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2020년, '노인 폭탄'이 터지면 끝이다! - 어떻게 죽을것인가..

일취월장7 2016. 4. 30. 09:52
2020년, '노인 폭탄'이 터지면 끝이다!
[프레시안 books] <2020 하류 노인이 온다>
이대희
기자
| 2016.04.21 07:00:30

야마구치(69) 씨는 도쿄 도의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간다(우리의 PC방과 같은 일본의 인터넷 카페 중에는 숙박이 가능하도록 젖힐 수 있는 큰 의자를 구비한 곳이 많다. 적잖은 홈리스가 이곳에서 잔다). 그가 예상한 노후는 아니다. 그는 퇴직 전 연 500만 엔(5000만 원) 이상을 벌었다. 자녀도, 아내도 없었다. 62살에 조기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포함해, 3000만 엔(3억 원) 정도의 저축도 마련해뒀다.

갑작스런 심장 질환이 발목을 잡았다. 치료하느라 7년을 보낸 후, 그는 홈리스가 됐다. 안정적인 노후의 꿈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가토(76) 씨는 사이타마 현에서 월세 3만5000엔(35만 원) 짜리 방에 혼자 산다. 결혼한 적은 없다. 그가 40대일 때 부모님이 차례로 병에 걸렸다. 10년을 간병했다. 가토 씨가 늙자, 남은 건 매달 나오는 후생연금 9만 엔(90만 원)이 전부였다. 저축액 500만 엔(5000만 원)은 늙은 제 몸에 들어가는 약값으로 모두 사라졌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산나물을 캤다. 도쿄 도에 인접한 큰 도시에서 말이다. 

이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노년의 삶은 순식간에 망가진다. 삶의 조건이 조금만 어긋나면, 곧바로 '하류 노인'이 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2013년 국민 생활 기초 조사 개황'에 따르면, 일본 전 세대의 연간 평균 소득은 537만2000엔인데 반해 고령자 세대는 309만1000엔이었다. 노인이 된다고 쓰는 돈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비, 요양비 등 젊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더 든다. 삶은 자연히 빈곤해진다.

<2020 하류 노인이 온다>(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홍성민 옮김, 청림출판 펴냄)는 섬뜩한 이야기를 담았다. 고령화 문제로 가뜩이나 출구 없는 미로에 빠진 일본에 빈곤 노령의 디스토피아가 현재화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일본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5%에 달한다. 이들이 빈곤의 늪에 빠진다는 건, 곧 일본 시민의 삶이 빈곤의 덫에 빠진다는 얘기다. '생활 보호 기준 정도 소득으로 생활하는 고령자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고령자'를 뜻하는 '하류 노인'이라는 말이 신조어로 등장하는 까닭이다. 

▲ 노인 빈곤은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동자동 쪽방촌에서 외로운 하루를 보내는 노인의 삶을 바꿔야 미래를 바꿀 수 있다. ⓒ프레시안(이대희)


저자는 비영리 단체 '홋토플러스'의 대표로서 12년간 빈곤 노인 상담을 이어왔다. 그 경험담을 바탕에 두고 다양한 통계 자료를 얹어 쓴 이 책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하류 노인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다.' 게을렀던 사람, 불운한 가정사를 겪은 사람만 불행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복지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일본에선 늙으면 곧 하류가 된다. 따라서 저자는 단언한다. 조만간 '노후 붕괴' 시대가 오리라고.

병에 걸리면 삶의 질은 급전직하한다. <2014년판 고령 사회 백서>에 따르면, 2010년의 유소자율(인구 1000명당 최근 질병이나 상해 등으로 인한 자각 증상이 있는 사람 중 입원자를 제외한 비율)은 471.1이다. 전체 고령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자각 증상을 호소한다.

늙으면 우리 상상 이상으로 질병에 걸리기 쉽다. 아직 젊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병이 완쾌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를 보면 의사인 저자가 노령의 병에 관해 이야기한다. 늙으면 병은 죽을 때까지 따라온다. 완쾌란 없다. 증상을 완화하는 게 곧 치료다. 약값, 병원비가 계속 빠져나간다는 이야기다. 이를 계산에 두지 못하면 생활은 순식간에 파탄난다. 

이제 자녀의 돌봄도 기대하기 어렵다. 자녀들은 흩어졌고, 그들은 제 앞가림하기도 바쁘다. 자녀의 삶 역시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일본 노동자의 37.4%가 비정규직이다.

요양 시설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일본에서 특별 양호 노인홈(사회복지법인 등이 운영하는 시설로, 요양이 필요한 65세 이상의 고령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에 입소하려면 보통 3~5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운좋게 들어간다손 치더라도 간병인이 필요하다. 집에서 살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질은 떨어진다. 좋은 병간호를 받으려면 입소료만 1000만 엔(1억 원)에 달하는 유료 노인홈을 이용해야 한다. 돈 많은 사람만 이용 가능하다.

노령 빈곤의 문제는 노령 세대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일본 전 세대의 미래다. 이대로 간다면 지금 세대가 노인이 될 때는 더 비극적 미래가 기다릴 뿐이다.

