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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갑 속 두 카드 그것이 알고 싶다 - 포커 페이스 신용카드

일취월장7 2014. 7. 23. 10:14

내 지갑 속 두 카드 그것이 알고 싶다

계산대 앞에 선 당신. 망설이게 된다. 신용카드를 긁을까, 체크카드로 결제할까. 연말 소득공제를 고려하면 체크카드가 낫다고 하고,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혜택은 신용카드가 좋다는데…. 두 카드를 비교해봤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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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승인 2014.07.22  08:57:21

 

 

직장인 나신용씨(가명·35)의 지갑 속에는 두 종류의 결제 카드가 꽂혀 있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때, 택시에서 내릴 때, 마트 계산대 앞에 설 때마다 나씨의 손가락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소득공제를 고려하면 당연히 공제율이 두 배(신용카드 15%, 체크카드 30%)에 달하는 체크카드에 손이 간다. 정부가 신용카드 공제율을 그나마 더 축소하려 한다는 뉴스를 듣고 나씨는 신용카드를 해지할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체크카드보다 두 배 이상 적립되는 포인트와 가맹점마다 다양하게 내건 신용카드 할인 혜택을 포기하려니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말정산 때면 저마다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1500만 근로소득자는 모두 나씨와 같은 갈등 상황에 놓여 있다. ‘계륵’ 같은 신용카드, 뭔가 아쉬운 체크카드, 미궁 같은 카드 소득공제…. 나씨가 경제생활을 시작한 이후 들었던 이들의 정체와 관련해 떠도는 숱한 이야기 가운데 네 가지를 점검해봤다.

 신용카드, 나라가 권장하는 ‘세테크’ 수단?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  
ⓒ시사IN 조남진
‘신용카드=과소비’라는 공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나씨가 스무 살이 되던 1999년부터다. 그해 ‘중산층 세부담 경감’ ‘자영업자의 과세자료 양성화’라는 취지 아래 정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연간 총급여액의 10%를 초과하는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해 10%를 과세소득에서 공제해줬다. 이듬해에는 공제율을 20%로 확대하고 공제 한도도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렸다. 상금이 최고 1억원에 달하는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제도도 함께 시행됐다.

할부·외상 결제 수단으로 인식되던 신용카드는 순식간에 알뜰족의 ‘세테크’ 도구로 등극했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세금도 깎아주고 복권 당첨금도 받을 수 있다니 너도나도 신용카드를 만들고 긁었다. 1999년 90조원이던 신용카드 사용액이 이듬해 200조원을 넘었다. 그 이듬해에는 발급한 신용카드가 1억 장을 넘고 성인 한 명이 소지한 신용카드 수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평균 4.4장에 이르렀다. 직장인·주부는 물론이고 당시 나씨 같은 대학생에게도 마구잡이로 신용카드가 발급됐다.

‘자영업자 과세’ 정책 목표도 어느 정도 달성하고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신용불량자가 속출하자, 신용카드 장려 정책이 시작된 지 불과 4년 만에 정부는 슬슬 정책 기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기존 20%였던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15%로 낮추기로 결정한 2003년을 처음으로, 정부는 매년 하반기 세법개정안을 낼 때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방안을 발표해왔다. 이런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방안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이듬해 국회에서 엎어지거나 보류되기 일쑤였지만 신용카드 소득공제액은 10여 년간 시나브로 축소돼 2014년 기준 ‘연간 급여액의 25% 초과액에 대한 15%(공제 한도 300만원)’로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 이제 체크카드가 대세다?


   
 
최근 정부가 장려하는 것은 ‘체크카드’다. 카드 소득공제 제도 도입 초기 신용카드보다 낮거나 비슷하게 책정했던 체크(직불·선불)카드 소득공제율을 2012년부터 30%로 확 끌어올린 것이다. 같은 돈을 써도 돌려받는 세금이 두 배라는 계산에 나씨를 비롯한 직장인들이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긁는 빈도가 늘어났다. 특히 신용카드 공제율을 15%에서 10%로 더 줄이겠다는 지난해 여름 정부 발표 이후 둘의 운명은 더 크게 어긋났다(아래 그래프 참조).

