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무성한 교과서 논란 판박이 같네

일취월장7 2015. 9. 23. 15:26

 

무성한 교과서 논란 판박이 같네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을 주장했다. 자학의 역사관을 피하고 긍정의 역사관을 갖자고 했다. 꼭 닮은 주장을 하는 정치인이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한·일 우익의 역사인식과 교과서 논란은 놀랄 만큼 유사하다.

전혜원·김연희·이상원 기자  |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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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승인 2015.09.22  09:19:36

 

장면 하나. 9월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을 주장하며 이런 말을 했다. “긍정의 역사관이 중요하다. 자학의 역사관, 부정의 역사관은 절대 피해야 한다. 우리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억지를 부리는 주장은 이 땅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역사 교육이 자학적이니 바로잡자고 주장한 정치인이 또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아베의 저서 <새로운 나라로>에는 이런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전후 일본은, 60년 전 전쟁의 원인과 패전의 이유를 오로지 국가주의에서 찾았다. 그 결과 전후 일본인 심성 어딘가에 국가=악이라는 방정식이 심어지고 말았다. 전후 교육의 실패다.”

장면 둘. 교학사 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논란이 한창이던 2013년 9월, 김무성 대표는 자신이 주도한 새누리당 내 모임 ‘근현대사 연구교실’에서 이런 말을 한다. “교학사가 전교조 교사들로부터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겠다’는 협박과 공갈에 시달리고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건전한 사고를 가진, 잘해보겠다는 국민을 후원해주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당에 문제 제기를 하겠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8월29일 ‘일제침략만행 사진 전시회’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그의 부친 김용주는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연합뉴스
8월29일 ‘일제침략만행 사진 전시회’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그의 부친 김용주는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4년,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 사무국장을 맡은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이 행사를 열었다. 여기서 아베는 이런 주장을 한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만든 교과서가 많은 학교에서 채택되지 못한 것은 비열한 공격 때문이며, “앞으로 전국의 교육위원들이 조용한 환경에서 공정한 채택을 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각 학교가 교과서를 결정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각 지역 교육위원회가 교과서 채택을 결정한다).”

두 장면이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우익이 공유하는 핵심 정서를 압축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양국의 우익은 무엇보다도 역사 인식이 판박이다. “벤치마킹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권오현 경상대 역사교육과 교수)라는 평이 나온다.

김무성과 아베의 발언으로 대표되는 한·일 우익 역사인식의 기본 틀은 이렇다. 기존 역사 교육이 자학적이고 부정적이라고 본다. 좌편향 교사(‘일교조’와 ‘전교조’)가 원인으로 자주 지목된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 미래 세대가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잃는다. 긍정적인 사관에 입각한 역사 교과서를 확산시키고, 이를 막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식뿐 아니라 전개 과정도 겹치는 구석이 많다. 역사 교육을 공격하는 우익 단체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교과서 보급에 뛰어들고, 실제로 검정을 통과하는 일이 양국에서 똑같이 반복됐다. 일본에서는 “일본을 부당하게 폄하하는 자학사관을 배제”할 것을 목표로 1995년 자유주의사관 연구회가 출범했다. 1997년 결성된 새역모는 “전후의 역사 교육은 일본인이 계승해야 할 문화와 전통을 잊고 일본인의 긍지를 잃게 하는 것이었다” “현행 역사 교과서는 옛 적국의 선동을 그대로 사실로 기술하고 있다”라며 아예 교과서 보급에 뛰어들었다. 새역모의 사관을 반영한 후소샤 교과서가 2001년 검정을 통과했다. 이어 후소샤가 출자해 만든 자회사인 지유샤, 새역모에서 분리돼 나온 계열이 낸 이쿠호샤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Reuters</font></div>2014년 10월 항공자위대 사열 행사에 참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이었다.  
ⓒReuters
2014년 10월 항공자위대 사열 행사에 참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이었다.
한국에서는 2004년 자유주의연대 창립에 이어 2005년 교과서포럼이 출범했다. 2008년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냈다. 정식 교과서는 아니었다. 2011년 결성된 한국현대사학회가 맥을 이었다. 이 학회 초대 회장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장과 현 회장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과)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2013년 검정을 통과했다.