우선, 청년 세대의 수입이 감소했다. 따라서 노인이 된 후 그들이 받을 연금 수령액도 줄어든다. 지금도 연금만으로는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현재 노동 연령이 은퇴 후 연금에 의존해서 생활한다면, 하루 두 끼도 떼우기 어려우리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특히 연수입 400만 엔(4000만 원) 이하의 노동자는 은퇴 후 하류 노인이 될 확률이 크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연봉 400만 엔은 현재 일본 노동자의 평균 소득 수준이다. 이들이 은퇴 후 받을 연간 합계 지급액은 약 198만 엔(1980만 원)이다. 월 환산액은 16만5000엔가량이다. 일본에서는 확실한 빈곤선이다. 

은퇴 후 노동력을 상실한다면, 그는 하류 노인이 된다. 평균 연봉 수준의 노동자 미래가 이러니, 프리터 등 비정규 노동을 전전하는 이의 미래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미 현재 일본 노동자 세대 중 저축액이 100만 엔(1000만 원) 미만인 자가 12.4%에 달한다(전체 구간 중 가장 크다). 저축액도 없다면, 미래는 뻔하다. 

저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가난은 내 책임'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세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장 먼저 조언한다. 모두의 미래가 가난한 삶이라면, 이건 사회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령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 점차 심화하는 자유주의적 사고의 물결은 이런 사고를 막는다. 

저자는 노후 붕괴를 막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책 후반부에 제기한다. 뭔가 새로운 것부터 제시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그는 현존하는 제도를 충분히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장 상담의 경험에서 나온 제안임이 틀림없다. 책 곳곳의 사례에서 저자는 노인들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수혜가 있는 줄도 몰라 영양실조에 걸려가는 사연을 소개한다. 제도가 효과적으로 홍보되었더라면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생활 보호를 제도화해, 이를 보험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보험화하면 이용자는 수혜를 받는다는 생각 대신 내 권리를 찾는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인식 전환이 있어야 노인의 고독사, 기아사 등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또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정책 마련, (미래에 노인이 되는) 청년 세대의 빈곤 문제 해결, 불평등 개선 등 거시적 차원의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여태 우리가 본 이야기는 모두 이웃나라 일본의 비극적 사례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의 독자를 위로한다. 한국의 현실은 일본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안타깝게도 한국의 노인 복지 시스템은 일본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며 "연금 제도를 정비한 일본조차 빈곤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빈곤율은 48.6%다. 노인 절반이 빈곤층이다. OECD 34개 회원국 중 월등한 수준으로 1위다. 우리나라 노인 10만 명 중 55.5명이 자살한다. 역시 압도적 1위다. 먹을 게 없어 교도소에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노인의 뉴스가 더는 희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가 큰 문제라며 떠드는 일본의 현실은, 이미 한국에선 당연한 일이다. 

한국 청년 세대의 미래 역시 일본보다 암울하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50%로, 역시 OECD 국가 중 1위다. 이 책에서 '심각하다'며 떠드는 일본의 통계는 16.1%다. 한국의 어린이 빈곤율도 16.3%에 달한다. 2014년 기준 일본의 상위 1% 계층의 소득 비율은 10%다. 한국은 12%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2위다. 홍종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 공개한 국세청의 2013년도 통합 소득 백분위 자료를 보면, 같은 해 종합 소득과 근로 소득을 올린 한국인의 평균 연 소득은 3036만 원(300만 엔)이었으나, 중위 소득(전체 소득자 중 정중앙에 위치한 사람의 소득)은 1948만 원에 불과했다. 충격적 수준으로 빈부 격차가 심화했음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딱 중간 정도로 돈 버는 사람은 일본을 기준으로 하면 빈곤자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첫 손에 꼽힐 정도로 빈부 격차가 큰 나라고, 노인 복지 제도는 형편없는 수준의 국가다. 

책을 감수한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일본학과 특임교수는 서문에서 "일본의 상황은 그래도 낫다"고 강조한다. 1700조 엔(1경7000조 원)의 가계 자산 중 60%가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연금 모델도 월 24만 엔(240만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중위 소득을 올리는 노동자 월소득보다 높다. 반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비참함 그 자체다.

▲<2020 하류노인이 온다>(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홍성민 옮김, 청림출판 펴냄) ⓒ프레시안

전영수 교수는 "3층 보장 체계(국민 연금, 퇴직 연금, 개인 연금)에서 한국은 1층 국민 연금뿐인데다, 그마저 생활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탄탄한 퇴직 연금이 기대되는 근로자는 전체의 7%뿐"이라며 "'아직'이라고 안심하기에는 상황 논리가 너무 나쁘다"고 설명한다.

이어 그는 2020년이면 한국에 하류 노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리라고 전망한다.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700만 명 중 맏형 격이 1955년생이 이 해에 65세, 곧 은퇴 시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노령빈곤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사회적 압박이 본격화한다는 뜻이다.

<2020 하류 노인이 온다>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책이 아니다. 이미 우리의 현실이 책에 비참하다고 소개되는 일본보다 더 나쁜데, 반면교사할 게 어디 있단 말인가. 늦었음을 탓하고 지금이라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왜 노인은 이른바 '시위 알바' 현장에 나갈까. 왜 노인은 폐지를 주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할까. 왜 적잖은 노인은 약을 달고 살면서도 병원에 가길 무서워할까. 이미 한국의 노령은 빈곤의 덫에 걸렸다. 이건 '그들'의 미래가 아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넘어가는 우리 모두의 가까운 미래고, 현재로서는 확정된 미래다. 대책이 없다면, 우리 모두의 미래란 없다.



