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인간이 존엄한 나라에서, 씨 유 어게인

일취월장7 2019. 4. 29. 10:27

인간이 존엄한 나라에서, 씨 유 어게인

[인권으로 읽는 세상] 판문점선언 1년, 장기수 붓글씨 전시회 '선(線) 위에 선(立)'
2019.04.28 11:06:53

라마 <미스터 선샤인> 마지막 회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움직이게 했다. 이름 없는 의병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불러낸 섬세한 재현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꼈다. 1907년이었다.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이 일본제국에 의해 퇴위 당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들이 무기를 들고 항일투쟁에 나섰다. 해산된 군인도 합세해, 일본 통계로도 15만 명이 봉기했다는 정미의병이다. 전국의 의병들은 13도 창의군으로 부대를 편성해 치열하게 싸웠으나 대부분 사살 당했고 일제의 토벌을 피한 이들은 만주 등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만주로 간 고애신(<미스터 선샤인>의 가상 인물)은 함께 했던 동지들을 기억하며 다짐한다. "독립된 조국에서 씨 유 어게인." 

 

독립된 조국에서  

 

십여 년이 흐른 19193,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기 위해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쳤다. 일제는 '조선만세소요사건'으로 부르며 수천 명을 죽이는 진압에 나섰다. 이듬해, 충북 제천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13도 창의군 호서대표로 싸우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임을 당한 이강년의 좌종사 이주승이 그의 아버지였다. 마을 인근의 월악산 자락에는 제천 의병들이 지내던 큰 굴이 있었고 그곳에서 어떤 꿈들이 피어나고 있는지 아이도 모르지 않았다. 열일곱 살에 찍었다는 사진 속 아이는 세 봉우리가 솟은 정자관을 쓰고 두루마기를 차려 입었다. 무표정한 듯 평온한 얼굴은 무언가 자신 있다고 말하는 듯 다부지다. 한학을 배우다가 새로운 학문을 만나게 될 때의 마음이 그랬을까?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그는 경성영창학교에 입학했다. YMCA의 전신인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설립한 학교였다. 수학, 과학 등의 교과보다 책 읽는 일이 좋았다고 한다. 일본어로 된 책을 보며 그는 빈곤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가 감명 받았던 책의 목차는 이렇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난한가/왜 많은 사람이 가난한가/어떻게 가난을 없앨 수 있는가" 그는 좋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기 위해 '월악 동지회'라는 독서모임을 만들기도 했고, 의병들처럼 무장봉기를 준비하던 조선민족해방협동당을 뒤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서 고문도 당했다. 일본이 망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구속되는 시절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해방은 스물다섯 살 되던 해 시작되었다. 건국준비위원회는 "조선 민족의 해방은 다난한 운동사상에 있어 겨우 새로운 일보를 내딛었음에 불과하나니" "완전한 독립 국가의 건설""전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정권의 수립" 등이 이루어지도록 행동할 것을 선언했다. "사람답게 사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고 싶었던 그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주장을 담은 글을 쓰기도 하고 영등포에서 노동자를 조직하는 활동에도 나선다. 그러나 독립된 조국에서 그의 이름 이구영은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될 수 없었다.  

 

그의 삶을 삭제해온 국가  

 

친미 성향의 이승만이 외세에 저항하는 듯 보이는 반탁운동을 조직하는 혼란스러운 정국이었다. 쌀과 직업과 권리를 주는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중들의 저항은 이어졌다. 미군정 여론조사에서 사회주의를 원한다는 사람이 70%에 이르는 시절이었다. 이승만은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제주 민중을 학살한 후, 1948년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 권력을 쥔 그는 국민보도연맹의 창설, 반민특위 습격을 감행한다. 노동자들과 함께 한다는 이유로 이구영도 두 차례나 감옥에 갇혔다.  

