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추천

베스트셀러.. 지대넓얕 + 오리지널스 + 미움받을 용기.

일취월장7 2016. 5. 27. 16:58
<지대넓얕> 채사장은 어떻게 스타 저자가 되었나?
2015.07.24 09:35:36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의 이유를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시작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둘은 황금가지, 민음사, 리더스북스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들었던 출판계의 신화로 불리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권씩,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 한 권을 선정해 책의 성공 이유와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첫 번째 책은 총 40만 부가 팔리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지음, 한빛비즈 펴냄) (<지대넓얕>)입니다. 총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인문형 자기 계발서'를 내세우며 수개월째 출판 시장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인문 서적의 불황 시대임을 감안할 때, 가히 신드롬이라 칭할 만합니다. 

이 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 책의 성공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또 출판계는 이 책의 성공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지난 14일 오후 5시 30분,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지대넓얕>의 이모저모를 따져보는 첫 모임이 열렸습니다. 장은수, 이홍 두 분이 지금 여러분을 만나러 갑니다! 

▲프레시안의 새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이끄는 이홍 출판기획자(왼쪽)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오른쪽).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좋은 책을 새로운 각도로 여러분께 알려드리겠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지대넓얕>은 인문학의 스낵 컬처" 

이홍 : 장은수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좋은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네요. 이번 기획 대담을 통해 우리 출판업계에는 위기를 돌파하는 아이디어를, 독자에게는 좋은 책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지대넓얕>을 두고 대담에서 나눌 이야깃거리를 미리 뽑아봤습니다. 첫 번째 주제가 '이 책은 제목에 걸맞은 책임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입니다. <지대넓얕>을 읽고 정말 지적인 대화가 가능하냐는 거죠. 

우선 제 소감부터 말씀드리죠. 흥미로운 책을 색다른 느낌으로 읽었어요. 읽기 전에는 제목을 보고 선입견을 가졌는데, 읽고 난 후 제 스스로의 생각이 달라졌어요.

장은수 : 달라진 생각이 뭔가요? 

이홍 : 이 책이 각 권마다 주제별 세부 챕터를 나눠뒀잖아요? 읽기 전에는 역사 따로, 정치 따로, 이렇게 부분 부분으로 각 챕터가 분리된 책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읽고 보니 1권(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은 이분법, 2권(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편)은 삼분법으로 해당 주제를 꿰뚫는, 하나의 덩어리로 내용이 이어지는 책이더군요.

단편 지식을 다이제스트 식으로 묶어주는 보통의 기초 인문 서적이 아니었던 거죠. 저자가 주관을 앞세워 이야기를 쭉쭉 이어가는 모양에서 흡사 7080학번 세대가 대학 다닐 당시 사회 과학서를 읽고 우리 사회의 본질적 모순을 알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던 때를 연상케 했습니다. 장 대표님은 읽으신 소감이 어때요? 

장은수 : 굉장히 재미있게 봤어요. 무엇보다 빨리 읽을 수 있어 좋더군요. (웃음) '인문학의 스낵 컬처(snack culture, 스낵처럼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트렌드)'로 이 책을 꼽아도 될 것 같아요. 

저자가 독자가 원하는 만큼 이야기해주는 데 굉장히 훌륭한 재능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문학에서 이와 같은 시도를 한 사람이 거의 없었죠. 쉽게 쓴다고 해봤자 청소년 물로 내려가거나 기존 학문 체계 안에서 변화를 꾀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 분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콘텐츠를 재구조화했어요. 

지금까지 <지대넓얕>과 비슷한 포맷의 책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연결'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지요. 정치와 경제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경제와 철학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이죠. 반면 이 책은 이들 주제를 잘 이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명했습니다. 출판사 설명대로 '통일된 사고 프레임'을 제공하는 데 비교적 성공했다고 봅니다.

저는 베스트셀러의 조건으로 '장점의 효과적 전달'을 꼽습니다. 어느 책이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데, 일단 장점을 충분히 부각시키면 자기 역할을 잘 했다고 보거든요. 이 책이 그래요. 독자 입장에서 보면 '우리 눈높이에 가장 잘 맞는 책'이 나온 것 아닌가 싶네요. 우리 세대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성문종합영어>만 공부하다가 <맨투맨>이 나온 느낌이랄까요? (웃음) 

이홍 : 첫 주제를 되새겨 보죠. 보통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나는 이것 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하잖아요? 정치가 어떻고, 문화가 어떻고, 스포츠가 어떻고…. 1권의 내용은 바로 이런 자리에서 써먹기 딱 좋아요. '너는 왜 지난 선거에서 새누리당 찍었느냐'고 할 때 감성적 판단이나 지역론이 아닌, 계급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근거를 줘요. 

이 책이 말하는 '얕은 지식'이라는 게 얇고 가볍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논리나 근거가 없죠. 대학 나온 고학력자가 많다고 하지만 말이에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인문학이 죄를 많이 지은 겁니다. 무수히 많은 '잘난' 인문학자가 쓴 책들이 그 동안 어떤 역할을 했나 반문하게 됩니다. 

독자가 겪는 일상의 문제나 매체들을 통해 받아들이는 모호한 주제를 자기 식으로 인용하고 설명할 수 있는 기초적인 팁 하나 제공해주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반 계급적인 투표를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책은 인문학이 최소한으로 이행해줘야 할 역할에 굉장히 충실히 복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권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1권이 주는 빠르고 명확한 느낌이 사라졌어요. 처음에는 1권의 성과에 기대 급조하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였는데 그건 아니더군요. 1권과 2권의 집필 스타일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1권은 저자가 원래 아는 내용의 '썰'을 풀었다면, 2권은 저자가 공부하면서 쓴 느낌이에요. 

장은수 : 저도 인문학 책을 계속 만들어 온 편집자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해드리죠. <지대넓얕>이 저자가 비전문가로서 공부해서 쓴 책인데요, 굉장히 좋은 요약 노트라는 느낌은 들었어요. 그러나 자의적 해석이 강해요. 범주의 오류(다른 범주에 속하는 내용을 같은 범주에 둬버리면서 발생하는 오류)에 해당하는 부분이 조금씩 눈에 띕니다.

2권은 '현실 너머'를 정리해 주는데, (2권에 들어간) '예술' '철학' '과학' 같은 게 정말 현실 너머에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거죠. 기왕 저자가 앞서 나가기로 했다면 '예술이 우리 삶 안에서 어떤가'를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텐데 말이죠. 예술과 사회는 어떠한지, 과학과 정치는 어떠한지를 논하는 게 더 시사점이 있겠죠. 그러다 보니 2권에서 다룬 주제들이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식으로 현실 너머를 설정하려면 '윤리'는 왜 현실 세계에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1권에서도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예를 들자면 저자는 초기 자본주의-후기 자본주의-신자유주의-공산주의(사회주의) 식으로 경제 체제를 분류하는데, 간략히 말하자면 이는 체제와 정책을 혼동하는 거죠. 자본주의-공산주의는 등급이 같지만, 신자유주의는 거기 놓기 어렵죠. 등급이 다르거든요. 

다만 저자의 의도는 분명히 알겠어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게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인데 이게 어디서 왔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이를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 하는 숙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나눈 것 같아요. 

이처럼 저자가 주관을 갖고 이야기를 쭉 이끌다보니 대화가 아니라 강의를 듣는 느낌이 들어요. 강의식 책의 전형적인 단점인 대화를 촉발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이 책에서도 드러납니다. 

이홍 : 교과서 해설을 읽는 느낌이죠. 

장은수 : 책을 편집할 때 장별로 더 읽어볼 만한 책을 제시한다던가, 생각해 볼 거리를 나열하는 식으로 확장 가능성을 제시해 줬으면 어땠을까요? 

이홍 : 이 책의 콘셉트인 '지적인 대화 도와주기'는 사실 모든 인문서, 특히 기초 범주의 책이 이행해야 할 역할입니다. 읽고 독자의 머릿속에서만 정리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돼요.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사고가 확장되고, 이를 통해 다시금 새로운 주제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게 인문이고 책의 중요한 역할이죠. 

당연히 <지대넓얕> 저자도 목적이 여기에 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 대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딱히 이에 반론을 펴거나 논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어요. 친절하고 편리할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 심심하죠. 일부 지나친 논리의 비약과 짜 맞추기씩 편성도 불편합니다. 

독자의 지적 대화를 위해서는 너와 나의 다름을 알고 이를 나눠야 하는데, 이 책은 '이 부분이 지적인거야'라고 규정해버려요. 이 책은 장점이 많아서 이걸 굳이 단점으로 꼽아도 판매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아쉬움의 여지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서술 방식을 굳이 강의식으로 만든 이유가 있나요?
한빛비즈 : 채사장이 JTBC <김제동의 톡투유>에 가끔 출연합니다. 보면 일단 말이 길어요. 대화 스킬이 능하다기보다, '썰 푸는' 스킬이 굉장히 능해요. 논술 강사 출신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저자의 특징이 자연스레 책에 녹아났습니다.
장은수 : 저자의 서술 방식이 최근 인기를 끄는 인문학자의 화법과도 일치해요. 멀리는 강신주-굉장히 스타일이 다르니까요-, 조금 더 가까이는 이지성과 같은 저자들의 공통점은 강력한 프레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비인문적'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이런 분들의 화법이 지금 세대에게 먹힙니다. 젊은 세대를 두고 결정 장애 세대라고들 하잖아요? 결정 장애 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햄릿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현대 사회에 너무 많은 욕망이 길러지기 때문에 생깁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 거꾸로 자기의 결정을 계속 미루다보니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거죠. 이러한 결정 장애 세대에게 최근 인문학 스타의 명료함은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가는 듯합니다. <지대넓얕> 역시 인문학에 입문하고 싶지만 길이 너무 넓어서 겁먹은 사람들의 선택지를 확 줄여줍니다. 인문학 입문서로서 매력적이죠.

▲<지대넓얕>은 '요다이즘' 서적의 대표적 형태. ⓒ프레시안(최형락)

 

<지대넓얕>은 독자의 언어로 쓴 책 

이홍 :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죠. <지대넓얕>은 친절하게 정리해주고 알려주는 '요다이즘(현실이 불확실하다보니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처럼 강력한 존재에 의지하는 현상)'의 대표적 형태입니다. 멜린다 데이비스는 "날로 분주해지는 일상에서 늘 시간이 부족한 대중의 구매 활동을 도와줄 에이전트나 가이드가 필요한 현상"이라고 했지요. 정리형, 요약형의 책, 압축본의 등장은 지식 과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대적 요구에 반응한 겁니다. 경박하고 고민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으나 달라진 독자 요구를 반영한다는 긍정적 요소도 있습니다. 그런데 출판계에서는 이런 흐름과 독자 요구를 인정하면서도 무엇으로 포지셔닝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요. 

한빛비즈에서는 <지대넓얕>의 홍보 포인트로 '인문형 자기 계발서'를 표방했습니다. 요다이즘 서적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인문형 자기 계발서가 과연 이 책에 걸맞은 설명일까요? '인문형 자기 계발서'를 표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빛비즈 : <지대넓얕>은 인문학 콘텐츠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 책의 독자가 기존 인문학 독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문학을 아는 사람이 봤을 때는 장은수 대표께서 말씀하신 단점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젊은 세대는 다릅니다. 취업이 지상 과제가 되었고, 이 때문에 스펙 쌓기에도 허덕이는 지금의 젊은 세대라면 인문학에 갈증을 느낄 수 있다고 봤습니다. 자기를 계발하려는 욕구에 더해 자신의 약한 지식의 뿌리를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인문 교양 서적이긴 하지만 독자는 자기 계발서를 선택하듯 이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포지셔닝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인문형 자기 계발서라는 표현을 만든 이유입니다.

