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용文盲 대한민국] [1] '금융 無개념'… 직장인 信不者만 30만명
입력 : 2015.03.12 05:51
이자 등 따져보지도 않고 대부업체 간편대출 '함정' 빠져
한국인 금융이해度, 베트남·미얀마보다 뒤진 亞太 13위
그러던 김씨에게 어느 날 급하게 300만원쯤 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 은행으로 갔다면 연리(年利) 10% 이하로 어려움 없이 돈을 빌렸겠지만, 문득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재직증명서니 원천징수영수증 같은 서류도 준비해야 하고, 이것저것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게 번거롭잖아.' 김씨는 TV에서 봤던 여성전용대출 광고를 떠올렸다. 전화를 걸자 상담원은 밝은 목소리로 "신분증 하나면 곧바로 입금이 가능하고, 한 달에 10만원씩만 이자를 내면 된다"고 안내했다. 간단한 절차를 거쳐 상담원 말대로 통장에 마법처럼 300만원이 입금돼 있었다.
김씨는 빠른 대출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하지만 월 이자 10만원을 연리로 환산하면 은행이자의 4배에 달하는 40%에 이른다는 것, 그리고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으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게 돼 더 이상 은행 대출은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후로 김씨는 대부업체에서 두 차례에 걸쳐 600만원을 더 대출받았고, 점점 이자 갚기가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자가 연체되자 악몽이 시작됐다. 돈을 빌려줄 때는 천사 같던 대부업체 직원들은 악마로 돌변했다. 출퇴근길에 회사로 찾아오거나 수시로 전화를 걸어 "갚지도 못할 돈을 빌려놓고 편하게 사회생활할 수 있을 것 같으냐"며 윽박질렀다. 직장 동료들 보기 부끄러워 김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고, 곧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멀쩡한 직장 여성이 대부업체에 처음 전화를 건 순간부터 신불자가 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김씨는 "그때는 대부업체가 은행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몰랐고, 이자가 얼마인지도 따져보지 않았다"며 "돈 몇 백만원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한국인의 전반적인 금융 지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마스터카드가 지난해 하반기 실시한 금융이해도 조사에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16개국 중 13위를 차지했다.
1~3위를 차지한 대만·뉴질랜드·홍콩은 물론 필리핀(8위), 미얀마(9위), 베트남(11위) 등에도 못 미친다. 세계에서 가장 근면·성실하고 교육열 높다고 자부하는 한국인들이 돈 문제에서만큼은 문맹(文盲)에 가까운 것이다.
금융 문맹의 폐해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김씨처럼 멀쩡한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빚을 못 갚아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를 조정받은 사람(신용불량자)은 최근 5년간 14만8000명에 이른다. 이 중에는 의사, 공무원, 교사 등도 다수 포함돼 있다. 같은 기간 일용직이면서 신불자가 된 숫자(21만명)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 개인 회생 등 다른 제도를 통해 채무조정을 받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최근 5년간 30만명 이상의 급여소득자가 신불자로 전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매년 3000명 가까이 돈 문제 때문에 자살하고, 전체 가구 5분의 1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赤字) 상태에서 돈을 빌려 생계를 유지한다.
본지는 신용불량자 50여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와 설문, 광범위한 자료 조사 등을 통해 금융문맹의 실태와 문제점,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금융文盲 대한민국] 신용 불량자가 되는 3大 금융습관 ① 利子 무서운 줄 모른다 ② 무작정 대부업체로 간다 ③ 상환 계획을 안 세운다
입력 : 2015.03.12 05:44 | 수정 : 2015.03.12 09:04
[신용불량자·은행원·회사원 375명 설문결과 비교해보니]
이자 폭탄에 둔감 - 信不者 40%만 "위험성 안다", 일반 회사원은 71%가 알아
쉽게 받는 대출 찾고 - 은행서 못받으면 대부업체行… 신불자는 27% 회사원은 5%
돈 갚으려는 노력은 부족 - 40%가 "상환계획 마련 안해" 빚압박에도 외제차 안팔기도
'무지(無知), 무노력(無勞力), 무계획(無計劃).'본지가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 조정을 신청한 신용 불량자 150명, A은행의 은행원 110명, 제조업·IT·컨설팅 분야 기업체 3곳 회사원 115명을 대상으로 '금융 이해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평범한 서민 및 중산층이 은행원 및 회사원과 다르게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 이유는 '3무(無)'에서 비롯됐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중에는 '이자 폭탄'이 된다는 위험성을 모르고, 은행 대출을 받으려는 노력 없이 편하게 대부업체·일수 대출을 이용했으며, 돈만 빌릴 줄 알았지 돈을 갚으려는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① 10만원이 400만원으로 불어나는 '이자 폭탄' 모른다
"한 달에 갚아야 할 이자가 10만원에서 20만원이 되고, 20만원이 50만원 되고, 50만원이 100만원, 200만원이 될 때까지도 '내가 버는 금액보다 적다'고 스스로 안심시켰어요."
