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반대 & MB 비리

4대강 기록관 건립 공공예술 프로젝트

일취월장7 2015. 12. 15. 16:08

수몰리, 마지막 가을 : 국가에 귀속된 금모래, 은모래

[크라우드 펀딩] 4대강 기록관 건립 공공예술 프로젝트 ①
이상엽 사진가 2015.12.10 10:03:38

이명박 정부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던 4대강 사업, 그리고 7년. 그동안 아픈 눈으로 강과 강 주변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그 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으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지율 스님과 예술가들이 '4대강 기록관'을 지으려 합니다. 기록관은 모래강 내성천의 개발을 막기 위해 내성천의 친구들이 한평사기로 마련한 내성천 하류, 낙동강과 인접한 회룡포 강변 대지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이 연재는 기록관 짓기에 함께할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펀딩 바로가기)


수몰리라? 스님은 그 단어를 싫어한다. 이곳이 물이 잠길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신이 수년째 몸을 누이는 내성천변 그 천막 바닥으로 물이 차오르는 상상은 차마 못하리라. 하지만 현실은 비정하다. 물이 중력을 따라 흐르던 땅에 수십 미터 거대한 영주댐이 신기루마냥 솟아오를 때, 국가, 자본이 만든 이 풍경을 쉬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천성산 도롱뇽의 친구 지율스님 그런 이 중 하나였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무렵, 스님은 낙동강을 따라 이 곳 영주 땅 내성천으로 스며들었다. 모래가 깊이 흐른다고 하던가? 2011년 "지천이 살아야 본류도 산다"고 하면서 회룡포, 무섬마을, 삼강 합수 지점을 부단히 돌아다녔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맨발에 차가운 강물과 따듯하게 꺼져드는 모래를 밟기도 했고, 허벅지가 터질 듯 차가운 겨울 강바람 앞에 페달을 밟기도 했다. 해가 갈수록 내성천 주변을 변했다. 강변 버드나무가 무참히 잘려나갔고, 은모래 금모래가 포크레인 속으로 사라져갔다. 농민들은 논에 쭉정이를 두고 떠났고, 그 논에 피를 닮은 벼가 스스로 자랐다. 이내 논은 풀밭이 되었고 숲이 되었다. 문뜩 국가에 귀속 되어버린 식물들의 해방구에서 눈 큰 고라니들을 본다. 그리고 제풀에 놀라 사라져간다.

관측 사상 최악이라는 말은 요즘 믿을만한 것이 못되지만, 무척 가물었던 늦가을 불현 듯 후배와 함께 영주에 갔다. 새로 장만했다는 놈의 차에서는 맑은 물 내가 난다. 평일 고속도로에는 차가 없다. 아니 우리가 가는 영동에서 중앙 고속도로에 차가 없다고 해야겠다.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만큼이나 깊이 없는 언어들이 바람에 날려갈 때쯤 우리는 영주 금광리 야산을 넘어 금강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하늘은 내려앉았고 대기에 스민 수증기는 아련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한동안 그 처연함을 본다. 멀리 영주댐이 가물거리고 풀이 무성한 내성천은 더 이상 모래강이 아니다. 마을은 이제 허물어져 듬성듬성 이 빠진 노인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첫 번째 수몰리,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금강마을의 풍경이다.


 


몇 해 전 금강마을 들어갈 때 초입의 다리에서 내려다 본 내성천은 모래강이었다. 아침과 저녁 무렵은 금모래고 정오는 은모래였다. 그렇게 건축업자들이 눈독들이던 모래가 준설되어 어느 부잣집 자재가 됐을 것이다. 그 자리에는 풀만 무성하다. 앞으로 모래가 떠내려 와도 떠내려갈 자리가 없다. 고여 썩는다. 지금 보이는 풍경은 영주 내성천의 ‘운포구곡’ 중 금강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6곡, 구만(龜灣)의 모습이다. 

 


 

  

내성천이 금강마을을 휘돌아 나오는 운포구곡 중 으뜸이라던 5곡 운포의 모습이다. 전에 산으로 둘러싸이고 내성천이 흘러 구름이 낀 무릉도원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이제 찾을 길 없다. 영주댐을 건설하는 공사장이 되어버렸다. 올해 말부터 담수를 시작하다고 하지만 이 모습을 봐서는 그도 아니다. 영주 댐의 완공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도 떠난 지 오랜데 4대강 사업이 완료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 의아할 것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은 수자원공사가 떠안은 8조의 부채와 이자 때문이다. 이것을 정부가 해결하길 원하면서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 댐으로 내성천을 볼모 삼은 것이리라. 기구하구나. 

