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제국주의 부활 꿈꾸는 일본을 넘어서려면 - 강대국 각축전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길은

일취월장7 2019. 8. 23. 15:27

제국주의 부활 꿈꾸는 일본을 넘어서려면

[최창렬 칼럼] 해방정국의 역사인식과 극일


일본의 대표적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는 우익의 '대본영'으로 불린다. 대본영은 일제가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수행했던 군국주의 군부의 지휘부를 일컫는 말이다. 일본 최대 규모의 극우단체가 '대본영'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극우가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향수가 강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도발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와 백색국가 제외 등 경제보복에서 비롯한 한일 갈등은 미시적 국면에서 어떤 형태로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갈 것이다. 수출규제 품목 중 포토리지스트에 대해 삼정전자에 한해 2건의 수출허가를 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건강한 시민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일본 우익은 제국주의 일본 부활이라는 망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일 갈등이 결코 대법원 징용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이유이다. 경제보복도 추격하는 한국에 제동을 거는 의미도 있겠으나 본질적으로는 한국 등 주변국과의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켜 일본 우익이 결집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기 위함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일본의 경제보복에서 비롯한 한일 갈등의 기원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이다. 일본은 조선 침략은 물론 중국·대만 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광범하게 침략하고 결국 미일 전쟁을 통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의 전초를 다졌던 전범국가다. 일본 경제 거품의 붕괴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은 '제국의 영광'은커녕 국가 전체가 위기의식에 빠지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전략이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향수와 이어지면서 극우 세력의 개헌 시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패망 이후 미국에 자발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재기의 길을 모색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기지로서 일본의 존재가 필요했고, 미·일은 상호 이익의 관점에서 동맹을 형성했다. 미일동맹은 아시아에서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고 러시아의 남방 진출을 억제하는 주요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의 하위 개념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해방 직후 맥아더가 발령한 작전명령 4호에 의하면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를 일본 본토와 구별하지 말고 "천황 및 일본 제국의 각종 통치 수단을 통해 통치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남한에 진주한 미 24군단장인 하지 중장이 일제 관료기구에 협력하던 조선인과 총독부 행정기구를 통치의 기제로 활용하고 친일 세력 부활의 결정적 계기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1943년의 카이로 선언에서는 "한국을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로 만든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독립을 장래에 약속하면서도 '적당한 시기'라는 조건을 붙였다. 여기서 적당한 시기의 의미는 국제적인 한반도 신탁통치와 그 후의 독립을 의미한 것이다. 카이로에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약속한 후에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신탁통치 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해방공간에서 좌익과 우익을 가른 결정적 명분, 신탁통치를 둘러 싼 찬탁이냐 반탁이냐는 무수한 희생과 증오를 잉태한 이념 갈등의 단초요 핵심 명제였다. 그러나 모스크바 미·영·소 삼국 외상회의의 결정의 핵심은 남과 북이 하나의 임시조선민주정부(provisional Korean democratic government)를 수립한다는 것이었다. 신탁통치는 이를 위한 방법론을 담고 있는 내용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최장 5년 기간의 미·영·중·소 4개국이 후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탁통치를 주도적으로 주장했던 측은 미국이었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왜곡은 어이없게도 1945년 12월 27일의 동아일보의 기사에서 비롯됐다. 기사의 내용은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은 그 구실로 삼팔선 분할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다. 그러나 삼상회의에서는 조선의 즉시 독립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는 분명한 오보였으나 이 기사는 사태를 결과적으로 왜곡했다.  

신탁통치를 주장한 측은 미국이었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무분별한 반탁운동에 미국은 오히려 경악했고, 미소가 남북에서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명분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된 게 한국의 현대사다. 그리고 1919년 3·1 독립운동 직후 이승만은 윌슨 대통령에게 장래의 독립을 전제로 한국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아래 놓아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한 사실 등은 잘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 극우 집단의 군국주의 부활 야욕과 국내의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냉전세력의 반역사적이며 비민주적 인식들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우리는 일본을 극복할 수 없다.  
 
수구세력, 친일세력의 뿌리는 하나다. 세월호 참사와 5·18 민주화 운동 망언을 일삼는 인사들은 한일 갈등에 대해서도 국민의 정서와 인식과는 동떨어진 극단적 인식을 유튜브 등에서 주장하고 있다. 냉전사고와 친일의 뿌리가 같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작업도 경제· 외교적 해법과는 다른 트랙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역사 왜곡을 일삼는 것을 바로잡아야 하듯이 해방정국에서의 이데올로기 갈등, 제주 4.3 민중항쟁과 여순 항쟁 등을 좌익의 폭동으로 왜곡한 역사도 바로잡아야 한다. 분단과 냉전의 극복은 극일과 맞닿아 있다.     



강대국 각축전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길은

[한반도 브리핑] 일본의 역내균형전략과 미국의 동맹정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이 생각하는 국제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힘(power)'이라는 것이다. 국가들을 통제하는 상위의 권위체가 없는 무정부상태(anarchy)인 세계정치에서 상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대표되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는 힘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다.