실제 저자의 목적도 유사했습니다. 저자의 동네 친구 중에는 대학에 가지 않은 친구가 많은데, 이들과 대화할 때 공통분모가 너무 없더랍니다. 이들과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만들되, 그 안에 자신의 의견을 더 붙여보자는 게 저자의 의도입니다.
이홍 : 앞서 장 대표께서 살짝 언급하신 것처럼, 이 책의 저자는 숨기고자 합니다만 실제로는 자신의 계급적 입장을 곳곳에서 드러냅니다. '결국 우리는 계급에 반하는 멍청한 투표를 하고 있고, 그 결과 신자유주의가 범람함에 따라 피폐한 삶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것이며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지만 역사는 결국 진보의 어젠다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위 말하는 진보 진영의 논리를 드러내고 있어요. 감춰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교양을 표방한 정치·사회 분야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한 교양형, 더군다나 자기 계발서로 포지셔닝을 고민했다는 부분은 설득력이 약하고 궁금증만 불러옵니다. 물론 뭐든 자기 계발이 아닌 것 없지만요. 

아무튼 이 책이 40만 부나 팔린 힘이 거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색깔 없는 지식의 집합체에 불과한 책이었다면 오히려 외면 받았을 겁니다. 이 책을 읽고 입소문 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대신 해 줬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을 겁니다.
한빛비즈 : 채사장은 중립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방송에 나와서는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추종자로 칭하기도 하고요. (웃음)
장은수 : 마치 1980~90년대에 대학생 운동권 새내기의 필독서였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박세길 지음, 돌베개 펴냄)나 <철학에세이>(조성오 지음, 동녘 펴냄)의 21세기 버전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자기 색이 뚜렷한데도 다른 인문 서적에 비해 이 책이 부담 없이 다가온 이유를 편집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의 편집상 특징으로 세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첫째, 책에 삽입된 도식입니다. 펜 스케치로 내용을 요약했는데, 굉장히 강력하죠. 논술 강의를 듣는 효과가 나요. 책을 읽고 나면 도식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아마 많은 편집자들이 이 재미있는 도표, 도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두 번째로는 중간 정리를 잘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책의 각 챕터가 마무리될 때마다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부분이 담겨 있습니다. 만일 편집부에서 이 부분을 기획하셨다면, 책의 성공에 상당한 기여를 하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간 정리 내용이 좋다보니, 시간 부족한 사람은 중간 정리만 봐도 될 것 같은 수준입니다. 틈날 때마다 조금씩 콘텐츠를 즐기는 요즈음 소비 성향에 맞추어 콘텐츠를 조각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편집 장치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고 봅니다. 

세 번째로는 역시 대화체입니다. 문어체 지식보다 구어체 지식이 입문 독자에게 익숙합니다. <고민하는 힘>(강상중 지음, 사계절 펴냄)에서 보듯이,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시도됐습니다. 물론 출판물을 구어체로 만들어 저자와 독자 사이의 비판적 거리를 없앤다는 단점도 있지만요. 
한빛비즈 : 불행히도 말씀하신 내용 전부 편집자의 몫이 아닙니다. (웃음)

일동 : 아…. 이런 섭섭한 부분이! 하긴 저자가 좋은 의견을 내도 틀어버리는 편집자도 많으니까요. 하하하.

한빛비즈 : 저자가 논술 강사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습니다. 이분이 강사 출신이다 보니 지금도 판서가 편하십니다. 그래서 판서로 정리한 내용이 도식으로 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큰 주제를 다루다보니 중간마다 다시 되새기는 게 가능하게끔 했습니다. 원래 채사장의 강의 스타일을 그대로 책에 옮겨놓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홍 : 장 대표께서 앞서 베스트셀러의 조건을 말씀해주셨는데요, '독자의 언어로 쓰라'는 것 또한 베스트셀러의 기본 공식입니다. 잘못하면 대중추수주의가 되겠으나, 결국 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호흡이 맞아떨어져야 좋은 책이 되지요. <지대넓얕>은 독자의 사고에 철저히 맞춰준 책입니다. 

다만 저는 장 대표께서 말씀하신 '장점'에 대해 약간 다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정리가 지나치게 친절해 오히려 동어반복이 눈에 띕니다. 중간 정리에 최종 정리, 이에 더해 각 챕터의 문장 안에서도 내용이 반복 정리됩니다. 앞서 강의 스타일의 책임을 우리가 지적했죠? <지대넓얕>은 선생님이 같은 내용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절대 이거 잊어버리지 마!' 하고 가르치는 전형적인 참고서형 서술 방식을 취합니다. 학원이 예상 문제집 만들 때 쓰는 방식이죠.

장은수 : 그걸 독자들이 좋아하죠. 아까 얘기된 '독자의 언어'니까요! 

이홍 : 네, 맞습니다. <지대넓얕>은 인문서에 실용적 스타일의 서술과 편집 방식을 도입한 사례입니다. 아마 다른 인문서 출판사가 <지대넓얕>을 엄청나게 유사 벤치마킹하리라 생각합니다. 여태까지의 인문서는 아무리 쉽게 쓴다한들 표현만 고민했지, 서술 방식이나 편집 방식을 고려하지는 않았거든요. 이제 또 다른 연구 대상 방식이 나온 것 같습니다.

<지대넓얕>이 남긴 과제는? "더 쉬운 인문 서적" 

▲"앞으로 '예술적 대화를 위한 넓얕'이나 '정치적 대화를 위한 넓얕'도 가능하겠지요." (장은수) ⓒ프레시안(최형락)

장은수 : 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각각의 편집소를 조합해서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 책은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자기 계발서라기보다 인문 실용서에 가깝다고 보는데, 이 분야에 좋은 본보기가 될 편집 사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인문학을 정보 공학적으로 처리해 독자가 보기 쉽도록 정리해 주는 분야에는 아직 약한 편입니다. 이 책에서 시도된 다양한 편집 노력이 상아탑과 대중 사이의 엄청나게 벌어진 거리를 본격적으로 메우기 시작하는 촉발점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가령, 미국의 경우 더미스(for Dummies) 시리즈('The XXX for Dummies'라는 이름의 통일된 제목으로 나오는 지식 실용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컴퓨터 관련 서적으로 출발했지만 이제 인문학까지 다루고 있지요. 과찬인지 모르겠지만, <지대넓얕>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아닌가 합니다. 저자가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말이지요.

이홍 :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보죠. 과거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센델 지음, 김명철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열풍 후 오히려 도덕이나 정의와 관련된 책이 전멸해버렸습니다. '깔때기 효과'라고도 하고 '홍수 현상'이라고도 하지요. 이슈와 수요를 혼자 독차지하면 시장은 오히려 몰락합니다. 하나의 흐름이 나와서 온 들판을 적셔준다면 긍정적이지만, 오히려 홍수처럼 다 쓸어 가버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지대넓얕> 이후를 이야기해야 할 때라는 겁니다. 이 책은 단비가 될까요, 아니면 홍수가 될까요? 

장은수 : <지대넓얕>은 <정의란 무엇인가>와 차이가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끝까지 읽은 독자가 얼마나 될까요?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반면 <지대넓얕>의 완독률은 매우 높지 않을까요? 

이홍 : 기존의 인문 서적 충성 독자가 <지대넓얕>을 집중적으로 읽었다면 홍수 효과가 있겠지요. 하지만 인문 서적 독자가 아니었던 이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다른 계층으로 확장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 40만 명이 어떤 시장 포지션에 있던 사람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란 이야기죠. 

여기서 논의가 좀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지대넓얕>의 구매자를 세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그간 우리 출판계가 쉽게 얻기 어려웠던 귀중한 데이터가 될 거예요. 한빛비즈가 지금처럼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이 책 한 권의 성공으로만 끝내지 말고 독자 분석을 깊이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대넓얕>이 남긴 이후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은수 :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는 느낌입니다. 인문학과 자기 계발서 사이가 아닌, 그간 한국 출판계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했던 인문학과 실용서 사이의 시장이 개척됐다고 할까요. 이제 이 책의 성공 요인을 잘 분석한다면 앞으로 '예술적 대화를 위한 넓얕'이나 '정치적 대화를 위한 넓얕'도 가능하겠지요. 

이홍 선생의 의문에 답한다면, 기존 인문학 독자가 이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990년대에 프랑스 철학 입문서로 꼽혔던 <오늘의 프랑스 철학 사상>(크리스티앙 데캉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을 읽은 사람과 이 책의 독자는 다를 겁니다. 홍수는 아니라는 거지요. 

이런 시장이 더 커져야 본격 인문학 시장도 같이 성장합니다. 이웃 일본만 해도 지식과 실용이 결합된 서적 시장이 거대합니다. 1970년대까지의 폭풍 성장기가 지난 이후 일본 출판계는 지식을 어떻게 독자에게 가장 낮은 형태로 가공해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출판의 헤게모니가 저자에서 편집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이 있었지요.

<지대넓얕>이 앞으로 우리 출판 시장도 이처럼 편집자 중심으로 이동하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지대넓얕>의 편집 성공 요인은 저자 개인의 능력이었지만요.  이 책의 성공을 본받아 앞으로 편집자가 좋은 편집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답답한 출판 현실의 작은 탈출구가 생길 수 있을 겁니다. 

이홍 : 잘못된 방식으로 <지대넓얕>의 성공을 모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 지음, 웅진닷컴 펴냄) 이후 이른바 '한권 시리즈' 붐이 일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성공이 오히려 열권으로 충실히 열독해야 할 시장까지 죽여 버렸습니다. 그나마도 시장을 고사시키지 않았다는 긍정 평가의 반대에는 정말 좋은 책을 읽고자 했던 독자들을 실망시키고 떠나게 했다는 반성도 있습니다. 

장은수 : 이 책을 놓고서 <한겨레>는 노명우 아주대학교 교수(사회학)의 발언을 인용해서 "(지적 탐구의) 입구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환영할 일이지만 여기가 종착점이 된다면 서글플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홍 선생께서 같은 우려를 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홍 : 네, 맞습니다. 

장은수 : 결국 이에 대한 해답도 편집자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요?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붐 이후 수없이 많은 편집자의 도전이 있었습니다. 휴머니스트의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가 있고, 사계절의 <역사신문>도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의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편집자가 어떤 소명의식으로 이 시장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독자의 존재가 확인되면, 지식을 어떻게 독자와 잘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이냐에 대한 열망을 품어야죠. 저는 이야말로 '편집자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가 이 새로운 시장에서 '나는 10권짜리 책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어'라고 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제시해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책이 나오기 전에 팔아라" 

이홍 : '한권으로 읽는…' 시리즈가 시장에 나온 지 20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가 시장에 유의미하게 작동한 건 사실이지만, 사실 그 이후 새로운 기획이 꾸준히 나온 건 아닙니다. 책은 많았지만 판도를 바꿀 정말 새로운 시도는 없었다는 거죠. 안주하면서 유사 복제를 반복하는 동안 얕은 기획이 트렌드 기획으로 호평되는 기현상까지 낳고 있습니다.

<지대넓얕>이 아직 기획의 힘이 죽지 않았음을 입증했다면, '그 다음의 기획은 무엇이냐'는 과제를 다음 편집자들이 안게 되었습니다. 

이제 교보문고의 판매 데이터를 한번 살펴보죠. 이 책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전체 판매량의 60%가 약간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이 데이터가 의미가 있네요. 보통의 경우, 수도권 판매 비중이 70~80%에 달하거든요. 유의미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은수 : 여성 독자 비중은 52%밖에 되지 않네요. 보통 인문 서적의 경우 여성 독자 비중이 70%가량인데요. 

이홍 : <지대넓얕>이 기본적으로 남성 취향의 책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장은수 : 연령대별 결과도 조금 흥미롭네요. 저는 데이터를 보기 전에는 30대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40대, 20대 순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20대가 40대를 능가했네요. 팟캐스트 영향이 강하게 미친 것 같습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20대 독자가 더 늘어날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일단 불이 40대로 옮겨간 다음에는 역류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쉽네요. 20대에서 더 큰 파괴력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책이 제시하는 정도의 프레임은 우리 세대 그러니까 40대에게는 익숙합니다. 하지만 20대에게는 조금 낯설지 않을까요? 역으로 보면 '20대를 위한 넓얕', '10대를 위한 넓얕'과 같은 시리즈 기획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홍 : <지대넓얕>에서 다루는 기본 전제가 19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의식화 교육을 할 때의 단골 메뉴입니다. 사회 구성체 논쟁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를 다른 형태의 글쓰기로 바꾼 거죠. 

