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입력 2015-03-26 20:47:56 | 수정 2015-03-27 04:04:17 | 지면정보 2015-03-27 A38면
경기침체는 잘못된 정책·규제 탓
돈풀기는 소득격차 악화시킬 뿐
금리인하는 신중에 신중 기해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
돈풀기는 소득격차 악화시킬 뿐
금리인하는 신중에 신중 기해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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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를 인하해서 경기가 살아나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금리를 인하한다고 해서 경기가 살아나기는 어렵다. 지금 한국 경제가 심각한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금리 탓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가 만들어낸 잘못된 정책들 때문이다. 그동안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각종 정치적 주장으로 얼마나 많은 혁신과 투자를 가로막는 법들이 만들어졌나.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는 각종 노동 관련법,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대형마트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유통구조 개선법, 기업 구조조정 촉진법 등 숨이 막힐 정도로 많다. 이런 규제들이 기업들을 옥죄고 민간 경제의 활동을 저해했기 때문에 경제가 침체돼 오늘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경기를 살리고 싶으면 이런 규제들부터 걷어내야 한다.
금리 인하로 가계 부채가 증가해 경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부작용은 차치하고 금리 인하를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소득 격차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금리를 인하하기 위해서는 한은이 통화를 늘려야 한다. 이 늘어난 통화가 문제를 일으킨다. 늘어난 통화는 시장 참여자들의 손에 동시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일찍 손에 쥐게 되고, 어떤 사람은 늦게 손에 쥐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 푼도 손에 넣지 못한다. 물가가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늘어난 통화를 일찍 손에 넣은 사람은 실질 구매력이 증가하게 된다. 물가가 오른 뒤에 새 통화를 입수한 사람의 실질구매력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이렇게 해서 소득과 부가 사회 구성원들 간에 재분배된다.
늘어난 통화를 제일 먼저 손에 쥐는 사람들은 봉급생활자와 같은 일반 서민들이 아니다. 정부, 은행, 기업들과 관련돼 있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구제 금융을 받은 은행들과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부동산이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부동산과 주식을 추가로 획득한다. 새로 창출된 돈으로 수월하게 투자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봉급생활자들과 같은 서민들은 빈손으로 남게 되고 정부, 은행, 기업, 대형 투자자들은 더 잘살게 된다. 열심히 일하면서 알뜰살뜰 절약하며 살아가는 서민들로서는 허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인간사회에서 소득 격차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그 자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단순히 늘어난 통화를 일찍 손에 쥐느냐 늦게 쥐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소득 격차는 문제다. 이 스토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일찍이 60여년 전에 쓴 인간행동에서 이 위험성을 논설한 바 있다. 이번 금리 인하에는 이런 지적 기반이 결여돼 있다.
작년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이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물론 최근에 피케티가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시인했지만, 그의 책에서 소득 불평등 악화의 원인이 통화팽창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피케티가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내세운 미국의 소득 불평등 추세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그 그래프를 보면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 상위 10%가 차지하는 몫이 50%로 최고점에 이른다. 그 시기가 바로 미국 중앙은행(Fed)이 통화를 무분별하게 발행했던 시기다.
갈수록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고, 부의 편중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무분별한 통화팽창에 그 근원적 원인이 있다. 금리 인하를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그런데 경기 부양에 별 효과도 없는 금리 인하를 어찌 그리 쉽게 생각하는가. 너무 가볍다.
"'빚 내서 집 사기'는 도박이다"
[주간 프레시안 뷰] 가계부채는 안전할까?
정태인 칼폴라니연구소 소장 2015.03.26 19:30:06
금융위의 히트상품
금융위원회가 히트를 쳤습니다. 새 상품을 내놓기가 무섭게 이틀만에 9조원어치 이상이 팔려서, 한 달 치 한도인 5조원을 매일 '절판''하는 셈입니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임종룡 위원장의 입이 벌어질 만합니다. 이제 은행의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새마을금고나 신협 같은 제2금융권 대출에 대해서도 이 히트상품의 적용을 검토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안심전환대출'이 뭐길래 이럴까요? 아래 흥미로운 기사를 보시죠.