그런데도 신용카드 대 체크카드의 비중은 여전히 8대2다. 1인당 신용카드 이용 건수(한 해 147건)는 세계 1위이지만, 체크카드 사용 비중(20%)은 아직 독일(90%), 영국(75%), 미국(40%)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체크카드가 신용카드만큼 단기간에 활성화되지 않는 데에는 그간 신용카드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소비 관성 때문만은 아니다. 통장 잔고 내에서만 결제가 가능하고 할부 구매는 불가능하며 포인트 적립·할인 혜택이 적다는, 신용카드와의 기본 차이는 둘째 치더라도, 결제 취소·환불 절차가 오래 걸리고, 은행의 시스템 점검 시간에는 결제가 안 되며, 해외 사용 시 제한이 많고, 같은 조건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에 비해 신용등급이 낮아지는 등의 단점도 체크카드 확산의 걸림돌이다.

 소득공제를 위해선 체크카드만 써라?


무조건 체크카드만 쓴다고 소득공제를 많이 받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연봉 4000만원을 받는 나씨의 예를 살펴보자. 공제율이 신용카드 15%, 체크카드 30%, 현금영수증 30%로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일단 이 세 가지를 합한 한 해 지출액이 나씨의 연봉 4000만원의 25%인 1000만원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출액에 상품권 구입비와 자동차 구입·리스 비용, 부동산·선박 같은 자산 구입비, 국세·지방세·전기료·아파트 관리비는 물론 다른 소득공제 항목인 각종 보험료, 학교와 어린이집에 납부하는 수업료·입학금·보육비용, 기부금, 월세 납부액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벌이에 비해 돈을 아껴 쓰는 편이라 이 항목들을 제외한 한 해 지출이 연봉의 25%에 미치지 못할 것 같으면 카드를 통한 소득공제에 아예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럴 때는 그저 자신에게 맞고 사용하기 편리한 결제 수단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나씨가 위의 제외 항목들을 걸러내고 지출액을 살펴보니 한 달 100만원, 한 해 1200만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 금액을 신용카드로 쓰는 게 이득일까, 체크카드로 긁는 게 이득일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연봉의 25%인 1000만원을 채우기까지는 결제 수단을 무엇으로 하든 공제율에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차액 200만원에 대해서는 공제율이 곱절인 체크카드가 단연 유리하지만 기본 1000만원은 자신의 사용 패턴에 맞는 신용카드로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혜택을 누리는 게 더 이득일 수 있다.

나씨가 1000만원은 사용 금액의 1%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신용카드로 긁고, 200만원은 공제율이 30%인 체크카드로 긁는다면 카드 포인트와 소득공제 환급액으로 받는 돈이 각각 10만원, 9만9000원(200만원×0.3(공제율)×0.165(지방소득세 포함 근로소득세율))으로 총합 19만9000원이다. 반면 포인트 적립 혜택이 없는 체크카드나 현금을 사용한다면 소득공제 환급액 9만9000원만 받을 수 있다.

 따져 쓰면 신용카드가 이득?