팟캐스트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쪽으로 주제를 옮겨봅시다. 출판사에서도 이 책 성공 요인의 하나로 팟캐스트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제 엄청난 인기니까요. 반대로 보자면, 이 책의 마케팅 요인에 팟캐스트를 제외한 특별한 요소가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책을 낸다면 기획 단계에서 독자 타깃에 대한 고민이 많기 마련인데, 팟캐스트의 성공이 이를 다 해결해버린 느낌입니다. 계획된 게 아니라면 바닥에 떨어진 걸 추수한 것에 불과해요. 잘 팔렸으니 모든 과정을 미화하는 짜 맞추기 분석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장은수 : 기존 한국 출판 유통을 보면 위탁 판매 방식을 쓰지요. 서점에서 책이 판매돼야만 수익이 발생하고, 판매되지 못한 책은 재고로 남게 됩니다. 결국 위탁이란 서점이 책을 오래 갖고 있으면서 독자에게 팔고, 출판사는 팔린 결과만 돈으로 회수하는 방식인 셈입니다. 세계 출판계에서 이와 같은 유통 방식은 한국과 일본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 방식으로 출판사가 이익률을 높이려면 서점이 책을 오래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서점 수가 줄어들어 진열 공간도 부족한 데다, 출간된 지 2주, 3주 만에 책을 반품해버리는 경우가 일상적입니다. 독자가 새 책의 존재를 알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러니 팔리는 책, 이미 발견성이 확보된 책만 팔리거나 출간 후 미디어 등에서 밀어붙이는 책만 살아남는 겁니다. 

팟캐스트로 대표되는 <지대넓얕>의 성공은 출판사의 마케팅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꼭 팟캐스트에 주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은 '책이 나오기 전에 알린다'는 거죠. 

지금까지 출판 마케팅은 모두 '책이 나온 다음 알린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출판(사실 이미 시작됐지만요)은 '책이 나오기 전에 알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대넓얕>은 우리에게 이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의 경우, '출판 6개월 전부터 마케팅을 시작하라'는 게 출판 마케팅의 상식입니다. 출판의 프레임 자체가 변한 겁니다. 출판 조직도 이에 맞추어 구조 조정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출판사에 6개월 전부터 책을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 있나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팟캐스트 자체는 사실 그다지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은 아닙니다. 검색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대에, 팟캐스트가 검색을 통해 발견되기는 정말 어려우니까요. 따라서 미래의 출판사는 기본적으로 자체 콘텐츠 기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 콘텐츠를 발신하는 수단이 팟캐스트냐 페이스북이냐 트위터냐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수단으로 활용할 자체 콘텐츠 기지가 없다면 어떤 회사도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을 겁니다.

이홍 : 출판 영업 마인드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여태까지 우리 출판사들의 영업 대상은 독자가 아니라 서점이었습니다. 최종 소비자인 독자의 유입을 서점에 맡겨버린 거죠. 사실 이게 참 편리하고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동안 우리 출판 시장을 보면 한 책의 베스트셀러 영광으로 끝나버리고, 지속적으로 그 힘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시장을 관성적 구조로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지대넓얕>을 읽은 40만 명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다시 견인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들에게 다음에 읽혀 줄 책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느냐를 계량적으로 밝힐 순 없겠지만, 팟캐스트는 이런 출판사의 마인드를 바꿀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습니다. <지대넓얕>이 팟캐스트를 통해 거둔 성과는 다른 출판사에도 '최종 독자를 상대로 어떤 마케팅을 고민할 것이냐', '어떻게 서점과 독자 사이에서 마케팅 관계를 정립할 것이냐'에 대한 답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장은수 : 출판사의 거래 방식은 사실상 비투비(B2B, Business to Business, 기업과 기업 간 거래)였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회사도 B2B로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비투시(B2C, Business to Consumer, 기업이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거래)로 갈 것이냐 복합 기업화할 것이냐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적으로 혁신해야 하는 수준의 조직적 결단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출판사들은 '내용을 다 노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이홍) ⓒ프레시안(최형락)

이홍 :
이에 더해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신간을 마케팅한다면 무엇을 얼마나 채워야 하느냐는 겁니다. 답은 콘텐츠입니다.

여태까지 출판사들은 '내용을 다 노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해야 합니다. 집필만 독자 친화적으로 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독자에게 책의 본질적 가치를 미리, 얼마나 잘 설명하느냐에 따라 책의 전체적인 평가나 판매가 좌우될 겁니다. 이런 점에서 <지대넓얕>은 여태 우리가 아쉽게 느꼈던 부분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책입니다. 이는 만약 판매 성과가 나빴다고 해도 결코 폄하되거나 소홀하게 다뤄서는 안 되는 부분이죠.

결국 오래된 마케팅 관습을 깨야 한다는 결론으로 우리의 이야기가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출판사가 우리 생각에 '맞아'라고 하면서도 못하죠. 관성적 습관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한빛비즈는 그나마 독자 관리를 잘 하는 출판사입니다. 한빛비즈는 영리한 출판사니까, 우리가 말한 '이 책의 다음 의미'를 다음 책에서도 잘 작동시키지 않을까요? (웃음) 그런데 팟캐스트 마케팅을 사전 염두에 뒀나요? 
한빛비즈 : 저희가 팟캐스트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3년 전입니다. 그 당시 출판사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마케팅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신문 광고를 이어가려니 한계가 너무 뚜렷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가 직접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만들어 회사 내부 이야기도 하고, 신간이 나오면 저자를 불러 방송도 진행하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팟캐스트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 팟캐스트를 학습했던 경험이 <지대넓얕>의 마케팅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원고를 처음 확보할 때부터 팟캐스트가 이 책의 마케팅을 견인하리라는 생각이 뚜렷했습니다. 팟캐스트를 통한 사전 마케팅의 가치가 콘텐츠만큼 힘을 발휘하리라고 봤습니다.
<지대넓얕>의 다음은 무엇? 

이홍 :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일 팟캐스트 없이 이 책이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장은수 : 지금보다 인문서 독자들에게 더 격렬하게 비판받지 않았을까요?

이 책의 중요한 시사점은 원고 작성과 출판 사이에 팟캐스트라는 사전 마케팅이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책의 타깃 독자 확보, 사전 노출, 책의 포지션 문제가 모두 해결됐습니다. 역으로 보면, 출판사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논의하는 지점인 '새로운 마케팅'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의해야 할 지점입니다. 유명 팟캐스트를 책으로 내는 건 엄밀히 말해 출판사의 자산이라 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가 그 플랫폼의 핵심이 아니니까요. <지대넓얕>에는 독자와 출판사가 소통할 수 있는 장치가 없습니다. 결국 이 책의 독자는 한빛비즈의 독자가 아니라 채사장의 독자일 뿐입니다. 

<지대넓얕>의 성공 이후 출판사들이 '잘 나가는 팟캐스트 또 없어'하는 생각만 할까 걱정됩니다. 한빛비즈도 채사장과 공동으로 마케팅 플랫폼을 만들어서 움직이자는 식의 고민을 할 텐데, 만일 대형 출판사가 크게 질러서 채사장을 데려가 버리면 어떻게 할 건가요? 문학동네는 이지성과 공동으로 아예 출판사를 하나 차렸죠. 

앞으로 출판사는 플랫폼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 기업이 된다는 건 단순히 '기획은 출판사가 하고 독자는 출판사가 보내주는 걸 받기만 하면 되지'가 아닙니다. 출판사가 독자와의 쌍방향 소통마저 넘어서는 다중 소통의 장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다중 소통을 일으키는 가치를 '연결 가치'라고 하는데, 앞으로 콘텐츠 기업이 제공해줄 수 있는 건 연결 가치밖에 없습니다. 독자는 연결 가치를 제공해주기만 하면 이를 다른 연결에 활용하면서 알아서 보답합니다. 

이홍 : 강력한 저자를 데려가서 저자 브랜드를 만드는 게 비도덕적인 건 아니죠. 하지만 모든 출판사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출판사가 어떻게 해야 직접 독자와 만날 수 있느냐로 질문이 모이게 됩니다. 

인문서는 출판사나 저자에 대한 충성도가 대체로 높은 장르죠. 과학도 그렇고요. 그런데 자기 계발서는 독자 충성도가 낮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한빛비즈는 어떻게 해야 <지대넓얕>의 독자들을 끌고 갈 수 있을까요? 

장은수 : 넥서스는 거의 최초로 20대 직장인 실용서를 냈죠. 그리고 그 독자들을 계속 끌고 가고 있습니다. 길벗은 '무작정 따라 하기' 시리즈로 다루는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죠. 이처럼 출판사가 자기 브랜드화를 통해 독자를 직접 관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빛비즈도 이런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홍 :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단계입니다. 앞서도 얘기가 됐지만, <지대넓얕>의 성공을 보고 무수히 많은 유사 기획이 나올 겁니다. 많은 출판사가 팟캐스트를 뒤질 테고요. 이 책의 다음 버전은 무엇일까요? 

장은수 : 정보 공학적 탐구가 중요합니다. 한 예로 '인포그래픽과 인문학은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고민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인포그래픽을 단순히 장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지식 책. 가령 '칸트의 3대 비판'을 이런 스타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할 법합니다.

이홍 : 독자는 어떤 책에서든 삶과 정서를 원합니다. 인간의 삶을 다루지 않는 책이란 없으니까요. 이를 백과사전식으로 나열만 해선 안 됩니다. 독자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야죠. 그런데 대체로 우리 인문서들은 너무 정리만 잘 하려고 합니다. 요즘 '오포세대'로 불리는 청년의 문제에 대해, 대개의 인문서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 줄 테니, 너는 알아서 문제를 인지하고 고민해'라는 식입니다. 당장 생명 유지에도 급급한 사람은 떠날 수밖에 없죠.

우리의 책이 좀 더 당대의 현실로 들어와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한계와 내용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지대넓얕>이 매력적인 건 이 부분입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제의식만 있다면 인포그래픽이든 웹툰이든, 뭘 사용하든 좋겠죠. 

물론 모든 책이 이렇게 갈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책이 가진 의미를 더 진중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책을 안 읽는 많은 분이 하시는 얘기가 '역사책이 밥 먹여주느냐'는 거죠. 밥 먹여주는 책이 많아져야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학문의 가치를 실용적으로만 재단하는 싸구려 사고'라고 해버리기엔, 이미 우리가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밥 먹여주는 정치, 밥 먹여주는 철학책이 필요합니다. 

장은수 : 첫 대담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출판사에도, 무엇보다 독자에게 유익한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이홍 : 다음에 더 좋은 책으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이니 장르 소설 어떨까요? (웃음)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지음, 한빛비즈 펴냄). ⓒ한빛비즈


잡스가 세상을 구했나? 천재는 잊어라!
2016.05.27 09:48:19

이번 시간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경제·경영서를 처음 다룹니다. 1990년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참 많은 경영 구루(guru)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고, 시중에 널리 회자됐습니다. 피터 드러커, 잭 웰치 등의 이름, 토요타의 린 생산이니 식스 시그마니 하는 말은 기업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돌이켜 보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 좀처럼 경영계의 철학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많은 이가 '기업이 성공하는 비결'을 이야기하지만, 독자의 마음에는 안 드는 목소리라는 게 정답이겠죠. 국제 경제가 살아날 길은 만무해 보이고, 기업도 급변하는 기술 혁신기에 따라야 할 금과옥조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겁니다.