기자와 만난 학원 강사 최모(60)씨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20년 전 카드 8장을 만들어 매달 300만~500만원씩 연 30%대 금리로 카드론 돌려막기를 했다. 매달 250만원을 벌지만 지출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덜컥 암에 걸렸다. 수천만원의 진료비와 매달 이자부터 갚아야 하는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5억원 상당의 단독주택을 팔아 진료비를 마련하든가 아니면 이를 담보로 싼 금리의 대출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집이 아내 명의로 되어 있는 데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니까 주택에 손을 댈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 100%대 금리로 사채 1000만원, 39%로 대부업체에서 4000만원을 빌렸다. 최씨는 "20년 전 10만원씩 갚던 매달 이자가 40배 이상 늘어날 줄 몰랐다"며 "신복위에 채무 조정을 최근 신청했는데, 10년이 지난 70세가 돼서야 신용 불량자 신세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본지 조사에서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라는 질문에 신불자들은 39.3%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은행원들은 91.8%, 회사원의 71.3%가 이자 위험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천규승 한국개발연구원 박사는 "신불자들은 저축이나 투자에선 고금리 이자를 얻길 원하지만 대출의 고금리 이자는 따져보지 않는 습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② 무작정 대부업·일수 대출
보험설계사 이모(52)씨는 자녀 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신용등급 7등급이란 이유로 대출을 거절당했다. 마침 은행을 나오는데 '신용 불량자만 아니면 모두 대출 가능!'이라 쓰인 대부업체 광고에 이끌려 전화를 걸었다. 캐피털과 대부업체 10곳에서 5000만원가량을 연평균 30%로 빌린 이듬해 그는 매달 125만원의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신용 불량자로 전락했다. 이씨는 당장 급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정부에서 제공하는 학자금 대출 상품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햇살론 등 8~9% 금리로 저축은행 등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서민 금융 상품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했을 때 어떻게 하면 신용등급을 높여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물어보질 않았다"고 말했다.
신불자의 27.3%는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했을 경우 대부업체나 일수 대출을 이용했다'고 대답했다. 반면 은행원들이 대부업체와 일수 대출에 손을 벌린 경우는 3.6%, 회사원은 5.2%에 불과했다. 대신 은행원과 회사원 10명 중 4명은 은행 대출 조건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 은행에서 받았다고 말했다. 신불자 중에서 노력을 기울여 은행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은 28%에 불과했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는 "신불자들은 금융 전문가들을 만나봤자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그릇된 피해 의식이 있다"며 "본인 인증을 위한 복잡한 대출 서류들에 대해 귀찮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③ 돈 갚을 계획을 안 세운다
신불자들의 40.6%는 돈만 구해 쓰는 데 급급하지 갚을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 회사원과 은행원은 각각 76.5%, 61.8%가 대출 만기 때 갚아야 할 돈을 별도로 관리했다. 대출받기 전에 미리 원금 상환 계획부터 세운다는 것이다.
한때 월 500만원을 벌던 레스토랑 대표 김모(40)씨. 그러나 카드빚으로 매달 600만원 이상 쓰면서 레스토랑 경영이 어려워졌다. 가계 문을 닫고 월 250만원을 버는 레스토랑 주방장이 됐지만 대출 습관은 여전했다. 8000만원짜리 외제 차와 자식 사교육에 쓰느라 현금 서비스, 카드론, 대부업체 대출 등으로 4000만원을 빌렸다. 그는 "'신용카드 대출을 많이 쓰면 신용이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내 대출 습관을 좌우했다"고 했다. 신불자가 되니 카드가 정지됐고, 빚더미에 앉은 그의 집엔 채권 추심업자들이 들이닥쳤다. 김씨는 결국 이혼하고 노숙자로 전락했다. "얼마를 벌면 얼마를 저축하고, 대출금을 상환하는 계획이 전혀 없었어요. 외제 차를 팔았어야 하는데…. 그건 제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팔지 못한 거예요. 돈이 무서운 줄 모르고 말입니다."