'청년 실업 국가' 일본의 경고 "무업 사회!"

[프레시안 books] <무업 사회>
이대희
기자
| 2016.01.01 18:48:53


2015년 11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15~29세) 실업자 수는 34만 명이다. 청년 1000명 중 81명(청년 실업률 8.1%)이 구직 활동을 하고 있지만 직업이 없다. 청년 실업률은 사실 현 상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다. 고시생, 구직 단념자 등은 이 통계에 빠져 있다. 같은 기간 45만 명이 넘는 청년이 구직을 단념한 상태다.

실질 청년 실업률이 20%에 달한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2014년 1월 23만 명이던 구직 단념자 수가 채 2년이 안 돼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서울 소재의 명문대를 나왔다선 치더라도, 특정 전공이 아니면 백수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한국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일본은 이처럼 청년이 취업하지 못하는 현실을 '무업 사회'라는 신조어로 설명했다. '한 번 직장을 잃으면, 혹은 적정한 시기에 취업하지 못하면 그 상태를 벗어나기 매우 힘든 사회'라는 뜻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업(無業)'의 정의는 뭘까. 실업은 알겠고, 니트(NEET)도 알겠고, 프리터도 익숙한데, 무업이라는 단어를 정의하기란 좀처럼 쉽잖다. 일본 내각부와 후생노동성은 '15~34세의 비노동력 인구 중 가사도 통학도 하지 않는 자'를 무업자로 정의한다. 2013년 현재 일본의 무업자는 63만 명이며, 인구 중 약 2.3%의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는 젊은 비 취업자를 뜻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런 신조어를 정부 공식 통계로 사용한다는 데서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청년 실업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본다는 것과, 이른바 '청년'의 연령대를 우리보다 더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늙어가는 일본의 사회 인식(젊은 층의 연령대를 더 넓힘)이 통계에 반영되었고, 프리터 사회가 정착됨에 따라 단순 실업률만으로는 청년층의 어려움을 적절히 통계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무업 사회>(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펜타그램 펴냄)는 2013년 <청년 무업자 백서 : 그 실태와 사회경제구조 분석>이라는 책을 내 무업자 현실의 심각성을 일본 사회에 알린 NPO(비영리기구) '소다테아게넷(길러내는 네트워크)'의 이사장 구도 게이와 니시다 료스케 리츠메이칸 대학교 특별초빙 교수가 공동 저작한 책이다. 

면접만 보면 머리가 하얘지는 공포감을 극복하지 못해 히키코모리가 된 청년, 여러 번의 해고로 상처를 입은 후 취업을 포기한 청년, 직원을 물건처럼 부리는 대기업 생활에 환멸을 느껴 꿈을 잃은 청년, 히키코모리 등 소다테아게넷에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의 사례를 수록하고, 이들을 위해 일본 사회, 일본의 비영리기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리했다. 책 후반에는 소다테아게넷의 프로그램 덕분에 일을 시작하게 된 여섯 청년의 이야기도 수록했다. 

책을 읽으면 일본 사회의 심각성이 생생히 보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병든 오늘까지 겹쳐 보인다. 일본이 고민하는 이 어려움은 꼭 우리의 어려움과 같기 때문이다. 거대 재벌마저 신입사원까지 무차별적으로 해고하려는 사태가 이미 우리의 현실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진정 배우고,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은 소다테아게넷으로 대표되는 NPO와 같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는 체계화된 조직의 존재, 그리고 이들의 축적된 연구 결과다. 소다테아게넷 사무실에는 매일 같이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무업자'들이 온다. 이들 중에는 그냥 대화만 나누고 가는 사람이 있고, 그 중에는 대화에도 참여하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다. 

대신 이들은 정해진 목표를 갖고 움직인다. 취업 트레이닝이 그것이다. 단순 노무부터 시작해 취업 알선 프로그램, 재취업을 위한 전문 교육이 이뤄진다. 그리고, 취업 현장과 이들을 연결해 아르바이트로, 인턴으로 취업시킨다. 

그렇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조직은 있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이 무업자를 분류해, 그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무업 사회>는 구직형(취업할 의사가 있고, 구직 활동을 하는 이)과 비구직형(취업 의사는 있지만, 구직 활동은 하지 않는 이), 그리고 비희망형(취업 의사도, 구직 노력도 없는 이)의 3가지 형태로 무업자를 구분하고, 이들과의 심층 면접 결과 이들 세 유형의 사람이 원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파악한다. 예를 들어 일본 사회에서 심각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적잖은 히키코모리는 비희망형 유형에 속할 것이고, 이들은 단순 취업보다 '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나 '타인과의 연결'을 더 원한다. 이들에게 곧바로 취업을 알선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업 사회>는 강조한다.

