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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와 경쟁 사회의 또 다른 본질

일취월장7 2019. 10. 8. 09:46


조국 사태와 경쟁 사회의 또 다른 본질

[복지국가SOCIETY] 경쟁 완화 없는 공정성은 사상누각


때 아닌 계급 논쟁이 온 나라를 달군지도 두 달, 공정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정작 논쟁의 선봉에 서야할 가진 것 없는 노동자와 서민은 무관심하다. 오히려 '조국 사태'의 당사자들과 비슷한 경쟁 관계에 있을법한 이들이 논쟁의 중심에 섰다. 대학조차 신분 세습의 도구이자 넘지 못할 장벽이 된 마당이니 소외된 계급은 이제 비판도 질투도 버겁다.

이미 2000년 전 전한 시대의 사마천도 '부의 상대적 차이가 10배 정도이면 질투의 대상이지만, 1만 배에 이르면 스스로 그 부자의 노예가 된다'고 갈파하지 않았던가. 치열한 경쟁 판의 한편에 포기에 단련된 계급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역시 '자본주의교'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실감을 하게 된다.
 

경쟁 사회를 지탱하는 무기력증 

경쟁 사회에서 개인은 철저히 혼자여야 한다. 개인의 이익은 공동체의 이익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사회는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만이 있을 뿐이다'라던 영국 대처 수상의 신자유주의적 모토는 순식간에 모든 개인을 분리함으로써 사회를 철저한 경쟁 구도로 이끌었다. 경쟁이란 상대를 이겨야 하는 게임이니, 법의 경계는 늘 유혹의 영역이 된다. 조국 사태로 드러난, 군사 작전을 연상케 한 입시과정의 부모·자녀 간 합동 작전, 일반인에겐 낯선 사모펀드 등을 활용한 복잡한 자산 운용의 실상을 지켜보면서 '계급을 지키려면 저 정도 몸부림은 해야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교리에 충실했던 계급의 일상은 가진 자의 우아함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계급을 자녀에게 물려주려는 강박감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도 버거운 경쟁 밖 저편의 계급에 견줘도 그다지 여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자본주의교가 각자에게 부여한 임무였고, 그래야 자본의 구도가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일까?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계급들의 반응에서 우리는 경쟁 사회의 또 다른 본질을 보게 된다. 바로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경쟁 사회의 무기력증이다.

역사는 거대한 전환의 변곡점마다 이해 당사자들 간 격렬한 대립과 진통을 겪어 왔다. 중세 봉건제에서 중상주의를 거쳐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지주와 자본가 사이에 격렬한 세력 싸움이 있었다. 가담자는 적어도 무언가 지킬 것이 있는 계층들이다. 중세의 농노나 자본주의의 임금 노동자처럼 경쟁할 조건을 갖추지 못한 계급들은 순응 외에 택할 것이 없다. 그 순응은 저 편의 가진 자 계급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미덕이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기반이 된 협업도 순응의 미덕을 기반으로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협업이 분산된 독립 노동자나 소규모 장인의 생산과정과 대립하여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독특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는 현실의 노동과정이 자본에 종속됨으로써 경험하는 최초의 변화였으며, 수많은 임금 노동자가 동일한 생산과정에 동시에 고용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이 되었다(카를 마르크스 <자본Ⅰ>).

70만 건에 이른다는 조국 장관 관련 기사들은 많은 가짜 뉴스를 양산해내며 온 나라를 달구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실상은 뉴스를 읽는 이의 상대적 패배감을 자극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극도로 불공정한 구조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그대로다. 그러나 누구보다 진보적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인물이 바로 그 불공정 구조에서 혜택을 누리는 쪽에 있었다는 사실은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분노감을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는 데 있다. 분노를 통한 문제의식과 자각은 필요 없었고, 오직 분노의 확대 재생산만이 보수 신문들의 목적이었다. 

진보 신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불공정한 구조에서 드러난 현상만을 주목할 뿐 근본적 대안을 말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일까? 해법은 복잡하고 복잡한 만큼 설명도, 읽는 이를 이해시키기도 난감한 무력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입시 제도를 공정하게 개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쉽게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심정과 같다. 우리 사회의 자본과 깊숙이 연결된 교육 제도의 문제가 입시제를 고치는 것만으로 쉽사리 풀릴 것이라 기대하는 이도 없거니와, 정상화를 기다릴 인내심도 이미 한계에 와 있다. 경쟁 사회가 낳은 무력감은 공정성 의지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反) 자본주의, 실현 가능한 구호일까? 