[금융文盲 대한민국] 적금 유지하려 현금서비스, 20% 금리 쉽게 본 마이너스 대출, 믿고 건네준 인감도장… "별생각 없이…" 멀쩡한 人生 망친 치명적인 선택
입력 : 2015.03.12 05:51
[어쩌다 신용불량자 됐나]
빚내 적금 부은 사회초년생 - 남은 월급으론 용돈도 빠듯
카드빚 허덕이다 私債까지 "적금 깼다면 문제 없었는데"
친구와 피자집 차린 30代 - 수익 독차지하려는 욕심에
동업자 마이너스 대출 떠안아… 이자 감당 못하다 가게 넘겨
중견업체 부장 출신 60代 - 친구가 받은 억대 사기대출
본인도 모르게 보증인으로… 이혼하고 노숙자 신세 전락
돈에 대한 무지(無知)는 결정적인 순간에 '최악의 선택'을 내리게 만든다. 본지가 심층 인터뷰한 신용불량자들은 하나같이 "잘 몰라서" "별생각 없이" "속아서" 그런 선택을 내렸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참혹했다.◇빚으로 부은 적금
이정희(30·가명)씨는 적금을 신줏단지 모시듯 아껴두고 카드빚으로 생활하다 20대를 날려버렸다. 22세였던 2007년,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자 어머니는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이씨 이름으로 매달 40만원짜리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 세금을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은 80만원가량이었다. 적금을 붓고 남는 40만원으로는 통신비와 교통비 대기에도 빠듯했다. 부족한 용돈은 신용카드로 마련했다. 월급으로 카드 이용 대금 갚기가 버거워지자 현금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에 접어든 것이다. 독촉장을 막는 생활을 1년쯤 이어가다 '목돈을 빌려 한 번에 빚을 갚겠다'고 생각하고 은행을 찾았을 땐 이미 신용 등급이 바닥으로 떨어진 뒤였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사기꾼들이 귀신같이 알고 접근했다. 카드깡 사기와 대부업체의 꼬임에 넘어가 빚은 더 불어났다.
악몽 같았던 20대를 돌이키며 이씨는 "무리하게 적금에 들었던 것이 가장 후회된다. 적금만 깼더라도 카드빚으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요즘은 어린 남동생에게 틈날 때마다 가르쳐요. '버는 만큼만 써야 한다, 신용카드는 빚이다, 돈은 무섭다' 같은 것들요. 제가 어렸을 땐,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요."
◇친구로부터 떠안은 마이너스 대출
임영규(33·가명)씨는 2010년 친구와 동업해 피자집을 차렸다. 임씨는 저축한 돈으로, 친구는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받아 각각 3000만원씩 창업비를 댔다. 장사는 그런대로 잘됐다. 어느 날 친구가 피자집에서 손을 뗄 테니 대출을 대신 떠안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수익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임씨는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당시 20%대였던 마이너스 통장 대출 이자를 쉽게 본 게 결정적으로 화근이 됐다. "이자가 한 달에 20여만원씩 나가더라고요. 좀 밀리면 원금까지 불어나는 거예요. 여기다 임차료니 뭐니 내다 보니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벌게 됐고 생계유지가 불가능해졌어요."
결국 임씨는 2년 만에 장사를 포기했다. 임씨는 직장을 구해 월 130만원 정도를 벌지만, 아직도 대출 이자를 갚고 있다. 그는 "주위 어르신들이 고금리 대출은 위험하다고 말릴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며 "20%란 숫자가 그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다"고 했다.
