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재무설계

서비스는 경험이다

일취월장7 2013. 7. 31. 16:59

서비스는 경험이다

 

 

 

 

'36.2.0.60' 이 뜬금없는 숫자의 조합은 허영만 화백의 '식객'중 손님이 끊이지 않는 한 '곰탕' 전문점의 비결을 나타낸 코드다. 36개월 된 소, 2번의 과정, 0%의 조미료, 마지막으로 60년의 세월을 뜻한다. 경제 불황 속에 자영업이 늘어나는 요즘 다른 코드는 따라 할 수 있지만, 60년의 세월과 자신만의 원칙을 지켜가는 철학은 단숨에 될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지 장인은 그렇게 '경험'이란 끼니를 때마다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해외 출장을 자주 나간다.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식당에서 비즈니스 파트너나 동료들과 또는 혼자 식사를 하는 일이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내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를 선호하게 되고 사소한 것이라도 기억해주는 숙소를 다시 찾는다. 훌륭한 서비스와 맛있는 식당을 만나는 것은 출장 중 소소한 즐거움이 된다. 오늘은 내가 세계 곳곳을 다니며 경험한 서비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앞서 '경험'이란 표현을 썼는데 '서비스는 경험이다'라는 정의야 말로 요즘 서비스 업계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인 것 같다. 배려, 봉사, 수고, 돌봄 등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서비스는 정량화 하거나 규정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인 경험에 집중하고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산업 전체는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한국 항공사는 기내 서비스가 훌륭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 항공사를 이용해보고 그 서비스에 놀람을 금치 못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봤다. 한국 항공사 승무원들은 승객이 불편한지 살피고 신경 쓰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도와주려는 마음은 정말 우수하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고 치우고 다음 서비스를 준비하는 과정은 가끔 빡빡하게 돌아가는 제조라인 같아서 빨리 해야 할 것을 해치우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장시간 제한된 공간에 있다 보면 좀 더 편하게 승무원들과 몇 마디라도 편하게 나눌 수 있길 기대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은 외국 항공사 승무원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외국 항공사 승무원 중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자신만의 스킬과 자신감으로 사람을 대하는 연륜 있는 프로다운 승무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칫 그들의 자신감 있는 태도가 퉁명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친절함으로 인정받고 있는 아시아 국가 항공사의 서비스와 이런 서비스가 적절히 균형을 이룬다면 장시간 비행기 여행을 하는 승객들은 더 특별한 기내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음식 맛이 훌륭한 식당에서 그에 준하는 서비스를 받게 되면, 그 시간은 큰 즐거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두 가지를 다 누리려면 가격대가 비싼 식당이 대부분이다. 기억에 남는 경험을 꼭 그런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외국에서는 동네 작은 식당에 가서도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일단 주방에 들어가 그날의 재료를 확인하고 메뉴를 추천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더 나아가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골라주기도 하고 그 날의 날씨에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내가 다른 와인이라도 고르려 치면 그 와인은 이 음식과는 이래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무례함이 아니라 전문가로서 알고 있는 지식과 그 곳에서 만드는 음식을 최고로 대접하고픈 그들의 자부심에서 오는 행동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가는 식당에서 "여긴 뭐가 맛있나요?"라고 물으면 "뭐 다 맛있지요"라며 겸손을 떨며 메뉴 추천하기를 꺼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행지에서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맛보며 무슨 반찬이 궁금해 물어봤다가는 '뭐 그런 걸 다 궁금해 해?' 하는 눈빛을 받곤 한다. 그런 경험 이후에는 내가 주문해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도 망설여진다. 자신이 만드는 음식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만들면서 축적된 자부심, 그런 것을 손님과 함께 나누는 것이 손님의 외식경험을 더욱 풍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꼭 위의 두 경험이 아니더라도 일본에 지내면서 보았던 동네 장인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규모는 작아도 대를 이어 우동을 삶던 부자의 자부심과 그것이 바탕이 된 그들의 서비스 정신. 본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지니는 태도와 서비스는 다양한 곳에서 접할 수 있었다.

 

서비스는 결국 사람들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지식과 태도가 상대방에게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무난할 것 같다. 상황이나 서로의 위치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갖는 전문적인 태도와 철학은 그런 서비스 경험을 배가 시키는 힘이 된다. 나는 또 한 번의 이런 유쾌한 경험을 기대하며 다시 출장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