계급 세습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지만,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공의 시장질서와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해마다 열리는 G20 정상회담장 밖에는 어김없이 세계 시민과 NGO들의 반(反) 세계화, 반(反) 자본주의 시위가 함께 열린다. 특히 복면 시위대까지 대거 등장해 격렬한 반 자본 시위를 이끌었던 2017년 독일 함부르크의 G20 정상회담 때는 개최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가 바짝 긴장하기도 했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면서 정상회담으로 격상된 G20 정상회담은 거시경제정책, 금융규제 관련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정책 방향을 의제로 한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시장질서라는 표면적 목표와 달리, G20 자국의 경제지표 개선을 위한 치열한 각축전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해마다 정상회담장 밖에서 회담을 방해하는 위험천만한 시위가 함께 열리는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현장에서 외치는 그들의 주장은 '반자본주의', 즉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너무 뜬금없고 추상적이지 않은가? 10~20년도 아닌 수백 년 된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철갑처럼 공고해진 자본주의를 무슨 수로? G20 정상들을 향한 이들의 외침은 우리가 겪고 있는 조국 현상의 논점에서도 비껴나 있다. 조국 논쟁이 구체적 현상에 주목한 반면, 반자본주의 시위대는 실현 가능성조차 모호하게도 체제의 근간을 건드리고 있다. 왜일까. 그리고 자본주의를 대신할 어떤 대안이 있기는 한 것일까?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갈등, 반목, 소외, 궁핍, 오염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극심한 빈부격차(양극화), 끝없는 경쟁 체제로 인한 스트레스·정신질환·자살, 그리고 자원의 낭비와 과용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오염, 기아, 전쟁은 도대체 왜 발생한 것이고, 왜 개선되지 못할까. 인간의 이기적 심리에서 오는 광범위한 도덕적 해이 때문일까. 그러나 이것들을 온전히 인간의 심성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우리의 일상을 천천히 따라가 보자. 우리의 생존 터전인 조직(기업)이 나타나고, 그 기업의 가면을 벗기면 자본의 존재가 드러난다. 우리의 하루 일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더듬어 들여다보면, 매 순간 자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자본(대형 건설사)이 제공하는 집, 자본이 만든 안락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자본이 만들어낸 휴대폰을 확인하는 것에서 하루를 시작해,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 낸 온갖 전자기기, 기구, 식품, 플랫폼을 이용하며 하루를 보낸다. 자본이 만들어낸 자동차를 타고 그 자본의 집(회사)에 출근해 자본을 위해 일하고, 다시 자본이 제공한 각자의 집으로 퇴근한다. 이런 구도는 임금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본에 포위되어 살고 있다. 자본의 사슬이 붕괴되거나 일부라도 삐걱거리면 우리 삶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직접 지시하고 명령하는 자가 없어도 사회 전반에 깔린 자본의 인프라를 통해 그 명령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공정성 시비, 무한 경쟁으로 야기되는 빈부격차, 학벌 경쟁, 신분 세습 등 우리 사회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가 자본의 축적 욕망 때문이라면 어떨까? 물론 자본은 극히 일부에게만 승진이나 후한 연봉을 보상함으로써 자부심을 자극한다. 우리의 학벌 경쟁은 애석하게도 이런 자본의 일상에서 좀 더 풍요롭게 누릴 물질적 조건을 쟁취하는 싸움일 뿐이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어떤가? 이 '뿌듯한 자부심'을 위해 끝없는 경쟁에 익숙해지라고 부추긴다. 누군가가 조금 더 가져가고 더 잘 살기 위해 반드시 누군가는 처참하게 희생되는 치열한 경쟁 구도는 공정 경쟁이라는 그럴듯한 외형으로 포장된다. 자신의 몸을 던져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수많은 '김용균들', 최소한의 환경 조건도 부정된 채 열악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쉬고 먹고 일하면서도 다른 계급의 눈치를 봐야 하는 수많은 청소 노동자들의 문제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뜨거운 적이 있었던가. 극성스러운 경쟁적 계급 사회에서 외면 받는 많은 문제들이 과연 반자본이 아닌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G20 회담장 밖 시위대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반자본주의를 꾸준히 이슈화하는 이유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반(反) 자본의 시작, 먼저 자본을 정확히 이해해야 

그렇다면 반자본의 대안은 무엇일까? 당장에 딱히 대안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자본주의 체제의 심각한 실상을 세계에 알려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것, 도대체 자본주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많은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그래서 현재 신자유주의의 방향과 방법은 왜 수정되어야 하는지를 알리자는 것이다.