◇인감도장 한 번 빌려준 게 파탄
양기원(60·가명)씨는 20년 전 친구에게 건넨 도장 하나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중견 제조업체 생산부장이었던 그는 친구가 "생활 자금이 필요하다"며 "농협에 아는 은행원이 있는데 직장이 확실한 네 이름으로 1000만원을 빌려 500만원씩 나눠 쓰자"고 했다. 마침 카드 이용 대금이 밀려 있던 양씨는 의심없이 친구에게 인감도장을 건넸다. "그런데 얘가 1000만원을 빼서 잠수를 해버린 거야. 은행 가서 따져도 도장 찍혀 있으니 어쩔 수 없대."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3개월 뒤부터 은행에서 체불 통지서가 마구 날아왔다. 알고 보니 친구가 양씨의 인감을 들고 대리인을 자처해 마구잡이로 대출받은 것이었다. 7개 금융사에서 빌린 빚 1억7000만원이 고스란히 양씨 앞으로 돌아왔다. 은행에 가서 따졌지만, 모든 서류가 완벽해 구제받을 길도 없었다. 원통한 생각에 양씨는 "내가 빌린 것도 아닌데 왜 내가 갚아야 하느냐"면서 깔아뭉갰다.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2년 만에 원금과 이자를 합쳐 갚아야 할 돈이 3억6000만원이 됐다.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양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서울에 올라와 노숙인 생활을 시작했다.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린 적도 있다.
양씨는 현재 건강보조식품 판매일을 하면서 서울 영등포공원 근처의 30만원짜리 월세에 혼자 살고 있다. 양씨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 친구를 믿어버린 내가 잘못이지. 도장 한 개로 인생이 이렇게 망가질 줄 누가 알았겠어."
◇한탕을 노린 아파트 투자
2008년 시부모 두 분이 모두 암에 걸리며 병원비로 7000만원 빚이 쌓이자, 김혜영(39·가명)씨가 눈을 돌린 것은 아파트 투자였다. 2003년 4900만원에 샀던 파주의 아파트가 5년 만에 1억4000만원으로 껑충 뛰는 놀라운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설픈 경험이 독이 됐다. 살던 아파트를 팔고 빚을 청산한 뒤 은행에서 7500만원 대출을 받고 전세를 끼워 1억4500만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큰돈 벌려면 부동산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생각도 못했던 양도소득세가 1800만원이 나왔어요. 돈이 없어 현금서비스 받아서 냈죠. 거기다 무슨 공사비다 뭐다 돈 들어갈 데가 많은 거예요. 직업군인 남편 명의로 군인 대출도 받고, 보험에서 약관 대출 받다 보니 빚이 1억원이 넘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 위기와 미분양 사태가 터지며 아파트 가격이 폭락해 4년 만에 집값이 4000만원이나 떨어졌다. 대출이 많아 집을 팔려고 내놔도 팔리지도 않았다. 전세금을 내주느라 남편의 퇴직금까지 2000만원을 끌어써야 했다. 김씨는 "그때 집만 안 샀어도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무리한 투자가 결국 빚만 남겼다"고 고개를 저었다.
[금융文盲 대한민국] [2] 대출 광고는 왜 주로 TV에? 代理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입력 : 2015.03.13 03:04
TV, 판단 흐리게 하기 쉬워… 대리급 30代가 최대 고객
쉽게 빌려준다는 건 역으로 지옥까지 가 받아낸다는 뜻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건 누구나 高금리라는 의미
- ▲ 케이블TV에 등장하는 대출 광고.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빌릴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그 이면에는 시청자의 판단력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숨어 있다.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광고는 대부분 경쾌한 음악과 코믹한 화면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금융 문맹을 홀리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
대부업체 광고 전략의 두 키워드는 '쉽·빠·간'과 'TV'다. '쉽·빠·간'은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를 줄인 말로 광고업계에서 중요한 마케팅 개념 중 하나다. TV에 집중하는 이유는, 신문이나 잡지 등 인쇄 매체는 독자가 메시지에 집중하기 때문에 광고 내용을 신중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TV 광고는 짧은 시간 '이미지'에 성패를 걸어 시청자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기 쉽기 때문이다.
광고 제작사 이노션의 염철 본부장은 "대출이란 심사숙고해야 하는 문제인데, 마치 매우 가볍고 쉬운 일이란 이미지를 준다"고 말했다.
대부 광고에 무대리·봉대리 같은 '대리'나 계약직 영업 사원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젊은 층 직장인들이 대부업체의 최대 고객이기 때문이다. 대부업 이용자의 직업은 회사원이 58.5%로 절반이 넘고, 연령별로는 30대가 35%로 가장 많다. 대부업체 주 이용 계층인 '대리'를 내세워 '나만 대출받는 것이 아니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주는 전략이다.
