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北 '로동자' 출신 경화 씨 이야기 - '김정은 경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

일취월장7 2019. 5. 22. 10:06


南 청소노동자로 20년, 北 '로동자' 출신 경화 씨 이야기

[인터뷰] <나의 살던 북한은> 쓴 경화 씨
2019.05.20 18:20:06


1997년 탈북했다. 고난의 행군기다. 11개월 간 중국을 표류하다 이듬해인 1998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20여 년. 경화(가명, 55) 씨는 강원도 춘천에 정착해 계약직 청소노동자로서 한국 생활에 적응해 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우유조차 비려서 마시지 못하던 그는 이제 피자의 치즈 맛을 안다. 

지난 2014년 여성주의 언론 <일다>에 연재된 경화 씨의 글을 모은 책 <나의 살던 북한은>(글·그림 경화, 일다)은 조금 색다른 에세이다. '개성 출신의 남한 청소노동자'인 경화 씨는 드라마, 노래, 음식을 소재로 남과 북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풀어놓았다. 소박한 글에는 과장이 없다. 괜스레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고, 마음 아픈 이야기도 있다.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남과 북의 차이가 느껴진다.  

남한 아이돌 노래의 가사에 감동하고, 사극 드라마에 푹 빠지고, <동물농장>을 보고 웃음을 짓는 경화 씨는 단순히 '한국 만세'를 외치지 않는다. 북한의 나쁜 점을 이야기하면서도 북한을 악마화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평범한 사례를 들어 독자에게 전한다. 이 책이 힘을 내는 지점이다. 탈북자의 정착을 제대로 돕는 길은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닌, 응원과 안정된 일자리라는 지적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이야기이기에 울림이 더 크다.  

지난 17일, 춘천의 한 커피숍에서 경화 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일자리가 없어 불안하다"는 말에서 그가 한국 사회에 완전히 적응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화 씨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모습을, 북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고난의 행군기, 고향을 떠나 남으로 

경화 씨는 '양반의 고장'으로 불린 개성 출신이다. 스무 살에 함경북도 무산으로 시집갔다. 무산은 탄광이 유명한 곳이다. 그곳에서 고난의 행군기를 맞았다. 경화 씨는 폐렴에 걸렸다. 병원에는 약이 없었다. "장마당에 가면 중국에서 들여온 파란 해열제가 있으니, 그걸 사먹으라"는 게 의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었다. 경화 씨는 피를 토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무의미한 처방이었다. 아이들을 개성에 맡기고, 무산으로 돌아와 역전에서 노숙했다. 이대로 죽겠거니 했다.  

"어제 이야기하던 사람이 다음 날 아침에는 죽은 채로 발견되곤 했어요. 한 아이 엄마는 죽은 아이를 업고 다녔어요. 엄마가 제대로 못 먹어 젖이 안 나오니 물에 사카린을 섞어 아이에게 먹였는데, 아이도 약해져서 죽은 거예요. 그런 일이 부지기수였어요."

"중국에 가서 약만 먹으면 살 수 있다." 알던 할머니를 따라 중국으로 건넜다. 알고 보니 그 할머니가 인신매매꾼이었다. 다행히도 중국 생활 11개월 만에 착한 조선족을 만나 남한 사람과 연결됐다. 그들을 통해 1998년 남한에 들어왔다. 아직 한류가 북한에 퍼지진 않았을 때다. 경화 씨는 남조선은 못 사는 나라, 인민이 다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라고만 배웠다. 그래도 공안이 추적하니, 남한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본 모습은 달랐다. 

"처음 놀란 건, 사람들이 너무 질서가 없어보였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우왕좌왕하는가, 왜 젊은 학생들이 줄을 맞춰서 걷지 않는가, 이런 생각 했죠. 우리는 줄 맞춰 노래 부르면서 학교에 가고 출근하는데, 그런 모습과 비교하니 남한 젊은이들은 생각 없이 다니는 사람들 같았어요. 나중에야 다들 제 나름의 질서를 지키고, 제 나름의 길을 걷는다는 걸 알았죠." 

▲ 경화 씨가 어릴 적 감명 깊게 본 북한 영화 <꽃 파는 처녀>의 장면을 직접 그렸다. ⓒ일다


"北 과장되게 비난하진 말았으면" 

6개월의 국정원 생활을 마치고 퇴소했다. 거주지를 춘천으로 배정받았다. 요즘은 하나원을 퇴소하는 탈북자의 거주지 배정 시 서울과 같이 인기 지역에 지망자가 몰리면 제비뽑기를 한다. 당시는 그저 국정원이 정해준 곳에 정착하는 게 다였다. 경화 씨는 자신이 춘천에 처음 정착한 탈북자며, 강원도 전체로도 두 번째 정착 탈북자라고 했다. 

정착 초반에는 안보 강연을 다니느라 바빴다. 학생을 상대로, 공무원을 상대로, 회사원을 상대로 바삐 안보 강연을 다니곤 했다. 강연이 끝나고 경찰들과, 학생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경화 씨는 서서히 남한을 학습해 갔다. 강연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했다. 

"저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거든요. 북한이라고 다 나쁜 것 아니고, 남한이라고 다 좋은 것 아니잖아요. 그런데 내가 느낀 대로 이야기하면 자유총연맹 같은 (보수) 쪽에서 북한 나쁜 얘기 왜 안하느냐고 항의하더라고요. 그래서 그쪽(보수단체)에서 잡아준 강의에는 나가기 싫었어요. 6.15 남북 공동 선언인가, 그때 이후로 통일부가 탈북 강연자들 급히 다 모으더니 (북한 과장되게 욕하지 말고) 저처럼 강연하라고 하더라고요."