세계의 거대 자본이 투자 전문가들의 매개 하에 어떻게 가난한 나라와의 거래로 폭리를 취하고 노동을 착취하며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오스트리아의 다큐멘터리 영화 <움켜쥔 땅, 2015>은 자본의 실상을 고발한다. 자본 종속이 가속화하면서 개인의 삶이 파괴되어 가는 캄보디아, 외국인 자본의 급격한 유입과 민영화로 위협받는 루마니아의 농촌,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국민이 현대판 노예로 전락해가는 시에라리온의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앞서 간 나라들의 자본주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설탕 공장에 땅을 빼앗기기 전에는 쌀농사를 지었어요. 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죠. 소금과 식용유만 사면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쌀을 사려고 그 설탕 공장에서 일해야 해요. 애들까지 거기서 일해요." 그들은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났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평온했던 한 시골 마을이 불도저에 밀려 261가구가 불태워진다. 한 상원의원이 소유한 설탕 공장이 마을 주민을 몰아내면서 평화는 깨지고 주민의 노예 생활이 시작된다. 국가 권력은 기득권에게 특혜를 주고, 기득권은 주민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고 공장 노예로 삼았다. 이렇게 생산한 값싼 농산물은 부자 나라의 무관세 혜택에 힘입어 다국적 대기업의 배를 불린다. 다이아몬드, 커피, 코코아 생산에 투입된 아프리카, 중남미 아동의 노동 착취 현장은 이런 자본의 속성 말고 설명할 길이 없다. 

선진 유럽(EU) 국가의 가정에 배달되는 달콤한 설탕과 친환경 원료는 폭력과 노동 착취 등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경제 체제에서 나온다는 무거운 진실을 영화는 말한다. 이 외에도 거대 기업들이 생명공학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유전자 조작 식물들을 광범위하게 생산해내기 위해 멀쩡한 농민을 몰아내고 착취해가는 과정의 영화 <유전자 룰렛: 생명을 건 도박, 제프리 스미스 감독>도 자본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그들이 자국 내에서 반대 여론에 부딪치자 약소국가들의 권력자들과 손잡고 농민들을 점령해가는 과정은 어떤 물리적 전쟁보다 폭력적이다. 

경제 규모 세계 12위가 된 우리나라의 사정도 자본주의 시장 경쟁의 폐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1등이 아니면, 또는 상대를 이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무한 경쟁의 구조는 수많은 사람을 패배자로(실업자 또는 저임금자) 만들어 사실상 도태시키고 있다. 이긴 자의 승리감은 영원할까? 그들도 경쟁에서 밀려 패배자로서 낙인찍히지 않으려면 경쟁을 멈출 수가 없다. 

G20 회담장 밖 시위대의 구호가 왜 '일자리를 늘려라', '복지를 확충해라', '전쟁과 기아를 해결하라'와 같은 개별적 사안의 구호로 끝날 수 없는지, 분명해지지 않는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해결로는 본래의 궤도로 회귀하려는 이 자본의 관성을 막을 길이 없다. 레일 위에서 끝없이 운동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영화 <설국열차>의 모습과 같다. 오늘날 인류가 생산하는 물자는 차고 넘칠 정도지만, 자본은 그들의 거대한 몫을 따로 챙겨둔 채 나머지 몫으로 수많은 사람을 경쟁시키면서 돌아간다. 

공정한 기준? 더 시급한 건 경쟁의 완화 

18세기 초 버나드 맨더빌은 '자본의 축적은 프롤레타리아의 증식'이라는 명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카를 마르크스, <자본I>). "노동자들을 굶어 죽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저축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아무 것도 주지 말아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일하는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은 '적당한 임금'이다. 너무 적게 주면 기질 상 무기력해지고 절망감에 빠지며, 너무 많이 주면 무례하고 게을러진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사회에 행복을 주고 인민을 궁핍 속에서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대다수 사람을 완전한 무지와 빈궁 속에 빠뜨려둘 필요가 있다." 초기 자본주의 이후 인류는 엄청난 물적 풍요를 이루었지만 300년이나 지난 지금의 노동자는 300년 전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치열한 경쟁의 이면에 여전히 그 시대의 순응이 숨 쉬고 있는 것도 그대로다. 

고전파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공통의 이익만 확인되면 즉각 동맹하는 자본의 속성과 달리 노동자는 그 환경적·경제적 취약성 때문에 단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임금 노동자의 취약성을 극복할 방안은 없을까? 영악한 자본이 인간 공동체의 자연스러운 협동 체계를 효율성과 경쟁 체제의 기반으로 처음 차용한 생산 방식이 협업이었다. 다시 우리가 자본의 협업을 모방해 경쟁 대신 협동의 사회를 복구할 차례다.

