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한탄’은 옛 이야기가 아니란다
1597년 조선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조정과 장수들은 우왕좌왕했다. 이때 이순신은 우리 역사에서 드물게 진귀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부서질 각오로 위기에 맞서는 리더십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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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승인 2015.09.24 09:06:41 |
1597년 정유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강화 협상이 결렬되고 14만 일본군이 재침략을 시작하자 조선은 다시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어. 특히 첫 침략 때는 별다른 참화를 겪지 않았던 전라도 남해안 지역은 정유년에 벌어진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전멸한 후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져들어.
전라도를 맡은 조선군 장수는 전라 병사 이복남이었는데, 일본 대군이 들이닥친 남원성으로 가서 싸우다 죽은 용감한 이였어. 하지만 그 대담한 사람도 남원성으로 가기 전 곡식 창고를 모조리 불태우라 명령했지. “어차피 적의 것! 태워 없애라.” 물론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어떻게든 옮겨두면 요긴한 식량을 깡그리 불태워버린 건 이복남 역시 당황했기 때문일 거야. 자신들이 농사해서 쌓아올린 곡식에다가 우리 군대가 불을 지르는 모습을 보고 조선 백성은 무슨 생각이 들었겠니. 그저 공포였겠지. 남은 것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었어. 무슨 수를 쓰든 나라의 방비나 법의 보호나 체제의 도움 없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사람들은 무질서하게 쏟아져 나와 피란에 나섰고, 각처에 남아 있던 수비군도 자기 식구들 건사하기 위해 임무를 팽개쳤으며, 사또들도 도망가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관아에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어. 그 혼란한 와중에도 전라도 남해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지. 이순신이야. 휘하 장교도 군대도 없는 허울뿐인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그는 일본군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곳곳을 누비며 망해버린 수군을 재건해보려고 발버둥 쳤어. 그가 쓴 <난중일기>를 보면 무표정할 정도로 담담하지만 참혹한 가슴을 꾹꾹 눌러 쓴 듯한 구절들이 눈에 뜨이지. 이를테면 이런 거. “패잔병들에게 말 세 필, 그리고 활과 화살을 빼앗아왔다.” 해군 사령관이 도망 다니는 탈영병의 무기를 빼앗아 장비를 챙기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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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597년 9월 명량해전은 이순신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사진은 ‘2014 명량대첩축제’에서 명량해전 당시를 재연하는 장면. | ||
피란민도 이순신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어. 백전백승의 명장이었다지만 지금은 배도 군대도 없는 허깨비. 더욱이 엄할 때는 말도 못하게 엄했던 이순신이었어. 하지만 그런 장군이 말에서 내려 자신들을 위로하고 설득할 때 사람들은 더 감동받았지. 이 양반은 남한테만 엄한 게 아니라 자기 책임도 다하는 사람이구나. 믿을 수 있겠구나. 1597년 8월9일의 <난중일기>에서 아빠는 이순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 “늙은이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다투어 술병을 가져다 바치는데 받지 않으면 울먹이며 강권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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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9월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경제 부진의 책임이 노조에 있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士爲知己者死),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화장을 한다(女爲悅己者容)”라는 말이 있어. 네가 들으면 “선비? 여인? 웃겨!” 하겠지만 까마득한 옛날 사람 얘기니 용서해주기로 하고, 아빠는 이 말에서 요즘 말하는 ‘리더십’의 윤곽을 잡는단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자신을 아낀다고 믿는 사람을 위해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어. 자신을 알아준다고 믿게 하는 과정,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길이 험하고 고독한 지도자의 길이겠지. 이순신에게 술 권하던 노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또 다른 일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어. “울면서 ‘사또가 이제 다시 오셨으니 우리는 살았습니다’ 하였다(8월6일 <난중일기>).”