2013년에 천재적인 사채업자들이 '신상'을 개발했습니다. 여기 저기 다섯 군데서 평균 40% 이자율로 급전 500만원을 빌린 사람에게 사채업자가 이렇게 제안합니다. "내가 모두 갚아 주겠다. 이제 당신의 신용도가 높아져서 은행에서 10%면 돈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돈으로 550만원을 갚아라”. 생각해 보니 현재의 부채를 그대로 유지하면 이자만 매년 200만원을 내야 하고, 제 때 못 갚기라도 하면 수시로 독촉 전화에 시달리고 급기야 생명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데,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이제 은행에 매년 55만원만 갚으면 되니 분명 이익입니다. 사채업자는 며칠 만에 50만원을 벌었고 대부업체들은 골치 아픈 대출을 회수했죠. 그야말로 '윈윈' 상황이 벌어진 건데 어떻게 이런 신통방통한 일이 일어난 걸까요?
실제로 이런 사업이 꽤 번창한 모양이고, 급기야 금융감독원은 "소비자경보 2013-9호, 통대환대출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대출자의 상환능력은 전혀 변화가 없는데 그 위험을 은행이 떠맡은 꼴이기 때문이죠. 이번 "안심전환대출"에서는 주택금융공사가 부담을 떠안은 기관입니다. 지금 은행 앞에 줄 선 분들의 상환능력이나 담보가치는 변화가 전혀 없는데, 공사가 나서서 금리를 1%p나 내려 줬으니까요.
더구나 이번의 '신상 개발자'는 사채업자가 아니라 금융위원회, 즉 정부입니다. 너도 나도 달려가서 줄을 서는 게 당연하죠.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앞의 사례에서는 은행이 대출자의 신용상태가 갑자기 좋아진 이유를 몰랐지만, 이번엔 주택금융공사가 채무자의 신용상태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선심을 쓴 건 '모피아' 출신 금융위원장이 팔을 비틀었기 때문이겠죠.
어쨌든 주택금융공사 역사상 이렇듯 인기를 끈 상품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효자 상품'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을까요? 아마 겁날 겁니다. "대충 금년엔 40조원쯤 하자"(현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440조원 중 약 10%)는 금융위의 제안에 공사는 정밀한 계산도 하기 전에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1%p의 위험부담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을 테니까요(예컨대 440조원의 반을 바꿔준다면 4조원 이상의 위험부담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제2금융권 대출 대환은 더 어렵겠죠. 신용도는 떨어지고 담보가치도 문제가 될 테니까요.
저는 금융위의 '신상'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밀한 신용조사가 결여되어 있다거나 결국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중산층에 대한 혜택이라거나 또 위 기사에 나오듯 위험감수자들을 구제했다거나 하는 비판이 있지만 어쨌든 국민의 부담을 줄여 준 거니까요. 기실 정부가 "현재의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이런 '신상'을 내놓은 것은 금융시장이란 언제 어떤 외부 쇼크에 의해서 얼마나 출렁일지 모르는, 대단히 불안정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부담을 주택금융공사에 모두 떠맡길 것이 아니라 금융권 전체가 시스템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위험을 공유하는 방법도 고민해 볼 만합니다. 이런 게 금융의 공공성이 아닐까요?
금융시장에서는 심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이자를 물어야 합니다. 은행, 제2금융권, 대부업체, 무허가 사채업자 순으로 이자율은 올라가고 절박한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입니다. "안심전환대출"이 히트를 친 건 이 순서를 바꿔 놓았기 때문입니다. 위험부담이라는 면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해 있는 공사가, 바로 아래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의 위험을 덜어준 거죠. 또 최경환 부총리가 자랑하는 부채의 질 개선도 이자율 하락을 통해 제2금융권의 대출 위험을 은행이 일부 떠맡은 겁니다. 이런 원리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전 금융기관에 적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번엔 신용조사를 더 정밀하게 해야 할 것이고, 채무자들의 금융교육, 필요하면 직업을 새로 얻거나 전환하기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도 결합해야 하겠죠.

▲ ⓒ연합뉴스
어쩌면 시민운동이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최하층의 빚을 탕감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참조 기사: “수억원짜리 채권들 절에서 소각”…‘빚 탕감 프로젝트’에 종교계도 동참)
위에서 말한 체계적인 부채 절감에 동참하는 금융기관에 시민들이 예금을 몰아주면 어떨까요? 요즘 이자율도 낮아서 소규모 예금에 붙는 1년 이자의 금융기관별 차이는 말 그대로 '껌값'일 겁니다. 이런 예금을 모아서 시민의 힘으로 상환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의 빚을 갚아 주거나 이자를 깎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시민과 금융기관, 그리고 정부가 함께 우리의 시스템 위험을 줄이는 거죠.
가계부채 정말 문제 없을까?
그럼 현재의 가계부채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한국은행이 23일, "2014년 자금순환(잠정)"을 내 놓았는데 다음 표를 보시죠.