경화 씨는 TV에 소개되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보는 게 불편하다. 과장이 많아서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될 텐데, 저 사람들이 과연 알고 저런 말을 할까 싶다. 

"탈북자끼리 뻔히 알아요. 권력 생활을 안 하던 사람들이 주로 남한에 오는데, 그 사람들이 북한 실정을 얼마나 알겠어요. 방송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오던데, 대부분이 한참 북한이 어려울 때(고난의 행군기)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학교에도 제대로 안 나갔을 거예요. 집단 생활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직업 생활을 해 본 나도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의문이 많이 들어요. 과장된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접한 새로운 문화, 갑질 

경화 씨는 북한에서 '로동자'였다. 한국에 와서도 로동자 출신인 그는 일해야 했다. 안보 강연을 다니는 도중 미용자격증을 땄다. 첫 일자리인 미용실 업무를 오래 하지 못했다. 그간 쇠약해진 몸이 독한 미용약 냄새를 견디지 못했다. 의사가 그 일을 그만하라고 권유했다. 그 뒤로 인삼 가공식품 공장에서도 일했고, 공공식당 취사 업무도 해 봤다. 

2003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춘천 토박이다. 강원대학교에서 일하는 이였다. 경화 씨도 강원대학교에 일자리를 얻었다. 청소노동자였다. 처음에는 남편이 반대했다. 경화 씨가 우겼다. 청소가 천한 일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고 밀어 붙였다. 5년을 일하고 몸이 아파 쉬었다. 그 때 <일다>에 이 책을 만든 이야기를 연재하고, 지역 아파트 청소노동자로 취업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한국의 문화를 접했다.  

"계단을 청소하는데 자기 짐을 계단에 내놓은 집이 있더라고요. 제가 치워달라고 했어요. 다른 사람 이동에 방해되고, 청소하기도 어려우니 짐을 넣어달라고요. 저한테 삿대질을 하며 막 욕하더라고요. '기껏 청소하는 주제에 목청 키우느냐'고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더라고요. 결국 싸우고 그 길로 그만뒀죠. 나중에야 그게 '갑질'이라는 걸 알았어요."

경화 씨가 보기에 남한은 직업의 귀천을 너무 따진다. 돈 있는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하는 법인데, 돈만 있으면 뭐든 가능한 빈부 격차 사회라 그런 것 아닌가 싶다. 다 같은 사람들이니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경화 씨가 살던 북한도 기실 그런 면에서 남한을 닮아가고 있다. 

"요즘은 평양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큰 도시에는 빈부격차가 엄청날 거예요. 당장 제가 있을 때도 간부 집, 중국을 상대로 무역하는 집들은 떵떵거리면서 살았어요."

서로 응원하고, 배우고 

경화 씨는 초기 탈북자다. 그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봤느냐고 물었다.  

"보기 좋았죠. 두 사람(문재인, 김정은)이 손잡는 걸 보니 가슴이 울컥하더라고요. 김정은이 마음 다잡고 조금이라도 좋게 변했으면 해요. 요즘은 또 상황이 어려워진 것 같은데, 남북정상회담 당시도 마냥 쉽게 되리라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이제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남한에서 보냈다. 경화 씨는 사극 드라마는 다 좋아하고, 이승철의 노래도 좋아한다. 다만 사랑 타령을 하는 아침드라마는 도무지 보지 못하겠단다. 20년이 넘게 산 곳에서 적응이 되지 않는 게 또 하나 있다. 음식이다. 경화 씨는 고기를 잘 먹지 못한다.  

"남한 음식이 대체로 너무 달고 조미료가 너무 강해요. 북한이 재료가 부족하다 보니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 먹던 북한 음식은 담백하고 재료 맛이 좋았는데 이곳 음식은 아직 힘들어요. 유명하다는 북한 식당도 여럿 가봤는데, 기실 다 남한 사람 입맛에 맞춘 식당이더라고요." 

경화 씨는 오랜 시간 노동자로 지낸 만큼, 주로 바깥에서 밥을 먹었다. 동료들과 식사를 할 때면 맨밥에 나물을 주로 먹었다. 나물반찬이 잘 나온 날에야 밥을 많이 먹곤 했다. 

다만 의외로 적응된 음식도 있다. 피자다. 경화 씨가 처음 남한에 들어와 국정원에서 지낼 때는 우유도 넘기지 못했다. 지금은 치즈 맛을 느낄 정도가 됐다. 그래도 가끔은 고향의 보쌈김치 생각이 간절하다. 어릴 적 부모님은 여러 재료가 들어간 보쌈김치 속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만 드시게 했고, 경화 씨에게는 퍼런 배춧잎만 줬다. 경화 씨는 그게 더 맛있었단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딸 차별 아니었나도 싶다. 북한은 공산권 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남녀 차별이 심한 나라다. 남북이 꼭 닮은 지점이다.  

20년의 세월이다. 돌아보니 남한에서의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건강 문제로 일을 쉬는 지금도 경화 씨는 불안하다.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하다. 전쟁터 같은 삶이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이제 굳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고향에 두고 온 자식들이 눈에 밟힐 뿐이다. 경화 씨는 다른 탈북자들도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란다. 남한 사람들도 탈북자에게 선입견을 갖지 말고, 그들의 적응을 응원해주기를 바란다. 

