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검은 백조에 강한 기업

일취월장7 2011. 6. 22. 11:59


검은 백조에 강한 기업
조용수 성낙환 | 2011.06.20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Uncertainty)’은 미래 세상을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미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더 이상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가 되는 시대라는 지적도 있다. 미래 세상에는 각 경제주체들의 생존 방식과 성장 전략에 심대한 충격과 혼란을 초래할 크고 작은 ‘검은 백조’가 더 자주 출현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점증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 문제를 잘 다루는 일은 이제 기업들에게 일반 비즈니스 전략과 혁신 활동을 통해 좋은 경영성과를 거두는 일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대가 되었다. 과연 기업에게는 어떤 대비책과 역량이 필요할까? 먼저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사전에 탐색하고 대응책을 강구하는 위기예측 활동, 그리고 위기발생시에도 역경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재무적 건전성과 조직 내 다양성, 위기에 빠진 기업에게 손을 내밀어 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와 애정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검은 백조를 가장 잘 다루는 기업은 끊임없는 혁신역량 강화 노력을 통해 위기 후 생겨나는 비즈니스 패러다임 변화를 도약의 기회로 삼을 줄 아는 기업일 것이다.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 기업 조직 전체의 위기 감응도(agility)를 높이고 위기경영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 목 차 >

 

Ⅰ. 일본 대지진이 남긴 것
Ⅱ. 불확실성 및 리스크의 유형과 의미
Ⅲ. 검은 백조에 강한 기업
Ⅳ. 맺음말

 

 

Ⅰ. 일본 대지진이 남긴 것

 


지난 3월초 발생한 일본 동북부의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인근 원자력발전소의 핵물질 누출 사고는 당사국인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 경제, 금융, 산업 시스템 전반에 큰 파장을 남겼다. 강도 9.1의 초대형 지진과 연이은 쓰나미 발생이라는 자연 재해에다 원자력 발전소 안전관리 시스템의 치명적 오류가 겹치면서, 사태 이전에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이번 대지진의 파장이 증폭된 것이다.


우선 대지진으로 인한 직접적인 인적 물적 피해, 그리고 일본 산업계의 손실 규모가 집계조차 어려울 정도로 컸다. 일본 정부에서는 이번 대지진으로 인한 직접적인 손실 규모만도 최대 25조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직접적인 피해 범위를 넘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2차, 3차 파장이 글로벌하게 전개되었다. 먼저 재해 복구를 위한 일본 정부의 재정지출과 일본계 자금의 본국 환류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거렸다.


또한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증폭되면서 주요 선진국 국민들 사이에 원전관련 정책 재검토 요구가 거세졌고 급기야 독일은 정부차원에서 에너지원으로 유력하게 취급하던 원전의 가동 중단이나 폐쇄를 결정했다. 불과 2~3개월 만에 전세계 에너지 분야의 산업 지형도와 생태계가 급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편 대지진 직후 일본기업들의 부품 소재에 크게 의존해 온 전세계 IT, 기계, 자동차, 화학 등 글로벌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관련 부품 소재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적기 조달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전세계 많은 기업들이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것이다. 실제로 국내외 일부 기업들은 일본에 크게 의지해 온 부품 소재 공급을 자국 또는 제3국으로 다변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 밖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많은 나라들이 후쿠시마 원전발 방사능 물질의 대기 및 해양 확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고, 심지어 국내에서는 일본 돕기 모금운동과 관련해 독도 문제에 대한 반성없는 일본을 돕는 게 과연 타당한가를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 때아닌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고도로 글로벌화되고 연결된, 그리고 복잡성이 크게 증폭된 세상에서는 과거의 경험과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예상치 못한 사건(unexpected event)’이 발생할 경우 그 여파가 상상 외로 크게 번져나갈 수 있음을 일본 동북부 대지진 사례는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불확실성, 미래세상의 핵심 키워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Uncertainty)’은 미래 세상을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과거의 경험이나 확률 분포 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국지적으로, 또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큰 사회경제적 혼란과 비용을 야기하는 일이 과거에 비해 크게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과 기업과 같은 개별 경제주체들에게 미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더 이상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가 되는 시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래 세상에는 경제주체들의 생존 방식과 성장 전략에 큰 혼란을 초래할 ‘쇼크’가 매우 자주, 그리고 일상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점증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 문제를 잘 다루는 일은 이제 일반 비즈니스 전략과 혁신 활동을 통해 좋은 경영성과를 거두는 일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대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전략의 차질에 따른 경영성과의 일시적 침체는 기업 내부의 혁신 노력과 새로운 전략 방향의 설정으로 극복할 수도 있지만, 외생적인 불확실성과 리스크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고 다루는 데 실패할 경우 기존의 경영성과가 송두리째 사라지고 기업으로서의 생존 자체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과 리스크 관리 문제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전사적 차원의 대응 전략을 세우는 일이 긴급하고도 중차대한 경영상의 과제로 다루어져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Ⅱ. 불확실성 및 리스크의 유형과 의미

