제력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북한을 압도하고 있는데요. 북한의 군사적 행태에 대해 과도하게 염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국방 문제만 나오면 우리는 한 없이 작아집니다. 우리의 1년 국방예산이 38조 원 정도고 북한의 최근 연간 GDP 총액이 40조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군사적인 문제만 나오면 북한은 가공할만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간주합니다.

사실 강한 군을 가지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북한이 군사력은 강하다구요? 가난한데도 군사력을 키우다 보니 점점 더 가난해지고 그러니까 곧 망할 것이라는데 이건 너무 해괴한 논리입니다. 상황에 따라 논리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논리로 상황을 분석해야 합니다.          



"한반도 파멸 막으려면 역겨워도 대화해야"

2016.09.22 17:59:13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현안진단] 북한의 5차 핵실험과 한국의 대응 방향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북한을 향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을 "통제 불능의 정신상태"라고 비난하며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잘라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22일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저와 정부는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꺾고,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강경 일변도의 드라이브에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냉정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주장들, 즉 '제재와 압박 만능론', '북한 체제 붕괴론', '한국의 핵무장 및 전술 핵 재배치론'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북한의 무모함에 분개하고 흥분하면 문제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현실적 대책도 찾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박 대통령과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을 빌미로 사드 배치 결정을 정당화하고 있는 데 대해 송 전 장관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수도권은 북한의 공격에 노출시켜둔 채 몇 주일 후에야 부산으로 들어올 미군 증원군 보호를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가당치 않다"고 비판했다. 

송 전 장관은 이어 "한국이 한반도의 주인 노릇을 하며 파멸적인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역겨운 것이라도 선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서는, 전 세계 핵 비확산 체제를 강화해야 하는 미국,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이 긴요한 중국,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던 하겠다는 북한, 이 세 행위자의 요구를 담아내는 한국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협상해봐야 북한에게 핵 개발 시간만 준다며 우려한다. 그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면서 "북한의 핵 실험은 양자든 다자든 협상이 좌초되었을 때 나왔다"고 했다.

그는 특히 6자회담의 재개와 9.19 공동성명 체제로 복귀를 촉구하며 "달리는 북핵 기차를 뒤로 돌리려면 우선 정지시켜야 한다"면서 "한국이 한‧미 동맹을 동북아에서 대결보다 협상 지향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한국이 이끌어야 할 최대의 과제"라고 했다.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의 '현안진단'에 실린 송 전 장관의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싣는다.

북한의 5차 핵실험과 한국의 대응 방향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연속 실험하자 전 세계가 어의 없어하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북핵 불용'을 강조해온 미국과 중국도 서로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는 마치 하나의 유리 건물에 두 가구가 살고 있는데 불만에 찬 한 쪽이  소란을 피우자 다른 쪽에서 차단막을 만들어 압박하고 상대는 더 큰 난동을 부리는 형국이다. 바깥 동네 사람들은 편을 갈라서서 유리 집이 깨지면 서로 상대 책임이라고 미리 떠넘기면서도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사태는 없도록 하자고 서로 눈짓한다. 그러나 건물 안의 두 가구는 "유리 집에 살면서 돌팔매질 하지 말라"는 격언을 무시하려 든다. 난동을 피우는 쪽에서는 잃을게 없다고 치지만, 상대적으로 크게 성공한 다른 쪽도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 누구보다 한국이 냉정해야 한다. 북한의 무모함에 분개하고 흥분하면 문제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현실적 대책도 찾기 어렵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제기되고 있는 가설들부터 살펴보자.

첫째, 대북 압박을 계속 가중시키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제재 하에서 먼저 행동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전쟁 이래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북한을 적성국으로 지정하여 제재해 왔다. 2005년에는 미국이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함으로써 사실상 포괄적 금융제재효과를 가져왔다. 이어서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 실험을 감행하자 유엔은 헌장 7장에 따라 회원국 모두가 대북제재를 가하도록 했다. 그 후 세 차례의 핵 실험 시 마다 유엔은 "역대 최강"이라는 수식이 달린 추가 제재로 압박했지만 북한은 버텨왔다. 

유엔의 대북 제재는 미국과 중국의 타협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숨 쉴 공간을 남겨둔다. 게다가 생존 문제가 걸리면 개인이나 체제나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강해지는 속성이 생긴다. ‘제재는 게으른 사람들의 외교수단’이라는 말이 있다. 제재목록을 정해주고 일선 집행기관에서 집행을 독려하면 된다는 정책 결정자들의 심리를두고 하는 말이다. 북한에 관해서는 이 비판이 맞았다. 

둘째, 북한 체제가 종식되어야 핵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좌절에서 나오는 희망적 사고이다. 북한이 극도로 불합리한 국가 자원 배분을 계속하는 한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압박과 고립을 먹고 사는데 익숙해진 체제여서 언제일지 알 수 없다. 더욱이 중국은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한반도의 미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한, 북한이 지금 같은 체제로 실전배치 가능한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붕괴보다는 낫다고 판단한다. 미국의 대중 봉쇄전략이 강화되는 추세에서 중국이 북한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해 협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셋째, 한국의 독자 핵 무장이나 전술 핵무기 반입으로 한반도에 '인도-파키스탄'형 공포의 핵 균형을 만들자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비핵 정책을 한·미 동맹의 불가결한 요소로 본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고, 2004년 한국 원자력 연구소의 밀리그램(mg) 단위 무기 급 플루토늄 추출과 우라늄 분리 실험이 드러났을 때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고 나선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어떤 경우에도 한국, 일본, 대만으로 이어질 핵 도미노 가능성을 용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약 동맹국(treaty allies) 중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핵을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이 핵 무장하려면 물론 주한미군 철수도 각오해야 한다. 전술 핵 무기 재배치도 '확장 억지'를 원칙으로 하는 미국의 전 세계 핵전략을 기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으로서 미국의 선택지가 아니다. 독자 핵무장이나 전술 핵 무기 배치 주장은 중국에 대한 압박에 의미를 두고자 할 것이나 미국의 정책을 알면 공허하게 들린다.

