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일취월장7 2015. 2. 11. 17:11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김윤태 칼럼] 영국과 스웨덴의 복지정치 비교하기

김윤태 고려대학교 교수(사회학) 2015.02.09 11:05:44

 
다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논쟁이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모든 복지제도는 대중의 지지가 필요하다. 특정한 복지제도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정당의 선거 전략과 정부 정책에 영향을 준다. 대중적인 여론의 지지는 급진적인 개혁과 가혹한 복지축소에 맞서 복지국가를 보호하는 주요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이다. 정당 정책이 여론의 흐름에 따라 큰 영향을 받듯이 여론과 복지국가는 쌍방향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정부의 정책과 복지국가의 제도적 발전은 복지국가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한다. 동시에 복지국가에 대한 여론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일 때 친복지적인 정책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길, 스웨덴의 길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영국과 스웨덴에서 동일한 이념 성향의 중도보수 정부가 집권했지만 정책 방향은 매우 달랐다. 캐머런과 라인펠트는 젊은 정치인으로 서로 친밀한 사이임을 과시했지만, 정책 기조는 매우 달랐다. 2010년 총선에서 승리한 영국의 보수당-자유민주당 연정은 집권 첫 해부터 '긴축'을 정책 기조로 정했다. 반면에 스웨덴에서는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온건당 주도 중도우파 연정이 집권했지만, 세계금융위기 이후에 오히려 복지재정을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가?  

무엇보다도 영국과 스웨덴 국민의 복지태도는 두 나라 중도우파 정부의 복지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주기적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당은 대중의 생각과 동떨어진 정책을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상이한 복지제도와 대중의 복지태도가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볼 수 있듯이 복지혜택의 범위가 좁고 급여와 서비스의 수준이 낮은 선별적 복지는 부정적 복지태도와 상관관계가 높다. 반면에 복지혜택의 적용 대상이 광범하고 복지 수준이 관대한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는 긍정적 복지 태도와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최근 복지태도를 주제로 하여 조사가 이루어진 유럽사회조사(European Social Survey) 2008년 자료와 국제사회조사(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 ISSP) 2009년 자료를 보면 흥미 있는 결과가 드러난다. 

먼저 유럽사회조사 자료를 보면, 영국에서도 노인의 생활수준과 환자를 위한 보건의 정부 책임을 지지하는 의견은 스웨덴보다 높았다. 그러나 실업자의 생활수준 보장과 일하는 부모를 위한 아동 돌봄 서비스에 대한 지지도는 상당히 낮았다. 또한 증세와 복지 확대에 대한 지지도 낮았다. 이러한 결과는 캐머런 총리가 왜 실업자에 대해서 강력한 복지축소를 추진하는 반면에, 노령유족과 상병의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반면에 스웨덴 국민이 영국 국민보다 복지 급여와 서비스의 빈곤 예방과 불평등의 완화, 일과 가정 균형에 대해 더 많이 지지한다. 영국 국민은 스웨덴 국민보다 복지 급여와 서비스가 경제에 부담을 주고,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며, 대다수 실업자들이 구직 활동 대신 복지에 의존하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영국의 보수-자민 연정이 급격한 복지 축소를 시도하면서 주로 저소득층에 대한 자산조사형 급여의 삭감을 밀어붙이는 이유이다.   

왜 영국 사람들은 빈곤층 지원을 반대하는가? 

비록 영국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보다 먼저 복지국가를 만들었지만, 현재는 가장 빈곤율이 높은 나라이다. 1980년대 대처 총리가 자산조사를 통한 선별적 복지를 대거 도입하면서 소득격차에 따른 불평등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영국 국민은 빈곤층을 지원한 복지에 인색하다. 왜 그럴까? 

