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추천

책 골라주는 도서관을 보고 싶다

일취월장7 2016. 2. 20. 10:02

책 골라주는 도서관을 보고 싶다

요즘 출판계와 서점계에 ‘북 큐레이션’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주제에 맞는 책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뜻한다. 북미나 유럽의 여러 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의 특성을 감안해 책을 모은 코너들을 많이 접해 이런 트렌드가 낯설지 않다.

  조회수 : 818  |  임윤희 (도서출판 나무연필 대표)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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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승인 2016.02.19  21:24:57


최근 출판계와 서점계에서는 ‘북 큐레이션’이란 말이 유행이다. 주제에 맞는 책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이 열풍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홋카이도의 조그만 도시 스나가와에 있는 동네 서점 이타와는 1만 엔을 지불하면 서점 주인이 적합한 책을 골라 배송해주는 걸로 유명해졌다. 일본 주요 도시들의 ‘핫 플레이스’가 된 쓰타야 서점은 콘셉트에 걸맞은 책 진열로 서점의 컬러를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 북 큐레이터들의 활동도 점차 눈에 띌 것으로 보인다. 근데 사실 나에겐 신조어와 함께 시작된 이 유행이 전혀 낯설지 않다. 북미나 유럽 여러 도서관에서 이런 코너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미국에 머물던 때, 10여 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여름이 시작될 그 무렵, 계절의 변화를 도서관의 책 소개 코너가 ‘화초와 텃밭 가꾸기’에서 ‘여행과 캠핑’으로 바뀐 걸로 체감했다. 조그만 동네 도서관에서 홀로코스트로 아버지를 잃은 이용자가 관련 자료들을 기증해 마련된 홀로코스트 특별 코너를 보기도 했다. 규모가 큰 도서관들은 상설 전시장도 마련되어 있고, 층별로 이용자들의 관심사에 걸맞은 코너를 기획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 공공 도서관에서 눈여겨봤던 건 아예 방을 하나 마련해서 각종 성 소수자 관련 자료들을 모아둔 ‘게이와 레즈비언 센터’였다. 층별로 작가에 대한 회고 코너, 지역 이슈에 대한 소개 코너, 각종 식물 관련 책들을 모아둔 어린이실 코너 등을 봤던 기억도 있다. 즉, 북미나 유럽 도서관들은 북 큐레이션이 도서관에서 당연히 제공하는 서비스로 안착되어 있는 듯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임윤희 제공</font></div>샌프란시스코 공공 도서관에 마련된 ‘게이와 레즈비언 센터’. 
ⓒ임윤희 제공
샌프란시스코 공공 도서관에 마련된 ‘게이와 레즈비언 센터’.

‘이용자’에 방점 찍은 도서관 북 큐레이션


북 큐레이션은 분명 이용자에게 다채로운 책들을 더욱 가까이 소개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용자’에 특별히 방점을 찍고 싶다. 책을 읽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결국 이용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언젠가 충북 지역에 새로운 도서관을 지으면서 그 도서관의 설계와 장서 개발에 대해 선배가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오랫동안 중·고등학생들의 독서 지도를 해온 국어 교사였으니 당연히 학생들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여러 방식을 거론했다. 그런데 여러 발표문을 보고서 문득 궁금해졌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지역에 따라서 그 이해와 요구가 다르진 않을까? 또한 성인 이용자들 역시 여타 지역의 이용자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도서관에서 찾고 싶어 하지 않을까? 생각난 김에 그 지역의 산업 분포 통계를 살펴봤다. 인구의 60% 이상이 농업에 종사했고, 지역 특산물도 또렷이 보였다. 노령층 인구도 꽤 많아 보였다. 선배에게 반문했다. “선배의 발표문 요지는 좋았어요. 근데 ‘중·고등학생’이라는 분류를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해볼 순 없을까요? 그 지역 학생들의 성향을 더 파고들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성인 자료실의 경우에는, 지역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자료들에 더 신경 썼으면 좋겠고요.”


사실 우리 동네 도서관에도 조심스레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책을 선별해 추천해주고, 그런 특색이 보이는 코너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이 제안은 절반쯤만 시도되고 있다. 도서관 내부의 공간 부족으로 책을 전시하는 대신 책 표지를 출력해서 소개하거나 도서관 웹사이트를 통해 소개하는 데 머물러 있다. 또한 시도를 하더라도 타 기관의 추천 도서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북 큐레이션이 화제가 되고 있는 요즘, 우리 동네 도서관도 나름 고민에 빠지지 않을까? 이 새로운 열풍이 도서관에도 들이닥쳤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소개받는 건 이용자에겐 언제나 다다익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