▲ <무업 사회>(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펜타그램 펴냄) ⓒ펜타그램

이 책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업자로 분류되는 이 중 적잖은 이가 대학 교육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거나(비희망형의 고학력자 비율이 가장 낮았다), 일반적인 대인 관계에서조차 어려움을 겪는 이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청년 실업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 대부분의 관심은 대졸자로 대표되는 고학력자에 집중되어 있다. 고졸 이하의 학력자는 우리 사회에서 아예 관심 밖의 영역에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일본 사회는 이들의 취업을 위해서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짐작 가능하다. 이 책을 통해 드러난 우리와 일본의 가장 다른 점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백수가 많다. 현재 취업한 젊은이 중에도 적잖은 이가 미취업 기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우리는 언론에 나오는 히키코모리형 청춘이나 저학력자 혹은 개인의 사유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볼 때마다 '저들에게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이 책은 그런 나쁜 선입견을 깨주는 통계도 실었다. 직업으로 대표되는 사회와의 교류, 타인과의 교류를 누구보다 갈망하는 이들이 바로 무업자라는 점이 통계로 입증된다.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의 문제는 그 개인에게 돌려서는 안 되며,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방증이다.  

새해에는 우리의 청년 실업 대응 체계가 더 정교하고, 더 세심하며, 더 넓은 시야를 가지기를 기원한다. 이 책은 그 시발점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7080 세대, 더 늦기 전에 죽음을 준비하라!"    


이대희
기자
| 2015.10.23 09:26:07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지금 읽어야 할 책



장은수 : 이 책이 현재까지 약 2만5000부 정도 팔렸다고 합니다. 올해 인문학, 자연과학 분야 신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입니다. 아마 7월, 8월 신간을 다 합쳐도 이만큼 성과를 낼 가능성 있는 책이 없을 겁니다. 비슷한 수준이라면 <음식인문학>(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정도가 있겠네요. 우선 책을 읽은 소감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홍 : 삶과 죽음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유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이 신이 되지 않는 한, 결코 함부로 답할 수 없는 질문과 과제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책을 선정하면서 책의 분류에 대해 출판사와 질문을 주고받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인문학으로 분류했는데, 장은수 대표께서는 자연과학 쪽 분류도 포함된다고 하셨지요. 이와 관련해서 저는 약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웅진씽크빅 단행본 본부에 있을 때 <죽음이란 무엇인가>(셀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펴냄)의 출간과 이후 실적 변화를 지켜봤습니다. 당시 '죽음'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느 분야에 등록되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죠. 물론 초기에는 정확한 목표 독자와 확산이 중요한 만큼 장르의 선택을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닙니다만, 지나치게 국한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죽음을 주제로 한 여러 책을 읽었습니다만, 여태 읽은 책 중에서 가장 특별했습니다. 전 이 책을 '인생 종결 준비 에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목 탓에 온통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중요한 '삶의 고결한 마무리'를 이야기한 책입니다. 죽음을 주제로 한 일반적인 사색을 담은 책과는 분명 차별화되는 콘셉트입니다.

장은수 :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좋은 책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우선 저자의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해 온갖 철학자가 한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인 담론도 없습니다. 프로이트니, 니체니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없다는 거죠.

대신 저자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아는 의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접근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덕분에 이 책은 부담스러운 주제를 담았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관념적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저자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책이 좋습니다. 그래야 독자가 공감할 수 있거든요.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대부분은 저자의 경험담입니다. 서평을 쓴 이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가장 많은 이야기가 '가족이 아픈데 나도 (죽음을) 준비하면서 읽었다', '부모님을 잘 보내드렸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셋째로 사회적 추세를 읽어내야 합니다. '치료'에서 '케어'로 옮겨가는 건 세계적인 의료 추세죠. 이 이슈에 초점을 맞춘 책입니다. 이처럼 세 가지 베스트셀러의 요소를 모두 만족한 덕분에 독자의 호응을 얻은 것 같습니다. 

위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무엇보다 저자가 글을 참 잘 썼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쓰다니'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홍 : 장은수 대표의 말씀에 동의합니다만 이 책에는 한국의 독자들이 불편하게 느낄 허들도 있습니다. 책 내용의 문제일 수도 있고, 지역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연속성을 중단하는 종결이고 삶은 각자의 인식과 공동체의 관습, 그리고 제도에 영향을 받으니까요.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사례는 우리의 경우와 많이 다릅니다. 미국의 가족 관계나 복지 체계가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우리가 느끼는 온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생명에 관한 인식은 어떤 인위적 제도의 차이보다 큽니다. 종교도 영향을 끼치지요.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죽음을 생각하고 대응하고 맞이하는 일련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각도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일종의 장벽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험담을 담은 책이라면 독자가 최대한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경험들은 우리나라 독자가 축적하기는 조금 어려운 게 사실이죠. 다만 개인적으로는 책에 등장하는 사례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읽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책의 핵심이 347쪽에 있는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대신 오늘을 최선의 상태로 살기로 한 결정의 열매를 눈으로 확인했다"는 구절이라고 봅니다. 책의 여러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죽음을 잘 준비하기 위해 오늘을 잘 살자'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너무 친절한 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책의 앞부분을 읽고 목차를 보면, 내용의 대부분을 감지할 수 있거든요. '무리한 치료로 의미 없는 연명을 이어가기보다,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을 맞이하자'는 내용 말이죠.

▲ 한국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죽음과 노령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장은수 : 물론 지적한 대로 이 책을 한국인이 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문제의식은 우리에게 딱 맞습니다.