하지만 나씨는 또 고민에 빠졌다. ‘만약 신용카드 포인트 혜택이 1%보다 높아 그 적립액이 체크카드를 통한 소득공제 환급액을 추월한다면 1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도 굳이 체크카드를 쓸 필요가 없는 건 아닐까?’ 물론 그럴 수 있다. 실제 포인트 적립률이 전월 실적과 가맹점 종류에 따라 2~3%, 많게는 5%에 달하는 신용카드도 여럿 출시됐다. 각종 놀이공원과 식당, 미용실 등에서는 최대 50%까지 특정 신용카드 할인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2012년 한국소비자원의 설문조사 결과 카드 소지자의 64%는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 같은 부가 서비스 때문에 신용카드를 쓴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신용카드의 부가 서비스에는 여러 ‘조건’들이 따라붙는다. 나씨가 최근 최고 5%의 포인트를 준다는 광고에 혹해 새로 발급받은 신용카드의 약관을 자세히 읽어보니 5% 적립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백화점 2곳과 대형마트 3곳, 온라인 쇼핑몰 2곳에 불과했다. 그것도 전월에 150만원 이상을 카드로 결제해야 적용받을 수 있는 수치다. 아무리 많이 써도 통합 적립 한도인 5만원 이상을 쌓을 수도 없다. 더구나 그렇게 쌓은 포인트는 현금으로 돌려주는 게 아니라 신용카드 가맹점의 상품이나 서비스로만 교환할 수 있다. 신용카드 연회비 2만7000원도 감안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부가 서비스가 카드 유효기간 내내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여신전문금융업감독규정으로 강제한 신용카드 부가 서비스 유지 기간은 최소 1년. 부가 서비스를 1년만 유지하면 이후에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부가 서비스 의무 유지 기간을 5년으로 늘리는 법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오히려 법 통과 이전에 부가 서비스를 대거 축소·폐지하는 카드사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따져 쓴다 해도 카드사 변심 한 방이면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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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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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승인 2014.07.23  08:55:39

 

신용카드 결제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기사를 썼지만, 모범 답안지를 앞에 놓고도 결제 패턴을 바꾸기가 참 쉽지 않다. 신용카드 결제의 편리함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를 한번 쓰기 시작하니 현금이 떨어질 때마다 매번 번거롭게 거래 은행 ATM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다. 물건을 사고 난 후 거스름돈으로 잔돈을 잔뜩 받아 지갑이 무거워질 일도 없어서 좋았고, 어쩌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청구액의 30%를 카드 포인트로 결제하고 나면 알뜰 똑순이가 된 양 어깨가 으쓱해졌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축소한다는 뉴스가 나오면 다른 직장인들처럼 분노했다. 잔뜩 떼어가는 세금 중 그나마 연말에 돌려받을 수 있는 게 신용카드 공제액인데 매년 야금야금 그 혜택을 갉아가는 정부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흔히 나오는 기사 제목처럼 ‘서민·중산층 월급쟁이가 봉?’이라는 불만이 쌓여나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양한모</font></div>  
ⓒ시사IN 양한모

하지만 신용카드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조금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신용카드 소득공제로 이제껏 가장 큰 혜택을 본 계층이 결코 서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11년 국회 예산정책처가 작성한 보고서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소득계층별 귀착 및 세수효과와 시사점’에 따르면 신용카드 소득공제에 의한 세금 감면의 효과는 고소득층이 가장 크게 누리고 있다.

보고서는 이를 100원의 신용카드 소득공제액으로 몇 원이나 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는가를 ‘신용카드 공제액 대비 소득세 감면액’으로 증명했는데, 이 수치는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대폭 높아졌다. 소득 2000만원 이하 계층이 100원의 신용카드 소득공제액으로 2.7원의 소득세를 감면받고 2000만~4000만원 소득자가 3.7원을 돌려받았다면 소득 8000만~1억원 소득자는 13.4원, 1억~2억원 소득자는 18.5원, 2억원 초과자는 29.1원을 돌려받았다. 소득공제 감면액 그래프가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가팔라지는 형국이다. 보고서는 이를 토대로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부의 재분배’에 역행한다고 설명했다.

신용카드에 대해 많은 사용자들이 또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신용카드를 쓸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다. 카드 사용자는 당장 포인트 적립과 할인 혜택을 누릴지 몰라도 그 부담은 결국 가맹점 자영업자들, 즉 우리 가족과 이웃의 수수료 부담으로 돌아간다. 신용카드 수수료 비율은 영세한 가게일수록 더 높다. 한국조세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수수료를 포함한 신용카드의 사회적 비용이 83조원을 넘었다. 그 비용은 결국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간다. ‘쓸수록 아껴준다’는 신용카드가 감춘 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