 


기업 관점에서 보면 시대를 막론하고 불확실성과 리스크 대응이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지난 100년 동안만 하더라도 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전쟁과 정치적 격변사태, 대재앙을 가져온 자연 및 기후현상, 그리고 대공황을 비롯한 수 차례의 대규모 경기변동과 주변부 국가들의 금융외환 위기, 오일쇼크 등을 경험했다. 개별 기업이나 산업 단위에서도 강력한 신규 경쟁자의 등장이나 와해성(disruptive) 기술, 제품, 서비스의 등장, 그리고 소비자 고객들의 선호(preference) 체계의 급변, 정부의 규제정책 변화, 노동자들의 파업사태 등이 중대 불확실성과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시장은 때에 따라 강약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늘 불확실하고 리스크로 가득한 곳이었으며, 그런 환경을 극복하는 강자를 키우고 약자를 도태시키는 시장의 선택(selection)이 기업과 산업 생태계, 그리고 인류 문명의 진화를 이끌어 왔다. 도처에 포진해 있는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무릅 쓰고 과감한 도전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은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기업들의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 사업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문제는 최근 들어 기업에게 주어지는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유형이 크게 다양해지고, 발생 빈도나 개별 기업의 경영성과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파급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2000년대 들어서만도 대형 지진, 쓰나미,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가 빈발하고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AI(조류독감), 신종플루(H1N1), 구제역 등 각종 전염병이 글로벌 단위로 확산되는 등 전지구적 차원의 중대 불확실성과 리스크 요인들이 다수 부상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에게 과거의 국지성, 단발성 재해나 전염병과는 전혀 다른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다 2001년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던 911 테러나 이라크 등지에서의 대테러 전쟁, 최근 도미노처럼 번져나간 중동 아프리카의 소위 자스민 혁명, 그리고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간의 잠재적 갈등, 북한체제의 불안정성 등에서 보는 것처럼 21세기 초반 현재의 국제정치, 혹은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관련 리스크의 강도나 복잡성은 동서진영간 냉전과 소연방 붕괴 이후의 미국 독주로 대립 전선이나 갈등구조가 비교적 간명했던 지난 세기에 비해 크게 고조된 상태이다.


물론 기업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경제 관점에서의 불확실성이나 관련 리스크의 수위도 최근 10년간 크게 높아진 상태이다. 리먼쇼크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그 연장선 상에서 계속되고 있는 유로권 일부국들의 부채(디폴트)위기,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재정 위기 가능성, 그리고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자원 관련 쇼크 발생 가능성 등 다양한 형태의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일부는 이미 실현되었고, 일부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내연하면서 세계경제와 글로벌기업들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경쟁 패러다임의 급변에 따른 기업 리스크도 가중