조국 사태는 또 다시 공정성 시비를 불렀다. 이참에 친일 잔재의 무리들과 보수 야당은 물론, 오랜 적폐 집단으로 지목돼온 검찰까지도 조국 국면을 경쟁의 레이스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공정한 기준만으로 우리는 계급 사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교육 개혁 의지가 경쟁 사회의 폐해를 극복하고 기회 균등의 사회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아무리 공정한 기준이 작동해도 다수의 낙오자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정한 기준이 작동했으니 낙오자들을 버리면 문제는 해결될까?

경쟁의 완화 없는 공정성 기준만으로 끝없는 계급 욕망을 잠재울 수는 없다. 경쟁에서 자유로워지는 방향의 교육 개혁, 자본의 과도한 경쟁 원리로부터 자유로운 교육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과 자본 간의 깊숙한 연결 구조를 단절시킬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경쟁 사회의 물적·인적 자본을 넘어 공공의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생각할 때다. 경쟁 완화를 위한 복지 정책과 사회안전망은 더욱 확충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회의 공동 가치를 실현해나갈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질주하는 자동차 경주에서 사망 사고가 빈번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차량의 견고함 정도에 따라 다치고 사망하는 운전자가 달라질 뿐, 사망자 수는 줄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공정성일까, 감속일까? 빈번한 사고를 방지하려면 경쟁의 완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공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권력형 비리’ 갈림길에 선 조국 사태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7 10:00
진보 성향 시민단체도, 조국 장관 저격…일진일퇴 거듭하는 두 남자
이른바 ‘조국 사태’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검찰이 특수부 검사를 대거 투입하면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 등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조 장관은 한껏 코너에 몰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수사에도 검찰이 확실한 내용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지면서 이번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렸다.?이런 가운데?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진보 성향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전직 고위 간부가 사모펀드 의혹에 대해 “권력형 범죄 가능성”을 언급했고,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조 장관 부부를 고발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조국 수사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검찰은 10월3일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소환조사했다. 현직 장관의 부인이, 그것도 법무장관의 부인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사상 초유의 일이다. 조국 일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이미 정?교수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재판에 넘긴 데 이어, 핵심 의혹인 사모펀드 관련 의혹, 자녀의 입시 과정 전반에 대한 의혹까지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검찰이 주목하는 것은 사모펀드 의혹에 대한 수사다. 수사의 핵심은 조 장관 본인과 부인 정 교수의 관여 여부다. 검찰은 정 교수가 사실상 사모펀드의 실질적인 운영자인 것으로 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PE)의 업무 전반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것이 조 장관의 5촌조카 조범동씨고, 조씨에게 자금을 대주면서 코링크PE의 실소유주 역할을 한 것이 정 교수라는 것이다. 조씨와 정 교수가 코링크PE의 투자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불법적인 행위의 공범인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장관 측은 여전히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조 장관은 지난 9월초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와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아내인 정 교수 역시 “현재 언론에 보도된 의혹들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며 자신에 대한 의혹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조 장관이나 정 교수가 사실상 사모펀드 운영에 개입돼 있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의혹은 진영논리를 벗어나 있다. 진보진영에 속해 있는 김경률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모펀드와 관련한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 권력형 범죄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도 조 장관 일가가 사모펀드와 관련해 사실상 뇌물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조 장관 부부 등 7명을 뇌물죄와 횡령죄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결국 검찰이 조 장관 내지는 정 교수의 개입 여부를 밝힐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검찰이 직접 개입 의혹을 밝힐 ‘키’를 쥐고 있다면, 이 사건은 김 전 위원장의 주장대로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개입 내지는 실소유 의혹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조 장관의 5촌조카가 주도한 금융사건으로 끝날 수 있다.