“세상을 마감하는 날까지도 우리 탈북자들은 배우고 익혀야 돼요. 지금까지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마음 다잡고 더 열심히 살아야 돼요. 이곳 영구임대아파트에 탈북자들이 제법 사는데, 특히 남자들은 매일같이 술 마시고 싸워요. 불안해서 그렇겠다 생각은 들지만, 더 잘 살려고 발버둥쳐야 돼요. 내 삶을 돌아보면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탈북자들이 이 사회에 정착하는 게 힘든데, 주변에서 많이 응원해주면 좋겠어요.”

▲ <나의 살던 북한은>(글, 그림 경화) ⓒ일다



'김정은 경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 그리고 식량지원의 문제

[기고] 북한의 경제 상황, 우린 제대로 알고 있나?


우리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대북 식량지원을 결정했는데, 오히려 북 매체측은 '생색내기', '우롱말라'고 비난하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북한 식량위기에 대한 인식과 이에 따른 지원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다. 북한의 경제상황을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이 수립되고 대국민 홍보가 되고 있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명목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 지원이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원인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왜 나왔는가, 하는 점을 둘러싸고 '대화론자'와 '제재론자'가 가진 색안경의 시각을 각각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쪽에는, 핵과 경제적 자신감을 배경으로 비핵화 협상에 나왔다고 본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향후 북핵 협상이 결렬될 경우 북한이 핵 보유선언을 하면서도 경제사회적으로 버틸 여력이 있다는 대화론의 입장이다. 다른 한쪽은 한미군사훈련 등 미국의 군사적 시위 때문에, 그리고 경제위기를 버틸 여력이 없어서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왔다는 입장이다. 조금만 더 제재를 하면 북한이 붕괴한다는, 1994년부터 시작된 '북한붕괴론'의 신화에 기반한 제재론의 입장이다.  

먼저 국제사회의 제재가 북한의 핵협상과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 다시 말하면 우리가 협상 대상인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혹은 얼마나 무지한지의 문제가 '협상전략'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체제 이행기의 북한 경제의 파편화  

평양, 라진, 신의주, 원산, 삼지연 등엔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화려한 색채가 칠해지고,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이 밝게 빛나고 있다. 택시, 버스, 트럭은 상당히 증가했다. 주민들의 의복과 식사 상황이 상당히 개선된 모습도 볼 수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제방공사를 하고 있고, 목축과 양식이 증가된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이와 반대로 농업이 잘 되지 않거나, 초래한 행색의 지역들, 무너질 듯한 기업소, 활기없는 협동농장도 공존하고 있다. 

▲박종철 경상대학교 교수

김정은 시기엔 국영기업 개혁을 통해 대동강맥주나 금컵체육인식료공장 같은 경우 국제적 수준의 물품을 만들며 수출까지 하고 있다. 김정은 시기에 약 100여개의 수력화력발전소를 건설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전기세 납부에 의해 전력 부문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석탄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석탄 탄광과 운송물류분야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기세 납부라는 제도개선을 통해 정전이 확연히 줄고 밤이 밝아지고 있으며, 전기의 질이 향상됐다. 

그러나 반대로 수출에 의존하던 다른 광산의 노동자과 그 가족들은 식량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제재의 주요 피해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인력이 아니라 빈곤한 사람들이 입게 되는데, 이것이 제재의 딜레마이고, 이런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포전제라는 농업개혁을 통해 1980년대 중국과 마찬가지로 농업 생산량이 증가한 협동농장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여전히 김정일 시대 '고난의 행군' 시기 수준에 머무는 지역, 기업, 농장들도 조사되고 있다. 고급쇼핑센터에서 줄지어 사치품을 사는 영상과 식량위기를 겪는 지방의 영상이 동시에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북한 경제가 파편화되고, 격차가 심화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시기 기업의 독립채산제 개혁과 농업의 포전제 개혁에 따라서 국가 총량의 생산이 증가하고 있기는 하나, 2018년 북한 관련 자료를 보면 식량의 경우 520만 톤이 필요한데 약 50만톤 정도가 부족한 것으로 나온다. 김정은 시기의 혁신으로 인해 경제와 식량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지긴 했는데, 경제 제재로 인하여 식량상황 악화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WFP(세계식량계획)는 북한에 식량이 약 150만 톤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인용한 일부 언론은 인구의 3분의 1이 기아 위기에 있다며 또다시 '고난의 행군' 시기 대규모 아사자가 출현할 가능성있다는 보도까지 낸다. 필자는 이것이 다소 과장된 WFP의 조사와 추정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다른 일부 언론은 50만톤 부족으로는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도 낸다. 그러나 북측 주장처럼 50만 톤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전체 수요의 10%에 이르는 상당한 부족량이다. 이는 인도주의적 구호가 필요한 빈곤 지역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총량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식량지원을 해야 하나? 

대북 식량지원을 놓고 대화론자와 제재론자는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 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에 나왔다는 제재론자는 식량 지원에 반대하면서 '북한경제가 성장한다'는 지표를 제시하는 모순된 설명을 하고 있다. 대화론자는 북한 경제가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에 나왔다면서, 식량 지원에 찬성을 하며 '북한 식량 위기'의 지표를 제시하는 모순을 내놓고 이를 남북관계 개선의 하나의 실마리로 삼자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김정은의 경제 개혁 성과, 그리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따른 북한 내부의 '경제 재편' 상황을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그 특성들은 '무 자르듯' 단편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북한 경제 체제 이행기인 김정은 시대의 북한 경제는 총량이 성장하고 있지만, 지역, 기업소, 협동농장별로 다른 성과를 내고 있다. 부유해지는 기업과 실패한 기업이 혼재하며, 그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둘째,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는 부유층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하층 주민의 삶을 더욱 곤란하게 하고 있다. 이는 경제 제재를 받는 국가의 일반적 특성인데, 지배층은 세금을 다양한 방법으로 걷어 생활의 현상 유지가 가능하지만 어업, 탄광노동, 옷공장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반 주민의 삶에는 제재가 큰 타격이 된다. 즉 김정은식 경제성장과 동시에 진행되는 외부 요인인 경제제재는 '경제 재편'을 일으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김정은 시기 개혁 조치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고는 있지만, 지역별, 기업체별, 농장별 속도는 너무 다르고, 생산성 높은 기업·지역과 실패한 기업·지역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이런 격차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는 식량 위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재편' 현상은 현재와 같은 경제 성장과 경제 제재 국면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  

