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북한은 왜 다시 ICBM을 만지작거리나

일취월장7 2019. 12. 17. 10:14

북한은 왜 다시 ICBM을 만지작거리나

[정욱식 칼럼] 북한의 자제와 미국의 제재 완화가 만나야 한다


북한이 정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우선 북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북한은 지난 7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험"이 진행되었고, 이는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번 변화시키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13일에도 "중대한 시험이 또다시 진행되었다"며, 이로 인해 북한의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는데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미국으로 하여금 이러한 해석을 유도함으로써 미국을 최대한 압박해보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은 14일에 나온 북한의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담화로도 뒷받침된다. 그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의 연이은 시험이 북한의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에 그대로 적용되게 될 것"이라며, 미국과의 "힘의 균형"을 강조했다. "거대한 힘을 비축"해야만, "대화도, 대결도 낯설어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천의 담화를 비롯해 최근 나오고 있는 북한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대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새 계산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에 불만을 표하고 연말을 넘기면 "새로운 길"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연이어 ICBM 관련 시험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도 1차적으로는 이러한 셈법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생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작년에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에는 2017년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을 통해 미국과 "힘의 균형"을 달성한 것이 작용했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연말을 앞두고 ICBM 관련 시험에 나선 것은 또다시 "힘의 균형"을 이뤄 제재 완화를 비롯한 북한의 요구 사항을 관철해보겠다는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변심에 대한 북한식의 '총화 결과'이다.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성명을 보면, 북한의 오랜 주장과 요구가 상당 부분 담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합의의 배치 순서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나열되어 있는데, 이는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해결되어야 핵문제도 풀릴 수 있다"는 북한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모습을 보였다. ICBM 저지라는 급한 용무를 봤다고 여긴 탓인지, 북미 공동성명 이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특히 북한이 제재 해결을 요구할수록 북한의 약점을 잡았다고 여기고는 대북 제재를 유지·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유예라는 선제적인 양보 조치가 결과적으로 미국의 약속 이행을 가져오지 못한 원인으로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뢰에 기초해 미국의 상응 조치를 기대했지만, 이를 압박할 수단을 스스로 거둬들인 것이 패착이었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도 힘이 있어야 자신의 요구에 미국도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믿을 공산이 크다. 그 방식이 바로 트럼프가 최대 업적으로 내세워온 북한의 ICBM 시험 발사 유예를 북한이 철회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낮은 단계의 행동으로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유념해야 할 현실이 있다.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는 것을 싫어하듯이 미국도 북한의 압박에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길 원하지 않는다. 더구나 트럼프는 탄핵 정국에 휩싸여 있어 지금 당장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처지도 못 된다. 북한이 대미 경고를 통해 트럼프의 관심을 다시 환기하는 데에 성공한 만큼, 이제는 미국과의 실무 회담부터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가 탄핵 정국에서 되돌아올 것으로 전망되는 내년 2월 이후에 대타협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미국도 이쯤 되면 깨달아야 한다. 제재가 '딜 메이커(deal maker)'가 아니라 '딜 브레이커(deal breaker)'이라는 것을 말이다. 미국이 제재에 매달릴수록 북한은 한편으로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른 한편으로는 핵전력 현대화에 나서면서 제재가 통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해왔고 앞으로는 그 속도를 높일 것이다. 제재의 목적이 파국에 있지 않다면, 미국도 마땅히 자신이 강조해온 선의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인 것이다. 

때마침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한국에 와 있고, 북한측 인사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북한도 더 이상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 모쪼록 이번에 북미 접촉이 이뤄져 대화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