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치매 예방약'이라는 달콤한 거짓말

일취월장7 2019. 5. 15. 09:38

'치매 예방약'이라는 달콤한 거짓말

[그 약이 알고 싶다] ① 치매 예방약은 아직 없다


(*'그 약이 알고 싶다'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획 연재입니다. 편집자주)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품 재평가를 통해 대표적인 치매 치료제 성분인 도네페질이 혈관성 치매에는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뇌세포 회춘제라고 불리우던 아세틸 엘카르니틴 제제도 치매에 직접적인 효과가 없다고 판명되었다. 도네페질은 이제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대해서만, 아세틸 엘카르니틴은 2차적 퇴행성 질환에 대해서만 적응증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내용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치매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약제는 총 4가지인데, 작년 8월 프랑스 정부는 이들 약에 대한 보험 급여를 중지를 발표했다. 그 이유는 첫째, 이들 약들이 효과가 미미하고 일시적이며 둘째, 심각하고 때로 치명적인 부작용을 나타내며 셋째, 다른 약들과의 상호작용이 너무 많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약들을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삭제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며, 환자들과 가족들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약에 의존하는 시대를 끝내고 실질적인 육체적, 정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안에 정부 기금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 그동안 치매 치료제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어 왔다. 현재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도네페질, 갈란타민, 리바스티그민, 메만틴은 병의 진행을 막거나 치료해 주는 약들이 아니라 증상을 약간 늦춰주는 약에 불과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8년 연구에 따르면 도네페질을 복용한 환자들은 인지 능력을 측정하는 테스트에서 단 3점이 개선되었고(70점 등급), 메만틴을 복용한 중등도 환자들은 인지 능력 개선에서 3점(100점 등급), 일상 생활 수행 개선도는 1점(54점 등급), 행동 개선은 3점(144점 등급) 상승을 보여주는 등 알츠하이머 치료제들의 임상적 효과에 대한 의구심은 끊이지 않아왔다.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는데 도네페질, 갈란타민, 리바스티그민 등은 심박수를 느리게 하거나 심차단, 실신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으며 메만틴은 어지러움, 두통, 췌장염, 신부전 등의 우려를 낳고 있다. 가장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 대다수 환자들이 만성질환 약들을 이미 많이 복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츠하이머 약들은 심장약, 혈압약, 신경병약 등 수많은 약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환자를 더욱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여기에 국내 치매약 시장에는 또 다른 복병이 숨어있다. '뇌세포 회춘제'라는 아세틸 엘카르니틴, '치매 예방약'으로 불리우는 글리아티린 등이 치매를 두려워하는 노인층을 무차별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글리아티린의 경우 매년 약 2000억 원이 말 그대로 쏟아 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어 폴란드,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서만 허가를 받은 약으로 미국에서는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나 요즘 깜빡 깜빡 잘 잊어버리는데요' 정도의 자가진단을 가지고도 어느 병원에서나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글리아티린은 왜 한국에서만 유독 인기 절정일까? 글리아티린을 판매하는 회사들은 치매의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나, 경도인지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는 것이 세계적인 중론이다. 전 세계적으로 치매, 경도인지장애 환자 증가에 따른 의약품 개발에 수많은 자원이 투하되고 있지만 글리아티린은 전혀 그 관심 밖에 존재한다. 이번 식약처 임상재평가를 통해 아세틸 엘카르니틴은 그 거품을 일정 정도 거두게 될 것이라 기대해볼만하지만, 그보다 훨씬 막대한 재정을 갉아먹고 있는 글리아티린의 앞날은 여전히 탄탄대로일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  

기대 수명이 길어진 이 시대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은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 주사 한 방, 혹은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완벽한 알약 하나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직 우리에게 그런 시대는 열리지 않았다. 지난 15년간 약 120개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임상연구들이 실패로 돌아가고, 거의 매년 거대 초국적 제약사들이 치매 치료제 임상시험에서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쉽사리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치매는 한자로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로 적는다. 어리석고도 어리석다는 뜻일까. 우리 모두는 늙어간다. 그리고 치매는 두렵다. 그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뇌세포를 회춘시키고, 치매를 예방해주는 약을 찾는다. 그러나, 그런 약은 세상에 없다. 최소한 아직은 없다. 과연 노화의 끝자락에 찾아온 치매가 어리석은 것인지, 신기루 같은 약을 허가하고 판매하는 식약처와 제약사가 어리석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본 글은 [건약의 의약품 적색경보 19호_치매예방약, 부모님의 두려움과 자식의 죄책감을 팔다]와 [그 약이 알고 싶다 5th_ 치매에 약이 있다는 희망부터 버리기]를 일부 수정한 글임을 밝힙니다. 필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