'한 달 안에 갚으면 무이자'를 내세우는 업체들도 있다. 고금리 대부업체가 어떻게 이렇게 관대한 조건을 내세울 수 있을까. 한 달 안에 못 갚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부업체 이용자들을 대부 기간별로 보면 3개월 미만으로 이용하는 고객은 17.7%에 불과하고, 1년 이상 이용하는 비율도 48.3%에 이른다.
대부업체들은 "클릭 한 번, 전화 한 통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해 준다"고 광고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유는 신용 등급에 관계없이 무조건 고(高)금리를 물리는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용 등급 1~2등급도 대부업체에서는 30%대 고금리를 내야 한다.
방송광고심의위원장을 지낸 김민기 숭실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대부업체들이, 급하면 택시를 타는 것처럼 대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로 합리화해서 시청자를 심리적으로 무장해제한다"면서 광고에 나오는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누구나 간편히 대출'이란 말은 곧 '지옥까지라도 가서 빌려간 돈 받아내겠다'는 뜻이고, 신용 등급 따지지 않는다는 얘기는 '넌 여기 아니면 돈 빌릴 데 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금융文盲 대한민국] [3] 신용불량자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또 실패 않으려면…
입력 : 2015.03.14 03:03
①信不者 탈출 알려라
②금융멘토 만들라
③카드한도 정하라
신용 불량자의 늪에서 빠져나왔지만, 다시 고금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 사람들도 많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최장 10년에 거쳐 채무조정을 진행해 신용 불량자 신분에서 탈출했지만, 다시 신용 불량 상태에 빠져 채무조정을 재신청한 사람이 1만3200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신불자들이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첫째, 신용 불량자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신불자들끼리 모임을 가지라는 것이다. 천규승 한국개발연구원 박사는 "신불자는 자신을 감시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변에서 자기를 간접적으로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며 "나아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모임을 통해 '내 편이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은행 등 금융기관의 금융전문가 중에서 '금융 멘토'를 한명 이상 만들고, 질문을 생활화해야 한다. 재무적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멘토에게 전화해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시중은행의 '희망금융플라자', 금융감독원 산하의 사회적기업 '이지론' 등에서 금융 멘토를 만날 수 있다.
셋째, 나만의 금융 설계 습관을 가져야 한다. 하나은행 희망금융플라자 허은숙 차장은 "체크카드를 생활화하고, 굳이 써야 한다면 신용카드는 한도를 50만원 선으로 정해두고 쓰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통장은 2~3개로 구분해서 소득 통장, 생활비 통장, 생활비로 쓰고 남은 소액 자금을 저축하는 일반 통장 등으로 나눠 관리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금융文盲 대한민국] [4] 빚 갚기보다 빨리 탕감해달라는 20대 信不者
입력 : 2015.03.17 03:01
72%, 연체 1년내 채무조정… 개인회생 신청도 가장 많아
고금리의 빚을 진 20대 신용불량자 10명 중 1명 이상은 3개 이상 금융회사에 빚을 진 다중(多重) 채무자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0대의 다중채무 비율은 12.2%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 30대 이상의 경우 이 비율은 6.3%로 20대의 절반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20대 신용불량자들이 고리의 빚을 쉽게 진 뒤 자기 힘으로 갚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빚을 탕감받으려는 모럴해저드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신용불량 상태에 빠진 20대 채무조정자는 1만1655명. 이 가운데 연체된 지 1년 내에 빚 탕감 등 채무조정을 신청한 비중은 72.6%에 달했다. 20대 신용불량자 10명 중 7명 이상이 빚을 스스로 갚지 못하게 되는 순간, 연체 이자와 원금부터 탕감받으려고 손을 벌리는 것이다. 이에 비해 30대는 연체 1년 이내 신청 비중이 54.5%, 40대는 44.8%, 50대는 42.0%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일자리를 찾지 못한 김모(26)씨는 일정한 수입이 없는데도 카드사, 저축은행, 대부업체를 차례로 이용하면서 30%대 고금리로 총 1000만원을 빌려 쓰다 이자를 갚지 못해 3개월 만에 신복위에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받는 매달 80만원 월급으로는 대출금을 갚기가 버거웠다"고 말했다. 법원의 '개인회생 신청자 현황'(2012년 기준)을 보면, 20대 신청자는 전체 신청자의 13.5%로, 50대(12.5%), 60대 이상(2.5%)보다 높다. 