21세기 산업 및 시장전반의 경쟁 패러다임의 변화가 초래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기업에게 좀 더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장 전반의 경쟁구도가 비교적 단순하고 경쟁 강도 자체도 그리 높지 않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기업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거의 모든 시장, 모든 업종에서 당장 내일 어디서, 어떤 일이, 누구에 의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것이 기업의 현실이다. 어제 글로벌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1등 기업이 오늘은 순위권 밖으로 추락하고, 내일이면 흔적도 없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시장 경쟁 패러다임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최근 크게 심화된 것은 무엇보다 신규 경쟁자의 대거 등장과 와해성(disruptive) 기술 및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의 잦은 출현에 기인한다. 글로벌화의 진전과 탈규제, 그리고 신흥국 기업의 성장 등으로 글로벌 시장 전반에 포진해 있는 잠재적 경쟁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늘어났다. 여기에다 IT/디지털 기술의 진보, 산업기술의 융복합화 트렌드 등은 개별 기업이 차별적, 혹은 배타적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견고한 수익과 안정적 성장을 지속적으로 도모하는 일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편 IT 정보화 시대의 특징인 소위 ‘수확체증의 법칙’과 ‘네트워크 외부성’ 등은 또 다른 차원에서 기업경영의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크게 가중시키는 요소가 된다. 수확체증의 법칙은 초기 연구개발투자가 전체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제품의 평균 생산비는 생산 규모에 반비례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해당기업은 생산규모를 시장이 허락하는 선까지 확대하면서 경쟁자를 시장에서 몰아내려고 한다. 결국 시장 경쟁은 사느냐 죽느냐, 혹은 ‘all or nothing’의 혼전 양상을 띠게 된다. 사업상의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페이스북 등 최근 주목 받고 있는 SNS 서비스에서 보듯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용하느냐가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만족도)를 결정하는 소위 ‘네트워크 외부성’도 점점 더 많은 분야에서 목격되고 있다. 후발사업자라 할지라도 기존 사업자보다 조금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 얼마든지 시장순위를 뒤집을 수 있었던 과거의 시장경쟁 양상과는 달리, 네트워크 외부성이 발현되는 시장에서는 한 기업이 일단 시장을 선점한 다음에는 신규 경쟁자의 진입이 매우 어려워진다. 후발주자의 진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과 고객의 쏠림 현상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자원의 투입이 필요한 반면, 부담해야 할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커진다.


시장과 고객들의 쏠림 현상에 의해 유리한 위치에 선 선발자는 일시적으로 승자 독식의 기쁨을 만끽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안심할 수 만은 없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고객취향의 급변 등에 따라 네트워크 외부성 자체의 지속기간도 점점 짧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이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주기가 갈수록 단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차원, 혹은 일국 차원의 규제정책의 변화, 그리고 사회규범의 변화에 수반된 불확실성과 리스크도 시장 경쟁 패러다임을 통해 기업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온실가스 배출 규제와 관련된 포스트 교토협상 테이블이 향후 어떤 식으로, 어떤 속도로 전개될 것인지에 따라 기업은 기존에 갖고 있던 사업 및 시장 포트폴리오와 경쟁 전략의 큰 틀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할 수도 있다. 최근 들어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 역시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대외 경쟁력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시장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Ⅲ. 검은 백조에 강한 기업

 


이상에서 미래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유형과 의미에 대해 살펴 보았다.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시대를 막론하고 기업경영을 제약하는 중대 요소로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글로벌 차원의, 혹은 인류문명 차원의 변화가 과거 어느 시기보다 빠르고 격심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는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유형과 의미도 과거 시기와 크게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남은 문제는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크게 고조된 미래의 사업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기대하지 않은 강도와 파급력을 가진 커다란 위기로 전개되는 일이 상시적으로 반복되는 작금의 경영환경에서, 검은 백조에 강한 기업이 되려면 과연 어떤 대비와 역량이 필요할까?


사전 점검과 예방


먼저 원론적으로 볼 때, 비즈니스와 관련된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다루는 최선의 대안은 현실화되기 전에 점검, 예방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많은 기업들이 미래 예측 활동과 전사 차원의 리스크 관리 노력을 강화하는 최근의 추세는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 방향과 맥락에 대한 조직 내부의 총체적인 이해도와 전략적 적응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가정과 가설에 도전하는 다양한 시나리오 플래닝 작업을 전개하고, 각 시나리오에 따른 기업경영 전반의 리스크 노출도를 분석하는 일을 통해 개별 기업들은 미래에 닥칠 다양한 형태의 사건과 충격에 좀더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 IT/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기업의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usiness Intelligence)를 고양시키는 다양한 도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파편화된 정보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 종합,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고객, 시장, 외부환경의 변화나 이상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신속하게 의사결정으로 연결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특히 기업과 고객, 그리고 세상을 이어주는 연결 도구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각종 SNS 도구를 통해 주변 환경의 변화 흐름을 파악하는 일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었다.


미래예측이 가진 근본적 한계


미래예측 방법론 및 ERM 기법의 적극적인 활용, 그리고 기업 내부 시스템의 정비를 통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의 고양 등을 통해 기업경영 환경 전반의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상당 폭 덜어낼 수는 있지만, 예측하지 못한 ‘쇼크’가 경영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기업의 자체적인 노력으로 사전에 차단할 여지는 여전히 매우 제한적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크게는 지구생태계의 움직임에서부터, 글로벌 정치·경제 시스템 전반의 역동적인 변화, 그리고 작게는 기업이 속해 있는 비즈니스 생태계와 지역 공동체의 복잡성에서 비롯되는 크고 작은 충격과 파장을 일일이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이 가진 데이터나 지식정보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지구생태계 차원의 사건, 그리고 글로벌 정치경제 시스템과 관련된 사안들의 경우 개별 기업차원의 역량으로는 적절한 예측과 대비가 결코 쉽지 않다.