박박 긁어모은 배 13척으로 다가드는 일본군 대함대와 정면 격돌을 앞둔 9월15일 밤. 이순신은 꿈을 꾸지. 신선이 나타나서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라고 가르쳐줘. 이때 신선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몰라. 아빠 생각으로는 이순신에게 이렇게 말한 것 같아. “네가 선봉에 서라. 네가 죽고자 하면 부하들이 살 것이고 네가 살고자 하면 모두 죽는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면, 1597년 9월16일(음력) 벌어진 명량해전은 실로 이순신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거든. 진도와 해남 사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물살이 세고 좁은 물길에서 이순신은 역류를 버티기 위해 닻을 내려버리고 자신의 배만으로 일본군을 막아서. <난중일기>에 적은바, 장수들도 “낙심하여 회피할 꾀만 내는” 상황에서 총사령관이 홀로 나선 거야. 물러서 있긴 했지만 장수들은 도망가지도 못했어. 상관의 사투를 지켜보면서 그들 역시 그들 안의 비겁과 싸우고 있었던 거야. 장수들뿐 아니라 병사들, 노 젓는 격군들 모두의 가슴에서 탁탁 불꽃이 튀고 “도망가면 어디로 가서 살 것 같으냐?” 하는 이순신의 절규가 기름을 끼얹었을 때 13척 미니 함대는 그야말로 하늘나라 군대가 돼서 일본 함대에게 천둥처럼 들이닥치게 돼. 명량해전의 기적이지.
엄할 때는 서릿발 같지만 그 기준에 공감할 수 있고, 자신에게도 그만한 엄격함을 보여주는 리더십. 고달픈 상황을 만든 사람에게조차 책임을 돌리지 않고(원균을 싫어했던 이순신이지만 적어도 명량해전까지의 일기에서는 원균에 대한 원망은 일절 비치지 않아. 남이 하는 얘기를 들을 뿐이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제시할 줄 알며, 최악의 상황에서는 자신이 부서질 각오로 위기에 맞서는 리더십. 이순신은 우리 역사에서 드물게 진귀한 리더십을 보여준 사람이야.
얼마 전 여당 대표께서 또 한 번의 파격 발언으로 뉴스의 중심이 됐지. “노조가 파이프 휘두르지 않았으면 국민소득 3만 달러….” 이 말을 들으며 아빠는 임진왜란을 떠올렸다.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장수들은 죄다 그런 식이었거든. “신은 최선을 다하였으나 아무개 때문에….” 뭐 이런 장계는 임진왜란 내내 썩어날 정도로 많아.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를 왔다 갔다 해(유럽 복지국가들은 50%를 우습게 넘지). 그 10%가 나라를 좌지우지했다는 말도 어이가 없지만, 그 정치인은 이익과 생존을 둘러싼 집단 간 충돌을 중재하고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본래 책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오히려 책임을 노조에 갖다 안기는 행보를 당당하게 하고 계시는구나. 임진왜란 때 조선의 흑역사를 장식한 여러 졸장들의 리더십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흔치 않았던 이순신이지만 간간이 인간적인 불만을 쏟아내곤 했지. 한 번은 사사건건 비위를 건드리던 경상우수사 배설을 두고 이렇게 써. “자기가 감히 감당하지 못할 지위에 올라 국가의 일을 그르치는데 조정에선 살피지를 못하니 이 일을 어찌하랴. 이 일을 어찌하랴.” 이순신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조정의 리더십을 한탄한 거야. 왜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은 진귀하기만 하고, 똬리를 틀고 한 백년 해먹는 고약한, 리더 아닌 지배자들은 어찌 그리도 흔한지. 이순신의 한탄은 옛 얘기가 아니야.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지위에 올라 국가의 일을 그르치는데….”
문재인 리더십, 왜 안 되는가?