2009년 국제사회조사(ISSP) 자료에서 영국과 스웨덴의 차이가 발견된다. 먼저, 소득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보면, 영국과 스웨덴 국민들의 차이가 별로 없다. 두 나라에서 모두 소득 불평등이 지나치게 높다는데 대체로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의 완화에 대한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층에 대한 높은 소득세율 인상에 대한 지지는 오히려 영국에서 약간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영국에서 실업과 빈곤에 대한 인식은 스웨덴보다 매우 부정적이다. 영국 국민들은 불평등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스웨덴 국민만큼 경각심을 가지고 있으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에도 우호적이지만, 실업자와 빈곤층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빈곤층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영국인의 복지태도는 주로 실업자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조사형 급여의 비중이 높은 영국에서 중산층과 저소득층 사이에 복지 혜택의 분절이 뚜렷하게 발생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중산층은 자신이 낸 세금으로 빈곤층을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최근 <영국 사회태도 조사>(British Social Attitudes Survey)를 보면, 1997년 이후 블레어 정부가 집권한 기간에 증세와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영국 국민의 비율은 60% 수준에서 30%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다. 복지 급여의 삭감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0% 선에서 40% 선으로 하락했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비율도 50% 선에서 30% 선으로 낮아졌다. 반대로 같은 기간 실업 급여의 수준이 너무 높아 근로 의욕을 저해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0% 선에서 60% 선까지 높아졌다. 80%가 넘는 영국 국민이 다수의 부정 수급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노동계급과 노동당 지지자들의 실업과 빈곤에 대한 인식도 매우 나빠졌다. 반면 95%가 넘는 영국 국민은 여전히 정부가 적절한 연금과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제공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복지태도의 분절과 전반적인 여론의 악화는 근로윤리를 강조하며 근로연계복지(workfare)와 빈곤층만 겨냥한 표적화(targeting)를 통한 자산조사형 급여를 강조했던 블레어 정부가 만들어 낸 정치적 결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티트머스가 지적했듯이, 선별적 복지가 빈곤층에 대한 스티그마와 낙인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왜 스웨덴 사람들은 복지국가를 지지하는가? 

영국과 달리 스웨덴의 중산층은 여전히 국가가 제공하는 폭넓은 복지 혜택을 받고 있으며, 복지국가의 축소를 지지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 2010년에는 전체 16~64세 스웨덴 인구의 54%에 해당하는 320만 여 명의 인구가 아동 가족 급여, 건강 급여 또는 장애 수당의 혜택을 받았다. 스웨덴 국민들은 상당히 많은 세금을 내지만, 중위소득에 해당하는 가구도 직접적인 현금급여로 연간 4만 크로나(약 5백~6백만 원에 해당)에 가까운 복지혜택을 받는다. 여기에 우수한 질의 보육, 교육, 간병 서비스를 큰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보편성은 전체 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와 서재욱이 출간한 '금융위기 이후 영국과 스웨덴의 복지정책의 변화' 논문(<유럽연구> 32권 4호, 2014년 12월)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스웨덴의 중위소득자의 생애 평균 소득에 대한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55.6%에 이른다. 중위소득의 0.5배, 1.5배 소득자 연금의 소득 대체율도 각각 70.2%, 67.9%로 중산층이 많은 혜택을 받는다. 반면 영국 중위소득자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37.9%로 매우 낮다. 중위소득의 0.5배, 1.5배 소득자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55.8%, 22.5%에 불과하다. 중위소득 0.5배 소득자의 소득 대체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71.0%)보다 낮지만, 중위소득자와 중위소득 1.5배 소득자의 소득 대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각각 57.9%, 48.4%)에 훨씬 낮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당(SDP)에 이어 온건당 주도 연정의 집권을 거치면서 영국과는 반대로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복지태도가 증가하였다. 보건의료와 노령연금과 아동가족 지원, 중등교육 뿐 아니라 공공부조, 고용정책에 대한 지지도 높아졌다. 스웨덴 사회학자 스바포르스의 연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0년 사이에 공공부조를 위해 세금을 더 납부하겠다는 의견은 25%에서 40%로, 고용정책을 위해 세금을 더 납부하겠다는 의견은 31%에서 54%로 증가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동안 꾸준히 공급 측면의 실업 대책이 강화되고, 공공부문 내부의 경쟁이 강화되고, 사회서비스의 민영화가 확대되었지만, 복지국가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강력하다.  