 


 

  

영주 댐의 모습이다. 인간의 토목공사 중 으뜸이 댐이다. 거대하고 비싸다. 총 공사비가 한 8천억 쯤 든다고 했지만 결국 1조원이 넘었다. 보상과 주변 공사가지 합친 금액일 것이다. 댐만 3천 억 짜리다. 그런데 이걸 왜 만들었냐고 물으면 홍수방지와 농수확보라 한다. 주변에 홍수가 없었고 물이 부족한 때도 없었으니, 거짓말이다. 아마도 4대강 사업으로 오염된 낙동강 대신 식수로 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 

 


 

  

허물어진 중앙선 평은역 모습이다. 평은역은 1942년 일제 강점기 말에 영업을 시작해 얼마 전인 2013년에 폐업했다. 아마도 오래전 산으로 둘러싸인 평은면 사람들과 밖의 세상을 연결해주는 통로였을 것이다. 명절이면 이곳에 수많은 귀성객으로 넘쳤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세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질서해지고 해체된다. 그 당연한 귀결이 이렇게 인위적으로 행해질 때 허망하다. 우리는 문득 쉽사리 인정한다. 이곳이 물에 차오를 것이라고. 

 


 


산허리에 난 이 신작로에 망연자실 하다. 다니는 차도 없다. 아마도 이 도로 밑까지 물을 채울 모양이다. 참으로 4대강 사업스럽게 한편은 자전거 도로다. 한때는 이런 도로가 지역의 발전을 이야기 했다. 반들반들은 저 아스팔트에선 향기가 났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편리함에 반발해 도로를 엎어버리고 있다. 빠른 속도에 스쳐 지나는 풍경의 경박함만큼이나 우리는 메말라 간다. 그것을 이 풍경이 다시 강요한다. 우리는 조국 근대화 시대에 여전히 살고 있다. 

 


 


길옆은 거대한 공사장이다. 시멘트 회사가 수십 년 동안 파먹은 산을 복구한다고 한다. 복구는커녕 다시 돌을 쪼개 산처럼 위장한다. 부수고 다시 부수고. 지율스님은 이야기한다. "내성천 환경 파괴 말고도 안전이 문제다. 수몰 예정지 주변 도로가 계속 무너져 주민 이주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댐 사업이 부실한 지질 조사와 설계를 바탕으로 추진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라고 한다. 저 멀리 포클레인이 파쇄한 거대한 바위들이 굉음을 내며 하강한다. 한동안 쳐다보면서 중력의 힘에 새삼 놀란다. 위태로운 것은 모두 아래로 무너지는 것이 이치다. 

 


 


여기는 운포구곡의 제7곡 금탄(錦灘)이다. 물여울이 비단을 깐 듯 하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지율스님의 천막이 있고, 수년전 나와 미술가 박은선이 나서 스님과 함께 만든 이동식 전시 공간인 이름하여 ‘모래 스페이스’ 갤러리가 있다. 이제 내성천변에서 녹이 쓸며 외로이 실명의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그래서 스님은 회룡포에 상설 전시장을 만들기로 했다. 내성천에서 그간 기록한 모든 것과 친구들의 작업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렇다. 영주 댐을 철거하고 350만평 수몰예정지를 습지로 조성하는 것이다. 스님과 나도 포함된 내성천 보전운동 모임인 ‘내성천 친구들’의 조사에서 주변은 먹황새와 흑두루미 등 멸종 위기 종을 포함해 22종의 법정보호동물의 서식지가 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이 지역에 낙동강 상류 최대의 인공습지를 조성해 생태관광 지역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댐 건설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득도 가져다줄 것이다. 어차피 인간이 빌려 쓴 자연, 그나마 도리일 것이다. 

 


 


이 풀밭은 사실 얼마 전까지 농민들의 논밭이었다. 몇 해 농사를 짓지 않으니 이리 됐다. 그리고 아무리 땅을 파도 바위하나 나오지 않는 옥토를 팔고 저 멀리 산 중턱의 그림 같은 유럽식 전원주택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곳에 농민들이 일할 땅은 없다. 그저 수장되는 것은 땅만이 아니다. 사람의 노동이 수장되고 마음이 물이 잠긴다.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이대로도 좋다. 댐을 부수고 물이 흐르게만 둔다면 생태가 복원되는 것이다. 

 


 


멀리 영주 댐이 신기루처럼 서있는 금강마을 전경이다. 수몰리는 그래서 슬프다. 이제 10여 가구 남았다. 수백 년의 인간 역사는 잠기고 흔적을 감출 것이다. 옳은 일인가? 만드는데 걸린 오랜 시간에 비해 파괴하는데 쓰인 시간은 순간이다. 문자로만, 사진으로만 남은 역사는 허무하기에 당대는 저항한다. 그러지도 못하면 우리는 역사를 쓸 자격이 없다. 