정당은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와 선택을 받기 위한 조직이다. 이를 위해 정당은 지도자, 정치 이념(비전), 정책을 통해 지지자를 모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leadership)이다. 그러나 현재 야당에는 리더십이 없다. 리더십이 없다면 거대한 조직도 모래성에 불과하다. 지도자, 이념, 정책이라는 시멘트가 없는 정당은 그저 당권과 공천을 둘러싼 특수 이익 집단에 불과하다. 야당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며, 여당에 제대로 반대도 못 하고, 현직 의원의 이익에 몰두하는 카르텔 정당(cartel party)처럼 보인다. 최근 야당의 혁신위원회도 정당의 리더십보다 당 내부 조직과 공천 제도의 개혁에 집중했다. 혁신위원회는 철저히 유권자의 외면을 받았다. 야당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
사람들은 왜 투표에 참여하는가? 유권자가 투표장에 가는 이유는 자신의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서이다. 영국 명예혁명의 이론가 존 로크가 강조한 대로 정치적 대표(representation)가 대의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다수의 동의는 "그들 자신이나 그들이 선출한 대표"에 의해 정해진다. 동시에 선출된 정부는 책임(accountability)을 가진다. 정부는 '공익을 위해서 법을 만드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즉 정부가 대표하는 사람의 이익과 혜택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만약 정부가 자신을 대표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정부를 다른 정부로 교체할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 그러나 선거에서 자신을 대표할 정당과 후보가 없다면 어떨까? 당연히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의 지도자는 자신이 대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일부 정당은 사회 전체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거나 포괄 정당(catch all party)을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정당은 일부 계층을 대표한다. 사회의 균열에 따라 정당은 자신의 지지층을 대표하기 위해 호소한다. 이런 점에서 정당은 필연적으로 사회 갈등을 만든다. 동시에 정치를 통해 사회 통합을 추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것이 바로 정당이 '인민 주권'을 대표한다고 보는 E. E. 샤츠슈나이더의 통찰력이다. 이런 점에서 정당 내부의 분파(faction)가 존재하는 것도 다양한 분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당이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의 근본적인 질문은 '누가 이익을 얻는가'라는 문제이다. 정당이 누구를 대표하고 누구의 이익을 위해 싸울 것인지 밝히지 않는다면 정당이 아니다.
지역주의 정당의 한계
1990년대까지 한국 국민 대다수는 사회 갈등 가운데 지역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보았다. 당연히 유권자의 지역주의 정체성이 강화되고 지역주의 정당과 지도자에게 표를 던졌다. 선거 전략은 반호남 정서, 지역등권론, 지역연합론, 영남후보론 등 지역주의를 둘러싼 논쟁을 맴돌았다. 이에 반해 오늘날 한국인들은 빈부 갈등, 계층 갈등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변하다.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소득과 재산 불평등이 심각하게 심화하였다. 그러나 정당 체제는 여전히 지역주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야당은 2030 세대에 호소하는 '세대 정치'에 기대를 걸었지만, 찻잔 속에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
야당은 무수한 탈지역주의 정치 공학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남 정당'의 덫에 걸려 있다. (다른 한편 진보 정당은 '반공주의'라는 낡은 매카시즘의 우리에 갇혀 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자신을 대표할 정당과 지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여당은 (때때로 성공적인 '중도화 전략'에도 불구하고) 영남과 부유층 정당의 이미지에 갇혀 있다. 이에 따라 양대 정당을 불신하는 청년 세대, 화이트칼라, 수도권 유권자의 상당수는 '무당파(independent voter)'로 변신했다.
무당파는 단순한 정치적 무관심층과 무투표층은 아니다. 때로는 사회 경제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투표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당파가 증가하면서 정당 일체감과 충성심이 낮아졌다. 따라서 선거 때마다 제3 후보를 쫓는 안갯속 정국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유명세에 편승한 선거 공학이 난무한다. 정당은 사라지고 후보만 보인다. 정당의 공약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정치의 예측 가능성이 약화된다. 정치인과 정당은 '더러운 말'이 되었고, 정치의 리더십은 사라졌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
샤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1960년)에서 "갈등이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보고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고 사회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정치의 본질도 바로 갈등을 대표하는 것이다. 정치인의 사명은 자신의 지지자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 샤츠슈나이더는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갈등의 치환을 만들었으며, 정당 경쟁의 범위를 대폭 확장했다고 지적했다.