사회민주당은 2006년과 2010년 총선에서 연달아 패배하였지만, 중도우파 진영까지 복지국가에 대한 지지로 선회하여 사실상 중산층이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가진 복지국가에 이념적으로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총선에서는 사회민주당과 온건당은 모두 증세와 복지의 질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 이유 

보편적 복지가 장기적으로 국민들의 복지태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선별적 복지는 전체 인구의 자산조사를 해야 하며, 복잡한 수급 조건 때문에 행정 비용도 많이 지출한다. 복지 사각지대, 부정수급, 복지의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선별적 복지는 직접세 납세자와 복지 수혜자가 다르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는 중산층의 불만이 누적된다. 중산층은 자신이 납부한 세금에 비해 제대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반면에 보편적 복지는 납세자와 수혜자를 통합하고, 기여를 통해 혜택을 받는다는 원칙을 통해 모든 국민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영국에서 보편적 복지의 원칙으로 운영되는 국민보건서비스(NHS)와 노령연금에 대한 지지가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복지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동시에 대중의 정치적 지지도 중시해야 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복지제도는 단기적으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도,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복지제도가 장기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바로 모든 국민에게 공짜로 현금을 나눠주는 '무상복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의 기본 원칙은 기여를 통한 혜택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스웨덴의 전체 고용률과 여성 고용률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동시에 저임금 근로자의 비율은 가장 낮다. 이 점은 좋은 일자리가 보편적 복지국가의 기본 전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제친화적 복지국가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완전고용을 이루는 동시에 기여를 통한 혜택이라는 원칙이 보편적 복지의 핵심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복지 논쟁, 다가오는 권력의 운명 정한다"

[시민정치시평] 기만적인 복지 과잉론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2015.02.11 15:54:52

정치인의 말은 늘 논란을 몰고 다닌다. 별거 아닌 말도 정치인의 입에 오르면 구설수, 막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치인의 한 마디가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최근 새롭게 불거진 복지 논란은 개헌론과 함께 2015년 정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듯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포문을 열었다. 국회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는 나 홀로 대통령을 두고 무책임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말을 두고 여당도 이제는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6일 전국 최고경영자연찬회에서 행한 그의 발언은 이런 기대를 무너뜨렸다. 복지 과잉을 비판하면서 복지 축소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게 한 건 다음 말이다.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질세라 대통령은 증세를 "국민 배신"으로 규정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을 재천명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개편안에 다시 손댄다고 하니, 바야흐로 '복지 언어'의 과잉이다. 

복지에 대한 청와대, 여당의 발언은 자가당착적이다. 지난 대선 경제민주화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었고,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약은 거짓이었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한 박근혜 정부가 이제 와서 복지 운운하는 것 자체가 희극적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허상만 좇는 정부는 계속 우리를 기만하고 있다. 언제고 복지 확대 의향이 있지만, 재정 적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 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처럼 시늉일 뿐이다. 두 손으로 민낯을 가리고 있다. 청와대, 여당의 복지 정책은 한결같았다. 철저히 복지 축소 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김무성의 발언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청와대, 여당이 선별적 복지를 선호하는 것은 맞지만, 어떤 방향으로 복지문제를 해결할지 오리무중이다.

선별적 복지는 선별된 대상자에게 복지 정책을 시행하자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말이다.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 굳이 복지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 복지를 해야 하는가"라는 반문에는 필요 없는 사람에게 굳이 복지 혜택을 주어야 하느냐는 수사로 들린다. 선별의 문제를 앞세우면 자연스럽게 효율성과 결합된다. 하지만 문자 상의 의미로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면 문제의 핵심을 놓친다. 지금 청와대, 여당의 주된 관심사는 "세금을 올릴 것인지"다. 이 문제는 정책 이전의 정치다. 세금을 걷지 않고 복지 확대가 가능하다면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선 증세는 결코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다. 선별적 복지를 거론하는 것도 표심을 건드리지 않고 쉽게 문제 해결하자는 꼼수에서 출발한다. 