경제주체별 금융자산․부채 추이 (연말, 조 원)

주 : 1) 가계(소규모 개인사업자 포함) 및 가계에 봉사하는 민간비영리단체
2) '거주자 발행주식 및 출자지분'과 '직접투자' 제외
3) 순금융자산=금융자산 – 금융부채, 순금융자산이 마이너스(-)이면 순금융부채를 의미
<출처: 한국은행, "2014년 중 자금순환(잠정)", 3.23, p11>
두 번째 칸의 금융부채에서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빚을 보면 1295조원이 나옵니다. 표 밑의 각주에도 나오듯이 여기에는 소규모 개인사업자, 민간 비영리단체의 빚도 포함되어 있는 수치입니다. 순수한 '가계'만의 부채는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보통 국제비교를 할 때는 가계부채는 자금순환상의 수치를, 그리고 가처분소득은 국민계정 상의 수치를 사용합니다. 국제적으로 동일한 기준으로 만들어낸 수치를 비교해야 할 테니까요.
이 기준으로 현재 가계부채는 위 표에서 보듯이 1295조원입니다. 2014년 GDP의 87.2%에 달하죠. 또 그 옆의 2012년, 2013년과 비교해 보면 확대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013년과 비교해서 75조4천억원(6.2%)이 늘어났습니다. 한편 국민계정 상 가계소득은 789조원(2013년 대비 3.7% 증가)입니다. 소득은 3.7% 늘어났는데 부채는 6.2% 증가했다는 얘기죠.
이에 따라 가계부채 비율도 전년 말 160.3%에서 164.2%로 3.9%p 늘어났습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기준 의원이 발표한 수치입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비율은 2005년 이후 내리 10년째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가계부채 증가율은 연평균 8.3%였고 가계소득 증가율은 4.9%에 머물렀습니다.
이 수치는 OECD 평균 133.5%보다 31%p 높은 수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23.7%p나 증가했죠. 반면 OECD 주요 선진국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비율이 큰 폭으로 감소했습니다. 해서 맥킨지가 우리나라를 가계부채 7대 위험국으로 꼽은 겁니다.
지난 2월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방안'을 발표하면서 가계부채 비율을 2013년말 160.3%에서 2017년까지 155%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말의 가계부채 비율은 164.2%로 오히려 늘어났고,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금년부터 매년 3%p 가량 낮춰야 합니다. 상당한 규모로 빚을 갚거나 성장률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의 경제정책기조는 제가 누누이 말씀 드린 대로 "부채주도 성장"입니다. 빚을 늘려서라도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고 대규모 규제완화를 통해 대규모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거죠. 이런 정책을 쓰면서 어떻게 동시에 가계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을까요?
물론 정부는 "가계부채의 질"을 들어 현재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하다고 공언합니다. 금융시장이 요동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이 얘기는 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 부채 규모가 상위 40%(4,5분위)에 몰려 있고 금리 인하와 "안심전환대출" 등으로 이들의 상환능력은 높아졌을 테니까요.
<그림1> 소득분위별 가계부채 분포

<출처 : 김현정 등, 2013,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증가 원인 및 지속가능성 분석", BOK 경제리뷰, p9>
(이 보고서는 가계부채에 관해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아래 링크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림을 보면 상위 40%가 전체 부채의 70%를 보유하고 있고 1-2분위는 16%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소득이 높은 사람이 빚을 많이 졌으니까 상환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2000년대 중반이나 2010년대 초반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즉 최근에 갑자기 사태가 악화된 건 아니라는 얘기죠.
상층의 부채는 생계형이라기보다 부동산 등 자산보유와 관련되어 있을 겁니다. 즉 이들 계층(대부분 중산층 상층)도 만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면 큰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위에서 소개한 보고서는 집값이 25% 이상 하락하는 경우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집값이 폭락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한국은행의 소비자 심리 조사를 보면 집값이 오를 거라고 예측하는 분들이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만일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출렁거리고 지금처럼 아파트 공급을 계속 늘리는데, 경기가 침체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집값이 폭락할지도 모릅니다. 원리금 상환의 부담이 커지면서 갑자기 매물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게 부동산시장이니까요.
요약하자면 당장 가계부채가 폭발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현재처럼 침체가 지속되고 금융시장에서 쇼크가 일어난다면 집값 폭락을 통해 우리 내부의 폭탄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지금 빚내서 집을 사는 건, 말 그대로 도박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 빚을 줄여나가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성장률을 올리는 게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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