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일하지 않는 자'? 없다"

일취월장7 2016. 7. 23. 11:36

"'일하지 않는 자'? 없다"

2016.07.23 07:06:07


[프레시안 뷰] 기본 소득을 통한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검사들이 희망하는 엘리트 코스를 걷던 검사장이 구속됐다.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주식을 매입했고, 100억 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남겼다. 교육부 고위 관료는 국민을 '개돼지'로 지칭한 일로 파면처리 됐다.

 

파면된 나 씨는 영화 <내부자들>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어제(7월 21일) 독립 언론 매체를 통해 국내 최대 기업집단 관계자의 성매매가 담긴 영상이 보도됐다. 영상 속 그는 2010년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당시 그 기업에서 오랜 기간 법무팀에 있었던 김용철 씨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통해 추악한 기업 비밀들을 공개하던 시점이었다. '정직'이라는 말에 다른 의미가 담긴 게 아닐까 싶었다. 

영화 <내부자들>은 재벌과 언론의 결탁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다양한 군상들을 잘 그려냈다는 평을 받으며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로 기억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가상인지에 대한 나의 의문은 요 며칠 사이 깨끗하게 정리됐다. 정의로운 검사 부분은 확실히 환상으로 구성된 장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전관예우를 적극 활용하고 '부당수임'과 '탈세'를 통해, 100여 채의 오피스텔을 소유한 사람도 검사 출신이었다.

사람들은 기사와 관련한 댓글을 통해 사회에 대한 불신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공개된 것 아니냐는 음모론을 세우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 권력을 가진 자들은 같은 일을 벌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진 사람들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 역시도 그런 자리에 있으면 저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조롱과 비난을 하면서도 동조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기이한 풍경이 한국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다.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의 욕망을 정의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마르크스가 말하길, 민주주의는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정체를 말한다. 시민이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의 현실을 결정한다. 반면 군주가 지배하는 왕권 사회에서 시민은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일 뿐이다. 시민 개개인의 현실을 결정하는 것은 시민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거주하며,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소수의 권력자다. 내 신체를 포함한 모든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이 일상이 된 공화국 시민의 삶이 왕정 시대 백성의 삶을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지나친 과장만은 아니다. 

19세 청년이 지하철 자동개폐문을 수리하다 죽음을 맞이하고, 40대 가장이 안전 장구 하나 없이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다 떨어져 죽고, 70대 노인은 열기 빠져나가지 않는 집에서 전전긍긍하며 여름을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사회 자체의 와해를 염려해야 할 수도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태도는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나 웃으며 할 말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사람을 만든다. 권력을 지닌 자들이 사회를 대상으로 마음껏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은 애초부터 인간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그런 짓을 해도 괜찮은 제도를 우리가 공정하다고 믿고 연기하면 살아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공정한 제도로 가득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부동산 임대료의 끝없는 상승을 보며 욕을 하면서도, 혹여 내가 가진 알량한 아파트의 가격이 떨어질까 불안해한다. 스타벅스 커피값이 비싸다고 투덜대면서도 커피 가격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 임대료 문제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나와 내 가족만의 안락함에 만족하며 안심하고 살아갈 때 사회는 무너지고 있다.

녹색당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기본 소득을 주요 정책으로 내놓았다. 많은 분이 재원의 문제도 있고 하니 아직 기본 소득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주셨다. 진보정당의 한 후보는 토론회에서 기본 소득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총선이 끝난 후 지금까지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OECD 평균보다 두 배 가깝게 높은 수준이다. 고용시장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30%에 가까운 자기 고용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들의 많은 수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자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됐기에 마지막 선택이 자영업인 사람들이다. 기본 소득 제도는 이런 사람들에게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시장의 안전 장치와 다를 바 없다.  

사회가 기능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이 있다. '가사노동'·'보육'·'통근'·'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자본과의 계약을 통한 '임금노동'화 되지 못했지만, 그 모든 것들의 배후가 되는 '그림자 노동'이 기본 소득을 통해 가치를 존중받게 되는 것은, 사회가 사람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과연 사회를 위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 당연한 인식의 전환 앞에서 우리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권력은 자신의 욕망마저 통제하지 못하고, 수치심마저 상실해버린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경제성장의 종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제성장을 동력 삼아 성장해 온 자본주의 문명 역시 같은 운명이다. 이런 변화의 시기야말로 시민의 자각과 연대를 통한 힘이 필요하다. 기본 소득제를 도입하자는 것은 올바른 시민민주주의를 세우자는 것의 다른 말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99%의 시민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