여당의 시각에서 복지는 근본적으로 시혜의 일종이다. 부자에게 필요 없지만 가난한 약자에게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한다. 반대 입장과 확연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증세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사람들은 복지를 삶과 밀착시켜 생각한다. 복지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라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명 청와대, 여당의 입장은 전자에 가깝다. 복지 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에 민감하고 거부감까지 표명하는 데는 증세가 부자에게 더 많은 짐을 지운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기에는 보수 진영 특유의 철학이 있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가장 중요한 정치 원리로 받아들인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마땅히 그 결과를 승복해야 한다. 결국 복지는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다. 김무성의 발언은 이런 철학에서 해석하면 나름 아주 일관성이 있다. 부자들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는 만큼 복지가 필요 없고, 단지 가난한 사람에게 합당한 최소 정도의 선별적 복지 정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복지 과잉이 나태를 불러온다는 것도 자기 책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선별적 복지의 목표는 숫자상으로 평균점을 달성하는 것이고, 그것이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 방안이다. 

이런 생각은 반시대적이다. 국민의 정서와 현격한 차이가 난다. 한국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서민증세에는 반대하고 있지만 부자 증세에는 70% 이상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가속화되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반영하는 지표이다. 표면적으로 우리 사회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한 걸음 나아가면 자기 선택과 책임, 성공의 신화를 강조하면서도 서민에게 책임을 떠안기는 여당의 국가관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개인의 책임만큼 상호 배려, 공동체의 책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불의에 대한 공감에는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긍정적인 비전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아직 눈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닌데"라는 느낌이 잠자고 있는 것이다. 

왜 복지가 과잉이라고 외치는가? 

그러기에 더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다. 여당이 민심을 거스르면서까지 복지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년 선거 표심을 생각하면 불가능한데도 묘한 언사로 우리 심기를 건드리는 이유는? 이에 대한 대답은 정치인의 계산된 말에 있다.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거부, 그럼에도 복지 과잉의 경계라는 말에는 여당 진영의 논리와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 무릇 말의 진실은 부지부식 간에 드러난다. 2월 6일 새누리당 당청 관련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와 친박 서청원 의원이 의미심장한 한 목소리를 냈다. 김무성은 "우리 새누리당은 대통령과 정부의 튼튼한 지원군이 돼야 하고 그걸 최우선 행동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 한다"며 당청의 '공동운명체'를 거론했다. 이 말을 되받은 서청원은 "천번 만번 공감"가는 말이라며 "이제 어려운 문제는 완급조절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집권당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정부와 뜻도 함께하고 책임도 함께 나눠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시 불거진 복지 논란은 국정 운영 주도권 싸움의 전초전이다. 선거 전에 난제를 털고 가자는 큰 그림이 깔려 있다. 복지 논란을 통해 정국의 재편과 이슈의 선점이라는 이중전략이 깔려 있다. 내년엔 유권자의 민감 사안을 건드릴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작동하고 있다. 누구도 이런 속내를 모를 리 없다. 문제는 여당의 선별적 복지에 대적할 대안 논리가 부실하다는 데 있다. 시민의 판단을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복지 문제를 정치화해야 한다. 논란이 깊을수록 논제의 합리성을 키우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대안이 부재할 경우 정치적 계략이 앞선다. 이슈에 대한 대안을 보여 전략이 아닌 정치 비전의 차이를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계략에는 늘 기만이 상존한다. 현 상황의 진짜 문제는 구체적 행동보다 반복된 말잔치가 앞선다는 점이다. 9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새 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조속한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당권 이후 후유증으로 어떤 대안이 나올지 미지수다. 바로 여기에 깊은 함정이 있다. 합리적 대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보이지 않으면 또 정치판은 기만적인 말로 시민을 현혹할 것이다. 고도로 계산된 정치인의 말에 속아가는 우리 자신을 볼 뿐이다.