개인회생은 법원을 통해 금융권 빚은 물론 사채까지 탕감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갓 직장에 입사한 20대 개인회생 신청자가 많아지면서 개인회생 신청 전까지 평균 근무 기간도 2005년 62개월에서 2012년 32.5개월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직장에서 3년을 채 근무하지 않고, 법원을 찾아가 개인회생에 돌입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전문가들은 20대가 취업난, 저임금 등으로 인해 빌린 돈을 제대로 갚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일부 청년은 고금리의 무서움을 모른 채 빚을 내 과소비 습성을 유지하다가 빚을 갚기 힘들면 탕감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는 "금융 대출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한 기본적인 금융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채무조정한 20~30代 19% "부모 채무·보증·실직 때문"
지방 공무원인 A씨는 2012년 친척으로부터 "고향에 좋은 땅이 있는데 투자하면 몇 달 만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 가격이 크게 떨어져 낙심하던 그는 아파트로 잃은 돈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중에 돈도 없었고, 추가 대출을 받을 여력도 없었다. 궁리 끝에 그는 대학생이던 큰딸과 아들 이름으로 대부업체 여러 곳에서 총 1800만원을 빌려 땅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땅값이 오히려 떨어지는 바람에 빚은 고스란히 자녀들 몫이 됐다. 아들과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달 30만~40만원씩 이자를 갚아나갔지만 역부족이었다. 2년 넘게 빚으로 고생하다 이들은 서민금융지원 프로그램인 미소금융과 장학재단 등의 도움을 받아 고금리 대출을 겨우 정리했다. 하지만 학자금 대출을 포함해 아직도 각각 1000만원 넘는 빚을 떠안고 있다. 최근 대기업에 입사한 A씨의 아들(27)은 "아무리 부모 부탁이어도 무리한 것은 거절하는 게 결국은 부모님을 위한 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젊은이 가운데 과소비 등 본인 책임으로 인한 경제난(難) 외에 부모의 빚 때문에 이중고(二重苦)를 겪는 이들도 적지 않다. 본지가 신용회복위원회에 의뢰해 최근 채무조정을 받으러 온 20~30대 젊은이들의 부채 사유를 조사한 결과, 상담자 170명 중 19%인 33명이 부모와 관련 있는 사유로 빚을 지게 됐다고 답했다. 대부분은 부모의 실직이나 질병 등 부양 능력 부족 때문이었고, 부모의 채무를 대신 떠안거나 부모 보증을 섰다는 사람도 5명이었다.
신복위 관계자는 "아버지가 딸 몰래 학자금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했다가 딸이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도 봤다"며 "부모의 과중한 빚이나 금융지식 부족으로 자식의 인생까지 희생시키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代 젊은이가 위험하다]
대부업·저축銀서 빌린 비중 信不者 중 20代가 가장 많아
대학생 대출 연체율 11%
고금리 무서움 잘 모르고 금융 이해도·지식 떨어져
대출 사기, 60代의 3배 이상
부산에 사는 대학생 권모(24)씨는 기숙사비 때문에 2년 전 부산은행에서 연 10% 금리로 300만원을 대출받았고 매달 2만5000원씩 이자를 냈다. 권씨는 "대출 만기가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져 저축은행에서 연 29%로 300만원을 대출받아 은행 대출을 갚았다"고 말했다. 은행과 상의해 대출 만기를 연장할 수 있었지만, 저축은행의 돈을 빌려 은행 돈을 갚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로 월 75만원을 버는 권씨는 1년 뒤 저축은행 원리금 상환이 연체되자, 이번엔 대부업에서 연 39% 금리로 300만원을 추가 대출받았다. 결국 2년을 버티지 못하고 신불자가 됐다. 권씨는 "은행이나 저축은행이나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금융 무지(無知)로 잘못된 돈·부채 관리를 했던 대학생들이 빚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다. 한국갤럽이 최근 전국의 대학생 1548명, 초등학생 2146명의 금융 이해도를 조사한 결과, 대학생의 금융 이해도는 62.8점으로 초등학생의 66.7점보다 뒤떨어지는 황당한 결과가 나왔다. 금융 지식은 대학생들이 64.5점으로 초등학생(61.7점)보다 높지만, 실제 금융 관련 생활습관의 척도인 행위와 태도 부문에서 점수가 낮게 나왔기 때문이다. 대학생은 '원리금 계산' 등 산술적 지식을 묻는 항목에선 초등생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예산 수립 방법'이나 '합리적 비교 구매' 등에서는 초등생보다 점수가 떨어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초등학생들은 수입이 들어오면 대부분 저축하는 등 용돈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대학생들은 돈 관리에 미흡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의 일부 대학생이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 저축은행·대부업체의 대학생 대출을 통해 갚지 못한 연체금만 2283억원에 이른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에서 연 30% 넘는 고금리 대출을 사용하고 있는 대학생만 해도 6만명이 넘고, 대학생 대출 연체율은 11%에 육박한다.
