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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으로 간 약산 김원봉의 선택 '오해와 진실'

일취월장7 2019. 3. 29. 14:47

北으로 간 약산 김원봉의 선택 '오해와 진실'

남(南)에서는 월북한 ‘빨갱이’ 낙인찍히고 북(北)에서는 ‘국제간첩’
2019.03.29 13:10:39


단채 신채호 선생이 우리나라에 진정한 독립투사는 김원봉 뿐이라고 했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기억해주지 않는 비운의 혁명가 김원봉은 밀양(密陽) 출생으로 1919년 의열단을 조직, 국내의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했다.

또 1930년대 조선 혁명학교 교장 겸 민족혁명당 당수, 아시아 태평양 전쟁 기간에는 조선의용대 총대장 겸 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 등 우리나라의 독립과 건국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항일운동 성지' 경남 밀양시가 내일동과 내이동을 경계로 흐르는 '해천'을 따라 조성한 항일운동테마거리 ⓒ프레시안 이철우



해방 후 민주주의 민족전선 대표를 역임하며 좌우 합작 민족통일에 힘써왔으나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등을 지냈다. 그는 1958년 김일성을 비판하다가 숙청됐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독립에 대한 공적이 사실상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생을 던졌지만, 그는 늘 월북이라는 그늘에 가려 있었다.

남과 북은 그를 밟고 섰고, 그의 이름을 철저히 지웠다. 반민족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그의 존재를 두려워했다. 평생을 독립운동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그를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한다. 

당시 일제가 내 건 김 현상금 1위가 김원봉 선생이란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제와 친일매국노들이 제일 두려워했던 사람이 약산 김원봉이었다.

해방 후 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하나 된 조국 통일운동으로 좌우 합작을 도모하며 언제나 우리 민족의 살길을 늘 고민하고 시대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실천한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다.  

지금 그가 살았다면 어떤 꿈을 갖고 계실까? 지금 현시대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오로지 민족만을 바라보고 행하였던 그의 항일투쟁은 우리가 과연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좌우의 논리로 정파의 프레임에 가두어 그를 평가 하는 자체가 우린 너무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 그의 항일운동은 오직 조국과 민족만을 위해 많은 젊은 의열 열사들과 함께 피로써 맞서왔다.  


일제기관 파괴와 친일 매국노 처단 등 적극적인 무력항쟁노선을 실천에 옮기는 단체는 오직 의열단 뿐이라고 평가 할 만큼 그가 이끈 의열단은 독립운동 역사상 괄목한 만한 활동 성과를 남겼다. 

1941년 조선의용대는 중국공산당 팔로군이 주둔하고 있는 화북행이 결정되자 그는 고심 끝에 중국 국민당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중경의 임시정부로 본대를 이끌고 이동한다. 


그가 만약 철저한 공산주의자라면 조선의용대를 이끌고 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했을까? 해방 후 조국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좌우 합작을 도모하다 피살된 여운형 선생의 죽음 앞에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많은 물음표 앞에 우리는 그가 살아 있다면 어떤 메시지를 던졌을까?

지난 27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약산 김원봉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 대표는 약산 김원봉을 뼛속까지 북한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자 역사학자 전우용은 친일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짓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많은 역사가는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인 올해 일제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가 민족을 분열시켰다고 주장한 나 원내대표의 주장에 한 정치인의 항일운동 역사 인식에 허탈함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결국 민족분열은 이승만 정권이 노덕술과 같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의 역사학자들 생각이며 오히려 그를 반공 투사로 훈장을 주어 정권 유지에 이용했다는 것이 민족분열을 일으켰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그가 지금 살아 계셨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린 그에게 분명히 큰 빚을 지웠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약산 김원봉의 항일투쟁 이야기를 재조명한 뮤지컬 '독립군 아리랑’ⓒ프레시안 이철우



우리 민족이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의 민족과 조국 사랑을 이제 이념싸움에 골몰하고 있는 지금 정치인들에게 가슴속에 새겨지길 바랄 뿐이다.

한편 김원봉 선생의 고향 밀양에서 그의 일대기를 그린 밀양아리랑콘텐츠사업단의 ‘뮤지컬 독립군아리랑’이 이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키는 공연으로 큰 반항을 일으키고 있다.

극 속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어떤 것인가에 대답을 명확히 밝히고 있어 많은 관객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3월 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사업단은 올 해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 받고 있음에도, 남(南)에서는 월북한 ‘빨갱이’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히고 북(北)에서는 ‘국제간첩’으로 몰려 숙청된 김원봉선생의 항일투쟁 이야기를 아리랑의 저항정신으로 승화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경남 도민예술단 공연으로 선정되어 곧 재공연이 이루어진다고 밝혔다.