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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通했다…보편성 획득한 ‘봉준호 월드’

일취월장7 2020. 2. 17. 10:16
세계에 通했다…보편성 획득한 ‘봉준호 월드’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7 10:00
‘봉준호’는 난공불락 아카데미를 어떻게 공략했나
 이제 한국 영화사는 2020년 2월9일(현지시간)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역사의 기준점은 만 50세의 봉준호 감독이다. 봉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봉 감독은 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까지 모두 4개의 트로피를 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 됐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비(非)영어 영화가 최고상인 작품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영화로는 각본상, 국제영화상도 모두 최초다. 보수적인 감독상도 아시아 감독으로는 대만 감독 리안(李安)에 이어 두 번째다.

앞서 《기생충》은 지난해 5월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인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동안 한국 감독이 경쟁·비경쟁 부문 포함, 1980년대부터 이번까지 열두 번이나 문을 두드린 상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1956년 나온 미국 영화 《마티》 이후 두 번째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생충》은 새해 들어서만 미국에서 전미비평가협회 작품상과 아카데미상과 쌍벽을 이루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을 받았다. 영국아카데미상 시상식 ‘오리지널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이라는 쾌거도 있었다. 한국영화가 유럽과 미국 등 주류 국제무대에서 이렇게 연속해서 큰 영예를 누린 것은 사상 처음이다. 한국영화 101년 역사상 가장 빛나고 놀라운 순간이다.

이런 연이은 수상, 특히 봉 감독의 아카데미 시상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동안 한국영화에 아카데미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앞서 한국영화는 칸, 베를린, 베니스와 같은 3대 국제영화제에서 수차례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지만 시장 친화적이고 미국 중심적인 아카데미의 벽은 유독 넘지 못했다. 《기생충》 전까지는 시상은커녕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김춘수의 시 《꽃》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한국영화는 명명되지 않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최소한 미국 영화계에서는 그랬다. 그리고 이 말인즉 여전히 한국영화는 세계 영화의 주류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봉 감독은 이 질곡의 역사 물줄기를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영화의 본류로 평가받는 할리우드가 ‘봉준호’라는 이름을 호출한 것은 ‘봉준호 월드’가, 그리고 한국영화가 명실상부하게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봉 감독의 이런 위대한 성취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러 분석이 있다. 우선 안정적인 시도보다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 온 봉 감독이 꾸준히 축적해 온 평판이 있다. 그는 사회성 짙은 작품들을 ‘봉테일리즘’이라 불린 ‘섬세한(detailed)’ 기획과 대중성을 잃지 않는 연출로 그려내면서 작품성과 상업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영리한 감독이라는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평가는 영화감독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에 가깝다.

하나의 장르가 된 봉준호, 보편성까지 획득
이런 탄탄한 주춧돌 위에서 유럽과 미국 시장을 꾸준히 노크하며 그곳 관객·평단의 시선을 끌고 그들과 인연을 쌓아갔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으로 한국 시장을 평정한 봉 감독은 2013년 《설국열차》를 다국적 프로젝트로 진행하며 할리우드에 처음 진출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7년에는 넷플릭스 투자를 받아 《옥자》를 만들며 새로운 영화산업 플랫폼에 도전했다. 봉 감독은 다 계획이 있었다.

무엇보다 봉 감독의 힘은 ‘보편성’에서 나온다. 먼저 주제의 보편성이다. 《기생충》은 빈부격차와 양극화라는 세계 각국에서 심화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보편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당대 한국 사회의 계급적 갈등을 그린 ‘가족 희비극’이 동시대 세계 영화인들에게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 것은 봉 감독이 다룬 주제가 ‘세계인들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다운 충남대 강사는 ‘영화 《기생충》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불평등한 계급 구조가 양산하는 부조리는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문제다. 인간은 본래 평등하다는 전제를 신봉하는 민주주의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현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다수 나라에서 부의 불공정한 재분배로 인한 계급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기생충》은 ‘국지적이지만 세계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하나쯤은 나온다
특히 서구 사회의 《기생충》에 대한 호응은 심화되는 양극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다양성에 대한 요구 등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심화된 빈부 격차와 유색인종에 대한 배타성, 이민자 분리 정책 등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고조돼 왔는데, 이런 점이 《기생충》과 코드가 잘 맞아 공감을 끌어냈다는 분석도 있다. 즉 봉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명작’은 ‘때를 제대로 만나’기도 했고,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서 ‘세계적 작품’의 반열에 올라선 셈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저서 《21세기 자본》을 통해 부(富)의 불평등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다뤄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봉 감독의 영리함은 계급 갈등이라는 불편한 주제를 대중들이 정면으로 응시하게 하되, 공감할 수 있게끔 풀어냈다는 데 있다. 《기생충》은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블랙코미디와 스릴러 등을 넘나드는 장르의 변주 속에 대중성을 살린 것이 성공의 이유로 꼽힌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상대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안전하게’ 보여준다. 체제의 전복과 같은 시도를 하지 않는 봉 감독의 《기생충》은 불편하지만, 외면할 정도는 아닌, 시대의 고민을 다룬 ‘재밌고 좋은 영화’가 된다.