그런 세계정치의 생리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찾아가는 방안으로 현실주의가 또한 중시하는 것이 '자조'(自助, self-help)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돕는 것, 즉 자신의 능력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계를 비관적으로 보면서 약소국의 재량 공간을 좁혀놓는다는 점에서 현실주의는 그다지 매력 있는 국제정치이론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투키디데스가 군비를 증강하면 상대는 군비를 더 증강해 오히려 안보상황이 불안해진다는 안보딜레마를 지적한 이래 마키아벨리, 토마스 홉스, 한스 모겐소를 거쳐 헨리 키신저까지 수많은 국제정치 거장들의 지지를 받아왔고 지금도 국제정치를 설명하는데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의 동북아국제관계는 특히 '자조'를 강조한 현실주의 이론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일본의 최근 퇴행적 행보는 역내균형전략(Intraregional Balancing Strategy)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적 현실주의자 존 미어샤이머가 강조하는 것은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이다. 강대국들은 다른 지역에서 강자가 출연하는 것을 막아 세계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태평양 건너 아시아 대륙에서 중국이 패권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일본은 범위를 좁혀 아시아 지역 내부에서 균형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합과 성장을 막아 아시아지역 내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수출규제로 한국의 성장을 저지하려 하고, 북한에는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남북 사이에서 반간의 계책을 부리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반대하고, 재한 일본인의 전시대비 훈련을 주장한 데에서도 일본의 의도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니 그 이전 6자회담에 참석해서도 북핵 문제 해결보다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우선 강조하는 태도에서부터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문제의 진전은 일본의 관심 밖이었음이 여실히 나타나 있었다.

그런 기저에서 일본은 북한을 되도록 기묘한(idiosyncratic)한 존재로 몰아가고, 되도록 도발적인 국가로 부각시키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악마로 묘사해왔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의 정부와 언론이 공조를 해왔다. 북한 취재에 관한 한 일본언론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열성적인데, 그만큼 목표와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억누르면서 북한은 기이한 존재로 만들어 한반도 통합은 저지하고, 미국, 호주, 인도, 아세안과 손잡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대해보겠다는 것이 일본의 외교전략인 것이다.  

우리의 동맹국 미국은 어떤가? 우선, 북핵문제 해결에 대해 유연한 입장으로 갈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게 문제해결의 길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임에도 미국은 그쪽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가끔 단계적 비핵화로 갈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그런 모습을 이내 감춰버린다.  

신뢰가 부족한 국가 사이에서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의 의도를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단계가 필요하다. 북미 간에도 70년 이상 쌓인 불신이 있다. 이를 전제한다면 비핵화도 단계적으로 주고받기를 하면서 불신을 신뢰를 바꾸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 마무리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  

그런데 미국은 그런 단계적 비핵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미 대선 정국으로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완전히 파기하는 빅딜이 아니면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운신의 폭이 좁기도 하다.  

대신 미국은 방위비를 증강하고,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문제에 관심이 더 많다.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중거리미사일을 동아시아에 배치하겠다는 생각도 피력했다. 동맹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안보라는 공공재를 공동으로 생산하기 위해 동맹을 형성하지만, 동맹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정치의 과정이 계속된다. '너는 돈을 좀 덜 내는 것 아니냐'는 의무을 제기하는 무임승차론, '너를 따라가다 나까지 전쟁을 하는 것 아니냐'는 연루(entrapment)에 대한 우려, '너무 상대의 얘기를 안 들어주다가는 버림받는 것 아니냐'는 방기(abandonment)에 대한 걱정 등이 동맹당사국을 밀고당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의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무임승차론을 노골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또, 이란과의 핵합의를 버리고 스스로 유발한 호르무즈 위기에 한국을 개입시켜 연루를 심히 염려하게 하고 있다. 1980년대 말 탈냉전의 관문 역할을 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도 파기하면서 동아시아에 중거리 핵전력을 배치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쳐 더 깊은 연루에 대한 걱정도 유발하고 있다.  

비핵화협상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의 남북관계 개선 조치 등에 대해서는 범범한 태도를 보이면서, 동맹정치에 몰두하고 국익확보에 진력하는 모습은 66년 동맹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신냉전시대 남방 삼각협력의 핵심당사국 일본과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관찰하면서 현실주의가 말하는 '자조'를 새삼 천착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자신(self)의 능력의 중요성을 새로이 실감하게 된다. 일본과 미국은 셀프가 크다. 그러니 스스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면서 다른 나라를 압박하기도 한다.  

'자조'를 위해서는 셀프를 충분히 키우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남과 북을 우리의 셀프로 묶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평화경제를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판하는 세력도 있으니 왜 어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향점은 그쪽이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나아가 정치적으로 가까워지는 남북만이 셀프를 획기적으로 키우는 길이고, 주변국의 퇴행과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