<오리지널스>(애덤 그랜트 지음, 홍지수 옮김, 한경BP 펴냄)는 경제·경영 구루의 이야기가 신뢰받지 못하는 시기에 6만 부 넘게 팔려 관심을 모으는 책입니다. 상대적으로 국내에 덜 알려진 작가인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교수(조직 심리학)가 쓴 이 책은 혁신의 시대, 창의성의 시대에 개인과 조직(기업)이 대응할 법칙을 설명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의 메시지는 기존 경제·경영서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주의적이고 기업 성장을 우선시하는 이야기와 조금 다릅니다.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가장 '꽂히는' 메시지를 대략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제 한 명의 천재가 100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갔다. 조직을 살리는 진짜 창의성은 여러 명의 평범한 사람이 모였을 때 나온다. 그러니 이제 조직은 평범한 모든 이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떻습니까. 여전히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이건희 회장 식 신경영 메시지와 정반대되지요? 저자는 책 전반을 홍수처럼 뒤덮은 수많은 사례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창조 경제'를 진짜 떠받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천재가 아닌, 평범한 우리 스스로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나라의 기업과 관공서가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을 다루는 대담은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커피숍에서 이어졌습니다. 다음은 대담 전문입니다. 

▲ <오리지널스>는 창조성의 수준을 일상의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정기훈


진정한 창조는 보통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홍 : 오늘 이야기를 나눌 책은 <오리지널스>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경제·경영서를 다루게 됐습니다. 좀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그동안 적절한 책을 찾지 못했어요.

경제·경영서는 자본주의 체제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확실하게 이 분야의 에너지가 빠졌습니다. 탁월하다고 인정받던 경영 구루들이 입을 닫거나 아예 소멸하는 현상까지 생겼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조직론이나 혁신적이라 평가받던 경영 시스템이 졸지에 폐기처분되는 신세가 되었어요. 장황한 경제 이론이 탐욕스러운 자본 시장에서 대부분 화석화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신문 지면에서도 거창한 담론들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오직 불안감, 공포, 불확실성입니다. 경제·경영서는 시대가 발산하는 에너지를 먹고 자라는 장르인데, 삼킬 에너지가 없는 상황에서 띄엄띄엄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죠. 

창의성, 혹은 독창성을 주제로 다루는 <오리지널스>는 애덤 그랜트라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저자의 작품인데, 매우 다양한 영역을 포괄합니다. 경제·경영서라기보다 자기 계발서에 가깝고, 사회과학이나 심리학 서적으로 읽어도 될 듯합니다. 창의성이나 독창성을 다룬 타이틀의 공통점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굳이 경제·경영서의 영역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우리 체제의 모든 영역이 놀라운 독창성을 발현하거나, 창의적 사고의 진화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장은수 : 지난 2014년 나온 <제로 투 원>(피터 틸·블레이크 매스터스 지음, 이지연 옮김, 한경BP 펴냄)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오리지널스>는 이 책 다음으로 거의 처음 읽은 경제·경영서네요. 

<오리지널스>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전 경제·경영서의 메시지를 이어 받았습니다. 

다만 그 메시지를 주목할 만합니다. 요즘 기업가는 물론, 모든 사람이 창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장 박근혜 정부부터 창조 경제라는 말을 초기에 하지 않았습니까? (웃음) 보통 관련 책은 '창의성은 이렇게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직관적 대답을 내놓는 데 집중하는데, 이 책은 '창의성이 어디에서 오느냐'는 질문을 상정하고, 그 대답을 개인·조직·사회적 차원에서 나눠 제시합니다. 보다 현실적입니다. 

책이 집중하는 내용은 '창의성이 진정한 독창성, 즉 오리지널리티를 가지려면 단순히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실행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실행력은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 지는가'입니다. 그리고 실제 창의적 인간, 창의적 기업이 되기 위한 구체적 개념도를 제시하죠.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이 자체만으로 우선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비교적 최신의 연구를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2010년 이후 뇌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심리 연구도 폭발했는데, 이 성과를 현실 경영 분야에 충분히 반영해서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이홍 : 예스24 구매담당자(MD)는 "독창성과 창의성에 관한 통념을 파괴했다"고 홍보문을 썼더군요. 이 정도면 찬사를 넘어선 극찬이죠. 실제 그렇다면 역사적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웃음) 이런 극찬 때문에라도 독자는 상당한 기대를 갖고 책을 읽게 됩니다. 그러나 '통념의 파괴'까지는 아니고 '정리를 새롭게 했다'는 정도가 맞는 것 같습니다.

보통 경제·경영서는 '왜'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걸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왜 창의성이 필요한지 이야기하지 않죠. 필요하다는 걸 전제합니다. 이 장르 독자에게 필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 해결이거든요. <오리지널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성이나 독창성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지 구구절절한 이유를 늘어놓지 않습니다. 대단히 빨리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사례로 구성되어 있지요. 놀랍도록 풍성한 정리와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만한 책입니다. 

장은수 : 책에 멋있는 말이 참 많이 나와요. (웃음) 세계적 석학이 전한 함축적 언어가 많이 인용되어 책을 읽는 기쁨을 줍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엘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 벤자민 프랭클린 등 우리에게 창의적 아이콘으로 거론되는 수많은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본래 주제로 집중해 보죠. 어떻게 해야 창의적 개인, 기업이 될 것이냐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기술 발달에 따라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거대한 '단절적 연속'이 일상화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전의 지식을 무용하게 만드는 단절적 발전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죠.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미래가 계속 충격이 되는 사회가 열렸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한 번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살 수 없습니다. 개인은 물론 기업도 계속 새로운 삶의 규칙을 익혀야 합니다. '창조성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에 개인과 조직이 동시에 답해야 하는 시대가 된 거죠. 이 책은 그 방법론을 제시했기에 화제가 됐습니다. 창조적 개인, 창조적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구체적 방법과 문화적 규칙을 적절히 제공합니다.

특히 '왕자를 만나려면 개구리에게 100번 입맞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진짜 창의성은 순간 천재적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자주 아이디어를 내야만 나온다는 얘기죠. 

100번 입맞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직 차원에서 보자면, 엉뚱한 이야기나 하는 직원을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그 엉뚱해 보이는 이야기를 토론 과제로 올려야 열린 혁신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당연히 이런 조직 문화를 뒷받침할 별도의 경영 기술이 필요하겠죠. 이런 조직이라야 창조적 조직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책은 창조성의 수준을 일상의 차원으로 끌어내렸습니다. '독창성에 관한 통념을 파괴했다'고 굳이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독창성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모두의 재능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기업은 누구나 독창성을 키우게끔 변화해야 한다. 이게 이 책의 메시지입니다. 

이홍 : 그런데 이런 사례는 우연과 잘 구분되지 않아요. 목적성을 갖지 않고 단순히 툭 던진 아이디어를 과연 창의적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책이 극찬하는 사례가 사후 해석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성공한 대부분의 기업은 남들이 갖지 못한 독창적 아이디어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게 아니라, 빠른 후발주자였던 경우가 많죠. 당장 반도체나 스마트폰으로 먹고 사는 삼성전자 사례가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먼저 좋은 아이디어로 뛰어든 기업의 실패 이유를 연구하고, 이를 극복해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혁신의 시대라 하더라도 '왜 꼭 남들보다 더 창조적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느냐'는 식의 반론이 들어올 여지가 있다는 말이죠.

장은수 : 저는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 책의 메시지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에이브러험 링컨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링컨이 됐다"는 말이에요. 아이디어는 누구나 낼 수 있고, 보통 사람인 우리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보통 사람인 링컨이 어떻게 위대한 인물이 되었는가를 설명해요. 저는 이게 지금 시대 독자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과거 혁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사람의 일대기를 보면 남들과 달라야 한다, 과감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죠. 하버드 대학생이 학교를 때려치우고 창고로 가서 새로운 걸 발명했다는 식입니다. 천재의 이야기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럴 수 있나요? 이 책은 '그런 식으로 해서 창조성이 나오는 시대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섣불리 회사 때려치우지 마라고 하죠. 창조적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건 좀 뒤로 미뤄둬도 괜찮다고 해요. 우선, 먹고사는 데 집중하면서 창조적 생각이 실제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면 그 일에 집중하라는 식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한 명의 천재가 100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신봉했는데, 이 책은 ‘한 명의 천재보다 보통 사람 100명의 아이디어가 훨씬 중요하다’고 합니다. 100명의 보통 사람이 열린 자세로 이야기할 때 진정한 창조성이 탄생한다고 하죠. 매력적인 부분이에요.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건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단계에 필요한 기술과 규칙입니다. 단순히 '네가 새로운 생각을 갖고 사방에 떠들면 성공한다'고 하지 않고, '어떻게'부터 해결하라는 현실적 이야기를 합니다. 그간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경영서에서 신비화한 독창성을 구체적으로 반박했죠. 

저는 굳이 이 책의 약점을 지적하자면 메시지보다 구성을 꼽고 싶어요. 지나치게 나열식이에요. '오리지널'이 되기 위한 규칙을 죽 나열하는데 그쳤죠. 저자가 브리지워터를 사례로 들어 설명하면서 "기업의 혁신 원칙이 200개나 되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고 했는데, 정작 당사자가 그런 약점을 보였어요. 심지어 원칙이 나열되다 보니, 상호 충돌하기도 하죠. 나열된 원칙 간의 인과 관계가 뚜렷이 보이지도 않고요. 그래서 책이 산만하게 느껴져요.

이홍 : 장은수 대표의 지적처럼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전체 얼개가 그려지지 않습니다. 책의 목차는 분명 논리적 연관성이 분명한 틀을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저자가 데이터 분석에 치중하는 전형적인 교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다만 꼭 이를 약점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부분 부분만으로도 퍽 괜찮은 통찰을 제공해요. 굳이 책 전체를 이해해가며 읽지 않아도 됩니다. 목차를 참고해 필요한 내용만 발췌해서 봐도 무방하죠. 단점이 단점으로 끝나는 대부분의 책과 비교한다면 너무 인색한 점수를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는 이 책이 기업인, 연구원의 케이스 발표 때 자주 활용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구성 자체가 강의 자료로 만들기 매우 좋아요. 강의할 때 가장 힘든 게 좋은 사례 발굴인데, 이 책은 그 문제를 말끔히 해소합니다. 강의 프로그램만 잘 짠다면 기막힌 교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홍보에 관해서도 출판사에 여쭤보겠습니다만, 이 책 내용을 바탕으로 강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진 않으셨나요?

출판사 : 한 업체에서 이 책 내용을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 실제로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SERI) 최고경영자의 요청에 발맞춰 저자 인터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는 가을 즈음이면 이를 영상으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올해 12월을 목표로 저자 초청 강연을 논의 중입니다.


▲이제 '대학 때려 치우고 차고에서 출발하는 천재의 성공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시대다. ⓒpixabay.com


'오리지널스'가 뭘까?



장은수 : 자연스럽게 홍보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죠.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일단 저자 초청 강의를 너무 늦게 잡은 것 아닌가 싶어요. (웃음) 

<오리지널스> 홍보는 전반적으로 무난해요. 유명한 강연자이기도 한 홍성태 한양대학교 교수를 초청해 책 내용을 강의했고, 가제본을 오피니언 리더에게 돌려 사전 서평을 받았죠. 덕분에 '삼성그룹 CEO 10명이 추천하는 책'으로 꼽혀 유명세를 탔습니다. 대학생 서평단에게도 책을 돌렸고요. 

그런데 책에 애덤 그랜트와 <아웃라이어>(노정태 옮김, 김영사 펴냄)의 저자 말콤 글레드웰의 대담 영상을 담은 CD를 넣었다는 점을 우선 거론하고 싶어요.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모든 콘텐츠를 보는 시대에 CD라니요. (웃음) 

책에 부속물을 넣을 경우, 출판사의 가장 큰 목표는 독자 정보 수집입니다. 이걸 국내에서 잘 하는 출판사는 길벗이죠. 길벗은 독자 이메일 주소 확보를 위해 자사 온라인 카페에 독자의 회원 가입을 유도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야 책 관련 추가 콘텐츠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했죠. 

