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외롭고 쓸쓸한 마지막 편지 - 노인 복지

일취월장7 2014. 11. 14. 12:17

 

외롭고 쓸쓸한 마지막 편지

홀로 살던 한 노인이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메모에는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8.6%로 OECD 평균 12.4%를 크게 웃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374호] 승인 2014.11.14  08:02:02

그 집 앞에는 매일 빈 소주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소주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는데, 폴리스라인이 쳐졌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세입자 최 아무개씨(68)가 퇴거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10월29일 발견되었다. 최씨 바로 옆 건물에 사는 50대 여성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부터 집 앞에 꼭 소주병을 하나씩 뒀다. 바깥출입은 거의 안 했어도 늘 새 술병이 나와 있어서 사람이 있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옆 건물에 사는 또 다른 60대 남자는 “그렇게 한 병씩 있다가 어느 날 없어서 뭔 일 있나 싶었는데,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동대문경찰서 제공</font></div>혼자 칩거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씨는 자기 시신을 수습할 사람을 위해 봉투를 남겼다.  
ⓒ동대문경찰서 제공
혼자 칩거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씨는 자기 시신을 수습할 사람을 위해 봉투를 남겼다.

11월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최씨가 혼자 살던 집을 찾았다. 전날 주인까지 이사를 가 2층짜리 다세대주택은 문이 열린 채 텅 비어 있었다. 다음 날부터 철거에 들어가 3층짜리 빌라가 새롭게 올라갈 예정이었다. 유족이 유품을 정리해간 최씨의 집 안은 대낮인데도 껌껌했다. 전기도 끊겨 불이 켜지지 않았다. 덩그러니 벽에 걸린 10월 달력에는 ‘28일 이사, 29일 가스’라고 쓰여 있었다. 동네 새마을금고에서 준 달력 한구석에는 이사 가기 전 공과금을 계산한 것으로 짐작되는 ‘21,000 12,000’과 같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수분지족, 언행일치, 마음공부 닦자’는 자필 메모도 보였다. 알약이 다섯 개씩 들어 있는 약봉지 묶음은 테이프로 문에 붙여져 있었다.

6000만원 전세금 가운데 자기 돈은 300만원뿐

49.5㎡(15평) 남짓한 집에서 전세 6000만원으로 3년째 살던 최씨는 지난 8월 주인으로부터 집이 팔렸다는 통지를 받았다. 10월 말로 예정되어 있던 퇴거를 앞두고, 최씨와 같은 건물 옆집에 살았던 사람은 10월25일 먼저 이사를 나갔다. 공동으로 내던 공과금을 어떻게 나눌지를 최씨에게 묻자, 그는 자신이 알아서 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최씨는 현관 출입문 앞에다 5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전기세 고지서와 함께 두었다. 작은방 테이블 위에는 1만원권 열 장이 든 흰 봉투를 올려놓았다. 봉투 겉면에는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라고 적었다. 봉투 옆에는 로또와 메모지도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100만원가량을 담은 또 다른 봉투는 큰방 침대 밑에 놓아두었다. 돈은 대부분 빳빳한 새 지폐였다.

그는 그렇게 생을 정리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특별히 가족이나 연고가 없는 최씨가 자신을 수습할 이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와 돈인 거 같다. 현장에는 책이 좀 많았다는 거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 냉장고에 든 음식도 그대로였고 일상적으로 사람이 사는 집의 모습이었다”라고 말했다. 유서는 없었다. 경찰관은 “요즘은 종이로 유서를 남기지 않더라도 남길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으로 보내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마땅히 유언을 남길 상대가 없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최씨가 살았던 15평 남짓한 작은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먼 친척이 짐을 모두 정리해 약봉지만 문에 붙어 있었다.  
ⓒ시사IN 신선영
최씨가 살았던 15평 남짓한 작은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먼 친척이 짐을 모두 정리해 약봉지만 문에 붙어 있었다.

