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노화가 일으키는 변화에 적응하는 법

일취월장7 2019. 8. 21. 12:22

노화가 일으키는 변화에 적응하는 법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나이 들면 건강 수식의 조건이 달라진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환자께서 묻습니다.

"애들이 좋다며 외국에서 판다는 보충제를 사다 줘서 먹는데, 왜 이렇게 안 나을까요?"

"말씀하신 제품이 환자님에게 도움이 되긴 할 겁니다. 안 드시는 것보다 나을 거예요. 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약도 암환자의 경우에는 기본 처방의 2~3배를 쓰기도 하거든요. 방향성이 맞아도 그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만족할 만한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아마 20년 정도 전이었다면 그 정도로도 선생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안 되는 것이죠." 

진료를 하다보면 금방 나을 줄 알았는데 무슨 수를 써도 잘 낫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 환자들을 보게 됩니다. 좋다는 치료도 받아보고 약도 먹고 주사도 맞고 보충제도 먹지만,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지요. 이런 현상은 특히 아직 자신은 노화의 행렬에 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중년 이후의 환자들에게서 자주 봅니다. 병이 중하면 스스로 어느 정도 납득하지만, 별 것 아닌 듯한 병증이 잘 낫지 않고 오래 가거나 재발을 반복하면, 치료를 받으면서도 볼 멘 소리가 나옵니다. 특히 한의원에 올 때는 어느 정도 병원 순례를 거친 후이기 때문에 심신이 모두 지치고 예민한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분일수록 시간 여유를 갖고 건강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회복될 때까지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생활습관도 바꿔야 하는데, 이 부분에는 소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담하다 보면, 이런 환자들의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은 침 치료 몇 번 받고 잠 좀 더 자면 몸이 낫던 20대에 맞춰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이 너무 일찍 늙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회복력'이라는 단어를 즐겨 씁니다. 

"20대에 할 수 있었던 일을 지금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같은 물리적, 감정적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몸이 이전과 같은 상태를 회복하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리고, 때론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회복이 채 덜 되었을 때, 혹은 과로의 흔적이 남은 상태에서 또 다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몸에는 산화적 스트레스라고 불리는 마이너스적인 요소가 쌓이게 됩니다. 이것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만성화된 염증이고 노화이고 암이나 치매와 같은 중한 병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세포수준에서도 발생합니다. 젊었을 때는 감염이나 손상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만 처리해 주면 세포가 금세 정상적인 활성을 회복하지만, 나이가 들면 세포 내부에서 발생하는 산화적 스트레스가 늘어납니다. 이것은 한번 제거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 젊은 세포와 다릅니다. 그럼 우리 몸은 외부의 감염에 대응하듯 똑같이 염증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이것이 결국 만성염증과 노화와 관련된 병으로 이어지지요. 이처럼 내부에서 새는 문제는 소염제로도 보충제로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같은 병과 치료라는 수식을 세울 때 기본조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플러스 100을 기본으로 깔고 병이란 마이너스에 치료란 플러스를 더한다면, 중년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마이너스 100을 기본에 깔고 수식을 풀어야 합니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병은 같아 보여도 그 해법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드러난 증상이 같으면 그 치료법 또한 똑같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운 좋은 경우를 빼면 만족스런 답이 나오지 않고, 환자는 지치고 예민해지지요.   

수학 문제를 풀 때는 문제를 잘 읽고 주어진 조건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 속에 답이 있다고도 합니다. 건강과 질병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내가 바라는 답을 위해 문제와 조건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정확하게 드러난 문제와 주어진 조건을 이해해야 하고, 이것이 잘 이루어져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된다'는 게 아니라 해결의 실마리라고 표현한 것은 환자 스스로, 그리고 의사와 함께 풀어가야 할 방법을 이제 찾았을 뿐, 알았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자신의 몸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해야 하고, 의사 또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치료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여기에 병의 상태에서 벗어나는데 충분한 시간이 더해지면 비로소 만족스런 치료가 완성됩니다. 아주 일부의 예외는 있지만 병, 특히 중한 병일수록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생물 시간에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세포 내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를 기준으로 설정할 때, 인간의 수명은 114~120세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생명의 불꽃이 자연적으로 꺼지는 시점이고, 그 불길이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때는 그보다 훨씬 이전입니다. 이것은 단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입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성공한 예도 없고 성공하는 것이 그리 아름다운 일도 아닐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 생의 주기를 잘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적절한 방법을 강구한다면, 노화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들을 가능한 생의 후반부에 짧게 겪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의학에 주어진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