여기서 그치면 ‘봉테일’이 아니다. 《기생충》의 강점은 어떤 관객이라도 하나쯤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제시했다는 데 있다. 《기생충》의 계급투쟁은 다층적으로 이뤄져 있다. 《기생충》에서는 계급 상승을 꿈꾸는 하층 계급의 욕망과 이들을 배제하고 선을 긋고 살고 싶은 상층 계급의 욕망이 부딪친다. 여기에 ‘반지하’와 ‘반지하 아래’ 계층 간의 ‘을(乙)들의 갈등’이라는 대립구도를 더했다. 이쯤 되면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공감하면서 스스로를 대입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는 나오게 된다. 역시 봉 감독은 다 계획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왜 봉 감독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가슴에 새긴다고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봉 감독의 영화에는 늘 ‘가장 개인적인 것’ 즉 계급, 계층, 인종, 성별 등에 관계없이 그 시대를 살아간다면 누구나 대입해 공감할 만한 주제와 스토리가 있다. 그렇게 ‘가장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봉준호 매직’의 비결인 셈이다.

봉 감독의 또 다른 무기는 ‘방법론의 보편성’이다. 《기생충》은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앞세우지 않고 국제 영화시장에서 한국의 시대상을 보여준 최신의 방식이다. 한국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일종의 종교적 신념 같은 담론이 있다. 이에 수십 년 전부터 우리 문화계에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을까”와 같은 논쟁이 지속돼 왔다.

그리고 그렇게 임권택 영화 《서편제》처럼 딸을 한 맺힌 소리꾼으로 성장시키려고 아버지가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스토리가 한동안 이어져 왔다. 하지만 봉 감독의 이야기는 다르다. 세계를 홀렸던 이창동, 박찬욱 감독 등도 마찬가지다. 세계인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고민할 법한 주제를 던진다. 봉 감독 영화의 무대, 시공간만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그 내용과 주제도 한국적이면서, 이를 다루는 방식도 충분히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1인치의 장벽이 허물어진 데는 이런 배경도 있다. 

대자본이 주도한 배급과 홍보의 힘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한 《기생충》의 성공에는 CJ라는 국내 굴지 대기업의 자본이 대거 투입됐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역설적인 결과도 있었다. 국내 상영관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의 자본이 투입된 《기생충》의 국내 개봉 당시 스크린 독점 문제가 제기됐다. 이미경 CJ 부회장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자본이 투입돼야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기생충》이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도 충분한 배급과 홍보가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미국 시장에 안착하기 쉽지 않았을 수 있다. CJ는 《기생충》의 오스카 홍보 등을 위해 100억원 정도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CJ의 자본은 분명 《기생충》을 역대 북미 외국어영화 흥행 6위에 올라서게 한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사실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은 CJ에도 모험이었다. 《기생충》은 후보작 중 유일하게 미국 대형 제작사의 작품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상 후보 선정과 수상은 관객의 반응뿐 아니라 투표권을 가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표심을 사로잡아야 한다. 넉넉한 예산과 현지 사정에 밝고 경험 많은 인력, 글로벌 영화계 네트워크, 전략적 프로모션이 총동원돼야 한다. 상설 오스카 전담팀을 운영하는 할리우드 제작사는 대규모 자본과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어려운 경쟁이었다. 2017년 AMPAS 회원이 된 이 부회장은 이 과정을 뒤에서 후원했다.

위대한 성취를 이뤘지만 과제도 남았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남들이 주는 상을 받고 기뻐하는 한국인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남들에게 상을 주는 주체가 되는 꿈을 꿔야 한다. 이젠 해처럼 우리 스스로 빛나는 발광체가 돼야 한다”고 했다.