'고난의 행군' 당시에 인구 1%가 넘는 20만~30만 명의 대규모 아사자가 출현했다. 문제는 절대적인 식량부족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많은 지원을 했다.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했음에도, 역설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부를 축적한 돈주, 붉은 자본가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주민들이 패닉에 빠졌고, 주민의 생활 물자를 공평하게 분배해야 할 의무를 지난 간부들은 자기 창고에 식량을 쌓아 두었다. 식량 공급과 배급을 책임진 간부들, 그들과 유착된 돈주들이 부를 축적했다.  

다시 설명하면 분배의 왜곡이 심화되어 대규모 아사자가 출현했지만, 동시에 시장이 활성화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즉 특정한 지역, 특정한 기업, 특정한 협동농장에서 불균등한 분배로 인한 아사가 발생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분배의 왜곡은 북한만의 현상이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체제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패턴이다.  

지금 김정은 시기엔 기업 개혁과 농업 개혁의 속도가 빠르다. 이런 체제 이행 과정에서는 경제학의 원리이자, 경제의 원동력인 '인간의 악한 본성'이 두드러지게 표출된다. 현재 북한의 경우 국가 주도 배급은 상당히 무너졌다. 이제 배급은 국영기업이나 협동 농장 지배인이 책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개혁의 속도에 따라 지역, 농장, 기업마다 생산량 증대 수준이 다르다. 어떤 기업이나 협동농장은 부유하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않다. 일부 지역, 기업소, 협동농장 등이 먼저 선부(先富)하는 상황인데, 이는 중국과 베트남이 겪은 체제이행 상황과 비슷하다. 이를 김정은의 북한 경제도 겪고 있고, 국제 제재는 이를 부추기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북한 식량 문제의 원인은? 

지금까지 살펴본 상황을 토대로 북한 식량 문제와 경제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자. 

첫째, 북한정부의 나쁜 거버넌스의 문제에 있다. 물론 이는 북한만이 아니라 제3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정부의 역량이 좋은 국가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돈주와 재벌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빈곤한 지역, 기업, 농장에 보조를 하겠지만, 북한은 반대의 정책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부익부 빈익빈의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물론 자국민에 대한 구제는 자국 정부가 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세계의 많은 지역은 절대적 부족보다는 배분 문제와 나쁜 거버넌스로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  

둘째,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을 주장한다면서도, 우리 정부가 갖고 있는 남북협력의 능력, 태도, 의지의 문제가 있다. 남북 협력을 주장하면서도 기업, 민간, 학계, 종교계 등의 남북협력을 가로막은 결과, 정부는 북한의 어떤 지역, 기업, 농장이 식량위기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며 불신을 키우고 있다. 지난 2년간 현 정부가 보여준 남북간 민간협력, 경제협력의 암울한 성적표이다.  

셋째, 원조에는 일방강요형의 선교사형 원조와 상호소통형 원조가 있는데, 후자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탓이다. 제3세계 개발도상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와 관련된 협상을 하기 보다는 선진국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물자를 지원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작년 북한 수해 지역에서 북측은 우리 민간기구 측에 '방바닥에 까는 장판'을 부탁했지만, 통일부는 전략물자라는 이유로 불허하였다. 장판이 석유제품으로 핵개발에 공헌하다는 논리는 동의하기 쉽지 않다. '장판 사건'은 수혜국의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북의 입장에선 아무리 식량 위기 상황이라고 해도 한미의 정쟁수단이 된 상황을 선뜻 받기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먼저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의 대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문제조차 유엔 결의안을 끌어들여 이를 명분으로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우리 정부가 우리 정부의 이익의 관점에서 일을 하는지 혹은 국제기구의 관료의 입장에서 일을 하는지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정부 입장을 국제기구에 설득을 해야지, 외국의 입장을 우리 국민에게 강요하는 행정은 곤란하다. 특히 관광, 교류, 의료, 식량, 교육, 종교 등의 문제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우리정부가 조건 없이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  

식량문제는 계절적 요인이 있는데 춘곤기를 넘어서면 식량 원조 효과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긴급구호의 경우 가장 효과적인 시간을 겨냥해야 하는데, 이것이 정쟁의 수단이 되면서 시간만 흐르고 있다. 북한의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북한 자체 통계를 인용할 경우 약 50만 톤만 부족하다는 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절대 식량 부족 지역은 있다고 분석된다. 그러니 지역, 기업, 농장별 격차에 따라서 정부는 정확하게 어떤 지역이 식량 위기인지 국민들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과 남북 직접 협력을 병행해야  