 




땅거미 질 무렵, 금강마을로 들어갔다. 사람이 떠난 집은 허물었고 밭은 경작금지 푯말이 붙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꺼져있어 더 을씨년하다. 하지만 두 할머니는 늦도록 감을 따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여전할 것 같은 일상의 풍경이다. 그 풍경에서 다시 희망을 느낀다. 강이 흐르고 식물과 동물이 어울리고, 사람이 그 풍경 속에서 하나 되는 모습을 그려본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시작할 때. 

 

 

4대강, 기록으로 저항하다

[크라우드 펀딩] 4대강 기록관 건립 공공예술 프로젝트 ②
지율 스님 2015.12.15 07:45:51

이명박 정부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던 4대강 사업, 그리고 7년. 그동안 아픈 눈으로 강과 강 주변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그 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으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지율 스님과 예술가들이 '4대강 기록관'을 지으려 합니다. 기록관은 모래강 내성천의 개발을 막기 위해 내성천의 친구들이 한평사기로 마련한 내성천 하류, 낙동강과 인접한 회룡포 강변 대지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이 연재는 기록관 짓기에 함께할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펀딩 바로가기)


1. 2015년 초겨울 평은리 강변

내성천 연재의 첫 장을 연 이상엽 작가의 사진 속에는 2015년 초겨울 평은리 강변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흐린 안개 속에 잠긴 마을,
황폐하게 변해가는 들녘 위로 넘어가는 사양,
허물어져 가고 있는 평은 역사(驛舍),
무너지고 있는 산야,
산허리를 깎아서 만든 순환도로,
물길을 막고 선 거대한 영주댐 콘크리트 장벽

시선은 한 컷의 사진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어느 기슭에서 돌연 공격이 시작될 것 같은 그런 살풍경(殺風景)들 입니다. 지금 저는 그 풍경의 어디쯤에서 한 점으로 놓여 있고, 이 시공간을 빠져나가려 하니 숨이 차오릅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안개를 밀어내고 그 풍경들을 다시 빛 속에 놓아봅니다.
맑은 햇살이 들녘에 내려와 있습니다
풀숲에서 방울새 우는 소리가, 마른 풀들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씨앗들은 바람의 힘을 빌려 모체에서 떨어져 부드러운 땅 위에 떨어집니다.
저 들녘에는 아직 무수한 생명이 기다리는 봄이 있습니다. 


 

ⓒ지율



2. 이별

'사는 날까지 예서 안 떠날란다'하시던 이녘할매는 기어이 짐을 싸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벌써부터 큰아들이 대구 시내의 아파트를 구해놓고 재촉을 하던 차였습니다. 짐을 싸다 마시고 할매는 먼저 이주단지 아파트로 이주한 뒷집 일영할매와 작별을 하기 위해 채비를 하셨습니다. 물 길러 갔다가 마주친 저도 자전거를 세워놓고 따라 나섰습니다.

할매의 손에는 질금 가루를 띄워 손수 쓰신 감주와 휴지통이 들려있습니다. 60년을 넘게 앞뒷집에서 이웃하고 살아오신 할매들에게는 굽은 허리만큼이나 굽어진 무수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별의 시간은 휘어가지를 않습니다. 나오실 때는 그만 주저앉으셔 급기야 제 등에 업히셨습니다. 날아갈 듯 가벼운 몸을 엎고 천근이나 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할매와 함께 이별의 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이게 마지막이가?' 하시며 일영할매가 먼저 눈물을 보이시자, 마을 앞 동호다리가 무너지는 날에도 마당에 앉아 무심히 콩을 가르시던 할매도 끝내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 '잘 있으레이' ⓒ지율

 


 

▲ '잘 가아' ⓒ지율



3. 그리움

이녁할매는 '일을 매조지 못하고 쏘다니기만 쏘다닌다'고 하시던 핀잔도 할 기력이 없어지셨는지 
'나, 가고 나면 물 없어 어에 사노?'
'강에 물 많은데 뭔 걱정이세요.'
'강이 예전 강이라야...'

300회 이상 강길 안내를 했지만 이젠 강으로 내려서지 않습니다. 강은 풀밭이 되었습니다. 자갈이 드러나고 자칫 돌조각에 발이 다치기 일쑤입니다. 때때로 사냥꾼들이 개를 데리고 나타나 강 숲에 깃들고 있는 꿩이나 노루 사냥을 즐깁니다.