양국 모두 우익 교과서의 채택률이 높지 않았지만 국가권력이 나서서 보급을 독려했다. 일본의 경우 문부과학성이나 공정거래위원회가 교과서 평가 기준이나 규제 등을 후소샤에 유리하게 바꿨다. 아베 정권은 검정 체제를 활용해 정부 견해를 교과서에 반영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1차 집권기인 2006년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전통의 존중’을 강조했는데, 교과서 집필·검정 기준에 이 법의 취지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기술하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쿠호샤판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점유율이 종전의 4%에서 6%대로 높아졌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9월9일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역사 연구자·교육자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1167명 선언’을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9월9일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역사 연구자·교육자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1167명 선언’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역사 교과서 수정’ 지시

한국에서는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정부가 수정을 명령하는 방식이 주로 쓰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8년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의 좌편향을 문제 삼으며 대통령과 당시 교과부 장관이 수정을 지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성교과서 집필진이었던 한국교원대 김한종 교수(역사교육과)는 당시 이명박 정부의 수정 요구가 아주 구체적이었다고 증언했다. “소련을 호의적으로 쓰지 말고 속셈을 설명해라, 이승만 정읍 발언(단독정부 수립 암시)과 김구 읍소를 나란히 넣지 마라, 미군정 남한 쌀 공출을 수집령이라고 해라, 북한 지지 무장유격대에 좌익이라는 표현을 넣어라, 러시아 혁명 이정표가 아니라 전환점이라고 써라 등등의 요구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인 2013년 교학사 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에다 사실 오류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교학사뿐 아니라 8종 교과서 모두에 수정을 권고했다. 저자들이 거부하자 수정 명령을 통보했다. 일선 학교 20여 곳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대다수가 철회하자, 교육부는 특별조사를 해 번복 과정에 전교조와 시민단체의 외압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집필 기준에 정부 견해를 반영하려는 시도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있었다.

교과서 정책에 관여하는 인사들의 구성도 양국이 판박이다. 현재 일본 문부과학상(교육장관)을 맡은 시모무라 하쿠분은 아베와 함께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 ‘창생 일본’ 등 극우 역사관 모임에 참여한 인물이다. 이쿠호샤 교과서 편집을 맡은 야기 히데쓰구 교수(다카사키 경제대학)는 새역모 회장 출신으로, 아베 총리 산하 ‘교육재생실행회의’에 핵심 브레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베 총리 보좌관은 이쿠호샤판 교과서 보급을 호소하는 집회에 참석해 지지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교학사 집필진의 주축인 한국현대사학회 인사가 역사 관련 주요 보직은 물론이고 대중 파급력이 큰 방송 분야의 요직을 꿰차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권희영 한국현대사학회 초대회장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장에 임명됐다. ‘이승만 찬양’으로 잘 알려진 유영익 전 역사편찬위원장 역시 이 학회 고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 김학준 이사장은 이 학회 창립준비위원장이자 고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인호 KBS 이사장,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도 이 학회 고문 출신이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교과서포럼 상임고문을 맡은 바 있다.

한·일 우익은 학생에게 어떤 역사를 가르치고 싶어서 이렇게 집요한 역사 전쟁을 치를까. 올해 4월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검정 결과에 힌트가 있다. 처음으로 교과서를 만든 ‘마나비샤’의 역사 교과서에 대해, 문부과학성은 ‘위안부’ 기술을 문제 삼았다. ‘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라는 정부 견해가 없다는 것이다. 문부과학성은 2014년 1월, ‘정부 견해가 있는 경우는 그에 기초해 기술’ ‘근현대사에서 통설적인 견해가 없는 숫자 등은 그것을 명시’와 같은 내용을 추가해 정부 견해를 교과서에 반영하도록 사실상 못 박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08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2008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위안부’ 문제와 난징 대학살 등 전쟁범죄를 겨냥한 것이다. 일본 우익에게 두 건은 한국과 중국의 주장일 뿐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국가의 과오를 그대로 가르치는 것은 자학 사관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일본 우익이 긍정하는 역사도 있다. 전쟁이다. 이쿠호샤 역사 교과서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개시에 대해 ‘구미 식민지 지배로부터 아시아 해방’이라는 면을 강조한다. 아베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한반도 식민지 지배의 발판이 된 러·일전쟁을 두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라고 말했는데 유사한 역사 인식이 교과서에 실렸다. 반면 해당 교과서는 전쟁범죄를 판결한 도쿄 재판에 대해서는 비판적 평가를 많이 소개한다.