 

독립된 조국에 두 개의 정부는 인정될 수 없었다. 남은 대한민국의 북쪽을 북한이라 부르고, 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쪽을 남조선이라 불렀다. 서른 살이 된 이구영에게 전쟁 소식이 들려왔다. 북에서 넘어온 군대는 부산까지 내려갔다. 북진통일을 부르짖던 대통령은 '나 홀로' 피난했고 평화통일을 바라던 민중들은 마을을 재정비했다. 이제 곧 해방인가 싶던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달라지고 인민군은 퇴각한다. 그때 이구영도 38선 이북으로 넘어갔다. 남쪽에 가족을 두고 북으로 떠나던 이구영이 마음속에 담았던 인사가 이러했으리라. "해방된 조국에서 씨 유 어게인."  

 

북에서 한문을 가르치며 지내던 이구영은 1958년 남조선으로 가서 해방을 완수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두렵지만 설레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며, 자신 앞에 놓인 역사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형법보다 국가보안법을 먼저 만든 대한민국에서 그는 ''일 뿐이었고 그의 이름은 '남파공작원'이었다. 부산에서 체포된 이구영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다시 감옥에 갇혔다. 4.19혁명 이후 20년으로 감형되었으나 곧이어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시대에는 더욱 극악한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상전향공작.

   

때로는 고문과 백색테러의 모습으로 때로는 가족과 지인의 글썽이는 눈물로 때로는 편지 왕래를 중단시키거나 밥을 줄이는 방식으로, 전향하지 않고서는 감옥에서 살아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협박이 이어졌다. 혹독한 시간이었다. 1931년 일제가 시작한 사상전향제도는 이승만 정부에서 보호감호제도로 다시 태어났고 박정희 시대에 사회안전법으로 자리를 굳혔으며 1989년 이후 보안관찰법으로 이어지고 있다. 1980년 이구영은 가석방으로 출소했으나 국가는 그대로였다.  

 

분단의 선() 

 

북이나 남이나 상대방의 실패와 패배의 증거를 만들어야 했다. 전향하지 않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었다. 같은 이유로 자기 체제의 문제를 드러내는 목소리는 용납할 수 없었다. 독재를 반대하는 것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가 되어버렸다. 학살, 사법살인, 의문사, 고문, 간첩조작, 강제징집 등 국가는 어떤 사람들을 삭제해버렸다. 그 자리에 선()이 세워졌다. 주권의 경계를 확인하는 국경선이었다면 북의 삼촌과 남의 조카가 만난 것이 죄가 될 리 없고, 전쟁이 멈춘 자리를 표지한 휴전선일 뿐이라면 종전선언을 반대한다는 괴이한 주장이 나올 이유가 없다. 분단의 선은 정치범이 수감된 감옥에 있었고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의 핏줄에 있었고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정에 있었다.  

 

선 안의 우리는 '몰라야 하는 것'들에 갇히게 되었다. 일제의 사상전향 시도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우러러보면서도 그가 사회주의자거나 북과 관련 있다면 선뜻 내세우지 않거나 아예 모른다. '건국'의 시점에 대한 각기 다른 주장에서 드러나듯 북한의 역사가 삭제된 채로 우리는 온전한 역사를 살 수 없다. 일본 전범 처리를 흐지부지 만들면서 동아시아 정의를 봉쇄한 미국이나 반미 선동을 멈추지 않는 북한을,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판문점선언도 분단의 선에 갇혀 있다.

   

지난해 427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낸 남북정상회담은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기대하게 했다. 역사상 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될 때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던 만큼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올해 하노이에서의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로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더 변해야 한다는 주문들이 많다. 북한을 변화의 주체로 보기보다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70여 년에 걸쳐 만들어진 분단의 선이 워낙 견고하니, 북한은 적이 아닐 수 있더라도 악()이 아닐 수는 없는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북한을 변화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남한도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배드딜, 노딜, 스몰딜, 빅딜과 같은 말의 잔치 속에서 정작 대한민국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라는 두 바퀴로 움직이는 차의 핸들을 잡는 것으로 평화체제에 이를 수 있을까? 남한도 엔진이 되어야 한다. 남한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발견하면서 함께 변화해야 한다. 함께 변화하려면 서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선 안에서 선 너머의 북한을 이해하기란 당장은 쉽지 않다. 섣부른 민족주의는 동화정책이라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차라리 남한사회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는 게 낫다. 