최씨는 치매를 앓던 여든여덟 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노모는 2007년부터 지역 사회복지관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다 지난 3월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모친상을 치른 후 줄곧 혼자 살았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유일한 핏줄인 형은 20여 년 전에 연락이 끊겨 교류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 주민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도 사회복지사만 가끔 드나들지 거의 바깥이랑 교류를 안 하고 사는 집이긴 했는데,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는 정말 얼굴을 거의 못 봤다”라고 말했다. 해당 지역 사회복지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 기관 직원들이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도와드렸는데, 하루 장례를 치를 때도 거의 찾아오는 분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 이후 가끔 기관에서 사람이 나가 어르신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면 우울감이 있어 보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특별한 직업과 수입이 없어서 2000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최씨에게 노모는 거의 유일한 사회적 네트워크였다. 2005년까지 지역 자치단체가 제공하는 자활근로를 했지만 그마저도 나이를 먹고 나서는 힘들어졌다. 동대문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막노동판을 나갔다는 것도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는 정말 아무 일도 안 하셨던 것 같다. 그전에도 어떤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최씨는 직장 동료도 친구도 만들기 힘든 환경을 전전했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사회 생활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친구 만나서 술도 한잔하고 연락한 지 오래된 먼 친척이라도 찾아가려면 얼마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이 들어 직장을 구하지도 못하는 등 사정이 여의치 못하니 계속 고립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난은 사회적 관계까지 빈곤하게 만들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최씨의 집 우편함에는 주인을 잃은 우편물이 남아 있었다.  
ⓒ시사IN 신선영
최씨의 집 우편함에는 주인을 잃은 우편물이 남아 있었다.

최씨를 잘 아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그가 생의 마지막에 맺고 있던 관계는 지역 주민센터, 지역 사회복지관 관계자 그리고 집주인 정도였다. 그들은 최씨가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성격이 강했다고 입을 모았다. 해당 지역 주민센터의 한 직원은 “기초수급대상자라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받아가는 등 가끔 주민센터에 오실 일이 있었지만, 딱히 자기 상황이 어떻다는 등의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분이었다. 이사를 앞두고 나가야 할 상황이라는 걸 의논해주었으면 뭐라도 도움을 드렸을 텐데 안타깝다”라고 말하며 눈물지었다. 최씨가 지원받을 수 있는 현행 복지제도는 대부분 ‘신청주의’라 당사자가 자신의 곤궁함을 적극 증명해야 한다. 꼿꼿하고 깔끔한 성격의 가난한 독거노인에게 자존심은 삶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가 받았던 기초생활수급액은 한 달 48만여 원

노모의 사망 이후 최씨의 기초생활수급액은 90만원가량에서 48만8070원으로 줄었다(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60만3403원이다). 고령인 탓에 돈을 벌 기회도 없었지만, 소득이 생기면 그만큼 기초생활수급액이 깎이는 터라 굳이 사회 생활을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받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액과 중복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변변한 직장을 다닌 적이 없어서 국민연금 또한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생활수급액 48만여 원이 정부가 1인 가구에게 주는 최대 액수이기는 했지만, 이사를 가야 하는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 등을 대비하기는 힘들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그의 방 달력에는 공과금을 계산한 것으로 짐작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시사IN 신선영
그의 방 달력에는 공과금을 계산한 것으로 짐작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전세금 6000만원도 오롯한 최씨 재산이 아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지원을 받아 전체 금액 95%에 해당하는 5700만원을 빌렸다. 자기 돈은 300만원이 전부였다. 다른 집을 구하고 또다시 대출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일이 그로 하여금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LH에서 최씨가 이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또 대출 대상자가 될 정도로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다음 주거 상황에 대해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 주거 안정을 위해 시행하는 제도라면 그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한 사회복지사는 “사람이 자살하는 원인을 하나로 꼽을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빈곤과 주변과의 고립 등으로 서서히 우울감이 심해진 데다 집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게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 듯싶다”라고 말했다.

최씨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난했고 혼자 살았으며 생의 마지막은 자살이었다. 올해 통계청이 낸 2013년 사망 원인을 보면, 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28.5명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지만, 이 중에서도 연령대별로 보면 노인 자살의 심각성이 더욱 잘 드러난다. 60대는 인구 10만명당 자살자가 40.7명, 70대가 66.9명, 80대 이상이 94.7명이다.

2007년 개정된 노인복지법에 따라 정부가 3년에 한 번씩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노인 실태조사>의 2011년 내용을 봐도, 응답자 중 11.2%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응답한 이들 중에서도 11.2%가 만 60세 이후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을 생각한 이유로는 건강과 경제적 어려움이 수위를 다투었다. 건강 32.6%, 경제적 어려움 30.8%, 주변(가족·친지·친구)과의 갈등 및 단절 15.6%, 외로움 10.2% 순이었다. 건강 악화가 경제적 어려움을 불러오고, 경제적 어려움은 주변과의 단절과 외로움 그리고 다시 건강 악화를 부르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봐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8.6%로, OECD 평균 12.4%를 크게 웃돈다.

