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우리나라 청년 실업 문제, 일본 장기침체기와 닮은 꼴

일취월장7 2016. 3. 18. 10:09
우리나라 청년 실업 문제, 일본 장기침체기와 닮은 꼴
류상윤 | 2016.03.15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후 청년 실업률 상승이 10년 이상 이어졌다. 청년층 인구 감소로 2003년 이후 청년 실업률이 낮아졌지만 질적 개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성장 흐름이나 청년층 인구 추세가 20년전 일본과 유사해 잠재성장률이 회복되지 못한다면 청년 고용의 어려움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작년 우리나라 청년(15~29세) 실업률은 9.2%로 외환위기 직후의 실업사태가 해소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그림 1> 참조). 전연령 실업률에는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2013년까지 8% 내외를 유지하던 청년 실업률이 2014년에 9.0%로 훌쩍 뛴 데 이어 작년에 다시 상승한 것이다. 청년층의 취업 현장에서 구직난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버블 붕괴 후 양적, 질적으로 악화된 일본 청년 고용의 실태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경제와 일본이 2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청년 실업률 역시 20년 전 일본처럼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의 일본의 경험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1980년대까지 청년 고용 모범생이었던 일본

 
일본 경제가 아직 10% 전후의 성장을 하던 1960년대말 청년(15~24세) 실업률은 2% 정도였다(<그림 2> 참조). 고도 성장기였기에 가능했던 사실상의 완전 고용 현상은 1972년 제1차 오일 쇼크 후 성장률이 4% 내외로 둔화되면서 막을 내렸고 청년 실업률은 4%대(1980년대)로 상승했다. 그럼에도 이것은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었고 일본은 독일과 함께 청년 고용의 모범생이었다(<표 1> 참조).

 
근대 학교 교육이 도입된 후 학교에서 직장으로의 순조로운 이행은 모든 나라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는 학교 교육과 직업 훈련을 병행하는 ‘듀얼 시스템’과 기술 자격 취득을 위한 도제 제도가 청년 고용을 뒷받침했다면 일본에서는 ‘추천지정교’, ‘신졸일괄채용’ 등의 채용 관행과 직장내 OJT를 통한 훈련 체계가 졸업 후 취업을 원활하게 했다.

 
버블 붕괴 전까지 일본 고교 졸업생의 대학(단기대학 포함) 진학률은 30%에 지나지 않았다(<그림 3> 참조). 고교 졸업생 중 40%는 곧바로 취업할 수 있었는데, 이는 각 회사가 특정 학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구인하는 추천지정교 제도를 통해 가능했다. 대학 졸업생 역시 졸업 전 진행되는 신졸일괄채용 과정을 거쳐 대부분 졸업 전에 직장을 정했다. 기업은 대체로 졸업자가 가진 기능기술보다는 가능성을 보고 채용한 후 장기고용을 보장하면서 OJT 기회를 제공해 그 직장에 특화된 숙련을 쌓게 만들었다. 일본 경제 성장을 뒷받침한 기술력은 이러한 고용·훈련 관행을 통해 축적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버블 붕괴 후 10년 이상 청년 실업률 상승

 
1990년대 초의 버블 붕괴는 청년 고용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성장률이 1% 내외로 급락한 가운데 청년 실업률은 1993년부터 그칠 줄 모르고 상승하더니 2003년 10.1%라는 최고점을 기록했다(<그림 2> 참조). 10년 이상, 그것도 큰 폭으로 늘었던 것이다. 1980년대에는 일본의 청년 실업률이 미국보다 절반 이상 낮았으나 일본의 장기 침체와 미국의 IT 호황이라는 대조적인 경기 변화에 따라 2000년에는 두 나라 청년 실업률이 9% 수준으로 유사해졌다. 여전히 OECD 평균보다는 낮았지만 일본을 청년 고용의 모범으로 보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이 시기 일본 기업들은 부실 채권 증가와 매출 정체에 직면했다. 자산 가격 하락에 이어 경기 침체가 계속되자 기업의 부실 채권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져서 2002년 42조엔에 이르렀다(<그림 4> 참조). 일본의 전체 기업 매출 증가율은 1992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 그 후 2003년까지 12년 동안 7개년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그림 5> 참조). 이처럼 어려움에 직면한 기업들은 인원조정을 필두로 한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영미권에 비해 해고가 쉽지 않은 노동 규제와 장기고용 관행 하에서 인원조정은 신규 채용 축소에 집중됐다. 청년층에는 이른바 ‘취직빙하기’가 닥쳤다. 공공 직업소개소를 통한 구인 대 구직의 비(유효구인배율=구인수/구직수)는 1990년 1.40이었지만 1993년(0.76) 1 밑으로 떨어진 후 1999년에는 0.48로 바닥을 쳤고 2000~2003년에는 0.6  정도에 머물렀다. 전연령층 실업률과 청년 실업률의 격차는 1980년대 후반 2%대 초반에서 1993년 이후 급상승해 2003년에는 4.8%까지 벌어졌다. 2003년의 실업률 격차는 남성 6.1%, 여성 3.7%였는데 이른바 ‘일본적 고용관행’이 남성 노동에서 뚜렷했기 때문에 청년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더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리터, 니트의 증가 등 청년 고용의 질 악화