정경심 교수의 사모펀드 운용 직접개입 여부가 핵심
모든 의혹의 핵심에는 조 장관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있다. 현행법상 조 장관 부부가 단순히 펀드에 투자만 한 것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펀드 운용에 직접 개입한 것이라면 직접투자를 한 셈이기 때문에 현행법에 저촉된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고위 공직자는 직접 보유한 주식총액이 3000만원을 초과하면 매각하거나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 다만 사모펀드는 간접투자라 공직자윤리법상 관련 규정이 없다. 그러나 정 교수가 사모펀드의 운영에 직접 개입했다면 직접투자가 되며, 정 교수와 조 장관이 경제적 공동체라고 한다면 조 장관이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자본시장법 위반 역시 같은 논리에서 가능하다. 자본시장법은 투자자가 펀드 운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검찰은 정 교수가 단순 투자자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5촌조카 조씨의 아내가 코링크PE가 투자한 더블유에프엠(WFM)의 주식 11억원어치를 매입했는데, 이 주식이 정 교수의 차명 주식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정 교수는 또 이 회사 회의에 참가해 매출현황 등을 챙겼고, 1400만원의 자문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명 소유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 교수는 금융실명제법과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코링크PE의 설립 및 운영 과정에도 정 교수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은 여전하다. 정 교수는 조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이후인 2017년 7월 코링크PE의 ‘블루코어밸류업1호’ 펀드에 14억원을 투자했다. 또 코링크 설립 이전인 2015년 12월, 5촌조카인 조씨에게 5억원을 빌려줬다. 검찰은 이 돈이 설립 직후 유상증자에 쓰였고, 정 교수와 조씨가 코링크의 설립 과정과 향후 계획을 공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연스럽게 설립 이후 코링크가 내놓은 블루코어 펀드에 자금을 투자했다는 논리다.

5촌조카 조범동은 어떻게 자금을 모았나
조 장관의 5촌조카 조범동씨는 사모펀드 운용 전반에 손을 댔다. 코링크가 설립한 레드, 블루, 그린, 배터리펀드 운용 과정 모두에 조씨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조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내정된 이후부터 조씨의 역할이 커졌다는 점에서 조씨가 조 장관 일가를 등에 업고 투자자를 모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런 의혹은 최근 조씨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더 커졌다.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입수한 녹취파일에 따르면 2017년 5월11일 정?교수가 출자한 코링크PE의 투자금 유치를 위해 열린 미팅에서 한 투자자가 수익실현이 가능하냐는 취지로 질문하자 조씨는 “권력이 통한다는 가정하에”라고 답했다. 유 의원실에 따르면 미팅 시점은 조 장관이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내정된 다음 날이었다. 한국당에서는 조 수석 임명 직후 투자금 유치를 위한 미팅에서 조씨가 투자자에게 ‘권력’을 언급한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이 가진 영향력을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경률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도 자금 흐름에 의문을 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조범동에게 기적과 같은 ‘귀인’들이 나타난다. 익성 주식을 40억에 사주고, 1년 전에 산 비상장주식을 3배 가격에 판다. 이 귀인은 곧이어 조범동에게 상장사 WFM의 주식 53억원어치를 그냥 주신다. 5촌 당숙이 민정수석이 되고, 또 당숙모는 펀드에 20억 넘게 태우겠다는 딱 그때를 전후로 한때”라고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10월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권력형 범죄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 수일에 걸쳐서 몇 명이 밤샘하면서 분석했다. 심각한 문제가 있고 더 크게 발전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역시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코링크PE에 유입된 자금이 조 장관에게 제공된 ‘뇌물’ 성격이 짙다고 봤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10월2일 고발장을 접수하며 “조국 법무장관이 66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정 교수는 WFM으로부터 자문료까지 받으며 기업의 사업 확장에 이익을 줬는데 이를 조 장관이 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유류판매 업체를 하다가 WFM 대표를 맡았던 우아무개씨(60)가 55억원 상당 주식을 코링크PE에 무상으로 준 것, 가로등점멸기 업체인 웰스씨앤티가 단기대여금 명목으로 10억원을 조 장관의 5촌조카 조범동씨 등에게 전달한 것 등은 모두 뇌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공동대표는 또 “조 장관이 즉각 사퇴하고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장관 입김 작용했다는 증거 나와야”
앞서의 의혹들에 대해서는 현재 검찰도 상당한 혐의점을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 특수부 전체가 투입되다시피 한 이유도 제기된 의혹이 많고, 조 장관과 정 교수가 직접 개입했는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 교수를 검찰이 기소한 것은 사문서 위조에 해당하는 딸의 표창장 위조 혐의뿐이다. 통상 사문서 위조의 경우에 형벌이 크게 내려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모펀드 의혹이야말로 조 장관을 둘러싼 권력형 비리 여부를 가름할 가장 중요한 전장(戰場)이다. 수사 결과 권력형 비리로 밝혀진다면 조 장관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모펀드 관련 사건은 5촌조카인 조씨가 연루된 금융사건에 그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 조 장관이 직접 개입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알려진 바 없다. 금융범죄를 주로 다루는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처음 사모펀드 관련 의혹이 나왔을 때, 남부지검에서 수사가 진행될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전형적인 금융사건의 패턴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장관과 관련됐다는 의혹이 거세지면서 중앙지검 특수부가 투입됐다. 결국 모든 수사는 조 장관 부부의 직접개입 여부를 밝힐 수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만약 정 교수가 직접적인 개입을 했다고 한다면 ‘이면계약’이 존재해야 한다. 문제는 사모펀드가 개입된 M&A 시장에서는 이면계약이 있다 하더라도 구두로만 할 뿐, 보통 문서자료로 보관하지 않는다. 검찰이 이 부분을 규명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익성과 WFM 등 코링크 관련 자금 흐름을 분석한 한 주식투자사 관계자는 “조범동의 경우에는 처벌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봤을 때 정 교수까지 엮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 교수는 자금을 댄 ‘전주’로 이용됐을 수 있다. 검찰의 목표는 펀드와 관련해 정 교수를 기소하는 것일 텐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혐의 입증을 자신하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수사 내용에 대한 언급은 피하면서도 “지금까지 여러 물적 증거를 수집했다. 재판에서 이 증거들을 통해 혐의를 입증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막대한 특수부 인력이 투입된 수사에서 출구는 공소장뿐이고, 압수를 통해 확보한 증거로 혐의를 밝히면 되는 것”이라며 “수사가 차분한 가운데서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文대통령, 약속대로 하면 된다