정치의 생명은 타이밍이다. 복지 정책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자꾸 깊어지는 불평등의 골을 메우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만다. 골든타임은 변혁을 요구한다. 시대의 사명을 읽지 못하면 변화의 시간은 오지 않는다. 증세 메시지의 핵심은? 증세 문제가 단순히 정책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 과정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이유는? 해가 지면 또 다른 해가 뜨는 법. 증세 논란과 함께 복지 논쟁은 다가오는 권력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분명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앞지르는 지지율에 고무되어 있는 듯하다. 시민의 입장에선 정치인의 기만에 당하지 않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2015년 한국경제 최악의 시나리오
김성훈  | 등록:2014-12-23 15:00:39 | 최종:2014-12-24 09:24: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80년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부상했던 한국경제가 난파 직전이다. 한국인의 부유함을 상징하던 3대 신화가 모조리 무너지고 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조선, 자동차로 세계를 주름잡던 수출 신화, 가격이 내려갈 줄 몰랐던 부동산 불패신화가 붕괴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책임져 왔던 정규직과 공무원 등 ‘철밥통’ 신화도 올해로 막을 내린다. 이제 국민들은 서민과 부자를 가릴 것 없이 나라 안에서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는 난민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3대 신화가 무너진 자리를 대신할 것은 실업 대란, 노숙 대란, 자살 대란의 3대 대란이다.


1. 2류로 전락하는 삼성

한국경제의 수난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삼성의 신세다. 무엇보다 삼성그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올해 3/4분기 4조 1000억원대로 폭락했다. 딱 일 년 전인 2013년 3/4분기 10조 1600억 원에 비해 60%나 감소한 것이다. 원인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세계 경제 불황이 깊어지니 비싼 삼성 스마트폰 대신 저렴한 다른 업체의 스마트폰이나 일반 핸드폰을 선택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삼성전자가 아이폰으로 상징되는 애플, 안드로이드로 상징되는 구글의 혁신력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당장 무리다. 게다가 레노버,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추격도 엄청난 부담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세계 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처음으로 레노버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삼성전자는 다른 제품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동아프리카 지역에 이어 최근 유럽 시장에서 노트북PC 판매를 완전 중단했다. 실적이 부진한 PC 사업을 지역별로 정리한 것이다. 그렇다고 기본적으로 박리다매 구조인 반도체 사업이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위기가 장기화된다면 지금까지 삼성전자를 지탱해 온 고급 기술 인력이 대거 이탈할 것이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만년 2류, 3류 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이러한 점에서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정보기술모바일 부문 임직원 수를 400명가량 줄인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한 차장은 “실적이 계속 떨어지자 동료들 사이에 ‘올 연말쯤 희망퇴직을 받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인력 이탈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삼성그룹은 1997년 IMF사태 이후 18년만에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삼성그룹은 석유화학과 방위산업 부문 4개 계열사를 통째로 팔아넘기고 삼성테크윈의 경남 창원 CCTV 생산 공장을 아예 폐쇄한다고 밝혔다. 해고도 가속화되고 있다. 수천억 원대의 부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중공업, 삼성물산이 희망퇴직을 벌였으며, 삼성생명·삼성증권 등 금융 관련 계열사는 이미 지난 4월 희망퇴직을 실시해 임직원 13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삼성그룹이 진행하는 구조조정의 특징은 전형적인 ‘수비형’ 구조조정이다. 신규 투자를 과감히 늘리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이 나지 않는 계열사를 팔고 인력을 해고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것도 구조조정을 확대하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자금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차기 전략과 관련하여 이재용과 이서현, 이부진 사이에 다툼이 발생할 경우 외국자본이 개입한 분쟁으로 확대되어 삼성그룹이 갈가리 찢겨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2월 17일 삼성그룹 사장단이 남극 탐험가를 불러 그의 경험을 경청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남극 세종기지 대장 등을 맡았던 윤호일 박사는 남극 탐험 경험을 이야기 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에 대해 강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무너진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2. 무너지는 수출 신화