우리 정부가 시민사회과 기업의 모니터링 참여없이 북한 당국과 국제 기구만을 모니터링에 참여하게 한다면, 여전히 불신이 남을 것이다. 남남갈등을 우려해 원조의 책임을 국제기구에 돌리거나, 글로벌 시민사회를 통해서 협력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비용만 부담한다는 편의주의적 사고를 해서는 안된다. 식량 지원의 절반 정도는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우리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 

부차적인 고려 요소이기는 하겠지만, WFP가 조직 논리와 이익에 따라서 북한식량 문제를 설명하거나, 북한의 지역, 농촌, 기업의 입장에서 더욱 많은 원조를 얻기 위해 상황이 나쁜 지역을 위주로 소개해 '일반화의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또한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국제기구의 대한 비용의 상당부문이 조직의 행정비용으로 소용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시민 사회의 협력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우리정부가 직접 식량을 지원하면, 국제기구와 국제시민단체로 들어가는 행정 비용을 절약하여 더욱 많은 식량을 구매할 여력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농촌의 식량창고에 쌀이 쌓여 생기는 막대한 보관 비용을 해소할 수 있고, 양곡설비, 물류설비 등을 활용하는 등, 우리 사회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민간단체, 기업, 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등이 식량 위기 지역을 직접 방문해 식량지원에 문제가 없도록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가동하면, 남북협력에 대한 신뢰도 높일수 있다. 따라서 대북 긴급 인도주의적 식량 지원은 국제기구와 국제시민사회를 통한 우회 경로와 더불어, 남북이 직접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 병행할 필요가 있다.  

박종철 경상대학교 교수는 경상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통일평화연구센터 원장 겸 소장, 흥사단 도산통일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힘들게 해서 얻을 것 없는 북한, 정신차려야

[현안진단] 지금 북한에 필요한 건 진정한 '우리 민족끼리'
2019.05.21 17:31:04

미·중 무역전쟁과 북한의 중국 카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 사전조율이 시도됐으나 실패하고, 지난해 6월 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제품에 대한 25% 고율관세를 매기면서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2018년 12월 1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타결을 시도했지만 결렬되었고,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5월 10일 2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제품에 대해 10%에서 25%로 관세를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중국도 6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제품의 관세를 최고 25%로 올렸다. 그러자 미국은 추가로 3250억 달러 상당의 중국제품에 25%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맞받았다.

미국의 관세 폭탄이 5월 10일 이후에 중국의 항구를 출발한 제품부터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선적된 제품들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적용받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요구한 4개 사항의 법제화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타협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러한 미·중 무역전쟁은 가뜩이나 부진한 중국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경제의 불확실성도 크게 증폭시키고 있다.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은 고율관세를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점차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될 것이다. 중국 내 한국 기업에도 어느 정도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국의 사드보복 전후로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미 중국을 떠나 동남아로 진출했다는 점과, 중국제품의 대미수출 감소로 인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전체 수출액의 0.14%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튄 것은 뜻밖에도 한국이 아닌 북한이다. 미·중 양대 강국은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남북갈등을 이용해 우리에게 줄 세우기를 강요해 왔다. 사드 문제 발생 때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런데 지금은 양상이 바뀌었다. 미·중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남북화해가 진행되면서 상대적으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무풍지대가 되었다. 반면 대미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 카드를 꺼내 들었던 북한은 오히려 미·중 무역전쟁의 카드 패(牌)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3월 5일 대북 특사단을 만나 조건부 비핵화를 약속한 뒤, 3월 9일 우리 대미 특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 의사를 전달해 성사시켰다. 그러나 그 뒤 김 위원장은 3월 25~26일 베이징을 전격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고, 그 뒤에도 5월 7~8일과 6월 19~20일 잇달아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특히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세 번째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북한과 중국이 모든 현안에 대해 '한 참모부에서 협력하고 협동할 것'을 약속했고, 시 주석은 "두 당과 나라 관계의 불패성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고 화답했다. 이러한 '한 참모부' 약속을 지키려는 듯, 김 위원장은 자신의 생일인 올해 1월 8일 베이징으로 달려가 네 번째의 북·중 정상회담을 갖고 2차 북·미 정상회담 대책을 협의했다. 

▲ 지난 1월 8일(현지 시각)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는 김정은(왼쪽)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로동신문


미국의 중국 견제와 중국의 대북 태도 

그렇다면 과연 북한은 대미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 카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은 대미 협상에서 중국 카드가 전혀 먹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냉엄한 국제현실에 직면했다.

이렇게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에게 중국 카드가 먹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바라보는 미·중 무역전쟁과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한 핵문제와의 관계에 기인한다.

미국이 내건 첫 번째 이유는 '중국 무용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4월 자신의 개인별장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라라고에서 첫 미·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미국이 요구한 대중 무역적자 해소방안을 중국이 마련하기로 약속한 '100일 플랜'을 발표했다. 이 때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이 기간 동안 무역적자 해소뿐 아니라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주문하였고 시 주석도 이를 받아들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중국 아웃소싱론'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를 협의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북한은 이에 반발해 본격적으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준비했고, '100일 플랜'의 시한을 앞두고 7월 4일 마침내 사거리 7000km에 달하는 화성 14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중국을 통한 북한 비핵화 가능성이 낮다고 본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중국 무용론'의 입장을 밝혔다. 