루스벨트가 당선되기 전 미국 정치는 오늘날 한국 정치처럼 북부의 공화당과 남부의 민주당이 장악한 지역주의 정당이 좌우했다. 그러나 루스벨트가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 보장의 확대를 요구하면서 지역 갈등의 정치 구도가 전국적 차원의 사회 갈등의 정치 구도로 바뀌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수의 금융 회사 소유주와 트러스트(재벌)를 주변으로 몰아넣고 중산층과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뉴딜 연합'으로 '정치적 중간' 지역을 장악했다. 그 후 민주당은 남부의 지역 정당이 아니라 광범위한 계층을 기반으로 한 전국 정당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의 전략이 미국 정치를 바꾸었다.
탈지역주의 정치 공학의 파탄
수차례 대선에서 한국의 야당은 전략적 오류를 반복했다. 여당의 지역주의 전략에 맞서는 '지역연합론' 또는 '탈지역주의'의 선거 전략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집권 이후 지역주의 정치 공학(동진론, 대연정론 등)에 매몰되어 사회 경제적 갈등에 토대를 활용한 광범위한 계층 연합을 형성하지 못했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야당의 전략은 더 나빠졌다. 2012년 대선에서 야당은 처음에는 '정권 교체론'으로 반사이익을 노리다가 2030 세대 동원 전략에 매달렸다.
지난해 지방 선거에서 야당은 '기초 선거 무공천'에 매몰되고, 올해 혁신위는 모두 공천 제도 개선에만 매달렸다. 최근 혁신위가 제시한 권역별 비례 대표제는 지역주의를 완화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사회적 약자와 소수집단을 대표하는 비례 대표제의 진정한 취지를 살리지는 못했다. 대다수 유권자가 관심을 갖지 않는 주제만 쫓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야당이 어렵게 승리한 2010년 지방 선거는 '무상 급식'을 비롯한 복지 공약이 사람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 노선과 지도자
최근 야당은 지지층의 이탈에 맞서 대표와 갈등의 문제를 제시하는 '정치 노선'보다 공천과 지도 체제에 관한 '조직 노선'의 수정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최근 야당의 혁신위원회가 공천 제도 혁신 방안으로 제안한 '국민 공천제'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는 더 많은 시민 참여를 추구하지만, 사실상 정당을 더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 공직 후보는 정당의 정체성(이념과 정책)보다 지역구 관리에 공을 들일 것이다.
실제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선택한 미국에서 정당의 역할은 미미한 한편, 지역구 의원은 오로지 지역구만 우선시한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선거 비용을 후원하는 기업의 입김에 따라 정치가 좌우된다. 반면에 정당의 정체성에 따라 공천을 결정하는 유럽에서 유권자들은 이념과 정책에 관심이 많다. 선거 경쟁은 주로 조세와 복지를 둘러싼 재분배와 환경과 삶의 질을 둘러싼 정책 논쟁으로 결정된다. 만약 정당이 지역구만 대표한다면 소득, 재산, 성별, 연령을 둘러싼 계층의 균열을 제대로 대표할 수 없다. 대표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든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공동체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에 따라 좌우된다. 정치적 목표를 제시하는 지도자만 성공할 수 있다. 정치 노선이 없는 지도자가 권력을 장악할 수는 있을지라도, 공동체를 망치거나 파멸로 이끌 수 있다. 국가의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정당의 지도자도 자신의 노선을 제시해야 한다. 정당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조직이다. 정당의 지도자는 수많은 의원, 당원, 지지자를 움직이고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의 지도자가 누구를 대표하고,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고, 어디로 정당을 이끌지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정당을 이끌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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