 
1990년대는 청년 고용 상황이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악화된 때였다.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청년 고용 문제로 이야기되는 것들이 모두 사실상 이때 형성됐다.

 
첫째, 실업의 장기화가 진행됐다. 실업률 자체가 크게 늘었을 뿐만 아니라 실업자 중 1년 이상 장기실업자의 비중이 1980년대 10% 수준에서 2003년에는 20%대에 접어들었다(<그림 6> 참조).

 
둘째, 파트·아르바이트 비율이 상승했다. 일본에서 정규, 비정규 고용의 구분은 직장 내 호칭에 따르는데 주로 단시간 노동자를 가리키는 ‘파트’와 부업적 성격을 지닌 ‘아르바이트’를 합친 파트·아르바이트가 비정규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2015년 69%). 이 둘은 근무 시간이 정규직이나 다른 비정규 고용에 비해 대체로 짧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여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수입이 적고 교육·훈련을 통한 인적 자본 축적의 기회도 없는 것이 문제다.

 

청년층 취업자 중 파트·아르바이트 비율은 1992년 18%에서 2000년대 30%대 후반으로 상승했다(<그림 7> 참조). 버블기 신조어로 그다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던 ‘프리터’(프리랜서 아르바이터의 준말)라는 말이 버블 붕괴 후에는 파트·아르바이트에 내몰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불안정 고용의 대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4년 게이오대학 가계패널조사를 이용한 프리터 경험자 연구에 따르면 20~24세 프리터가 5년 후에도 프리터로 남아 있을 확률(체류율)은 남녀 모두 60%에 가까웠다. 5년마다 실시되는 ‘취업구조기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리터 증가의 영향으로 1992년에 비해 2002년의 청년층 취업자 소득 분포도 악화됐다.

 

셋째, 실업의 장기화와 일자리 질의 악화는 니트(NEET) 문제로 이어졌다. 니트는 일반적으로 일도 하지 않고 교육·훈련도 받고 있지 않은 청년층을 가리키는데 일본 정부에서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통학도 가사도 하고 있지 않는 15~34세 인구를 ‘약년 무업자’라고 하여 니트로 간주한다. 일본에서 니트는 1990년대 중반 40만명에서 2000년대초 60만명으로 늘어났다(<그림 8> 참조).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구한다고 하더라도 기대하는 만큼의 수입을 얻지 못한다고 판단한 이들이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넷째, 청년층의 교육 부담이 증가했다. 버블 붕괴 후 악화된 신규 채용 시장은 고교 졸업자와 대학 졸업자 모두에게 시련을 안겼지만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은 고교 졸업자가 어려움이 더 컸다. 1980년대까지 일반적이던 추천지정교 제도는 크게 약화돼 갔고 그만큼 고교 졸업자가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 수는 줄어들었다. 1990년대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진학률은 매년 1.5% 이상 늘어났다(<그림 3> 참조). 대학 진학률의 증가는 기술 진보와 산업 변화에 대응한 인적 자본 축적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취업 현장과 동떨어진 대학 교육에 대한 비판과 함께 청년 각자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단지 학력을 쌓기 위한 교육 부담 증가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청년 인구의 빠른 감소로 2003년 이후에는 청년 실업률 하락

 
버블 붕괴 후 빠르게 증가했던 청년 실업률은 2003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리만 쇼크의 여파로 2009~10년에 다시 상승했지만 이후 실업률 하락은 계속됐다. 실업률 격차(청년 실업률-전연령 실업률)도 2015년 2.1%까지 줄어들었다. 일본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더라도 독일과 함께 다시 청년 실업률이 매우 낮은 국가의 위치로 되돌아왔다.