[장석준 칼럼] 대학 서열 구조는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연결고리


조국 논란은 한국 사회에 소중한 기회다. 검찰 개혁 뿐만 아니라 교육 불평등과 계급-계층 사다리 같은 근본 문제들을 새삼 강렬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 논란은 또한 장벽이기도 하다. 모처럼 화제에 오른 이 문제들을 조국 찬반의 회오리로 다시 가려 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9월 30일 발표된 전국 교수-연구자-대학원생 성명서는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촛불항쟁의 정신을 되살려 전면적 사회대개혁에 나서자!"라는 제목의 이 성명서는 "검찰 개혁의 역사적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구조적 불평등과 소수 특권집단이 구축한 '캐슬'의 교육적-문화적 특권과 차별, 이로 인한 광범위한 박탈감과 환멸이 근본적 문제임"을 직시하자고 촉구한다. 성명서가 강조하는 대안은 "전 방위적 경제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경제, 노동 그리고 교육 개혁이 시급하다. 이 중 교육 개혁에 대해서는 이미 조국 논란 초기부터 정부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9월 1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대입 제도 재검토"를 지시했다. "현행 입시 제도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이었다. 조국 논란 와중에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쟁점이 된 탓에 나온 발언이기도 하지만, '교육 개혁'이라고 하면 입시 제도의 이러저런 변경부터 떠올리는 한국 사회 상식을 충실히 반영한 대응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입시가 좀 더 '공정'해지기만 하면 되는가? 정말 입시 제도 변경이 지금 필요한 교육 개혁의 핵심 내용인가?  

대학 서열 구조는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연결고리 

입시 제도가 문제라는 이들은 대개 학종 같은 수시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한다. 금수저에게만 유리한 입시 제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은 정시 확대가 된다. 더 나아가 아예 정시가 100%였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있다. 시험 한 번으로 대학을 결정하던 방식이 더 '공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학종은 문제가 많다. 학생부 수상 경력 기재나 자기소개서처럼 부모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하는 요소들은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수시 안에 학종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부교과전형도 있고, 금수저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이들에게 대학 교육의 문을 여는 고른기회 전형이나 지역균형선발 전형도 있다. 이들을 다 없애거나 줄여서 정시 중심 체제로 돌아가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만약 정시 중심 체제로 돌아간다면, 2000년대처럼 사교육이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미 경험했듯이 사교육의 비대한 성장은 공교육을 황폐화시킨다. 하지만 이것만 문제가 아니다. 돈 많은 집안일수록 더 많은 과외 수업을 시킬 수 있고 웬만하면 이는 시험 성적 차이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미 작년에 서울대는 정시 비율을 늘리면 강남3구 출신 합격자 비중만 늘어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정시가 모든 계층에게 더 '공정'하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이렇듯 입시 제도는 이리 바꾸든 저리 바꾸든 한계가 많다. 뭔가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한, 입시 경쟁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입시 제도 변경은 늘 변죽만 울릴 것이다.  