특히 한경BP처럼 특정한 분야에 집중하는 출판사 독자의 경우, 과거 해당 출판사 책을 사서 만족했다면 비슷한 내용의 새 책을 구입할 확률이 큽니다. 독자 정보 수집이 그만큼 더 중요하다는 거죠. 이 책이 당초 큰 기대를 모았는데, 독자 정보를 초기부터 수집하지 않았다는 건 장기적 관점에서 실수 아니냐는 생각이 드네요. 

국내 출판사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못 하는 이유는, 출간 초기에 '책을 파는 데만' 너무 집중하는 경영 마인드 탓입니다. <오리지널스>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잘 팔릴 책이니 당장에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쉽습니다.

앞서 이홍 대표께서 책 내용을 바탕으로 강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방안을 얘기하셨는데, 이런 식의 복합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와 더 밀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 출판의 특성상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독자와 만날 기회가 자주 오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책이라면, 이참에 더 공격적 홍보를 시도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가장 쉬운 건 '당장' 저자를 부르는 거겠죠. 제가 보기엔 유료 강의도 가능해 보입니다. 주요 수강자가 기업인일 테니까요. 

이홍 : <오리지널스>가 2016년 경제·경영서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잘 팔리는 책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과에 비해 저자의 지명도와 '오리지널스'라는 명사는 좀처럼 확산되지 않는 것 같아요. 12쇄를 찍었는데, 인터넷에 '오리지널스'를 검색해 봐도 '오리지널스가 뭐냐'는 질문에 답할 만큼 충분한 이야기가 검색되지 않아요. 확산력과 영향력을 두루 갖춘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독자층을 넓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오리지널스'라는 키워드가 좀 더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장은수 : 출간 초기 주요 독자층 확보에는 성공했어요. 간단히 말해 회사에서 읽으라고 하니 복지카드로 책을 사서 읽은 직장인 독자가 많다는 거죠. (웃음) 아마 많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이 책을 직원 교육 도서로 선정했겠죠. 마침 책은 읽고 나서 좋은 말을 인용해 블로그에 올리기에도 딱 적합합니다. 이런 블로그 등을 통해 2차 화제가 되고 있고요.

문제는, 이런 식으로 책을 읽은 독자 대부분이 책의 메시지를 스스로 개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제가 독자 80여 명의 블로그를 죽 훑어봤는데, 대부분 독자가 그냥 출판사 보도자료 내용을 베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독자층으로는 20대가 꼽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블로그, 포털 등을 살펴봐도 이 책을 20대 추천 도서로 소개들 하더군요. 그런데 교보문고가 제공한 자료를 볼까요? 지난 1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20대 독자의 비중은 남자와 여자 각각 6.2%, 10.0%에 불과합니다. 20대 남성 독자 비율은 전체 남성 독자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여성 역시 4분의 1 수준에 머무릅니다. 심지어 해당 연령대 경제·경영 부문 평균(남녀 각각 8.1%, 11.6%)에도 미치지 못해요. 20대 공략에 실패한 거죠. 

이 책의 내용이 20대에게 닿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메시지를 개발해야 합니다. 인물을 내세우고, 기업체 CEO가 추천했다는 얘기로는 안 된다는 거죠. 차라리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정도의 메시지가 낫지 않을까요? 

▲ <오리지널스> 성별/연령별 구매 비중. ⓒ교보문고


이홍 : 장은수 대표의 말씀에 딴지를 거는 건 아니지만, 다소 무거운 경제·경영서를 가지고 출판사가 20대를 중요한 독자층으로 보진 않았을 겁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보고요.

출판사 : 처음부터 주요 독자층은 30, 40대로 잡았습니다. 아무래도 직장인이 주요 독자층일 수밖에 없습니다. 

애덤 그랜트의 전작 <기브앤테이크>(윤태준 옮김, 생각연구소 펴냄)가 미국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3만 부도 채 팔리지 않았습니다. 당장 지금도 포털에 저자 검색을 해 봐도 저자 사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덜 알려진 인물이기에 독자층을 기존보다 더 넓힌다는 생각을 애초에 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장 주요 독자층에게 저자를 각인시키는 게 시급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예상보다 이 책이 잘 팔리는 이유는 출판 시기도 한 몫한 것 같습니다. 보통 출판 시장 흐름이 연초는 트렌드 도서가 장악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아무리 강력한 경제·경영서가 나오더라도 트렌드 도서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리지널스>는 1월말, 이 흐름이 한번 꺾이기 시작할 때에 맞춰 나왔습니다. 시기가 좋았습니다.

CD를 넣은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리 책을 구입하신 분은 아시겠지만, 초판에는 CD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 미국의 저작권자가 강의를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트렌드 도서와 경쟁하는 입장에서 저자를 독자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 때문에 CD로 대담을 정리해 추가했습니다.

보통 경제·경영서 출판사는 7월 경제 연구소 추천 도서에 포함되는 걸 목표로 책을 냅니다. 만일 이 책이 올해 추천 도서에 꼽힌다면, 연말까지 흐름을 탈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홍 : CD 내용을 인터넷에 공짜로 푸는 게 저자 각인에 훨씬 좋을 것 같은데요? 네이버 첫 화면에 강연을 넣으면 더 큰 효과가 날 겁니다. 

출판사 : 미국 출판사와 계약 조건 상 온라인에 대담 내용을 푸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신 직장인이 많이 모이는 포럼 등에 CD를 많이 배포했습니다.


독자 요구에 반응하라 

장은수 : 경제·경영 분야에서 저자의 인지도를 높이는 건 중요하죠. 특히 요즘처럼 경영 구루가 없는 시대에는 더 중요합니다. 저자 이름을 알릴 수 있으면 강연 프로그램 등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예전에 김영사가 스티븐 코비를 홍보한 게 대표적이죠. 단순히 책을 한 권 팔고 만다는 생각을 넘어, 장기적으로 저자의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는 건 현대 출판 사업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출판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저자 강연과 컨퍼런스를 출판사의 주요 수익 모델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여태 거론되지 않았습니다만, 한경BP에서 <오리지널스> 저자와 관련한 홍보를 이미 실행했습니다. 올해 서비스를 시작한 다음카카오의 북리뷰 채널 ‘북클럽 오리진’과 저자 인터뷰를 성사시켰고, 이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널리 화제가 되었죠. 이 채널을 특히 직장인이 많이 구독하더라고요. 이를 활용한 건 좋은 방법이었다고 봅니다. 다른 출판사도 <오리지널스>의 사례를 잘 활용한다면 홍보비를 줄이면서 좋은 홍보 채널을 얻을 수 있을 테고, 나아가 좋은 서평사이트를 확보하는 효과도 얻게 되리라고 봅니다.  

출판사 내부에서도 북클럽 오리진의 홍보 효과를 높게 보시나요?

출판사 : 해당 기사가 주말에 노출되었고, 이후 책 판매에 효과가 있었다는 게 내부 평가입니다. 예전보다 북클럽 오리진이 출판사의 중요한 홍보 채널이 된 것 같습니다.


장은수 : 이런 방식의 홍보는 앞으로 더 강화될 것 같네요. 이에 맞춰, 이제는 <오리지널스>도 새로운 독자층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입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독자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블로그 반응을 보면 이 책이 주는 편익을 여전히 독자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세상을 움직인다'는 홍보 메시지가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성공 담론이 먹히지 않는 시대잖아요? 

한 줄로 설명되는 카피를 뽑아야 해요. 당장 <아웃라이어>의 일반시간 법칙이나 뉴욕시의 '깨진 유리창 이론'과 같이 꽂히는 문구가 필요하죠. 

<오리지널스>는 이런 문구를 만들기 좋은 책 같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폭발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죠. 보통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압축적 메시지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에 성공하면 20대까지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지난 대담 시간(☞관련 기사 : <피너츠 완전판> "스누피가 네 발로 기어다녔어?")에도 얘기했습니다만, 독자 메시지에 따라 홍보 메시지도 변하는 시대입니다. 창조적인 독자가 스스로 홍보 메시지를 만들고,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시대예요. 출판사가 설정한 대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독자 메시지가 저절로 진화하죠. 출판사는 진화를 촉진하는 걸 고민해야 합니다.

출판사 : 저자의 전작과 달리 이 책에 관한 미국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전작에는 신통찮게 반응했지만, <오리지널스>에는 독자가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직된 조직 문화에 고통 받는 독자들이 이 책의 내용을 신선하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이홍 : 독자층을 넓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그것이 단순히 20대까지 연령대를 넓히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30, 40대 내부에 더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같은 연령대 독자 내에서도 얼리어답터, 조기 수용자 그룹, 본격 수용자 그룹 등 층위가 다양하게 나눠지니까요. 독자층 확산을 연령대 확산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전략은 자칫 포커스를 분산하는 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연령별 한계를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조직 경험이 부족한 20대가 읽기에 이 책은 친절하지 않아요. 다만 어떤 연령이나 층위의 독자라고 해도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가 필요하다는 장은수 대표의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출판사 : 사실 책의 메시지를 이미 여러 차례 바꿨습니다. 기대만큼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 <오리지널스>(애덤 그랜트 지음, 홍지수 옮김, 한경BP 펴냄). ⓒ한경BP

장은수 :
출판사가 원하는 식으로 바꿔서는 소용이 없죠. 

이홍 : 벌써 오늘의 대화를 정리할 시간입니다. <오리지널스>는 모처럼 만나는 우량 종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경영서 시장이 오래도록 기다려온 새로운 저자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반가움이 더합니다. 경제·경영서 도서는 한 권의 좋은 책이 잘 알려지면, 차후 지속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큽니다. 이 책의 메시지가 오랫동안 회자되길 기대합니다. 

장은수 : 실로 오랜만에 눈에 띄는 경제·경영서를 봤습니다. 일반인이 읽기에 부담 없는 메시지가 좋았습니다. 기업가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의 사람, 예를 들어 예술계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호소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도 이 책이 닿기 위해서는 독자가 책의 내용을 자기 삶의 메시지로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친화적 홍보가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헬조선' 절망이 <미움받을 용기> 열풍 낳았다

2015.12.28 07:32:54


▲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 ⓒ프레시안(최형락)



인문서 아니라 자기 계발서 

장은수 : 벌써 올해 마지막 시간이네요. 이 책을 안 다루고 넘어갈 순 없겠죠.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지은 <미움받을 용기>를 올해 마지막 대담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무려 80만 부나 팔린 올 한해 최대의 화제작이죠. 이런 책을 대형 출판사도 아니고 신생 출판사가 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인문·자기 계발 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먼저 책을 읽은 전체적인 소감부터 이야기해 보죠. 이 책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아들러 심리학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이미 책을 읽은 분은 아시겠지만, 이 책이 다루는 담론 자체는 익숙합니다. 이전부터 계속 유행했던 행복 심리학, 긍정 심리학의 흐름에 놓을 수 있을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정하고 불안한 세계에서 나 자신을 보존하면서 또는 긍정까지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시도하는 책이 지난 10여 년간 계속 나왔습니다. 이런 흐름이 쌓이고 쌓여서 이 책에 이르러 거대하게 폭발해, 하나의 이정표를 찍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강한 욕구가 어디에서 왔을까요. 사회적 요인을 얘기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뒤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할 시간을 갖겠지만, 우리가 마음이라도 고쳐먹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 아니겠어요? 인간의 자존감이 무너진, 특히 자본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진 사회에서 시달리면서 모든 개인이 자아를 잃을 정도의 아찔한 위기감을 느끼는 중입니다. 자아가 송두리째 뿌리 뽑힌 것 같은 그 마음고생을 어떤 식으로든 이겨내고 싶다는 충동이 이 책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홍 : 단순한 인상 비평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솔직히 당혹스러운 책이었어요. 인문, 심리, 자기 계발이라는 좁은 영역의 차별화가 의미 없는 책이었습니다. 출판사는 영리했고, 독자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상업적으로 변형된 심리학 분야가 팔리는 영역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아들러 심리학'이 80만 독자나 볼 정도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느냐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것 역시 당혹스러움을 더하는 부분입니다. 좋은 책이니까 2015년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겠지만, 결과론이 아닌 과정의 문제에 접근한다면 많은 궁금증과 의문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출판사에 솔직하게 묻고 싶은 게 많아요.