 

선 위에 선 사람들 

 

분단의 선을 만나면 적어도 스스로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될 것이며, 잠시 머물러본다면 우리의 삶과 미래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분단의 선이 가로지르고 있는 남한사회. 선 바깥은 권리도 삶도 역사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그래서 형기를 마친 사람을 다시 가둬도, 증거 없이 사형을 언도해도 문제되지 않았다. 이웃이 배척하고 가족이 고립되어도 '자초한 일'이라며 비난당할 뿐이었다. '빨갱이'라는 이름이 붙은 무권리 상태가 용인되었다. 분단의 선을 따라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가 삭제되고 있었다. 사상도 불가능해졌다. '어떻게 가난을 없앨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데 길잡이가 되는 이념은 한국사회에서 불온한 것의 이름일 뿐이다. '이념적'이라는 말 자체가 비난의 수사로 통용되는 사회다. 선 너머를 절멸하려는 국가는 역사도 삭제해왔다.

   

그 자리에 사람들이 있었다. 선이 먼저 있어서 거기까지 간 게 아니다. 저마다의 꿈을 품고 삶을 이어가는 어떤 자리에 국가가 선을 그었을 뿐이다. 국가는 사람들을 선 안으로 제압하거나 선 바깥으로 추방하려 들었다. 선 위에 선 사람들은 선을 긋는 국가의 폭력에 맞서 열 개의 발가락으로 땅을 움켜쥐듯 선 위에서 버텼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단의 선이 낳은 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폭력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존엄의 자리를 지켜낸 사람들이다. 인간의 해방을 도모하며 사상을 토론하는 사회로 가고자 할 때 우리는 이 선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430일까지 열리는 전시회 '() 위에 선()'에서는 국가가 지우려 했던 사람들 류낙진, 박성준, 석달윤, 신영복, 안승억, 오병철, 이구영, 이명직, 이준태가 붓으로 써 내린 선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의 글씨와 이름도 그리로 가는 길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인간이 존엄한 나라에서, 씨 유 어게인."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이하며
[기고] "민족의 불행으로 이득 보려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자"
2019.04.27 10:53:45

불과 1년 전이다. 100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고작 1년 전이다.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북측 지도자와 대한민국 대통령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가 다시 오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중계 되었을 때 온 국민은 감동을 넘어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모든 전쟁의 위험은 사라지고, 우리 모두는 평양 또는 원산을 지나 저 멀리 만주 벌판, 시베리아 벌판을 거쳐 유럽에 도달하는 꿈을 꾸었다. 철조망도 미사일도 장갑차도 탱크도 대포도 소총도 모두 고철이 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통한 통일만이 우리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100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고작 1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군사분계선에 엄청난 벽이 가로막혀 있는 듯한 답답함을 다시 느낀다.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전쟁의 위험도 언뜻 언뜻 우리의 뇌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물론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많은 결과를 얻어냈다. 판문점 선언 이후 곧바로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불안의 요인은 조만간 사라지는 듯했다. 가을에는 평양에서 3차 정상회담이 열렸고, 역사적인 평양 선언이 발표되었다. 남북의 군사긴장을 완화할 여러 조치들이 취해졌다. 남북 정상이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서 두 손을 맞잡고 7천만 겨레에게 다짐도 하였다. 

그뿐인가? 비록 대화 분위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현재에도 어쨌든 대화는 해야 한다고, 다시 할 것이라고들 말한다. 서로를 향한 험한 말은 내뱉지 않는다. 핵실험도 미사일 발사도 없다.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시위도 없다. 그래도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민족이 이른바 '냄비근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판문점 선언, 평양 선언에 열광하고, 북미정상회담에 커다란 기대를 갖다가 잘 안 되는 것 같으니까 금세 돌아서 버린 것인가? 아니면 누구의 말대로 어느 쪽이든 원래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쇼를 하다가 이제 본색이 드러난 것인가?  