그 문제란 결국 계급-계층 불평등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입시 경쟁을 통해 특정 대학 졸업 증명서를 획득하느냐 혹은 못하느냐에 따라 계급-계층 지위가 결정된다. 4년제 대학 졸업장을 지닌 사무직-기술직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너무나 크다. 게다가 전자 안에서도 이른바 '수도권 명문대학' 졸업장을 갖춘 이들은 관료 체계를 통해 안정적으로 성공 사다리를 오르는 반면 나머지는 이를 바라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교육 개혁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어차피 계급-계층 구조 자체를 손보지 않는 한, 교육 제도는 아무리 바꿔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헛되이 교육 개혁을 논하며 시간을 허비할 바에는 차라리 노동 개혁에 매진하는 쪽이 낫다고도 한다. 노동시장을 뜯어고쳐 임금소득자 내부의 소득 격차를 줄이면 계급-계층 사다리에서 더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입시나 취업 경쟁도 줄어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언제나 실현될 수 있을지,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해법이기도 하다. 게다가 임금 격차 완화는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계급-계층 간 힘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득 격차를 줄이려면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임금 차이를 최소화하는 단체협약을 쟁취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여러 계기, 숱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입시 제도 개혁론과 노동 개혁 우선론은 한국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양 극단의 시각이라 할 수 있다. 한 쪽은 지나치게 부분적 문제에 집착하고, 다른 한 쪽은 너무 근본적인 문제만 바라본다. 전자에만 매몰되다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기성 질서 안에서 맴돌 테고, 후자만 강조하면 교육 문제에는 손을 놓게 될 것이다. 둘 다 기존 교육 '구조'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혹시 두 접근법이 서로 만나는 중간 지점은 없을까?

있다. 입시 경쟁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피라미드처럼 늘어선 대학 서열 구조에서 보다 위쪽으로 진입하려는 경쟁이다. 다른 한편 노동시장 불평등 구조의 골간에 자리 잡은 것은 무엇인가? 대학 졸업 여부, 명문대 졸업 여부다. 즉, 입시 제도와 계급-계층 불평등의 중간에 바로 대학이 있다. 대학 서열 구조가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이음매 구실을 한다.  

그렇다면 출발점은 분명하다. 대학 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학 서열 구조 해체에 나서야 한다. 대학 서열 구조 해체야말로 한계가 너무 큰 개혁 방안인 입시 제도 변경과 너무 장기적 개혁 과제로만 보이는 계급-계층 불평등 해소를 잇는 꼭짓점이다. 대학 개혁을 추진하기만 한다면, 이는 부분적 개혁과 근본적 개혁, 두 방향 모두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이미 구체적인 대학 개혁 방안이 있다. 공동 선발-공동 수업-공동 학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대학 평준화가 그것이다.  

대학 개혁의 요체는 대학 서열 구조 해체  

입시 중심 교육과 대학 서열 구조에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은 이미 2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부터 대학 개혁 방안을 고민했다. 정진상 교수(경상대, 사회학)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책세상, 2004)가 이 시기에 나온 대표적인 저작이다. 이 책에서 정진상은 서울대를 포함한 국공립대학들을 학생 선발과 수업, 학위 수여를 함께 하는 통합네트워크로 묶자고 제안했다. 이 통합네트워크는 별도 입시 없이 대학입학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들을 지역별로 선발한다. 이러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방안은 곧바로 민주노동당 등 진보 세력의 교육 개혁안으로 채택됐다.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안도 진화를 거듭했다. 기존 국공립대학들을 바탕으로 공동 선발-공동 수업-공동 학위의 대학연합체제를 구성하고 현행 입시는 대학입학자격고사로 대체한다는 기본 내용은 유지됐지만, 논의와 연구를 거듭하며 여러 내용이 덧붙여졌다. 너무 복잡해져서 때로는 이 점이 대학 개혁 운동의 대중화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가령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가 펴낸 <입시-사교육 없는 대학 체제: 대학 개혁의 방향과 쟁점>(한울, 2015)에는 참으로 다양한 세부 방안과 실행 계획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골자는 복잡할 게 없다. 공동으로 학생을 뽑고 공동으로 학위를 주는 대학연합체제를 구축하여 현재의 대학 서열 구조를 타파한다는 것이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등장하기 전에 고등학교 체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개편했던 전례에 따라 이름 붙인다면, '대학 평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방향에서 지금껏 제출된 개혁안들의 핵심을 가장 간명하게 정리한 문헌으로는 교육혁명공동행동 연구위원회가 펴낸 <대한민국 교육혁명: 교육 체제의 혁명적 전환, 미룰 수 없다>(살림터, 2016)가 있다.  