단 하나의 가치만이 우선시되는 이 세상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두려움을 소리 내지 못하는 생명들과, 무너져가는 산야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발아래 놓인 세상을 슬픔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문득,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에서 내려 선 길입니다. 어릴 때 놀던 강변이 너무나 그립고, 스무살 때 처음 보았던 서해 갯벌이 너무 그립고, 비오는 날 혼자 올랐던 운무에 잠긴 설악이 너무 그립습니다. 그리움은 저를 인정 없는 세상으로 내보내고 전쟁터 같은 대지 위에 홀로 서게 합니다. 

 


 

ⓒ지율



이곳에서 저는 4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3번이나 세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 난 후, 저로 인해 집주인들이 맘 졸여 하는 것이 불편해 친 텐트입니다. 정부는 강변 뚝방에 친 6평짜리 컨테이너 전시장과 텐트를 철거하기 위한 수순으로 토지인도소송과 토지인도단행가처분 민.형사 소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4. 영주댐 철거소송

지난 10일 진행된 낙동강 대법원 판결은 '낙동강 사업이 국가재정법에 위배 된다'고 했던 2심 판결의 결과를 뒤집으며 법에 의지했던 기대들을 저버렸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더 빠른 속도로 국토를 파괴하는 개발의 방향으로 달려가려 하고, 법원은 그 힘의 진행 방향을 우회할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성천의 친구들은 대한민국과 수자원공사, 시행사인 삼성물산을 피고로 영주댐 철거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주댐 철거소송은 큰 틀에서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하며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낙동강에 1급수의 물과 하상을 안정화 시키고 수질 정화를 담당하는 모래를 공급하는 원천이라는 점입니다.

둘째는, 댐을 건설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검토해야 하는 지질입니다. 저는 지질문제에 문외한이었지만 수몰예정지에 머무르면서 영주댐 주변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사태 현장을 목격하면서 지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영주댐 하부는 지질연대에서 가장 오래 된 시생대와 원생대가 만나고 있으며 두 지질 연대가 만나는 곳에 폭 30m 깊이 150m에 이르는 예천 전단대가 지나갑니다. 또한, 평은리 쪽으로는 내성천 단층이, 안동 방향으로는 오운리 단층이 주변을 지나갑니다.


 

▲ 전단대의 중앙에 앉은 영주댐 (우안) 2015.10 ⓒ지율

 


 

▲ 2015.11월 영주댐 우안 하부 /위 사진에서 초록 장막을 걷어내면 영주댐 주변의 지질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원인모를 이유들로 영주댐 공사는 1년이나 지연되었고, 담수 예정일을 닷새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율



또 하나의 쟁점은 합천댐 하류에서 15년 동안 일어난 하상의 변화가 불과 2년 만에, 영주댐이 준공되기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부와 수자원 공사는 '변화는 일시적이며 미미하다'고 주장하며 많은 자료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영주댐 담수가 진행된다면 수년 내에 모래강 내성천은 전설로 남게 될 것입니다. 만일 '변화는 일시적이며 미미하다'고 하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때는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요?


 

▲ 무섬강변 / ‘영주댐 6km 하류에 있는 무섬마을은 백사장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3차례에 걸쳐 트렉터로 강을 갈아엎었습니다.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이 강으로 내려서던 지점입니다. ⓒ지율

 



 

ⓒ지율


 


영주댐 45km 하류에 있는 회룡포 강변도 둔치의 모래를 퍼내서 뽕뽕다리 주변을 덮었습니다. 언뜻 보면 외상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강은 깊이 내상을 입고 있습니다. 강의 뿌리인 지천의 변화가 그러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강이 낮아지면 가장 큰 변화를 겪는 곳은 지천들입니다. 지천들은 깊어진 본류를 채우기 위하여 쓸려 내려가고, 지하수는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마르게 됩니다. 마치 뿌리가 상하면 잎들이 가장 먼저 시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의해서 보면 강 주변의 식생들도 건조한 지역에서 자생하는 종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으며 물을 많이 머금는 버드나무들은 고사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 2009-2015 내성천의 지류 신음천 ⓒ지율


 


5. 기록으로 저항하다.

강의 변화에 대한 기록은 하류변화를 증거 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자료들입니다. 강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놓치기 쉬운 사업 시행자들의 언어와 주장, 영주댐을 건설하는 논리와 그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와 전문가들의 보고서, 그리고 법원의 판결과 언론보도 등을 모으고 기록으로 남기려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시점이 오면 우리들이 기록으로 저항한 작업들이 그 바닥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가는 길이 희망이 됩니다. 함께 쓰는 기록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 내성천의친구들>이 한평사기로 마련한 회룡포 강변에 4대강 기록관을 세우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가기 : 4대강 기록관 건립 공공예술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