재벌 2위인 현대차도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일본의 닛산, 독일의 베엠베(BMW), 미국의 테슬라에 밀려 차세대 개발 경쟁에서 한참 뒤쳐지고 있다. 게다가 현대차는 기존 차량의 국내 판매에서도 유럽산 외제차에 점차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수입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그동안 빠르게 늘어 2014년에 15%를 넘어섰다.

한국의 10위 수출 상대국인 러시아 경제가 석유가격 하락으로 혼란에 빠진 상황도 수출에 악재로 작용한다. 러시아 경제가 장기간 어려워지면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와 전자업계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과 현대차가 직격탄을 맞는 셈이다. 조학희 무역협회 전략시장연구실장은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가하락과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단기간에 좋아질 상황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삼성과 현대차의 처지는 한국경제가 처한 심각한 샌드위치 신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최고 수준의 업체가 가지는 기술력은 따라가지 못하고, 중국 등 후발주자들에게 가격경쟁력과 기술에서 모두 맹추격당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0년을 기준으로 중국 제조업체들의 기술 수준은 한국 업체들과 시간적으로 고작 1.1년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2014년 2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중국 IT기업이 낙후됐다고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라며 “(중국 기업보다) 굼뜨면 죽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 바 있다.

수출을 둘러싼 2015년 대외 여건이 사상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다른 업종의 대표 기업들 사정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의 경기가 조금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유럽과 일본, 중국 등 내로라하는 경제권의 내년 전망이 모두 어둡다. 게다가 당장 국제 석유가격의 하락이 수출에 미칠 악영향이 매우 크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시작된 석유가격 하락은 석유를 수출하는 중동지역 국가들의 수입을 줄여 중동지역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나 석유 시설 투자에 차질을 빚게 한다. 일례로 2014년 2/4분기 6조8000억원을 기록했던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등 국내 6개 대형 건설업체의 해외 수주 실적이 4/4분기의 경우 12월 15일 현재 겨우 7000억원에 그쳐 무려 90% 가까이 줄었다. 해양플랜트 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에서 해양플랜트 수주를 담당하는 서재관 영업 3팀장은 “미국 셰브론 등 오일 메이저들이 발주하는 대규모 부유식 원유시추저장설비와 드릴십 등 해양플랜트 수주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 아베 정권이 압승을 거두고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아베정권은 한국 기업들과 미국 등지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환율을 고의로 높이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당국이 엔과 달러 등에 대한 환율 조정에 나선다고 해도, 아베노믹스는 가뜩이나 어두운 수출 전망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 상태로 아무리 박근혜 정권이 FTA를 추진해봐야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마치 100만년만의 가뭄으로 농사지을 땅이 다 말라붙었는데 우물 하나 파서 해결하겠다는 형국이다. 수출길이 막히기 시작하면 대기업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대응하고 하청 기업들은 줄도산 할 수밖에 없다. IMF 위기 당시 150만 실업 대란을 능가할 수도 있다. 한강다리에 자살자는 넘쳐나고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은 모두 떠나며 우리가 중국으로 가서 일해야 할 판국이 펼쳐진다면 어떨까. 한국의 수출 신화도 종언을 고하고 있다.