◇20대 신불자, 대부업·저축은행 채무 비중 가장 높아
본지가 만난 신불자로 추락한 일부 대학생은 황당한 금융 실수를 저질러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신용등급은 고사하고, 10%와 30%대 이자의 차이점, 대출 원금과 원리금(원금+이자)의 차이점도 몰랐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신용불량 상태가 되어 채무조정을 신청한 20대는 1만1655명으로 전체 채무조정자의 4%다. 이들 20대의 금융 채무 현황을 보면, 연 30%대 금리로 대부업체·저축은행 같은 제2 금융권 회사에서 돈을 빌린 비중은 49.4%로 30대(41.7%), 40대(39.2%), 50대(40.3%) 등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반면에 20대 채무조정 신청자가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은행 채무를 진 비중은 12.8%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신복위 관계자는 "고금리 대출에 시달려 일부 채무를 탕감받으려는 20대들이 매년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대들은 소득이 없거나, 취직이 잘 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높은 신용등급을 요구하는 은행 돈을 빌려 쓰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재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고금리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등 금융에 대한 지식과 소양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사회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실제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사이트 조사로는, 평균 1500여만원의 빚을 진 채 사회에 나온다. 한국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하루에 이자 '2만~3만원만 갚으면 된다'는 금융기관의 설득에 쉽게 돈을 빌렸다가, 나중에 갚아야 하는 원금의 액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20대 대학생 신불자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고령층보다 더 대출 사기에 취약한 20대
금감원이 최근 조사한 대학생들의 월평균 용돈(아르바이트 소득 포함)은 32만4000원이지만, 실제로는 씀씀이가 100만원을 웃도는 대학생이 상당수에 이른다.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최근 병원에 취직한 김모(25)씨는 고교 3학년 때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료의 권유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김씨는 "카드를 손에 쥐니 화려한 옷과 화장품에 이성을 잃었다"고 했다. 화장품과 옷 구매에만 한 달에 70만~80만원씩 썼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버릇을 못 고쳤다.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가 30만원이 넘자 저축은행은 물론, 부모와 친구, 심지어 담당 교수에게까지 손을 벌렸다. 대학 생활 3년 동안 낸 이자를 모두 합치니 1000만원. 대출 원금(500만원)의 2배에 달했다. 김씨는 "최근 취직한 직장에서 받는 월급도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고 말했다. 씀씀이가 큰 20대들은 대출 사기에 쉽게 노출돼 있다. 금감원의 최근 3년간 대출 사기 현황을 보면 20대 사고 건수는 6837건으로, 60대 이상(2171건)의 3배가 넘는다.
[금융文盲 대한민국] 금융 안 가르치는 公교육… 信不者 90% "학교서 배웠더라면"
입력 : 2015.03.18 03:04 | 수정 : 2015.03.18 03:16
[5·끝] 금융교육의 不在
중학교 사회의 금융 부문, 1년에 3시간 정도만 배워
작년 수능 사회탐구 영역 '경제' 택한 비중은 2.7%뿐
민간 금융 교육 찾는 학생, 초·중·고교생 중 1% 불과
토요일인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 강의실이 '주말 어린이 금융 교실'에 참석한 초등학생들의 목소리로 왁자지껄했다.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딴청을 피우는 어린이들보다 강사 이야기에 더 쫑긋 귀를 세운 것은 학부모들이었다. 새벽부터 의정부에서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자녀 둘을 데리고 온 홍성의(36)씨도 그중 한 명이다. "제가 어릴 때 금융 교육을 전혀 못 받았거든요. 결혼하고 나서야 금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요.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무지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 열심히 찾아다니며 가르치고 있죠."