지하·계단·냄새·고기 모두가 ‘봉테일’의 메타포였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7 10:00
《기생충》과 전작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봉준호 월드’의 은유들
치밀한 시나리오와 디테일한 설정은 그를 ‘봉테일’로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은 이 디테일을 이용해 기득권과 사회를 꼬집는 영화를 장르 불문하고 여럿 그려냈다. 처음부터 그랬다. 봉 감독의 초기 단편영화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지리멸렬》(1994)은 성인 잡지를 즐겨 보는 교수와 남의 집 우유를 훔쳐 먹는 신문사 논설위원, 만취해 노상방뇨를 하려다 걸린 엘리트 검사를 통해 ‘무너진 윤리’를 보여줬다. 《플란다스의 개》(2000)는 뇌물을 바쳐야 교수 임용을 받을 수 있는 현실에서, 추천에서 떨어진 시간강사 윤주가 개를 지하실에 감금하고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장면을 통해 지식인의 왜곡된 자의식을 비판했다.

초기 작품들부터 시작된 비판의 메시지는 이후 작품들에서 더 강렬해졌다. 《괴물》(2006)에서는 시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의식이 드러났다. 《설국열차》(2013)는 술과 마약을 즐기는 호화로운 앞쪽 칸과 빈민굴 같은 꼬리 칸의 열차를 그려내 ‘마지막 세상’으로 치환되는 열차 속에서마저 계급이 나뉘는 사회구조를 비판했다. 그리고 《기생충》(2019)이다.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저택에 사는 부잣집 가족의 모습에서, 보편적 문제인 빈부격차와 계급 갈등을 복잡다단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이렇게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데 활용된 봉 감독만의 메타포들이 있다. 그는 《기생충》에서 메타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본 뒤 집으로 돌아가면 켜지는 센서 전등 하나도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봉 감독의 영화에는 그렇게 항상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작품의 의미가 메타포를 통해 등장한다. 그렇다면 《기생충》에 등장하고, 전작들에도 등장한 공통된 메타포는 무엇일까. 그가 영화 곳곳을 통해 보여주는 이 메타포들은 봉준호라는 영화감독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과 그의 작품 세계에 조금 더 깊게 접근할 수 있는 치트키이기도 하다.

지하
《기생충》은 ‘공간’에 주목한다. 계층의 사다리를 상징하는 계단을 가난한 가족들은 거짓을 말하며 오른다. 반지하 집과 지하실, 그리고 지상까지 대비되는 공간은 수평과 수직이라는 좌표로 계급의 격차를 그대로 드러내는 장치다. 봉 감독의 영화에서 ‘공간’은 단순한 무대에 그치지 않는다.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인 아파트부터 그랬다. IMF 이후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심경을 그려내기 위해 아파트를 비리와 부조리 만연의 축소판으로 상정했다. 아파트라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삶을 살아 나가는 경비원, 중산층, 젊은이라는 다양한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공간은 《괴물》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 근대의 상징으로 느껴지는 한강을 영화의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을 했다는 국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설국열차》에서의 공간 설정은 더 노골적이다. 빈부격차에 따른 계급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 빛도 들지 않는 곳에서 삼시 세끼 바퀴벌레를 재료 삼아 만든 단백질 바를 먹어야 하는 꼬리칸, 그리고 그와 대비해 모든 것이 얼어버린 와중에도 풍부한 먹거리와 술이 존재하는 앞칸을 보여준다. 《마더》(2009)는 난개발되고 있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해 모성이라는 전통이 깨지는 과정을 그린다. 결국 그의 영화에서 공간은 영화가 펼쳐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제 의식을 견고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특히 ‘지하’라는 공간은 가장 의미심장하다. 《플란다스의 개》의 변경비로 열연한 배우 변희봉이 보신탕을 끓여 먹는 지하 창고, 《살인의 추억》(2003)의 취조실이 지하였고, 《옥자》(2017)에서는 지하에 실험실과 도축실이 있었다. 그리고 진화한 ‘지하’는 기택의 반지하 집과 《기생충》의 지하 침실로 등장한다. 봉 감독은 고립되고 폐쇄적인 지하라는 공간을 여러 가지 형태의 기이한 공간으로 해석해 낸다.