2018년 5월 7~8일 김정은 위원장이 두 번째로 시 주석을 만난 뒤부터 북한은 미국 고위관리들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한 데 이어 최선희 부상도 펜스 부통령을 비난하는 개인성명을 발표하자, 5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전격적으로 밝혔다. 그는 북한 측이 미국에 대해 이렇게 비난을 퍼붓는 이유가 중국을 믿고 그러는 것이라며 '중국 배후론'을 제기했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김 위원장이 세 번째로 시 주석을 만나 북·중관계를 과시한 뒤, 7월 7~8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으로 열린 북·미 고위급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그 뒤 북측 초청으로 고위급회담이 재추진됐지만, 방북을 하루 앞둔 8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취소시켜 버렸다. 이 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의 부진과 함께 중국이 무역전쟁 때문에 소극적으로 나선다는 '중국 책임론'을 이유로 내세웠다.

김 위원장은 처음에 자신이 비핵화 조건으로 제시했던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요구를 뒤로 하고 제재해제를 전면에 내걸었다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거부로 합의문 채택이 불발되는 결과를 맞았다. 이때부터 미국에서는 북한이 유엔안보리 제재해제 카드를 꺼내든 데는 중국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는 이른바 '중국 조종론'이 나왔다.

미국은 어떤 조건에서 대북 협상에 나섰나 

북한은 나름대로 중국 카드를 이용해 대미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보려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때론 활용하고 때론 견제하면서 미·중 무역협상과 북한 비핵화협상을 적절히 다루어 왔다. 이러한 미국의 협상전술 때문에 당장 무역전쟁을 치러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김 위원장이 언급한 '한 참모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때 북한과 직접 협상을 거부하거나 또는 응해 왔는가?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자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에 나서기는 했지만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 정책을 내걸며 6자회담 의장국을 중국에게 떠맡긴 채 '테러와의 전쟁'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나마 북한이 2006년에 핵실험을 실시한 뒤에야 대북 비핵화 협상에 다소 적극성을 띠었을 뿐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통령선거에서 북·미 직접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북한 핵문제는 점차 후순위로 밀려났다. 2010년 5월 서울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언급한 뒤부터 미국은 직접대화에 나서기보다 유엔안보리 제재와 중국을 통한 압박, 미사일 방어망 도입, 한·미·일 3각체제 구축 등을 추진하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때 대북 직접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나? 미국은 지금까지 두 번 적극적으로 임했다. 한번은 클린턴 대통령 때 이루어진 '제네바 기본 핵합의' 때이고, 다른 한번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비핵화 협상 국면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는 차관보급의 로버트 갈루치 북핵대사를 내세웠다면,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있다는 점이 커다란 차이다. 

먼저, 클린턴 행정부 때 미국이 북·미 직접협상에 적극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25년 유효기간으로 1970년 3월에 체결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의 시한이 다돼 무기한 연장 문제를 논의할 뉴욕 NPT연장회의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집트를 필두로 한 비동맹국가들은 기존 핵무기국가들의 소극적인 핵군축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NPT 무기연장에 반대했고, 일본도 북한 핵문제의 미해결 등을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 핵문제의 조기타결 필요성 때문에 북·미 제네바협상에 적극 나서 합의문을 이끌어낸 것이다.  

다음으로, 북·미 비핵화 양자협상에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이 수소탄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에 성공해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을 가시화하자 어떻게든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김 위원장이 자발적으로 핵무기 포기를 약속했기에 어느 때보다 비핵화 가능성이 높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셋째는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나눠 가질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좋은 중재자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을 압박할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잘 활용해야 기회가 생긴다 

이와 같은 한반도 내외 정세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바로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 비핵화 협상의 상관성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직접협상에 나온 것으로 판단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직접협상을 미·중 무역전쟁의 승리를 위한 바둑판의 패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미·중 무역전쟁이 조기에 타결된다면 북한 카드는 효용성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요즈음의 추세로 볼 때 미·중 무역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무역전쟁이 봉합된다면 3차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기회는 찾아오기 어렵다. 봉합이든 타결이든 미·중 무역전쟁이 일단락된다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동력이 크게 떨어져, 미국은 '선의의 무시'나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미국이 직접협상에 나온 세 번째 이유를 간과하면 안 된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변수다. 문 대통령은 국내 반대진영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를 감수하면서까지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새로운 100년의 시작점이라고 규정한 4월 11일이 상해 임시정부 출범일임에도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이 이탈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서 채택이 불발된 이후 북한에서는 지난 경과에 대한 복기, 현 정세의 재평가 및 인사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최근 북한의 대남, 대미 대응방식을 보면 어설프기 그지없다. 남측더러 미국과 잡은 손을 놓고 '우리 민족끼리'에 나서라고 연일 공세다. 유엔안보리 제재 하에서 '한 참모부'를 선언한 중국조차 못하는 경협사업을 남측더러 하라는 것인가? 인사교체에 따른 업무 미숙이라면 곧 해결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약 잘못된 정세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는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가 어렵게 만든 기회다. 때맞춰 지금 남쪽에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와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북측에선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측이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남북대화에 나오기보다 먼저 남북대화에 나온 뒤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김 위원장의 체면도 살릴 수 있고,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도 당당히 나설 수 있게 된다. 북한 당국은 이제라도 진정한 '우리 민족끼리'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세현 "정신 못차린 북한, 계산법 바꿔야"