원서의 글쓴이가 시도한 대화적 집필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흔한 기법이지요. 기획 출판에 따른 원고 생산의 전형적 모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이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청년'이 '철학자'를 찾아가서 질문을 노골적으로 던지고, 이 대화에서 콘텐츠를 추출했는데, 핵심 주제에 대한 대응과 정리가 탁월했습니다. 본능적으로 기술적인 글쓰기를 잘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은수 : 책 안에 독자 차별화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나와 있어요. 아들러 심리학의 내용을 소개하지만, 책의 실제 서술은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들러가 얼마나 훌륭한 심리학자인지 아느냐"라고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스티븐 코비, 데일 카네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솔직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심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프로이트나 융이나 에릭슨이나 클라인이나 프랑클 같은 심리학 대가들이 언급될 자리에 코비나 카네기가 들어앉은 꼴입니다. 이는 이 책의 원래 성격을 말해 줍니다. 이 책은 심리학 책이 아니라 자기 계발서 또는 인간 교제술에 대한 책이라는 거죠.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최염순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김경섭 옮김, 김영사 펴냄)은 자기 계발서 분야에서 클래식 중 클래식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자신을 그 맥락에 위치시키고 있습니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온라인 서점들에서 이 책의 성공을 두고 "인문서가 널리 읽혔다"고 말하는데, 어불성설이죠. 이 책은 변형된 자기 계발서입니다. 이른바 인문적 자기 계발서죠. 방점은 인문이 아니라 자기 계발 쪽에 뚜렷하게 찍혀 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들러가 프로이트, 융과 함께 3대 심리학의 대가라고 소개하는데, 이런 말을 이전에 들어본 적 없습니다. (대가 자리에 오를 만큼 유명하지는 않았거든요.) 여러 심리학 책을 찾아봤습니다만 아들러라는 사람 자체는 이론가라기보다 기본적으로 상담가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과학자가 아니라 현자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대학 내에서는 아들러 이론이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아들러의 주요 주장들은 실증하기가 대단히 어렵거든요. 이 책의 핵심 내용이 '인간 심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미 부여에 달려 있다'는 것인데, 본문에도 이미 나옵니다만 이를 다른 사람이 알 방법은 없습니다. 또 아들러에 따르면, 알 필요도 없지요. 책을 읽다 보면 과학적 실증보다는 랍비처럼 지혜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인간 과학으로 보기 조금 어렵죠. 그러나 아들러 이론의 이런 특성이 오히려 일반인한테는 친근한 할아버지가 인생 이야기를 차분히 건네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대화 방식을 약간 비판적으로 얘기하자면, 근본적으로 '불평등 대화'예요. 한 사람은 제자/환자이고, 한 사람은 선생님/의사죠. 즉,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전혀 평등하지 않고 힘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관계입니다.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삶은 도저히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열등 콤플렉스'에 빠진 환자를 상담하고 있죠. 표준적, 수평적 인간 관계가 아닙니다. 대화의 상대편이 동급의 심리학자였다면, 과연 대화가 이런 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떠오르더군요. 

이홍 : 물론 저도 아들러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웃음) 오늘의 토론을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아들러에 대해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 가운데 '열등감'이 눈에 띄더군요. 책의 본문 중에도 "긍정적인 인간 관계의 핵심은 열등감 극복에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철학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청년'은 열등감 그 자체이자, 이 책의 독자입니다. 열등감 극복이 인간성 회복에 중요한 측면이라는 아들러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 대화의 상대방을 병적으로 열등감에 빠진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나는 이런 설정이 대단히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화자가 이런 유형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그저 현학적인 사람들이 자기들의 세계에서 덕담이나 동문서답을 나누는 형태가 되었을 겁니다. 

인터뷰 형식의 서술이 성공 요인 

장은수 : 제가 "불편하다"고 한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에요. 오늘 우리 대화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화에서도, 앞으로 전통적 방식의 인문학 서적은 대중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 힘들 것이고, 편집자나 외부 집필자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출판사들도 이 책과 같은 방식의 편집을 꾸준히 시도해 왔습니다.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김병종·이문열·이윤기·이숙경·최승호 지음, 민음사 펴냄)가 나온 이래로, 대담이나 좌담 형식으로 인문학 지식을 공유하려는 기획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학자 간 대화가 많이 시도되었죠. 알마 출판사 같은 곳에서는 이를 한 단계 더 대중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적도 있습니다. 지승호 같은 전문 인터뷰어도 생겨났습니다. 

이 책은 지승호식 인터뷰를 한 단계 더 낮추었습니다. 책의 질문자는 대중의 요구에 매우 충실하죠. 반복해서 똑같은 질문을 하고, 감정까지 집어넣어 가면서 드라마화합니다. 아직 한국의 인문적 인터뷰 책에는 이런 스타일은 없습니다. 가령 지승호의 경우, 논리적으로 정합적이고 깔끔한 질문자입니다. 지승호 본인이 그 이하로 내려갈 생각도 없을 겁니다. 반면 <미움받을 용기>의 질문자인 '청년'은 선생님 앞에서 납작 엎드립니다. 자신의 바닥까지 드러내면서 독자를 끌어당깁니다. 지승호의 책은 지적인 대화로 만들어진 인문 대중서 느낌이 든다면, 이 책은 인문서라고는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을 것 같은 초보 독자의 요구에 충실하죠.

그런데 이 친절한 대화를 보면서, 저는 이 청년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느껴졌습니다. '못 알아듣기 위해 못 알아듣는다'는 느낌. '청년'은 얘기를 하다 수시로 화를 내고, 우울함에 빠지는 등 다채로운 감정을 보여줍니다. 반면 '철학자'는 시종일관 여유롭고 논리적이죠. 이 책은 수평 관계를 강조하는데, 책 내용은 계속해서 이와 어긋납니다.

아마 아들러 심리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 주면서, 이에 더해 그 사람의 인생 문제까지 해결해주기 위해 이런 서술을 택한 것 같습니다. 인문학 서적 편집자들은 이 책이 설정한 대중의 눈높이를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중을 낮춰 본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웃음) 대중의 요구는 조금 더 원초적인 것 아닐까 싶습니다.

▲ '개인 심리학'을 정립한 알프레드 아들러. ⓒwikimedia.org

이홍 :
친절함의 반영이죠. 솔직히 전공자가 아니라면 한국의 많은 독자 중 심리학자 아들러를 제대로 인지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이 책은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한 철학자의 이론을 대화의 형식에 녹여서 대중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이론 체계를 꼭 필요한 외형의 거푸집을 만들어 원하는 모양으로 뽑아낸 겁니다. 그게 단단한 벽돌로 쌓은 집처럼 보입니다. 장은수 대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편으로는 불편해질 정도로 친절한 서술이 독자에게 아들러의 철학을 이해시키는 도구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던지고 싶은 질문과 불평, 의문을 책의 화자가 다 해 버리는 ‘과잉’을 베푼 것이지요.

다만, 독자가 착각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본문의 '철학자'는 '청년'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아들러 심리학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철학자'의 대화를 아들러 심리학의 몸통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에서 아들러 심리학은 수단이지, 궁극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혹시 이 책 한 권 읽고 아들러에 대해 다 알았다는 생각은 정말 오해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이 책의 훌륭한 서술 방식이 한편으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은 전지전능함을 자처하기보다 독자가 자기 판단을 내릴 여지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움받을 용기>는 그냥 믿고 흡수해버리면 돼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의 내용 중 일부는 위험하다고 봅니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주장도 가득합니다. 이 책이 한 해를 대표할 정도의 베스트셀러가 아니었다면 이런 지적이 필요 없겠지요. 과도한 요구일 겁니다. 그러나 싫든 좋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들어야 할 지적이고 받아야 할 비판입니다. 

장은수 :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나 마르크스 같은 사람들은 현상이 전부가 아니라 그 현상을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이트에게는 그것이 무의식이고, 마르크스에게는 경제 토대이고, 소쉬르에게는 기의죠. 그런데 말씀하셨듯이, 아들러는 이런 식의 사고를 전면으로 부인합니다. "의미는 기본적으로 '나'에게서만 나온다"라고 주장하죠. 제 생각에는 강력한 유아론, 또는 주관적 관념론입니다. 

의미는 기본적으로 나와 타자 사이에서 만들어집니다. 상호 주관적이지, 일방적으로 내가 선포한다고 생기진 않습니다. 내가 부여한 의미와 다른 사람이 부여한 의미가 충돌할 때, 두 의미는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의미를 중심으로 살고, 너는 네 의미를 중심으로 살자. 서로 존중하고 살자'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죠. 하지만 인간과 인간이 관계 맺는 사회는 실제 힘으로 움직이잖아요. 

아들러의 심리학은 힘을 고려하지 않는, 너무 깨끗한 세계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일을 시킬 수 있어요. 아들러는 이럴 때 자신한테 의미 없는 그 일을 포기해 버리고 더 의미 있는 일을 행하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힘이 없습니다. 일이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마치 갑질을 견디는 을한테 책임을 슬쩍 떠넘기는 것도 같습니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나약성, 조직이나 폭력 앞에서 인간에 대한 성찰이 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나 아렌트가 성찰하는 '악의 평범함'과 같은 것 말이죠.

이 책에는 사회적 힘, 관계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어요. 개별자화된 개인이 만나서 논리의 정합성만을 따지면서 이야기하는 느낌이 듭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청년'은 "사장과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라고 묻는데, '철학자'는 그가 괴롭히든 말든 자기 일에만 집중하라고 하죠. (웃음) 

공동체라는 큰 이름으로 호명하는 추상적 실체에 인간 관계를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대화에서 힘을 고려하지 않는 이 살균성을 성찰하는 것이 현대 철학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진리가 힘에 오염되었다는 생각 말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성찰하지 말고 힘을 성찰함으로써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무시하는 아들러 심리학은 철학이라기보다 오히려 종교에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이홍 : 상대적 객관성보다 주관적인 절대적 사고를 요구하죠. 대개의 인문학, 심리학이 이야기하는 공통된 주제는 인간 관계는 모두 상대적이라는 겁니다. 우주에 나 혼자만 존재한다면 심리나 자기 계발이 필요 없잖아요? 사람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에 종교를 찾습니다. 하다못해 자기 나름의 개똥철학이라도 필요하죠. 이 책은 관계가 만드는 충돌과 긴장에 대해 파괴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절망 사회가 <미움받을 용기> 성공 낳았다 

장은수 : 판매량 얘기가 나온 김에,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앞서 잠깐 언급했던 이 책의 성공이 우리 사회에 갖는 의미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의 판매량이 무척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개인에 초점을 두는 '개인 심리학'이잖아요? 개인이 먼저 서야 타인을 신뢰할 수 있고, 그다음에야 공동체에 대한 공헌이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논리적 발전은 투철한 자아 정립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배경 없이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한테는 낯선 사고방식이에요. 한국인은 대체로 가족, 사회 등 공동체와 더불어 나를 말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하죠. 그런데도 이 책이 이처럼 많이 팔려나가면서 공감을 얻었습니다. 한국인의 심층 심리 구조에 근본적 변화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니면 현재 한국 사회가 워낙 척박하다 보니 일시적으로 '나를 확실하게 보호하고 싶다', '미움받더라도 내 인생은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나 절박해진 것일까요?

물론 '아들러 심리학이 동양 사람한테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게 제 의견만은 아니고, 아들러 심리학을 비판할 때 늘 나오는 얘기예요. 서양의 특수한 문화에서만 이런 심리학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게 골자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아들러식 심리에 대한 공감이 일반화되었다면, 우리 의식 구조가 이미 서구화되었거나,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 삶의 조건들이 가혹하게 이런 심리 구조를 강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책을 많이 읽는 세대에게 이런 사고방식이 낯설지 않다는 점일 겁니다. 