한국 우익의 사관에서는 이승만·박정희 재평가가 핵심이다.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이고, 그 성공은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탁월한 식견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비판은 ‘지나친 자학’이 된다. 2008년 교과서포럼이 내놓은 대안 교과서의 한 구절은 우익의 이른바 ‘긍정 사관’을 압축해 보여준다. “기존의 교과서는 우리 삶의 터전인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하게 태어난 나라인지, 그 나라가 지난 60년간의 건국사에서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 관점에서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해방 뒤 3년간의 역사에 대한 평가도 뒤바뀐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 관점은 ‘분단이 됐다’ ‘하나의 통일된 국가 설립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우익 사관에서는 그 3년이 한국이 공산화될 수도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38선 이남에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든 성공의 역사가 된다.”

자학 사관을 극복하고 긍정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일종의 ‘방향 설정’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역사학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부산대 양정현 교수(역사교육과)는 “역사라는 학문 자체가 그렇다. 획일적인 역사가 강조되는 순간 망한다. 누구의 역사가 더 옳은지 의심하고 생각하고 더 나은 걸 모색하는 학문이 역사다”라고 말했다. 동국대 한철호 교수(사학과)는 “(긍정 사관이라는 게) 일제가 우리를 잔혹하게 통치했지만 철도도 놓아주고 공장도 세워주고 경제가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민족운동 조금 탄압한 건 새 발의 피다, 이런 식이다. 역사란 잘된 것만 배우는 게 아니다. 긍정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잘된 건 계승하고 잘못된 건 원인 진단을 명확히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일 우익이 역사 교육에 집착하는 까닭

왜 한·일 우익은 역사에 집착하나. 우익이 기존 역사 교육을 공격하고 나선 시점 역시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일본에서는 1993년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군의 관여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계기였다. 피해자 증언이 나오고 1994년부터 ‘위안부’ 관련 내용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전쟁 당시 일본군의 행위가 부각되고 교육되는 상황이 되었다. 우익이 볼 때 이것은 자신들의 뿌리와 직결돼 있다.

특히 아베가 정치적 멘토로 존경한다고 밝힌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으로 복역하다 극적으로 석방돼 총리까지 한 인물이다. 아베는 저서 <새로운 나라로>에서 A급 전범을 비롯해 역사에 대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역사라는 것은 선악으로 딱 나뉘는 것 같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A급 전범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다. 지도적 입장에 있었으므로 A급이라 편의적으로 부른 것일 뿐, 죄의 경중과는 관계가 없다.” 전쟁을 금지한 헌법을 개정해 ‘보통 국가’로 나아가려는 아베에게, 지난 전쟁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은 자기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한국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친일 반민족 행위와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불법행위를 규명하겠다고 나섰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권철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반미·친북·반재벌이라고 공격을 퍼부었고 언론이 이를 받아썼다. 자유주의연대, 교과서포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여기서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일·독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과 인터뷰 등 여러 경로로 ‘아버지를 매도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추모 사업을 직접 꾸리기도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아버지도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나아가 새누리당의 기반이 이승만·박정희의 재평가와 긴밀하게 결부돼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이승만·박정희의 공과를 서술하며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쓰도록 집필 기준을 바꾼 것은 상징적이다. “결국 자기들의 뿌리를 정당화하는 면에서 (한·일 우익의 전략이) 유사하다”라고 권오현 교수는 지적했다.

역사 인식·개입 방식·목적이 모두 유사한 한국과 일본이지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전문가들의 비판이 집중되는 대목도 여기다. 권오현 교수는 “일본이 우경화한다고는 해도 국정교과서로 전쟁을 부추겼던 과거를 시민들이 기억하고 있다. 적어도 국정화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사학과)는 “교학사 책의 보급 실패가 국정화 주장의 직접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학계·교육계·시민사회로부터 외면받자 권력 입맛에 맞는 역사 해석을 획일적으로 보급하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추진되는 국정화는 어떤 수식도 없이 매우 노골적으로 권력의 역사 해석을 앞세우고 있다. 일단 권력의 손때가 묻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최상훈 서원대 교수(역사교육과)는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썼는데, 그 명제가 지금 여당에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아베 담화에 대해 “일본 정부는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해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전쟁 피해자들에게 참된 용서를 빌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라고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한·일 우익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과 욕망은 쌍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사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계승하나

김연희 기자 

 정권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공개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것은 정부 수립 이후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박정희 정권 때였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해 종신 집권체제를 마련한 뒤 검정으로 발행되던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했다. 1974년 전면 도입된 제3차 교육과정은 ‘국적 있는 교육’을 표방하며 국사 교육을 강화했다. 이전까지 사회과에 포함됐던 국사는 사회 과목에서 분리돼 독립 과목이 되었다.