2008년 하반기, 리먼 쇼크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선진국의 내로라하는 경제금융 시스템 분석가들과 정책당국자, 글로벌 연구기관과 정보기관 종사자들은 위기를 사전에 예측, 차단하는 데 실패하고 소위 ‘검은 백조’의 출현을 속수무책으로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갖가지 예측 기법과 정보분석 도구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내다보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작업에 관한 한 본질적으로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과거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더 유능하지 않다.


위기로부터 더 빨리 복원되는 능력이 더 중요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든 기업에게 공통으로 주어지는 객관적인 조건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기업 내부의 미래 예측 역량에 기반한 사전 인지와 적기 대처가 최선의 방안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매달리기 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슈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관점을 조금 달리한다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한 경영상의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경쟁자들보다 피해를 적게 받고 더 빨리 복원되는 능력(resilience)을 키우는 일도 미래의 불확실성을 예측하는 일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다. 사전에 출몰하는 지점과 시기를 알아서 검은 백조와의 조우를 피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면 최선이지만, 설사 여의치 않더라도 검은 백조가 만들어 내는 광폭한 회오리 바람으로부터 스스로를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는 역량을 평소에 확보해 두는 일도 검은 백조의 출현에 대응하는 방법으로서 중대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경영상의 충격이 발생할 경우 그 충격으로부터 기업이 스스로를 지키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재무 건전성과 투명성이 될 것이다. 매출이나 이익 등 현금 흐름에 일시적인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생산, 판매 등 경영활동을 정상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재무적 능력을 갖추는 일은 기업의 위기관리 역량 확보라는 관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안이다. 과도한 차입위주 경영, 방만한 현금흐름, 시장의 신뢰를 훼손하는 불투명한 재무회계 관행, 주주와의 소통부재 등은 위기 발생시 기업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잡종이 더 오래 살아 남는다


검은 백조에 강한 기업, 위기 내성이 강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다양성을 제고하는 일도 중요하다.


유전적 특성이 서로 다른 종의 교배에 의해 생겨난 잡종(hybrid, 雜種)은 순종(純種)에 비해 갖가지 환경을 이겨내는 능력이 강하고 번식력도 더 우수한 경우가 적지 않다. 잡종이 양친보다 더 우수한 성질을 갖는 소위 ‘잡종 강세’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실제로 소, 돼지, 말 등을 키우는 축산업계나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농업부문에서는 더 나은 품종을 얻기 위해 여러 단계에 걸친 품종간 교잡을 이용해 왔다.


기업의 경우 순혈주의 특성은 조직의 위기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많은 구성원이 유사한 생각과 가치관, 경험과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는 순혈주의 조직의 경우 일면 일사불란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볼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거나 사후적으로 역경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남다른 생각이나 행동이 나오기 어렵다. 조직원들은 평소와는 다른 상황에 직면해 우왕좌왕 하다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 가능성이 크다.


비단 위기대응 관점이 아니더라도 지역, 인종,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다양성이 심화되는 시장의 변화 흐름에 맞추고 이들 고객이 요구하는 혁신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위해서는 조직내부의 다양성의 확보가 적극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때문에 조직의 리더들은 조직의 성장과 위기 대응을 저해하는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한 의도적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사랑받는 기업이 위기에 강하다


위기가 발생한 경우 경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고, 한발 더 나아가 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정상상태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복원능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이 고객, 파트너, 투자자, 정부, 공동체 구성원 등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위기 시 기업에 대한 외부의 지원은 평소 그 기업이 주변의 이해당사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다. 과도한 탐욕과 이기적인 경영행태로 일관하는 기업, 사회규범을 가볍게 여기고 부도덕과 탈법을 일삼는 기업이라면 위기 시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흔쾌히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이해당사자들과 원만하고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온 기업이라면 위기에 봉착하더라도 사방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것이다. 기업이 평소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아왔는지는 불확실성과 위기가 현실화되는 시점에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기는 기업이 사회적 존재로서 그동안 어떤 위치에 서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설적인 계기일 수 있다. 지속적인 이익창출과 성장을 추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도 고객과 사회의 요구에 귀기울이고 타자를 배려하는 균형감을 잃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 받는 3대 기업가로 꼽히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자신의 저서 ‘카르마 경영’의 첫머리에서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더욱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 보라”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생각하라’는 독자에 대한 가즈오 회장의 주문은 ‘기업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가’, ‘기업이 살아있는 것의 의미와 존재 방식은 무엇인가’에 질문으로 바꾸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업들이 내면에 있는 고유의 혁신역량을 발휘한다면 질병, 빈곤, 환경 등의 중대 사회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면서도 지속적인 성장과 이윤창출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의 최근 주장이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Firms of Endearment)이 위기에 강하고 지속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둔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제시한 미국 벤틀리대학의 라젠드라 시소디어(Raj Sisodia) 교수 등의 논지 역시 불확실성과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들이 이해관계자에 대해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위기 후 패러다임 변화는 도약의 기회