[정세현의 정세토크] "문재인 정부 무시해서 얻을 게 뭔가?"
2019.05.22 18:25:32

지난 17일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 3년 3개월 여 만에 입주기업인들의 공단 방문을 승인했다. 또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닷새가 지난 22일까지 북한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측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단 재개 용의가 있다고 밝혔던 만큼, 북한의 침묵은 불길하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이렇게 남한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문재인 정부 입장이 곤란해진다. 문재인 정부를 곤란하게 해봐야 북한에는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며 북한에 조속한 움직임을 재촉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이러면 추후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면 북미 관계 개선은 요원해지고,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경제 발전도 힘들어질 수 있다"며 "잘못하다가는 이른바 '자력갱생'을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 전 장관은 "시간은 과연 북한의 편일까? 북한이 이렇게 '무시전략'으로만 일관하면 미국이 연말까지 알아서 '계산법'을 바꿔서 회담장에 나올까?"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과 미국의 태도 변화를 동시에 끌어내려는 의도로 미적거리는 것 같은데, 그건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남북이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6월 만남에서 촉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북미가 접점을 찾을 수 있겠냐는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이 들어오면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반응을 전해주면서 미국을 설득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북미 회담의 불씨를 다시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읽고 여기에 호응해줘야 한다"라며 "(6월 28~29일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오사카에 오는 트럼프 대통령을 서울로 불러들여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이유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기 위한 것이다. 북한이 이걸 알아차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혹여 북한의 참모들이 미국과 남한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보이자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건의한 것이라면, 이건 참모들이 김 위원장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6월 말에 오기 전까지, 최소한 6월 중순까지라도 북한이 움직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2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정부가 지난 17일 개성공업 입주기업들의 방북을 허용하는 한편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정부의 움직임이 교착에 빠진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기점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북한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세현 : 17일부터 지금까지 닷새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리 주말을 끼고 있었다고 해도 아직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다는 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이 이렇게 남한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문재인 정부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문재인 정부를 곤란하게 해봐야 북한에는 득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인도적 지원 문제부터 살펴보면, 국제사회는 북한의 식량이 150만 톤 정도 부족할 거라고 이미 공표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세계식량기구(WFP)가 여기저기에 도움의 손길을 구하러 다니고 있고, 마침 한국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 북한에서도 어느 정도 반응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다못해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공식적인 회담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공식적인 이야기라도 나눠야 합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여전히 '표정관리'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 것이 이른바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에 입각해 남한이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강력하게 추진하게 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상당히 잘못된 '계산법'입니다. 북한은 미국한테만 계산법이 틀렸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남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계산법이 틀렸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북한이 계속 이렇게 남한에 협조하지 않으면 추후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북미 관계 개선은 요원해지고,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경제 발전도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이른바 '자력갱생'을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 신청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북한이 묵묵부답으로만 일관하면 공단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여론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또 미국에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를 위해 뭔가 접점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은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건데, 북한이 저렇게 나오면 남한에서 이런 식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어렵습니다.  

북한이 미국에는 미사일 쏘고 한국은 상대 안하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해서 미국이 "아이고 이러다 큰일 나겠네. 빨리 북한을 달래야겠다"라면서 계산법을 바꿔서 나올 것 같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게 계산법 바꾸라고 한 부분은 일리 있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미국은 북한이 무장해제 수준의 조치를 취하고 나면 뭔가를 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남북관계에 있어서 이런 식의 계산법을 가지고 있으면 북한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 촉진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난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남한에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이런 대응이 어딨습니까?  

북한은 경제적 필요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의 업적이 필요했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진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양측을 중재해주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빠지면 북미 양자만으로 회담을 이어가긴 어렵습니다.

북한이 좋아하는 말이 있죠. '우리 민족끼리'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속뜻은 남한에게 "미국한테 할 말 하고, 미국이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을 좀 하도록 노력해봐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입각해 남한에게 "너희들이 해야 할 역할을 좀 하라"라고 말하는 것이죠.  

북한이 '우리민족끼리'를 언급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미국에 끌려다니지 말라면서 우리한테 이런 말을 자주했죠. 그런데 미국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북한은 실제 회담할 때 보면 남북관계보다는 북미 관계를 우선시합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남한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도 뭉개고 있습니다. 이거야 말로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요?

▲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고 악수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프레시안 : 지금 상황에서 북한이 외부와 거의 단절하다시피 행동하는 게 별로 유리할 것 같지 않은데, 북한은 왜 이러는 걸까요?  

정세현 : 근본적인 원인부터 짚어 보자면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있는 것 같습니다. 외교 정책에 있어서 상대방의 의도 파악은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정확한 대책이 나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완전히 잘못된 대책을 쓰게 되는 것이죠.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은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었고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지만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기 때문이었죠.

지금의 북한도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본인들이 현 시점에서 이렇게 버티고 있으면 미국이 먼저 회담장에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과 무역 문제도 장기전으로 흘러갈 것 같고, 이란 문제 역시 해결하기에 간단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협상에서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할 절박성이 강할 것이라는 게 북한의 판단 같습니다. 그러니까 버티겠다는 거겠죠.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치고 나갑니다. 그럴 가능성이 없으면 안 그래도 중국과 이란 때문에 정신없는 트럼프는 북한 문제에 공을 들이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최근 <폴리티코>를 비롯한 미국 언론에서 실시된 2020년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7~8% 정도 앞서는 걸로 나옵니다. 이러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는 할 수 있을까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도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좀 판단하고 떼를 쓰든 말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다면 시간은 과연 북한의 편일까요? 당장 지지를 끌어올려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 이란 문제 등이 있어서 북핵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가 힘든데, 북한이 저렇게 무시전략으로만 일관하면 미국이 연말까지 알아서 '계산법'을 바꿔서 회담장에 나올까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과 미국의 태도변화를 동시에 끌어내려는 의도로 지금 이렇게 미적거리는 것 같은데, 그건 이뤄질 수 없는 꿈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쉽지 않은 현 상황이 북한에게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미국에게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어려운 상황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손을 뿌리치기 어려워 집니다. 또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북한은 소위 '갑을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을'인 북한이 '갑'인 미국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약간 숙이고 들어가야죠.