분위기가 지금처럼 바뀐 것은, 첫째,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에서 열렸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야 어찌 되었든 현 정부의 국내정책에 대한 국민 대중의 실망을 남북문제와 연결시키려는 일부 정치세력의 집요한 발목잡기가 그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문제부터 보자. 우리(남, 대한민국)가 중재자인지, 누구 말대로 중계자에 그치고 있는지, 당사자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가 아닌 남에 의해 우리 문제가 널뛰기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손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 된다. 이것은 판문점 선언 제1조 제1항에 나와 있는,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둘째 문제를 보자. 100년 전 3.1만세운동 때도 전 국민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듯이, 8.15 광복의 그 날에도 기뻐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듯이 4.27 판문점 정상회담과 그 선언을 기뻐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깎아내리고, 폄훼하고, 심지어 훼방을 놓아서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이 현 시국에 대한 국민 대중의 불만에 편승하고, 그것을 남북화해와 평화 정착에 대한 불만으로 연결시키려고 집요하게 노력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하여 누구에게 이득이 될지는 그들에게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막무가내로 현 정부에 흠집을 내고, 냉전의식 대결의식을 통해 자신들의 집권에만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최대한 많은 국민의 의지를 모아서 민족자주의 원칙에 따라 평화, 화해의 길로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자유 왕래, 교류의 길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민족자주의 원칙이 중요하다. 또 최대한 다수의 결집이 중요하다.  

우리는 미국을 적대시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는 현재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면 미국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할 자세가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평화애호세력을 설득하고 함께 하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서야 한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미국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때는 정부의 과감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본다.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자유 왕래는 지체 없이 추진해야 한다. 개성공단은 조건 없이 하루 빨리 가동시켜야 한다. 인도적 지원은 물론 민족 내 경제 교류를 정부가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미국의 눈치만 보다가는 당사자는커녕 중재자도 아니고, 중계자 혹은 아예 방관자 국외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현 상황을 악화시켜서 이득을 보려는 자들과 다수의 국민 대중을 분리시키려 노력하여야 한다. 다수 국민의 진정한 바람을 잘 확인하여 그에 맞는 평화운동, 민족화해운동, 통일운동을 힘차게 벌여 나가야 한다. 현재의 국회 상황으로는 난망하기는 하지만 국회가 정상화되는 대로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을 관철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회에 압박을 넣는 국민운동도 절실하다. 1주년을 맞이하는 4월 27일의 인간띠잇기운동은 그러한 운동의 중요한 출발이 되리라 믿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작 1년이다. 100년도, 10년도 아니고 불과 1년이다. 바로 1년 전에 우리는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고, 우리 민족이 하나 되어 웅비하는 꿈을 꾸었다. 민족의 불행으로 이득을 보려는 극소수 세력에 국민 다수가 인질이 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갈 길을 가야 한다. 그것만이 현재의 우리 모두를 위해, 미래의 후손을 위해,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다시, 촛불을 들자

[시민정치시평] '87년 체제'를 끝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토막이 났다. 지난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최대의 업적이라 할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에 대한 희망도 흔들리는 이 때, 무엇보다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이 낳은 부작용이 크다는 온갖 공세가 여론을 움직인 모양이다. 게다가 몇 몇 인사 실패 같은 소소한 문제도 민심 이반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지지율 하락이야 어느 정도 예견되었지만, 이러다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고 자임하는 정부가 야심차게 내세웠던 개혁의제들을 슬그머니 하나씩 거두어들이고 아예 촛불의 정신을 지워 버리지는 않을지 하는 우려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촛불혁명이 기로에 섰다.