이상에서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시대에는 사전적인 위기예측 활동, 재무적 건전성과 조직내 다양성의 확보, 그리고 기업경영에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이의 균형 회복 등이 요건임을 살펴 보았다. 그러나 검은 백조를 다루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은 불확실성과 위기 그 자체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을 구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통상 위기의 소용돌이가 지나가면 위기 이전의 성과에 상관없이 많은 기업들이 곤경을 이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된다. 반면 어떤 기업들은 위기를 거치면서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기업으로 발돋움하기도 한다. 태풍이 바다생태계를 정화하고 새로운 바닷속 환경을 만드는 것과 유사한 이치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위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산업생태계 전반에 큰 변화가 생겨나면서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고 기업순위가 뒤바뀌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때문에 위기 후 급격히 변모하는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새로운 국면을 잘 포착하고 전체 판도 변화를 앞장서 주도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 결국에는 검은 백조의 공격에 잘 맞서는 기업이 되는 핵심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위기 후 임기응변적인 혹은 단편적인 대응 만으로 이런 능력이 생겨나기는 어렵다. 평소 고객과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과 혁신 역량의 확보 노력을 통해  탄탄한 기초 체력을 키워 온 기업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위기를 거치면서 시장에서 가장 ‘핫(hot)’한 기업이 된 애플의 경우도 고객가치의 진화와 관련 기술의 발전에 대한 스티브 잡스 CEO의 오랜 탐색과 도전 노력이 위기 후 모바일화, 스마트화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폭발적 관심과 맞물리면서 큰 결실을 맺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Ⅳ. 맺음말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일상화되고, 경영활동에 치명적인 파장을 만들어 내는 크고 작은 위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기업들의 위기감도 크게 고조되고 있다. 위기경영의 상시화를 외치는 경영자들도 적지 않을 정도로 살아남는 것 그 자체가 결코 만만찮은 시대상황에 우리 기업들은 처해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리스크, 그리고 위기에 대처하는 기업들의 자세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사업을 줄이고, 사람을 줄이고, 비용을 줄이는 것이 곧 위기경영이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위기대응 TFT를 만들어 출퇴근 시간이나 비용낭비 여부를 체크하거나 남들도 다 아는 정보를 모아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조직 내부에 일시적인 긴장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CEO 스스로의 만족감을 불러 일으킬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기업의 위기 대응능력을 훼손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조직원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고객가치는 후순위로 밀리며, 정작 필요한 기업의 내일을 위한 미래 준비는 더욱 취약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과 위기 대응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나 미래예측 전담 조직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위기 시에는 줄이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앞서의 경우에 비해서는 훨씬 진일보한 대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한계는 있다. 리스크 측정이나 미래 예측 활동이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활동, 특히 최고경영진의 의사결정과 분리되어 그야말로 활동을 위한 활동으로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리스크 관리와 미래 예측 활동의 양적, 질적 수준을 올리고 일상 경영 활동과의 갭을 좁히는 일이 향후 과제가 될 것이다.


사전적인 리스크 관리와 미래예측 활동 강화는 검은 백조에 강한 기업이 되는 데 필요한 덕목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은 건전한 재무구조와 조직 다양성, 고객과 이해관계자의 신뢰와 사랑,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혁신역량의 체질화 등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지금 기업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불확실성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기에 봉착해서야 비로소 위기를 생각하는 기업은 위기를 이길 수 없다. 복잡 다양한 위기의 씨앗들이 글로벌 세상 곳곳에 포진해 있는 상황인 만큼,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위기가 찾아 올지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조직 전체의 위기 감응도(agility)를 높이고 위기경영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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