< 대한민국 교육혁명>의 개혁안이 2000년대 대학 개혁안과 크게 달라진 점은 공동 선발-공동 학위의 대학연합체제에 상당수 사립대학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국공립대학 비중이 24%에 불과하다. 비슷한 경제 수준 국가들 가운데 국공립대학 비중이 이렇게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혹시 이것 역시 일제 잔재인가. 아무튼 이런 상태에서 국공립대학들만 통합해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특히 수도권에는 사립대학들이 밀집한 반면 국공립대학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서울과기대 정도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혁명>은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사립대학들을 대학연합체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립대학들은 공적 재원을 지원받는 만큼 이미 준공영 체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은 연세대나 고려대 같이 대학 서열 구조의 수혜를 받는 이른바 '명문' 사립대학일수록 현재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계속 이런 지원을 받는다면, 이들 대학 역시 대학연합체제에 합류해야 할 것이다. 이를 반대한다면, 이들 대학은 국고 지원 없이 완전히 자력으로 생존해야 할 것이다.  

남는 문제는 대학 서열 구조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서울대다. <대한민국 교육혁명>은 서울대를 수도권 대학연합체제에 통합시키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만 되면 대학연합체제가 구축되더라도 다시 그 안에서 수도권-비수도권 간 서열화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 어쩌면 서울대의 학부 과정은 수도권 대학연합체제에 통합하되 대학원은 학과별로 지역 거점 국립대로 이전하는 방안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런 조치는 권역별로 계열이 특성화된 대학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손우정, "서울대 전국 대학화 전략?: 권역별 계열 특성화 공공네트워크 모델", <입시-사교육 없는 대학 체제>) 강력한 지역 균형 발전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방책들은 이미 갖춰져 있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현 집권 세력이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약속한 내용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조기 대선을 앞두고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21세기북스, 2017)에서 이렇게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대학 서열화를 없애고 전문 분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대학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예를 들면 공동입학, 공동학위제가 가능합니다. 이 과목은 저 대학에서, 저 과목은 이 대학에서, 단순히 학점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학위를 주는 겁니다. 제가 지난 대선[2012년 대선-인용자] 때 국공립대학부터 먼저 공동입학, 공동학위제를 하겠다고 공약을 했었습니다 ... 그러면 적어도 서울대학과 지방 국립대학 간의 서열화는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 이 제도가 정착되면 사립대학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약속: 행동하는 양심,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약속", <대한민국이 묻는다>)

이 약속대로 하면 된다. 이제 우리는 더는 주저하지 말고 이 약속의 즉각적 이행을 요구해야 한다.  

대학 평준화와 무상화를 결합하자 

대학 평준화는 대학을 둘러싼 또 다른 중요한 개혁 과제들과 결합해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예컨대 대학 교육 무상화가 그렇다. 대학 무상화는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현실이고, 버니 샌더스 운동이나 영국 노동당 같은 영미권 좌파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는 대학 평준화와 연동해 단계적으로 대학 교육을 무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대한민국 교육혁명>이 이미 제시하는 대로 대학연합체제에서는 등록금을 대폭 낮춰야 한다('반값 등록금'). 대학연합체제에 합류한 사립대학은 국고 지원을 받는 대신 학생들에게 받는 등록금을 인하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학연합체제에서는 등록금을 폐지해야 한다. 대학연합체제의 이러한 단계적 무상화는 학생들이 서열화된 잔존 사립대학 대신 대학연합체제를 선택하게 만드는 중대한 유인 요소가 될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 대학이 요구받는 개혁 과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인구 구조와 지식-기술 환경 변동에 따라 앞으로 대학은 성인을 위한 평생 교육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한 정보화 혁명(유행에 따라 과장을 좀 섞으면 "제4차 산업혁명")에 부응해 교육 체계와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구 자본주의, 지구 정치 질서, 지구 생태계의 3중 위기에 맞서 교육 내용도 새로 짜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과제도 관료화되고 기업화된 현 대학 체계를 뒤흔들지 않고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대학 평준화는 이런 화석화된 대학 체계를 크게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단순한 대학 '개혁'이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 '혁명'의 출발이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한다.

조국 논란은 의도치 않게 한국 사회에 이 혁명의 시급함을 상기시켰다. 진보 세력이 오랫동안 주장하기는 했지만 가장 급한 과제들 목록에서는 항상 빼놓기 일쑤였던 대학 개혁을 이제는 맨 앞에 내세우자. 소리 높여 입시 철폐-대학 서열 구조 타파를, 대학 평준화-무상화를 외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