- ▲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 금융투자체험관에서 14일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어린이 금융 교실’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태블릿PC를 들고 금융 교육 체험 학습을 하고 있다. 여러 학부모는 “학교 금융 교육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민간 금융 교육 현장을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학교에서 찬밥 대접받는 금융 교육
대학 진학률, 학업 성취도, 지능 지수 등 '지능'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한국이 유독 금융에서만큼은 '문맹(文盲)'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교육 부재(不在)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본지가 인터뷰한 신용불량자들도 한결같이 "금융에 대해서 일찍 배웠더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한국개발원(KDI) 천규승 박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저축률 30%가 넘는 금융 역량 최강국이었던 한국이 지금은 빚에 허덕이는 국가가 된 이유는 금융 패러다임이 저축에서 투자와 신용 중심으로 급속하게 바뀌었지만 소비자들의 지식과 행동은 이를 못 따라갔기 때문"이라면서 "사회생활의 80%가 경제생활이고, 이 중 절반가량이 금융과 관련돼 있는데도 학교 교육에서 금융은 철저히 소외돼 있다"고 말했다.
◇수능 중심으로 금융 교육은 뒷전
결국 금융 교육에 목마른 학부모들은 시민단체나 금융회사들이 여는 금융 교실을 애타게 찾아다니지만, 이 역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모두 역부족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금융 교육을 하는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는 지난해 560개 학교에서 8만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다. 우리나라 전체 초·중·고등학생 636만명의 1.2%에 불과하다. 오흥선 사무국장은 "일반 고교에서 금융 강의를 하려고 하면 교사들조차 '수능에도 안 나오는데 뭐 하러 배우느냐'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면서 "학생들이 지구의 둘레는 달달 외우면서 정작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금융 지식은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풍조 때문에 수능에서도 금융을 포함한 경제 과목은 찬밥 대접을 면치 못한다. 2015년 수능에서 '경제' 과목을 택한 학생은 전체 사회탐구 영역 응시자의 2.7%인 9000여명에 불과했다. 세계지리(3만9580명), 동아시아사(3만5637만명)를 택한 학생보다도 적은 숫자다.
[금융文盲 대한민국] 빚 탕감으로 땜질 처방한 정부, 信不者 연체액은 오히려 급증
223만명에 20兆 쏟아붓고도 信不者 수는 17만명만 줄어
본지 설문조사에 응한 신용불량자·은행원·회사원 10명 중 9명가량은 "미리 금융에 대해 배웠더라면, 금융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줄일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금융 교육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좀처럼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다.그동안 정부는 신불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면 예산을 투입해 탕감해주는 식의 땜질 처방을 해왔지만, 대대적으로 금융 지식·소양에 대해 가르칠 생각을 못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2002년대 카드 대란 이후 발생한 400여만명의 신용불량자 연체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줄여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서민 금융'을 내세워, 미소금융·햇살론·바꿔드림론 등 5~10% 안팎의 저금리 대출을 확대했다. 2008년부터 작년까지 정부는 223만명에게 20조1657억원을 쏟아부었고, 신용회복위원회·국민행복기금 같은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146만명을 지원했다. 그럼에도 신용불량자 숫자는 2011년 125만명에서 2014년 108만명으로, 3년간 17만명밖에 줄지 않았다. 신용불량자의 1인당 연체 금액은 오히려 2010년 8333만원에서 2014년 1억2592만원으로 급증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비공식적인 신불자 숫자까지 합하면 최소 300만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근시안적인 신불자 처방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2004년에 도입된 법원의 개인 회생 신청자는 2010년 4만6972명에서 지난해 11만명을 돌파하면서 증가율이 135%에 달했다. 의도적으로 대출을 일으켜 재산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숨긴 다음 개인 회생을 신청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저축은행 80개의 신용 대출 연체 금액은 7323억원으로, 이 가운데 60%인 4393억원이 개인 회생 부실 채권으로 분류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실제 직업이 의사인데 아르바이트생으로 꾸며 개인 회생을 신청하는 등 모럴 헤저드성 신청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는 "우리나라 국민 중 '정부가 나의 빚을 해결해주지 않을까'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며 "포퓰리즘적인 부채 탕감 정책을 확대하기보다는 선진국처럼 어렸을 때부터 금융을 배워 스스로 부채를 책임지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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