일본에서 1995년에 <대왕생>이라는 책이 나와서 무려 500만 부가 팔렸습니다. 이 책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책이 나온 당시는 일본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초입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불교 국가인데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에서 일종의 금기였습니다. 그러나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죽음을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단계가 되었죠.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한 겁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많이 팔린 것처럼, 최근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죽음이 일상의 소재가 되기 시작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죽음은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데 동의합니다. 50대 이후, 60대 이후의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한 소재가 되었죠.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청춘'이 하나의 장르였죠. 사회가 달라짐에 따라 이런 독자적 영역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초고령사회로 나아가고 있는데, 아직 죽음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이야기할 방법을 모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이야기하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것도 일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훌륭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입니다.

아마 조만간 우리나라 사람이 쓴 <대왕생>과 같은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홍 : 장은수 대표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도 장은수 대표가 말씀하신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본문을 인용하자면, 예전에는 죽음이 절벽처럼 왔기 때문에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의학의 발달로 인해 죽음이 곡선으로, 완만하게 다가옵니다. 그만큼 죽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늘어났지요. 

이 토론을 위해 현재 죽음을 다룬 책이 얼마나 출간되었는지 찾아봤습니다. 의외인지, 아니면 당연한 것인지 아무튼 굉장히 많더군요. 그런데 대부분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유독 이 책의 성과가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엘도라도(웅진싱크빅의 출판 브랜드)의 담당자들이 고민하던 기억이 나더군요. 좀 엉뚱한 표현이지만 '죽음을 어떻게 알려야 잘 팔릴까?'는 고민이었습니다. 저자의 지명도와 책의 권위를 확대하기 '세계 3대 명강의'라는 식의 카피를 뽑았습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중요한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만 죽음에 대해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는 딜레마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야 독자가 거부감을 극복하고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독자가 신뢰할만한 권위가 필요했어요. 

많은 독자에게 죽음은 다소 불쾌하고 불편한 내용일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 책의 띠지에 보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등의 카피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고른 독자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만큼 권위가 있고 다른 사람도 선택했으니 믿고 읽어라'는 거죠.
부키 : 맞습니다. 아무래도 죽음 자체가 불쾌한 이야기일 수 있으니만큼, 보다 여러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베스트셀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이 책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걱정된다'는 두려움에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 과정을 가장 존엄하게, 인간으로서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프레시안(최형락)



모두를 위해 존엄한, 인간다운 죽음을 안내하는 가이드

장은수 : 책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어야 합니다. 이 책은 제목만 봐도 독자의 궁금증에 답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죽음을 준비할 때 가장 풀고 싶은 문제는 무엇일까요? 책을 보면, 저자와 상담하는 많은 이들이 '걱정된다'고 합니다. 죽는 게 걱정된다는 게 아닙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걱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책에서 제시하는 해답은? 그 과정을 가장 존엄하게, 인간으로서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책은 그 부분에 대해 매우 친절하게 답합니다. '어떻게 해야 오래 살 것인가' 류가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해결해주는 책이죠. 이런 책은 거의 못 봤습니다. 이렇게 따뜻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책에 대한 칭찬은 여기까지로 하고, 이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이 책의 목표 독자부터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누가 읽었을까요? 죽어가는 사람이 읽지 않았습니다. 교보문고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생각보다 많은 20대가 이 책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죽음에 대해서도 고민한 거죠. 출판사가 이 책을 인문서로 분류했는데, 이 점에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대부분 독자는 편찮은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입니다. 열에 일곱은 되는 것 같습니다. 반응들을 보면 '편찮은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 이 책을 보고 알았다'는 이야기가 압도적입니다. 이들이 출판사로서는 타깃 독자인 셈이죠.

결국 이 책은 30대, 40대 독자가 주로 읽어야 할 책입니다. 이를 고려할 때 현재까지 이 책의 판매부수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홍 : 책 제목의 아쉬움은 두고두고 남습니다. 그러나 출판사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제목이었다고도 생각됩니다. 

정작 아쉬운 부분은 제목보다 부제입니다.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설명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부제는 제목을 돋보이게 하면서 구체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데, 독자층을 오히려 협소하게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부제를 보면 아픈 부모를 모신 젊은 층보다, 아픈 사람이 더 끌릴 것 같습니다. 

장은수 : 부제에 가진 불만은 하나입니다. 현대 의학이 '놓친' 게 아니고 '발견한' 것이라야 맞습니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라고 표현하는 게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이 책의 포지셔닝 문제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 서적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 책을 인문서로 분류한 나라는 한국 정도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의학이나 자연과학, 아니면 사회과학으로 분류했습니다.  

자연과학 서적으로 분류하는 게 지금보다 유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가 일할 때 경험을 생각하자면, 출판사의 결정이 이해되긴 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웃음) 그런데 인문학 분야 책이 초기를 지나면 (판매량이) 확 꺾입니다.

이 책이 의학으로 분류됐다면 홍보 방법도 달랐으리라고 봅니다. 환자 가족에게 '지금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는 책'이라는 식으로 홍보가 가능했을 겁니다.

이홍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장은수 대표와 의견이 조금 다릅니다. 포지셔닝 문제는 도서 분야를 받아들이는 문화적 태도의 차이가 반영된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이 의학적인 개념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의학은 어디까지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하기 위한 도구이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이 책의 주제를 생각한다면 꼭 이 책을 의학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장르를 구분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누가 읽느냐죠. 