최씨 생의 마지막에 그에게 연락한 사람은 LH 직원과 집주인 그리고 부동산업자였다. 대출금 상환 때문에 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다. 동네 파출소 직원과 LH 직원이 집 안으로 들어가 숨진 그를 발견했다. 퇴거와 대출금이 아니었다면 주변과 아예 연락할 일이 없었을 그는 어쩌면 고독사한 채 한동안 방치되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최씨는 생에 마지막 자신과 관계를 맺을 이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또 갖추었다. 경찰은 그 돈으로 국밥을 사 먹을 수 없었다. 혈육을 수소문해 조카를 찾았다. 조카에게 모든 유품과 돈을 넘겼고, 최씨는 11월1일 화장돼 서울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세모녀법’은 잠자고 대통령은 ‘홍보’ 탓하고

2월 ‘송파 세 모녀’ 소식에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다. 정치권은 경쟁하듯이 관련 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여덟 달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와중에 정부는 ‘부정 수급자’를 찾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374호] 승인 2014.11.14  08:01:45

그들은 고마워하고 미안해했다. 자신의 주검을 수습해줄 사람에게 감사함을, 전셋집인 남의 집에서 목숨을 끊어 죄송함을 전했다. 정작 남은 자들의 부끄러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2월26일 서울 송파구의 한 지하 1층 월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의 뉴스가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신용불량자가 된 딸들을 대신해 식당에서 일하던 어머니까지도 팔을 다쳐 생활고를 겪다 목숨을 끊었다. 당시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한 ‘송파 세모녀법’을 발의했다고 발표했지만, 관련 법안은 모두 여덟 달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송파 세 모녀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현행법대로라면 신청했더라도 받기 어렵다. 성인인 두 딸이 부양의무자로 산정돼 기초수급 신청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큰딸이 병원에 가지 못한 탓에 당뇨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고, 두 딸 모두 신용불량이어도 ‘근로능력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는 데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제도가 제대로 홍보되지 않았다고 질타했지만, 실제로는 제도 자체의 장벽이 높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자료</font></div>지난 2월27일 ‘송파 세 모녀’는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에 ‘정말 죄송하다’는 메모를 남겼다.  
ⓒ시사IN 자료
지난 2월27일 ‘송파 세 모녀’는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에 ‘정말 죄송하다’는 메모를 남겼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 등이 낸 야당의 개정안에는 부양의무자의 기준이 완화되어 있다. 며느리와 사위를 의무부양자에서 제외하자는 내용이다. 또 일정 기준 이상의 소득이 있다 해도, 일용근로자인 경우에는 부양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을 포함한다. 여당은 난색을 표한다. 이 경우 기초생활수급자가 201만여 명 늘어나 예산상 곤란하다는 것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와 같은 시민단체는 아예 부양의무제 기준을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2000년 첫 적용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2006년 개정되어 완화되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2001년과 2007년 모두 3.2%였다.

매년 기초수급자 수가 줄어드는 진짜 이유

여야가 법안을 두고 씨름하는 사이 기초수급자 수는 더 줄고 있다. 2009년 최고 157만명에 달했던 기초생활수급자는 이후부터 매년 줄어 올해 6월에는 134만여 명으로 집계되었다. 매년 20만명 넘게 탈락했다. 자활에 성공하거나 빈곤에서 탈출한 게 아니라, 정부의 엄격한 사회복지통합관리망 관리 때문이라는 게 보건복지부 안팎의 평가다(<시사IN> 제342호 ‘‘일’하면 ‘벌’주는 희한한 제도’ 참조).

심지어 정부는 지난해 ‘복지부정 신고센터’까지 꾸렸다. 박 대통령이 부정 수급 문제를 강조하면서, 17개 행정부처가 합심해 부정 수급을 적발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100일 동안 복지부정액 100억원을 적발했다고 홍보했지만, 이 중 개인 수급자의 부정은 0.7%(7000만원)에 불과했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는 인구의 3%도 안 되고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은 8%가 넘는다. 정부가 부정 수급자를 찾는 데 쓸 여력과 재정으로 더 많은 빈곤층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