이홍 : 원인론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우리의 일반적 사고방식인데, 이건 일종의 유전적으로 습득한 하나의 종교이자 가르침이죠. 그런데 <미움받을 용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원인은 필요 없고, 과거는 미래를 만드는데 전혀 상관없다고 하죠. 목적론이 우리에게 편한 개념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한국의 독자가 이 주장을 왜 받아들였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 그처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읽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지금의 내 목마름을 적시기 위해 읽었을까. 

조금 냉정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대부분 많이 팔린 책이 특별히 사회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진 않잖아요? (웃음)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가 대표적이죠. 이 책의 독자 80만 명이 16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로부터 우리 사회 전반의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보긴 어렵죠. 

다만,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기 힘든 주장이 넘친 책이 이처럼 많이 팔렸단 말이죠. 일본 책이 많이 얘기하는 개인성의 발견에 우리 사회가 완전히 분리된 게 아니다. 그들(일본)이 바라보는 변화와 일맥상통하는 흐름이 우리 사회에도 있는 것 같다.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개인적 고립이나 파편화를 강조하는 책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건 가볍게 넘어가고 말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장은수 : 맞아요. 그 부분이 아주 중요해요. 

베스트셀러는 그 책을 읽는 사회나 독자의 심리를 드러내기 마련이에요. 그동안 우리 사회의 기본 기조는 혁신이니 개혁이니 하면서 '사회를 바꾸는 게 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변혁에 대한 희망이 있는 사회였습니다. 

이는 이른바 (5)86세대의 일반적인 사회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돌풍은 그런 사회적 신념체계의 부정 또는 붕괴를 상징합니다. 이 책은 주로 30대~40대가 읽었습니다. (5)86세대의 바로 아랫세대죠. 20~40대로 추정되는 독자들의 블로그에서 이 책을 평가한 내용을 보면, 내용에 관한 문제 제기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책을 계기로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다른 책을 더 '열공'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죠.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한 신념체계가 이미 붕괴 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의 청년층은 이전((5)86세대)과 전혀 다른 세대인 거죠. 사회를 영원히 부정적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사회 안에서 탈출구도 찾을 수 없으므로 자신의 내부라도 긍정적으로 보려 한달까요? 

▲ 변혁을 기대하는 심리가 붕괴했다. 이제 스스로를 추스리는 데 사람들은 집중한다. 더는 사회에 바랄 게 없다는 정서는 '헬조선'이라는 용어로 대표된다. ⓒ프레시안(최형락)


이홍 :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처럼 아픔마저 청춘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넘기는 세태나, '미움'을 '용기'로 받아들이는 책의 제목이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 같아요. 아픔, 미움마저 이제는 내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할 삶의 가치관이 되었다고 할까요. 어떻게 보면 종교적 관념 체계가 맞죠. 이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쉽게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이런 신념 체계가 범사회적으로 퍼졌다면 이는 문제가 맞겠죠. 오해가 있을까봐 다시 강조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와 이 책이 같은 맥락에 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부정적 표현을 수용하는 제목에 의미가 있다는 거죠. 집단의 논리에서 벗어나고 싶고, 전체적인 담론에 지쳐버린 개인들이 이를 승화해주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에 동의하는 것 아닐까요. 

장은수 : 맞아요. 이 책의 성공으로부터 희망의 확산을 읽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분명 희망적이에요. '자기 수용'을 통해 가치를 회복하고, 이 힘을 배경으로 타자를 신뢰하고, 그 힘으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서라는 것이죠. 그러나 이 책을 많이 읽는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지속, 좌절의 확산, 좌절의 승인이 읽힙니다.

이홍 : <미움받을 용기>는 잘 만든 책이에요. 한 연구자의 이론 체계를 따와, 자기 계발 목적에 맞게 기획적으로 정리했죠. 좋은 기획이고, 필요한 글쓰기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이 책이 가질 수 있는 자기 책임 이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출판사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현재의 판매 부수는 이 책이 가진 함량을 넘어선 결과입니다. 

아들러와 관련된 책이 올해 여러 권 쏟아졌어요. 각각의 책을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판매 실적을 보자면 아들러의 이론 체계를 제대로 설명하는 책은 잘 안 팔렸어요. 결국, 이 책은 아들러라서, 아들러의 이론이 정말 놀라워서 잘 팔린 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거듭 출판사에는 미안하지만, 이처럼 많이 팔린 책에 이와 같은 질문과 우려는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86세대와 이후 세대는 완전히 다르다 

▲386세대와 X세대로 대표되었던 이후 세대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경험을 하고, 다른 가치체계를 갖게 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장은수 :
언론도 이 책의 성공 현상을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책과 관련된 기사가 4000건이 넘게 나왔어요. 물론 대부분은 단순한 베스트셀러 기사입니다만, 이 책의 내용을 세세하게 정리하거나 그 의미를 따져 물은 기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 교보문고가 제공한 데이터를 보죠. 유달리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심리학 도서 시장에서 50~60대 독자 비율이 15%인데, 이 책은 10%밖에 안 나왔습니다. 반면 이 책의 30~40대 독자 비중은 34%인데, 심리학 도서 시장에서 같은 나잇대 독자의 비중은 29%예요. 한참 인간 관계에 시달리고, 직장 생활에 지치는 젊은 층에 이 책이 먹힌 거죠.

나이, 세대를 다 구분해서 보면, 이 책을 가장 열심히 읽은 독자층은 30대 여성이에요. 전체의 23%나 됩니다. 책 전체로 보자면 지난해까지 책을 가장 많이 본 계층은 40대 여성인데, 올해 30대 여성이 1위를 했거든요. 여기에 이 책이 제법 큰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싶네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인데, 이 책은 정말 남자들이 안 봤네요. 남성 독자 비중이 여성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는 심리학 도서 전체 통계와 비슷하네요.

이홍 : 제 생각보다는 남자들이 많이 봤어요. (웃음) 자기 계발 서적이라는 점 때문에 그나마 남자들이 조금 더 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7대3 정도로 여성 독자 비율이 압도적이었으리라고 예상했어요. 

장은수 : 책의 월별 판매율 그래프가 굉장히 흥미로워요. 이 책이 지난해 12월 나오자마자 올해 12월 대비 718%에 달하는 판매율을 기록했어요. 어떤 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높죠. 초기 마케팅을 어떻게 하면 이런 숫자가 나오는 것일까요? 묻고 싶었지만, 이 부분은 참았습니다.

그다음 달에는 바로 98%로 뚝 떨어지는데, 2월에는 135%가 되었습니다. 이때가 이 책이 처음 1위를 기록한 때입니다. 3월에는 기시마 이치로가 내한했는데, 다시 144%까지 판매율이 오르죠. 그 뒤로 조금 떨어지다가, 7월 초에 다시 117%까지 판매율이 올라요. 6월에 예스24에서 상반기 집계를 내면서 이 책이 상반기 최고의 책으로 주목받았거든요.

이후 다시 꺾이다가 11월 들어 117%까지 판매율이 늘어나죠. 이때부터 <미움받을 용기>가 40주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이야기, 올해 최고의 판매량을 올린 책이라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어요. 그 영향을 받은 거죠. 대중은 마케팅에 보답해요. 이 책의 판매 그래프가 작은 사례입니다. 

▲ 언론에서 이 책이 회자될 때마다 책 판매율이 증가하는 걸 알 수 있다. ⓒ프레시안


다른 출판사도 배워야 할 성공적 마케팅 기획 

이홍 : <미움받을 용기>의 성공으로 자기 계발서 시장의 변화도 확인한 것 같아요. 더는 성공형 책, 이른바 '석세스 트리'를 만들어주는 자기 계발서는 성공할 것 같지 않습니다. 외환 위기 이후 성공 모델을 이야기하는 책이 계속 나왔는데,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그게 다 허상이었다는 점을 모두가 알았죠. 이후 영미권의 자기 계발서, 경영서의 성공 사례가 확 줄어들었어요. 

이때 나온 게 김난도 교수의 책과 같은 위로형, 코칭형 자기 계발서죠. 이제 또 하나의 변화 전기가 나타난 것 같고요. 현재 자기 계발서의 모습을 보면, '자기 계발' 정의를 다시 해야 할 정도입니다. 어떻게 내 본연의 모습을 구축할 것인가, 어떻게 이 아수라장 사회에서 살아남을 것인가가 요즘 자기 계발서의 중요한 이슈죠. 

장은수 : <미움받을 용기>가 단순히 성공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인간적 가치의 회복을 염두에 뒀죠. 외적 성공보다 내적 가치를 추구하라는, 일종의 성숙 담론이 이 책에 깔렸습니다. 그 주제에 걸맞은 이론을 깔끔하게 제시했고요. 분명 주목할 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자, 이제 이 책의 마케팅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자리를 통해 이미 알려졌지만, 이 책은 아주 적극적인 마케팅 기획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이를 통해 무려 40주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홍 : 인플루엔셜이 신생 출판사이고, 책은 일본에서 나왔고, 사회적인 현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이 책을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 지음, 최현숙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과 비슷하게 봤어요. <아침형 인간>이 한스미디어의 첫 책이었는데 출간한 2004년 한해에만 50만 부 이상 팔렸죠. 이 때문에 저는 인플루엔셜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가져갈 것인가가 궁금합니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할 때 한 얘기입니다만, 대체로 자기 계발서를 읽는 독자의 특징은 편협하다는 겁니다. 특정 시기에 그 사회가 '이것이 일등'이라고 인정하는 책에 끌려가는 습성이 있어요. 문학 독자, 인문서 독자보다 자기 주도성이 조금 약합니다.

결국, 이런 특징이 독서 모임, 직장 단위의 세미나 모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책은 그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이런 쏠림 현상은 대체로 단체 주문, 기업체 주문으로까지 이어져요. 이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읽자'기 보다, '책을 배우자'는 성향이 강합니다.

장은수 : 단체 주문 가능성이 별로 크지 않은 책이 이만큼 팔렸다는 것도 대단하죠.

이 책의 저작권료가 꽤 높았던 거로 알아요. 이 때문인지, 출판사가 출간 초기부터 아주 공격적 마케팅을 시도했습니다. 출판사의 답변 내용을 보면, 출간 초기부터 대면 마케팅을 강하게 시도했고 tvN의 드라마 프로그램에 PPL도 시도했습니다. 출간 3주 전부터 가제본을 이용한 서평단도 꾸렸습니다. 보통 출판사가 이 정도 마케팅비를 초기에 집행하는 것은 상당히 힘듭니다. PPL은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힘들고, 가제본을 이용해서 서평단을 미리 꾸린 것도 기존의 한국 출판사에서 흔한 일은 아닙니다. 대개 책이 나오면 서평단을 꾸리거든요.

인플루엔셜에는 내부에 세일즈 팀이 없어요. 출판사는 마케팅 기획만 수립하고, 세일즈는 외부 회사가 진행합니다. 출간 초기 판매량을 보면, 세일즈 회사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는 과감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이 전략에 맞춰 외부의 세일즈 전문 회사가 공격적인 행보를 보임으로써 아주 빠른 시기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이 덕분에 이홍 선생께서 여러 차례 강조한 쏠림 현상이 일어나 빠른 속도로 책이 퍼졌죠. 그간 대담에서 우리가 지적한 국내 출판사 마케팅의 아쉬운 점을 상당히 상쇄하고 있어요.

이홍 : 사실 가장 특별한 건 PPL이에요. 이 책에 이 정도로 과감한 홍보 기획을 세웠다는 데서 출판사에서 처음부터 10만 부 이상은 판다는 걸 목표로 했음을 추정 가능해요.