국사 교육 강화 정책은 통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수단이었다. 학계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역사관을 ‘국난극복 사관’이라 부른다. 교과서는 이 관점을 충실하게 수용해 ‘대외항쟁사’ 중심으로 한국사를 서술했다. 학생들은 개인보다 국가를 앞세우고 국가와 정권에 충성해야 한다는 국가주의 역사관을 교육받았다. 고려 시대 무인 정권도 호평을 받았는데,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로 집권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1974년 편찬돼 1979년 개정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사>.  
1974년 편찬돼 1979년 개정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사>.
당시 정부는 한국사 학계의 연구 성과를 종합한 객관성 높은 교과서가 필요하다며 국정화를 추진했다. ‘하나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황우여 교육부총리의 발언과 논리가 비슷하다. 그러나 그렇게 탄생한 국정교과서는 객관적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1974년 편찬돼 1979년 한 차례 개정을 거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사>에서, 해방 이후 역사를 다룬 현대사회 단원은 노골적으로 박정희 독재정권을 미화한다. ‘5월 혁명’(5·16 쿠데타)은 ‘4월 의거’(4·19 혁명) 이후 혼란한 사회를 안정시키고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구출한 구국의 결단으로 평가된다. 10월 유신은 “전근대적 생활의식과 사대사상을 제거하여 한국 민주주의 정립을 추진”했다고 서술한다. 단원에서 배워야 할 주요 내용에는 ‘10월 유신이 민족사에서 갖는 당연성’을 묻는 질문이 포함돼 있다.

사료마저 정권 입맛에 맞게 조작됐다. 5·16 쿠데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는 혁명공약을 발표하며 제6조에서 “과업이 성취되면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에 복귀”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은 민정 이양 약속을 어겼다. 이후 국정교과서 <국사>에서는 혁명 공약 제6조가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라는 문구로 바뀌었다.

2013년 논란의 중심에 섰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사후 수정된 ‘5·16 혁명공약’을 교과서에 실어 박정희 정권의 국정교과서를 계승했다.

 

 

 

국정화, 교육부 행정예고에 달려 있다

이상원 기자

9월10일 국정감사에서 교육부 공식 업무보고 문건이 공개됐다. 문건에는 ‘국정도서 개발 후 2017년 3월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 적혔다. 각계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모양새다.

국정화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권한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다. 국회 입법이 필요 없다.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제4조에 따르면 ‘국정도서는 교육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교과목의 교과용 도서로 한다’. 따라서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고시하더라도 야당이 막을 방법은 없다. 각 학교가 국정교과서 대신 다른 교과서를 쓰는 일도 불가능하다. 같은 법령 제3조 1항이 ‘학교의 장은 국정도서가 있을 때에는 이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위 위원장인 도종환 의원은 “정부·여당 인사들은 ‘우리가 정권을 잡았는데 국정화를 못할 이유가 있나?’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한다. 내부에서는 이미 국정화 방침을 굳힌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장관 고시만으로 간단히 확정할 수 있는데도 미루는 배경에 대해 도 의원은 “재작년 국정감사 때 크게 데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국감은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여야 대치로 파행이 잦았다. 올해도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교문위 국감은 첫날부터 1시간 만에 정회됐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맨 왼쪽)가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여러 단체의 원로들과 만났다.  
ⓒ연합뉴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맨 왼쪽)가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여러 단체의 원로들과 만났다.
도종환 의원은 “특위가 교육부 행정예고에 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과용 도서 구분고시는 행정 절차상 20일 이상 행정예고 대상이다. 교육부 계획처럼 9월 중에 고시하려면 조만간 행정예고를 해야 한다. 특위는 행정예고 후 20일 동안 공보물, 간담회, 1인 시위 등을 통해 교과서 국정화 반대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학계는 국정교과서 집필진 참여 거부운동을 고려 중이다. 한국사학사학회장 조성을 교수는 “국정화로 전환했을 때 교과서 집필진 중 학자적 수준과 학문적 양심을 인정받는 분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역사연구회장 정용욱 교수는 “정부가 국정교과서 집필자를 찾기 힘들 것이다. 교수들 차원에서 집필 불참운동을 생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9월10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고시 절차 이전에 결과를 미리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교육부의 교과서 개선 방향은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기를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한국사 교과서 개발’이다.