3. 막 내린 부동산 불패신화

한국인의 부를 상징해 온 또 다른 신화인 부동산 불패신화도 막을 내리고 있다. 부동산 불패신화란 다름 아닌 부동산 가격 거품을 말한다. 한국 주요 도시의 아파트 가격은 이미 일반 국민이 자기 돈 주고 살 수 있는 수준을 넘은 지 오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자료에 의하면, 월 소득 300~400만원 가구가 생활에 필요한 소비를 하며 빚 없이 저축만으로 서울 평균가격 아파트를 구매하려면 무려 64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26살에 취직을 한 동갑내기 남녀가 결혼 후 90살이 되어야 집을 살 수 있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빚을 낼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불가능하다. 전체 가계부채가 1000조를 훌쩍 넘은 지 오래다. 게다가 소득보다 빚 갚는 돈이 더 빨리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이후 가계 평균 소득이 26%가량 늘어나는 동안 빚 원금과 이자를 갚는 비용은 무려 42.2%나 증가했다. 특히 소득 상위 40%를 제외한 중산층 이하 자영업자들은 처분 가능한 소득의 40% 이상을 빚 갚는데 쓰고 있어 사실상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다.

빚으로 유지되는 중대형 아파트 가격은 추락할 일만 남았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부동산 부양 대책을 무려 7차례나 내놓았지만 효과가 없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한마디로 “빚내서 집사라”였다. 그런데 2009년 이후 서울 시내에서 집주인이 팔려고 내놓은 아파트 가격(매도호가)이 가장 비싼 상위 10개 자치구의 평균 가격은 적게는 5%, 많게는 16%가량 떨어졌다. 집주인이 팔려고 내놓은 가격이 이만큼 떨어졌으니, 급매물을 포함해 실제 거래된 가격은 더 많이 떨어졌을 것이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수도권에서 미분양 된 30평 이상 중대형 아파트를 1억 원 이상 분양가를 할인하여 판매하는 현상, 그리고 아파트 중도금을 대출했을 때 이자를 대신 내주는 특혜를 제공하는 많은 사례들은 건설사들의 운명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금리를 2015년 하반기부터 점차 인상하기 시작해 더 이상 빚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 경우 아파트 가격은 폭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부동산 담보 대출은 제2은행권을 포함해 무려 5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일부가 집을 팔아 빚을 갚아야할 처지에 몰리면 아파트 가격 폭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상당수 아파트는 법정 경매에 넘어가고,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길바닥에 나 앉아야 한다. 영세 상인들도 들어갈 집이 없어 점포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할 것이며 아이들은 트럭에서 숙제하고 자는 눈뜨고는 못 볼 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이러한 참상은 2008년 이후 미국사회에 실제 만연한 현상이었다. 이는 분명 우울한 예상이지만, 이미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된 실현 가능성이 높은 예상 시나리오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든 부동산 경기를 부양해 보려고 계속 시도할 것이다. 이미 새해가 오기도 전에 박근혜 정부는 8번째 부양책을 예고하고 있다.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나오는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제도의 시행을 늦추고, 아파트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한 분양가 상한제를 일부 조정해 건설사들과 집부자들의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양책은 오히려 부동산 가격 거품을 더 부풀려 집 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집을 더 사기 어렵게 만드는 황당하고 모순된 정책일 뿐이다.

8번째 부양책은 정부당국이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부동산 부양책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당시 시행된 부동산관련 규제가 모두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통해 부동산 거품을 유지해보려 하겠지만 대세를 막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4. 중규직 도입으로 막 내릴 철밥통 신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늘어난 가운데, 그나마 고용 안정을 유지하던 대기업 노동자들과 공무원들의 이른바 ‘철밥통’신화도 올해로 막을 내리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중규직’ 논란은 정규직의 심각한 고용 불안을 예고하고 있다. <머니투데이>보도에 의하면, ‘중규직’은 “해고 요건 등은 정규직보다 낮되 근로자에 대한 처우는 비정규직보다 높은” 고용 형태다.

