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연휴, 오랜만에 만난 다섯 살배기 손주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려던 J씨(67세)는 뜻밖의 서글픈 기분을 느꼈다. 아이가 평소 자주 찾는다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마침 동네에 있어 함께 손잡고 갔더니 주문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곳에도 무인 주문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이름도 낯선 아이스크림 종류도 수십 개지만 안경을 고쳐 잡고 화면에 나타난 글씨를 읽고 또 읽으며 원하는 사이즈와 결제 방식을 선택하는 것만도 하 세월이었다. 다행히 기다리는 다른 손님이 없어 덜 초조한 기분이었지만, 손주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도 제대로 못 사주는 무능력한 노인이 된 기분에 J씨는 씁쓸함을 느꼈다.
#2. ‘젊은이는 앉아서, 노인은 서서’. 매년 설날이나 추석 즈음 고향가는 기차표 예매 때 흔하게 볼 수 있는 기사 제목이다. 모바일을 통해 발권하는 좌석이 전체의 70% 정도에 달하기 때문에 현장 발권밖에 모르는 노인들은 좌석을 예매하지 못 하고 입석으로 올 수밖에 없다는 슬픈 이야기다.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com)
우리나라 말로 어르신이나 노인을 뜻하는 ‘시니어(Senior)’는 기준이 제 각각이다.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을 시니어라 부르기도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이 돼야 비로소 시니어로 불린다.
이들은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직장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며 사회를 이끌어가던 세대였지만 은퇴 후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과 IT에서마저도 소외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어르신들 중에서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등 젊은이 못지 않게 IT 문화를 즐기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니어들은 일부에 불과해 대부분은 빠르게 변화하는 IT 환경에 소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노년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몇몇 국가에서는 IT를 활용해 시니어 고객을 타깃으로 한 시장을 개척,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세계 각국의 시니어 시장을 살펴보는 한편, IT로부터 소외된 시니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은 없을 지 짚어본다.
시니어 산업이 다시 뜬다, 왜?
우리나라 총 인구는 2019년 기준 5130만명으로, 세계 28위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시니어들의 인구 비율은 세계 평균 9%보다 높은 15%이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970년 3%이던 것이 2010년 11%를 돌파했고 이후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 194개국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로는 작년에 50위였는데 올해 45위로 올라섰다.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으로 28%이다. 오는 205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이 95%를 넘어서면서 최근 전자상거래, 주식 등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60대 이상의 고령층, 이른바 ‘고령 스마트 컨슈머’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0대 이상 인구 증가율(4.9%) 대비 ‘고령 스마트 컨슈머’ 비율은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오는 2025년이면 시니어층이 전 국민의 2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시니어들의 IT 활용이 점차 확대될 것을 고려하면, 이제 기업들도 시니어층을 고객층으로 끌어안지 못하면 장사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여전히 우리나라 시니어들의 IT 기기 사용 능력은 국민 평균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 유럽의 IT 기반 시니어 산업 현황
이 같은 시니어 세대를 잡기 위한 각국 기업들의 움직임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대표적인 실버 산업 강국은 일본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인구 고령화를 맞닥뜨렸던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IT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실버 상품을 출시하고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노인들의 인지·반응 능력이 상대적으로 무디다는 점에 착안, 이를 보완할 센서가 부착된 차량 개발에 나섰다. 스마트폰 QR코드를 통해 길 잃은 치매 환자나 어린이, 반려동물의 위치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일본 내 유명 지도 제작사인 쇼분샤 출판사는 회원제 QR코드 서비스 ‘어서와요 QR’을 출시했는데 치매 환자의 지팡이 같은 소지품에 붙여진 QR코드를 발견자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보호자에게 자동으로 위치가 전송되는 방식이다. 일본 후지쓰가 내놓은 긴급호출 기능을 갖춘 전화 등도 인기다.
스웨덴의 시니어 전용 스마트폰 제조사 도로는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등의 자판 크기를 키우고 단순화시킨 제품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포드는 노인 고객을 잡기 위해 운전자의 심장발작을 감지해 자동차 스스로 안전하게 정지하도록 하는 차량용 시트를 개발했다.
시니어의 디지털 양극화: IT 소외 vs 실버 서버
요즘 젊은 세대 못지않게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IT 문화를 즐기는 시니어들도 있다. 이들을 가리켜 ‘웹버족(Webver)’이라 부른다. 웹버족은 웹(Web)과 실버(Silver)의 합성어로 IT 문화에 익숙하고 디지털 라이프를 즐기는 정보화된 노년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인터넷과 노트북,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이 시니어들은 기존의 노인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IT 시니어 액티비즘(IT Senior Activism)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실버라는 단어와 인터넷 서핑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서퍼라는 단어가 결합된 ‘실버 서퍼(silver surfer)’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실버 서퍼는 여가시간이 충분하고 경제력이 있는 50ㆍ60세대가 스마트기기에 관심을 가지고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는 이들을 지칭한다.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유튜브 사용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건 그 방증이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은 국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50대 이상의 유튜브 사용시간이 지난해 1월 49억분에서 12월에는 87억분으로 78%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사용자 수는 762만명에서 943만명으로 24% 늘었다.