 

 

 

2006년 기고 글과는 달리…

이상원 기자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과)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의 한 사람이다. 2013년에는 김무성 대표가 주도한 ‘새누리당 근현대사 연구교실’ 모임에서 교학사 교과서가 “종북 세력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각성시켰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때 교과서 국가 통제에 반대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시대정신> 2006년 가을호에 “교과서 개발이 국가의 강력한 통제하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략) 민간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반영되기 어려운 국가주도형 교과서 개발 체제이다”라고 썼다. “교과서가 국가권력에 의해 일방적인 이념에 치우칠 수도 있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9월9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그는 정부의 국정화 추진에 동의하는 견해를 밝혔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가 택할 만한 합리적 방안 중 하나다. 학계와 정부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 분열되면 중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국정화를 통해 국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역사관을 형성하는 방안은 정부가 선택할 만하다.

역사학자의 시각에서는 어떤가?
국정화도 한 방법이다. 검정제와 국정제는 일장일단이 있다. 정부에서 볼 때, 역사 교육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국민 통합이다. 국민적·국가적 정체성 확립이 역사 교육의 존재 이유다. 검정제로도 국정제로도 실현될 수 있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왼쪽)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오른쪽) 집필진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왼쪽)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오른쪽) 집필진 가운데 한 사람이다.
현 검인정제 아래에서는 잘 실현되고 있나?
아니다. 현 검정제도는 다양한 교과서를 보장하기보다는 서로 대립하는 역사관의 대결장이 되고 있다. 정부가 통제 능력을 잃었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에 시각 차이가 있나?
2002년 이후 한국 근현대사 검정교과서를 보면 대한민국 건국을 ‘새로운 나라의 성립’으로 명시하지 않는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이라고 하고,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이라고만 한다. 엄청난 차이다, 이건.

그래서 차라리 국정화가 낫겠다는 뜻인가?
그런데 국정화가 된다면 필연적으로 타협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쓰게 된다든가 하는 등. 이런 면에서 우려는 된다. (국정화는) 차선의 방안이다. 현재의 ‘국가 통제 없는 검정제’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낮다.
채택률이 낮은 게 아니라 전멸이다(웃음). 조직적으로 방해가 있었다. 교과서 채택 과정에 사학 건립 이념을 공유하는 교장선생님이나 이사회가 참여를 못하게 되어 있다(이는 사실과 다르다. 교과서 선정 최종 결정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한다. 국공립 및 사립학교의 장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해 당연직 운영위원이다).

 

 

중고등 역사 교과, 친일 관련 내용 대거 빠져

독립운동사 대폭 손질…1948년 '대한민국 수립'
서어리 기자 2015.09.23 11:39:37
 

교육부가 22일 발표한 '2015 역사과 교육과정' 한국사 과목에서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사가 대폭 축소된 것으로 밝혀졌다.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는 뉴라이트 사관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논란이 예상된다.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특별위원회'가 이날 교육부의 '2015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해 역사교사모임과 역사전문가들에게 분석을 의뢰한 결과, 이같은 분석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외 민족운동에 대한 서술이 삭제되거나 대폭 축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2009 고등학교 역사과 교육과정에선 '3.1운동의 전개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이 한 단원의 장으로 구성돼있었으나, 2015 교육과정에선 빠졌다. 집필 기준에서도 '3.1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이해한다'는 내용이 제외됐다.


 

ⓒ연합뉴스


또, 기존 교과서에서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표기했으나, 이같은 표현이 이번 교육과정에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뀌었다. 이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뉴라이트 역사관이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은 1919년 3.1운동 직후 공포됐다고 보는 게 역사학계 내 주류 견해이나,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은 그간 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일 건국됐다며 이날을 '건국절'로 지정하자고 주장해왔다.

독립운동사 서술도 대폭 줄어들었다. 3.1운동 이후의 실력양성 운동, 사회·경제적 민주운동 등 1920년대의 독립운동만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2009년 교육과정이 "1930~40년대 국내외 민족 운동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때의 민족 운동이 광복과 연관됨을 이해한다"라고 목표를 밝힌 것과 대비된다.

친일 관련 내용도 대거 배제됐다. 고등학교 역사 과목의 경우, 7단원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에서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언급돼있지만, 정작 일제 강점기 민족 운동에 해당하는 6단원에서는 친일 문제가 적시되지 않았다. 친일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친일 청산을 언급하는 것 자체로 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조선 후기 자발적 근대화에서 자생적 측면을 강조한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빠지고, 북한의 실상과 관련한 내용을 넣지 않은 점 또한 뉴라이트식 역사관에 입각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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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막내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