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은퇴가 있는 삶
'할배'들의 인기가 유쾌하다. 어릴 적 브라운관을 점령했던 요즘 말로 하자면 훈남 꽃남의 대표주자였던 그들이 '할배'가 되어 떠난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균 연령 76세 배우들. 배우라는 특별한 직업이 갖는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일흔이 넘어서도 현역에 머물며 즐거운 방법으로 본인들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모습은 귀감이 된다. 내 나이 일흔 여섯이 되어 평생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을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지난 편에 은퇴 후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이번 편에서는 언제 은퇴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치열한 현실을 당장 벗어나고픈 간절한 마음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젊어서 은퇴하기'와 같은 문구에 눈길을 돌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정말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고 싶은 걸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을까. 참고로 2009년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희망 은퇴 연령은 평균 63세, 실제 은퇴연령은 56.3세로 원하지 않더라도 실제 은퇴 시기는 희망보다 빨리 오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은퇴시기에 대한 조건을 세 가지 정도 세워 두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정적 준비 상태이다. 은퇴 상담을 하러 오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부분 중 하나가 본인들의 현재 삶의 수준이 미래의 삶의 수준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면밀하게 계획하더라도 일 할 때와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준비되지 않은 은퇴 후 삶의 수준을 상상해 보기란 어렵지 않다.
나의 부모 세대의 은퇴 후 가장 든든한 재정 계획은 '집', 부동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평생 모으며 늘려온 큰 집을 팔고 여유가 있는 경우 자식들 집장만 할 때 보태주고 작은 집으로 이사해 생활을 꾸려나갔다. 경제적 자립의 필수 요건인 저축과 투자에 있어 과거 부동산은 꽤 높은 투자수익률을 보장했다. 하지만 이는 '옛날얘기'가 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현명한 투자처를 찾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연봉이 늘수록 저축을 늘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늘어난 연봉만큼을 모두 저축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인상폭을 고려해 과하지 않은 정도로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은 현재 삶의 만족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이 외에 가장 보편적인 노후자금 마련 방법은 연금과 퇴직금이다. 2009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절반 가까이 노후준비를 국민연금에 의존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 구조적 요인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연금 기금이 고갈우려가 있다 하니 연금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퇴직금도 마찬가지다. 직장 생활을 하는 기간이 줄어들면서 예전처럼 든든한 퇴직금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여건들을 고려했을 때 노후를 준비하는 현재의 목표는 공격적이어야 하고 계획은 보수적으로 세우는 것이 안전할 수 있겠다.
내가 갖고 있는 은퇴 시기 두 번째 필요조건은 하고 싶을 일을 하기 위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이다. 은퇴 후에는 기존 친구나 네트워크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원하는 일에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그 결과를 배가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노력을 쏟고 있는 부분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누리지 못했던 '시간'이 마침내 주어졌을 때 그 시간을 고독으로 채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마지막 조건이자 나에게도 아직 진행형인 조건은 남은 삶을 바쳐 일하고 싶은 분야를 찾는 것이다. 빌, 멜린다 게이츠 부부가 아프리카 보건의료 확대와 빈곤 퇴치에 관여하고 열정을 쏟기 시작한 계기는 매우 단순했다. 한 경제학자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 실린 아프리카 아동 사망률을 보여주는 인포그래픽을 보고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잊혀 지지 않고 행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엔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많고 사회에 환원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다. 나는 여전히 내 심장을 떨리게 하고 그것이 단순히 한 순간의 감정이 아닌 남은 열정을 끌어 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먼 훗날의 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면밀하게 은퇴를 계획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이렇게 하면 현재 일하면서 옳은 일(Do the right thing) 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준비된 미래가 주는 용기와 자신감은 내가 옳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고 삶의 폭을 넓혀준다. 즉 지금의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나의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주는 힘이 있다. 이제 그것을 이해하고 하나씩 계획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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