장은수 : 독자가 중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만 문제는 독자 확산의 가능성입니다. 이 책이 그간 팔린 경로를 살펴보자면, 전형적입니다. 잘 쓴 책을 5월 말 냈고, 내자마자 많은 언론사의 리뷰를 받아 자연스럽게 확산됐습니다. 그리고 6월 한 달을 홍보했고, 그 영향력이 여름휴가 기간까지 이어졌죠. 그런데 그 후 독자가 소진됐습니다. 더 많이 언급될 수 있는 책인데도 불구하고요.  

저는 이 책이 <코스모스>(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와 같은 위치를 지닐 수 있다고 봅니다. 세이건의 글도 인문학적이지만, 천문학자의 지식을 갖고 독자의 궁금증에 답합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 대한 질문에 의사가 답하죠. 우리 출판이 초기 독자 반응만 지나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도 그런 경우로 보입니다.
부키 : 제목과 책 내용 간의 균형에 조금 차이가 있다고 저희도 생각합니다. 저희도 두 분이 말씀하신 내용을 출간 전 깊게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확산력이 조금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안고 가기로 했습니다. 초기에 많은 관심을 끌면, 더 많은 사람이 이후에도 추동력을 이어주리라고 봤습니다. 
장은수 : 출판사가 이 책을 '자식이 읽고 부모에게 권하는 책'으로 판단한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확산 계층을 잘못 짚은 것으로 보입니다. 자식이 읽고 자신의 친구에게 권할 책이죠.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주요 독자이니까요. <가디언>도 이 책을 두고 "가족이나 주변사람에게 선물할 책"이라고 평합니다. 여기서 가족은 부모가 아니라 동생이나 형이죠. 저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아내에게 권했습니다. (웃음)

▲ 30대와 40대가 가장 많이 구매했다. 이에 반해 60대의 구매비율은 3%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이홍: 저는 약간 생각이 다릅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비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보면 50~60대 독자가 너무 적습니다. 확산 목표를 잘못 잡았다기보다 확산 홍보를 시작하지도 않은 거죠. 이 책도 50~60대 독자를 끌고 간다면 10만 부 이상 팔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베이비 붐 세대가 더 읽어야 할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50~60대가 읽기에 불편한 건 사실입니다. 너무 처절하니까요. '곧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실증적 불편함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그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이라는 부분은 다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2차 스피커'가 확산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철학자든 의사든, 이와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알려질 수 있다면 좋으리라고 봅니다.

장은수 : 의견에 동의합니다. 결국 이 책은 모든 세대가 읽을 만한 책이군요. (웃음) 최근 출판 시장이 어려우니만큼, 화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이를 최대한 이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이 책을 두고 '인문 실용서'라고 했습니다만, 저는 '문제 해결 책'이라고 봅니다. 둘의 의견은 부키가 이 책을 정의한 '에세이'와는 다릅니다. 이 책은 읽고 감동받는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느낌에 가깝지 않을까요? 이 책을 에세이로 규정하는 생각을 바꿔야 하리라고 봅니다.

스테디셀러가 될 자격 

이홍 : 저도 동의합니다. 에세이의 경우, 잘 읽히려면 특히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재미있어서 밤새 술술 읽는 책은 아닙니다.

관련해서 출판사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죽음을 다루는 책을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낼 생각을 했습니까? (웃음) 
부키 : 출판 시기를 두고 저희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 환절기를 목표로로 하는 게 좋으리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을은 이제 너무 짧아서 출판이 애매합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곧바로 트렌드 책 시장이 열리죠. 그래서 이 시기를 포기했습니다.

더구나, 최근 미국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먼저 이 책을 내고, 가을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내자'는 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장은수 : 부키가 낼 책을 잘 고르는 출판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출판사의 기본이죠. 출판사는 가진 콘텐츠 이상을 해줘야 합니다. 7월에 이 책이 여기저기에서 휴가철 추천도서로 선정됐습니다. 그렇다면 그 무렵 2차 독자를 위한 홍보를 강력하게 펼쳤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홍 : 실제 부키가 이 책을 두고 7월 여름 시즌에 특별히 한 게 없습니다. 메르스 영향을 고려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부키 : 맞습니다. 실제 사람들이 흉흉한 병에 걸리는데, 죽음에 관한 책을 홍보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홍 : 죽음에 관한 책을 낼 때 어려운 게 이 지점입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홍보를 위해 신문 광고를 냈었는데, 출판사에 항의가 여러 차례 들어왔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만 5000부가 나갔다면, 그건…. 

장은수 : 순수한 콘텐츠의 힘이죠. 

여태껏 못한 홍보를 지금부터라도 두세 달은 더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적어도 제 판단으로 이 책은 '올해의 책' 후보의 하나입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사람들이 편집자들인데요, 그들에게 이 책을 좀 더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언제, 어떻게 떠날/보낼 것인가?

2016.04.29 15:50:59


[의료와 사회] 죽음을 직면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현대의료와 죽음에 관한 책에 대한 서평을 의뢰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연로해지신 부모님과 홀로되신 시어머님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막막하던 차였다. 관련 서적이 많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현대 의료체계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잘 보여주는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와 렌던 라일리의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One Doctor)>(이선혜 옮김, 시공사 펴냄)를 소개하기로 한다.  