계단
봉준호 감독은 칸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기생충》을 압축적으로 비유해 달라는 질문에 "계단 시네마"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기생충》을 통해 ‘계단 시네마’는 정점을 찍었다. 그동안 계단은 ‘봉준호 월드’의 중요한 오브제가 돼 왔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통로이자, 반대로 지하로 향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기우와 기정이 과외 교사로 환영을 받으면서 오르는 것도 계단이고, 가정부 문광이 근세가 머무는 공간으로 굴러 떨어지는 곳도 계단이었다.

전작에서도 계단은 종종 등장한다. 《설국열차》는 머리칸과 꼬리칸을 가로 구조로 그려냈지만, 결국 권력의 상징인 ‘엔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계단이 필요하다. 《플란다스의 개》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면서 계단을 통한 수직적인 이미지를 활용한다. 《살인의 추억》에는 경찰서 지하 취조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등장한다. 이 계단은 《마더》의 골목길과 함께, 봉 감독이 대표적으로 활용한 ‘어두운 공간’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냄새
이 부분은 봉 감독의 말을 빌려 보자. 우리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움직이는 동선은 많이 겹치지 않는다. 방문하는 식당도 다르고, 비행기에서 이용하는 좌석도 다르다. 《기생충》에서는 기우와 기정이 신분을 속이고 부잣집에 들어가게 되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한 공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들어오게 된다. 봉 감독은 냄새가 사람의 당시 상황이나 형편, 처지를 드러나는 것이라 말한다.

《기생충》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침범한다.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이 기택과 충숙, 기정의 냄새가 같다고 얘기하자, 기택의 가족들은 “서로 다른 세탁비누로 빨래를 해야 하느냐”는 대사를 뱉는다. 그때 기정은 “지워질 냄새가 아니다”고 말한다. 반지하에서 살아서 나는 냄새라고,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고. 젠틀한 박 사장은 기택의 문제가 ‘냄새’라고 말하고, 이후 기택은 결국 이 부분에서 폭발한다.

냄새는 봉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 형사는 부패한 피해자의 시신을 보고 얼굴을 찌푸린다.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는 형사가 피해야 하는 냄새로 인식된다. 《설국열차》에서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저항군 커티스 일행을 보면서 코를 막는다. 냄새를 서로 맡을 수 있는 거리에서, 그들은 하층 계급과의 접촉을 피하려는 몸짓을 보인다. 그것이 냄새를 거부하는 행위다. 냄새가 감성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괴물》에서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극한 동작대교 사투 신. 손녀딸을 찾는 한 가족의 리더가 카리스마를 보이는 그 장면보다 더 관객들의 마음에 박힌 것은 “늬들 그 냄새 맡아본 적 있어? 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 부모 속이 한번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라는, 희봉의 대사였다.

고기
봉 감독의 영화에는, 고기를 먹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들은 취업을 축하하며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에 함께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다. 고기는 부유층의 당연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냉장고에 있는 한우 채끝살을 ‘짜파구리’에 넣어 달라는 연교의 대사가 그렇다. 이렇게 봉 감독의 작품에서 고기가 등장하는 장면은 욕망, 위선, 악덕을 그려낸 경우가 많았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경비원이 개를 잡아 요리해 먹는 장면을 통해 비리와 부조리함을 보여줬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형사들이 부검실에서 시체를 살펴보는 장면 바로 뒤, 고기를 불판에 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건에 무신경한 형사들은 범죄 용의자로 몰았던 사람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시뻘건 고기를 굽는다.

《괴물》에서 강압적인 수술을 당한 강두가 수술실을 탈출했을 때, 미국 의료진들은 넓은 벌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들이 즐길 수 있었던 만찬이었던 셈이다.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스테이크’는 단적으로 계층의 차이를 보여줬다. 꼬리칸의 사람들이 바퀴벌레 단백질 블록을 먹는 동안, 머리칸의 사람들은 스테이크에 와인을 즐겼다. 열차의 절대 권력자 윌포드가 꼬리칸에서 엔진칸까지 온 커티스에게 스테이크를 대접하는 장면에서는, 일정 주기마다 꼬리칸의 사람들을 학살한다는 충격적인 진실까지 등장한다. 봉 감독의 영화에서 고기를 먹는 행위는, 결코 아름답게 해석되지 않았다. 이는 《옥자》를 통해 증폭된다. 영화 《옥자》는 공장의 가혹한 환경에서 동물을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을 그리고, 이 시스템을 통한 육식과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