물론 자존심이 중요한 북한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이러한 행태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그림을 만들려면 문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제안을 이렇게 무시하면 어쩌자는 건가요?  

프레시안 : 지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북한이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아직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세현 :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에 갈 때까지만 해도 소풍가듯이 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하루 아침에 상황이 바뀌었으니 충격을 받긴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북미 정상회담 당시 통역의 중대한 실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그만하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앉으라고,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뜻이 정확히 전달이 되지 않아서 트럼프가 그냥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시설 5개 중에 1~2개만 없애려고 했다고 말했는데요. 이미 다 알려졌다시피 북한은 당시 회담에서 5개 분야의 제재를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한 건데, 북한 쪽에서 5개 요구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 부분을 이야기 해보자면서 다시 앉아보라고 이야기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 위원장의 강력한 뜻이 전달되지 않아서 회담이 끝난 것 같습니다.  

▲ 2월 28일(현지 시각)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을 떠나면서 악수하고 있다. ⓒ조선중앙TV


북한, 남한의 의도 간파해야   

프레시안 : 정부는 지난 16일에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돼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날짜나 형식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단 언론에 공개한 건데요. 정부가 이렇게 일찍 공개한 것은 남북 간 공감대를 만들고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왔을 때 북미 관계도 풀어보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현 상황에서 북한이 전혀 대응을 해주지 않으면 이러한 의도대로 흘러가기 어려운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지금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도 북한이 반응을 보여야 대통령도 원포인트든, 판문점이든, 평양이든 갈 것 아닙니까?

또 남북이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6월 만남에서 촉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북미 양측이 접점을 찾을 수 있겠냐는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이 들어오면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반응을 전해주면서 미국을 설득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따라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김 위원장이 최소한 남한과 소통을 해야 하는 겁니다.

북한도 남한의 이러한 의도를 잘 읽고 대응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북미 회담 불씨를 다시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읽고 여기에 호응해줘야죠. 오사카에 오는 트럼프 대통령을 서울로 불러들여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이유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기 위한 것입니다. 북한이 이걸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번에 북미 대화의 불씨를 살려내지 못하면 앞으로 남한에서 지금과 같은 대북정책을 끌고 가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문 대통령도 이번에 판을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절박한 것이 김정은입니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만, 오지랖이니 이런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촉진자로서의 문재인의 역할을 최대한 활용해야 김정은의 살 길이 나오는 겁니다.  

북한은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 위해 남한에 당사자 입장에 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 하나 뚫린다고 북한 경제가 살아납니까? 북미 관계 개선 프로세스가 시작돼야 하고 그러려면 비핵화도 거기에 걸맞게 진전돼야 북한 경제도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를 만들어주려는 남한의 노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응답 없이 옥죄기만 하고 대꾸도 안하면 남한이 북한에 계속 이렇게 좋게 이야기할까요?

혹여 문재인 정부의 인도적 지원이나 개성공업 기업인 방북 허가 등을 보고 북한이 자신들의 행동이 통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그거 정말 착각입니다. 이렇게 계속 판단 착오해서 미국 태도 바뀔 때까지, 남한 태도 바뀔 때까지 자력갱생하면서 버티겠다는 식으로만 나가면 정말 파국으로 가는 겁니다.  

만약 문 대통령이 우리도 북한이 셈법을 바꿀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면 그때 북한은 어떻게 할겁니까? 형식논리에 얽매여서 북한이 지금처럼 버틴다면 우리는 사실 기다리겠다고 하고 가만히 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지금 움직이기가 그렇게 힘들면 하다못해 개성공단 기업인들 언제 들어오라고 이야기는 해야 합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도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계속 안되고 있습니다. 물론 통일전선부장 바뀌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까지 바뀐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와서 내부적으로 어수선하기 때문에 남한에 대해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줄 수도 있지만, 실무 라인이 바뀌었다고 이런 중요한 문제에 반응을 못하고 있으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북한의 참모들이 미국과 남한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보이자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건의한 것이라면, 이건 참모들이 김 위원장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말에 오기 전까지, 최소한 6월 중순까지라도 북한에서 움직여줘야 합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지난 5월 4일과 9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이 상황을 오판해서 중장거리 미사일 등 더 강한 군사적 대응을 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이번달 말에 을지태극훈련도 잡혀 있고요.  

정세현 : 북한이 아직 미국의 계산법이 바뀌지 않았다면서 더 강력한 미사일을 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움직임은 무시하고 미국과 일전불사의 자세로 결판을 내고 말겠다, 미국을 굴복시키겠다는 과욕을 부리면서 그럴 수도 있죠. 일본 열도 상공을 통과해 태평양에 떨어지는 미사일을 쏘면 거의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위반되는 겁니다. 그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는 또 추가되겠죠.

물론 북한은 자력갱생을 외치면서 큰소리 치고 버티려고 하겠지만, 미중 무역 전쟁이 심해지고 있는 와중에 중국도 미국 눈치 보느라 북한에 대한 민간 부문 무역을 많이 허용해주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국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인 것이죠. 이러면 북한은, 지도자와 권력 중심에 있는 기득권층은 당연히 견뎌내야 한다고 하겠죠. 북한의 주민들만 죽을 지경에 몰릴 겁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든지 불씨를 살리려고 애를 쓰고 있고 미국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을 탄도미사일이라고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미국도 아직까지는 회담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또 북한에 "그정도 했으면 이제 어느 정도는 굽히고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준 겁니다. 북한이 현명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