1.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 - 아툴 가완디  

이 책은 의사인 저자가 환자들과 부모, 친지들의 죽음을 함께 겪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 저자는 의사로서의 교육 과정에서 전혀 배우지 못했던 '나이 들어가는 법,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관해 대부분의 의사들처럼 회피하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점차 대안을 찾아 다양한 기관들을 찾아다니고, 가까운 지인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배워간다. 저자는 의사이지만, 이 책에서 저자의 직업은 죽음을 보다 자주, 가까이서 접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의 의미만 있고,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독자들도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저자와 동일한 시선으로 좇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부키

현대의학의 발달은 눈부신 성과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전문성을 위해 포괄성 내지는 지속적인 의사-환자 관계를 포기해야 했다. 또한 의사들의 교육 과정에서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집중한 나머지 '그럼에도 생명이 다해갈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는 상태이고, 또한 환자들을 살릴 지식과 수기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받는 젊은 의사들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가망이 전혀 없는 환자에게조차 마지막 순간까지 기관삽관,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등을 필사적으로 시행하고는 한다.

저자와 함께 독자들은 기력이 쇠하고 장애와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실제 삶에서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환자의 가족들이 재정적, 정서적으로 고통 받는 모습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한 가정의 자녀의 수가 감소하고, 대가족제도가 사라지는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대신해서 생겨난 요양기관들은 수용과 사고 예방을 중시하기에, 수용된 이들은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정해진 일과표에 따라 생활하게 된다.  

"그들은 루 할아버지가 삶에서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곳에 옴으로써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무엇인지 전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그런 방면에서 자신들이 무지함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중략) 다시 말해 그들은 할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와 기쁨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관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다. '어시스트 리빙' 시설, '노인을 위한 생활지원 주택' 등 실험적인 단지들이나, 요양원에 동물과 식물 등의 생명체를 들여오는 실험을 한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의 사례, 스스로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자신들의 집에서 생활하며 각종 서비스를 지원받는 '비콘 힐 빌리지'의 사례 등이 그것이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카스텐슨 교수의 '사회정서적 선택이론'(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삶의 목표와 동기가 변한다는 것)이나 조시아 로이스의 '충성심의 철학'(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자신을 가족, 공동체, 사회 등 더 큰 무언가의 일부로 해석하는 경향),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의 자율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를 설명한다.  

"(생략)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기술에 의존한 의학적 처치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죽음을 직면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환자 본인도, 가족도, 의사도 모두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용기를 내는 시기가 너무 늦으면 마지막 남은 시간과 선택에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브레이크포인트 대화(breakpoint discussion)'이다. 저자는 중요한 질문들을 놓고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이 솔직하게 대화할 것을 권한다. 대화의 주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환자 본인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상태를 설명할 것



△ 병이 심해져서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 무엇이 가장 두려운지에 관해 물을 것
(예: 주위에 폐를 끼치는 것,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  


 현재 직면한 주된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알아볼 것 (예: 통증, 구토, 재정적인 문제)


 현재 이루고 싶은 목표/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예: 친구 결혼식 참석, 고향방문) 


△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환자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지 (예: 수술, 심폐소생술, 기관지 삽관 여부) 


 죽음 이후의 정리 (예: 유언, 장례식장) 

사실 이런 질문을 먼저 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다. 환자는 충격에 빠지고, 가족들로부터는 원성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환자를 이해하고 환자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여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신뢰를 바탕으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이 같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가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된 후에도 환자가 원했던 방식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저자가 '열악하다'고 표현한 그런 요양시설조차 부족한 현실이고, 실험적으로 시도된 시설들이 몇 년 지나서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종종 듣기도 한다. 개인의 의지를 존중하면서도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지 않는 그런 제도, 나 자신이 실제로 이용할 그런 시설을 만들어갈 고민은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은, 이런 접근을 하는 기관들이 기존의 기관들을 이용할 때보다 전체 의료비 및 비용 지출은 더 감소하였으면서도 거주자의 수명은 더 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 존엄성의 존중이라는 기준을 근거로 해서는 움직이지 않을 여러 주체들도 비용절감이라는 당근에는 반응을 하지 않을까.  

2.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One Doctor) - 렌던 라일리

▲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One Doctor)>(렌던 라일리 지음, 이선혜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환자와 그 가족의 시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여준 책이라면, 렌던 라일리의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는 의사의 시각으로 현대의료의 현실과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1인칭 화자인 저자의 시야에 비치는 병원 속의 만화경이 펼쳐진다.

이 가운데 저자는 의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 – 질병의 치료를 위해 존재하는지, 혹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존재하는지 –에 의해 의사들이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주로 말기 질환을 앓고 있는 자들이 품위 있게 죽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각의 틀이나 시설을 소개한 앞의 책과는 달리, 의학 기술의 사용, 의사의 역할과 사고방식, 의료비 지출을 제어하고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의사결정을 누가 하는지 등 의료 체계 안의 여러 주체의 역학관계를 조명하는 것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이런 묵직한 주제보다는 현란한 의학적 결정 과정의 묘사에 지면을 지나치게 많이 할애한 나머지 저자 자신이 제기한 문제들에 보다 깊이 파고들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는 '꼰대'일까? 