넷째, 핵 무장이 아니더라도 재래군비 강화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실질 군사비(징병제에 의한 인력예산 반영)는 이미 세계 8위에 해당한다. 30여 년 간 매년 북한의 10배 이상에 달하는 군사비를 투입하고 있다. 군비 경쟁은 힘의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상대 사이에 결말이 난다. 1차, 2차 세계 대전과 냉전의 종식이 그랬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하단에 있는 남과 북의 경쟁은 결말 없이 출혈만 계속될 뿐이다. 다만, 최종적으로 군사적 수단이 불가피한 경우를 대비해서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이 능력도 독자적 사용권이 없는 무기도입보다 군사 작전권 전환이 우선해야 가능할 것이다.

다섯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처럼 담장을 높이 쌓을 것은 주장한다. 동북아에서 미‧중 대립의 구체적 상징이 되고 있는 사드는 검증되지 않은 실제 효과보다는 국가 안보의 부작용이 훨씬 크다. 대량살상무기가 동원되는 초단기 전쟁을 상정하면서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수도권은 북한의 공격에 노출시켜둔 채 몇 주일 후에야 부산으로 들어올 미군 증원군 보호를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가당치 않다.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은 국내 여론과 군부의 반발 때문에도 한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가 어렵게 된다. 잠시 심리적 효과는 볼지 몰라도 장기적이고 깊은 상처를 가져 올 것이다.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고자 한다면 먼저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맞다. 지금 우리 국내에서 마치 사드의 찬반 여부를 아군과 적을 식별하는 징표(shibboleth)가 되고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이 한반도의 주인 노릇을 하며 파멸적인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역겨운 것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종국적으로 대북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폭넓은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명분을 축적해야 한다. 그 명분은 외교적 수단을 소진했다는데 동의할 때 나온다. 

1989년 8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설이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 동기를 분석하고 평가를 공유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정치적으로 정권의 권위와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군사적으로 재래군비의 열세를 보완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원자력 에너지 확보를 위해 핵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4반세기에 걸쳐 이 동기의 충족과 핵 포기를 주고받는 방안을 협상해왔다. 실패를 거듭한 후 얻은 교훈이 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를 짚어내고자 한다. 

중국의 협조 없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길을 열기 어렵다. 반대로 중국도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불안정이 중국의 국가 발전 환경을 저해한다고 본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결합시키는데서 해결을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병행하자고 제안 중이다. 11년 전 베이징의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 성명의 요체이다. 남·북·미·중의 공통인식을 반영한 것이었고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북한만이 이 합의를 이탈하고자 하지만 북한에게 결정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이 이탈에 반대하고 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서는, 전 세계 핵 비확산 체제를 강화해야 하는 미국,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이 긴요한 중국,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던 하겠다는 북한 – 이 세 행위자의 요구를 담아내는 한국의 전략이 필요하다.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면 미‧북 관계와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받쳐 줘야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미국은 금과옥조로 삼는 NPT 체제를 북한이 정면 위협하는 상태에서는 관계 정상화는 커녕 심각한 대화조차 어렵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진지하게 비핵화 의지를 밝히거나 중국이 북한 설득을 합작하자고 발 벗고 나서지 않는 한, 북한과 협상하기 어렵다.

중국도 앞마당 관리를 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중국은 과거 6자회담이 비틀거릴 때 마다 "미국이 달나라까지 가면서 왜 평양은 못 가느냐?"고 불평했다. 미국이 다가서 주기를 바란다. 결국 미‧북‧중이 필요로 하는 요소들의 접목은 한국만이 할 수 있다. 비록 개성공단 폐쇄를 포함한 대북 제재의 최선봉에 서왔기에 행동반경이 좁아졌지만 아무리 늦어도 더 늦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협상해봐야 북한에게 핵 개발 시간만 준다며 우려한다. 그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북한의 핵 실험은 양자든 다자든 협상이 좌초되었을 때 나왔다.

2006년 10월 1차 실험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6자회담이 1년 여 좌초된 상태에서, 2009년 5월 2차 실험은 북한이 신고한 핵 시설과 물질에 대한 검증의정서 문제로 2008년 말 6자회담이 다시 중단된 후에, 2013년 2월 3차 실험은 미‧북간 소위 2.29 합의가 군사미사일과 위성발사로켓의 정의 문제로 파기된 상황에서 각각 나왔다. 이어 2016년 두 차례의 실험 기간에는 아예 협상이 단절되고 있었다.  

북한은 무엇보다 중국이 동북아 정세 안정의 핵심 장치로 간주하는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핵 실험을 감행하지 못했다. 대놓고 중국의 뺨을 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6자회담을 재개하여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수립을 골자로 하는 9.19 공동성명의 이행과정에 들어가더라도 북한의 벼랑 끝 행동과 지지부진한 협상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달리는 북핵 기차를 뒤로 돌리려면 우선 정지시켜야 한다. 일단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지시키는 과제를 중국이 짊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미국과 한국도 중국에 최소한의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다.  

결국 한국이 한‧미 동맹을 동북아에서 대결보다 협상 지향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한국이 이끌어야 할 최대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