중규직 도입은 2015년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방향 중 핵심적인 정책으로 보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모두 발언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거론하며 “구조개혁은 멀고도 험난하지만, 꼭 가야 하는 길”이라 강조했다. 최 부총리가 말하는 노동시장 개혁이 바로 중규직 도입이다. 실제로 11월 24일 기획재정부 핵심관계자가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하더니 다음 날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뽑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발언한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때마침 시작된 삼성 이하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은 정부 입장에서 보았을 때 중규직을 도입하기에 가장 좋은 상황이 조성되었다. 2015년 신규 채용인사부터 ‘중규직’형태를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가 2015년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금융산업의 역동성을 제고해 금융과 실물 분야간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도록 하겠다”는 내용도 의미심장하다. 정부가 솔선수범한답시고 공무원부터 정년이 보장된 일반직 공무원의 공개채용을 줄이고 정년이 없는 별정직 등을 광범위하게 도입하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럴 경우 노량진을 가득 매운 공무원 고시생들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잃게 된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예고한 대로 공무원 연금 개악을 강행하려 한다. 정부당국은 이미 8월 2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확정 발표한 바 있다.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이후 2022년까지 모든 사업장의 퇴직연금 의무화를 추진하는 한편, 퇴직연금 자산운용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대책의 주요 골자였다. 이는 곧 공무원 연금을 정부가 책임지는 대신 민간 금융기관으로 넘기겠다는, 연금 민영화 방안이다.

최 부총리의 모두발언은 박근혜 정부가 금융권의 먹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2016년부터 시행하려던 공무원 연금 민영화 정책을 내년으로 앞당기겠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안대로 공무원 연금이 운용되면 공무원 연금은 국민연금과 같은 ‘용돈’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연금만 믿고 박봉에 장시간 노동을 버티고 있는 대다수 공무원들, 그리고 이미 몇 년씩 공부해 임용에 합격해도 발령을 못 받아 노량진 고시촌을 벗어날 수 없는 많은 합격생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1~2시간짜리 알바, 4~6시간짜리 알바를 하루에 두 세 개씩 전전하며 최저임금도 못 받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정규직마저 사라지고 중규직을 채우게 되면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국민 모두가 평생 이 일 저 일 옮겨 다니면서 직장을 찾아 헤매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5. 실업, 노숙, 자살 대란 닥치나?

이처럼 수출 신화, 부동산 불패신화, 철밥통 신화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것은 결코 최악을 가정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이미 많은 언론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2015년 한국경제의 총체적 난국이 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내년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국민들 대부분이 난민 신세와 다름없는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책은 작년, 재작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 지출을 10~20조 더 늘리고, 상반기에 지출을 좀 더 집중시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내년 경기 전망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보니 담배값 인상과 같은 서민 호주머니 터는 방식으로 세금 수입을 확보하려 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확보한 세수가 국민들에게 고용 안전망 확충과 복지혜택과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국 226개 기초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중앙 정부가 떠넘긴 복지 지출 때문에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며 대책마련을 촉구해도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항으로 기초노령연금이 기초연금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지방비 부담액은 올해만 70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지도 않으면서 미국 무기 구매에는 여전히 혈안이다. 박근혜 정부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 엔진 결함으로 불이 난 F-35를 7조3000억원을 들여 구매했다. 스텔스 기능이 그토록 중요하다며 미국 록히드마틴을 협상 대상자로 선정했으면서도 정작 스텔스 기술은 넘겨받지도 못했다. 게다가 2009년 6월 4862억원 수준이었던 미국제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를 2014년에 약 7200억원이나 되는 가격으로 덜컥 구매하기도 했다. 연간 3000억 원에 달하는 글로벌 호크의 운영유지비용은 앞으로 어떻게 마련할지 궁금할 뿐이다.

<한겨레> 김의겸 기자는 이러한 정부의 행태에 대해 “경차인 스파크 가격이 요즘 1200만원 정도 한다. 이거 하나 장만하는 데도 요모조모 다 따져본다. 계약을 했더라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불이 났다는 보도가 나면 해지하려 들 것”이라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를 보면 복지 예산이 부족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미국 줄 돈은 있어도 국민 줄 돈은 없다는 뜻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가 지금과 같이 무대책, 무책임으로 일관한다면 실업 대란, 노숙자 대란, 자살 대란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나라를 등지고 이민 가겠다는 국민이 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성훈 상임연구원 / 우리사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