실버 서퍼들의 온라인 쇼핑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인 옥션이 연령별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50~60대의 구매량이 2014년과 비교했을 때 135%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60대 이상 고객의 구매량은 5년 새 171%나 증가했다. 경제권을 갖춘 중장년층이 빠르게 온라인 환경에 적응하면서 실버 서퍼 쇼핑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시니어 소비자를 위한 IT,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다면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실버 산업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IT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일상적으로 예매하는 기차표, 버스표, 영화관 티켓, 통장 없는 은행으로 인한 금융업무 등에서 장·노년층의 소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2017년 4대 정보취약계층(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장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노년층의 디지털 역량은 일반인의 6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접근성은 89.9%이지만, 디지털 정보를 활용하는 역량은 일반인 대비 41.0%에 불과해 절반에도 못 미쳤다. 또 일반 국민 대비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65.1%인데 장·노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저소득층, 농어민층보다도 떨어졌다.
디지털 금융 소외의 경우 시중은행들이 디지털화를 가속하면서 비대면 서비스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대변되는 금융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시니어들에겐 장벽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2017 지급결제보고서’ 에 따르면 모바일뱅킹은 늘어나고 있지만 60대 이상 노년층의 모바일뱅킹 이용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6개월 내 모바일뱅킹을 이용한 비율은 전체 조사대상자의 46.0%였는데 50대 이상이 최근 6개월 내에 모바일 지급을 이용한 비율은 26.1%였다.
시니어층이 모바일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75.3점), 안전장치에 대한 불신(72.6점) 등이 높게 나타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미이용의 주요인으로 꼽혔다. 그 외에는 구매절차 복잡(75.6점), 실수로 인한 손실 우려(69.7점), 인터넷 사용 미숙(65.6점) 등이 지적되었다. 특히 모든 항목에서 60대 이상이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불편함과 복잡성, 위험 등으로 인한 모바일 금융서비스 거부감이 컸다. 또한 이른바 인터넷 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2019년 1월 말 기준으로 65세 이상 가입자는 카카오뱅크가 0.6%, 케이뱅크는 0.8%에 불과했다.
IT 소외 시니어들의 디지털 교육 확대부터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시니어 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장애인이나 저소득층, 농어민보다도 뒤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니어 계층의 정보화 수준은 58.3%로 가장 낮으며 저소득층은 81.4%로 가장 높고 장애인 70.0%, 농어민 64.8% 순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기관 및 기업을 중심으로 IT 소외 시니어들에 대한 교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재 시니어에 대한 디지털 교육이 단순히 스마트폰에서 메시지를 송수신하고 비상호출 요령을 가르쳐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니어 계층에 정책적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니어 계층의 디지털 교육을 받은 후 이 교육을 바탕으로 ‘시니어 비즈니스’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엉터리 사이보그’로 살아가는 이야기 김원영 변호사와 연재하면서 나는 미래로 가는 길을 모색해보고 싶다. 미래를 살아갈 사이보그들의 과거와 지금 이 삶, 그리고 인간 대신 세계를 재설계하는 것까지.
“요즘 다들 안경 많이 끼시잖아요? 보청기도 안경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속상해하실 필요 없어요.” 처음으로 보청기를 맞추러 간 날 청능사는 내게 말했다. 중학생 나이에 난청 진단을 받게 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말을 꺼냈는지는 몰라도, 보청기센터는 정말로 여느 안경점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었다. 청능사는 카탈로그를 펼쳐 보청기의 종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격을 듣고 충격받았다. 보청기는 안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쌌는데, 복잡한 첨단기술이 적용된 초소형 기계이다 보니 별수 없어 보였다. 나중에 아빠는 우리 딸이 기계 귀를 단 사이보그가 됐다면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방영된 <600만 불의 사나이> 이야기를 했다.
보청기가 안경과 가장 다른 점은 가격이 아니라 최대한 겉에서 보이지 않게 설계된 기계라는 것이었다. 나는 청능사가 추천하는 대로 귀 안쪽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종류의 보청기를 골랐다. 귀 모양에 맞춘 몰드를 제작하고 다음 방문 때 완성된 제품을 받았다. 청능사가 책상 위의 거울을 내 앞으로 옮겼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보청기를 귀에 넣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청능사는 친절하게 물었다. “전혀 티가 안 나죠?”