 
이 같은 변화의 경기적 요인으로는 부실 채권의 정리가 2002년 부터 본격화돼 경제의 불안 요인이 해소됐다는 점, 2003년부터 리만 쇼크 전까지 세계 경기 호황으로 성장률이 소폭 상승하고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매출이 증가한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만 쇼크 전의 경기 반등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데다 리만 쇼크 후 최근 아베 정권의 노력에도 경기가 뚜렷이 살아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경기만으로 계속되는 실업률 하락추세를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이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청년층 인구수의 감소는 청년 고용 시장의 노동 공급을 줄여 상대적인 지표인 청년 실업률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청년층 인구수는 주요 노동 공급층인 20~24세로 보면 1994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00년대에는 연평균 2.8%의 속도로 빠르게 감소했다(<그림 9> 참조). 인구 감소 효과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이른바 ‘2007년 문제’)까지 겹쳤다.

 

청년 고용의 단기화, 비정규직화 현상 현재까지 지속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청년 실업률 하락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인상적이지만 독일을 배우자는 목소리에 비해 일본을 배우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독일의 듀얼 시스템과 하르츠 개혁은 여러 나라들이 모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일본의 제도, 예컨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대졸자의 ‘신졸일괄채용’ 관행을 배우려는 나라는 없다. 청년 실업률은 하락했지만 1990년대 악화된 청년 고용의 질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청년층이 고용의 질 하락을 받아들이면서 일자리에 적응해가고 있는 셈이다.

 
청년 실업률 하락에도 장기실업자의 비중은 20%대에 머물러 있다.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프리터의 절대수는 줄었지만 비율은 줄지 않았다(<그림 7> 참조). 오히려 바로 위 연령인 25~34세층에서는 파트·아르바이트 비율이 2000년대말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불완전 취업을 선택했던 청년들이 나이가 들어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청년 고용의 질 하락 현상이 다른 연령대로 확산되어 가는 것이다.

 
또한 니트 비율도 2%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그림 8> 참조). 게다가 니트도 프리터와 마찬가지로 상위 연령층으로 확산되는 모양이다. 청년 무업자는 주로 남성에 몰려 있는 것이 특징인데, 25~34세 남성의 고용률 추이를 보면 2000년대초 수준에서 더 높아지지 않고 있다(<그림 10> 참조). 최근 신규 대졸자의 취업 여건은 개선됐으나 장기 침체기에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던 이들은 5년, 10년이 지나도 스킬을 축적하지 못하고 프리터나 니트로 생활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앞으로 고령 빈곤층으로 빠질 가능성도 높다.

 
이 같은 일본의 경험은 인구구조 변화가 실업률은 낮출 수 있지만 질적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가 2000년대 중반부터 니트, 프리터 대책에 본격적으로 나섰는 데도 뚜렷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뒤늦은 대응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려움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도 높은 청년 실업률 장기화 될 우려

 
우리 나라는 20년의 격차를 두고 일본과 유사한 성장 흐름을 보여왔다. 생산성의 혁신적인 개선이 없다면 잠재 성장률은 앞으로 5년간 2.5%, 2020년대에는 1%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LG Business Insight 2015.5.20 ‘우리나라 장기침체 리스크 커지고 있다’ 참조). 일본과 유사한 장기침체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인구구조 변화도 일본과 우리는 20년 간격을 두고 유사하게 나타나는데, 청년 인구수의 변화도 비슷하다. 장래인구 추계치에 따르면 20~29세 인구는 2020년까지 현재의 680만명 수준을 유지한 후 2020년대에는 연평균 3.3% 감소한다(<그림 11> 참조). 일본에서도 청년 인구 감소가 단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으므로 빨라도 2020년대 중반 후에야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고용 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우리 나라는 20년 전 일본보다 불리한 측면도 있다. 우선 대학 진학률이 2014년 71%로 매우 높아 청년들이 취업이 어려워도 진학 등의 방법으로 실업을 피할 수 있는 여력이 적다. 이미 대학 진학률은 2011년 이후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음으로 세계경제 환경도 과거 일본보다 불리하다. 2000년대 중반 일본의 청년 실업률이 낮아진 데는 IT를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의 세계 교역 확대로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청년층의 노동 수요가 늘어난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현재 세계 경제는 혁신적인 기술을 중시하는 제조업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적인 서비스업, 즉 청년층에 비교우위가 없는 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일본에서 장기침체 진입 이후 10년 이상 청년 실업이 확대되었던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성장 흐름이 계속 약화된다면 청년층의 고실업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해소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청년 인구가 계속 줄어도 높은 청년 실업률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앞으로 청년 고용 환경 악화가 지속되면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이 확산될 우려도 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대두되고 있는 니트 문제가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청년 고용 대책은 과감한 구조개혁과 신성장 동력 창출을 통한 잠재성장률 회복이라는 점이 일본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다. 이와 함께 청년 고용에 특히 불리하게 작용하는 노동 시장의 경직성을 줄이고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