장은수 : 사전 답변에서 출판사가 "단계별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고 한 부분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초기에 온라인에 좋은 검색 값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수립했고, 언론 홍보도 적극적으로 잘했습니다. 초기에 메이저 언론에는 많이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언론에 기사가 노출되었습니다. 콘셉트도 아주 잘 잡았죠. "무라카미 하루키를 물리친 책." 이만큼 기사화하기 좋은 문구가 어디 있어요? (웃음) 아마추어가 쓸 수 있는 카피는 아니라고 봅니다. 언론을 잘 아는 사람이 홍보를 진행했다는 느낌입니다. 신생 출판사가 이런 홍보 기획을 집행했다는 점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가제본 서평단의 역할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사전 마케팅인데, 출판사가 독자 반응을 미리 봤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평단 반응이 아주 좋았을 겁니다. 그러니 이 정도로 과감한 홍보 전략을 세우고, 밀어붙일 수 있었죠. PPL, 저자 강연회 등의 단계별 기획이 이 반응을 근거로 해서 수립됐을 겁니다. 출판사 전체가 전략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인 느낌이에요. 책을 계속해서 쏟아내는 대형 출판사가 아니라, 책을 거의 출판하지 않는 작은 출판사였기에 더 잘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홍 : 이 정도로 잘 팔린 책은 대부분 단계별 마케팅을 밟아가죠. 다만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는지, 결과를 보고 따라붙은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장은수 : 시장을 크게 본 건 확실합니다. 판매 성장세가 조금 떨어지자 김미경, 윤대현 등의 인기 강사를 통해 이 책을 다시 홍보했죠. 이 정도 인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원래 인플루엔셜이 강연 회사였기 때문일 거예요. 책의 성장세가 떨어질 때마다 새로운 화제를 만들었어요. 

이홍 : 언론에서는 이 책을 인문학이니 심리학이니 합니다만, 마케팅을 보면 알 수 있죠. 이 책은 전형적인 자기 계발서 기법으로 판매했습니다. 철저히 포지션 타깃팅을 한 거죠. 홍보할 때는 독특한 형태의 심리학 책, 즉 캐주얼한 인문서로 알리고, 대중적으로는 자기 계발 독자를 바라봤어요. 

현재 우리 출판 시장이 참고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인문 독자와 자기 계발 독자를 구분할 필요 있는가. '이런 책이 필요하다'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죠. 출판 시장이 줄어든다고 합니다만, 이 책은 옆 동네 독자를 가져오고, 필요하면 자기 독자를 옆 동네에 넘겨주는 식으로 움직였습니다. 

도서 정가제 타령은 그만할 때 

장은수 : 이 책을 다룰 때 도서 정가제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이 책이 도서 정가제 전면 시행과 딱 맞물려 나왔어요. 출판사 측에서도 마케팅을 이후로 도서 정가제 시행 이후로 출간 시기를 늦추었다고 이야기했고요. 

이홍 : 도서 정가제가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으리라고 봐요. 이 책이 도서 정가제 덕분에 많이 팔렸다고 한다면 다른 책이 할인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게 되는데, 글쎄요. 검증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도서 정가제 이전에도 할인 판매를 하던 구간들을 이겨내고 50만 부, 10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신간들이 나왔거든요. 예로 들 수 있는 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 다른 요인과 함께 도서 정가제를 생각해보는 게 더 타당하겠죠. 

더구나 인플루엔셜은 신생 출판사라서 어차피 할인을 선택할 요인은 없었죠. 좋은 타이밍을 맞춘 건 사실입니다만, 도서 정가제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장은수 : 기존 출판사의 심리적 허탈감이 도서 정가제 시행 초기에 의외로 컸어요. 오랫동안 가격 경쟁에 익숙해진 기존 출판사들은 도서 정가제 시행과 맞물린 작년 겨울 시장에 좋은 책을 많이 못 냈고, 공격적 마케팅을 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책은 출간 직후부터 아주 공격적인 마케팅이 이뤄졌죠. 이 책의 독주에 영향을 어느 정도 미쳤을 거예요.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기존 출판사들의 태도입니다. 아직도 마케팅에서 도서 정가제 타령만 합니다. 시행 초기라면 몰라도, 1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얘기만 하는 건 비겁하거나 무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출판 환경이란 항상 바뀌는 것이고, 변화에 맞춰 마케팅하고 생존하는 건 출판사를 넘어 모든 기업의 본연이죠. 

많은 출판사가 도서 정가제 시행 이후 '가격 경쟁을 못 하면 무엇으로 경쟁할까'를 생각하면서 마케팅을 망설였습니다. 당연히 서비스로 경쟁해야죠. 독자를 직접 만나러 다녀야죠. 인플루엔셜의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책의 판매를 유지하기 위해 명동에서 샘플북을 나눠준 홍보에는 유효성 여부를 떠나서 조금 감동했습니다. (웃음) 쉬워 보이지만, 실행하기 대단히 어렵잖아요. 인플루엔셜의 기본 마케팅 전략은 오프라인에서는 노출하고, 온라인에서는 입소문을 퍼뜨리는 거예요. 이 두 가지 전략을 매우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중입니다. 신생 출판사의 이런 공격적 시도를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미움받을 용기> 스타일, 유행된다 

▲책은 유행을 탄다. <미움받을 용기> 형태의 자기계발서는 오랜 기간 트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이홍 :
책의 유행이랄까요? 흐름을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토리텔링 형태의 자기 계발서, 소위 말해 우화 형태의 책이 7~8년 정도의 유행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전 제가 다닌 출판사 영업부장님의 탁월한 지론이십니다. 이 지론에 의하면 내년이나 내후년이 스토리텔링 우화의 재상승 시기에 해당합니다. (웃음)

몇 해 전에 실제 20년 정도 출판 시장 트렌드 사이클을 분석해본 적 있습니다. 대체로 5~7년 정도의 반복 사이클이 허튼 주장은 아니더군요. <미움받을 용기>와 같은, 심리학 형식을 갖춘 자기 계발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자 자체의 힘만으로는 자기 계발서가 나아가지 못해요. 어디선가 제3의 힘을 빌려오죠. 이런 형태의 자기 계발서가 현재는 위로, 용기, 코칭과 같은 거죠. 역사, 심리 등 다른 분야에서 주제를 가져와, 스피커의 권위를 빌려 이야기하죠. 기존 우화 형태의 자기 계발서 시장을 인문형 자기 계발서가 대체하고 있다면, 이런 식의 책도 결국 흐름을 타게 될 것 같습니다. 

장은수 : 그러면 오랫동안 가겠네요. 인문형 자기 계발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게 최근이잖아요? 

이홍 : 그렇죠. 

장은수 : <어떻게 살 것인가>(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와 같은 책에서부터 이런 흐름이 시작했잖아요? 인문적으로 중요한 텍스트를 자기 계발과 맞물리는 형태 말이죠. <강신주의 감정 수업>(강신주 지음, 민음사 펴냄)과 같은 책도 그렇고요. 철학자 이야기를 빌려와서 자기 계발적 성격의 담론을 만들어냈죠. 최근에는 애덤 스미스를 소재로 한 자기 계발서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세계사 펴냄)도 베스트셀러에 올랐죠.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경향이 유행하겠군요.

이홍 :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저는 저자 고가 후미타케의 기획적 접근법에 가장 먼저 주목했습니다. 결국, 작가라면 전방위적으로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철학적 주제, 심리적 주제에 접근하려 할 것인데, 이를 어떤 형식의 구성과 글쓰기로 뽑아낼 것이냐가 이제 더 중요해질 겁니다. 한때 우화 형태의 서술이 유행했습니다만 그 흐름이 죽고, 공백이 생겼던 자기 계발서 시장에 이런 형태의 서술이 강력한 대체재로 등장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이 책의 성공을 통해 그러한 시도가 이뤄졌죠.

어떤 하나의 형식이나 유행이 소멸하면, 공백이 생기는 게 아니라 반드시 그 독자가 누렸던 느낌을 대체해 주려는 모색이 이뤄집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책의 인터뷰 기법, 한 분야 대가의 말을 빌려오는 기법이 우화 형태의 책을 조금 다른 형식으로 대체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장은수 : 우리가 이 대담을 처음 할 때(<지대넓얕>)도 나눈 얘기 같습니다만, 한국 출판에서 가장 약한 게 고급 인문학과 시민적 삶을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한국 문학이 힘들어진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문학 작품은 항상 어려웠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작품과 시민적 삶을 이어주는 담론이 마련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물론 몽테뉴의 사상 자체를 아주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건 몽테뉴가 현재 우리의 삶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해 주는 겁니다. 그게 책으로 하는 시민 인문학의 본질입니다. 미국 쪽에서 이런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국내에 차례로 번역 출판되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이죠. <모든 것은 빛난다>(휴버트 드레이퍼스·숀 도런스 켈리 지음, 김동규 옮김, 사월의책 펴냄)가 그렇고, <시적 정의>(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궁리 펴냄), <어떻게 살 것인가>도 마찬가지예요. 고전과 삶의 만남을 요즘 독자들이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한계가 있는 대로, <미움받을 용기>에서 그런 욕구가 폭발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홍 : <지대넓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인문서가 독자에게 어떤 친절을 베풀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죠. 그때 이야기한 내용이 다시 나왔네요. 결국, 앞으로 인문서는 탈장르화할 것이고, 하나의 새로운 읽기 시장의 중심이 만들어질 겁니다. 각 장르의 경계가 해체하면서 뭉치겠죠. 

다만 그것이 우리가 <지대넓얕>에서 경계한 간편한 책 만들기, 저급한 요다이즘의 형태로 간다면 장기적으로 고급 독자를 잃는 또 다른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새로운 출판 모델이 필요한 때 

장은수 : 동의합니다. 

이제 집중할 주제가 하나 남았습니다. 인플루엔셜의 장기적 성공 모델에 관해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홍 : 음, 이 문제는 제가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들어요. 출판사마다 경영 철학과 지속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니까요. (웃음) 

장은수 : 이 출판사는 강연 사업에서 시작했어요. 이 점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최근에 대형 출판사 출신의 편집자를 영입했어요.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이홍 : 앞서 한스미디어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신생 출판사가 단기간에 낸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출판사에 도움을 주진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초기에 베스트셀러를 터뜨린 출판사 중 이후 행보를 잘한 곳이 의외로 몇 없어요.

인간의 몸과 조직의 틀은 비슷합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밟은 조직은 급신장한 조직이 갖지 못한 면역성을 가집니다. 앞으로 인플루엔셜이 확 성장할 텐데, 그 커진 몸을 단단히 받칠 뼈대가 있느냐. 이를 주목해야겠지요. 언젠가 한 번쯤은 위기가 찾아올 텐데, 어떤 모델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초기에 너무 오버페이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 ⓒ인플루엔셜

장은수 :
인플루엔셜의 새로운 출판 모델을 주목하고 있어요. 강연이라는 네트워크를 갖고, 이를 통해 훌륭한 저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필자를 빨리 섭외할 수 있죠. 저는 다른 시도보다는 지금껏 가져온 '강연+출판' 모델의 강점을 계속 추구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급신장한 출판사처럼 움직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닥치는 대로 책 사들이고, 다른 '대박'을 터뜨리려고 몸부림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입니다.

인플루엔셜 대표가 출판인 출신이 아니고 IT 기업 출신인 걸로 알아요. 초기 투자도 IT 쪽에서 받았죠. 기존 출판사가 강연 네트워크를 만들려면 큰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여긴 이미 어느 정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강점을 이용해 다른 출판사가 따라오기 전에 독보적 모델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 다른 출판사들도 새로운 출판 모델을 고민했으면 싶어요. 단순히 원고 받아서 서점으로 내보내는 가치사슬 말고, 새로운 제휴 프로그램,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야죠. 누구나 인플루엔셜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 출판사가 자기에게 맞는 모델을 개발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홍 : 동의합니다. 사실 강연과 출판을 결합하는 모델은 오래전부터 우리 출판사들이 고민했죠. 그런데 서로의 벽에 갇히기 일쑤였습니다. 책을 배려해야 하는 콘텐츠냐, 강의를 배려해야 하는 출판이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교육은 출판이 가지는 확장성, 출판은 교육이 가진 목적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장은수 : 인플루엔셜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말고도 대중을 모으는 강연도 많이 하죠. 백화점과 제휴해 주부를 노린다거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엽니다. 차별화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이로써 올해의 마지막 대담을 마무리했습니다. 올 한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마지막에 이야기하니 꼭 연말 결산을 한 기분이네요. (웃음) 내년에도 좋은 책으로 바람직한 대화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