그랬다. 거울 앞의 나는 완벽하게 평범해 보였다. 귀를 답답하게 채운 이물감이 없다면 보청기는 마치 없는 것 같았다. 청능사는 거듭 강조했다. 여학생들은 머리를 기르니까 겉에서 보면 거의 모른다고. 머리를 뒤로 넘기며 거울에 비친 모습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모든 것이 어울리는 안경테를 고르는 일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열여섯 살 나이에 보청기를 하게 되었고 원한다면 그 사실을 계속 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권장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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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원 그림 |
보청기는 생각보다 큰 이득을 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스피커 소리를 못 들어서 영어 듣기평가를 망치거나 친구들의 말을 자주 놓쳤다. 청능사는 언어 재활훈련을 권했는데, 정보를 찾다 가본 곳은 보청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인 카페였다. 카페 회원들은 보청기를 조율해가며 소리를 더 잘 들으려고 노력했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전화를 하며 살아가는 법을 공유했다. 가끔 장애인 등록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글이 올라왔다. 답은 반반이었다. 등록을 하는 게 뭐 어때서 그러냐는 반응과, 굳이 장애인 꼬리표를 달 필요가 있을까 하는 반응이었다. 나는 장애인 등록을 하는 대신 발음 연습을 했고 잘 들리지 않는 말소리를 편법으로라도 알아듣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곳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 격려하며 미래를 기약했다. 더 좋은 성능의 보청기가, 새로운 난청 치료제가, 완벽한 기술의 인공와우가 개발될 그날을 기다리면서.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내가 보통의 삶을 흉내 내는 일이, 언젠가 정상성을 ‘회복’할 날을 기다리는 일이 당연한 것인 줄로 믿고 살았다. 아빠의 말대로 나는 수백만원짜리 기계를 착용한 사이보그였지만 뛰어난 성능의 사이보그 요원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간이 되지 못한 불완전한 사이보그에 가까웠다.
완벽한 보청기를 차고 폐 끼치지 않기
기술은 늘 정상성의 회복을 약속한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뜬금없는 계기로 상기하곤 하는데, 작가 활동을 시작하고 신문에 실렸던 한 인터뷰도 그런 계기 중 하나였다. 인터뷰의 도입부에는 내가 후천적 청각장애인이어서 전화 통화를 할 수 없었다는 언급이 짧고 극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기사는 주로 내 작품과 SF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으니 전체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불쌍해. 그래도 언젠가 청력 회복할 기술이 나올 것임.’
약간 떨떠름한 정도로 넘겼지만 어쨌든 그런 기술의 이미지는 강력한 모양이다. 기술은 낙관적인 미래를 말한다. SF를 쓰고 테크 리뷰를 찾아 읽고 과학 잡지를 종류별로 구독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더 자주 착각에 빠진다. 언젠가는 질병도 장애도 사라진 세계가 올 것이라고. 사이보그들은 이미 이 시대에 도착해 있지 않느냐고. 텔레비전 광고를, 유튜브를, MIT 미디어랩의 홍보 영상을 보라고. 인류는 정말로 한계투성이 신체로부터 해방된 포스트휴먼으로 가는 첫걸음에 이미 들어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이 나에게 회복을 약속할 때 나는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되는 나를 본다. 나는 최대한 장애인 ‘티’를 내지 않으며 정상성을 수행하는 존재로 살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을, 그것을 벗어나는 순간 나에게 향하는 싸늘한 시선들을 생각한다. 세계는 들리는 사람들을 위해 설계되었다. 기술은 그 전제를 공고히 한다. 기술이 약속하는 미래는 내가 완벽한 보청기로 도움을 받고 청신경을 회복해서 무사히 소리를 듣는 미래다. 그럼으로써 내가 더 이상 말을 되묻지 않고 대화를 끊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미래다.
기술이 모든 사람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가능할까. 길 가는 소설가를 붙잡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유토피아적인 기술을 제시해보라. 그는 그 기술로부터 손쉽게 디스토피아를 고안해낼 것이다. 발전한 기술을 가진 사회라 해도 반드시 누군가는 그 기술과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된다. 아무리 미래를 앞당겨도 누군가는 여전히 엉터리 사이보그로 이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삐거덕거리는, 기계와 불화하는, 정상성을 수행하려고 수없이 시도하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마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그러니 인간을 재설계하는 대신 세계를 재설계하는 것은 어떨까. 나는 장애를 부정하지 않는 기술을 상상해본다. 독립적이고 완전한 정상 인간에 맞추어 모든 인간을 향상하는 대신,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 의존하며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 기술을 생각해본다. 그런 기술과 미래는 멀리 있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한편 기술만으로 그 미래를 실현하는 것은 어렵기에 이 상상에는 다양한 관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재에서 그 미래로 가는 길을 모색해보고 싶다. ‘엉터리 사이보그’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계와 기술 문명이 장애를 가진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이보그들은 어떤 계기로 정상 인간 밖의 정체성을 수용하는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사이보그가 되기를 선언하고 탐구할 때, 장애인 사이보그인 우리는 정말로 정상성을 해체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통해 언젠가 미래를 살아갈 사이보그들의 과거와 지금 이 삶을 말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