2016.04.29 15:57:45
      
[살림 이야기]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위한 준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불멸의 고전 <그리스인 조르바>(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를 쓴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간결하면서도 삶의 철학이 담긴 이 문장은 그의 작품 속 '조르바'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기도 하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평생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온 60대의 조르바는 노인이면서 동시에 청년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계산하지 않고 단순하게 세상을 보는 조르바의 일상은 놀라움과 기적의 연속이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행복하자는 '정언명령(正言命令)'은 노인 조르바를 '꼰대'가 아닌 청년으로 만드는 힘이다. 


▲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 ▲ <나이듦 수업>(고미숙·정희진·김태형·장회익·남경아·유경 지음, 서해문집 펴냄). ⓒ프레시안


'꼰대'를 만드는 사회
 

흔히 꼰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어른, 권위를 앞세워 아랫사람을 짓누르는 이들을 가리킨다. 꼰대는 '불통'의 다른 이름이다. 광화문의 세월호 유족들,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지킴이들 앞에서 막말과 삿대질을 서슴지 않는 '어버이연합'의 노인들은 '꼰대병'이 집단적으로 발흥했을 때 어떤 사회 해악을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삶의 연륜과 지혜로 후세대를 포용하고 이끌어야 할 노인들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세대 간 대결의 진원지 노릇을 하는 비극적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심리학자 김태형은 책 <나이듦 수업>(고미숙·정희진·김태형·장회익·남경아·유경 지음, 서해문집 펴냄)에서 '꼰대'의 심리사회학적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노인 세대의 삶 자체가 어떻게 보면 자기 인생을 긍정적으로 회고하기 어려운 삶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첫 번째, 반복적으로 패배해 온 삶을 살아왔습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다 보낸 세대입니다. 노인기까지도요. 자유와 권리를 누린 세대라기보다는 인내하고 머리 숙여 산 세대입니다. (중략) 같은 맥락에서 우리 노인 세대는 지배집단에 대체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 세대가 인간성이 나쁘거나 비겁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만큼 당시 폭압이 심했어요. 그러니까 저항하기보다는 순종하는 쪽이었습니다. 이런 삶은 사람을 조금씩 비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복종심을 키워요. (중략) 마지막으로 한국 노인 세대는 개인주의적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인생 목표가 내 집 마련이나 자식의 출세로 좁혀진 거죠. 세상이 더 좋아졌으면 좋겠고 다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나만 살아남으면 되는 개인주의적 삶 쪽으로 끌려왔습니다."

김태형은 무력감과 패배주의에 휩싸여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된 한국의 노인들은 '나쁜 분'들이 아니라 '아픈 분'들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자기평가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으면 그걸로 됐다는 '자기 긍정'이야말로 꼰대병 치유의 키워드다. 

'징헌 놈의 시상'을 살아온 어르신들 

우리 마을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은 꼰대병은 아니지만, 다들 마음의 병을 하나쯤은 갖고 있다. 18살에 산 넘고 물 건너 깡촌에 시집을 와 평생 마을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할머니는 센터에서 마련한 영화관 나들이에 소녀처럼 들떴다. 나이 80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극장이라는 곳을 '귀경' 간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눈 뜨면 밭에 나가 하루 죙일 일만 하는디 묵을 것은 없어서 배를 곯고, 전쟁 터지고 나서는 인공을 피해 부뚜막 밑에 숨어 몇날을 보내기도 하고 사람들이 죽기도 많이 죽었어. 참말로 징헌 놈의 시상을 살았당께"라며 슬쩍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에 생의 고단함이 역력하다.

'징헌 놈의 시상'을 질기게 버텨 자식들 길러 낸 노인들의 황혼은 여전히 팍팍하다. 평생을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정작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던 노인들은 성석제의 소설 속 '투명인간'들 같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들. 한국 노인 10명 중 4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노인 자살률은 세계 1위로 OECD 국가 평균 10배다. 김태형의 말처럼 한국의 노인들은 지금 많이 아프다.  

'문제'에서 '존재'로, 존엄한 노후를 위해 

영화 <인턴>(낸시 마이어스 감독, 2015)에 등장하는 노인은 인생 종반전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30살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 분)가 이끄는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취직하게 된 70살의 벤(로버트 드 니로 분). 그는 풍부한 인생 경험과 직장 생활의 노하우, 신사적인 매너를 바탕으로 단숨에 젊은 사원들의 '멘토'가 된다. 그에게 인생 종반전은 빈곤과 고독 속에서 보내야 할 불행의 나날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이 만개하는 행복의 나날이다.



▲ 영화 <인턴> 중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정치적으로 소외되지 않고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으며, 적당한 일자리와 문화생활도 보장되는 노년의 삶은 금상첨화일 것이다. <인턴> 속 벤의 인생이야말로 누구나 바라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노인 빈곤과 고독사는 갈수록 느는데, 사회보장체계는 노년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노인을 존엄하게 대우하기보다는 부양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신체능력 상실과 관계망 축소 등 노년에 맞이하는 도전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다. 그러나 물질적, 문화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노인들에게 그 영향은 더 뚜렷하고 해롭게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은 '존재'가 아니라 '문제'로 취급된다.

사회적 존재로서 노인의 정체성을 되찾고 존엄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경제적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빈곤과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규정할 수 없도록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기능적 접근을 넘어서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건강한 '노년의 양식'을 형성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는 개인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다. 젊었을 때부터 '나이듦'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 노인의 삶이란 늙었을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젊었을 때 예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미래에 갑자기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과정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