'비판적 지지'를 넘어서  

많은 이유들이 제시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문재인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의 본원적 한계를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처음부터 '진보'와 거리가 멀고 어쩌다 촛불혁명의 과실을 독점하게 되었지만 우리 사회 근본 개혁을 바랐던 촛불 시민들의 열망을 실현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이래의, '진보-자유주의-보수'라는 낡은 유럽적 정립 체제를 상정한 진보 정치에 대한 이런 본질주의적 접근이 지금의 상황에서도 얼마나 적실성을 가질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나로서는 우리 집권 세력이 단지 진보적 지향과 의욕만 강했을 뿐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정밀한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는 실천 역량을 제대로 기르지 못했다는 점이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문제는 특정 정치인 개인이나 집권 세력의 태생적 문제라기보다는 광의의 우리 진보 정치 전체가 지닌 역사적 한계라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우리 진보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추상적인 진보적 가치와 도덕적 지향에는 충실했을지 몰라도, 세상을 실제로 조금이라도 바꾸어낼 수 있는 정책과 실천 역량을 준비하는 데는 소홀했다. 주로 도덕성을 내세워 집권하거나 성공했기에 조금이라도 도덕적 흠결이 드러나면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는 특유의 약점도 지니고 있는 데 더해, 국정 운영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해 정당한 권력을 쥐고서도 결국 관료에게 의존하여 상황을 관리하는 데만 급급하게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어느 정도는 '민주적' 정부의 통제 아래 있지만, 직업적 안정성과 전문성을 무기로 자립화하여 국정 운영의 중요한 혈맥을 사실상 좌지우지 하고 있는 관료들의 농단과 저항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자유한국당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적폐 수구 세력의 너무도 집요하고 강고한 저항이다. 정부와 민주당 인사들의 개혁 의지와 역량 부족을 얼마든지 탓할 수 있지만, 그런 부족함에 대한 비판은 우리 사회의 저 기득권 동맹의 막강한 사회적 권력과 그 정치적 힘을 배경으로 해서만 온전하게 타당할 수 있다. 그 부족함이라는 건 결국 그 핵심에서 저들의 저항과 반격을 제대로 넘어서지 못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비판을 하되, 진짜 적이 누구인지 놓치면 안 된다. 그리고 저 오랜 '비판적 지지'의 망령도 떨쳐버려야 한다. 누군가는 정치적 진리를 독점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그에 근접하면 지지하고 벗어나면 비판하겠다는 식의 태도는, 어떤 정치적 오만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치를 실천이 아니라 형이상학으로 만들 뿐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저 기득권 세력의 강고한 저항과 반격을 넘어 설 확고한 '개혁 동맹'의 구축이다. 준열하게 비판하되, 그리고 그건 너무도 마땅하지만, 그 어떤 정치적 이상과 가치도 저 수구 세력의 난동에 가까운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냥 구두선에 그칠 뿐임을 잊으면 안 된다. 


'87년 체제'를 끝내야 한다
 


그런데 저들이 저렇게 정치적 난동을 부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온갖 편법과 불의에 기대 형성된 저들의 사회적 권력의 막강함이 출발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권력이 언제나 곧바로 정치적 힘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는 바로 정치를 통해 그런 사회적 권력을 일정하게 길들이고 규제해서 그 권력이 공동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런데 저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껏 거의 무소불위의 정치적 힘도 누리며 이 사회의 온갖 불의를 심화시켜 왔다. 언론 같은 권력 보조 장치들을 이용한 기만 탓에 저들의 본질을 놓치기만 하는 대중들의 우둔함 때문인가? 어느 정도는 그럴 지도 모른다. 민주 진영의 무능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그에 따라 형성된 지역주의 기반의 정치 체제다. 바로 이 정치 체제가 오랜 세월 수구 기득권 세력이 막강한 정치적 힘을 누릴 수 있었던 진짜 핵심 비밀이다. 인간의 해부학은 원숭이의 해부학을 위한 열쇠라고 했다. 이번의 선거법 개정 시도에 대해 자한당이 '좌파의 장기집권 음모' 운운하며 부리고 있는 정치적 난동은, 바로 이 87년 체제가 얼마나 저들의 본질적 이익과 맞닿아 있는지를 새삼 웅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우리 시민들은 오래 전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부독재를 끝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교활했다.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선에서 막고, 모든 선거가 단순다수결 승자독식의 원리를 따르도록 했다. 모두 나름의 지역적 핵심 기반을 갖고 있던 당시 야권의 지도자들도 당장 정권을 놓치더라도 최소한 지역 맹주 자리는 지키겠다는 욕심에 그런 제안을 수용했지 싶다. 이렇게 탄생한 '87년 체제'는 그 사이 약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적인 틀을 유지 한 채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제 이 체제를 깨트려야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의 제도가 자한당 궤멸에 더 좋을 수도 있다. 작년의 6.12 지방선거는 이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재현되기도 힘들 뿐더러,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고, 우리나라 보수 세력도 정치에서 정당한 자기 몫을 가져야 한다. 제일 큰 문제는 지금의 제도가 승자독식의 규칙 때문에 특정 세력이 민주주의적 정의에 어긋나게 과다 대표되고 권력을 독점하면서 정치 세력 사이에 극단적인 '전쟁정치'를 일상화시키게 된다는 사실이다.

문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자한당은 지금의 제도로 내년 총선을 치르고자 한다. 아마도 약간의 지역주의를 선동하고 부울경이라는 텃밭만 회복하면 결국 다시 제1당이 되고 그 바탕 위에서 다음 대선도 이기겠다는 계산을 하지 싶다.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단지 87년 체제의 여러 정부 중의 한 정부로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체제의 모든 정부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해야 한다. 단순히 특정한 개인이나 세력의 한계가 아니다. 최소한 그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근본적인 체제의 한계고 구조적 한계다. 중앙 정치 차원에서는 승자독식의 규칙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한 여러 세력들의 결사항전 식 쟁투로 나라가 병 들었고, 지역 정치 차원에서는 많은 곳에서 사실상 장기간의 1당 독재체제가 지속됨으로써 시민들의 삶이 피폐해졌다. 이것은 태생적 한계를 안고 태어난 우리 '결손 민주주의'의 지독한 운명이다. 이제 이 87년 체제를 끝내야 한다.

다시, 촛불을 들자 

이 체제를 끝낼 절호의 기회가 왔다. 아마도 마지막 기회이지 싶다. 여전히 부족하고 끝까지 불안하지만, 그나마 이 정치 체제를 획기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 선거제 개혁안이 이른바 '패스트 트랙'에 태워질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자한당의 완강한 반대는 이미 예견된 바이고, 다른 정당들 안에도 내심 선거제 개혁을 달가워하지 않는 의원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그들을 욕하기는 쉬워도,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 뱃지가 걸린 일인지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를 일이다. 단지 그들의 정치적 선의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

이제 시민들이 나서자. 다시, 촛불을 들자. 선거제 개편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질 때까지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정치권을 압박하고 감시해야 한다. 우리는 고작 제대로 된 개혁 입법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또 다시 실패를 반복할 운명을 지닌 정부를 세우려고 그 추운 겨울에 몇 달이고 계속 촛불을 들지는 않았다.  

우리가 원한 건 근본적인 사회 개혁이고, 그것은 정치의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촛불을 든지 2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끝이 아니었다. 87년 체제라는 구조적 병리가 또아리고 있었음을 우리는 새삼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 개혁해야 할 다른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먼저 이 병리부터 치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민주당을 닦달하자. 다른 개혁 과제들이 좌초한 데 대해서는 자한당의 기괴한 농성 정치와 의석수의 한계라는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그 동안 정치 체제 그 자체를 바꾸는 일에 엉터리 계산기를 두드리며 미적거린 데 대해서는 그 어떤 가혹한 비판도 부족하다. 내년 총선에서 자한당을 궤멸시킨 후 새로운 정치 구도 속에서 개혁을 하자고? 감히 단언컨대, 그런 일은 현재의 체제 속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다시는 이런 얄팍한 계산을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는 오히려 민주당이 궤멸할 것임을 경고해야 한다.

다른 정당들도 개혁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압박하자. 지난 촛불혁명은 시민들의 압박에 이기지 못한 당시 새누리당 의원 다수가 시민들의 강렬한 열망에 투항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한 손에는 촛불, 한 손에는 정치'라는 촛불혁명의 성공 공식은 이번에도 타당하다. 의원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우리 시민들이 나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압박해서 그들이 그에 따르게 해야 한다. 

꼭 광장이 아니라도 좋다. 다시 추운 겨울에 길을 나서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제 카페에서든 술집에서든, 트위트에서든 페이스북에서든, 87년 체제를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기 위해 토론하고 새로운 정치 체제에 대한 비전을 퍼트리자. 다양한 방식으로 쉼 없이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압박하자. 다시 개헌에 대한 열망도 모아 정치권에 전할 수도 있겠다. 87년 체제를 끝장 낼 마지막 절호의 기회가 왔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어쩌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결손 민주주의의 어두운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이제, 진짜로 징글징글한 이 87년 체제를 끝장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